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0장 1~6
흔히 듣는 말 중에 ‘사람에게는 일생동안 최소한 서너번의 좋은 기회가 온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일생중에서 그런 기회가 올 것으로 믿고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판단하면서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선용하여 좋은 결과를 내는 사람도 있고
그 기회를 잃고 계속적으로 방황하는 이들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지닌 믿음의 유무를 보시고 그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40년간이나 하나님게서 보내신 선지자의 외침을 외면한 유다는 마침내 예루살렘의 함락이라는 민족상실의 비극을 맞습니다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의 말굽아래 유다왕 시드기아는 눈이 뽑힌체 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가고 ,수많은 애국지사와 백성들도
바벨론의 노예로 끌려가는 실로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진
비극의 결과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비겁하게 외면한 결과로 닥친 것이었습니다
시드기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면도 있었지만 방백들과 백성들의 눈치나 살피는 우유부단한 왕으로서 인간을 두려워하다가
결국 인간에 의해서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 생명을 건짐 받고 다시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게서는 그중 예레미야만 바벨론의 포로에서 구원하시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예레미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여 들어 올리소서’ 그는 태어나기전에 소명을 받았고, 아나돗 사람으로서 제사장 힐기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남유다의 멸망을 예언했던 위대한 예언자이고 평생을 고생가운데 살면서 한길로만 살아온 애국지사였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아의 신앙은 이방인들도 예레미야가 자신의 포로이지만 그는 정의롭고 신실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임을 인정했습니다
자기 백성에게는 배척을 당한 예레미야가 원수인 바벨론 왕에게는 인정을 받은 것이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나
진정한 신앙은 원수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끝내 신앙을 지켰기에 훗날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았음을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신앙은 자기형제에게보다 이웃에게 칭찬을 듣는 것이며 나의 가장 미움의 대상조차도 인정하는 신앙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포로가 되어 끌려가던 중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의 특명에 의해 풀려나고, 또 시위대장 느브사라단의 우정 어린 초대까지 받았다는 것은 어떠한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인 것입니다.
39장 17~18절에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 아멘
유다의 백성들은 회개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결과로 심판을 받았지만
의로운 선지자는 그 참혹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당시 바벨론 황제가 유독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고 권력자인 느브사라단의 정중한 초청을 받은 몸이었다는 것은
엄청난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기회를 거절하고 다시금 페허가 된 땅으로, 아직 회개하지 않은 백성들이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워낙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고생을 많이 했던 에레미야가 이런 특별한 환대에 못이기는 척하고 응했다면
평생동안의 고생을 보상 받을만큼의 영화를 누릴 천재일우의 기회였을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에레미야는 그동안 고생을 끝내고 영화를 누릴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왜? 무엇이? 에레미야의 발길을 돌려 부요 보다는 고난의 길을 택하게 했을까요?
여기서 우리와 다른 예레미아의 영성을 보게 되는데
자신에게 다가온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를 거절하고 조국으로 발길을 돌렸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임을 알았고
또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살아가는 동족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살아왔던 예레미아에게 바벨론시위대장의 권유는
얼마나 달콤했겠습니까?
그런데 이 좋은 제안을 거절하고 멸망한 민족으로 간 것은 자신에게 다가온 영화보다도 민족의 앞날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에레미야는 자신의 유익과 행복보다는 불쌍한 동족을 위해서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비록 자신을 그토록 핍박하고 생명까지 위협을 할만큼 배척을 하면서 하나님께는 지독하게도 불순종하였던 동족이었지만
그들이 바벨론 군에 의해 찢기고 고통을 당할때에는 피눈물을 흘리며 애통하기를 멈추지 않을 정도로 자기백성들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칠십노구를 이끌고 그다랴에로 나아가서 유다 땅에 남아있던 백성들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좋은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아마도 하나님게서 싫어하신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
물질의 유혹에 약해지거나 먼저 자기생각의 우선책으로 평안하고 안락한 유익을 쫒아가려고 했을것입니다
여러분
에레미아만큼 동족에게 핍박을 당한 자도 드물고, 더불어 동족을 그만큼 사랑했던 자도 흔치 않습니다
그렇게 동족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핍박하고 고통을 주었지만
동족이 당하는 환란을 보면서 애통한 마음으로 가슴 아프게 너무 많은 눈물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삶을 살았기에
예레미아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르는데
에레미야 9장 1절을 보면 왜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를가에 대해 느낄수 있는 말씀인데 ‘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의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라’ 예레미야의 가슴 절절한 심정을 읽을수 있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고 본문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단어가 있는데
1절을 보면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에레미야가 사슬에 결박 되었다고 나오는데
그런데 4절에는 사슬이 풀어진 것을 봅니다
그리고 5절 하반절에는 바벨론 사령관이 자신들의 선대를 거절한 에레미야를 향해 오히려 양식과 선물을 주었다 했습니다
여러분
39장 17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그리고 18절 말씀을 보면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 목숨을 얻을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당신의 뜻에 순종하며 따르는 예레미야를 환란에서 구출한 것 뿐만아니라 앞날까지도 보살피시는데
그것도 다름아닌 이방인을 통해서 양식과 물을 공급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는 이 험란한 세상에서 크고 작은 환란이나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 굳건하게 지키며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말씀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변함없으시는 약속으로 신실한자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