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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가장 가깝게 보인다는 곳,ㅡ 강화군 교동도ㅡ대룡시장

작성자아마존|작성시간26.06.23|조회수39 목록 댓글 0

만일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없다면 강화도는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교동도를 가려면 교동대교를 건너야 하며 교동도에서 북한과의 거리는 2.6km이다

북한이 가장 가깝게 보인다는 곳, 강화군 교동도

강 건너 손에 잡힐 듯 북한 황해도가 보이는 섬,

 

교동도는 6.25 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곳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교동도에는 아직도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실향민들이 많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온 이들은 고향 시장을 떠올리며

 

이곳에 장터를 열었고, 그 정취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교동도는 47㎢ 면적에 약 3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행정 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이고, 대룡리와 읍내리를 비롯해 17개 리를 품고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안향이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공자 초상을 갖고 와 모셨다는 향교가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다른 지역처럼 향교가 있어 지명이 교동이 된 것은 아니다. ‘높을 교喬, 오동나무 동桐, 섬 도島’의

 

한자 이름으로  신라 시대부터 이 지명이 내려왔다. 키 큰 오동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린 것 같다

원래 강화도는 역사적으로 유배지나 피난지로 자주 거명된 곳이다.

 

고려 시대에는 몽골족의 공격에 도읍을 강화도로 옮기고 40여 년을 항쟁했고,

 

조선 시대에는 병자호란 때  조선 조정이 강화도로 피난을 도모하다가 청나라가 강화도로 가는 요로를 봉쇄하자

 

남한산성으로 급히 인조의 피난처를 옮기기도 했다. 서울과 가깝고 섬이라 접근이 어렵다는 점 등이 유사시에

 

강화도를 선택하는 이유였다.

 

강화도에서도 더 서쪽인 교동도 역시 그런 이유로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서 역사가 깊다.

 

연산군과 광해군 등 많은 대군과 옹주가 이곳에 유배되었다. 특히 연산군이 중죄인에게 내리는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형을 받아 탱자나무 담장 안에서만 지냈던 유배지로 가장 유명하다

1950년 6.25전쟁 이후 북에서 월남한 1500여 실향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군사 분계선이

 

멀지 않은 이곳에 잠시 짐을 풀었다가 결국 눌러앉으며 삶의 거처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살면서

 

고향 황해도에 있던 연백시장처럼 시장도 하나 만들어 생필품을 거래했다

서해의 거친 파도가 밀어닥치는 섬으로 군사 분계선이 가까워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었던 데다 강화도에서도

 

다시 배를 타고 물을 건너야 닿을 수 있어 특별한 일이 있는 이들이나 이곳을 드나들었다. 일반인 출입이

 

쉽지 않았고 타 지역과 교류가 많지 않아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도 더뎠다.

 

섬 사람들은 섬 안에서 조용히, 천천히 지냈다.

2014년에 교동대교가 완공되면서 일반인들이 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에 교동도가 있다. 수십 년 세월이 비켜 간 듯한 섬의 모습에서 외지 사람들은 추억을 찾아냈다. 특히 실향민들이

 

하나둘 모여서 고향인 황해도 연백의 시장처럼 만든 대룡시장은 좁은 골목을 따라 미장원과 이발관, 정육점, 전파사,

 

신발 가게들이 오래 전 모습 그대로 어깨를 대고 있다

연백에서 먹던 떡을 그대로 만들어 파는 떡집도 있고, 참기름 향이 문을 넘어 흘러나오는 떡 방앗간도 있다.

 

실향민 할아버지가 시작한 이발관의 표시등은 여전히 돌아가고, 오래된 교동극장의 ‘미워도 다시 한 번’

 

영화 간판은 퇴색한 채 붙어 있다. 잡화상 같아 보이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90세에 가까운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노란 고무줄, 옛날 상표가 붙은 속옷 등 물건이 가득한 가게 안에 그림처럼 앉아서 손님을 맞는다

교동도의 쌀을 판매하는 교동은혜농장 벽에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도 나란히 붙어 있다. 시계방이 있던 곳에 수리공 모형을 만들어 옛 흔적을 보존하는 방법도 눈에 띈다.

골목마다 추억을 되살려 주는 벽화와 뻥튀기 장수 앞에서 귀 막고 있는 아이들 그림, 오줌을 싸서 키 쓰고

 

이웃집에 소금 꾸러 간 아이 그림, 배 아픈 아이의 배를 문질러 주는 엄마 그림 등 골목을 따라 그림과

 

이야기가 이어진다

교동대교가 열리고 대룡시장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알쓸신잡’과 ‘다큐 3일’ 같은 TV프로그램에 등장한

 

대룡시장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SNS에는 교동도대룡시장 ㅡ추억여행 ㅡ70년대감성 ㅡ교복여행 ㅡ

 

이북식강아지떡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대룡시장의 ‘낡은’ 모습들이 올라왔다

시장이 북적거리기 시작하면서 구석구석 새로운 가게도 하나둘 생겼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젊은 상인들이 시장에

 

들어온 것. 이들은 본래 시장의 정서를 반영해 노포들과 어우러지는 모습과 콘셉트로 가게 문을 열었다. 

 

대룡시장을 지켜 온 어르신의 자제들이 그 자리에서 다른 가게를 시작하기도 하고, 1970년대 스타일을 고스란히

 

유지한 가게도 많다.

일단 입구부터 먹을 것 천지다. 발아현미로 만든 찐빵을 시작으로 교동도의 쌀과 현미로 만든 한식 과자인 과즐과

 

유과, 오란다를 파는 ‘아리곳간’, 모듬전에 막걸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전과 막걸리’, 방송에 여러 번 등장한

 

추억의 먹거리인 호떡을 파는 ‘뚱이호떡’이 이어진다

완도산 미역을 별 모양으로 담아 건조한 ‘스타미역’과 딱새우로 국물을 내는 ‘바다가재새우 다시팩’을 파는

 

‘별별마켓’도 보인다. 1960년대 교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교동스튜디오’, 팝 아트 자화상 체험장이

 

된 ‘거북당’ 등 재미있는 콘셉트에 놀라 구경하느라 세 걸음을 옮기기가 어렵다. 

교동대교를 건너온 이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고구저수지다. 사계절 낚시가 가능해 낚시꾼들이 참붕어나

 

잉어, 가물치를 잡으러 오고, 여름이면 저수지 가득 연꽃이 피어 지나다 사진을 찍으러 차를 멈추는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쇠를 녹이던 곳에서 원두를 갈아 부드러운 커피를 내리는 중년이 있는 곳,

 

어릴 적 말타기의 추억을 떠올리며 교동도에서  추억을 되새겨 보심이 어떨런지요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관ㅡ남계원 칠층석탑

(경기 개성  남계원터) 고려 ㅡ국보

 

.원래대로라면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은 북한의 영역인 개성에 있어야 하나, 현재 남한에 있다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은 본래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덕암리에 위치한 절터인 남계원지에 있던 화강암제

 

7층 석탑으로, 형식상 고려 시대 중기 이전에 만들어진 탑일 것으로 추정한다.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시정오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면서 행사장 주변의 장식물로 두기 위해

 

 가져온 것이다. 일제는 경복궁의 전각들을 다 허물어버리고 행사장과 전시장 등을 세웠으며, 밀어버린 공터에

 

정원을 만들고 이를 꾸미기 위해, 비단 이 석탑만 가져온게 아니라, 경성부 주변의 개성, 원주, 이천 등에서

 

석탑이나 불상 같은 유물들을 가져와서 장식해뒀다. 문제는 제대로 된 학술 조사 같은 것 없이 가져왔다는

 

점이다. 이 석탑 역시, 본래 있던 곳이 막연하게 개국사(開國寺)터로 알려져 있었기에 개국사탑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이후 조사 결과 개국사가 아니라 개국사의 말사인 남계원으로 밝혀졌고, 1938년에는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소위 개국사탑에 대하여>란 논문을 발표하면서 지금과 같이 이름을 바로 잡았다. 

 

2005년 용산구로 새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탑을 다시 옮겼다 

 

사람도 아닌 

돌조차 

3..8선을 넘지 못하고

고향 북한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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