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폴란드 그림책은 어떤 모습일까요? 다르다넬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동화 속 왕들의 수염 난 자손인 다르다넬 왕이 성으로 돌아오는 첫 장면. 검은 먹그림과 붉은 색 글자의 조합이 신선합니다. 기대를 안고 한 장 더 넘기면 인류 최초의 감탄사였을 짧은 한 마디 `아!’ 작은 점과 선만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풍성한 숲을 보니 눈이 개운해져요. 커다란 숲의 일렁임과 나뭇잎들을 흔들고 지나갔을 바람의 흔적까지 읽혀지는 듯, 잠시 손길이 멈춥니다.
이렇게 단순하면서 세밀한 그림과 눈맞추는 사이, 주인공 다르다넬 왕의 행보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몇 년 전 용을 무찌르고 그 꼬리를 허리에 차고 오겠다며 용감히 떠났던 왕은 용을 만나지도 못했거든요. 동굴 속, 덤불 속, 벼랑까지 샅샅이 찾아봤지만 용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는데 빵과 소금을 들고 환영해야 할 성문 앞은 쥐죽은 듯 고요했어요. (폴란드에서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장군이나 멀리 떠났다가 집에 돌아오는 가족을 환영할 때 빵과 소금을 들고 나와 맞이하는 풍습이 있었대요. 이런 사실을 새롭게 아는 것 또한 그림책을 접하는 즐거움입니다.)
아무튼 침묵의 환영식을 맞은 다르다넬 왕은 이때부터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궁전의 모든 사람들은 그 생각이 맘에 들지 않았죠. “이제 망토를 벗고 평상복을 입겠다. 비단도 모피도 다 필요 없어! 평상복이 더 편한 걸.” 곧바로 왕은 평상복을 입었어요. 왕이 평상복을 입다니요? 세상에 이런 일이! 왕의 새로운 선언은 계속 되었어요. 오늘부터 수염을 밀어야겠다. 무겁기만 한 날카로운 칼을 내다 버려라. 싸움은 이제 그만, 나는 산책을 즐길 것이다. 왕관 대신 중절모를 써야지. 사륜마차는 너무 더워. 오늘부터 자전거를 탈 것이다, 따위 따위….
왕의 새로운 선언이 계속될 때마다 달라지는 왕의 모습과 표정, 놀라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휘청이는 궁전 사람들의 모습에서 율동감이 느껴집니다. 반복되는 말의 리듬감은 물론 그림에서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하니 참으로 매력적이죠.
멋진 성의 주인이며 모든 권력과 부를 가진 왕. 하지만 다르다넬 왕은 하나씩 하나씩 가지고 있던 것들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자전거를 타고 중절모를 쓰고 성에서 멀어지는 왕은 마침내 그림책 화면 밖으로 경쾌하게 사라집니다. 왕은 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걸까요? 그 뒤로 왕은 어떻게 됐을까요?
완전무장하고 성으로 돌아오는 첫 장면과 가벼운 옷차림으로 성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과 버림, 성공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말예요. 우리말 `뭔가 다르다네’와 왕의 이름이 비슷해서 재치만점이라는 생각까지. 폴란드 그림책의 새로운 예술 세계가 즐겁습니다.
정봉남 <아이숲어린이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