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빙고(石氷庫)이다.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방실의 크기는 길이 14.8m, 너비 5m, 높이 4,4m의 크기이고 재료는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현존하는 석빙고 가운데 축조 연대가 가장 오래 된 석빙고이다.
보물 제323호
청도 석빙고는 동서 방향으로 놓여져 있고, 입구는 서쪽이며 천장은 완전히 붕괴되었다.홍예(虹霓)가 4개 남아 있다. 구조는 직사각형인데, 내부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바닥이 경사지고, 바닥 중앙에 배수구가 있어 경사를 따라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다.
내부는 연석으로 4개의 홍예를 들어올리고 잡석으로 구석의 벽면과 홍예와 홍예 사이의 벽을 쌓았다. 측벽 위에서 홍예에 걸쳐 '팔'자 모양으로 얹은 장대석과 천장을 구성한 것으로 보이는 장대석이 남아 있고 천장에는 환기구멍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오래된 석빙고
석빙고 입구 좌측에 신축 당시이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는데, 그 표면에 씌여 있는 비문에 따르면, 이 석빙고를 축조하는 데 3개월 정도 걸렸으며, 그밖의 소요 인력과 물자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비석의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 계사오월초육일입 (癸巳五月初六日立) '이라는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인 1713년(숙종 39)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빙고 石氷庫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하여 만든 창고로 겨울에 얼음을 채취 저장하였다가 여름에 사용하기 때문에 얼음이 녹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지하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록에 의하면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는 일은 신라시대부터 있었으며, 이 일을 맡은 관직을 빙고전(氷庫典)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당시에 축조된 석빙고는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며 고려시대의 유구(遺構)도 발견 조사된 바가 없다.
조선시대에는 건국 초기부터 장빙제도(藏氷制度)가 있어 조선 말기인 고종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빙고(氷庫)라는 직제를 두어 5품관(五品官)인 제조(提調) 이하의 많은 관원을 두어 관리하였다. 현존하는 유구를 중심으로 볼 때 '빙고'는 대개 성 밖의 강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강에 얼어 붙은 얼음을 채취하여 운반하기 쉬운 곳에 창고를 두었기 때문이다. 가령 동빙고(東氷庫)와 서빙고(西氷庫)는 서울의 한강 북쪽 연안에 설치되었던 얼음창고이다. 그러나 이들은 석조가 아닌 목조로 만든 빙고이었기에 내구성이 적어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빙고의 축조 방법은 대개 일정하며, 규모 또한 대동소이하다. 보통 지하에 깊게 굴을 파고 안쪽 벽을 석재로 쌓아올리고, 내부의 밑바닥은 장방형으로 경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배수구를 설치하여 빙고 안의 녹은 물을 내보내고 있다. 천장은 잘 다듬은 돌로 짜아 올린 후 홍예(虹霓 .. 무지개 모양의 문)를 4, 5개 씩 연결하여 궁륭형을 이루었고, 그 사이마다 환기구멍을 마련하여 공기가 유통되게 하였다.
외부는 홍예 천장 위로 흙을 덮고 잔디를 입혔는데, 경주 석빙고의 경우 환기구멍에 벽체를 세우고 뚜껑을 덮어 빗물이나 짓사광선이 들어갈 수 없게 하였다. 대체적으로 석빙고의 외부 모습이 큼직한 무덤처럼 보이는 것은 봉토 위에 잔디를 입혔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석빙고로는 경주 석빙고가 보물 제 66호로 지정되어 있고, 안동 석빙고가 보물 제305호, 창녕 석빙고가 보물 제310호, 그리고 이곳 청도 석빙고가 보물 제323호, 현풍 석빙고가 보물 제673호, 영산 석빙고가 사적 제169호로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