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관계(主從關係)의 차이점(差異点)<1>
1,양자(養子)와 종(從)의 차이점(差異点)
<말선45-80> 양자(養子)와 종(從)이 다른 것은, 종(從)은 일을 중심삼고 주종관계(主從關係)에 있지만, 양자(養子)는 생활(生活)을 중심삼고 주종관계(主從關係)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종(從)은 일을 중심삼고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절대적(絶對的)이지만, 양자(養子)는 생활(生活)을 중심(中心)삼고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절대적(絶對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養子)는 아들을 중심삼고 아들이 하는 대로 흉내내야 합니다. 그래서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 복귀(復歸)라 하는 것입니다.
종(從)이 양자(養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양자(養子)의 자격(資格)을 갖추고 아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야 됩니다. 아들이 울면 울고, 아들이 웃으면 웃어야 되는 거라구요. 아들이 우는 데 ‘왜 우니, 왜 울어’ 해가지고는 양자(養子)가 못됩니다. 종(從)의 종(從)자리에서 종(從)의 자리로 승리(勝利)하여 양자(養子)의 자격(資格)을 갖추어 가지고 아들이 하는 대로 절대순종굴복(絶對順從屈伏)하여 따라가야 한다.
말선77-175 그렇기 때문에 종(從)의 종(從)으로서, 종(從)으로서 양자(養子)로서 아들의 자리에까지 올라 가야할 이러한 3단계(三段階)과정(過程)의 법도(法度)를 통할 수 있는 슬픈 길을 걸어야 할 것이 여러분의 복귀(復歸)의 길인걸 아시고 이 길을 맞춰 가는 것이 참된 신앙(信仰) 길 결국(結局) 통일교회(統一敎會)로 말하면 참된 복귀(復歸)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탕감(蕩減)해야 됩니다. 종(從)의 종(從)을 탕감(蕩減)하고 그 다음에는 종(從)을 탕감(蕩減)하고 양자(養子)를 탕감(蕩減)해야 돼요. 양자(養子)를 탕감(蕩減)하려면 그 보다 나아야 되나요? 못 나아야 되나요? 나아야 됩니다. 나아야 되지요. 그렇게 되려면 하나의 마음 가운데 심정적(心情的)으로 하나님 속에 기억(記憶)될 수 있는 여러분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問題)를 살펴 나가야 합니다.
말선15-300 오늘날 통일교회식구(統一敎會食口) 가운데는 종(從)과 같은 입장(立場)에서 시련(試鍊)받아야할 사람도 있고, 양자(養子)의 입장(立場)에서 시련(試鍊)받아야할 사람도 있고, 직계(直系) 입장(立場)에서 시련(試鍊)받아야할 사람도 있다. 종(從)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資格)은 양자(養子) 이상(以上)에게만 있는 것이다. 양자(養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제일(第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이겨내야 영계(靈界)와 육계(肉界)를 정복(征服)하여야 한다. 너는 충신(忠臣)이다. 열녀(烈女)다. 하는 칭호(稱號)를 받아 내야 비로소 양자(養子)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직계(直系)의 자리에서는 하나님대신(代身) 모든 것을 책임(責任)질 수 있어야 한다. 양자(養子)의 자리에서는 심부름이나 하는 것이지만 직계(直系)의 자리에 나가서는 책임(責任)지는 것이다. 양자(養子)는 하나님대신(代身) 축복(祝福)해 줄 수 없으나 직계자녀(直系子女)가 되면 하나님대신(代身) 축복(祝福)해 줄 수 있다. 양자(養子)는 자기(自己) 당대(當代)에 즉 부모(父母)가 살아 계실 때는 부모(父母)의 것을 상속(相續)받을 수 없으나 직계자녀(直系子女)는 부모(父母)가 살아 있어도 부모(父母)가 허락(許諾)한 모든 것을 상속(相續)받을 수 있다.
말선77-174종(從)의 종(從)이 되어서 종(從)의 자리에 올라가려면 자기(自己) 종(從)의 종(從) 대신(代身) 해 줄 수 있는 사람 만들어 놓아야 돼요. 그래야 탕감복귀(蕩減復歸)라구요. 종(從)의 자리에 올라가려면 종(從)의 종(從)을 대신(代身)할 사람을 만들어 놓아야 되고, 양자(養子)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종(從) 대신(代身)할 사람을 만들어 놓아야 되고, 그 다음에 아들의 자리에 올라가려면, 양자(養子)를 대신(代身)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아야 돼요.
이것이 통일교회(統一敎會)의 3단계(三段階)라구요. 3사람 전도(傳道)하라는 말도 다 그런 의미(意味)가 내포(內包)되어 있는 말이라구요. 예수님도 3제자(三弟子)가 3수(三數)가 문제(問題) 되었지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여러분의 생활(生活)에 이런 형태(形態)를 갖춰 나가야 돼요.
말선46-245 종(從)의 종(從)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종(從)새끼입니다. 그렇잖아요? 주인(主人)이 종(從)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고, 주인(主人)의 종(從)이 나를 종(從)으로 부리는 것입니다. 그게 종(從)의 종(從)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從)의 종(從)으로서는 주인(主人)을 만난다는 것은 억천만년(億千萬年)가도 불가능(不可能)한 거라구요. 그런 종(從) 의 종(從)의 입장(立場)에 있는 사람 앞에 네가 이것만 하고나면 종(從)의 종(從)이 아니라 종(從)이 된다고 할 때 또 사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종(從)의 종(從)으로서 편안(便安)하게 백년(百年) 길을 가겠어요. 그저 무너지고 죽어 쓰러져 없어질지라도 종(從)이 될 수 있는 10년 고통(苦痛)길을 가겠어요.「10년 고통(苦痛)길이요.」이것만 알게 되면 못생기고 미욱한 사람일수록 빠른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곰 같은 사람, 돼지 같은 사람, 미욱한 사람일수록 빨리 가고 지혜(智惠)로운 사람일수록 못갑니다.
말선352-165 선생님(先生任)이 종(從)의 종(從) 자리에서부터 3년반(三年半)을 그렇게 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그걸 메워야 돼요. 메워 가지고 그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서 수고(愁苦)해야 되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자기(自己)를 생각(生角)하지 않아야 돼요.
말선352-163-164 선생님(先生任)이 종(從)의 종(從), 종(從)의 도리를 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뜻을 알고 나서는 천사장(天使長)의 자리에서부터···다 알고 나서 종(從)의 종(從)으로부터, 종(從)으로부터, 양자(養子)로부터 서자(庶子)로부터 적자(嫡子)로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자리를 복귀(復歸)해 나가야 돼요. 그렇게 자기가정(自己家庭)을 복귀(復歸)해야 돼요. 자기(自己) 3대(三代)가 그렇게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자기(自己) 가정(家庭)만 통(通)해도 안 돼요. 사위기대(四位基臺)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중심삼은 가정(家庭) 이상(以上)이 선생님(先生任)의 아들딸을 통(通)해서 넘어가야 돼요.
그래서 가정적(家庭的)아벨과 가정적(家庭的)가인이 하나 될 수 있는 기준(基準)에서 연결(連結)되어야 할 것이 이제 여러분이 가야할 길이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나라를 찾고 다 이루어야 돼요. 2세(二世)들은 선생님(先生任)의 직계(直系) 아들들이 나라를 거느리고 살 수 있는 기반(基盤)을 닦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수고(愁苦)한다는 입장(立場)에서 그것을 도와 줄 수 있어야 돼요. 이런 일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그런 고개를 넘게 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찾기 위해서 고생(苦生)길을 가라고 하느니라. 그 길을 가라는 거예요.
말선46-253 종(從)의 종시대(從時代), 다음에는 종(從)의 시대(時代)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몰랐던 거예요. 믿으면 전부(全部)다 같이 되는 줄 알았지 단계적(段階的)인 발전(發展)을 통(通)해서 해방(解放)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榮光)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 종(從)으로 있다가 끝날 줄 알았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미욱한 사람 가운데 이렇게 단계적(段階的)으로 발전(發展)해 간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시대(時代)의 누구보다도 지혜(智惠)로운 사람입니다.
말선43-190 종(從)은 양자(養子) 앞에 절대복종(絶對服從)해야 되고 생명(生命)을 바쳐 충성(忠誠)해야 됩니다.또한 양자(養子)는 직계(直系) 아들이 태어나면 그 직계(直系)아들에게 절대순종(絶對順從)해야 된다. 만일 여기에서 양자(養子)가 양자(養子)의 권한(權限)을 행사(行事)하게 될 때에는 두 나라가 될 수 있다. 두 패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養子)는 직계(直系)아들이 태어나기 전(前)까지는 양자(養子)의 입장(立場)에서 계승(繼承)해 왔지만 직계(直系)아들이 태어난 그 순간(瞬間)부터는 직계(直系)아들을 위(爲)하는 자리에 서야 된다. 양자(養子)는 직계(直系)아들을 위(爲)해야 된다는 것이다.
말선46-256 주인(主人)과 양자(養子)의 입장(立場)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요. 하나는 주인(主人)이요. 하나는 종(從) 출신(出身)입니다. 주인(主人)이 주인(主人)될 때는 그냥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從)들이 거친 수난(受難) 길을 다 거치고 그것을 감수(甘受)해 가지고 영광(榮光)의 자리에 나 온 것입니다. 그러니 양자(養子)도 영광의 자리에 참석(參席)하려면 주인(主人)이 거친 내적(內的)인 고통(苦痛)의 길을 달게 거쳐 가야합니다. 그러면서 나가는 것이 원칙(原則)입니다. 주인(主人)의 상속(相續)을 받으려면 주인(主人)이 사는 것과 반대(反對)로 살아야 됩니다.
말선43-141종(從)의 자리에서 혹은 양자(養子)의 자리에서 충성(忠誠)을 다하고 나서 아들을 만났다 하더라도 종(從)이나 양자(養子)의 자리에서는 상속(相續)받을 수 있는 자리가 성립(成立)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서 그 아들과 완전(完全)히 하나 되어 가지고 그 아들이 아들로서의 사명(使命)을 다하여 부모(父母)의 자리에 나갈 수 있도록 충성(忠誠)을 다해 모셔 드릴 수 있는 입장(立場)에서야만 비로소 아들의 자리를 대신(代身)할 상속(相續)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복귀노정(復歸路程)이다.
말선77-160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어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사적과정(歷史的過程)을 거쳐야 합니다. 종(從)의 종(從)의 과정(過程)을 거쳐 종(從)의 과정(過程)과 양자(養子)의 과정(過程)과 아들의 자리를 수속절차(手續節次)를 거쳐가지고 참부모(父母)의 인연(因緣)을 맺어야합니다.
지상(地上)에서 하나님의 사랑권(權)을 중심삼고 생활(生活)하다가 저 나라에 가서 하늘나라의 국적(國籍)을 가진 백성(百姓)으로서 영원(永遠)히 무사통과(無事通過)할 수 있어야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안됐습니다.」그러한 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해야 된다구요. 그럴려면 종(從)의 종(從)의자리 종(從)의 자리에 한번 나가야합니다. 여기에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할 수 없다구요.
종(從)이란 =주인(主人)의 명령(命令)을 받아 생활(生活)하는 노비(奴婢) 즉 노예(奴隷)를 말합니다. 종(從)의 종(從)이란 종(從)밑의 종(從)이라는 말이니 주인(主人)을 직접(直接) 마주 대(對)할 수 없는 입장(立場)의 신세(身世)를 말한다. 그래서 타락(墮落)한 인간(人間)은 하나님을 직접(直接) 대(對)할 수도, 명령(命令) 받을 수도 없는 입장(立場)이다. 타락(墮落)으로 인(因)해 사망권(死亡權)으로 떨어진 입장(立場)이 되었으니 만물(萬物)보다 더 낮은 자리로 떨어진 상태(常態)를 말한다. 이것이 구약(舊約)2000년 이전시대(以前時代)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이전시대(以前時代)를 말한다.
이 시대(時代)는 제사(祭祀)를 많이 드림으로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시대(時代)인 것이다. 아브라함 이후시대(以後時代)부터 종(從)의시대(時代)라고 말합니다. 종(從)의 종(從)의 시대(時代)는 주인(主人)을 마주 대(對)할 수 없지만 종(從)의 시대(時代)는 주인(主人)의 명령(命令)을 받을 수 있는 입장(立場)인 것입니다. 이 종(從)의 시대(時代)는 주인(主人)의 명령(命令)을 절대(絶對)지키면서 따라가 행동(行動)함으로써 의(義)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 시대(時代)가 구약시대(舊約時代)입니다.
구약시대(舊約時代)는 종(從)의 시대(時代)임으로 주인(主人)이 종(從)에게 십계명(十誡命)의 계명(誡命)을 지키라고 율법(律法)을 주어,「하지 말라, 말라 」했던 것입니다 이때는 무조건(無條件) 순종(順從)해야 됩니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選擇)의 자유(自由)가 없는 것입니다. 왜 복종(服從)하고 순종(順從)해야 되느냐 하면 종(從)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인(主人)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시대(時代)가 2000년 지나니까 예수가 독생자(獨生子)로 나타나서 양자(養子)아들의 시대(時代)를 준비(準備)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因)해 역사(歷史)가 바뀌어 지고 종(從)의 시대(時代)에서 한 단계(段階) 올라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종(從)의 시대(時代)를 설명(說明)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양자시대(養子時代)를 열어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말선19-203「롬8/15 양자(養子)의 영(靈)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양자(養子)는 직계자녀(直系子女)와 피가 다른 것이다. 양자(養子)는 직접(直接)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이다.
말선7-112 예수는 인간(人間)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땅위에 와서 직계(直系)의 자녀(子女)될 수 있는 수속방법(手續方法)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양자(養子)될 수 있는 내용(內容)만을 설명(說明)하고 갔던 것이다.
말선12-81 예수님이 독생자(獨生子)라는 말은, 다른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주(救主)라는 말은 자기(自己)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말선48-35 부모(父母)의 사랑을 가지고 종(從)의 자리를 거쳐 나가게 된다면 한꺼번에 다 복귀(復歸)되는 것이다. 종(從)의 종(從)의 자리에서부터 종(從)의자리, 양자(養子)의 자리, 자녀(子女)의 자리까지, 껑충 뛰어 올라서게 된다는 것이다.
말선23-289 선생님(先生任)은 아빠 엄마 소리도 못하는 어린아이한테 까지도 경배(敬拜)를 하면서 모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 선생님(先生任)이 여러분에게 모심(慕心)의 생활(生活)을 해야 구원(救援)을 얻는다고 가르쳐 준 것도 선생님(先生任)이 그러한 과정(過程)을 거쳐서 승리(勝利)했기 때문이다.
말선35-178 복귀노정(復歸路程)은 종(從)의 종(從)자리에서부터 시작(始作)해야 된다. 선생님(先生任)도 거지와 같은 입장(立場)에서부터 생활(生活)을 시작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복귀(復歸)는 거지로부터 시작(始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선12-149우리는 종(從)을 거느리고, 형제(兄弟)를 거느리고, 자녀(子女)를 거느리고 난, 후(後) 부모(父母)를 모셔야합니다.말선12-23 양자(養子)가 되려면 종(從)이 있어야하고 자녀(子女)가 되려면 양자(養子)가 있어야합니다.
참부모경p386 우리 자체내(自體內)에서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의 관념(觀念)을 갖는 것이 중요(重要)합니다.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의 관계(關係)는 종적(縱的)인 관계(關係)입니다. 그리고 공사(公私)의 관계(關係)는 횡적(橫的)인 관계(關係)입니다.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의 관계(關係), 즉 다시말하면 가인과 아벨의 문제(問題)가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체(主體)가 되느냐? 심정적(心情的)으로 뜨거운 사람이 주체(主體)가 되는 것입니다. 삼위기대(三位基臺)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죽을 지경(地鏡)에 처하거나 제일 어려울 때 그를 심정적(心情的)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주체성(主體性)을 지니는 것입니다.
이지적(理智的)인 사람보다 정적(情的)인 사람, 이론적(理論的)인 사람보다 영적(靈的)으로 신령(神靈)한 사람이 주체(主體)가 되는 것입니다. 정서적(情緖的)인 면(面)에서 심정적(心情的)으로 그 폭이 넓고 양(良)이 많고 뜨거운 사람이 주체(主體)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問題)는 여기에 귀결(歸結)된다는 것입니다.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의 관계(關係), 공(公)과 사(私)의 관계(關係)에서 하나님을 개입(介入)시키느냐 사탄을 개입(介入)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問題)입니다.
말선56-306 순종(順從)이라는 것은 따라갈 수 있는 자리에서 따르는 것을 의미(意味)하고 복종(服從)이라고 하는 것은 따라갈 수 없는 자리에서 따르는 것을 말 한다. 종교(宗敎)의 길은 순종(順從)이 아니라 복종(服從)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못할 것을 믿는 것이 신앙(信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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