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앙은 동사 중심의 역동적인 신앙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백성 답게 행동하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말같이 들릴는지 모르나 바로 이것이 구약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면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인가? 이 문제를 가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머리를 짜내고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길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대로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삶의 규범(規範)을 가르쳐 주신 것을 ‘토라’(Torah)라고 부른다. ‘토라’라는 히브리어의 본래 의미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가르친다’는 뜻을 가진 동사 ‘야라’(yarah)에서 생겨난 말이다. 구약성경에서 ‘토라’란 ‘하나님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살아갈 길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쳐주신 ‘토라’ 말씀은 곧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삶의 규범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라’ 말씀대로만 살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길까지 가르쳐 주신 ‘토라’ 말씀을 감사와 감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삶을 규제하고 속박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시편을 보면 ‘토라’에 대해 감사하는 시편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시편 1편은 토라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시편이다.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 시편에서 ‘율법’이라고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로 ‘토라’이다. 사실 이 시편에서 ‘토라’를 율법이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율법이나 법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대단히 훌륭한 사람을 표현할 때, 우리들은 흔히 ‘그 사람은 법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법대로 사는 사람’보다는 ‘법없이 사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다. 시편 1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삶의 규범으로 주신 ‘토라’는 ‘율법’으로 번역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우리들의 정서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편 119편은 또 다른 ‘토라’ 시편이다. 성경책에서 한 장으로서는 가장 긴 176절로 되어 있는 시편이다. 이 시편은 ‘토라’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176회 반복되어 나타난다. ‘내가 주의 ‘토라’(법이라고 번역되었음)를 어찌 그리 사랑하는 지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97~105)
이 시편에서 ‘주의 말씀’이란 곧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토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토라’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