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벙을 해본적이 없어서 걱정 되는 면도 있지만,
인원 제한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판만 깔아 놓을테니 편하게 오셔서 전시회 보면서 각자의 마음의 고향에 대해 생각해 보시고, 겨울밤의 야경 속에서 추억도 만드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래요~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편한 신발, 장갑, 목도리, 모자 등도 챙기셔요~
<< 식당 안내 >>
이 동네는 많이 사람들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맛집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특히 토요일 저녁은.
그래서 흩어져서 식사하고 덕수궁 안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안에서 6시 이후에 다시 모여서 전시회를 관람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알아본 식당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시고 마음에 드는 곳으로 삼삼오오 이동하셔서 식사하실게요.
① 정든다락 (‘곤드레밥+쭈꾸미볶음’이 제일 맛있대요. 14000원, 테이블 수가 적음) 많이 걷기 힘드신 분 우선
② 광화문국밥 본점
③ 남도식당 추어탕
④ 반포식스 서울시청점 (쌀국수, 팟타이 등)
<< 덕수궁 건물별 특징 >>
덕수궁 건물 특징을 알면 둘러보시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자료 올려봅니다.
- 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던 곳이었는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소실되자 임시 궁궐로 사용.
- 1611년(광해군 3)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이 정해지면서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 그러다가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기 시작. 이후 황궁에 맞게 규모를 확장하고 격식을 높였으며, 궁궐 내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전통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궁의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덕수궁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동시에 공원화가 진행되어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게 되었다.
* 함녕전(咸寧殿) - 1897년 고종의 환궁과 함께 지어진 황제의 침전
* 덕홍전(德弘殿) - 원래 고종의 황후인 명성황후의 혼전(왕과 왕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임시로 신주를 모시는 건물)인 경효전이 있었던 곳. 이후 고종은 고위 관료와 외교 사절 등 빈객을 접대하기 위한 접견실로 사용
* 중화전(中和殿) - 덕수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
* 석어당 - 임진왜란 때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던 곳. 덕수궁에 있는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2층 건물이자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
* 즉조당 - 즉조의 뜻은 왕의 즉위라는 뜻. 이곳에서 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가 왕위에 오름. 1897년 대한제국 이후에는 정전으로 사용. 1902년 중화전이 세워지면서 다시 즉조당으로 불렸다. 이후에는 고종의 후궁인 황귀비 엄씨가 생활하다가 1911년에 세상을 떠난 곳.
* 준명당(浚眀堂) -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된 건물. 1916년에는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유치원으로 사용.
* 정관헌 - 동서양의 양식을 모두 갖춘 건물. 복합적인 용도로 활용된 장소. 왕실의 존엄을 상징하는 어진(왕의 초상화)을 보관하고, 황실의 귀중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수장고로 기능했으며, 일제 이후에는 때때로 황실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도 활용. 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여가를 즐겼다는 설도 있음.
* 석조전 - 고종이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 지층은 시종이 기거하는 방과 부속 시설이 있었고, 돌계단을 올라 들어가는 1층에는 접견실과 귀빈 대기실, 대식당 등이 있고 2층은 황제와 황후가 거처하는 침실과 여러 용도의 방으로 구성되었다.
1910년에 준공된 후 고종은 고관대신과 외국 사절을 만나기 위한 접견실로 사용. 그러나 고종이 세상을 떠난 후 덕수궁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석조전은 일본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사용. 광복 후 1946년부터 47년까지는 미·소공동위원회가 사용하였고, 1948년부터 50년까지는 유엔 한국위원단의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였다가 2009년부터 복원공사를 하여 현재는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
* 돈덕전 - 1902년~1903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행사(칭경예식)를 위해 지은 건물로, ‘돈덕’은 ‘덕이 도탑다’라는 뜻이다. 화려한 유럽풍 외관의 벽돌로 지어진 돈덕전은 1층은 폐현실, 2층에는 침실이 자리, 각국 외교사절의 폐현(황제나 황후를 만나는 일) 및 연회장, 국빈급 외국인의 숙소로 사용. 1907년에 순종이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졌던 곳. 돈덕전은 고종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방치되었다가 1920년대에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2023년에 재건.
* 중명전 - 1897년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후 수옥헌(漱玉軒)이라고 불림.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고종이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면서, 편전 겸 접견소로 이용. 1905년(광무 9)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에서 활용하다가, 2009년에 복원공사하여 2010년에 전시관으로 개관.
<< 전시회 안내 >>
그냥 그림만 보시는 것 보다 오디오가이드를 들으시면 훨씬 작품이 잘 이해될 거 같아요. 휴대폰으로 QR코드 찍으시고 본인 이어폰으로 듣는 거 같아요. 저는 예전에 녹음기 대여해서 듣는 것만 해봤는데, 저도 이번에 QR코드 오디오가이드에 도전해 보고 싶네요.
1부 : 향토 - 빼앗긴 땅 (일제강점기의 미술)
일제강점기의 풍경화는 겉으로는 향토색이라는 이름 아래 식민지 권력의 취향에 맞춰졌지만, 그 안에는 화가들의 저항과 민족적 정서가 스며 있음.
1922년부터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등용문이었고, 우리나라 화가들은 일본인 심사위원의 '이국주의 취향에 맞춘' 그림을 그려야 했음.
빼앗긴 땅의 아픔을 담은 '시'가 그 시절의 풍경화 옆에 나란히 전시
2부 : 애향 - 되찾은 땅 (광복, 해방의 미술)
광복 후 우리의 풍토와 기후, 지형의 생생한 기운을 전하려는 실험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적 소재와 색채, 미의식을 함께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음.
개성 있고 독창적인 화풍으로 '되찾은 대한민국 땅'과 고향의 풍경을 그린 작품.
광복을 맞이한 뒤, 되찾은 우리 땅을 새로운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 광복 이후 우리 미술계는 일본 화풍의 흔적을 걷어내고,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탐구하며, 더욱 실험적이거나 또는 한국적·민족적인 주제에 몰두.
3부 : 실향 - 폐허의 땅 (6.25 한국전쟁의 미술)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향의 땅과 피난민들의 모습을 기록한 작품들. 전쟁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화가들은 집을 잃고, 그동안 그려온 작품마저 잃었으며, 심지어 가족을 잃은 이들도 있음. 그들에게 예술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자, 동시에 삶의 궁극적인 목적. 예술가들은 직접 목도한 전쟁의 참혹함을 그림으로 기록하며, 그 충격과 공포를 창작으로 상쇄
4부 : 망향 - 그리움의 땅 (이산, 분단의 미술)
분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실향과 이산의 아픔을 가진 화가들은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
망향의 화가들은 고향과 가족 등, 저마다 그리움의 대상을 작품에 담아냄. 그들은 한국 현대미술 주변부에서 묵묵히 화업을 이어가며, 과거의 비극을 품은 채 그리움의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모색.
<< 서울빛축제 걷는 방향 >>
그러나 그날 마음이 이끄는대로 걸으시면 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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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이란 작성시간 25.12.30 좋은 판..
깔아주셔서 좋은 경험할듯합니다~
땡큐!!^^ -
답댓글 작성자나이란 작성시간 25.12.30 이날 날이 춥다하니 저는 추어탕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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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해라해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12.30 나이란 나이란님이 추어탕팀 담당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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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물빛 작성시간 25.12.30 도울일 있으면
손이 되어줄께요
아무거나
시켜도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해라해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12.30 감사합니다~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