[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벅수와 장승이 있었는데
많은 이가 이 벅수와 장승을 혼동하고 있지만 이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벅수’는 주로 마을이나 절 들머리에 세워져 있었는데,
밖에서 들어오는 재앙을 막아주었고,
특히 1600년 무렵 중국에서 발생해 조선으로 마구 밀려오는
돌림병과 잡귀들을 막아내기 위해 전설 속의 치우(蚩尤), 용,
또는 장수나 제왕의 표정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했고,
가슴에는 글씨를 새겼습니다.
▲ 상주 남장사 앞에서 서 있는 수호신 '벅수'
그러나 장승은 역참제도에 의해 생긴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그 역할은 '여기서부터 어디 어디다'라고 하는 표지 기능입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1941년 일본 수묵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본에서 일본미술사를 강의했던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박사는
“이정표(장승)와 수호신(벅수)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이 말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유일하게 벅수와 장승 전문가인 황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기능의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여)장군이라는 벅수 문화를 ‘망령된 미신 문화’로 취급하며 깎아내렸고,
역참제도의 폐지로 우리 땅에서 사라지고 없는 장승을 다시 찾아내
벅수와 합치며 ‘장승’이 표준말이라고 왜곡했지요.
나아가 1912년 언문철자법에 포함해 공표하고 교육했다.”라며
벅수와 장승은 분명히 다른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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