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방참마검(尙方斬馬劍)"
漢나라「성제(11代.「서기7~33년 成帝 ) 때에 이르러 승상을 지냈던 안창후(安昌侯)
장우(張禹)는 황제의 스승으로서 특진(特進, 관직 이름)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황제는 그를 대단히 존중했다.
장우는 成帝가 어릴때 부터 스승 였고 天子인 성제가 그를 존경 하였으므로 장우는
그것을 빙자해 부정하게 권력을 행사하고 돈을 착취하는 간신 였다.
주운(朱雲)이 상소를 올려서 황제에게 알현을 청하여 공경들 앞에서 황제를 뵙고 말했다.
“지금 조정 대신들은 위로는 군주를 바로잡아 주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하는 채 오로지 자리만을 지키며 봉록만 축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자(孔子)가 말한 ‘비루한 자와는 더불어 군주를 섬길 수 없다'와 같은 말 입니다.
바라옵건대, 상방참마검(尙方斬馬劍)을 하사하시면 아첨꾼 신하 한 사람을 베어 그 나머지
무리를 징계하고자 합니다.
주운(朱雲)은 그 자리에선 최하위직인 말단 신하였다.
「상방참마검(尙方斬馬劍)」말(馬) 의 허리를 단숨에 잘라버리는 크고 날카로운 劍(칼)
” 황제가 물었다. “그자가 누구인가?” 주운이 대답했다. “안창후 장우입니다
漢나라「성제(11代.「서기7~33년 成帝 ) 때에 이르러 승상을 지냈던 안창후(安昌侯) 장우(張禹)는 황제의 스승으로서 특진(特進, 관직 이름)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황제는 그를 대단히 존중했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미천한 신하가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고
조정에서 황제의 스승을 욕보였으니, 그 죄는 사형으로 용서할 수 없다.저 者를 당장
참하라!!" 어사(御史)가 당장에 주운을 끌어내려고 하자 주운이 어전의 난간을 붙잡았는데
난간이 부러졌다.
주운이 외쳤다. “신은 지하로 내려가 용방(龍龐)과 비간(比干)을 좇아 더불어
노닐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이 조정이 어떠한 조정이 될 것인지,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사가 주운을 끌어내려해도 주운은 한사코 부러진 난간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메달리며 천자에게 호소했다.
이때, 좌장군이 관을 벗고 인수를 풀어 놓고 어전 아래서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
“신하(주운)는 관직은 낮지만 평소에 정직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자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말이 옳다고 할 것 같으면 죽여서는 아니 되고, 그의 말이 그르다고
하면 마땅히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신은 감히 죽음으로써 간청합니다.”
신경기가 바닥에 머리를 쳐서 피가 흘렀는데,
황제의 화가 풀린 뒤에야 머리를 머리를 찧는것을 멈추게 했다.
그 뒤 부러진 난간을 고치려고 하자 황제가 말했다.
“바꾸지 말라. 본래의 것을 가지고 수리하여 직간하는 신하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라.”
주운의 이야기는 멋진 영웅소설의 한 장면처럼 단순하고 성공적이다. 직언에 관련된
중국의여타 고사들이 내포한 비슷한 것 들이 있다.
은나라 말에 간언을 고한 충신 비간은 심장이 도려내어지는 잔혹한 죽음을 당하였고,
주나라에 들어 충심의 직언을 고하던 왕자 백이와 숙제는 거절된 후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었다. 초나라 대부 굴원은 진심의 직언을 고하다가 추방당해 산천을 떠돌다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결했고,
사마천은 옳은 의견을 내다가 주변과 황제의 분노만 입어 거세(생식기가 잘림)의 형벌을
감수한 뒤 저술에 몰두했다. 직언의 용기로 나섰다가 인생을 망치거나 몸을 크게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고사에 허다하다.
감언이설로 다복의 천수를 누린 간신들의 예는 더욱 많다. 아예 입을 꾹 다물고 나라
경영의 요구를 한사코 거절한 사람들이 오히려 존경받았다. 큰 공을 세운 뒤 조정에서
물러난 범려,(다른 나라로 도망가 돈을 많이 벌고 천수룰 누린 사람이다.)
황제의 부름을 한사코 거절하고 어부로 생을 마친 엄자릉 등은 남다른 현자로 칭송됐다.
조정으로 들고 나거나 함부로 입을 여는 어려움의 이야기들 속에는 제 몸 하나를
보신(保身)하려는 者들이 지금도 많다.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 밑에 ‘절함’의 인물이 한 사람만 있어도 나라의 장래는 밝을 것이다.
주어진 임기의 시간은 짧으나 직분에 대한 평가의 시간은 길다. 아니 영원할지 모른다. 짧은
시간에 영원한 평가를 넘어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마음속에 ‘절함’을 새기는 일이다.
얘기도 있는 忠臣의 본보기라 헤서 많은 신하들의 마음은 그랬지만 이런 마음을 실현했던
신하들은 드물고 드물었다고 한다.
*우리 월참자들이 월남에서 작전시 앞도 뒤도 하늘도 보이지 않는 정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벌목도(伐木刀)로 쳐내며 전진할때 불에 덴 것처럼 더운 날씨에 비오듯 흐르던
땀.나중엔 그 땀이 입고 있던 군복에 허연 소금만 배여 있던 것이 생각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