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나팔절
나팔절/새해/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이스라엘의 명절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것 가운데 하나가 나팔절이다. “칠 월에 이르러는 그 달 초일일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민수기 29:1)의 말씀에 따라 성회로 모이고 나팔을 부는 것에서 이름되어 졌다. 이 나팔절은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로는 ‘해의 첫날’, ‘해의 머리’ ‘해의 시작’ 등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로쉬하샤나“라고 부른다.
먼저 이스라엘의 달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대인들은 태음력에 따라 만든 유대력을 철저하게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음력을 사용하는 나라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그 가운데 이스라엘 만큼 음력에 따른 유대력을 철저하게 지키는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이스라엘에서 태양력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일상생활의 편리를 위해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 명절, 기념일은 유대력에 따라 지키고 있어서 이 모든 날들이 양력으로는 해마다 날자가 다르다. 예를들면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독립을 했는데 이 독립 기념일을 매년 양력 5월 14일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1948년의 음력에 따른 그 날을 기념하여 지키고 있다. 나팔절을 비롯한 성경의 모든 절기들을 이스라엘이 지키고 있는데 모두 음력에 따른 유대력에 맞추어 지키고 있다.
이 나팔절은 우리고 말하면 새해의 설날(구정)과 같다. 이스라엘의 설날은 유대력의 7월 1일이다. 이스라엘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양력을 기록한 달력이 있지만 1월 1일 즉 신정(新定)은 유대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신정에는 모든 관공서를 비롯한 학교, 은행등 모든 직장에서 정상근무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신정과 구정의 구별은 없다. 유대력의 모든 달은 이름이 붙여져 있다. 유대력 7월은 ‘티슈리’(Tishri), 그리고 1월은 ‘니싼’(Nissan)이라 부른다. 이스라엘에서는 정월달이 1월이 아니고 새해를 맞이하는 7월이 되는 샘이다. 이 말은 아람어 ‘쉐레이’(sherei) ‘시작’이라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정월달에는 명절이 컸었는데 이스라엘에서 정월달에 해당하는 7월 즉 티쉬리월에는 명절이 많다. 이달 1-2일은 로쉬 하샤나 즉 설날이고 10일은 대속죄일, 15-21일 일주일은 초막절, 22일은 시므카 토라라는 명절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대학교에서는 아예 학기를 이러한 명절이 모두 끝난 뒤에 시작하기도 한다.
이 나팔절 즉 새해의 설날은 이스라엘의 유대인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모든 유대인들이 개혁파를 제외하고 이틀에 걸쳐서 지키고 있다. 개혁파 유대인들은 하루만 지킨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이 나팔절은 하루를 지키도록 한 것 같다(레 23:24,25). 그러나 오늘날 이틀에 걸쳐서 나팔절을 지키는 것은 만일 하루만 지키게 되면 달의 시작을 알리는 초생달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려고 하는 열정의결과로 후대에 만들어진 관습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이 7월 티슈리월의 첫날을 설날로 지키는 것은 7이라는 숫자의 중요성과 가을에 농사의 끝과 우기의 시작과 관련이 깊고 특히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이 때에 하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식탁을 안식일과 같이 차려지고 사과 꿀이 준비되어 진다. 이는 달콤한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이고 사과를 꿀에 찍으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새해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어떤 공동체에서는 사다리 모양의 빵을 굽기도 하는데 이는 새해에 삶이 오르내리는 것을 상징하고 때로는 둥그런 모양으로 굽기도 한다. 가끔 단 열매를 넣기도 한다. 이 기간에 호두는 먹지 않는다. 히브리어로 후두인 “에고즈”라는 낱말의 숫자의 합이 (17)이 “죄”를 의미하는 “해트”라는 낱말의 숫자인 17과 같기 때문이다. 설날(로쉬하샤나) 전날에는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가 7:19) 말씀을 상기하는 의식을 갖는다. 이 의식을 “타슐리크(던진다는 뜻)”라고 한다. 즉 깊은 바다에 죄를 던진다는 뜻이다. 바닷물이나 흐르는 물에 가서 죄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만일 흐르는 물이 없을 경우에는 우물에서 행하기도 한다. 현대 예루살렘의 종교인들은 실로암에 가서 이 “타슐리크” 의식을 행하고 있다.
로쉬 하샤나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 동안에 셀리홋(selihot) 라는 회개의 기도를 한다. 또 돌아가신 부모님의 무덤을 돌아보기도 하는데 이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 분들이 살았을 때 보여주었던 좋았던 인식을 상기하며. 의인의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회당에서 주로 읽는 성경구절은 첫째 날에는 본문으로 창세기 21장 하프타라로서 사무엘상 1:1-2:10, 둘째날에는 창세기 22장 하프타라, 예레미야 31:2-20이며, 그리고 이틀동안 마프티르로써 민수기 29:1-6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팔절이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으나 나팔절이 고대시대에 지켜지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나팔절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의해서 지켜지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느헤미야 8장). 나팔은 짐승의 뿔로 만드는데 정결한 짐승들 양, 염소, 산양 등이며 소의 뿔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금송아지를 섬겼던 동물이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수양의 뿔로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에 수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산양의 뿔이 많이 사용되는 것은 산양의 뿔이 길고 멋있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팔은 반드시 나팔절에만 부는 것은 아니다. 매달 초하루, 보름과 다른 절기 때 또는 특별한 날로 여겨 축하를 해야하는 때에도 나팔을 분다(시 81:3). 만일 로쉬 하샤나가 안식일에 시작이 되면 첫날에는 나팔을 불지 않고 둘째날에 분다.
로쉬 하샤나에서 가장 극적인 의식은 나팔을 부는 것이다. 토라가 읽혀진 후 토라가 궤로 돌려지기 전에 시편 47편이 암송되어진다. 나팔을 부는 사람은 대개 흰색 가운을 입는다. 회중 가운데 존경받는 사람이부는데 대개는 랍비들이 분다.
성경에는 나팔을 부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민 10:10). 이 날에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의 왕권을 상징하여 그의 권위를 나타내며 인간을 심판하시는 것을 의미한다(시 96:13, 98:9, 시 95: -- 100:). 이러한 개념은 고대국가 특히 바벨론에서 왕이 출현할 때에 나팔을 불어 알리는 장엄한 모습과 로쉬 하샤나로부터 대속죄일 까지 열흘 동안 “참회의 기간”을 선포하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날이 물론 기쁘고 즐거운 절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다른 절기와 다른 점은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으로 삼기 때문에 오히려 경건한 자세가 요청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또 하나님께 대하여 혹시 잘못된 것이 있는지 말씀을 통하여 점검하고 살피는 것이다. 새해에 대하여 이렇게 규정을 하는 것은 새해를 맞이하는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와 다른 점이라 하겠다.
이 날에 나팔을 부는 것은 기본적인 3가지 순서를 따라 불게 된다. 첫 번째는 ‘테키아’(tekiah) 라고 하는데 한 번 길게 뽑는 소리이다. 두 번째는 ‘쉐바림’(shevarim)이라고 하는데 고통에 울부짖는 듯한 구슬픈 소리로 짧게 세번 분다. 세 번째는 ‘테루아’(teru'ah)라 하는데 날카롭게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최소한 9번 분다. 이렇게 부는 나팔이 순서가 있는데 테니아, 쉐바림, 테루아를 함께 불고, 테키아 세 번, 테키아, 쉐바림, 테키아 세 번, 테키아, 테루아, 테키아 세 번이다. 마지막에 부는 테키아는 특별히 길게 부는데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언급된 메시아의 도래를 소망하는 촛불을 켜게 된다(사27:13). 이런 순서로 불리는 양각 나팔 소리는 각각의 기도에 따라 불게 되는데 하구에 100번이나 반복되었다. 시대가 지나면서 이 나팔 소리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붙여지게 되었다. 테키아는 시대의 위험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경고하는 것으로(삿 7:19, 스 33:3), 쉐바림은 예배자를 둘러싸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상기하는 것으로, 테루아는 사람이 자신의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세상의 악과 더불어 전쟁을 하기 위해 부르는 것으로(렘 4:19), 마지막으로 부는 테키아는 오실 메시아를 위하여 그자신이 그해에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출 19:16절에 근거하여 나팔 수리가 울릴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더불어 말씀하시고 율법을 주신 것과 같은 드라마틱한 계시를 주시는 때를 상징한다. 시 98:6에 근거하여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재확인하는 나팔 소리가 된다.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할 때에 그 대관식을 축하하는 양각 나팔이 울리어 졌던 것과 같이 그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기뻐하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창 22장의 사건에 근거하여 아브라함과 이삭이 자신의 생명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한 사건을 되새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전쟁 때에도 그들의 움직임과 멈춤을 예해 주던 것이 바로 이 양각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양각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살피고 회개하며 “네가 너디에 있느냐?”하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런 의미들과 함께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속사의 의미를 담은 나팔 소리는 사 27:13과 레25:9, 10에 그 표현된 메시야의 도래와 희년을 알리는 나팔 소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팔절은 우리의 구속사에 중요한 시작, 주님의 완전한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날을 의미한다. 성전 벽의 남서쪽 모퉁이에는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 장소가 있었다. 나팔절이 되어 이곳으로부터 예루살렘 온 성과 예루살렘 성전에 각처로부터 모인 순례객들에게 들려오는 제사장의 나팔 소리는 메시야가 도래하시는 때에 이스라엘에게 있을 영광스러운 구원의 날을 선포하는 소리였다.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 소리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홀연히 구름 타고 임재하시는 날에 대한 사도 바울의 기다림은 이러한 나팔절의 연상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 해의 첫 날, 새로운 해의 시작, 그 나팔 소리, 그것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시작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우리에게 웅변처럼 말해 주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로쉬 하샤나는 세 가지의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첫째는 말쿠욧트(malkuyot) 세상과 인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왕권, 둘째는 지크로놋트(zikhronot) 세상을 돌보시며 우리의 선악간의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세 번째는 쇼파롯트(shofarot) 시내산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계시와 모는 세상에서 최종적인 구원을 되새기는 것이다.
나팔절/새해/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이스라엘의 명절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것 가운데 하나가 나팔절이다. “칠 월에 이르러는 그 달 초일일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민수기 29:1)의 말씀에 따라 성회로 모이고 나팔을 부는 것에서 이름되어 졌다. 이 나팔절은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로는 ‘해의 첫날’, ‘해의 머리’ ‘해의 시작’ 등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로쉬하샤나“라고 부른다.
먼저 이스라엘의 달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대인들은 태음력에 따라 만든 유대력을 철저하게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음력을 사용하는 나라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그 가운데 이스라엘 만큼 음력에 따른 유대력을 철저하게 지키는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이스라엘에서 태양력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일상생활의 편리를 위해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 명절, 기념일은 유대력에 따라 지키고 있어서 이 모든 날들이 양력으로는 해마다 날자가 다르다. 예를들면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독립을 했는데 이 독립 기념일을 매년 양력 5월 14일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1948년의 음력에 따른 그 날을 기념하여 지키고 있다. 나팔절을 비롯한 성경의 모든 절기들을 이스라엘이 지키고 있는데 모두 음력에 따른 유대력에 맞추어 지키고 있다.
이 나팔절은 우리고 말하면 새해의 설날(구정)과 같다. 이스라엘의 설날은 유대력의 7월 1일이다. 이스라엘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양력을 기록한 달력이 있지만 1월 1일 즉 신정(新定)은 유대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신정에는 모든 관공서를 비롯한 학교, 은행등 모든 직장에서 정상근무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신정과 구정의 구별은 없다. 유대력의 모든 달은 이름이 붙여져 있다. 유대력 7월은 ‘티슈리’(Tishri), 그리고 1월은 ‘니싼’(Nissan)이라 부른다. 이스라엘에서는 정월달이 1월이 아니고 새해를 맞이하는 7월이 되는 샘이다. 이 말은 아람어 ‘쉐레이’(sherei) ‘시작’이라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정월달에는 명절이 컸었는데 이스라엘에서 정월달에 해당하는 7월 즉 티쉬리월에는 명절이 많다. 이달 1-2일은 로쉬 하샤나 즉 설날이고 10일은 대속죄일, 15-21일 일주일은 초막절, 22일은 시므카 토라라는 명절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대학교에서는 아예 학기를 이러한 명절이 모두 끝난 뒤에 시작하기도 한다.
이 나팔절 즉 새해의 설날은 이스라엘의 유대인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모든 유대인들이 개혁파를 제외하고 이틀에 걸쳐서 지키고 있다. 개혁파 유대인들은 하루만 지킨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이 나팔절은 하루를 지키도록 한 것 같다(레 23:24,25). 그러나 오늘날 이틀에 걸쳐서 나팔절을 지키는 것은 만일 하루만 지키게 되면 달의 시작을 알리는 초생달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려고 하는 열정의결과로 후대에 만들어진 관습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이 7월 티슈리월의 첫날을 설날로 지키는 것은 7이라는 숫자의 중요성과 가을에 농사의 끝과 우기의 시작과 관련이 깊고 특히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이 때에 하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식탁을 안식일과 같이 차려지고 사과 꿀이 준비되어 진다. 이는 달콤한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이고 사과를 꿀에 찍으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새해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어떤 공동체에서는 사다리 모양의 빵을 굽기도 하는데 이는 새해에 삶이 오르내리는 것을 상징하고 때로는 둥그런 모양으로 굽기도 한다. 가끔 단 열매를 넣기도 한다. 이 기간에 호두는 먹지 않는다. 히브리어로 후두인 “에고즈”라는 낱말의 숫자의 합이 (17)이 “죄”를 의미하는 “해트”라는 낱말의 숫자인 17과 같기 때문이다. 설날(로쉬하샤나) 전날에는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가 7:19) 말씀을 상기하는 의식을 갖는다. 이 의식을 “타슐리크(던진다는 뜻)”라고 한다. 즉 깊은 바다에 죄를 던진다는 뜻이다. 바닷물이나 흐르는 물에 가서 죄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만일 흐르는 물이 없을 경우에는 우물에서 행하기도 한다. 현대 예루살렘의 종교인들은 실로암에 가서 이 “타슐리크” 의식을 행하고 있다.
로쉬 하샤나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 동안에 셀리홋(selihot) 라는 회개의 기도를 한다. 또 돌아가신 부모님의 무덤을 돌아보기도 하는데 이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 분들이 살았을 때 보여주었던 좋았던 인식을 상기하며. 의인의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회당에서 주로 읽는 성경구절은 첫째 날에는 본문으로 창세기 21장 하프타라로서 사무엘상 1:1-2:10, 둘째날에는 창세기 22장 하프타라, 예레미야 31:2-20이며, 그리고 이틀동안 마프티르로써 민수기 29:1-6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팔절이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으나 나팔절이 고대시대에 지켜지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나팔절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의해서 지켜지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느헤미야 8장). 나팔은 짐승의 뿔로 만드는데 정결한 짐승들 양, 염소, 산양 등이며 소의 뿔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금송아지를 섬겼던 동물이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수양의 뿔로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에 수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산양의 뿔이 많이 사용되는 것은 산양의 뿔이 길고 멋있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팔은 반드시 나팔절에만 부는 것은 아니다. 매달 초하루, 보름과 다른 절기 때 또는 특별한 날로 여겨 축하를 해야하는 때에도 나팔을 분다(시 81:3). 만일 로쉬 하샤나가 안식일에 시작이 되면 첫날에는 나팔을 불지 않고 둘째날에 분다.
로쉬 하샤나에서 가장 극적인 의식은 나팔을 부는 것이다. 토라가 읽혀진 후 토라가 궤로 돌려지기 전에 시편 47편이 암송되어진다. 나팔을 부는 사람은 대개 흰색 가운을 입는다. 회중 가운데 존경받는 사람이부는데 대개는 랍비들이 분다.
성경에는 나팔을 부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민 10:10). 이 날에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의 왕권을 상징하여 그의 권위를 나타내며 인간을 심판하시는 것을 의미한다(시 96:13, 98:9, 시 95: -- 100:). 이러한 개념은 고대국가 특히 바벨론에서 왕이 출현할 때에 나팔을 불어 알리는 장엄한 모습과 로쉬 하샤나로부터 대속죄일 까지 열흘 동안 “참회의 기간”을 선포하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날이 물론 기쁘고 즐거운 절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다른 절기와 다른 점은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으로 삼기 때문에 오히려 경건한 자세가 요청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또 하나님께 대하여 혹시 잘못된 것이 있는지 말씀을 통하여 점검하고 살피는 것이다. 새해에 대하여 이렇게 규정을 하는 것은 새해를 맞이하는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와 다른 점이라 하겠다.
이 날에 나팔을 부는 것은 기본적인 3가지 순서를 따라 불게 된다. 첫 번째는 ‘테키아’(tekiah) 라고 하는데 한 번 길게 뽑는 소리이다. 두 번째는 ‘쉐바림’(shevarim)이라고 하는데 고통에 울부짖는 듯한 구슬픈 소리로 짧게 세번 분다. 세 번째는 ‘테루아’(teru'ah)라 하는데 날카롭게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최소한 9번 분다. 이렇게 부는 나팔이 순서가 있는데 테니아, 쉐바림, 테루아를 함께 불고, 테키아 세 번, 테키아, 쉐바림, 테키아 세 번, 테키아, 테루아, 테키아 세 번이다. 마지막에 부는 테키아는 특별히 길게 부는데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언급된 메시아의 도래를 소망하는 촛불을 켜게 된다(사27:13). 이런 순서로 불리는 양각 나팔 소리는 각각의 기도에 따라 불게 되는데 하구에 100번이나 반복되었다. 시대가 지나면서 이 나팔 소리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붙여지게 되었다. 테키아는 시대의 위험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경고하는 것으로(삿 7:19, 스 33:3), 쉐바림은 예배자를 둘러싸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상기하는 것으로, 테루아는 사람이 자신의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세상의 악과 더불어 전쟁을 하기 위해 부르는 것으로(렘 4:19), 마지막으로 부는 테키아는 오실 메시아를 위하여 그자신이 그해에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출 19:16절에 근거하여 나팔 수리가 울릴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더불어 말씀하시고 율법을 주신 것과 같은 드라마틱한 계시를 주시는 때를 상징한다. 시 98:6에 근거하여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재확인하는 나팔 소리가 된다.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할 때에 그 대관식을 축하하는 양각 나팔이 울리어 졌던 것과 같이 그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기뻐하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창 22장의 사건에 근거하여 아브라함과 이삭이 자신의 생명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한 사건을 되새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전쟁 때에도 그들의 움직임과 멈춤을 예해 주던 것이 바로 이 양각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양각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살피고 회개하며 “네가 너디에 있느냐?”하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런 의미들과 함께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속사의 의미를 담은 나팔 소리는 사 27:13과 레25:9, 10에 그 표현된 메시야의 도래와 희년을 알리는 나팔 소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팔절은 우리의 구속사에 중요한 시작, 주님의 완전한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날을 의미한다. 성전 벽의 남서쪽 모퉁이에는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 장소가 있었다. 나팔절이 되어 이곳으로부터 예루살렘 온 성과 예루살렘 성전에 각처로부터 모인 순례객들에게 들려오는 제사장의 나팔 소리는 메시야가 도래하시는 때에 이스라엘에게 있을 영광스러운 구원의 날을 선포하는 소리였다.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 소리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홀연히 구름 타고 임재하시는 날에 대한 사도 바울의 기다림은 이러한 나팔절의 연상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 해의 첫 날, 새로운 해의 시작, 그 나팔 소리, 그것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시작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우리에게 웅변처럼 말해 주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로쉬 하샤나는 세 가지의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첫째는 말쿠욧트(malkuyot) 세상과 인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왕권, 둘째는 지크로놋트(zikhronot) 세상을 돌보시며 우리의 선악간의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세 번째는 쇼파롯트(shofarot) 시내산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계시와 모는 세상에서 최종적인 구원을 되새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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