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의 나’는
‘형상이 없는 마음’으로
어디서 생겨난 것도 아니고, 만들어 가지는 마음도 아니기에
무생(無生)의 마음, 무생심(無生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마음은 온갖 작용을 하며
하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하늘을 보다도 먼저 생긴 마음이며
땅이 멸해 없어진 다음에도 존재하는 마음이며
‘일시무시’의 마음이며, ‘일종무종’의 마음이다
그러나 식심(識心)의 나! 생각으로 의식이나 인식으로 지각할 수는 없다.
금강삼매경 본문}
묻습니다 }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이 세 가지 공(空)입니까?
공(空)에 3 종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답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공(空)이란
공상(空相)이라고 하지만, 있지만 기실은 없기에 그것은 공(空)한 것이니라.
다시 말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것을 ‘공공(空空)’이라고 하지만, 그 또한 공한 것이며,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도 ‘소공’ 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공한 것을 말하느니라.
이와 같은 공(空)들은
세 가지 <상(相)놀음>에 머무르지 아니하여
범소유상 개시허망을 알고 행하니, 그 행에 진실하지 않음이 없고
그렇게 형상이 없는 마음은 문자와 언어의 길이 끊어져
헤아릴 수 없느니라.
묻습니다}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진여 진실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진실의 모습은 마땅히 어떤 형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없다’가 ‘없음’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없음’이 아니라고 해서‘있음’도 아니니라.
{‘있음’이 아닌 법}이라고 해서
‘없음’에 가서 머무르지 않느니라.
‘형상이 없음’이라는 식심이 만든 상도
‘있음’에 나아가 머무르지 않으니
하늘이 만들어 지기 이전에 있었고,
땅이 다하여 없어진 곳에도 존재하는 무상심, 반야심은
‘있음’과 ‘없음’로서
이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여, 반야심 즉 무상심의 이름과 뜻이 없는 모습은
생각으로는 안 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이름 지을 수 없는 이름’이라 하여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며,
뜻을 나타낼 수 없다! 라는 뜻이라 하여
뜻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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