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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학계 "한자는 동이족 문자, 한국만 몰라" 갑골문보다 천년 빨라

작성자이계묵|작성시간13.01.09|조회수1,157 목록 댓글 0

中학계 "한자는 동이족 문자, 한국만 몰라" 갑골문보다 천년 빨라

hydi95 (yu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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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학계 "한자는 동이족 문자..한국만 몰라"

은나라는 동이족이다, 동이족 주거지에서 갑골문자보다 1000년 앞서는 골각문자 출토
뉴데일리

진태하 인제대 교수

中학계 "한자는 동이족 문자...한국만 몰라"

진태하씨, 초등학교 한자교육 촉구 1000만 서명운동 "한글전용법 폐기, 공문서-신문 등 한자 병기 서둘러야"

한자는 우리민족이 만든 글, 외국어가 아니다
“한자(漢字)는 중국 문자가 아니라 우리 조상 동이족(東夷族)이 만든 우리 글입니다. 중국 학계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데 한국만 모릅니다.”
한중(韓中)언어학의 대가 진태하(陳泰夏·73) 교수(인제대)는 만나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올해도 주요 신문에 한자교육을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1998년 전국 한자교육추진 총연합회를 설립, 이사장을 맡은 진교수는 당시부터 매년 몇 차례씩 광고를 냈다며 올해로 14년째라고 한숨을 쉰다.

▲한자교육 총연합회 이사장 진태하씨. 백두산 그림은 북한 화가 작품이라고.ⓒ뉴데일리.

총연합회는 지난 15일 주요 일간지들에 낸 [한자교육 축구를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 광고에서 “현정부는 교육부가 지시하여 교육평가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89%가 지지하고, 역대 국무총리 21명전원과 교육부장관 13명이 찬성한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즉시 실시하라” 요구했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호상(1902~1999) 박사가 장관시절, 중국의 세계적 문호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을 만났을 때 여담처럼 말했죠.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우리 한국까지 문제가 많다’ 고요. 그러자 임어당이 놀라면서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아직 모른단 말입니까?’라는 핀잔을 들었답니다.”

임어당의 일화를 소개한 진 이사장은 인사를 차릴 틈도 주지 않고 한자의 조기교육을 계속 강조해 나갔다. 1967년 대만에 유학, 국립사범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국립정치대학에서 1975년까지 교수로 재직. 그의 학위논문 [계림유사(鷄林類事)연구]의 ‘계림유사’는 송(宋)나라 학자 손목(孫穆)이 고려에 왔다가 고려언어를 수집 설명한 책으로 11세기 한국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의 하나다.

중국 학자들이 고증

-한자가 우리 글이라는 근거를 좀 더 듣고 싶은데요.

“몇몇 한글 전용론자들이 연구 고증도 없이 한자는 중국 한족(漢族)이 만든 것이라고 규정해버렸습니다.
우리 말의 뿌리와 기둥은 잘라 버리고 그 발음 표기(한글)만 가지고 표현하자니 무슨 뜻인지 모르게 된 꼴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니고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제정, 발음을 표준화 한 것입니다. 한자를 무작정 외국어 취급하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자폭행위가 되는 이유죠.
첫 째, 한자(漢字)라는 호칭은 중국 한족이 만들었대서 붙여진 이름이 아닙니다. 그들은 한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한나라 때에도 ‘한자’라는 명칭은 없었죠. 긴 역사를 논할 시간은 없으니 쉬운 예로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을 보면 [한자는 곧 한족인의 문자라는 말인데, 몽고문자와 대칭해서 말한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원(元)나라때 몽고인들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몽고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둘째, 한자는 오래전부터 동이족이 사용한 문자가 약 3천400년전 은(殷)나라때 ‘갑골문(甲骨文)’으로 발전된 문자입니다.

중국의 사학자 왕옥철(王玉哲), 장문(張文), 문자학자 이경재(李敬齋)등의 연구 고증에 따르면

<한자의 연원은 동이족 문화유산으로서 ‘중국의 문자는 모두 동이인(東夷人)이 창조’하였으며 공자(孔子)도 동이족 은나라의 후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자는 동이족이 자기 언어를 표기한 문자이며 진짜 우리 말 우리 글입니다.

▲진태하 이사장의 한자교육 열정을 보여주는 작품 '교육한글 부흥문화' 액자 ⓒ뉴데일리.

-문자(文字)를 ‘글’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민족 뿐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문(文)은 본래 ‘무늬’의 뜻이고, 자(字)는 ‘집안에서 아이를 낳다’는 뜻으로 만든 겁니다.
은나라 때 ‘글’의 뜻으로 처음 쓰인 문자는 ‘契’의 형태로 나무 조각에 칼로 글자를 새기는 것을 표현한 것인데, 契의 대(大)는 나중에 추가된 것입니다. 契의 현재 발음은 ‘계’ 또는 ‘설’로 쓰이지만 옛 발음은 [글]이죠.
예로부터 문자를 ‘글’이라고 칭해 온 민족은 아시아에서도 우리 한민족 뿐입니다.
‘글(契)’이란 글자를 만든 은나라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우리의 옛조상인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한글도 ‘韓契’로 표기한다면 잃어버린 동이족 한자뿌리를 복원하는 셈이라고 할까요.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한자를 배척함은 세계에 자랑스러운 우리 국어문화를 우리 손으로 매장시키는 무지막지한 만행 아닙니까?“

-그동안 역대 정부에게 한자 병기와 초등학교 의무교육등 건의도 많이 하셨는데 효과는 어떻습니까?

“김대중 정부에서 반응이 괜찮았어요. 그때 문화부 신락균 장관이 관광지 도로표지판과 안내판에 한자를 병기했었죠, 노무현 정부땐 일언반구 회답이 없었습니다. 해마다 건의서를 보냈는데 응답을 안하니까 우리 회원들이 ‘공문서 읽을 실력도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고 웃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년전 교육부에서 여론조사도 했고 공청회도 열었습니다.
늘 그랬지만 이번 여론조사 결과도 <초등교육 한자 의무화>에 90% 찬성입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총론은 결정되었고 각론만 남았다’는 반응을 보이니 두고 봐야겠죠.

'한자 문맹률' 80% 넘어서

-회원이 5만명 넘었다는데 앞으로 구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회원은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역대 총리 전원에다 각료들은 물론이고 각계각층 지도자들과 지식층이 다 모여서 이구동성 한자 교육을 주창합니다. 국가문화 위기 극복은 물론, 국민정신을 살리는 구국운동으로서 천만인 서명운동에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무식한 야만시대로 후퇴합니다.

▲진태하씨가 수집한 벼루 일부. ⓒ뉴데일리.

예전엔 한글 문맹율만 따졌는데 현재 ‘한자 문맹율’은 80%를 넘습니다.
성균관대 조사결과 부모 이름 못쓰는 학생 83%, 자기 이름 못쓰는 학생도 25%를 넘었습니다. 모 재벌그룹 직원 특강을 7년째 계속합니다만 80% 이상이 ‘뇌졸중(腦卒中)’을 ‘뇌졸증(症)’으로 씁니다.

의사들까지 그러니 어쩝니까? 대학생들이 교재도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한자는 나쁜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입니다. 가장 과학적인 한글과 더불어 일심동체의 세계 최고의 문화컨텐츠로 거듭날 수 있는 이상적인 국어의 양날개, 이런 이상적인 언어구조를 가진 나라는 한국 뿐입니다.
[한자+한글]이라야 국어가 완성된다는 인식을 심어야합니다.

교과서는 물론, 모든 공문서, 신문-방송 언론, 문단등에서 하루 속히 국어를 정상화 시키도록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공문서-신문-교과서 한자 병기 빨리 해야

-국회에서 ‘한자 교육진흥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한글전용법을 2005년 ‘국어기본법’으로 만들면서 [제14조: 공공기관등의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로 못 박았습니다.

또 18조 교과용 도서 편찬도 같습니다. 최소한 이 두 개 조항은 ‘소정의 한자를 병기하여야 한다’로 고쳐야 합니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사상최초로 여-야 합동 공청회가 열렸는데 박희태 국회의장 등 각당 중진들이 개정 입법을 약속했습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제가 법사위 소속이므로 책임지고 통과시키겠다’고 장담하더군요.
북한에서도 공산주의 정책에 따라 한글전용을 해오다가 1968년 초등5학년부터 상용한자 3,000자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중국 일본은 물론 북한에도 뒤지는 문화문맹국으로 전락될 겁니다.
하루 속히 ‘한자 교육 진흥법안’을 통과시켜 반신불수 국어를 정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합니다.
한국의 주요 무역-관광 대상국들이 한자문화국들인데 그들과 문화소통이 안된다면 왕따 당하고 고립될 게 뻔합니다. 정부도 정치인들도 제발 표퓰리즘을 버리기 바랍니다.“

▲영조 임금의 친필 시집 '풍운가' 표지. ⓒ뉴데일리.


■ 1999년부터 월간지 <한글+漢字문화>를 발간하는 진태하 이사장은 국내외로 이름난 서예가이기도 하다.
사무실 벽에 걸린 ‘敎育韓契 復興文化’(교육한글 부흥문화) 액자가 그의 열정을 말해 준다.

대만 유학때부터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수집, 각양각색 벼루만 500여점이라고. 또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영조(英祖) 어묵(御墨)이나 퇴계 이황의 친필 등 보물급 서예품들이 수두룩하다.
묵향 물씬한 그의 서재가 남다른 ‘한글+한자 문화’의 실체를 보여주는 명소로 손색이 없을 듯 싶다.


은나라는 동이족이다, 갑골문자보다 1000년 앞서는 골각문자 출토

공자의 7대손 공빈이 쓴 <동이열전(東夷列傳)>
동이열전 전문《東夷列傳 全文》 東 夷 列 傳 (註 檀奇古史 附錄)
東方有古國 名曰東夷
星分箕尾 地接鮮白
始有神人 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 與堯병立
虞舜 生於東夷 而入中國 爲天子至治 卓冠百王
紫府仙人 有通之學 過人之智 黃帝受內皇文於門下 代炎帝而爲帝,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年憂 吾先夫子稱之,
夏禹塗山會 夫婁親臨 而定國界,
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而爲殷湯之賢相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人國,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是故 殷太師箕子有不臣於周朝之心 而避居於東夷地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吾友魯仲連亦有欲踏東海之志
余亦欲居東夷之意
往年賦觀東夷使節之入國其儀容有大國人之衿度也,
東夷蓋自千有餘年以來 與吾中華 相有友邦之義 人民互相來居往住者接踵不絶,
吾先夫子 以東夷不以爲陋者 其意亦在乎此也, 故余亦有感而記實情以示後人焉
魏 安釐王 十年 曲阜 孔斌 記 (字 子順)

중국=신시=신주=중천축국=천독=신국=조선(산해경) 또한 후에 근세조선 한성부
은나라는 동이족이다.
성탕成湯의 시조는 [설]이라고 한다. 은나라의 시조인 설의 어머니는 간적이다. 그녀는 유융씨 부족의 딸이며 제곡고신(오제五帝중의 한사람)의 둘째 부인이었다. 간적 등 세 사람이 함께 목욕을 갔다가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이를 받아 삼켜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설이다. 설은 장성하여 하나라 우의 치수산업을 도와서 공을 세웠다. 순이 설에게 "백관이 화친하지 않고 오품(五品)이 화목하지 못하니, 그대가 사도를 맡아서 오교(五敎)를 정중히 전파하고, 백성들을 너그럽게 감화시켜주시오"라고 명하였다. 순은 설에게 상(商)을 봉지로 내리고 자씨(子氏)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설은 요, 순, 우 시기에 등용되어 백관을 위해서 일했으므로, 그의 공적은 백관들 사이에 칭송되었고, 백관들은 안정을 얻게 되었다.
배달국의 고시씨高矢氏 --->소전少典(염제신농의 아버지이며 배달국 고시씨의 후손) --->공손씨公孫氏(소전의 후손)--->황제헌원(공손씨의 후손) --->전욱고양(五帝중 한사람. 황제헌원의 손자) --->제곡고신(오제五帝중의한사람.황제헌원의증손자) ---> 설(제곡고신의아들)

설 --->소명(昭明) --->상토(相土) --->창약(昌若) --->조어(曹어) --->명(冥) --->진(振) --->미(微) --->보정(報丁) --->보을(報乙) --->보병(報丙) --->주임(主壬) --->주계(主癸) --->성탕(成湯)


단기고사
BC 2267년 중국에서 황화가 홍수가 범람하자 임검께서 태자 부루(扶婁, 제 2대 단군)를 파견하여 중국 도산(중국 안휘성 회원현을 흐르는 회하 동족 강변 지역)에서 우사공을 만나게 하여 오행치수의 방법을 전하게 하였고 중국과의 경계도 따져서 유주(현 만주 요령성 금주 서북 일대)와 영주(현 하북성 창려현)의 두 지역의 땅을 조선에게 속하게 하였다.
동이열전(공자 7세손 공빈)
동방에 오래된 나라가 있는데 동이(東夷)라 한다.

훌륭하신 분인 <단군>이 계셨는데 구이(九夷)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셨다.

요임금 때의 일이다.

순임금은 동이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와서 임금이 되어 훌륭한 정치를 하였다.
동이(東夷)에는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 하는 훌륭한 분이 계셨는데 '황제헌원'이 문하에서 내황문(內皇文)을 배워와 '염제신농'의 뒤를 이어 중화의 임금이 되었다.

하나라 우임금의 '도산회의'에 동이의 '부루(2세 단군)'께서 친히 와주셔서 나라의 경계가 정해졌다.
동이인 '유위자'는 하늘이 내신 성인인데 그에게서 '중국'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윤'이 그 문하에서 배워 현명한 신하가 되었다. (주: 중국이라는 말이 나온 유래를 설명)


한단고기
은나라가 고조선의 제후국이었으며 은나라를 세운 탕왕이 동이족이었고 탕왕이 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고조선의 지원 덕분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2,갑골문자보다 1000년 앞서는 골각문자 출토 (중국)
산둥성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골각문자(左), 중국 최초의 문자로 알려진 갑골문자(右).

중국 고고학자들은 당시 산둥 지역은 한민족을 포함한 동이(東夷)족들이 집단으로 거주했기 때문에 이 골각문자는 동이문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소장은 “문자의 모양도 고대 상형문자인 동이문자 계열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류 소장은 이어

“안양(安陽)을 중심으로 한 은허 지역에서 발견됐던 갑골문자도 동이족의 골각문자가 발전한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세기 중국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갑골문자 발견이었다면 이번 골각문자 발견은 중국 역사를 지금보다 1000년 이전으로 돌리는 21세기 중국 고고학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가림토 문자의 한글이 한자(漢字)의 뜻을 표현하기 위한 표음(表音)의 부호 및 글자로 생각할 때, 한자가 생겨난 곳에서 가림토 문자와 한글이 생겨났다고 보는 견해가 상식적이다. 한글을 한자로 쓰면 한글(韓契:汗契)이 되어 '대칸(大汗:황제)이 있는 한국에서 사용된 한자의 표음글자'로 정리가 되며, 이곳 역시 한국사 강역의 한성부(漢城府)가 있었던 현재의 하남성(하동, 산동) 지역에서 찾아야 있다.
한자의 원류이자 초기 문자였던, 갑골문자(甲骨文字)가 쓰여진 귀갑(龜甲)과 골편(骨片)이 처음 발견되고, 대량발견된 곳도 은허(殷墟:은나라, 조선왕국)였다. 은허는 상허(商墟)로도 병칭되며 지금의 하남성 황하 남북지역을 말한다. 즉 가림토(加臨土) 지역이며 조선왕국사(한국사)의 모두가 이루워졌던 지역이다. 한자를 발음할 때 이러한 모양의 부호를
사용하자고 약속(제정)하면서 생겨난 것이 가림토 정음 38자이고, 한글의 28자다. 문자와 언어 사이에는 신속하고 정확한 의미 전달이라는 경제성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럴 때 단음절의 표기가 실효성을 발휘한다. 모범적인 한자의 단음절 표기는 자음과 모음이 합쳐진(반절음 결합) '한글'을 상대할 표음자는 없다.
한국사의 중심이자 왕국이 있었던 한성부(漢城府) 지역이 중국이듯이 한자(漢字)가 말하고자하는 상징도 중주(中州)·황주(黃州)에 있었던 조선의 한국(韓國)이자 중국(中國)에서 만들어지고 쓰여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일역(日域:東國)의 본정(本町:중앙, 중심)인 임나(任那:북해왕국) 일본부지역에서 만들어진 표의(表意) 문자가 한자였다로 생각해도 된다.

갑골문자가 많이 발굴되고 처음 발견된 현재의 하남성 지역의 황하 연변이 한자가 만들어진 곳이자 가림토 문자가 만들어진 가림토(加臨土)지역이며, 한국이자 칸국(汗國)에서만 쓰여졌던 한글(韓契)이 만들어 졌던 곳이다. 물론 조선의 왕국 지역이었던 한성부 지역이다. 중심은 낙양이 된다.
한글(韓契)은 한국 및 칸국(汗國:조선의 왕국)에서만 쓰여졌던 한자의 표음문자(表音文字)이고, 가림토 문자는 백제의 가림성과 임존성이 있었고, 가주(加州)·임주(臨州)가 있었으며, 가락국(駕洛:낙양, 정주)이 있었던 공주(公州)이자 웅주(熊州)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 글자다. 신라의 안동이기도 하고 고구려의 내토와 내성이기도
했던 이곳은 한자(漢字)가 만들어진 한주(漢州) 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글·가림토글자·한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즉 한자가 만들어진 하남성 지역에서 가림토 글자와 한글이 만났던 것이다.
3
산동성 환대에서 발견한 가림토 문자‘


경남 남해군 양해리의 금산 중턱바위에 녹도문인 남해각자가 있다.

홍산문화권은 은의 황하문명보다 약 1500년이나 앞서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학자들이 말하기를 홍산 문화와 연관된 민족이 중국인이 아닌 동이족 즉 우리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체질인류학자가 말하길 하가점하층 문화권에 발굴된 유골이 한국인과 연관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홍산 문화에는 대형 여신묘와 제단 등 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당시 요동, 요서 지역에 왕국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가점하층 문화는 시기상으로 기원전 2500년에서 1500년인 초기 청동기 시대이며 여기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사기(史記)에서 은나라는 동이족의 국가이고 주나라는 화족 국가(사고전서 주나라는 동이족의 국가,고로 화족=동이족,중국사에서 주나라는 서융=선비=동이의 일파의 서이)라고 분명히 기록했다.바로 이 은왕조(銀王朝)는 동이족이 통치하였던 국가였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은나라 시대에 한자의 원조로 알려진 갑골문자가 발굴된 것이다. 이들의 발굴로 중원 땅의 역사가 뒤집혀 진 것이다. 그땅에 실존했던 국가였음이 뒤늦게 밝혀지게 될 때까지, 주왕조 이전의 나라인 은나라는 그에 대한 기록과 물증이 없어서 전설 속의 왕조로만 알려져 왔다. 다시 말하면 은나라의 건국시조와 나라 자체도 동이족의 국가인데 거기서 나온 문자만 동이족이 아닌 한족(漢族)의 문자라는 지나인들의 주장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문의 근원인 녹도문 또는 갑골문자도 우리조상이 만들었고 따라서 거기서 나온 한자(漢字) 또한 동이족의 문자인 것이다.
후대에 한문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지나인들이 문자의 시조라 여기는 창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백과사전은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 창힐 역시 자부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동이족이었다.환단고기에 따르면 자부선인(紫府仙人)은 배달국 치우환웅 시대의 대학자다. 중국 전설상 한자의 창조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은 창(蒼)힐이라고도 쓰며, 황(皇)힐 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또는 고대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그는 머리에 눈이 4개 있고 신명(神明)과 통하며, 위로는 괴성(魁星:북두칠성의 方形을 이룬 네 별)의 둥글고 굽은 형세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거북의 등껍데기 모양과 새 발자국의 형상을 살펴, 아름다운 것들을 널리 모아 글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후한의 환제(桓帝) 때인 162년(延熹 5)에 세운 창힐묘비가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 있다. 묘비문은 예서(隸書) 24행으로 되어 있으나 이미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순자(筍子)는〈해폐편 解蔽篇〉에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창힐만이 홀로 그 글을 전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만물을 형상화한 한문은 신시 배달 시대의 녹도문자가 뿌리가 되어 탄생한 음(陰)의 문자이며 뜻글자이고, 후대인 단군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가림토 문자에서 만들어진 한글은 양(陽)의 문자이며 소리글자인 것이다. 즉, 뜻글자이자 음(陰)문자인 한문과 소리글자이면서 양(陽)문자인 한글을 함께 써야 완벽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두 문자를 함께 써야만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말할 수 있고,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완벽한 문자 시스템인 셈이다.

(문자의 역사)송호상 교수

"한단고기"에 나타난 나타난 문자창조와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녹도문 (鹿圖文) : 기원전 3890년 경
시조한웅은 신지 혁덕에게 문자를 만들게 하였는데 사냥나가 사슴발자국을 보고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마침내 문자를 만드니 태고문자(그림문자)의 시작이다. (BC. 3,890년)
※ 보충설명
시조한웅은 환인으로부터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구두로 전수 받고 왕권을 물려 받았는데 신지씨가 녹도문을 만든 뒤 이것을 문자로 기록하였다. 세상에서 맨 처음 지은 책이고 경서이다.(검불본기)
(태고문자(녹도문) : 남해각자 (南海刻子))
일찍이
- 남해도 양하리 계곡과
- 경박호
- 선춘령
- 오소리 밖의 바위에서 때때로 범자(梵字)도 아니고 전자(篆字)도 아닌 것이 발견된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신지씨가 만든 옛글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다시한번 우리나라의 미진함과 우리겨레의 약함을 한탄한다 (한단고기, 규원사화)
대변경주에 이르기를 남해현 양하리 계곡 바위에 신시의 옛 색임고각(古刻)이 있으니 그 글에서는 "한웅천왕이 사냥와서 삼신께 제사 올리다""桓雄出? 致祭三神" 라고 하였다
(보충설명)
① 태고문자(녹도문) : 남해각자 (南海刻子)
- 경남 남해군 양하리의 금산(錦山) 중턱바위에 녹도문인 남해각자가 있다
- 송호수 저 "위대한 민족" 표지사진
② 경박호(鏡泊湖)
- 흑룡강성 영안현의 서남쪽에 있는데 암벽의 글씨 탁본이 현존
- 1998년 10월 송호수박사가 직접 현지 확인
- 이것이 단군 제 3세 가륵임금때 삼랑을보륵이 만든 가림다 38자와 같다함(확인 필요 : 추후 확인자료를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 운영자)
③ 선춘령 : 고려 북방인 두만강 북쪽 600리 (흥개호 남단)
④ 오소리(烏蘇里) 강 : 길림성 동편 오소리, 만주어로 천왕(天王)이라는 뜻
이외에
- 고구려 유기(留記 : 100권)가 전하는 백산청암벽(白山靑岩壁)의 기호 "ㄱ"
- 평양법수교하(平壤法首橋下)의 고비문 (운영자 주 - 사진 입수 노력중) 등 고대문자의 흔적이 남아 있다

2. 용서(龍書) : 기원전 3,500년경
태호복희는 팔괘부호를 만들고 용서(龍書)를 만들었다.(검불본기)

3. 육서(六書: 여섯 가지 글자체)
주양은 옛 문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육서(六書: 여섯 가지 글자체)를 만들었다.(검불본기)

4. 우서(雨書) : 기원전 2,800년 경
자부선생(BC.2800년경)이 우서(雨書)를 만들어 칠회제신의 책력(음양오행력)을 만들고 삼황내문(三皇內文: 천황, 지황, 인황의 진리경서)을 지었는데 후세의 은나라는 칠회제신력을 기초로 하여 일주일 내내 해, 달, 물(수성), 불(화성), 목성(나무), 금성, 땅에 차례로 제사를 지내는 풍속을 가졌다. 이것이 일주일의 원형이다.
중국의 황제헌원은 치우한웅을 배알하고 가는 도중 산동성의 자부선생에게 들려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 공부하여
- 신들을 부리는 능력을 얻고 군사를 모아
- 신농국을 멸하여 임금이 되고
- 마침내 치우한웅과 70여회의 전쟁을 한 중국의 시조다.
후에 삼황내문의 한권을 정리하여 음부경을 지었는데 중국 주(周)나라 초(BC.1,200년경)에 여상 강태공이 주(注)를 달아 자부선생의 뜻을 조술하였다.
치우한웅, 황제헌원과 같은시대의 인물들인데 북경서쪽에 위치한 황제헌원과 북쪽에 있던 대요(大堯)는 간지의 술(十干十二支의 사용법)을 배웠고, 북경동쪽에 있던 창힐(倉 )은 부도(符圖:천부경이 쓰여진 녹도문: 그림문자)의 글을 배웠다.(삼성기전하편, 검불본기)

5. 산목(算木), 화서(花書 : 투전목 : 鬪佃文)
치우한웅 이전에는 산목(계산법을 적는 숫자)이 있었고(BC.4,000∼BC.2,700) 치우때는 화서(花書 : 투전목 : 세계의 카드와 화투의 시초)(BC.2,800)와 산목이 있었고, 부여때는 서산(書算: 계산법)이 있었다.(태백일사)

6. 신전(神篆)
시조한웅 원년(BC.2,457)에 신지(행정장관)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다.
신전(神篆)은 은나라 갑골문의 원형이며 부여시대의 왕문이란 사람이 전문이 복잡하여 약간 생략하여 부예(符隸: 예서)를 만들고 진(秦)나라 때(약 BC.200년경) 정막이 숙신(고조선)에 사신으로 왔다가 왕문(王文)의 예서를 바꾸어 팔분(八分)을 만들고 진(晉)나라 때 왕차중(왕문의 후손)이 해서(楷書)로 발전시킨 것이 한문(漢文)이다.
문자의 시원은 모두 녹도문이고 한문과 한글 모두 우리민족이 만든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두 가지의 문자를 만들어 오랫동안 사용한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

BC 2,391년 태자 부루를 (중국 안휘성) 도산에 보내 순임금의 치수관 우사공(나중의 夏나라 禹임금)에게
- 험난한 곳을 다녀도 해를 입지 않는 천부왕인(天符王印),
- 물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신침(神針),
- 황거종(皇鉅宗) ☞ 황거종 : 우주진리, 음양오행, 오행치수법 등을 적은 여러권의 책으로서 표지는 금간옥첩金簡玉牒이라고도 한다
의 세가지 보물(黃帝中經 : 황제중경은 금간옥첩중의 한권일 것임)을 전해주니 그로부터 중국의 치산치수가 잘 되었고 이 공로로 우사공은 순임금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고 나라이름을 하(夏)로 하여 하나라의 시조가 된다.
(검불본기, 한검세기)

7. BC 2305년 삼랑 을보륵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가림토라 하였다
(한검세기)
(정음38자)
(가림토, 훈민정음, 일본 신대문자 비교)

(※ 가림토)
이 문자는 한글과 똑같으며 지금도 인도의 구자라트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한국, 인도, 수메르가 서로 교류하였으니 이때 이후에 가림토가 전해졌을 것인데 인도에서 쓰는 가림토가 언제 전해졌는지, 또 일본의 아히루 신대문자에는 어떻게 영향 되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깊이 연구도 하지 않고 외래문명이 한국에 들어왔다고 만 생각하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인도는 우리민족이 6,500년 전부터 이동하여 살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파동적으로 이동한 역사적 사실(몽골족의 무갈제국 등)들이 있으므로 불교의 석가모니가 사용했던 산스크리트어(범어)가 바로 우리의 방언에 속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세종대왕의 한글은 몽골족에 의하여 인도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전해진 가림토를 본 따서 만든 것이다.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쥬신족의 일부가 베링해를 거쳐 아메리카로 진출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원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적 중에서 가림토 문자 'ㄷ' 'ㅁ' 'ㅐ'등이 새겨진 것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 뿐 아니라 사대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도대륙의 한 고장에서는 지금 우리가 보아도 뜻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가림토 문자가 사용되고 있다고 하여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더욱 실제적인 고증을 거치기를 기대한다. )

4.蚩尤挽歌

- 苗族 傳統 口傳 歌謠 -

- 오소운 역 -

千古奇才横空贤,천고기재 횡공현 천고기재 영웅이신 치우 천황을

可堪并论炎黄间。가담병론 염황간 염제씨나 황제씨와 어찌 비하랴

五兵刑法君始点 오병형법 군시점 5병기와 형법까지 친히 만드사

九黎生气冲云天。구려생기 충운천 구려백성 사기높여 충천케 했네

席卷中原华夏联,석권중원 하화련 중원땅의 하화연맹 쳐서 이기니

血染江河五千年。혈염강하 오천년 오천년의 강의물이 피로 흐르네

英名不因涿鹿败,영명불인 탁록패 탁록에서 패한것이 원인 아님은

老黑石山百花鲜。노흑석산 백화선 흑석산의 고운꽃이 증언 하누나

단군조선의 제후국 '은나라 유물' (도철문 = 치우천자)

출처 : http://www.coo2.net/
근자에 은나라 유물중 제기 등에 그려진 치우문양(도철문)이 치우천자와 상관없는 즉 '용문양'이라던지 운운하는 자들이 많은데 아래 글을 읽어 보고 괘변을 중단하기 바란다..

아래

치우천자를 시조로 모시는 묘족 상징건물에는 모조리 치우문양이 그려져 있다

바로 은나라 지역에서 출토된 도철문과 동일한 것으로 '치우천자'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그래서 우리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제후국 '은나라 유물'

산동성에 있는 마차는 '동이' 즉 단군조선의 유물이라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 서쪽 단군조선의 제후국 이었던 은나라 마차 유물은 당연히 단군조선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 치우천자의 도철문 청동유물
- 은나라 신하 '기자'가 단군조선 땅 서화에 살다가 인근에서 죽었다

누구의 역사인가 ?
(은허유적지 발굴 유물)
- 치우천자 도철문 청동유물

- 은허박물관

(출처)

http://news.china.com/zh_cn/domestic/photo/11026066/20050526/12347663.html
http://www.ha.xinhuanet.com/add/2003-04/17/content_406686.htm


(산동성 발해해협)

3천년전 고조선에는 바퀴살 30개 짜리 "전차"가 있었다
중국 산동성 북쪽 발해해협 연안 장도에는 3천년전 동이의 유물인 고조선의 전차가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다

오랬동안 수몰된 발해만 연안의 흔적을 찾아 현지를 탐문 조사하신 장동균 선생님의 "신시본토기" 내용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하 단순참고(유물위주)바랍니다
- 출처 : 장동균 저 "신시본토기" 409~410페이지

(은허유적지 발굴 유물)

단군조선의 제후국 / 기자가 살았던 은나라의 유물 ?

http://news.china.com/zh_cn/domestic/photo/11026066/20050526/12347663.html
http://www.ha.xinhuanet.com/add/2003-04/17/content_406686.htm

당연히 동쪽 산동성 중심의 강력한 동이의 영향이지 않는가 ?
도철문의 주인공이 치우천자라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


[작품정보] 지나에 있는 치우천왕의 귀면와(鬼面瓦)
- 출처 http://cafe.daum.net/gaebawi

현 지나의 00 성의 용마루에 말 위에서 활을 당기는 무사 와장군(瓦將軍) 형상의 막새가 있는데, 이것은 두 말 할 필요없이 바로 악귀를 쫓는 치우천왕의 형상이다.
(아직 진행 중인 작품의 내용이라, 공개치 못 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은 5국시대( 가야, 왜 포함) 이전부터 도깨비얼굴 곧 치우천왕 상의 기와를 큰 건물 지붕에 올려 놓았다.

고구려의 수막새,
반와당(半瓦堂),
내림새막새,
신라의 수막새,
백제의 벽돌,
일본 법륭사(호우류지),
청나라 시대의 귀면와
등의 여러 종류의 기와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기와들을 보면, 거친 듯하면서도 힘이 넘쳐서, 고대 우리 선조들의 굳건한 정신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했던 치우천왕 상의 기와가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급격히 시들었다.

그것은 곧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국력이 급격히 쇠잔해 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원형마저 변질되기 시작했다.

즉 치우천왕 상을 나타내는 도깨비 기와가 괴상한 사람의 몰골을 닮은 유치하고 조잡스러운 얼굴로 다시 바뀐 것이다.

최근에는 다시 그 얼굴이 수(壽), 복(福), 희(禧) 등의 글자와, 주역(환역) 무늬, 꽃잎 따위의 바래기 기와로 변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 군신(軍神)과 축귀(逐鬼)의 의미를 가졌던 치우천왕 상의 도깨비 기와가 이제 지붕 장식을 위해 올려놓는

무의미한 기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천과 함께 치우천왕의 상무정신(尙武精神)을 잃어버린 우리의 민족성이 왜소해져,
수. 당. 몽골. 거란. 왜 등으로부터 다수의 침략을 허용하는 결과를 빚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4자성어(四字成語)를 되새겨야할 중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선조들이 물려준 유적과 유물, 그리고 정신문화를 하루 빨리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이 복원이 되어, 과거 치우천왕의 시대처럼 세계에 우뚝 서는 자랑스러운 민족이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작품에서 인용-

(완)

(그림) 한재규 화백의 치우천황

2006년 5월 26일 (금) 02:50 세계일보

"중국 허난성 석관묘 발굴 은나라 기원 밝힐 열쇠"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한 중국 곳곳에서 고고학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고고학회와 ‘중국문물보(中國文物報)’는 지난해 10대 고고학 발굴 성과를 최근 선정, 발표해 주목되고 있다.

이 중에는

특히 신석기 시대와 고대 은(상)나라 시대에 걸쳐 허난(河南)성을 중심으로 한 ‘중원’에 거주했던 민족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가 발견됐다. 25일 ‘중국문물보’와 ‘베이징 과학기술보’ 등에 따르면 허난성 북부 허비(鶴壁)시 류좡(劉庄)촌에서는 지난해 신석기 시대 유적지 발굴이 이뤄졌다. 이곳에는 336기에 이르는 무덤과 500가지가 넘는 유물이 발견됐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이곳에서 발굴된 무덤 중 상당수가 석관묘였다는 점이다. 이들 석관묘는 길이 2.25m, 폭0.45∼0.5m로, 10여개의 평평한 자연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허난성 문물고고학연구소의 자오신핑(趙新平) 부연구원은 “석관묘는 주로 중국 만리장성의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고, 허난성을 중심으로 한 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석관묘는 상족(은나라를 세운 민족)의 기원을 연구하는 실마리일 수 있다”며 “아직 상족의 북방설·동래설과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중국 역사에서 하나라(기원전 2200년∼1700년대 추정)에 이어 은나라(기원전 1700년∼1000년대 〃)를 세운 민족은 베일에 가려 있다. 중국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은을 세운 민족이 산둥성을 기반으로 한 동이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도 있다.

후난(湖南)성 홍장(洪江)시에서는 약 3만㎡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무덤 유적지에서 도기와 종교의식에 쓰이는 공예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에서는 7400년 전 여성의 뼈가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출토됐다.

후난성 고고연구소의 허장(賀剛) 연구원은 “이 여성의 키는 약 160㎝로, DNA 검사 결과 몽골인 또는 말레이시아 인종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몽골족일 경우 중국 남부에 속하는 후난성까지 몽골족이 진출하게 됐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장쑤(江蘇)성 쥐룽(句容)에서는 2500년 전에 소금에 절인 오리알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견됐다. 용기에 담겨진 이 오리알은 크기가 지금의 오리알보다 약간 작았다. 중국에서는 2500년 전에도 오리알을 즐겨 먹었음을 나타내는 증거다.

구이저우(貴州) 웨이닝(威寧)시에서는 기원전 1000년 전후에 재배된 것으로 보이는 벼가 대량으로 발견됐다. 중국 서남부 고원지대에서는 이처럼 오래된 벼가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5,외국학자가 보는 동이족

중국 학자 서량지(대만)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년 10월 초판)서량지 저술

"은(殷)과 주(周) 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대에도 동이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 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은(殷)과 주(周) 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대에도 동이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 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중국 총통 장개석(1887-1995)
이시형 상해 임시정부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자기의 고향이 옛날 백제땅이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선조는 대륙의 주인이었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니 나라를 빼앗겼지."
임어당
한자는 당신네들 동이족 조상이 만든 문자를 우리가 빌어 쓰는 것

중국 역사학자 왕동령(王棟齡)《중국사》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 등 지방은 본래 묘족(苗族=東夷)의 영속지였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인데 임금은 치우(蚩尤)였다.”

홍콩대학의 임혜상(林惠詳) 교수《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

"맹자가 말하기를「순(舜)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순(舜)임금은 은(殷)나라 사람의 조상임을 추측하여 알 수 있다. 은나라 사람이 바로 동이인데 동방에서 흥기(興起)하였다."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 《고사변(古史辯), 1927》

“현조(玄鳥)는 은(殷)나라 사람과 동이(東夷)의 조상신이다.”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 태호(太昊), 제준(帝俊), 제곡(帝곡), 제순(帝舜), 소호(小昊), 그리고 설(契)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대만학자 노간(勞幹) 중국문화론집(中國文化論集(2),

“우리들은 동방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 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 만일 이(夷)가 먼저 문화를 이루어 앞서 나갔다면, 이 사람들이 먼저 사용한 사람 인(人)자는 전 인류적인 이름에 들 것이다. 서방사람들이 이를 빌어 쓴 것이다.”

중국의 학자 필장박《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

중국의 고대 문헌, 고고학적 유물, 언어적 특성, 인류학적 특성, 민속 문화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뒤, 중국 인종의 시원(始原)이 북방의 시베리아 일대와 동북아 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일본 학자 고꾜 야스히꼬(오향청언, 吾鄕淸彦, こきょうきやひこ)

“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 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

그러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련의 역사학자요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シロコゴルフ)《중국사》

"BC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 양자강 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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