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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경전

내 나라 통일(統一)은 세계(世界)를 위한 표어(標語)

작성자박성창|작성시간22.01.10|조회수197 목록 댓글 0

내 나라 통일(統一)은 세계(世界)를 위한 표어(標語)

 

<말선215-15>(1991,2,6,국제연수원) 우리들이 지금 내 세운 ‘내 나라 통일(統一)’ 이라는 표어(標語)는 일국(一國)에 국한(局限)된 것이 아닙니다. 세계(世界)를 대한 표어(標語)입니다. 한국(韓國)에서 통일(統一)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그 목적(目的)은 남북통일(南北統一)이지만 남북(南北)이 통일(統一)되면 일본(日本)과 한국(韓國), 아담국가(國家)와 해와국가(國家)가 통일(統一)되게 됩니다. 아담국가(國家)와 해와국가(國家)가 통일(統一)이 벌어지게 되면 세 천사장국가(天使長國家), 중국(中國)과 미국(美國)과 소련(蘇聯)을 중심삼은 통일권(統一權)에 영향(影響)을 미칠 수 있는 전통(傳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목적(目的)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 나라 통일(統一)’이라는 표어(標語)는 흘러가는 명사(名士)와 더불어 몇몇 통일교(統一敎) 패들이 웅성거리다가 말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은 역사(歷史)를 통(通)해서 필연코, 어느 누구의 손을 통(通)해서건 성사(成事)하지 않으면 안 될 절대적(絶對的)인 임무(任務)요 과업(課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生角)을 하는 사람, 그렇게 살아온 사람, 또 그렇게 살 것이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어야 될 것입니다.

 

<말선215-10>자 이런 심각(深刻)한 문제(問題)를 두고 볼 때, ‘내 나라 통일(統一)’ 이라는 표어(標語)를 내 건지 벌서 2년째가 되고, 통반격파(統班擊破) 운동(運動)을 한지가 5년(五年)의 역사(歷史)가 흘러갔습니다. 이런 일을 왜 집요(輯要)하게 거듭해서 하느냐? 그것은 이 나라가 아직까지 하나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제계(經濟界)를 보나, 정치계(政治界)를 보나, 학계(學界)를 보나, 청와대(靑瓦臺)를 중심(中心)삼은 위정자(爲政者)들의 각료(閣僚) 클럽을 보나 모든 전부(全部)가 부패(腐敗)돼 있다 이겁니다. 희망(希望)이 없다 이거예요. 뿌리가 있다면 뿌리가 썩었다는 것입니다. 순(純)이 있다면 뭐라고 할까, 송충(松蟲)이들이 갈라먹은 소나무와 같이 그 순(純)이 잘라졌다 이겁니다.

 

뿌리중(中)의 중심(中心)뿌리가 썩었다는 것입니다. 곁가지가 썩기보다는 제일(第一) 깊이 들어가 있는 중심(中心)뿌리가 썩었다는 것이다 이겁니다. 또한 제일(第一) 높은 순(純)이 먼저 시들기 시작(始作)했다는 것입니다. 중심(中心)뿌리가 마르게 되면 제일(第一) 먼저 시들기 시작(始作)하는 게 중심순(中心純)이라는 거에요.

 

그것이 뭐냐? 종대(宗代)라는 거예요, 종대(宗代). 수직상(垂直上)에 있는 맨 위 끄트머리나 맨 아래 끄트머리가 마비(痲痹)되고 썩는다는 것은 불원(不遠)한 장래(將來)에 쓰러져버릴 것을 예고(豫告)하는 것입니다. 시계(時計)로 말하면 돌고 있는 축(築)이 있는데 시계(時計)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윗받침과 밑바침이 다 뭉그러졌다 할 때는, 그건 넘어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 넘어지는 양(良)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미쳐지는 타격(打擊)이나 피해상황(被害狀況)은 막중(莫重)할 것이라는 거지요. 크기에 비례(比例)해서 커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萬若)에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나라가 이런 입장(立場)에 선다면, 이 나라가 쓰러지게 된다면 어떤 피해(被害)가 오겠느냐 이겁니다. 피해(被害)를 누가 받느냐 하면 전국(全國)이 받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大韓民國) 자체(自體)가 세계(世界)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심국가(中心國家)라고 하게 될 때에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상처(傷處)에 비례(比例)되는 상처(傷處)를 모든 나라들이 받게 되는 것은 당연(當然)한 결론(結論)인 것입니다.

 

<말선215-11>그러면 누가 이런 부패(腐敗)된 실상(實相)을 책임(責任)질 것이냐? 물론(勿論) 나라의 위정자(爲政者)들이 책임(責任)을 져야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위정자(爲政者)들이 있는 정성(精誠)을 다해서 수습(收拾)하고 지내나온 결과(結果)가 쓰러질 수밖에 없는 입장(立場)에 섰을 때에는 이것은 인간(人間)의 힘(力)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이 썩어진 것을 먼저 치유(治癒)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시정(是正)하느냐? 그 썩은 뿌리를 잘라내야 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수술(手術)을 해야 돼요. 뼈가 뿌러졌으면 인조(人造)뼈를 만들어서 잇든가 가공(加工)을 하든가 수술(手術)을 하든가 해서 제2방편 (第二方便)을 취(取)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摸索)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망(亡)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망(亡)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은 인간(人間)들이 구상(構想)하는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원(願)하는 입장(立場)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구(求)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거예요. 그 길이 어떤 것이냐 이겁니다. 그 길이라는 것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이 그러한 입장(立場)에 서 있으면 대한민국(大韓民國)이 가는 방향(方向)과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처(處)해 있는 그 환경(環境)을 환영(歡迎)할 수 있는 입장(立場)은 절대(絶對) 아니다 이거예요. 방향(方向)도 다를 것이고 처(處)해 있는 환경(環境)도 다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왼쪽에서 쓰러진 것은 왼쪽 자체(自體)로서는 수습(收拾)할 수 없어요. 그러니 바른쪽의 한 길을 통(通)해 구(求)해주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인간(人間)들의 최대(最大)의 노력(努力)을 통(通)해 형성(形成)했던 모든 국가체제(國家體制)가 무너지게 될 때에는 인간(人間)을 벗어난 다른 방법(方法)을 동원(動員)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神)이 있다면 신(神)의 견지(見至)에 입각(立脚)한 수리방법(修理方法), 치유방법(治癒方法), 혹은 개조(改造) 내지는 재창조방법(再創造方法)이 있을 것이라는 거지요. 그것은 그 자리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병(病)이 나면 환자(患者)를 병원(病院)으로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이동(異動)을 해서 수술대(手術臺)에 올려놓고 다시 손을 대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제2(第二)의 처리방법(處理方法)을 가(加)하지 않는 한(限) 희망(希望)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을 하고 다시 한번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그냥 갈 수 없습니다. 벌(罰)을 받아야 돼요. 탕감법(蕩減法)이 있는 것입니다. 인과법칙(因果法則)에 따라 선(善)을 행(行)한 사람은 선(善)의 보응(報應)을 받는 것이요. 악(惡)을 행(行)한 사람은 악(惡)의 보응(報應)을 받는 것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공자(孔子)같은 사람도 ‘위선자(僞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자(孔子)님 말씀에 선(善)을 행(行)하는 사람은 천의(天意)에 따라서 복(福)을 받는 것이요, 악(惡)한 일을 행(行)하는 사람은 하늘에 의(依)해서 화(禍)를 받는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이렇게 인과법칙(因果法則)이라는 것은 자기(自己)가 행(行)한 결과(結果)가 선악(善惡)의 기준(基準)에 타진(打診)받아가지고 선(善)한 것이 될 때에는 하늘이 플러스시켜주는 것이요, 악(惡)한 것이 될 때는 거기에 비례(比例)해서 마이너스로 삭감(削減)돼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적(宇宙的)인 인과법칙(因果法則)입니다. 통일교회(統一敎會)로보면 탕감원칙(蕩減原則)이지요. 이 탕감원칙(蕩減原則)에 입각(立脚)한 노정(路程)을 가지 않고는 더 좋은 복(福)의 자리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무슨 어려움이 있드라도 자기(自己)가 저끄러뜨린 죄상(罪狀)이 있으면 그 죄상(罪狀)밑에서는 복(福)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걸 넘어야 돼요.

 

그러면 나라의 저끄러진 죄상(罪狀)으로 인(因)하여 망(亡)할 수밖에 없는 입장(立場)에 서게 될 때에는 그 모든 잘못을 누가 책임(責任)져야 되느냐 이겁니다. 그 때에는 주권자(主權者)로부터 모든 국민(國民)과 그 땅이 천(天)으로부터 제거(除去 ) 당(當)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시련(試鍊)이 있고, 반드시 비리(非理)가 있는 것입니다 그건 망(亡)하는 길과 가까워지는 거예요.

 

악(惡)한 것은 뭐냐하면 전진(前進)하던 것이 정지상태(停止常態)로 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악(惡)이 뭐냐면 활동(活動)하던 힘이 계속 전진(前進)으로 향(向)하는 것이 아니라 하향(下向), 후퇴(後退)하여 작용(作用)이 거꾸로 되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발전(發展)하던 것이 정지(停止)되고 후퇴(後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반드시 무엇과 통(通)하느냐? 사망(死亡)과 지옥(地獄)과 통(通)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善)한자리에 있던 것이 전진(前進)을 더하기 위해서 선(善)을 행(行)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영생(永生)과 천국(天國)과 통(通)하는 것입니다. 본연(本然)과 영광(榮光)의 길이 연결(連結)된다는 거예요.

 

<말선215-13>그러면 대한민국(大韓民國)에 있어서 선(善)과 악(惡)의 경계선(境界線)에 놓이는 시대(時代)가 어떤 때냐? 선(善)의 시대(時代)라면 애국정신(愛國精神)이 전국민(全國民)의 가슴가슴에 불타 올라서 새로운 출발(出發)을 향(向)하여 출동(出動)할 때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발(勃勃)한 원동력(原動力)을 지녔을 때를 말합니다. 여러분이 원수(怨讐)에게 나라를 빼앗겨 독립운동(獨立運動)을 하고 있다면 점령(占領)당한 나라가 크면 클수록 큰 희생(犧牲)을 각오(覺悟)하지 않고는 독립(獨立)을 성취(成就)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일제(日帝) 하(下)에서 지배(支配)를 받을 때도 한 사람의 자주적(自主的)인 독립선언(獨立宣言)만으로는 독립(獨立)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거국적(擧國的)인 희생(犧牲)을 각오(覺悟)한 거국적(擧國的)인 결속(結束)만이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위정단(爲政團)이 갖고 있는 힘(力)을 능가(凌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을 타도(打倒)하려는 국민적(國民的)인 힘이 강(强)하든가, 투쟁노정(鬪爭路程)에 있어서 강(强)한 힘이 있어서 이를 타도(打倒)하던가 하는 두가지 방법(方法)을 갖지 않고는 독립(獨立)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독립(獨立)은 분산(分散)된 곳에서는 불가능(不可能)합니다. 분립(分立)되고 분산(分散)된 환경(環境)보다는 결속(結束)과 통일(統一)의 내용(內容)을 집약(集約)시키는 데에 더 희망적(希望的)인 발전(發展)의 원리(原理)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전진(前進)의 길이 있습니다. 결집(結集)되어 통일(統一)을 향(向)하는 때가, 목숨을 각오(覺悟)하고 독립(獨立)을 부르짖을 때가 전진상태(前進(狀態)라는 거예요. 이것을 강(强)하게 자꾸 더 강(强)하게 할수록 발전(發展)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톱되는 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환경(環境)과 타협(妥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습관성(習慣性)에 젖어살던 우리 인간(人間)들은 까딱 잘못하면 환경(環境)에 타협(妥協)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는 것은 순식간(瞬息間)이라는 거예요. 환경(環境)을 극복(克復)하고 가는 길은 고독(孤獨)한 길이요, 외로운 길이요, 투쟁(鬪爭)의 길이지만, 고독(孤獨)한 자리에서 주어진 환경(環境)에 타협(妥協)하는 것은 자(自) 순식간(瞬息間)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特定)한 일, 혹은 혁명적(革命的)인 일의 성공(成功)을 바라면서 단합(團合)된 마음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環境)을 박차고 나섰던 사람들은 그 보다 더 강(强)한 무엇이 있더라도 가겠다고 할 수 있는 투쟁적(鬪爭的) 실적(實績)의 권위(權威)를 갖추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걸 기반(基盤)으로 해서 지금까지 전진(前進)해 나온 것보다도 더 큰 투쟁(鬪爭)의 목표(目標)를 중심삼고 그걸 소화(消化)시킬 수 있고, 그 자체(自體)와 부딪쳐서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주적(自主的) 역량(力量)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자기(自己)를 생각(生角)하고, 자기(自己) 과거(過去)를 생각하고, 환경여건(環境與件)을 생각(生角)하게 되면 정지상태(停止常態)가 벌어지게 됩니다. 거기에 자기(自己)의 사랑하는 친구(親舊)라든가 혹(或)은 부모(父母)라든가 이러한 심정적(心情的) 동기(動機)였던 것이 현재(現在) 머뭇거리는 환경(環境)에 처(處)하게 될 때는 거기에 유착(癒着)하게 되기 때문에 다시는 박차고 일어서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주적(自主的)인 독립국가(獨立國家)를 성취(成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적(敵)을 무찌를 수 있는 나라의 힘(力)을 여러 단계(段階)로 보게 될 때, 그 단계(段階) 이상(以上)의 투쟁적극복(鬪爭的克復)을 통(通)한 실질적자극(實質的刺戟)을 오늘날 어려움에 있는 나를 밀어줄 수 있는 재료(材料)로 삼지 않으면 까딱 잘못하면 환경(環境)에 흡수소화(吸收消化)되기 쉽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습관성(習慣性)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습관성(習慣性)이, 원수(怨讐)예요. 큰일을 하는데 있어서 제일(第一) 문제(問題)가 습관성(習慣性)을 극복(克復)하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971>남북통일(南北統一)이 아무렇게나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엮어 가지고야 가능(可能)한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적기준(家庭的基準)과 종족적기준(宗族的基準)에 연결(連結)됐으니 국가적기준(國家的基準)에 연결(連結)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統一敎會)와 정부(政府)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종족적(宗族的)메시아로 축복가정(祝福家庭)을 배치(配置)해 예수님 완성(完成), 자기완성(自己完成), 아담완성(完成), 3대조상기준(三代祖上基準)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이 땅 위(位)에 있는 모든 인간(人間)을 품을 수 있는 자유(自由)스러운 환경(環境)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적(宗族的)메시아 선포(宣布)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攝理)에서 지대(至大)한 복음(福音)입니다.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종말(終末)이요. 해방(解放)의 날이 여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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