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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자료

[[기독자료] ]족보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11.05.13|조회수240 목록 댓글 0
족보

유대인들의 족보란 다음과 같은 다양한 기능과 가치를 갖고 있다.
1) 가계가 지닌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기능
2) 법적, 정치적 혈통성을 확인시켜주는 기능
3) 성직에 합당한 자격을 부여해 주는 종교적인 기능, 예를 들면 제사장 직분을 가진 레위족속이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성경에 족보가 중요시 되는 것은 기업(유업)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이다.
그런데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족보가 현저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줄곧 지적하여왔다.
이 족보의 차이점에 대해서 많은 학설과 많은 견해가 분분하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며 오류는 있을 수 없다.
이 두 가지 족보에 대한 차이점을 살펴 보자.

1. 마태복음은 요셉의 아버지를 '야곱-맛단-엘르아살-엘르옷'(마1:15-16)으로, 누가복음은 '헬리-맛닷-레위-멜기-안나'(눅3:23-24)로 제시하고 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시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16)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 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눅3:23)

즉 예수의 호적상 아버지이며,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의 족보부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차이가 나고 있다.
그 차이점에 대해서는 두가지 견해가 가장 보편적이며 정설로 알려져 있다.

(1) 수혼법
이 문제는 이미 각 교회들에서 신명기 25장 5,6절에 나오는 수혼법(嫂婚法) 때문이라는 학설이 일반적이다.

수혼법이란 한 사람이 후사가 없이 죽게되면, 죽은 남편의 형제가 죽은 형의 아내를 취하여 그 후사를 이어주는 이스라엘의 제도를 말한다. 이때 대신 낳은 바된 그 아이는 죽은 사람의 자녀로 법적으로 인정되게 된다.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신25:5)

요셉의 출생도 이와같은 과정속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하고 있으므로 혈통적인 것보다는 법적인 것을 더욱 중요시하는데 비하여, 누가는 예수님을 인자로 묘사함으로 혈통적인 족보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래서 마태는 혈통적인 아버지가 아닌 법적인 아버지인 후사없이 죽은 '야곱'의 이름을 족보에 기록하였으며 누가는 요셉의 혈통적 아버지인 실제로 요셉을 낳은 '헬리'를 쓰고 있는 것이다.

(2) 요셉과 마리아의 족보
또 다른 학설은 마태복음이 예수님의 부친 요셉을 통해서, 누가복음은 마리아를 통하여 그의 족보를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눅3:23의 “사람들의 아는대로”라는 구절이 예수와 요셉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성경본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요셉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낳다”는 단어로 “겐나오”를 사용하였는데, 본래적인 의미로 아버지계열을 따르는 단어이며, 누가복음에서의 “이상”이라고 되어있는 단어는 “호”라는 관사로서 원문에서는 구체적인 의미는 없다.

즉 마태복음은 “낳다”라고 기록되어있는데 반하여, 누가복음은 그냥 순서대로 족보를 나열해 가는 것으로서, 마태복음은 실제적인 혈통을, 누가복음은 합법적인 형통을 기록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즉 누가복음은 예수를 낳은 사람이 요셉이 아니고 마리아이므로, 마리아의 혈통적 족보를 명시하였다는 것이다.

2. 족보에 대한 차이점
# 역대상과 마태복음의 차이점
“그 아들은 아사요, 그 아들은 여호사밧이요, 그 아들은 요람이요, 그 아들은 아하시야요, 그 아들은 요아스요, 그 아들은 아마샤요, 그 아들은 아사랴요, 그 아들은 요담이요, 그 아들은 아하스요, 그 아들은 히스기야요, 그 아들은 므낫세요”(역대상3:10-13)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마1:8-9)

마태복음과 역대상에도 차이점이 있는데, 역대상에 기록된 요람 - 아하시야 - 요아스 - 아마샤 - 아사랴 - 요담 - 아하스의 계통이 마태복음에서는 요람 - 웃시야 - 요담 - 아하스 로서 역대상의 기록 중 중간에 있는 아하시야, 요하스, 아마샤가 생략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또 마태복음에서는 역대상에 있는 여호야김도 생략되어있다.

▶ 저자의 의도적인 관점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마1:1)로 시작된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42대의 족보를 열거하면서 14대씩 세 번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대, 포로다음부터 예수님까지 14대(마1:17)로 나누어서 마태 나름대로의 의도적인 계산을 넣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대를 맞추기 위해, 역대상 3장에 나타나 있는 왕의 족보의 세 왕, 즉 아하시아, 요아스, 아마샤등을 빼버린 것이다. 마태는 족보를 “요인열거주의”에 입각하여, 의도적으로 14대를 맞추기 위하여 정리를 한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 1장 11절에서도 여호야김을 빼놓고도, 마태는 모든 대수가 14대씩 세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족보를 정확히 세어보면, 모두 41대 밖에 안됨에도 불구하고, 마태는 42대로 계산하여 말하고 있다.

수학과 계산이 밝은 세리 출신인 마태가 계산을 못해서였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족보를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14대요"(마1:17)라고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즉 마태의 설명과 같이, 다윗의 이름을 두 번씩 의도적으로 계산하여, 42대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매우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마태는 다윗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은 이름으로 숫자를 푸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예를 들면 666), 놀랍게도 다윗이라는 히브리어 자모의 수치를 세어보면 14가 되어, 다윗의 자손으로 14 대를 맞추기 위하여 왕들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생략하였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여기서 마태가 강조한 다윗은, 왕중왕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시89:3-4)

누가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담까지 77명의 인물을 언급하고, 마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42명의 인물을 언급한다.
누가는 이 인물을 7명씩 묶어 11개 그룹으로 서술하며, 마태는 14명씩 묶어 3개의 그룹으로 서술하고 있다.

14 란 숫자는 다윗의 이름의 숫자의 합으로 메시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누가는 완전숫자 7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대부분 역대상의 족보를 따르고 있지만, 그 족보를 의도적으로 14로 묶다보니 몇명은 생략하게 되는 것이다.

즉 마태는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을 묘사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의미는 다윗왕의 자손인 메시야, 언약의 상속자인 아브라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는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안에 들어있는 예수, 즉 인자(Son of God)이신 예수를 강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의 족보를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마태와 누가는 각자 단순히 예수님의 역사적인 족보를 별도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마태와 누가를 통하여 예수의 인성과 신성(메시야), 즉 기독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누가복음의 경우는, 유대의 묵시사상에서 세계를 11 주간으로 나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12 주간에 메시야가 도래한다고 믿는다.

누가는 7명씩 11대로 나눈 것은 유대인의 묵시사상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추측되어진다.
다만, 역대상의 아사랴와 마태복음의 웃시야는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름이 다른 동일인물이다. (왕하15:1-7, 15:32-34, 대상3:12, 대하26:1, 사1:1)

3. 다윗왕 이후의 마태와 누가의 차이점
마태와 누가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차이점이 없이 족보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런데 다윗 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족보를 쓰고있다.
마태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으로부터 남방 유다 왕들의 족보 13명(다윗부터 여고냐전까지 14대)을 쓰고 있는 반면에, 누가는 다윗의 셋째 아들인 나단으로부터 넬리까지 유다왕의 족보가 아닌 나단의 후손 19명의 전혀 다른 족보를 쓰고 있다.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1:6)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그 이상은 이새요....”(눅3:31-32)

▶ 마태와 누가의 족보에는 계시적 의미가 있다.
마태는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예수님을 왕의 혈통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누가는 예수님을 인자(사람)로 나타내기 때문에, 다윗 다음에 왕통을 이어받은 솔로몬이 아닌 평범한 사람인 다윗의 아들 나단의 혈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대상3:5)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삼하5:14)

즉, 예수님은 인간의 혈통과도 무관하게 태어나셨지만, 성경에 예언된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흉내내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구약의 메시아의 왕통 족보와 인간적 혈통의 족보를 상세하게 예언하셨고 밝혀놓으신 것이다.
요컨대 마태가 솔로몬의 왕의 계통을 기록한 것에 비하여, 누가가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제외하고 나단의 족보를 적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의도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욱 생각하게 하는 것은 부도덕한 기록을 가진 다말의 기록이며 그가 예수님의 족보를 잇고 있다는 것이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마1:3)

즉, 예수님의 족보에는 사실 전개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마태와 누가의 족보 차이를 족보를 맞추어서 풀려고 한다면 불가능할 뿐이며, 저자가 족보를 그렇게 기록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유다는 상속자를 얻을 목적으로 셀라를 다말에게 주겠노라 서약을 하고도 이행치 않아서, 다말은 시부를 속이고 창녀인체 가장하여 유다와 동침을 한다.(창38:12-15)
유다는 다말이 잉태한 아기의 아비인 것과 혈통을 이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그녀가 자기보다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창38:16-26)

유다의 가문은 베레스와 세라가 출생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들로부터 유다 지파의 주요 가문들이 생겨났다.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장남부터 넷째 아들까지 모두 불미스러운 죄를 범하고 말았다. 르우벤과 유다는 근친 상간 죄를 범했고 시므온과 레위는 살인죄를 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족장들이었고 레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나왔고 유다로부터는 이스라엘의 왕들과 메시야가 나왔다.

따라서 그들은 회개의 본 보기가 되었고 또 죄사함의 자비를 얻은 기념비적인 인물들이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 마태의 족보에 들어간 네 여인.
당시의 유대인들의 족보에는 여인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마태의 기록에는 여자들이 4명이 기록되고 있는데(다말, 라합, 룻, 우리야), 그것도 이방인의 여자들과 불륜한 여인들이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의 차별이 없으며, 나그네나 이방인들의 차별이 없으며, 남녀의 차이도 없는 “만인에게” 구원의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비천한 혈통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더욱 낮아지시는 인간의 모습으로서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 족보에 나타난 하늘의 섭리 - 스알디엘과 스룹바벨 -
다윗 이후에는 두 족보가 서로 다른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단지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에서는 일치한다.
그런데 역대상 3장 10절부터의 다윗 왕조 족보를 살펴보면 스알디엘의 아버지는 여고냐이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도 달라진다.

마태: 여고냐 - 스알디엘 - 스룹바벨 - 아비훗
누가: 네리 - 스알디엘 - 스룹바벨 - 레사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족보이지만, 역대상의 족보를 자세히 보면, 여고냐는 일곱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스알디엘, 말기람, 브다야, 세낫살, 여가먀, 호사륵, 느다뱌이다.
여기서 장남은 스알디엘인데, 놀랍게도 스룹바벨은 장남의 아들이 아니라 셋째인 브다야의 아들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대상3:19).

스룹바벨은 브다야의 아들인데, 마태의 족보에는 스알디엘이 스룹바벨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스알디엘이 자식이 없이 죽어서, 수혼법에 의하여 브다야가 스알디엘의 미망인을 취하여 스룹바벨을 낳음으로서 그가 스룹바벨의 친아버지일 가능성이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유다의 왕가의 법적 정통성을 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다윗  - 솔로몬... 여고냐 까지의 왕들을 나열하고 있다.
여고냐는 여호야긴의 이름이다.(대상3:16-17, 에2:6, 렘24:1)
그런데 여고냐의 다음대는 스알디엘인데, 스알디엘이 과연 여호야긴(여고냐, 고니야)의 아들인가에도 회의적이다.  
예례미야는 여호야긴이 무자(無子)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렘 22:30)

그러한 왕가는 바벨론 포로기간 중에 스알디엘에게로 넘어간다.
만일 여호야긴이 아들을 낳지 못했다면, 스알디엘은 누구인가? 이러한 연속되는 의문은 누가복음의 족보 3:27에서 풀린다.

마태: 여고냐 - 스알디엘 - 스룹바벨 - 아비훗
누가: 네리 - 스알디엘 - 스룹바벨 - 레사

네리의 아들이 스알디엘이라고 누가복음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알디엘은 여호야긴의 양자인 것이고, 대상3:17-18의 7명의 여호야긴의 아들도 모두 양자일 것이다.
이러한 추리가 맞다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는 다윗 이후에 갈라진 것이 아니라, 스룹바벨 이후로 내려와야만 한다.

그런데 스룹바벨에 대해서도 살펴보면.....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로 대통을 이어 받는데(스 3:2 8, 느 12:1) 대상 3:19에는 브다야의 아들로 되어 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스3:2),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요 스룹바벨의 아들은 므술람과 하나냐와 그 매제 슬로밋과”(대상3:19)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수혼법을 통해 이 비밀을 이해할 수 있다.

스알디엘은 아들이 없었는데 장남이기 때문에 법을 따라 그 장남의 법통을 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 동생 브다야가 아들이 없이 죽은 스알디엘의 아내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스룹바벨이며, 마태는 그리스도를 왕의 계통으로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법적인 관계를 중시하여 호적상의 법적 아버지인 스알디엘을 스룹바벨의 아버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는 말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사실상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없었던 스룹바벨은 힘으로나 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의 도우심으로 그 혈통을 법적으로 잇게 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계시적 표현인 것이다.

▶ 누가복음의 차이점
노아-셈-아박삿-가이난-살라-헤버-벨렉-르우-스룩-나홀-데라-아브라함(눅3:34-36)
셈-아르박삿-셀라-에벨-벨렉-르우-스룩-나홀-데라-아브람(창 11:10-20)
셈-아르박삿-셀라-에벨-벨렉-르우-스룩-나홀-데라-아브람(대상 1:17-27)

유독 누가복음에만 아르박삿(아박삿)과 살라(셀라) 사이에 '가이난'이 들어있다. 이 사람은 어찌 누가복음에만 들어 있을까? 어찌된 사람이기에 갑자기 등장했을까?

(눅3:37의 가이난은 창5:10의 게난으로서 에노스의 아들이며 동명이인)

가이난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주전 280년경에 헬라어로 번역되었다고 알려진 [70인 역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다(눅 1:3)는 누가복음은 이것을 참조했음이라고 보여지며, 70인 역본과 거의 동시대로 추정되는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외경 [요벨서] 8장에 이러한 글귀가 있다.

"아르박삿의 아들 가이난은 성장하여 도시로 나가 점성술사의 가르침을 받고, 일월성신의 징조로 점을 쳐서 죄를 범하였다..... 가이난은 셀라를 낳았고, 가이난의 아우 게세대는 에벨을 낳았다."

외경이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문제가 되지만, 적어도 가이난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신앙의 계보에서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여도, 없앴으면 그만이지 어찌 창세기에도 역대기에도 없는 사람을 누가복음에 등장시켰을까?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은 가이난도 예수님을 통하면 사해질 수 있다는 말일까? 예수님의 인간적이며 육적인 족보는 이와 같은 죄인들이 많았음으로 낮고 천한 족보에서 태어났음을 강조하려는 것일까?

맨 처음 글에서 잠깐 언급하였듯이, 유대인들에게 족보란 법적, 정치적, 종교적인 혈통을 증거하여주는 것이 되어진다. 마태와 누가는 각각 다른 관점에서 예수의 족보를 기록하였다.
마태와 누가의 족보를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이며 왕이신 신분임을 증거하는 한편, 예수께서는 낮고 낮은 죄인의 모습인 인간의 아들로 오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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