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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동행

나이팅게일 폴링 인 러브 (A Nightingale Falling)

작성자미스김라일락|작성시간22.06.04|조회수98 목록 댓글 12

 

한 여자가 착잡한 표정으로 어느 집 문을 두드린다.

 

'나는 비밀을 간직한 여자이고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러한 독백과 함께 1920년 어느 날의 일기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자의 이름은 메이.

아일랜드의 어느 마을에 있는 클리브 저택에서 동생 틸리와 함께 살고 있다.

독립군 IRA와 영국 파견군 블랙 앤 텐 사이에 게릴라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마을 주민들은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상황.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두 자매는 충직한 일꾼인 톰의 도움을 받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마을의 공기는 더없이 맑고 풍경은 평화롭지만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식료품을 사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마을로 나가던 메이는 군인들과 사상자들이

길 가운데 있는 모습을 보고 방향을 바꾼다.

이렇게 끔찍한 광경을 무심히 보아 넘길 만큼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IRA의 매복으로 영국 블랙 앤 텐 부대원들이 전원 사망하고 대위 한 명이 행방을 감춘 일로

마을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졌고 금세 흉흉해진다.

 

점점 어려워져만 가는 집안 형편으로 인해 가장 역할을 하며 고민이 많던 메이는 아침 일찍

마당을 나왔다가 헛간에 의식불명으로 쓰러져 있는 군인을 발견하는데

그녀는 망설임 없이 부상당한 군인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치료를 해준다.

하지만 동생 틸리는 그런 언니의 행동이 불안하기만 하다.

이 사실을 IRA에게 들키면 가족 모두 몰살을 당할 일 아닌가.

이렇게 위험천만하고 무모한 일을 벌이는 언니를 이해할 수가 없다.

 

메이는 결단력이 있으며 천성이 담대하였다.

동생의 불만 섞인 걱정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딱 잘라 단호하게 말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강인한 언니와는 반대로 동생 틸리는 심성이 여리고 감성적이며 

언니에게 의존적인 성향을 지녔다.

 

전직 간호사 출신답게 메이가 능숙한 솜씨로 부상을 치료하고 정성껏 간호해 준 덕분에

사경을 헤매던 군인, 즉 영국군 대위 제임스는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었다.

언제나 냉철한 판단력과 극히 절제된 감정으로 자신을 곧추 세우고 집안을 이끌며 동생을 돌보던 메이.

그러나 각박한 현실 앞에서 감정이라고는 다말라버린 것 같이 건조해 보였던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언제부터인가 살며시 제임스에 대한 연모의 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마음들을 날마다 일기에 고백하며 메이는 이 사랑을 꼭 붙잡으리라 조용히

다짐한다.

그 사랑이 언니에게만 찾아온 건 아니었다.

아침 저녁으로 헌신적으로 간호를 하는 언니와 달리 수줍어 하면서도 다정다감하게

대위 곁을 지키며 날마다 책을 읽어주던 틸리도 어느새 대위를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제임스의 마음은 둘 중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메이일까, 아니면 여린 미소를 지으며 곁에서 책을 읽어주는 틸리일까?

이것이 도의의 문제라면 제임스는 응당 메이를 사랑해야만 했을 것이다.

메이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도 아니었을 테니까. 

그러나 사랑의 감정이란 것은 이성이나 양심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기에 인간사는 복잡해진다.

제임스의 마음은 틸리를 향해 열려가고 언니 메이의 묘한 견제 아래에서 둘의 사랑은 자라간다.

 

문득 인어공주 이야기가 떠올랐다.

풍랑 속에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어가던 왕자를 물 위로 끌어올려 살아나게 한 건 인어공주였어.

왕자 앞에 떳떳하게 서기 위해 가족을 떠나고 두 다리를 얻는 대신 아름다운 목소리는 기꺼이 잃어도 좋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모래톱 위에서 간신히 숨을 헐떡이며 눈을 뜬 왕자 앞에 서 있었던 건 인어공주가 아니라 옆나라 공주였고, 그렇게 둘은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지.

아, 아. 모든 것을 잃게 된 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끝없는 바닷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어.

 

 

제임스와 틸리 사이의 분홍빛 교류를 눈치 채면서 메이는 감정의 균형을 점차 잃어가기 시작한다.

암흑 속에 갇히는 인어공주의 심정은 어땠을까?

메이의 감정은 점차 분노와 질투로 꿈틀대고 악몽까지 꾸게 된다.

 

영국 대위의 행방을 쫓아 클리브 저택을 갑자기 들이닥친 IRA가 추궁을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도 시종일관 침착함과 담대함으로 태연하게 응대하는 메이 덕에 무사히 위기를 넘기기도 했고, 들에 나가 상처를 낫게 하는 풀을 꺾어 약을 조제하는 일도 모두 메이의 지식과 부지런함과 정성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또, 제임스의 곁에만 있기 위해 해마다 어김없이 해왔던 크리스마스 모임도 빠지는 틸리와 달리 메이는 마을 사람들이 의심을 하지 않도록 참석하며 해야 할 일들을 방치하거나 기분에 좌우되는 일 없이 이성적인 판단력과 책임감 있는 태도로 모든 수고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임스는 틸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어느새 둘의 관계는 무르익어 이곳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가자는 둘만의 약속까지 하게 되고 제임스의 입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메이는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과 한 편에서 밀려오는 소외감으로 견딜 수 없어 밤마다 와인에 취해 잠이 드는 지경이 된다.

 

메이의 이런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참으로 제멋대로의 감정 아닌가...

 

메이는 제임스와 결혼할 거라는 틸리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반대하다가 평소와는 달리 단호한 틸리에게 급기야 눈물로 호소하고 설득을 해보지만 생각보다 틸리의 사랑은 흔들림 없이 확고했다.

메이는 멍하니 주저앉아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아졌고 틸리에게는 제임스를,

제임스에게는 틸리를 잃었다고 읊조린다.

 

 

비극적인 그 일이 일어나기 전, 메이는 일기에 이런 내용을 쓴다.

 

'나는 지금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다만 상황에 의해 지배를 받을 뿐이다.'

 

그녀는 무슨 결심을 한 것일까...

날마다 홀로 술을 마셨지만 오늘은 셋이 같이 마시자고 한 날 밤,

소파에 앉아 제임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틸리를 거울로 힐끗 바라보며 술을 준비하는 메이.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제임스가 죽어 있었다.

틸리는 믿을 수가 없었다.바로 몇 시간 전만 해도 함께 파티를 즐기며 다정하게 웃어주던 제임스였다.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얼마 후 자신을 데리고 이곳을 떠날 계획까지 세울 만큼 빠르게 건강을 찾고 있었던 그가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미친 듯 울부짖던 틸리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제임스 곁에 누워 일어날 줄을 몰랐다.

제임스를 잃은 그녀에게는 이제 더이상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집앞 마당에 제임스를 묻고나서 틸리는 자신이 제임스의 아이를 가졌음을 메이에게 말한다.

이 마을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기에 메이는 틸리를 런던의 친척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떠나는 날 아침, 제임스가 묻혀있는 마당의 흙을 하얀 수건에 한 줌 싸는 틸리를 다독이며

더블린행 기차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시간이 흘러 틸리는 갓난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봄이 왔고 식탁의 화병엔 노란 수선화가 생기있게 피어있지만 틸리의 모습은 수척하기만 하다.

제임스를 잃은 틸리는 그날부터 그녀 자신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임스가 누워있던 그 침대 위에서 가지런히 누워 생명을 다한 틸리를 보며 메이는 이제껏 자신을 지탱해 왔던 모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낀다.

 

메이는 하나 남은 혈육인 조카를 입양 보낸다.

더블린행 기차를 타기 위해 틸리를 태워 마차를 몰고 가던 날, 눈을 가리운 채 군인들에게 붙잡혀 있던 톰의 아들 재키를 끝내 외면했던 메이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묵묵히 살아가는 톰을 대하며 마음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다.

언제나 충직한 톰. 그의 아들이 처절한 죽음 앞에서 자매를 아는 척 했어도 메이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냉정히 말하며 갈 길을 서둘렀다.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현실 앞에서 독하고 냉철했던...

그랬던 그녀는 이제 더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어느 날, 아일랜드와 영국 간에는 평화협약이 체결되었고 마을은 온통 축제의 기쁨에 휩싸였다.

더욱 큰 비애와 상실감이 메이를 엄습해 왔다.

그녀는 자신이 잃은 것을 되돌이킬 수는 없으며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댓가는 심판의 날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글과 함께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는 마지막 글을 덧붙이고 일기장을 덮는다.

그리고는 제임스의 군패와 자신이 썼던 일기장을 담은 함을 들고 조카가 입양된 집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텅 빈 집.

모두가 떠나고 메이만 남았다.

이렇게 텅 비어버린 마음보다는 차라리 배신감과 분노와 질투와 소외감으로 몸부림치는 날이 더 행복했을 것이다.

아무도 없이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메이는 통곡을 한다.

동굴 속 암흑과 같은 그 절망적인 마음은 마치 어두운 우주 공간을 나 홀로 떠돌고 있는 것 만큼이나 공포스럽지 않았을까?

 

삶의 길목에서 우리가 어떠한 불행한 감정의 격랑을 맞닥뜨리는 일이 있다 해도 이러한 텅 빈 절망감의 무시무시한 심연을 겪는 것 보다는 훨씬 행복하고 희망적인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조용히 집안의 창문을 닫아 거는 메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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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미스김라일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18 저도 절대로 안 잊어버리는 숙어 있어요
    in a hurry~~
    영어선생님이 너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런 듯...
  • 답댓글 작성자미스김라일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18 머슴돌쇠 앗, 혹시 우리 영어 선생님이신가?
  • 답댓글 작성자미스김라일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18 머슴돌쇠 공부를 엄청 잘하셨나봐요~
  • 답댓글 작성자미스김라일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18 머슴돌쇠 그런데 하라는 일은 안하고 놀고 있느냐
    엄한 벌을 받고 싶은 게로구나~
    (드라마 놀이 한 번 해봤어요 ㅋ
    머슴이시라ㅠ)
  • 답댓글 작성자미스김라일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18 머슴돌쇠 잠시나마 재미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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