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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정감록에 대하여

작성자망호정|작성시간11.07.23|조회수101 목록 댓글 0

 

질문 :

저희집엔 제가어릴적 정감록이란 책자가 있었으나 할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아버님이

모두치워버렷습니다.

정감록이란 무슨책인지 궁굼하기도하고 저희윗대 어르신들과도 연관이있는거 같아

알고계신것이 있다면  자세한답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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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에 대한 자료1,2

 

자료1 :

조선의 선조(先祖)인 이심(李沁)이란 사람이 이씨의 대흥자(大興者)가 될 정씨(鄭氏)의 조상인 정감(鄭鑑)이란 사람과 금강산(金剛山)에서 서로 문답(問答)을 기록한 책이라고 하며, 이후의 조선의 흥망대세(興亡大勢)를 추수(推數)하여, 이씨의 한양(漢陽) 몇 백 년 다음에는 정씨의 계룡산 몇 백 년이 있고, 그 다음에는 조씨(趙氏)의 가야산 몇 백 년, 또 그 다음에는 범씨(范氏)의 완산(完山) 몇 백 년과 왕씨의 어디 몇 백 년 등등으로 계승될 것을 논하고, 그 중간에 언제 무슨 재난과 어떠한 화변이 있어 세태민심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차례로 예언하고 있다. 오늘날 세간에 통행되고 있는 《정감록》은 이 양인(兩人)의 문답 외에 도선(道銑)·무학(無學)·토정(土亭)·격암(格庵)·서산대사(西山大師)·서계(西溪) ·정북창(鄭北窓) ·두사총(杜師聰)등의 예언서에서 발췌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정감·이심·양인이 실존인물이라 할 증거는 없으며, 문헌상으로는 1785년(정조 9)의 홍복영(洪福榮)의 옥사(獄事)에서 《정감록》이란 책에 대한 언급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유사한 이야기로는, 선조(宣祖) 때 정여립의 역모에 대한 설명에서 정씨가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참설이 이전부터 떠돌았음이 언급되었다.[1]

이후 발생한 혁명운동에 정씨와 계룡산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는 미래국토(未來國土)의 희망적 표상이었다는 추측이 있다. 연산군 이래의 국정의 문란과 임진·병자의 양란(兩亂), 그리고 이에 따르는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조선에 대한 민중의 신뢰심이 극도로 박약해지고, 장래에 대한 암담한 심정을 이기지 못할 즈음에 당시의 애국자가 민중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기 위하여 이씨가 결딴나도 다음에 정씨도 있고, 조씨·범씨·왕씨도 있어서 우리 민족의 생명은 영원토록 불멸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2]

                                                                                         다음백과사전에서

 

 

자료2:

 

그런 측면에서 < 정감록 > 에 대한 접근방식은 단순한 구조의 해석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역사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백승종 서강대 교수도 " < 정감록 > 은 한국 근대사의 젖줄"이라고 말했다. < 정감록 > 이 조선개혁운동의 한 획을 그은 동학운동은 물론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민족종교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선 < 정감록 > 의 핵심인 참위(讖緯·나라의 운명을 예측함)는 오간 데 없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사심을 앞세운 자가당착적 해석을 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두미재전(頭尾在田)'이라는 부분만 발췌, 자신이 이름의 앞과 뒤에 '전(田)'자가 들어간다며 대통령이 될 운명이라고 홍보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 < 정감록 > 에서 '진인이 남해의 섬에서 출현한다'(남조선사상)고 예언했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고인이 된 정주영 국민당 총재도 자신을 '정도령'이라고 주장했고, 논산이 고향인 이인제 의원은 계룡산의 정기를 받았다고 선전했다. '왕조적 사고'를 벗어버리지 못했던 전근대적 예언록인 < 정감록 > 이 현대의 정치인들에겐 신기로운 효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 정감록은 예언서입니다.

조선후기 정치적으로 어려웠을때, 그리고 1930-40년경 일제치하에서 벗어나

다음세상은 어떻게. 그리고 누가 왕이되는가 ? 등등 많은 것들을 정감록을

읽고 예언을 하는등 크게 유행했던 시기였습니다.

 

종친님이 올려주신 내용을 보니 아마도 할아버지께서 정감록 사상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동학사상도 정감록과 관계가 된답니다.

종교적으로는 대순진리회인 증산교 와도 상당한 관계가 있을것 입니다.

 

조부님이 돌아가시자 아버님이 치워 버리셨던 이유도

조부님께서 정감록 사상에 너무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 하는

이유였을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정감록과 윗대 어르신들과의 연관 부분에 질문을 하셨는데 ?

정감록에 대해 해석한 분들은 간혹 계시지만 .... 특별히 연관된 부분은

없는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정만록 이라는 문집이 있답니다.

 

조선 선조 때 경상감사의 막하 참모였던 이탁영(1541∼1610)의 일기로 건(乾)·곤(坤)의 순서를 단 2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이탁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찰사였던 김수의 막하로 들어가 참모로 활동했으며, 1593년에는 학봉 김성일의 막하에서 전쟁의 여러 전술을 건의하여 승리에 공헌한 바가 많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나라에서 내리는 상을 굳이 사양하였고, 후에 중추부사에 증직되었다. 이것은 1592∼1598년까지의 일기로 건권은 표지 뒷면에 임진왜란 당시 참전한 영상 이하 여러 관리들의 좌목(座目:자리의 차례를 적은 목록)이 있고, 다음에 ‘임진변생후일록’이라는 제목 아래에 그날그날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적고 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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