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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민병택|작성시간26.06.11|조회수1 목록 댓글 0

열일곱 살, 나는 세상을 상대로 장사했다1장. 부잣집 손자가 거지꼴이 되기까지

지금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니 강대국이니 한다.

웃기는 일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선진국은커녕, 밥 세 끼 먹으면 동네에서 성공한 인생이었다.

요즘 애들은 배고프면 배달앱을 켠다지만, 그때 우리는 배고프면 참았다.

참다 안 되면 물 마셨다.

물도 수돗물이 아니라 공동우물 물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았다.

참 질기게도 살았다.


우리 집은 원래 부자였다고 한다.

할아버지 때는 꽤 잘살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웃었다.

“그 부자였던 집 손자가 왜 이 꼴이냐?”

부자였다는 집안의 손자가 연탄아궁이 단칸방에서 김밥 말고, 성냥 팔고, 책 팔고, 나중에는 때까지 밀게 됐으니 인생이란 게 참 웃긴 물건이다.

하여간 우리 아버지가 장남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재산을 거의 다 날린 모양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 자동차가 있었다.

그 시절 자동차라면 지금 자가용하고 다르다.

동네에 자동차가 한 대 있으면 사람들이 구경했다.

운전면허증도 귀했다.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처럼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우리 아버지가 차를 몰고 다녔다는 건, 한때는 그래도 집안에 폼이 좀 있었다는 얘기다.

그 폼이 오래갔으면 좋았을 텐데, 세상은 그렇게 착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하반신 신경마비였다.

요즘 같으면 큰 병원에 가서 검사도 하고 수술도 하고 재활도 했겠지만, 그때는 병원도 시원찮고 돈도 없고, 아픈 사람은 그냥 방 안에 누워 있어야 했다.

아버지는 고통스러워했다.

“병택아, 무릎 좀 밟아라.”

나는 어린놈이 아버지 무릎 위에 올라가 꾹꾹 밟았다.

그때는 그게 효도인 줄 알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한 집안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아버지 무릎을 밟을 때마다 우리 집 살림도 같이 밟혀 내려앉고 있었다.


집안이 기울자 우리는 떠돌기 시작했다.

충주에서 살다가 장성으로 갔다.

또 철암으로 갔다.

또 석포로 갔다.

그러다 다시 장성으로 갔다.

어린 나는 이유도 몰랐다.

어른들이 짐 싸면 짐 싸는 줄 알았고, 기차 타면 기차 타는 줄 알았다.

나는 국민학교를 무슨 관광버스 타고 다니듯 옮겨 다녔다.

교현국민학교.

삼원국민학교.

장성국민학교.

철암국민학교.

석포국민학교.

다시 장성국민학교.

내가 무슨 교육부 시찰단도 아니고 국민학교를 그렇게 돌아다녔다.

그래서 친구는 많았다.

문제는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는 거다.

전학 가고, 적응하고, 또 전학 가고.

그러다 보니 국민학교를 6년이 아니라 7년 다녔다.

나는 지금도 농담처럼 말한다.

“나는 국민학교도 재수했다.”

남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 재수하는데 나는 국민학교에서 벌써 인생 예습을 한 것이다.


그래도 중학교 때는 제법 잘나갔다.

태백중학교에 들어갔는데 공부도 잘했다.

싸움도 잘했다.

그 시절에는 공부만 잘해서는 안 됐다.

가난한 놈이 기죽지 않으려면 주먹도 어느 정도 있어야 했다.

누가 시비 걸면 맞고만 있으면 안 됐다.

나는 그런 쪽으로는 별로 밀리지 않았다.

3학년 때는 규율부장도 했다.

통학반장도 했다.

요즘 말로 하면 모범생 반, 문제아 반이었다.

공부도 하고 싸움도 하고, 선생님 말도 듣고 친구들한테는 만만하게 안 보이고.

그런데 인생은 꼭 잘나간다 싶으면 뒤통수를 친다.

중학교 졸업할 무렵, 집에서 말했다.

“고등학교는 못 보낸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없었다.

인생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그거다.

“돈이 없다.”

이 말 앞에서는 꿈도 무릎 꿇고, 자존심도 밥그릇 밑으로 들어간다.


형도 고등학교를 못 갔다.

장남인 형도 못 갔는데 내가 무슨 수로 가겠는가.

집에서는 말했다.

“형 따라가서 천막 미싱일이나 배워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이 뒤집혔다.

미싱일이 나쁜 일이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교복 입고 학교에 가는데, 나는 탄광촌 천막 쪼가리 붙잡고 새까맣게 일한다?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 했다.

열여섯 살짜리 자존심이 뭐 대단하겠냐만, 그때는 그게 내 전 재산이었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빽도 없는데, 자존심마저 없으면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충주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갔다.

무슨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살려달라고 하러 간 것이다.

“할머니, 나 고등학교 가고 싶어요.”

말하면서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울었을 것이다.

그때는 울어도 창피한 줄 몰랐다.

창피한 것보다 학교 못 가는 게 더 무서웠으니까.


결국 나는 충주상고 시험을 봤다.

후기 시험이었다.

어찌어찌 합격했다.

문제는 합격 통지서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합격은 했는데 입학금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입학만 시켜주세요. 내가 벌어서 다닐게요.”

어머니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금반지를 팔았다.

그 금반지 하나가 내 고등학교 입학금이 되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맹세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학교는 다닌다.’

그 맹세가 나를 김밥장수로 만들고, 책장수로 만들고, 성냥장수로 만들고, 카드장수로 만들고, 나중에는 목욕탕 때밀이로 만들 줄은 몰랐다.

사람이 각오를 잘못하면 직업이 많아진다.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라 종합상사였다.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안 팔아본 건 양심뿐이었다.

그것도 가끔 헐값에 팔 뻔했다.


2장. 김밥통 들고 뒷골목을 누비다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인생이 갑자기 밝아지는 건 아니었다.

입학금은 해결됐지만, 밥값은 그대로였다.

방세도 내야 했다.

공책도 사야 했다.

학교는 공짜로 다니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학교 근처 언덕 밑 가난한 동네에 단칸방 하나를 얻었다.

연탄아궁이 하나 있는 방이었다.

그 방에 앉아 있으면 내 인생도 연탄재처럼 새까맣게 보였다.

그래도 좋았다.

내 방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전초기지였다.


그 동네에는 수도가 없었다.

공동우물이 있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거기서 쌀 씻고, 그릇 씻고, 빨래하고, 욕도 하고, 소문도 씻었다.

나도 거기서 물을 길어다 밥을 해 먹었다.

고등학생이 아니라 혼자 사는 홀아비 같았다.

학교 갔다 오면 시장에 들렀다.

단무지 사고, 오뎅 사고, 시금치 사고, 김 사고.

방에 돌아와 김밥을 말았다.

교복 입은 고등학생이 방바닥에 앉아 김밥을 말고 있는 꼴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다.

제목은 이랬을 것이다.

“대한민국 고학생의 저녁.”


김밥을 다 말면 양은 들통에 담았다.

그리고 밤거리로 나갔다.

“김밥 사세요!”

처음엔 창피했다.

교복 입고 김밥통 들고 다니는 게 어디 쉬운가.

하지만 창피함도 배부른 사람들이나 오래 붙잡고 있는 감정이다.

배고프면 창피도 줄어든다.

나는 여관으로 갔다.

여인숙으로 갔다.

그리고 버스터미널 뒤쪽 골목으로 갔다.

그 골목은 사창가였다.

처음 들어갈 때는 겁이 났다.

고등학교 1학년짜리가 교복 입고 그런 골목을 들어갔으니 오죽했겠나.

그런데 웃기는 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보이는 그 골목 사람들이 내 첫 단골이 됐다는 것이다.


방문이 열리고 누나들이 나왔다.

“야, 학생이야?”

“예.”

“김밥 팔아?”

“예.”

“어휴, 어린 게 고생한다.”

그렇게 한 줄씩 사줬다.

어떤 누나는 손님하고 있다가 나를 불렀다.

“야, 이리 와.”

내가 가면 손님한테 말했다.

“오빠, 김밥 좀 사줘. 얘 학교 다니려고 장사한대.”

그럼 손님이 마지못해 사줬다.

나는 그때 세상을 배웠다.

세상은 교과서처럼 깨끗하지도 않고, 어른들 말처럼 더럽기만 하지도 않았다.

뒷골목에도 인정은 있었다.

가난한 여자들이 가난한 학생 김밥을 사줬다.

그 김밥이 맛있어서 샀겠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 김밥은 별맛도 없었을 것이다.

단무지 몇 줄, 오뎅 조금, 시금치 조금 넣은 김밥이었다.

그런데도 다 팔렸다.

맛이 아니라 사연을 팔았던 것이다.


나는 그 누나들을 고마운 고객으로 기억한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한테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 누나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학교를 못 다녔을지도 모른다.

사람 인생이란 게 참 묘하다.

어른들이 손가락질하던 골목에서 나는 밥값을 벌었고, 세상에서 제일 천하다고 욕먹던 사람들이 나를 먹여 살렸다.

그러니 내가 세상을 똑바로만 볼 수 있겠는가.

나는 그때부터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 시작했다.

삐딱하게 보면 오히려 진짜가 보인다.


김밥 장사가 어느 정도 되자 또 욕심이 생겼다.

‘이것보다 더 벌 수 없을까?’

가난한 놈의 머리는 쉬면 안 된다.

쉬는 순간 굶는다.

그 무렵 리어카 끌고 엿장사하는 형을 알게 됐다.

학교도 안 다니는 형이었다.

나보다 두세 살 많았다.

그 형을 보다가 생각했다.

‘리어카 장사도 괜찮겠는데?’

그래서 나는 또 일을 벌였다.

김밥통을 내려놓고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책장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내가 책을 팔다가 헌병서까지 끌려가게 될 줄은.

고등학생 인생이 이쯤 되면 교과서보다 사건부가 더 두껍다.


3장. 책을 팔다가 헌병한테 잡혀간 놈

처음에는 멀쩡한 책을 팔았다.

고전소설.

무협지.

잡지.

그런 것들을 리어카 위에 올려놓고 팔았다.

그런데 멀쩡한 책은 잘 안 팔렸다.

사람들은 멀쩡한 것보다 수상한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심리는 비슷하다.

도매상에 가보니 잡지가 있었다.

선데이서울, 주간명랑, 주간스포츠.

이런 건 그래도 잘 나갔다.

그러다 더 깊은 구석에서 이상한 잡지를 보게 됐다.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나는 영어는 잘 몰라도 사진은 알아봤다.

‘아, 이건 팔리겠다.’

고등학생 머리에도 장사 감각은 있었다.


그 잡지들은 리어카 위에 대놓고 올려놓지 않았다.

밑에 숨겨놨다.

손님이 눈빛을 보내면 꺼냈다.

“더 센 거 있어요.”

섹스 사진접

그러고는 가운데 제일 야한 장면을 탁 펼쳐 보여주고 바로 덮었다.

장사의 핵심은 다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살짝 보여주고 상상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열여섯 살에 이미 마케팅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법을 몰랐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젊은 사람이 왔다.

“야, 여기 그런 책 있다며?”

나는 단골인 줄 알았다.

“있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꺼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손님이 아니었다.

헌병이었다.

그 시절은 계엄 때였다.

군인들이 파출소에도 앉아 있던 시절이다.

나는 그대로 끌려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이제 학교 끝났다.’

‘엄마 금반지 팔아서 입학시켰는데, 나는 음란 잡지 팔다가 퇴학당하는구나.’

인생이 꼭 이렇게 천박하게 꼬인다.


파출소에 앉혀놓고 아무도 말을 안 걸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혼내면 차라리 나은데, 그냥 앉혀놓으니 별생각이 다 났다.

밤이 깊었다.

그러다 높은 사람이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물었다.

“학생이냐?”

“예.”

“학교 어디야?”

“충주상고입니다.”

그 사람이 학교에 전화를 했다.

나는 속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이 크게 번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를 보며 말했다.

“학생이 이런 거 팔면 되겠냐?”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그 말이 진심이었냐고?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사람은 잡혔을 때만큼은 누구나 착해진다.

결국 훈방됐다.

나는 파출소를 나오며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장사 안 한다.’

그 다짐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는 곧 성냥 장사를 시작했다.

내 인생은 반성은 빠른데 재범도 빠른 편이었다.

 

4장. 세상 공부는 학교보다 뒷골목이 빨랐다

김밥 장사를 하다 보니 이상한 걸 하나 알게 됐다.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주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는 거였다.

수학 선생은 삼각함수를 가르쳤다.

국어 선생은 고전문학을 가르쳤다.

그런데 정작 먹고사는 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줬다.

여자 마음도 안 가르쳐줬다.

돈 버는 법도 안 가르쳐줬다.

그런 건 전부 뒷골목에서 배워야 했다.


내가 열일곱 살 때였다.

김밥통 들고 사창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누나들이 나를 불렀다.

"학생 왔냐?"

"예."

"오늘은 뭐 들었냐?"

"김밥입니다."

"맨날 김밥이냐?"

"제가 호텔 주방장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누나들이 깔깔 웃었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런 골목은 어린놈이 갈 데가 아니라고 어른들이 늘 말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무서운 건 누나들이 아니라 가난이었다.

누나들도 가난했고.

나도 가난했다.

그 차이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어떤 누나가 내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너는 크면 여자 울리겠다."

나는 깜짝 놀랐다.

"왜요?"

"얼굴은 멀쩡하게 생겼잖아."

그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열일곱 살짜리 남자애가 예쁘다는 말보다 좋아하는 말이 뭐 있겠는가.

그날 김밥 두 줄 더 팔았다.

장사는 기분이 좋아야 잘된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세상 물정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는 거다.

사창가 골목도 돌아다녔겠다.

별별 사람도 다 만났겠다.

나는 내가 어른 다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영희 앞에만 가면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김밥 장사하던 놈.

책 팔던 놈.

헌병서까지 갔다 온 놈.

그런 놈이 우물가에서 영희 만나면 괜히 물통만 만지작거렸다.

"오늘 춥네."

"응."

"눈 오네."

"응."

그게 대화의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하다.

사창가 누나들 앞에서는 말도 잘하던 놈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바보가 됐다.


사람이 원래 그런 모양이다.

세상은 겁 안 나는데.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겁이 난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세상 공부 말고 다른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 이름이 첫사랑이었다.

 

영희는 예쁜 애는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 눈이 갔다.

가난한 동네에서는 얼굴보다 생활력이 먼저 보인다.

영희는 웃음이 많았다.

그리고 씩씩했다.

그게 좋았다.

나는 학교를 다녔고,

영희는 학교를 못 다녔다.

나는 교복을 입었고,

영희는 앞치마를 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더 초라해 보일 때가 많았다.


저녁이면 영희가 내 방에 와서 카드를 접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영희는 카드를 접고.

연탄불 위에서는 주전자가 끓고.

그게 우리 데이트였다.

돈이 없으면 낭만도 싸게 해야 한다.


어느 날이었다.

카드를 접던 영희가 갑자기 물었다.

"병택아."

"응?"

"너 여자친구 있어?"

나는 웃었다.

"있으면 김밥 팔고 다니겠냐?"

영희도 웃었다.

"그건 그렇네."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했다.

영희가 웃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영희가 안 오면 괜히 우물가를 서성거렸다.

영희가 다른 남자 이야기를 하면 괜히 심술이 났다.

그 나이에 사랑이 뭔지 알았겠는가.

그냥 영희가 없으면 심심했다.

있으면 좋았다.

그게 전부였다.


어느 날 밤이었다.

눈이 많이 왔다.

골목길이 하얗게 덮였다.

영희가 창밖을 보더니 말했다.

"오늘 집에 못 가겠다."

나는 태연한 척했다.

"그럼 있다 가."

속으로는 심장이 북소리처럼 뛰고 있었다.

열일곱 살짜리 고등학생이 태연할 수 있겠는가.


방은 좁았다.

연탄불은 붉었다.

창문에는 성에가 끼었다.

우리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오래 했다.

돈 이야기.

서울 이야기.

가난한 집 이야기.

그리고 언젠가 잘살게 되면 해보고 싶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그날 밤 나는 처음 알았다.

사람이 꼭 배가 고파서 잠을 못 이루는 건 아니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잠이 안 온다는 걸.

그런데 웃긴 건.

세상에서는 김밥도 팔고,

사창가 골목도 돌아다니고,

헌병서도 갔다 온 놈이

정작 영희 옆에서는 손 하나 어디 둬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는 거다.

인생이 원래 그런 모양이었다.

세상은 안 무서운데,

좋아하는 사람은 무서웠다.

 

 

13장. 서울에서 처음 배운 것

서울은 내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촌놈이었다.

그걸 서울 올라온 첫날 알았다.


내슈빌 음악감상실에 들어갔더니 대학생 형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대학생 흔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그 시절 대학생은 동네 자랑거리였다.

집안에 대학생 하나 나오면 잔치할 때였다.

그런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내가 교복 입고 들어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보통 배짱은 아니었다.


오무영 사장이 나를 받아주긴 했다.

정확히 말하면 받아준 게 아니라 불쌍해서 안 쫓아낸 거다.

"야, 저 골방에서 자."

"밥은 먹었냐?"

"안 먹었습니다."

"주방 가서 먹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서울 사람이 다 된 것 같았다.

그때는 밥 한 끼 주는 사람이 은인이다.

철학 강의보다 밥이 먼저다.


골방에는 대학생 형들 옷이 널려 있었다.

청바지.

티셔츠.

점퍼.

그 시절 청바지는 나한테 미국이었다.

충주에서는 청바지 입은 사람 보기 힘들었다.

나는 교복밖에 없었다.

교복이 잠옷이고 외출복이고 정장이었다.

그런데 형들이 그러는 거다.

"야, 이거 입어."

"네?"

"냄새난다. 교복 벗어."


그때 처음 청바지를 입어봤다.

거울을 보는데 내가 꼭 서울 사람 같았다.

문제는 얼굴은 그대로 충주 사람이었다.

옷만 서울이었다.


거기서 일한 건 별거 아니었다.

토스트 굽고.

설거지하고.

잔 나르고.

주방 청소하고.

온갖 허드렛일.

그런데 나는 그게 좋았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대학생 형들이 신기했다.


형들은 맨날 토론했다.

민주주의가 어떻고.

문학이 어떻고.

예술이 어떻고.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

밥.

잠자리.

그리고 돈.

배고픈 놈한테 민주주의는 너무 어려운 단어였다.


어느 날 형들이 나를 보고 물었다.

"야."

"너 며칠째 안 씻었냐?"

나는 계산해 봤다.

열흘은 넘은 것 같았다.

아마 보름 가까이 됐을지도 모른다.


형들이 기겁했다.

"이 새끼야!"

"사람이냐?"

"서울 와서 목욕 안 했어?"

나는 억울했다.

아니 목욕이 그렇게 중요한가?

배고픈데.


그러자 한 형이 말했다.

"따라와."

그래서 따라갔다.

명동 양지탕.

내 인생을 바꿔놓은 장소였다.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팬티 비슷한 거 하나 입고.

목에 수건 하나 걸치고.

마치 손님도 아니고 직원도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서너 명이 그냥 앉아 있었다.


나는 형한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형이 웃었다.

"때미는 사람들이야."

"예?"

"손님 때 밀어주고 돈 버는 사람."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쳐다봤다.

세상에.

때를 밀어주고 돈을 번다고?

서울은 정말 이상한 도시였다.

충주에서는 본 적도 없는 직업이었다.


형은 또 말했다.

"저 사람들 돈 잘 벌어."

그 말에 내 귀가 번쩍 열렸다.

나는 원래 직업에 관심 있는 놈이 아니다.

돈 되는 직업에 관심 있는 놈이다.


순간 머릿속에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때를 밀어준다.

돈을 받는다.

돈을 많이 번다.

그러면?

나도 하면 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놈이다.

한 번도 때를 밀어본 적도 없고.

남 때 미는 거 구경도 못 해봤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데.

벌써 취업 계획부터 세우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몇 달 뒤.

충주로 내려가서.

진짜로 내가 목욕탕 때밀이가 될 줄은.

그것도 충주 최초의 학생 때밀이가 될 줄은.

인생은 늘 그런 식이었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사는 놈이 아니었다.

배고프면 움직이고.

돈 냄새 나면 달려들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직업이 하나씩 늘어나 있었다.

열일곱 살에 내 이력서를 쓰면 웬만한 어른보다 길었을 것이다.

 

14장. 충주 최초의 학생 때밀이

방학이 끝나고 나는 다시 충주로 내려왔다.

서울은 좋았다.

화려했다.

예쁜 누나도 많았다.

대학생 형들도 멋있었다.

그런데 서울은 내 집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다시 충주행 버스를 탔다.

주머니에는 돈 몇 푼.

머릿속에는 온통 돈 벌 생각뿐이었다.


학교는 다시 시작됐다.

선생님은 칠판에 수학 문제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수학 공식 대신 다른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김밥 팔면 얼마.

성냥 팔면 얼마.

하루에 얼마 벌어야 밥값 나오고.

방세 내고.

교과서 사고.

그런 계산.

가난한 놈은 수학도 실전으로 배운다.


어느 날 목욕하러 갔다.

충주에 새 목욕탕이 생겼다.

삼정사우나.

그때는 사우나라는 말 자체가 신기했다.

보통 목욕탕은 탕 하나 있으면 끝이었다.

그런데 거기는 달랐다.

사우나실도 있었다.

수중안마도 있었다.

온갖 최신 시설이 있었다.

충주 사람들 눈에는 거의 호텔 수준이었다.


나는 탕에 들어가 있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서울 양지탕.

그리고 거기서 본 때미는 사람들.


'어?'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없었다.

충주에는 때미는 사람이 없었다.

한 명도 없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또 장사 계산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공부보다 이런 계산이 빨랐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서 카운터로 갔다.

사장님 좀 뵙고 싶다고 했다.

잠시 후 뚱뚱한 아저씨가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아버지랑 예전에 같은 직장에 다녔던 분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말했다.

"사장님."

"예?"

"여기서 제가 때밀면 안 되겠습니까?"


사장님이 나를 쳐다봤다.

고등학생이 교복 입고 와서 하는 말이니까.

보통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다.


"학생이?"

"예."

"때밀 줄 알아?"

"..."

솔직히 말하면 몰랐다.

한 번도 안 해봤다.

구경도 못 했다.


그런데 나는 거짓말을 안 했다.

"아니요."

"모릅니다."


사장님이 웃었다.

"모르는데 하겠다고?"

"배우면 됩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 놈이다.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그런데 자신감은 있었다.

그것도 근거 없는 자신감.

젊음은 원래 그런 거다.


사장님이 며칠 후 오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가보니까.

글쎄.

진짜 침대가 놓여 있었다.

때미는 침대.

때미는 의자.

전부 새로 만든 거였다.


"야."

"열심히 해봐."


순간 나는 충주 최초의 학생 때밀이가 됐다.

문제는.

여전히 때를 밀 줄 모른다는 거였다.


첫 손님이 왔다.

"학생."

"예."

"때 밀어줘."


속으로는 식은땀이 났다.

이제 어쩌지?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아저씨."

"예?"

"제가 오늘 처음입니다."


아저씨가 웃었다.

"뭐?"

"오늘 처음이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오히려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야."

"타월 줘봐."

"이렇게 손에 감고."

"손끝에서 위로 밀어."

"그렇지."

"그렇게."


나는 손님한테 기술을 배웠다.

충주 최초의 견습 때밀이였다.

선생님은 손님이었다.


그런데 웃긴 게.

며칠 지나니까 진짜 잘하게 됐다.

사람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

몇십 명 밀고.

몇백 명 밀고.

그러다 보니 기술이 생겼다.


나중에는 손님들이 나를 찾았다.

"학생 어디 갔어?"

"그 학생 불러."


그때 처음 느꼈다.

기술이 있다는 건 무섭다는 걸.

공부 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돈이 꽤 됐다.

아주 꽤.

내 나이에 만져보기 힘든 돈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세상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돈이 생기니까.

여자도 보이기 시작하고.

옷도 사고 싶고.

친구들한테 빵도 사주고 싶고.


문제는.

사람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 사고도 같이 친다는 거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삼정호텔 2층 안내실 누나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내 인생이 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15장. 돈맛을 알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배고플 때는 밥만 먹여주면 세상에 소원이 없다.

그런데 밥이 해결되면 그 다음에는 돈이 보인다.

그리고 돈이 보이기 시작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나도 그랬다.


때밀이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천 원이 큰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머니를 만져보니까 돈이 제법 묵직했다.

그 순간부터 사람이 달라진다.

세상이 만만해 보인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 모인다.

"야."

"빵 먹으러 가자."

그러면 전에는 도망갔다.

돈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내가 말한다.

"야 다 들어와."

"오늘 내가 산다."


충주에 뉴욕제과가 있었다.

이름은 뉴욕인데 실제로는 충주였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최고급 빵집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우르르 데리고 들어갔다.


"먹어."

"실컷 먹어."


친구들이 놀란다.

"야."

"너 돈 어디서 났냐?"


나는 씩 웃는다.

설마 내가 사람 등 밀어서 번 돈이라고 하겠는가.

괜히 있어 보이게 말했다.

"사업한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고등학생 사업가.

김밥사업.

책사업.

성냥사업.

그리고 때밀이사업.

경력은 화려했다.


그 무렵 나는 목욕탕에서 먹고 자고 있었다.

방세가 아까웠다.

그리고 솔직히 목욕탕이 더 편했다.

겨울에도 따뜻했다.

밥도 식당 아줌마들이 챙겨줬다.


새벽 네 시.

일어난다.

물 받는다.

손님 받는다.

학교 간다.

학교 끝나면 다시 목욕탕 간다.

밤 열 시까지 일한다.

그리고 거기서 잔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젊음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잠도 안 자고.

밥도 대충 먹고.

그냥 버틴다.


거기서 같이 일하던 놈이 하나 있었다.

나보다 어린 놈이었다.

중학생 정도 돼 보였는데 학교도 안 다녔다.

걔는 구두를 닦았다.

손님 구두.

반짝반짝.

그게 걔 수입이었다.


우리는 둘 다 월급이 없었다.

성과급 인생이었다.

손님 많으면 먹고.

손님 없으면 굶고.

참 자본주의를 일찍 배웠다.


그런데 진짜 재미있는 건 2층 호텔이었다.

거기 안내실 누나들이 세 명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무 살 조금 넘은 나이였을 거다.

그때 나한테는 전부 여신이었다.


나는 밤마다 새우깡 한 봉지 들고 올라갔다.

누나들 보러.

새우깡은 핑계였다.

누나들이 보고 싶었던 거다.


"누나."

"또 왔냐?"

"예."


그러면 의자 하나 내준다.

나는 거기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텔에는 별별 손님이 다 온다.

장사꾼.

기사.

공무원.

사기꾼.

도망자.

연인.

불륜 커플.

세상 인간들이 다 모인다.


그러다 보니 세상 공부가 학교보다 빨랐다.

나는 교과서보다 사람 얼굴을 먼저 읽게 됐다.


어느 날이었다.

누나 대신 내가 손님 방에 물을 갖다 주게 됐다.

물주전자.

컵.

재떨이.

수건.

쟁반에 담아서 들고 갔다.


문을 열어주던 손님이 나를 보더니 물었다.

"야."

"아가씨 없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예?"


"아가씨."

"소개 안 되냐?"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뭔가가 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충주 버스터미널 뒤.

사창가.

김밥 사주던 누나들.

내가 아는 누나들.


그리고 눈앞의 손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

'이것도 장사 되겠는데?'


내가 인생에서 사고를 치기 시작하는 건 언제나 이 순간이었다.

"어?"

"이거 돈 되겠는데?"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반드시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16장. 나는 포주가 아니라 심부름꾼이었다

지금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오해한다.

그래서 미리 말해둔다.

나는 포주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었다.

그것도 공부하겠다고 발버둥 치던 고등학생.

문제는 돈이 궁했고.

세상은 돈 있는 놈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거다.


호텔 손님이 물었다.

"아가씨 없냐?"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

나는 진짜 순진한 놈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순진한 척 잘하는 놈이었다.


"예?"


"아가씨 말이야."


그제야 알아들었다.

나는 고개를 긁적였다.


"글쎄요..."


그러면서 머릿속은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충주 버스터미널 뒤.

내가 김밥 팔던 골목.

거기 누나들.

나를 좋아하던 누나들.

김밥 사주던 누나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손님.


세상은 넓은 것 같지만 의외로 좁다.

돈 있는 사람과 돈 필요한 사람이 만나면 장사가 된다.


그날 밤 나는 버스터미널 뒤 골목으로 갔다.

오랜만이었다.


"학생 왔네?"


누나들이 반가워했다.

김밥 장사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누나."

"왜?"

"손님 있는데."


순간 누나들이 웃었다.


"이놈 봐라?"


나는 괜히 멋쩍었다.


"아니..."

"제가 하는 건 아니고."


"그럼 누가 하냐?"


다들 깔깔 웃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농담이 너무 많다는 걸.


결국 누나 하나가 따라나섰다.

그리고 나는 호텔까지 안내했다.


손님은 만족했다.

누나는 돈을 벌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담배 한 갑 값을 받았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한참 웃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나는 공부하려고 고등학교 간 놈이었다.


그런데 낮에는 학생.

밤에는 때밀이.

가끔은 호텔 심부름꾼.


내 인생은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죄책감은 없었다.


누나는 원래 그 일 하는 사람이었다.

손님은 원래 찾는 사람이었다.

나는 중간에서 길만 알려준 거였다.


택시 기사랑 크게 다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논리다.

열여덟 살짜리 머리에서 나온 철학이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생기기 시작하면 사람 욕심도 같이 커진다는 거다.


며칠 뒤.

나는 목욕탕 휴게실에서 누워 있었다.


주머니에는 돈이 있었다.

친구들 빵도 사줄 수 있었다.

새 운동화도 사고 싶었다.

청바지도 사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여자도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단순하다.

배고플 때는 밥만 보인다.

배가 부르면 여자 보인다.


그 무렵.

내 인생에 순이라는 여자가 나타났다.


막걸리집에서 일하던 여자였다.


예쁜 여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묘했다.

자꾸 눈이 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은 늘 그랬다.

정말 예쁜 여자보다.

왠지 마음이 쓰이는 여자한테 더 약했다.


순이는 그런 여자였다.


그리고 그 여자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돈 벌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가난할 때는 여자 만날 시간도 없다.

돈이 조금 생기니까 사고 칠 여유가 생긴 거다.


인생이란 참 묘하다.

가난이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가끔은 사고를 못 치게 막아주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그때는 몰랐다.

순이가 내 돈을 가져갈지.

내 마음을 가져갈지.

아니면 둘 다 가져갈지.

 

17장. 순이와 동거하다

순이를 처음 본 건 막걸리집이었다.

그때 나는 돈맛을 조금 알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주 큰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빵 사 먹고.

친구들한테 한턱 쏘고.

가끔은 짜장면도 먹을 수 있는 정도.

고등학생한테는 큰돈이었다.


순이는 막걸리집에서 일했다.

예쁜 여자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영희가 더 나았다.

그런데 영희는 이미 사라졌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떠난 사람은 그리워하고.

눈앞에 있는 사람은 또 눈에 들어온다.


순이는 생활력이 강했다.

그게 좋았다.

가난한 사람은 안다.

예쁜 것보다 생활력이 중요하다는 걸.


"병택 씨."

"예?"

"밥 먹었어?"


그 한마디가 좋았다.

그때 내 인생에서 누가 밥 챙겨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자기 먹고살기도 바빴다.


그런데 순이는 자꾸 밥을 챙겼다.

반찬도 챙겼다.

김치도 챙겼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밥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배고플 때 판단력이 흐려진다.

특히 열여덟 살 남자는 더 그렇다.


어느 날부터인가.

순이가 내 방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보니까.

내 방에 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연애하자.

동거하자.

이런 말도 없었다.


그냥 어느 날부터 같이 살고 있었다.


젊음이란 원래 그런 거다.

계획이 없다.

계획이 없으니까 사고도 잘 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어른 다 됐다."


웃기는 소리다.

열여덟 살짜리가 무슨 어른인가.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때 밀고.

집에 오면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나는 내 인생이 성공한 줄 알았다.


그게 착각이었다.

아주 큰 착각.


왜냐하면.

그때부터 내 통장 대신 순이 주머니가 두둑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8장. 돈은 내가 벌고 계산은 순이가 했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열여덟 살만 되면 자기가 세상 다 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낮에는 학교 다니고.

저녁에는 때 밀고.

주머니에는 돈도 들어오고.

방에 가면 순이도 있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다 됐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열여덟 살짜리가 뭘 다 됐다는 건지.


그 무렵 내 하루는 바빴다.

새벽에는 목욕탕.

낮에는 학교.

저녁에는 다시 목욕탕.

밤에는 순이.


잠잘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젊음은 참 무식하다.

안 자도 버틴다.

안 먹어도 버틴다.

몸이 아니라 깡으로 산다.


돈도 제법 벌렸다.

때밀이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손님이 많으면 하루 수입도 쏠쏠했다.


문제는.

돈이 내 주머니에 오래 안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사랑이라는 게 원래 돈 먹는 하마라는 걸.


순이는 자꾸 말했다.

"병택 씨."

"응?"

"돈 내가 맡아줄게."


지금의 내가 그 말을 들었으면 웃었을 거다.


"야."

"그거 맡기는 순간 끝이다."


그런데 열여덟 살 병택이는 아니었다.


"그래?"

"그럴까?"


참 순진한 놈이었다.


그래서 돈을 맡겼다.


처음에는 좋았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까 괜히 안 쓰게 됐다.


"봐."

순이가 말했다.

"내가 관리하니까 돈 모이잖아."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돈은 모인다는데.

나는 맨날 돈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돈은 모였는데.

내 돈이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나는 사랑을 보고 있었고.

순이는 통장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목욕탕 일이 끝나고 밤늦게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방문이 열려 있었다.


"어?"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순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안 했다.

화장실 갔나 보다.

친구 만나러 갔나 보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났다.


안 왔다.


그때부터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방 안을 둘러봤다.


옷도 없었다.


가방도 없었다.


그리고.


돈도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천장을 쳐다봤다.


그리고 혼자 웃었다.


"이야."


"이번에는 제대로 당했네."


보통 사람은 화를 냈을 거다.

욕도 했을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내 인생이 원래 그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잘된다 싶으면.

반드시 사고가 났다.


성냥 장사도 그랬고.

책 장사도 그랬고.


이번에는 순이였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돈 가져갔으면 잘 살아라."


그리고 다음 날 새벽.


평소처럼 목욕탕으로 출근했다.


배신당한 놈답지 않게.


때를 밀러.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니까.


그때 깨달았다.


여자는 떠나도.

손님 때는 안 떠난다는 걸.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손님 때가 훨씬 믿음직했다.


밀면 나온다.


여자 마음은 안 그런데.


그때부터였다.


나는 여자보다 돈을 조금 더 믿게 되었다.


물론.

그 믿음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얼마 뒤.

나는 또 다른 여자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게 된다.


사람은 안 변한다.

특히 열아홉 살 남자는 더 그렇다.

 

19장. 나는 왜 늘 여자한테 약했을까

순이가 떠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여자는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정확히 사흘 뒤.

또 다른 여자한테 웃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참 답이 없는 놈이었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학력도 고등학생.

직업은 때밀이.

그런데 여자 좋아하는 건 절대 안 포기했다.


배고픈 건 참아도.

외로운 건 못 참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사람 좋아하고.

세상 좋아하고.

또 속고.

또 웃고.

또 덤비고.


나는 그런 놈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내 인생에 또 하나의 사건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대개 내 인생의 사건은 두 종류였다.

돈 때문이거나.

여자 때문이거나.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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