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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학당(宗學堂)

작성자이계묵|작성시간13.02.12|조회수174 목록 댓글 0

 

종학당(宗學堂)... 가문의 교육을 담당한 파평윤씨(坡平尹氏)의 문중(門中) 교육기관

 

 

 

 

 

 

네 명의 왕을 거치면서도  王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않았으며, 그러나 역대 왕으로부터 20여 차례나 벼슬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한 명재 윤증(明齋 尹拯)... 우의정의 벼슬이 내렸으나 18번의 상소로 끝내 거부한 그에게 당시 주위에서는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고 불러 칭송하였다. 벼슬을 거부한 명재 윤증(明齋 尹拯)이 고향에서 한 일은 무엇인가? 그가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교육이었으며, 명재의 후진 교육은 이 곳 종학당(宗學堂)을 통하여 이루어 졌다.

 

 

 

 

 

 

 

 

 

 

종학당(宗學堂)은 명재의 집안인 파평윤씨(坡平尹氏) 노종파(魯宗派)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교육기관이다. 윤씨들이 세운 자신들만을 위한 일종의 사립학교.....이왕지사 종학당을 세웠으면  널리 후진양성을 위한 기관으로 활용하지 않아 가문 중심적인 폐쇄성(閉鎖性)으로 비판의 여지는 있지만,하여튼 이 종학당(宗學堂)을 통하여 파평윤씨 노정파 (坡平尹氏 魯宗派)는 기호지방(畿湖地方)에서 명문세족으로 널리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종학당에서 45명에 이르는 과거 급제자 등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면서, 사계 김장생 (沙溪 金長生)을 배출한 연산(連山)의 광산 김씨(光山金氏), 우암 송시열 (尤庵 宋時烈)을 배출한 회덕(懷德)의 은진 송씨 (恩津 宋氏), 그리고 이 곳 노성(魯城)의 파평윤씨(坡平 尹氏)... 이 세 집안이 솥단지의 세 다리처럼 정족적(鼎足的) 형국을 이루었던 것이다.17세기 이래로 조선사회를 움직였던 주류세력(主流勢力)이 영남보다는 기호지방의 양반들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 세 집안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명문세족이었던 것이다.

 

 

 

 

 

 

 

 

 

 종학당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되는 현실적인 계기는 과거급제자를 다수 배출한 점에 있다. 종학당은 1618년 개교이래 1910년 한일합방으로 강제 폐쇄될 때까지 292년 동안 유지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배출된 문과급제자가 42명이었다. 종학당 설립 이전에 급제한 파평윤씨 5명을 포함하면 총 47명이다. 조선시대에 문과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안은 왕족인 전주이씨(全州李氏)이고, 그 다음이 파평윤씨로 모두 460명을 배출하였다. 전국의 파평윤씨 중 이 곳 논산 노성에 살았던 명재 윤증(明齋 尹拯)의 집안 사람들이 1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양의 성균관을 제외한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을 보면 향교(鄕校), 서원(書院), 서당(書堂)으로 나뉜다. 향교가 관(官)에서 세운 관립 교육기관이었다면, 서원(書院)은 양반들의 사립 교육기관이었고, 서당(書堂)은 초학자를 위한 초급 교육시설이었다. 그런데 이 종학당은 향교도,서원도,서당도 아니었다. 오로지 윤씨 집안만을 위한 사립학교이었다.사에 이러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종학당의 교육과정은 중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모두를 이 종학당에서 마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백록당(白鹿堂) ..오가백록(吾家白鹿)이다. 즉, 우리 집이 곧 백록(白鹿)이라는 의미이다. 중등과정을 마치면 이 곳 백록당으로 올라 와 본격적인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곳, 즉 대학과정이다.백록(白鹿)은 중국의 주자(朱子)가 살던 곳의 지명이 백록동(白鹿洞)이고, 주자(朱子)가 직접 가르치던 서원의 이름이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이었다. 학문의 본향(本鄕)임을 자부하고 있는 이름인 것이다.

 

 

 

 

 

 

 

 

 

 

종학당(宗學堂)은 ' 명재 윤증(明齋 尹拯) '의 중부(仲父 ..큰아버지)되는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 1596~1668)가 문중(門中)의 힘을 모아 1618년에 세웠다. 동토(童土) 역시 벼슬 길에 나서지 않고 뒤편에 남아서 주위 공동체의 배려에 힘을 쏟은 인물이다.종학당 설립은 동토(童土)가 했지만 학문적인 교육은 그의  동생이었던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1610~1669)가 주로 담당하였다. 윤선거는 병자호란 당시 비록 강화도를 탈출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고, 아들 윤증(尹拯)에게 인생의 멍에가 되지만, 송시열의 친구이면서도 학문적인 논쟁을 벌였던 인물이었다. 그 아들 윤증에 이르러 종학당의 교육은 더욱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된다.

 

 

 

 

 

 

 

 

 

 

 

 

 

 

 

 

 

 

 

 

 

 

 

 

 

조선 후기 최고의 명문 사립학교이었던 종학당의 교육체제 및 커리쿨럼은 다음과 같았다. 택사장(擇師長) .. 종인(宗人) 중에서 재주가 있고 학문이 깊은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자제 중에서 글의 의미를 잘 터득한 자를 장(長)으로 택하여 자제를 기르치게 한다.서책(書冊) .. 오경(五經), 사서(四書),주자가례(朱子家禮),소학(小學),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 등의 책을 비치한다.섬양(贍養) ..스승에게 매월 쌀 9말을 , 장(長)에게는 쌀 7말을 월급으로 지급한다. 수학자(受學者)는 매월 쌀 6말과 소금.간장,채소를 장학금으로 지급받고, 학생의 의복과 급식은 의곡(義穀..宗中 토지에서 수입되는 곡식)에서 유사가 맡아 처리한다.

 

 

과독(課讀) ..10세 이상은 하루마다 과제를 주어 공부하고, 30세 이상은 한달마다 과제를 주어 학문하게 한다. 독서의 순서는 이율곡이 가르치던 법에 따라 소학,대학,논어,맹자 등으로 순서를 밟는다. 독서할 때  本 과목은 100번 암송하고, 부독본(副讀本)은 30~40번 암송한다. 史書는 반복해서 날마다 사장(師長)앞에서 암송한다. 책 한권을 외우고 난뒤 의문점이 없게 된다음에야 다른 책으로 넘어 간다. 시험은 월강(月講)이라 하여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치른다.

 

 

 

 

 

 

재의(齋儀) .. 매일 스승과 당장(堂長)은 아침 일찍 기상하여 의관을 정제하고 자제들을 인솔하여 선조(先祖)의 산소를 향하여 재배(再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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