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眞)사랑의 본질(本質)과 그 의미(意味)<1>
<말선48-206> 우주(宇宙)의 근본(根本)은 이 만상(萬象)의 세계(世界)를 대신(代身)해 있는 사람이다. 인간(人間)인 것이다. 인간(人間)의 근본(根本)은 생명(生命)이요, 생명(生命)의 근본(根本)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生命)이 생겨나지 않고 생명(生命)이 없으면 인간(人間)도 없는 것이다. 사랑의 근본(根本)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혼자 있어 가지고는 성립(成立)될 수 없는 말이다.
사람은 반드시 상대적관계(相對的關係)를 가질 때 에 쓸 수 있는 말이다.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根源)이라면 그 사랑의 상대(相對)될 수 있는 자격(資格)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存在)는 인간(人間)밖에 없다. 절대적(絶對的)인 사랑의 주체자(主體者)라면 절대적(絶對的)인 상대(相對)를 가져야 된다. 그런 입장(立場)에서 사랑해야 절대적(絶對的)인 사랑이 성립(成立)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종관계(主從關係)의 자리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버지 되고 인간(人間)은 아들이 되는 자리이다.
<말선51-75> 사랑은 중심(中心)이요, 뜻은 상대(相對)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뜻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은 뜻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아니고서는 하나로 만들 수 없다.
<말선169-94> 참(眞)사랑이란 하나님의 종적(縱的) 사랑과 인간(人間)의 횡적(橫的) 사랑이 일치(一致)함으로써 생겨나는 합(合)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마음대로 못하신다.
<말선48-12> 부모(父母)의 사랑은 소생적(蘇生的) 사랑이라 할 수 있고, 부부(夫婦)의 사랑은 장성적(長成的)사랑이라 할 수 있고, 자녀(子女)의 사랑은 완성적(完成的) 사랑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부부(夫婦)끼리 아무리 사랑을 하더라도 자녀(子女)가 없으면 완성(完成)을 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子女)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완성적(完成的) 사랑이다. 그러므로 부모(父母)의 사랑, 부부(夫婦)의 사랑, 자녀(子女)의 사랑을 거치는 과정(過程)이 인생(人生)살이요, 근본(根本)이요, 하나님의 창조적(創造的) 사랑이다.
<말선142-77> 사랑은 상대(相對)를 통(通)해서 오기 때문에 상대(相對)를 높여야 된다. 자기(自己)를 높여서는 안 된다. 천지(天地)와 하나 될 수 있고 모든 우주(宇宙)를 합(合)할 수 있는 핵(核)이 사랑이고, 무한(無限)한 가치(價値)의 내용(內容)을 사랑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갖기 위해서는 나는 겸손(謙遜)히 머리 숙이고 남을 위(爲)해야 된다. 지금까지는 그 위(爲)하는 철학(哲學)이 없었다.
<신천성경P304~305> 참(眞)사랑에는 반드시 전후관계(前後關係), 상하관계(上下關係), 좌우관계(左右關係)가 다 있습니다. 그것이 경계선(境界線)이 아니고 질서(秩序)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질서(無秩序)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통(通)해 인간세계(人間世界)는 행복(幸福)이 시작(始作)됩니다. 인간자신(人間自身)이 이루고자 하는 완성(完成)이라든가 이상실현(理想實現)은 사랑의 기준(基準)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신천성경p326~327> 사랑 법(法)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人間)이 사랑의 무대(舞臺)를 찾아가는 데는 교육(敎育)이 필요(必要)없습니다. 남자여자(男子女子)가 시집(時執) 장가(杖家)가는 데 있어서 첫날밤에는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성교육(性敎育)이니 뭐니 아무 틀이 없더라도 곤충(昆蟲)들도 잘 압니다.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으로서 부부(夫婦)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敎育)이 필요(必要) 없습니다. 남자여자(男子女子)가 사랑을 따라 완성(完成)하는 데에 교육(敎育)이 필요(必要)하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교육(敎育)이 필요(必要)없이 천하만국(天下滿國)과 천하만상(天下萬象)의 세계(世界)를 언제나 초월(超越)할 수 있는 자격(資格)을 갖추는 길이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말로는 이해(理解)가 안 됩니다. 부모(父母)의 사랑을 아무리 설명(說明)해 보았자 부모(父母)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도달(到達)할 수 없는 경지(慶地)입니다. 부부(夫婦)의 사랑을 아무리 설명(說明)해 보았자 혼자인 사람은 이해(理解)할 수 없습니다. 부모(父母)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녀(子女)를 낳아 길러보지 못한, 이러한 체험(體驗)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도달(到達)할 수 없는 경지(慶地)입니다.
참(眞)사랑은 경험(經驗)을 통(通)해 얻고 체휼(體恤)을 통(通)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참(眞)사랑은 말이나 글, 혹은 일반교육(一般敎育)을 통(通)해서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生活)을 통(通)해서만 완전(完全)히 체득(體得)할 수 있습니다. 아기로 지음받은 아담과 해와는 성장(成長)하면서 참된 자녀(子女)의 심정(心情), 참된 형제(兄弟)의 심정(心情), 참된 부부(夫婦)의 심정(心情), 참된 부모(父母)의 심정(心情)을 단계적(段階的) 생활(生活)을 통(通)해 경험(經驗)하고 체휼(體恤)함으로써 완성(完成)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참(眞)사랑을 전체적(全體的)으로 체득(體得)할 때 비로소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完成)한 이상적(理想的)인 인간(人間)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恒常) 자극(刺戟)이 필요(必要)합니다. 행복(幸福)은 자극(刺戟)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극(刺戟)이 있어야 됩니다.
<신천성경p347> 사랑의 길은 희생(犧牲)함으로써 빛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聖經)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主)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고 했고,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誡命)이라고 했습니다.’ 우주의 모든 계명(誡命) 중(中)에 제1차(第一次)의 계명(誡命)이 있다면 이 계명(誡命)입니다. 이것이 제일(第一) 중요(重要)한 법(法)입니다. 이 법(法)을 중심삼고 이루어지게 되면 그 외(外)의 모든 법도(法度)는 이 법도(法度) 권내(權內)에서 치리(治理)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창조이상(創造理想)은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關係)를 맺게 될 때 실현(實現)되는 것입니다. 희생(犧牲)하는 자(者)는 반드시 중심자(中心者)가 됩니다. 가정(家庭)에 있어서 효자(孝子)는, 보다 희생(犧牲)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家庭)의 중심(中心)이 됩니다.
<말선206-211~213> (1990,10,7, 본부교회) 참(眞)사랑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데, 사탄적 혈연관계(血緣關係)를 초월(超越)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이 이 땅(地) 위(位)에 참사랑의 인연(因緣)을 가져가지고 착지(着地)를 할 수 없습니다. 토착화(土着化)할 수 없어요. 그러한 비통(悲痛)한 주인(主人)의 사정(事情)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관점(觀點)에서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 세계(世界)의 기준(基準)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길을 끌고 나오려니 얼마나 기(氣)가 막혀요. 그건 사는 게 아니에요. 죽음을 각오(覺悟)하고 사탄 세계(世界)를 때려부셔야 돼요.
사탄 세계(世界)의 부모(父母)까지도 원수시(怨讐示) 할 수 있고, 사탄세계(世界)의 처자(妻子)까지도 원수시(怨讐示) 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지 않고는 하늘 원수(怨讐)의 반대(反對)인 내 편(便) 왕(王)과 같이, 내 편(便) 부모(父母)와 같이, 내 편(便) 하나님과 같이 모실 수 있는 길이 없다 하는 것은 깨끗한 결론(結論)이에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말선169-225> 사랑의 내적(內的) 인연(因緣)을 중심삼고 관계(關係)와 인연(因緣)을 맺지 않으면 자기(自己)의 활동무대(活動舞臺)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게 살지 않고 영계(靈界)에 가면 갈 곳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운동(運動)을 해야 한다.
<말선169-90> 하나님 자체(自體)도 사랑 앞에는 굴복(屈伏)해야 된다.
<말선48-9> 사람은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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