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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자료

[[기독자료] ]토라의 내용 요약들?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11.05.18|조회수825 목록 댓글 0
토라의 내용 요약들?

강사 : 조제현 목사
기독교 교육의 5W 와 H

I. WHO
기독교 교육뿐만이 아닌 모든 교육에서는 두 가지의 WHO가 있습니다
A. 교육을 받는 대상
교육에 있어서는 우선 교육을 받는 대상을 이해하며 그 학생의 필요한 점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다르게 또한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교육자는 교육받는 학생들을 동일하다 생각하면 안됩니다.
학생들은 서로 성격, 인체, 연령, 성별, 정신, 가정, 환경적으로 차이가 있기에 그 차이를 무시하면 교육에 직접적인 차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마다 교육방식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 교육학의 연구에 의하면 학생들은 크게 세가지 종류의 배우는 스타일이 있다고 합니다. (KINETIC LEARNER, AUDITORY LEARNER, VISUAL LEARNER).

좀더 쉬운 설명을 위해 학생들에게 나무에 대한 교육을 한다고 예들 들겠습니다.
i. AUDITORY LEARNER 이 학생은 교육자가 나무에 대한 정보를 강의해서 듣고 받아 적을 때 최고의 교육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AUDITORY란 청각을 뜻하며 이 학생의 배우는 스타일은 들을 때 좋은 효과를 얻는다 합니다.

ii. VISUAL LEARNER 이 학생은 교육자가 나무사진들을 보여주며 강의 할 때 최고의 교육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VISUAL이란 시각을 뜻하며 이 학생은 눈으로 봐야 더 잘 배우는 스타일입니다.

iii. KINETIC LEARNER 이 학생은 교육자가 직접 나무를 보여주며 만지게 해주며 냄새를 맡게 할 때 최고의 교육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KINETIC이란 운동적인 활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학생은 가만이 앉아서 강의를 듣는 스타일 보다는 직접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움직여야 더 잘 배우는 스타일입니다.

무자비하게 한 방식으로 모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교육자가 학생들을 더욱더 많이 알아가면서 그 학생에 알맞은 교육(Custom Education)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대하시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맡겨진 학생들을 단체적이지 않은 개인적으로 대한다면 힘들겠지만 그만큼의 또한 열매도 있을 것 입니다.

B.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자
교육을 받은 대상들이 다 다르다면 그 대상을 가르치는 교육자는 다 같습니까? 그 답도 위와 같습니다. 교육자들조차도 서로가 다 다릅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특이한 성격, 배경, 교육방식은 교육을 일정한 색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다양하고 풍부하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자라도 학생들은 많은 교육자 밑에 있는 것이 더욱 더 큰 효과를 봅니다.

또한 교육자는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주관적(SUBJECTIVE)인면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경험했던 교육을 기반으로 교육방식을 선정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어느 방식으로 최고의 효율을 얻었다면 자신의 기준에서는 그 방식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러다 보면 교육을 넓게 펼치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만 우기게 됩니다. 교육방식에 있어서 그 교육자는 객관적(OBJECTIVE)이지 못해 포괄적인 교육을 추진 못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차피 각 사람에게 맡겨진 은사가 있습니다. 그 은사를 더욱 더 깊이 전문적까지 발달 시키는 것도 교육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것 입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며 완벽할 수조차도 없다 생각합니다.

교육자로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발전 및 학생의 발전에 더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잘하는 교육방식을 더 다지고 자신이 약한 부분은 더욱 보충하는 배우는 자의 자세로 교육을 한다면 그 교육자는 크게 쓰여질 것입니다.

II. WHAT
우리가 믿는 것과 또 가르쳐야 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정보전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 무조건 많다고 그 사람이 하나님과 풍성한 관계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지식적인 연구를 하는 모든 신학자들은 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누려야 할 것 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신학자들 중 무신론자들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대한 정보가 많이 전달되지만 그분과의 관계가 전달 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사귈 때 상대방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정보만 가진다고 해서 그 관계가 당연히 설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하기에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것이지 더 많이 알기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목표는 관계이지 정보전달이 아닙니다.

III. WHERE
기독교 교육을 현재 실시하는 장소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을 무조건 교회에다 맡기십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그 자녀가 얼마나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느냐는 것입니다. 평균 주일학교 학생들이 교회에서 교육받는 시간은 예배시간과 공과시간을 포함해서 1시간에서 1시간 반입니다. 그것에 비해 그 학생이 교회 외에서 보내는 시간은 훨씬 더 많습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 교육이 주일날 주일학교에서만 이루어 진다면 그것은 일주일에 아이에게 한끼만 먹이듯 아이를 영적인 영양실조를 걸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정보전달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이들이 교회라는 빌딩을 떠난 후에도 계속 이어져야 하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든 곳에서 간접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곳에 계시듯 기독교 교육도 교회라는 빌딩 안에서만 해서는 안됩니다.

유태인들은 오래 전부터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집에서 맡아 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자신의 자녀의 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주일학교 선생님과 보내는 시간보다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교회보다는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라도 기독교 교육의 현장은 교회가 아닌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11장19절에서는 신앙을 자녀에게 부모가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좋은 신앙을 가진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진 부모보다 더 좋은 신앙 교육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반대로 자신이 받아드리지 않는 신앙을 아이들한테는 권하는 부모보다 더 좋지 않은 신앙 교육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을 때 우리를 스폰지처럼 만드셨고 우리의 환경과 우리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관계들로 통해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좋던 나쁘던 우리는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는 가정이야 말로 기독교 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할 것이며 그 가정의 책임자인 부모야 말로 기독교 교육의 책임을 꼭 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IV.WHEN
기독교 교육을 간접적으로가 아닌 직접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시간은 주로 주일 예배시간과 공과시간입니다. 학생들은 그 시간에 생활 속의 하나님이 아닌 예배와 말씀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시간조차도 길지 않고 짧기에 우리는 그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짧은 시간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그만큼 교육자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 오래 준비하고 더 많이 준비할수록 주어진 그 짧은 시간도 귀하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이 기회이기에 교육자는 더욱 큰 부담을 가지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르친 내용이 얼마나 오랫동안 학생의 삶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기독교 교육의 목표가 정보전달이 아닌 이상 우리는 양에 치우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양보다는 질이 중요합니다. 솔직이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교육자는 어떻게 하면 가르치는 내용이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이 되고 그것이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로 연결되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V. WHY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고 그로 인하여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될 자를 만드는데 있습니다. (딤후 2:15, 3:17) 교육의 목표는 교육만이 목표가 아니라 무엇을 교육하냐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교육에서도 전해지는 매체나 방식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전해질 내용입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점은 기독교 교육이 종교 교육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 시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할 때부터 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돼서이지 지식을 쌓아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 시킬 수 있는 복음을 가르치려고 교육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 때문에 기독교 교육을 합니다. 복음 때문에 다시 살았기에 복음만이 그 기회를 주기에 복음을 더 전하기 위하여 우리는 기독교 교육을 해야 합니다..

VI. HOW
1. 성령님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육의 세계에만 익숙한 우리가 영적인 세계관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지혜와 상식으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없고 또한 말해준다 해도 그 학생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대한 것들을 이해시키게 해주는 역할은 성령님의 몫이지 우리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며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는 것들을 오직 성령님께서만이 보여주실 수 있다 하셨습니다.(고전 2장9~10절)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교육에서는 기도가 우선 순위이자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께 매달리며 가르치는 우리에게 이해를 더해달라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학생에게도 성령님이 깨달음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 입니다. 성령님 없이는 기독교 교육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2. 사랑 예수님께서는 사랑이 있는 자들이 제자로서의 조건을 갖춘다 하셨습니다.(요13장35절) 하지만 그 사랑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사랑이 아니라 원수를 포옹할 수 있던 사랑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이 아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겸손한 사랑이었습니다. 섬기는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인간의 종이 되셔서 무릎을 꿇으시고 발을 씻으신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교육자로서 베푸는 자세가 아닌 섬기는 자세로 학생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한국이란 환경에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선 어른이 섬김을 받고 또 어른이 베풉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사가 되었을 때도 베푸는 입장에서 윗사람으로서 어린 학생들을 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르치려는 것은 한국문화가 아닌 성경문화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종으로서 남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핵심 부분 중에 하나이기에 우리는 섬기는 종으로서 남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싸워서라도 우리의 삶 속에 베어진 한국 문화와 싸워서라도 우리는 학생들 앞에서 종으로 서야지 그들의 윗사람으로 서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우리 학생들을 섬기는 자세로 사랑하며 가르칠 때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있을 것은 저는 너무도 확신합니다.

3. 선교사 정신 선교지에 나간 선교사들은 그 선교지의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또 최대한 그 문화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들이 복음을 이해하기 쉬울까 하며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들은 그 선교지의 옷을 입고 음식을 먹으며 그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로 무장한 상태에서 그들은 사역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선교사일수록 더 많은 성과를 얻는 것을 우린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교육 대상인 학생들에게도 선교지에 나간 선교사의 정신으로 사역을 한다면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세계는 우리가 여태껏 살아왔던 세상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예전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난 네가 겪고 있는 것을 이미 다 겪었단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러기에 또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자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세상은 정보화시대의 초고속 속도의 변화로 인해 우리가 자라왔던 세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젠 부모들도 자녀들이 현재 자라고 있는 환경을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른과 아이들의 세대차이는 최근 들어서 너무나도 멀어졌습니다. 같은 나라에 있고 같은 나라말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학생들은 꼭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처럼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의 교육에 있어선 선교사가 타지에서 타 문화를 배워가며 복음을 전하듯 우리도 같은 정신으로 아이들의 문화를 배워가며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아닌 선교사로서 우리 학생들을 대할 때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확신 합니다.

하나님앞에 서 있는 인간(인간론)

강사: 정대열 강도사

* 신론의 부분인 창조에서 인간이 다루어지는 이유는 ;
1> 인간은 창조의 면류관 - 모든 창조가 인간을 위함
2> 신학의 인간학과 일반학의 인간학은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를 가진다. 그 차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인간을 보는 면에서이다.

* 칼빈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사람을 알지 못하고 사람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헬라어의 γινοσκω(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히브리적인 ???(인격적,전인적)이다. 즉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실존적인 이해)

참된 인간 이해는 객관적인 전제하에 주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예를들면 사람이 사람을 보기 위해서는 객관적 전제인 빛이 있어야 한다. 빛이 있는 가운데 주관적으로 사람을 바로 볼 수 있다. 인간이해도 마찬가지이다. 바른 인간이해를 위해서는 인간 이상의 객관적인 전제인 하나님을 안 후에야 인간을 주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간을 알 수 없고 인간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결국, 인간론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함이다.?

*중심주제: 하나님은 인간과의 교제를 통해 영광을 받기를 원하신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절)

1. 창조된 인간
1)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 창조의 면류관으로서의 인간
→ 피조적 인격으로서의 인간: 교제, 경배, 순종
→ 창조세계에 대한 대리인으로서의 임무 :청지기 신앙(창1:27-28)

2) 조건 - 인간의 위치를 지킬때만 가능하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 선악과 사건의 의미 → 우상 숭배:창조주와 피조물의 위치를 바꿈(롬1:23)

2.타락한 인간
1) 반역의 결과 : 죽음, 분리(창2:17)-먹는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육체의 죽음
→영혼의 죽음(엡2:1)
→영원한 죽음(생명과 복의 근원과의 단절):화병의 꽃

①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기능 상실)
→지.정.의 왜곡(롬3:11-18)
→하나님과의 교제 상실(진노의 하나님: 공포의 대상)
→이웃과의 관계 왜곡: 도피하는 자(가인의 도피)

② 세상에게(인간타락으로 초래된 환경 악화)
→ 창조 세계의 망가짐 :저주 상태(창3:17-19)
→ 환경 파괴 예) 죽음, 질병, 고통, 기형아

2) 반역의 결과: 죄의 지배
① 죄의 전가(대표성의 원리):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고, 예수안에서 모든사람이 산다(고전 15:21)

② 율법의 기능: 인간의 죄악됨과 무능함을 폭로
→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절대 필요

3. 회복된 인간
1) 죄의 대속(atonement):
① 값을 지불함(상업적 용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소유 이전)
→성령의 인침(소유권 확인)

② 화목제물 되심(하나님과의 연합)
→ 육체의 연합(고전6:19-20)
→ 영혼의 연합
→ 영원한 연합(계21:2-3)- 복과 영광의 최상 상태

2)은혜의 지배
① 불신자들에 대해 열려진 구원의 길
→ 복음화의 사명(마28:19-20)

②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의 확실한 구원
→ 성도의 견인(롬5:21)

③ 은혜의 지배를 받는자들이 세상을 다스림(롬5:17)
→ 문화명령(창1:28)

십계명

강사 : 최정명목사

십계명 서언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2)”

십계명을 이스라엘 헌법이라고 한다면, 이 말씀은 헌법의 전문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을 주기에 앞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밝혀준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다.
2. 십계명의 서언은 하나님의 이름을 밝혀준다. 우리들이 ‘여호와’(Jehovah)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의 원래 히브리어 발음은 ‘야웨’(Yahweh)이다.
3.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구원의 하나님이다.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스라엘 신앙의 첫 번째 원칙은 절대적 신앙이다. 이 원칙은 이스라엘 신앙의 기반이요 지주이다. 유일신 신앙이 흔들린다면 이스라엘 신앙은 완전히 와해되어 버리고 만다.

구약의 율법 규정은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에게 대해서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처벌을 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는 언제나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열려져 있었다. 하나는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죽음으로 이끄는 길이었다.
제1계명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와 하나님만 따르고 순종하는 길은 생명과 축복의 길이요, 다른 신을 따르는 길은 죽음과 멸망에 이르는 길이었다.

제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1.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이방신이든 ‘다른 신’의 신상을 만들거나 그것을 섬겨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신상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즉 여호와의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이사야40:18)

하나님만이 절대적인 존재이다. 모든 피조물들은 상대적인 존재요, 상대적인 가치밖에 없다. 이러한 상대적인 존재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시키는 것,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상숭배이다.

제3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십계명 중에서도 그 뜻을 분명히 알기 가장 어려운 계명이 제3계명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1. 유대인들의 해석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 왔다.
“너희는 내 이름을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레위기19:12)

2. 다른 중요한 해석은 ‘저주’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 즉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거나 남용, 오용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도용, 남용, 오용하는 자를 죄없다 아니하리라”(출20:7,신5:11)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며 거룩히 지키라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오늘날까지 엄격하게 준수되고 있는 안식일은 유대인들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성일이다.
제4계명에 있어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의 기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출애굽기 20:11)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신명기 5:14)

기독교회에서는 어떻게 한 주간에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는가?
안식일은 “시간의 칠일조”이다. 나의 생명은 시간의 연장이요,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시간의 7분의 1을 바침으로 나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요, 생명과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날이 안식일이다. 기독교인들이 지키는 ‘주일’은 이러한 안식일의 정신과 함께,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주님을 영접하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고 소망하는 날이다.
성수 주일할 수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이요, 특권이다.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구약신앙에서 볼 때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불경은 곧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불경이 된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부모에게 범한 죄는 하나님께 범한 죄와 같은 형벌로 대단히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21:15).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애굽기21:17, 레위기20:9)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일까?
1. 부모의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
2. 부모에 대하여 감사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3. 나이 들어 생산적인 활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부모를 모시는 일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은 자식들에게만 주는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동시에 부모에게 향한 말씀도 된다. 즉 공경을 받을 수 있는 부모로서의 책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제6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생명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것이다.
구약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죽이는 경우를 3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1. 전투와 전쟁이다.
2. 사형의 경우이다.
3. 개인적인 살인의 경우이다. 고의로 죽인 고살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오살을 엄격히 구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6계명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계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6계명을 심화시켜 새롭게 해석하였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계명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게 대하여 라가(욕설)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21-22)

제7계명
‘간음하지 말지니라’

제7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의 순결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구별되는 점이 있어야 했다. 성의 순결은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이라는 징표 가운데 하나였다.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라” (레위기20:22-27)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제7계명의 말씀을 밖으로 나타난 행동의 차원에서 더욱 깊은 내면적인 차원으로 심화시켰다.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5:27-28)

음란한 세대를 살아야 했던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니라”(골로새서3:2-6)

또한 그가 로마에 있던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은 오늘날 문란하고 방종한 세상 가운데서 성민답게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제8계명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도적질은 경제질서를 파괴하고 사회의 기강을 깨뜨리는 사회적인 범죄이다. 그러므로 어느 사회나 절도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구약에서 도적질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더욱 깊은 신학적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
도적질이란 일하지 않고 부당하게 불로소득하는 행위이다. 즉, 다른 사람이 애써서 이루어 놓은 노력의 결과를 훔치는 일이다. 이러한 행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일’이란 본래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하는 것이다.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도적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에 대해 그들과는 관계없는 계명이라고 간과하기 쉽다. 물론 의도적으로 남의 것을 훔치는 기독교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훔치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언자 말라기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책망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이스라엘)는 나의 것(=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겠나이까 하는도다“ (말라기 3:8)

말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책망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도적질했다는 말씀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십일조와 헌물(offering)이었다.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헌물을 드리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

제9계명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구약의 규정을 보면, 한 사람의 단독증인은 증인으로서 인정되지 않았다. 증언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명 이상 증인의 증언이 필요하였다.

“사람의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증할 것이라”(신명기 19:15).

잠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 일곱 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거짓된) 증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언 6:16-19).

거짓을 말하는 거짓 증인은 하나님께서 증오하시고 징벌하신다(잠언19:5,9).

거짓 증거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형벌에도 불구하고 위증의 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사회에서는 거짓 증거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상세한 규정들이 제정되었다.

1. 두 사람 이상의 증인들은 서로가 증언의 내용을 알 수 없도록 단독적으로 증언해야 한다.
2. 증인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고 서로 상충될 때, 증언은 모두 무효가 된다.
3. 증인은 증언과 관련하여 어떠한 형태의 보상도 받을 수 없다.
4. 다음의 사람들은 증인이 될 수 없다. 즉, 사건과 관련하여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 피고인의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 피고인과 원한이 있거나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것은 제9계명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동시에,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에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것 역시 정의의 실현을 막는 행위이요, 제9계명에 저촉되는 것이다.

제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제7계명(간음하지 말지니라)과 제8계명(도적질하지 말지니라)은 남의 것을 탐내어 빼앗고 훔치는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10계명은 한걸음 더 깊이 나아가서 이러한 불의한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내면의 탐욕과 탐심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불의한 행동의 뿌리가 되는 탐욕적인 동기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다.

탐욕과 탐심은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악의 시발점이 된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물리치라고 경고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리라”(눅12:15).

탐욕을 금지한 제10계명은 물질에 대한 절대적인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생존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물질의 소유는 필요하다.

신론

강사 : 최강전 강도사

인간의 최고선은 하나님이시오 하나님뿐이시다. 동물이나 식물은 기본적으로 땅의 것을 소망하고 땅을 의지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의 사색과 생의 노력속에서 땅에서나 전 세계에서 결코 만족할 수 없는 피조물임을 분명히 해준다.

1.하나님의 존재증명
1)성경적 증명

2)합리적 유신논증
가.본체론적 논증
나.우주론적 논증
다.목적론적 논증
라.도덕적 논증

3)일반계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선천적- 인간은 누구든지 절대자에 대하여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을 가리켜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 혹은 종교성이라고 한다.(행17:22)
*후천적 - 일반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이해한다.

4)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성경적 태도
가.전제로부터 출발한다(창1:1)
나.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음으로 출발한다(히11:6)
다.영적으로 거듭나면 알수있다(요3:3)
라.성경에 계시된 만큼만 알수있다(신29:29)

2.하나님에 대한 지식
1)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도 없다 (p.6)
대낮에 땅위를 내려다보거나 혹은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물건들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아주 강하고 예리한 시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태양을 똑바로 응시한다면 태양광선의 광채 때문에 눈이 부셔 혼미해져서 지상의 사물들을 보는 것이 무뎌진다. 우리가 우리의 의, 지혜, 능력에 만족을 느끼면서, 이 세상 넘어를 보지 않는한, 우리는 스스로를 극단적으로 추켜 올려서 자신을 反神으로 여길 것이다. 우리가 가장 완전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하나님의 순수성에서 볼 때 불완전한 것이다.

2)하나님의 위엄 앞에의 인간
인간은 하나님의 임재를 모를 때는 굳건히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죽음의 공포에 의해 전율하고 경악하여 비참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위엄과 자신을 비교해 보기 전에는 결코 자신의 비천함을 자각하고 깊이 감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삿13:22, 사6:5, 겔2:1, 1:28)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다.
“그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나니...”(사24:23)라고 말한다. 그가 빛을 발하실 때 이전에는 가장 빛이 나던 것들도 그 앞에서는 캄캄하게 될 것이다.

3)하나님을 아는 지식
영생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곧 보냄을 입은자를 아는데 있다. (요17:1-3)
예수께서 여기서 명백하게 말씀하신 지식은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 근본과 대상이나 ,그 본질과 효과면에서 피조물들의 지식과 다르다.

첫째, 피조물들의 지식과 다른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있다. 확실히 다른 모든 지식들은 이성에 의한 통찰력과 판단력으로 그리고 우리자신의 연구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유일하신 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아버지를 아셨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인간에게 계시하셨고 이를 위해 육체가 되시고 땅위에 나타내심으로서 참된 그분을 알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길에 대한 지식에 무관심하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셨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대상에 있어서 다른 모든 지식들과 구별된다. 다른 모든 지식들은 우리시대에 무엇보다도 그 영역이 아주 넓어졌더라도 피조물들 주위를 빙빙 돌고 유한의 것에 제한되어 무한의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서 얻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미미하고 애매하며 거짓과 혼합되고, 게다가 가치가 없다. 이는 자연으로부터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고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으니 세계는 하나님을 계시하면서도 감추인 바 되었기 때문이다. (롬1:20-23)

셋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정보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직관으로의 지식이라 하겠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개인적으로 직접 보고 통찰한 것이다. 그분은 자연가운데, 말씀가운데, 섬김가운데 처처에서 보았다. 누구보다더 그분을 사랑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무엇에든지 순종하셨다. 예수께서 주신 지식은 그분의 삶과 관련이 있는 그런 지식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그렇게 이해한다면 그 열매와 그 행사가 필연 영생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식이 생명이 된다. 자연의 영역에서도 생명의 심오함과 부요함은 지식에 의해서 증가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부요한 삶은 최대의 것을 아는자의 삶이 다. 사상가나 시인들에 비해서 소박한 삶은 얼마나 빈약하고 제한적인가? 그러나 삶 자체가 그런차이에 의해서 변화를 받지는 않는다. 모두 죽는다.
보이는것들에 대한 지식도 생을 부요케 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얼마나 삶을 소생케 하는가? 하나님은 죽음과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생명과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3.명칭
1)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칭
엘로힘 : 하나님은 강하시고 권능있는 분으로 두려움을 줄 수 있는 대상임을 강조한다(우주의 창조자, 통치자)
엘리욘 : 존귀한자 즉 숭고하 존귀와 예배의 대상으로 하나님의 가장 높으심을 찬미하도록 직접적으로 주의를 시켜주는 이름이다.
아도나이 : 일반적으로 주(LORD)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은 전 인류의 소유자 이시며 통치자라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이름이다(주, 전능하신 통치자)
여호와 :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영존자, 불변자(출3:14) 하나님의 불변성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으며 그 말씀을 이행하는데 성실하시다

2)신약
하나님(θεο?) : 구약에서는 국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신약에서는 “나의 하나님”하므로 개인적인 의미를 더 강조한다
주(κυριο?) : 구약의 아도나이에 가까운 표현.

4.속성
하나님만이 가지신 성품(비공유적 속성) : to be
1)주권성(롬11:36) - 창조주, 역사주, 심판주
2)영원성(사44:6)
3)전지성(사40:12-14)
4)편재성(렘23:24)
5)전능성(시147:5)
6)불변성(시102:27) - 존재와 속성의 불변(약1:17), 작정,사상,의지, 목적,언약의 불변성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가진 성품(공유적속성) : to do
1)인자(롬5:8)
2)성실(딛1:2)
3)의로움(신32:4)

5.삼위일체
1)구약의 증거
가.복수명사와 복수대명사 : 창1:26-27, 창11:7
나.하나 이상의 수 : 사48:16
다.여호와의 천사 : 창16:7-13
라.성령의 인격성 : 사40:13

2)신약의 증거
가.하나님의 유일성 : 요10:30, 엡4:6
나.성부,성자,성령이 다 하나님이시다. 성부/고전8:6, 성자/롬9:5, 성령/행5:3-4
다.삼위가 동열로 기록되어있다.
수세시에 : 마3:16,17 / 제자파송시에 : 마28:19 / 성탄예고시 : 눅1:35
축도시에 : 고후13:13

3)교리적진술
가.일정한 순서가 있다. 1.성부-고전8:6 2.성자-롬9:5 3.성령-행5:3-4
나.서로다른구별이 있다.

참고도서 :
헤르만바빙크, 김영규역, 하나님의 큰일 (서울 : CLC )
어거스틴, 김종홉역, 삼위일체론 (서울 : 크리스쳔다이제스트)
일대일제자양육훈련, 하나님의 속성편 (서울 : 두란노)

신약성경의 배경에 대한 이해

강사 : 주성준 목사

1. 신약의 역사적 배경
1. 마카비 전 시대(페르시아,헬라,애굽,시리아 지배 시대)
1) 메디아 페르시아의 유대 지배 기간(주전 536년-331년)
* 페르시아는 앗수르나 바벨론과는 달리 피정복 국민을 자치 형식을 통해 통치했다.
*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한 후에 유대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귀환령을 내렸으며, 이로 인해 유대 민족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게 되었다.
* 이 때는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활동한 시대였다.
* 이 때에 유다 지방에 살던 혼열족인 사마리아인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2) 헬라 제국의 유대 통치 기간(알렉산더-주전 336-323년)
*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정복(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오 3세를 물리치고 광대한 영토를 가진 헬라 제국을 건설함. 그러나 왕이 된 지 14년 만에 바벨론에서 죽음(323년)

* 알렉산더 사후
알렉산더의 부하 장군 4명이 헬라 제국의 영토를 나누어 차지함.
카산더(마게도냐, 헬라), 리시마쿠스(동북부의 트리키아), 톨레미(이집트), 셀류코스(시리아)

* 알렉산더의 헬라화 정책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통치기간 동안 나라를 잃기는 했으나 문화적인 동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페르시아인 보다 나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가 유대를 통치한 때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알렉산더 대왕은 가는 곳마다 지혜를 강조하였으며, 그 곳에 헬라주의의 문화를 심으려고 했다. 헬라는 교육을 통해 인도주의 문화를 건설했으며, 유대인들에게도 헬라화를 강요했다. 또한 그들은 제우스를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러므로 수많은 유대인들은 헬라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3) 톨레미(애굽)의 유대 통치(주전 323-198년)
* 애굽을 통치했던 톨레미 왕가가 유대를 주전 323년부터 198년까지 통치함.

4) 셀류코스(시리아)의 유대 통치(주전 198-165년)
* 주전 198년에 애굽의 톨레미 왕가가 통치하던 유대는 시리아의 셀류코스 왕가에게 넘어가게 됨.

* 안디오쿠스 4세의 본격적인 유대인 박해 정책(주전 175-163년)
a. 성직 매매: 종신직인 대 제사장 직을 매매함
원래 율법을 준수하는 경건한 오니아스가 대제사장이었으나, 헬라화를 지지하는 그 동생 야손이 안티오쿠스에게 돈을 주고 대 제사장 직을 샀다. 그리고 3년 뒤에는 더 많은 돈을 낸 메넬라우스에게 대 제사장 직이 넘어갔다. 이로인해 성전은 시리아에 의해 마음대로 약탈당하게 되었다.

b. 유대인 박해 정책
* 유대인의 율법 준수를 금하고, 제단에 희생 드리는 일과 절기 준수를 금지함. 그리고 이를 거역하는 자는 반역죄로 간주하여 처형함.
* 성전 제단에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제단에 돼지를 제물로 드리게 함
* 애굽과의 1, 2차 전쟁(주전 169, 168년)에서 패한 후에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을 약탈함. 그러나 로마 장군인 포필리우스가 철수를 지시하였다. 그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대에 헬라화를 강요하였으며, 자신을 "에피파네스"(현저한 자)라 불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를 조롱하여 "에피마네스"(미친 자)라고 불렀다.

2. 마카비 시대(주전 166-139년)
1) 제사장 맛다디아의 봉기
경건한 유대인들('하시딤')은 안티오쿠스 4세의 정책에 반대하여, 목숨을 걸고 율법을 준수하려고 했다. 어느 날 하스모니아라고 하는 집의 가장이었던 마타디아가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리던 자를 죽이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광야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경건한 자들이 이 세력에 연합하여 우상을 제거하고 배교한 유대인들을 척결했다. 후에 마타디아는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2) 유다 마카베오(166-160년)
마타디아의 아들인 유다 마카베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대를 인도함. 그는 시리아 요새를 점령하였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탈환하였다. 그리하여 주전 164년 12월 25일에 제단에 제사를 다시 드릴 수 있게 됨. 시리아는 이들을 공격하였으나, 왕의 후견인인 루시아가 철수 명령을 내림으로 공격이 중단됨. 이로 인해 유다는 다시 율법을 준수할 수 있게 됨. 마카베오는 돈을 주고 대제사장직을 산 메넬라우스를 제거하였다. 그러자 시리아 왕 데메트리우스 1세가 또 다시 헬라화를 지지하는 알키무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헬라화를 지지하기는 했지만 아론의 자손이었기 때문에 경건한 사람들('하시딤')은 자기들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헬라에 항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 마카베오는 정치적인 독립을 얻어야 진정한 종교적인 독립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시리아에 항거하였다. 그는 주전 160년에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하였으며, 헬라화를 지지하던 대제사장 알키무스도 주전 160년 말에 죽고 대제사장직은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3) 요나단 마카베오(주전 160-142년)
마카베오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인 요나단 마카베오가 그 뒤를 이었다(주전 160-142년). 요나단은 데메트리우스 1세와 정적이었던 알렉산더 발라스를 지지하였는데, 결국 왕권 다툼은 알렉산더 발라스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 발라스는 자신을 지지해 준 요나단 마카베오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였고, 공석이었던 대제사장직까지 겸임하게 해 주었다(주전 153년). 그러나 경건한 사람들('하시딤')은 많은 피를 흘린 요나단이 대제사장이 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마카베오 가문과 멀어지게 되었다.

4) 시몬 마카베오(주전 142-134년)
그러나 자칭 안디오쿠스 4세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가 일어나서 알렉산더 발라스를 몰아내고 다시 왕권을 탈취하였으며, 그는 자신을 데메트리우스 2세라고 불렀다. 후에 데메트리우스 2세는 안티오쿠스 6세와 다시 세력 다툼을 하게되었다. 이때에 안티오쿠스 6세를 지지하던 트리포라는 자가 데메트리우스 2세를 지지하던 요나단 마카베오를 죽여버렸다(주전 142년). 요나단의 뒤를 이은 사람은 그 동생인 시몬 마카베오였다(142-134년). 시몬은 유다 군대의 총 사령관과 대제사장직을 겸하였다. 그는 마침내 시리아 군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주전 142년). 그리고 시리아에 더 이상 세금을 내지 않았으며, 나라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유대 백성들은 유대의 통치권을 시몬의 가문에 세습시킬 것을 결의했다(주전 140년). 그 이후 그의 후손들은 왕위를 세습하게 되었으며, 하스모니안 왕가라 불리우게 되었다. 이는 시리아에 가장 먼저 항거한 마타디아의 아버지 하스몬의 이름을 따른 것이었다.

3. 하스모니안 왕국
1) 요한 힐카누스 1세(134-104)
시몬이 사위(톨레미)에 의해 살해된 후, 그 뒤를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 1세가 계승함. 지배권 확장-그리심 산의 성전을 파괴하고 사마리아인들의 성지를 빼앗았다.
바리새인과의 갈등 지속: 아론의 자손이 아니면서 대제사장 직을 맡음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이 지속됨.
바리새인들은 정치, 군사적인 일에 손을 끊고, 율법 연구와 적용 시키는 일에 있다.
사두개파 시조: 바리새인들이 돌아선 것을 본 요한은 그들의 지지를 요구하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주의적인 정치를 추구하였으며, 헬라주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이러한 제사장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후에 사두개파를 형성하게 된다.

2) 아리스토 불루스 1세(주전 104-103년)
요한 힐카누스는 자기가 죽은 후에 그의 부인이 통치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아리스토 불루스가 자기 어머니를 몰아내고 세 명의 동생들을 감금시켰다. 그리고 자기 형제인 안티고누스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그는 최초로 왕의 칭호를 사용했다.

3) 알렉산더 얀네우스(주전 103-76년)
아리스토 블루스가 죽게되자, 그의 아내인 알렉산드라 살로메는 감옥에 갇혔던 형제들을 풀어주고, 첫째 형제인 알렉산더 얀네우스를 왕으로 삼고 그의 아내가 되었다.

4) 알렉산드라 살로메(주전 76-67년)
얀네우스는 죽으면서 바리새인들과 화해할 것을 당부하였다. 유대는 그의 아내인 살로메에 의해서 9년간 다스려졌다. 그녀는 남편의 유언을 따라 바리새인들은 다시 산헤드린의 회원으로 세웠다. 이로 인해 바리새인들은 산헤드린을 통해서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이 정책을 반대하였고, 살로메의 둘째 아들이었던 아리스토 불루스 2세가 이 반대 세력에 앞장섰다.

5) 아리스토 블루스 2세(주전 67-63년)
살로메가 죽게되자 장남인 힐카누스 2세를 왕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차자인 아리스토 불루스 2세가 그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그러나 안티파텔이라는 사람이 힐카누스를 지지하여 그에게 왕위를 주기 위해서 다메섹의 아레타스 왕과 함께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

하 스 몬
|
마타디아
+---------------+---------------+
유다 마카베오 요나단 마카베오 시몬 마카베오
(166-160) (160-143) (143-134)
+-----------┴--------+ * 사마리아 성지 파괴
유 다 요한 힐카누스 1세(134-104)* 바리새인과의 갈등
| * 사두개파 시초
+---------------+--------+* 모친, 형제를 축출하고 왕이 됨
| 안티고누스(살해됨) | 살로메-남편이 죽자, 투옥된 형제를 풀어줌.
알렉산드라-----------아리스토불루스 1세
살로메 (104-103) 알렉산더 얀네우스(103-76) | * 남편의 사후, 투옥된 형제들을 석방하고 알렉산더와 결혼하고 그를 왕으로 ? 추대함
알렉산더 얀네우스(103-76)-----(76-67) 알렉산드라 살로메+
?* 얀네우스 사후 9년간 통치-바리새인과의 화해정책
+-----------------+----+ 바리새인과 화해정책 반대
힐카누스 2세(63-40) 아리스토블루스 2세(67-63)(차남)
* 로마에 도움 요청(폼페이)|(장남) |* 힐카누스2세 제거-왕이 됨
* 유대가 로마 속국이 됨 +----------+----------+
* 손녀를 헤롯과 결혼시킴 | |
알렉산드라-------------알렉산더 안티고누스 2세
|* 시이저와의 싸움에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지지-왕이 됨.
| * 힐카누스 2세와 안티파텔은 시이저 지지-축출됨 (40-37)
+-----------+---------+
아리스토불루스 3세 | 안티파텔(이두메아인)
| |
마리암네 1세------------------헤 롯(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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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아리스토 불루스

<하스모니안 왕가>

4. 로마 지배하의 팔레스타인
1) 힐카누스 2세(주전 63-40년)-로마의 속국이 됨
이때에 로마의 폼페이는 마침내 시리아를 정복하는데 성공했으며, 따라서 로마는 세계 최대의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차남이 왕이 된 것에 불만을 품은 힐카누스 2세는 로마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그 결과 주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게 되었다. 폼페이는 로마를 반대하던 아리스토 불루스 2세를 제거하고 그의 형인 힐카누스 2세를 왕위에 올려놓았다. 그 결과 유다는 로마의 속국이 되어 로마에 조공을 드리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후에 폼페이는 또 다시 줄리어스 시이저와 정권을 다투게 되었는데, 이때에 힐카누스 2세와 헤롯의 부친이었던 안티파텔이 시이저를 지지하였다. 결국 이 전쟁은 시이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시이저는 자기를 지지해 준 힐카누스 2세를 유다의 분봉왕으로 삼았으며, 안티파텔을 유다의 태수로 임명했다. 그리고 안티파텔은 자기의 두 아들 중 파사엘에게는 예루살렘을, 헤롯에게는 갈릴리를 통치하게 하였다. 시이저는 주전 44년에 암살을 당했다. 그리고 힐카누스 가의 잔을 맡은 자가 주전 43년에 동료인 안티파텔을 독살함으로 힐카누스 가문과 안티파텔 가문 사이가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후에 힐카누스 2세가 자신의 손녀 마리암네를 헤롯과 결혼을 시킴으로 이 두 가문은 사돈간이 되었다.

2) 안티고누스 2세(주전 40-37년)
주전 40년에 카시우스가 시리아를 점령하였으나, 카시우스는 다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에게 참패를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후에 시이저를 지지하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힐카누스 2세의 귀를 잘라 바벨론으로 추방해 버렸으며, 안티파텔의 아들인 파사엘은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을 지지해 준 안티고누스 2세를 왕으로 세웠다.

3) 헤롯 대왕(주전 37-4년)
이때에 헤롯은 로마로 도망을 하였고, 후에 그는 로마의 도움을 받아 유다의 왕이 되었다. 이로써 약 100여년간의 하스모니안 통치가 종결되었다. 헤롯은 이두메아인(에돔인)으로서 머리가 비상한 책략가였고, 잔인한 독재자였다. 그는 주전 31년까지는 안토니우스를 지지하였으나 옥타비아누스가 정권 다툼에서 승리하게 되자 그에게 찾아가서 왕관을 벗어들고 자신을 처벌해 달라고 자청하였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는 헤롯을 용서하고 그에게 왕관을 씌워 주었다.

가. 통치 초기
권력 기반 마련을 위한 피의 숙청- 자신의 세력을 굳히기 위해 왕족인 아내와 장모, 동서, 그리고 힐카누스 2세까지 처형시킴.

나. 통치 중기-건축 사업-
수많은 건축 공사를 함. 그는 황제 신전, 극장, 경기장, 체육관, 목욕탕, 그리고 새 도시를 건축하였으며, 예루살렘을 그리스-로마식으로 바꾸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였으며(주전 20-주후 63년), 사마리아를 재건하여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그 이름을 따서 세바스테라 불렀고, 가이사랴에 항구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요새와 왕궁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그는 헬라주의자들만 요직에 앉힘으로 바리새인들의 반발을 샀다.

다. 통치 말기
자기의 아들을 모두 죽임(주전 7년). 주전 4년에 여리고에서 죽음을 당함. 마태는 바로 이 헤롯 때에 아기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하였다(마 2:1).

라. 헤롯의 아들과 손자들
헤롯이 죽은 뒤에 그의 유언에 따라 유대 영토는 셋으로 분할되어 세 아들에게 나누어졌다. 그리하여 아켈라오는 팔레스틴의 남쪽 지역, 빌립은 북동쪽, 안디바는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을 다스리게 되었다.

가) 아켈라오(남쪽-폭정으로 폐위되고 총독이 통치하게 됨)
그는 분봉 왕이란 칭호를 가지고 팔레스틴의 남쪽 지역을 9년 동안 다스렸으며, 이 기간 동안 그는 잔인하고 권력에 대한 지나친 욕망으로 폭정을 하였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유대와 사마리아 대표들은 아구스도 황제를 찾아가 그의 잔인성과 권력욕을 고소하여 그의 파면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아구스도 황제는 그가 오랜 통치가 대규모의 반란을 야기시킬 것을 염려하여 6년에 그를 파면하고 추방하였다. 그 결과 6년에 그의 영토는 로마의 총독에게 돌려지게 되었다.

나) 빌립(북동쪽 지역)
그는 북동쪽 지역을 다스렸다. 그는 요단 동쪽 상류 지역에 파네이온을 재 설립, 확장하여 수도로 만들고 가이사 황제를 존경하는 뜻으로 "가이사랴"라고 불렀는데, 지중해 해안에 있는 또 하나의 "가이사랴"와 구분하기 위해서 이를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불렀다. 그는 중용을 취한 관대하고 정직한 통치자로 헤롯의 아들 가운데 가장 온순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애 중에 이 영토에서 적들에게 해를 입지 않고 안전하게 활동하실 수 있었다.

다) 안디바(갈릴리와 베뢰아)
그는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을 다스렸다. 신약 성경에 가장 잘 알려진 안디바는 헤롯의 아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충실한 아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여우"라고 부르셨다(눅 13:32). 그는 그의 아버지 헤롯 1세처럼 헬라 문화의 장려자이며, 위대한 건설가였다. 가장 유명한 전설은 갈릴리 바다 서해안에 있는 디베랴 도성이었다. 이것은 그가 황제 디베료(22년)를 기념하여 명명한 것이었다. 그는 아라비아 아레타스 왕의 딸인 나바티안과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후에 형제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반하여 청혼을 하였고, 결국 그는 본부인을 내어쫓고 형제의 아내를 빼앗아 재혼을 하게 되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그를 책망하다가 투옥되었다. 헤로디아는 왕의 생일에 전 남편인 빌립에게서 난 딸 살로메를 춤을 추게 하였다. 안디바는 그녀의 춤을 보고 너무 기뻐서 그녀에게 무엇이든지 요구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뜻밖에도 그 어미의 지시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이를 안디바가 승낙함으로 세례 요한은 죽임을 당했다(막 10:11).

자기 딸이 강제 이혼 당한 것에 분노를 느낀 아레스터 왕은 기회를 보다가 36년에 베뢰아 를 침공하여 안디바의 군대를 쳤다. 이에 39년에 안디바는 로마에 청원하여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로마로 갔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아그립바 1세(헤롯 1세가 죽인 아리스토 불루스의 아들)가 먼저 안디바의 부정을 로마에 고발하였고, 이로 인해 로마 황제는 안디바를 분봉왕 자리에서 내쫓았으며, 그 대신 아그립바 1세를 그 자리에 앉혔다.

라) 아그립바 1세와 아그립바 2세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를 죽였으며(행 12:1-3), 베드로를 체포하였고 초대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을 괴롭혔으며 44년에 죽었다. 그 뒤를 이어 17세밖에 안된 아그립바 2세(행 25장)가 즉위하였으며, 그의 연소함으로 인해 이때부터 이 지역은 로마의 영토나 다름없이 지배를 받았다. 66년에 이 지역에서 큰 반란이 일어났으나 70년까지 정권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70년 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마침내 예루살렘 성은 무너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성전을 중심으로 하던 유대교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안티파텔
|
헤롯
+---------+---------------+------------+---------------+
| ? (갈릴리, 베뢰아) | ? (남쪽유대) ? (북동쪽)
빌립 2세 헤롯 안디바 아리스토불루스 아켈라오스 빌립 1세
(막 6:17) (주전4-주후39년) (헤롯이 죽임) (주전4-주후6년) (주전4-주후34년)
(눅 3:1) | (마 2:22) (눅 3:1)
| +-------(재혼)---+---------------+ |
| +---------------+---------------+--------(결혼)------+
(결혼) 헤롯 아그립바 1세 37-44년(행 12:1) 헤로디아(막 6:17)
| | |
| +-----------+------------------+ 살로메-----+
| | |48-70년(행 25:13) | |
| 버니게(행 25:13) 헤롯 아그립바 2세 드루실라(행 24:24) |
|(로마 황제 디도, 베스파시안의 정부가 됨) (로마 총독 베스도의 아내가 됨)
+------------------------------------------------+

<헤롯 가의 족보>

5. 유대 전쟁과 바르 코흐바의 폭동
1) 유대 전쟁(66-73년)
유대인들은 로마 점령군의 안하무인격인 태도에 증오하게 되었다. 가이사랴에서 반 유대인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 유대인들은 로마군에게 진압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방관만 하고있었다. 지방 총독이었던 게시우스 플로루스(Gesius Florus)는 66년에 성전에서 17달란트를 강탈하였으며, 유대인들은 그를 조소하였다. 이에 격분한 총독은 가이사랴에서 2개 대대를 예루살렘으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폭도들에 의해 1개 대대는 흩어지고, 1개 대대만 안토니오 요새에서 저항하고 있었으며, 총독은 가이사랴로 후퇴하고 말았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드리던 황제에게 봉헌하는 제물을 중지시켰고 이를 말리려던 대제사장은 암살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시리아에 있던 로마 총독 제스티우스(Gestius)가 즉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해왔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유대인들에게 패배하고 시리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은 곧 닥쳐올 로마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젊은 사제인 요세푸스를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파견하여 전열을 정비하게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네로 황제는 가장 용맹한 베스파시안(Vespasian)을 지휘관으로 파견하였고, 그는 그의 아들인 티투스(Titus)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건너왔다. 베스파시안은 안디옥에서, 그리고 티투스는 이집트로부터 군대를 이끌고 왔다. 그들의 첫번째 공격 지역은 젊은 사제 요세푸스가 있었던 북부 지방인 갈릴리였다. 갈릴리의 유대인들은 47일간 항쟁하다가 마침내 무너지게 되었으며, 젊은 사제인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안이 장차 로마의 황제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는 로마 사령부에 머물면서 "유대 전쟁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혁명 당원(열심당)의 지도자인 요한네스는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고, 67년에 갈릴리 전체는 로마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는 요한네스와 기오라가 유대인의 군대를 이끌었으며, 전쟁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요단에 있는 페트라로 도망하였다. 69년에는 베스파시안이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로 돌아갔으며, 그의 아들인 티투스만 남아 전쟁을 지휘하였다. 마침내 티투스는 70년에 4개 군단과 강력한 지원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였다. 성전은 불에 타서 약탈을 당하였으며, 지도자인 요한네스와 기오라는 로마로 압송되었다. 끝까지 마사다에서 죽기로 항전하던 전사들도 마침내 73년(또는 74년 초)에 점령당하게 되었다. 전쟁 후에 황제 베스파시안은 유대를 사마리아에서 분리시켜 황제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따라서 로마 총독이 다시 가이사랴에서 집무하게 되었고, 이 곳에는 로마의 제 10군단이 상주하였다. 성전이 무너지게 되자, 이제는 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인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율법학자를 중심으로 한 회당이 유대인의 종교와 삶의 중심이 되었다. 그후 로마는 회당을 보호해 주었다. 얌니아에서는 사제와 장로들은 회원이 되지 못하였고, 율법 학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이 유대인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였다.

2) 바르 코흐바(별의 아들)의 폭동(132-135년)
하드리안 황제(117-138년)의 통치 때에 유대인들의 봉기가 또 일어났다. 하드리안은 130-131년에 동양을 여행하는 중에 예루살렘 성전 터에 쥬피터 신전을 세우고, 유대인들의 할례를 금지시키라는 지시를 하였다. 성소에 이방 신전을 세우고 할례를 금지 당한 유대인들은 분노하였다. 분노한 폭도들은 유대와 예루살렘을 기습하여 점령하여 성전에서 다시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새로 얻은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동전을 주조하고 이 해를 첫 해로 하는 새로운 기원을 세웠다. 이 폭동의 지도자는 당시에 존경을 받던 랍비 아키바(Aqiba)였는데, 유대인들은 그를 (민 24:27)에 예언된 약속된 '별의 아들'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해를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기독인들은 아키바를 메시야로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많은 기독인들이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로마군의 공격에 유대인들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아키바를 메시야로 보던 백성들은 점차 실망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로마군이 그들을 점령하였다. 이로 인해 성전에는 다시 쥬피터 신전이 세워졌고, 예루살렘에는 이방인들이 거주하고 유대인들의 출입이 중지되었다. 그들은 4세기에 이르러서 아브월(7-8월) 9일에 성전 가운데 남아있는 한 쪽 벽에서 통곡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폭동을 지지하던 수많은 율법학자들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며, 아키바는 처참하게 처형을 당했다. 그러나 이들의 장엄한 죽음은 유대인들을 다시 율법을 중심으로 뭉치게 만들었으며, 선조들의 신앙을 고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6. 1세기의 로마 제국의 정치
1) 아우구스투스(주전 2-주후 14년; 눅 2:1)
시이저는 권력을 잡는 데 성공한 후 독재 정치를 펴다가 갑자기 죽임을 당했다(주전 44년). 그리고 그 뒤에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여왕과 함께)와 옥타비아누스가 정권을 놓고 다투다가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승리를 하게 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권력을 장악 한 후에 자신에게 신의 칭호인 아우구스투스란 칭호를 붙였다. 그는 전쟁을 중지하고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정책을 펴서 온 제국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수많은 건축을 했으며 특히 곳곳마다 도로를 건설했다. 그리고 내적인 개혁도 감행해서 용기와 정의, 그리고 도덕과 교육을 진흥시키려 하였다. 이때에 로마는 윤리적으로 크게 부패해 있었다(롬 1;18-32)

2) 티베리우스(14-27년; 눅 3:1)
아우구스투스가 14년에 76세의 나이로 죽게 되자, 그의 양자로서 56세의 장군이며 정치가였던 티베리우스가 그 뒤를 이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질서 있는 행정을 계속 진행하였다. 이때에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었고(26-36년), 세례 요한이 등장하였으며(눅 3;1), 그리스도께서 유대에서 활동하다가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후에 다시 부활하셨다.

3) 칼리굴라(37-41)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어 불과 25세의 칼리굴라가 뒤를 이었다. 그는 방종한 생활과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일로 인해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였다. 그의 주위에는 온갖 부패한 정치가들이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때에 헤롯 아그립바 1세도 칼리굴라의 호의를 얻어 팔레스타인의 정권을 얻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 그의 입상을 세우려 하였으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짧은 기간에 많은 적을 만들었고, 결국 궁중혁명으로 인해 그의 통치는 끝나게 되었다(41년).

4) 클라우디우스(41-54년; 행 11:28; 행 18:2)
친위대는 칼리굴라의 숙부였던 클라디우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는 정직하였으며 양심에 따라 통치하였다.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정책을 따라 관용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폭동으로 인해 그는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행 18:2).

5) 네로(54-68년; 행 25:10-12, 27:24, 딤후 4:1-17)
그러나 그의 부인 아그립피나는 그를 독살하고 그의 아들인 네로를 황제의 자리에 앉혔다. 네로는 이때에 17세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철학자였던 세네카에 의해 그 직무가 대행되었다. 이때에 로마는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네로가 정치를 하게 되면서부터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도시를 불살랐다는 누명을 씌워서 박해하였다. 이때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누명을 쓰고 짐승의 밥이 되고, 불에 타서 죽임을 당했다.

6) 베스파시안(68-79년; 예루살렘성 멸망)
네로가 죽게 되자 스페인에서는 갈바가, 로마에서는 오토가, 그리고 독일에서는 비텔리우스가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이 모두 황제로 추대되지 못하게 되자, 이로 인해 로마는 새로운 내란의 위험이 직면했다. 바로 이때에 팔레스타인 원정에 참여했던 베스파시안이 그의 군대에 의해 새로운 황제로 추대되었다.

7) 티투스(79-81년):
베스파시안이 죽은 후에 황제의 자리는 그의 아들인 티투스에게 돌아갔다.

8) 도미티안(81-96년)-황제숭배 시작-
그리고 3년 뒤에는 다시 도미티안이 새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황제의 권력이 절대적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신성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96년에 그는 반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9) 네르바(97-98년)
도미티안의 뒤를 이은 황제는 네르바였다. 그는 스토아 사상에 의거하여 통치하려고 했다. 그는 스토아 정신을 따라 가장 선한 자가 통치를 하고, 그의 직무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따랐다.

10) 트라얀(98-117년)
네르바는 장군인 트라얀을 그의 양자로 삼았으며, 그가 네르바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트라얀은 인도주의적인 정치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11) 하드리안(118-138년; 132-135년 바르 코흐바의 폭동)
트라얀의 뒤를 이어 세계적인 군주로 알려진 하드리안이 황제가 되었다. 그는 할례를 금지하였고, 예루살렘에 주피터를 위한 신전을 세우도록 명령했다. 이러한 일은 유대인의 거센 반발로 이어졌으며 바르 코흐바의 지도 아래 반란으로 확대되었다.

12) 안토니우스 피우스(138-161년), 13) 아우렐리우스(161-180년)
항상 진리를 추구하였고 철학적인 문제에 몰두하였으며, 평화를 유지하고 제국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함. 스토아 철학에 의해 인도주의 정신을 가지고 그 이상에 충실해 보려고 노력했던 군주들은 아우렐리우스를 끝으로 단절되었다. 그 이후 로마는 항상 평화가 유지되지 못했고, 내외적인 충돌은 군사적인 개입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내적인 번영과 함께 헬라주의적-로마적 문화는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발전하였으며,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

* "황제 숭배에 대해서"
도미티안은 "황제숭배"를 이슈로 제기한 최초의 황제였다. 도미티안 이전에도 네로와 그의 후계자들은 교회를 크게 박해하였으나 그들의 박해는 로마에 인접한 지역에서만 시행되었다. 그러나 도미티안 황제 때에 이르러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로마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로마 공화정 말기와 로마 제국의 초기에는 사람들이 "로마의 정신"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로마가 세계에 평화와 정의를 가져다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였다. 그런데 이 "로마의 정신"이 후에는 "황제의 인격"을 숭배하는 데로 발전했다. 이때에 로마 제국은 영국에서 유브라데, 다뉴브 강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는 이 광대한 영토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통합의 원리로 "가이사 숭배사상" 즉 "황제 숭배사상"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다른 민족의 종교를 완전히 없애고 황제숭배를 절대신앙으로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로마는 단지 로마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1년에 한 번씩만 황제를 위해 소량의 향을 태우고 "가이사는 주님이시다!" 라고 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렇게 한 후에 얼마든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섬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황제 숭배가 아시아 지역에 파급되면서 유일신을 섬기는 교회와 충돌이 일어났다.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주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숭배와 황제를 주로 부르는 일을 거절하였다. 기독교인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하게 되자 로마 당국은 기독교인들을 불충한 백성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교회는 황제들에게 대대적인 박해를 받게 되었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했으며, 이러한 순교자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당시의 교회는 어느 정도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으나, 아직 로마의 질풍과 같은 대 박해를 견디기에 어려운 입장이었다. 그 당시 교회들 중에 일부 교회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주님께 충성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교회들은 세속화와 사치와 타락에 빠져서 영적인 힘을 완전히 상실하고 무능력한 교회가 되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한쪽으로는 열심히 주님께 충성하면서도 또 다른 한 쪽으로는 세상과 거짓 종교와 타협하고 주님께 대한 사랑을 잃고 영적, 윤리적으로 타락해가고 있었다. 요한 계시록은 바로 이렇게 대 박해 앞에서 신앙을 지켜가던 1세기의 아시아 교회들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2. 신약 성경의 종교적 배경
신구약 중간 시대의 세계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의 집성체였다. 여러 갈래의 강들이 모여 지중해로 흘러가듯이 로마의 피정복 민족들은 저마다의 문화를 로마에 제공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의 정치적인 지배 아래서의 다양한 사회적, 종교적 결합은 기독교 탄생을 위한 독특한 문화적인 배경을 산출하였다. 당시 세계는 유대교와 헬레니즘과 로마 제국주의 등 세 가지의 큰 문화 형태가 지배하고 있었다. 유대교는 기독교의 뿌리를 마련해 주었고, 헬레니즘은 기독교가 성장한 지적인 토양이었으며, 로마 제국주의는 기독교가 잘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반대로 이들은 기독교의 무서운 적이기도 했다. 유대교는 기독교를 유해한 이단으로 보았으며, 헬라인들은 기독교를 어리석은 종교로 보았고, 로마인들은 실용성 없는 나약한 종교로 생각했다. 이러한 기독교의 문화적 배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유대교이다.

1. 유대교
1)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의 기본 요소
가. 유일신 신앙
헬라 정신은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으려 하였고, 세계와 그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반대로 하나님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와 삶을 판단하려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뜻을 알리셨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며 자기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모든 일을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포로 시대 이후 하나님의 초월성을 보존하려고 했다. 그들은 주전 3세기부터 성경을 낭독할 때에 "야훼"라는 이름을 읽지 못하게 하고 "아도나이(주님)"란 말로 대신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에는 "야훼"를 "큐리오스"(주님)로 번역하였으며, 아람어로 번역할 때에는(탈굼) "야훼"를 "메므라"(말씀)로 번역하였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신들 중에 하나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따라서 대제사장은 제사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얼버무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였다. 일부는 이러한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세키나"(구름)나, 그의 "독사"(영광)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이나 음성을 통해서 자신의 택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지식의 근본으로 삼았으며(잠 1:7),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항상 가르쳤다(신 6:4-9).

나. 민족주의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장자"라고 부르셨다(출 4:22-23).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셨다.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일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민족을 향한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율법에 순종함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게 하려 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에만 머무르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스도 당시에는 두 개의 유명한 학파가 있었다. 하나는 샴마이 학파로서 율법의 모든 주제를 엄격하며 좁은 의미로 해석하며 가르쳤다. 샴마이는 헤롯 대왕 시절에 살았던 인물로 이교도들과 이방인들을 원수로 여겼다. 그의 학파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선민으로 생각하고 다른 모든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저주받은 민족으로 생각하는 극도의 민족주의 정신을 함양시켰다. 또 다른 학파는 힐렐 학파인데 힐렐은 바벨론 태생으로 이교도의 나라에서 살았다. 그는 뒤늦게 예루살렘에 왔는데 그의 정신에는 다소 이교도적인 요소들이 담겨져 있기도 했으며, 일반 율법사들에 비해 다소 온건한 입장을 지녔다. 그는 이방인들이 죄를 짓는 것은 그들이 죄를 짓기 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풍습을 따른 것뿐이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메시야 시대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교도들과 이방인들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한 선교 활동을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려면 유대교로 귀화해야 하며,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해야 했다. 힐렐에 따르면 악인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12달 동안만 고통을 받다가 그 후에는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진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허락된 여러 이유들로 아내와 이혼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생각을 하였다(당시에는 아내가 음식을 태웠다는 이유만으로도 이혼할 수 있었다). 힐렐은 사도행전 시대의 유명한 율법 선생이었던 가말리엘의 할아버지였다.

다. 율 법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을 연결해 주는 것은 율법, 즉 "토라"라고 생각했다. 토라는 "율법"보다 더 광범위한 용어로서 종교적 가르침, 계시 그리고 교훈까지를 포함한다. 이 용어는 시내 산에서 주어진 모든 계시를 말한다. 이 토라는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가) 전체 율법의 핵심적 부분인 십계명
나) 일반적으로 토라라고 부르는 모세 오경
다) 구약 전체 그들은 구약 전체를 거룩한 율법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 중에서도 모세 오경을 가장 중요시하였으며, 이 책은 장차 있을 세계에서도 유효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라) 구전 율법
이스엘은 율법을 변화하는 환경에 적용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으며, 이러한 노력이 신약에서 "조상(장로)들의 유전"(막 7:3-그들은 '미쉬나'를 이렇게 불렀다)이라고 부르는 구전 율법을 발전시키게 하였다. 이 구전 율법은 율법을 보호하는 "울타리"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면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노동"을 구전 율법에서 39가지로 규정해 주고 있다. 이 구전 율법의 목적은 주어진 율법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전 율법이 모세 때에 율법과 함께 하나님께 로 부터 주어진 것이며, 이 율법의 권위를 기록된 율법보다도 더 높이려는 사람도 있다.

* 구전의 발생과 발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스 7:6)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기로 결심한 자"(스 7:10)였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다(느 8:8). 그리하여 에스라의 뒤를 이은 서기관들은 율법의 해석을 통해 특별한 관습,의식,교훈을 연관시켰으며, 이것은 뒤에 랍비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 미드라쉬 >
랍비들은 문서화된 율법을 해석하고 응용했으며, 이를 통해 복잡한 생활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법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규례들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을 "다라쉬"(해석)라고 불렀으며, "미드라쉬"(주석)는 성문화된 본문에서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의미하였다. 이 미드라쉬에는 두 부분이 있었다.
* "할라카"(걷는다)는 시민법과 종교법에 관한 규례로 되어있다. 여기서는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율법을 따라 걸어갈 것인가(할라크)를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해서 할라카는 구약 성경의 율법을 해석한 일종의 주석으로서 유대교의 구전, 즉 성문화되지 아니한 율법이었다.
* "학가다"(말하다)는 율법과 관계없는 랍비 문학이다. 이는 구약의 설화를 발전시킨 것으로서 많은 전설과 민속문화들로 되어있다. 미드라쉬는 스룹바벨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는 랍비들의 관심사였으며, 그 이후로는 그들의 점유물이 되었다.

< 미쉬나 >
랍비들은 구전과 함께 성문화된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이 연구 과정, 즉 구전과 성문화된 율법을 반복하는 것을 "솨나"(암송)라고 불렀으며, 이것을 "미쉬나"라고 불렀다. 미쉬나란 "그 이전 세기들 동안에 랍비들이 토론하고 결정한 것들을 조직적, 즉 주제별로 분류하여 정리한 일종의 법전"이다. 미쉬나는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후에 요하난 벤 자카이와 얌미나에 있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후 2세기 초에 랍비 아키바는 할라카를 보다 치밀한 형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그의 제자인 랍비 메이어가 다시 세밀하게 정리하고 불분명한 부분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200 직후에 사망한 랍비 유다(족장)가 미쉬나의 마지막 교정본을 만들었다. 미쉬나는 주로 그의 업적의 결과였다. 현재 미쉬나는 주제에 따라 여섯 분야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분야는 많은 소책자(전체적으로 63개)로 구성되었다. 그 연대는 대략 200-230년으로 추정한다. 미쉬나는 구약 성경 다음으로 가는 유대 문학의 기본 작품이며 탈무드의 기초가 되었다.

< 탈무드 >
"탈무드"(배움)는 미쉬나로 구성된 편집물, 혹은 전통적인 율법을 인수한 것이다. 여기에 유대교의 학파들에게 제기된 토론과 전통들("게마라"="완성")이 추가되어 있다. 탈무드에는 "팔레스틴 탈무드"와 "바벨론 탈무드"의 두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탈무드라고 할 때에는 바벨론 탈무드를 말하며 이는 그 내용에 있어서 팔레스틴 탈무드보다 더 충실하다. 이것이 오늘날의 형태로 되기 위해서는 500년까지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들은 이러한 율법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것이며,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비록 메시야 시대에 새 율법이 주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는 하였지만, 그들에겐 이 율법은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2) 유대교의 분파들
가. 바리새파(초자연주의자)
바리새파는 하시딤(경건한 사람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그 뜻이 "분리자"란 말답게 대다수의 정치 종교적인 태도에서 분리되었다. 이들은 의식상 부정을 가져올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엄격하게 피했다. 제사의 정결 문제나 음식 먹는 법, 안식일 계명 등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하였다. 다니엘은 하시딤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들은 항상 소집단이었으며, 헤롯왕 시대에는 6,000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바리새파는 율법의 용감한 수호자로서 헬레니즘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의 율법은 613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248개는 긍정적이며 365개는 부정적인 것이다. 이것에 다른 많는 보조적인 명령들이 추가되었는데, 이 원칙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었다(안식일 조항만도 39개나 되었다.).

또한 이들은 기록된 토라, 즉 모세 오경과 마찬가지로 구전 토라, 즉 미쉬나(2세기경 랍비 유다 하나시가 편집함)도 똑같은 권위를 부여했다. 바리새파 안에는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샴마이 학파와 좀 더 부드럽게 해석하는 힐렐 학파가 있었다. 따라서 복음서 가운데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한 손가락도 짐에 대지 않는(눅 11:46) 율법사들은 샴마이 추종자로 보인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뒤에 국민생활의 재건을 위해 주도적역할을 한 것은 힐렐 학파의 요하난 벤 자카이였다.

나. 사두개파(자연주의자)
사두개란 말은 "의로운"이란 뜻의 "싸디킴"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 기원은 솔로몬의 제사장인 '사독'(삼하 8:17) 이라고 한다. 바리새인들이 중류 계층인 반면 사두개인들은 부유한 귀족층과 예루살렘에서 막강한 세력을 가진 제사장 계급을 대표하는 단체였다. 이들은 동료들에게도 이방인을 대하듯 무례히 행하며 자신들의 교사들과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지만 일반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들은 기록된 토라의 권위를 인정했으나 구전 율법의 권위는 인정치 않았다. 바리새파에게 율법이 신앙의 중심이라면 사두개파에게는 율법이 신앙의 왜곡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헬라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서 유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은 부활, 천사, 마귀에 대한 교리를 부인했으며, 성공과 역경은 인간 행동의 결과라고 믿었다.

다. 엣센파(금욕주의자)
이 말은 "호시오스"(거룩한)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그들은 흰옷을 즐겨 입었고, 독신을 강조했다. 어떤 그룹에서는 자녀를 갖기 위해 결혼을 허락했으나 대부분 양자를 데려다가 키웠다. 생활은 손씻는 결례, 세례, 기도 등 수도원적 생활을 했다. 율법의 해석에 있어서는 바리새파보다 더 엄격했다. 세례 요한의 생활과 그의 세례 의식 등이 엣센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947년 쿰란의 사해 사본이 발견된 이후 기독교의 고향이 베들레헴이 아니라 쿰란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엣센파의 회원이 되려면 3년 동안의 견습기를 거쳐야 하며, 서약을 한 다음 세례를 받아야 했다. 계급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누어졌다.

1) 제사장
2) 레위인들
3) 이스라엘의 자녀들
4) 문의 개종자들(온전 개종자인 의의 개종자와 구별된)

히폴리투스에 따르면 역사의 과정에서 엣센파는 네 개의 파로 분열되었으며, 그 중 잘 알려진 것이 "셀롯당"(열심당)이다. 엣센파의 신학은 약간씩 다르나 다음의 네 가지를 믿었다.
1) 유일신(여호와께서 세계의 통치자이시며 모든 선의 근원이라고 믿음)신앙
2) 열렬한 율법 연구와 은유적 해석 방법
3) 엄격한 안식일 준수
4) 육체 부활

라. 열심당
"열심당"을 "시카리이"(자객들)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옷 속에 단검을 숨겨 가지고 다니다가 불만의 대상들을 불시에 찌르고 군중 속으로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세푸스는 (마 27:38)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옆에 달린 강도가 "열심당원"이었다고 말한다. 또 (막 15:7)에 나오는 바라바도 열심당원이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으며, 순교를 당하면서도 가이사를 "주"라고 부르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악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살해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대로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며 로마에 대항하는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마. 헤롯당
헤롯당에 대해서는 신약에 기록된 것 이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 분파라기 보다는 헤롯 가문 특히 헤롯 안디바의 친구들이요 지지자들이었다. 4세기의 교부인 에피파니우스는 그들이 헤롯을 메시야로 간주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바. 서기관들
서기관들은 율법 연구의 전문가들로서 세 가지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율법을 보호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율법을 연구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교육하였고, 율법을 배운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에서 율법의 치리를 맡은 재판관으로 활약하였다.

사. 산헤드린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종교 및 정치 단체였던 산헤드린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산헤드린은 "대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에는 헤롯의 통치하에서, 그리고 후에는 로마의 감독을 받으면서 그들이 허용하는 범 내에서 통치 기능을 담당했다. 구성원은 71인의 명망 있는 인사들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대부분은 사두개파나 바리새인에 속해 있었다. 산헤드린의 의장은 항상 대제사장이었으며(마 26:57, 행 5:17, 24:1), 대제사장 다음으로 높은 지위는 성전의 군관이었다(눅 22:4,52, 행 4:1). 이론적으로 예루살렘 산헤드린(공회)은 모든 유대인들의 영적, 정치적, 법적인 문제를 관장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산헤드린은 하급 법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을 듣고 법률적인 결정을 했으며, 모세의 율법을 범한 죄나 신성모독 죄 등에 대해 판단을 하였고, 거짓 선지자를 판별하는 역할도 감당했다. 고소를 당한 사람들을 취급하는 진행의 법칙은 공정성을 유지했으며, 가능한 한 고소를 당한 사람의 죄를 면해 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재판할 때는 그들의 이러한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3) 유대교의 예배 활동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고, 율법을 인도하는 길과 안내자로 주셨다는 것을 믿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 주신 일에 대해 감사하였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하는 종교였다. 그러면 이 율법은 예배생활에 대하여 어떻게 지시하고 있는가 ?

가. 성전 예배
성전은 솔로몬 시대 이래로 이스라엘의 삶과 사상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예수님 시대에 이 성전은 헤롯에 의해 복구되었으며, 성전 안에서 무수한 희생이 드려졌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장소였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것으로 알려진 지성소에는 율법의 규례를 따라 정결케 한 대제사장만이 정해진 예복을 입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방인들은 단지 "이방인의 뜰"로 불리는 곳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속하고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례를 따라 제사를 드렸다. 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는 제사장이 모두 순수한 동기를 가져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드려야 했다. 그리고 이 희생 제사에는 기도와 고백이 동반되었으며, 잘못하거나 남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그것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했다. 일년에 한번 있는 대속죄일은 하나님께서 백성의 일년간의 죄를 속하고 화해하기 위해 주신 규례이며, 이 예식은 대제사장이 집례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통하여 1년에 3번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절기룰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고 회상시키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고,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날을 기념하기 위해 오순절을 지키게 하셨으며, 광야 생활과 민족의 형성을 회상시켜 주시기 위해 장막절을 지키게 하셨다(물론 이 절기들은 농경적인 의미들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뿐 아니라 에피파네스 4세로부터 주전 165년에 성전을 회복하고 청결케 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전절을 지켰으며(하누카-빚의 절기), 하만에 대한 에스더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부림절을 지켰다. 신년 축제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회상시켜 주었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심판하시는 날이었다. 이스라엘을 이 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비로 대해주시도록 기도하였다. 속죄일은 금식과 죄의 고백과 희생 제사가 드려졌다. 이러한 신년 축제일과 속죄일은 모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용서의 필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시작되었다.

나. 회당 활동
포로 이후 율법의 중요성 및 연구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회당이 생겼으며, 예수님 당시에는 이미 모든 마을에 회당이 서 있었다. 그들은 이 회당에서 기도와 예배와 율법을 연구하는 일을 하였다. 예배는 기도와 율법 낭독과 설교로 이루어졌으며, 집회는 안식일과 주중 다른 두 날에 모였다. 회당 예배는 성전 예배와는 달리 제사장이 참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평신도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회당은 유대인들을 종교적이고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었다.

경건한 유대인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끝냈다. 그들은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며, 출타하였다가 귀가하거나 손을 닦고 음식을 먹을 때, 또는 출생과 할례, 약혼, 결혼, 질병, 죽음, 장례와 같은 때에도 이에 수반되는 기도를 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죄악된 것으로 생각하여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키고, 세상과 사회에 대하여 등을 돌리는 금욕주의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언약 백성의 표시로서 할례를 받았으며 이를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혼합된 옷감으로 된 옷을 입지 않았으며, 겉 옷 단에는 옷술을 달았고, 집 문기둥에는 메주자(성구가 기록된 양피지를 담은 용기)를 달았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율법을 준수할 필요를 깨닫게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준수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증거하였고,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였다. 이 날에는 노동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이 금지되었으며, 특별한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었으며,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축제의 분위기로 지냈다. 그들은 인간의 시체를 만지는 일이나, 문둥병자들이나 부정한 짐승들과의 접촉과 같이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일들은 자신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이 이러한 일들을 했을 때에는 율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행했다. 그들은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법이 준수되었고, 짐승들을 도살하는 데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며, 피는 식용이 금지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을 부정한 일로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이방에 사는 것보다 이스라엘에 사는 것을 더 좋게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 율법을 알아야 했고 이를 위해 율법을 연구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을 연구하는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율법에 무지한 자는 깊은 신앙심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땅에 속한 백성"이나, "율법이 없는 열등한 종족들"이라는 경멸적인 용어들까지 나오게 되었다.

4) 디아스포라의 유대교
가. 헬라주의적 세계 안에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신약 성경 시대의 유대 백성들은 매우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로마 제국 150개 이상의 도시에 회당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몇 세기 동안 많은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살았는데, 그들은 거기에서 그 지역의 언어인 헬라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나. 70인역 성경
주전 3-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상들의 거룩한 책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알기 원했다. 이로 말미암아 70인경이 제작되게 되었는데, 한 유대인이 약 170년경에 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애굽 관리인 아리스테아스가 그 형제인 필로크라테스에게 보낸 편지-에 이 책을 기록하게 된 배경이 나타난다. 애굽 왕은 히브리 율법의 번역을 원했다. 그리하여 자기 신하인 아리스테아스를 예루살렘으로 파견하여 뛰어난 학자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그는 72인의 학자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돌아왔으며 파로스 섬에서 72일간 번역 작업을 한 끝에 마침내 헬라어 역본을 만들게 되었다. 이 책은 학자들의 숫자를 따라 70인경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전설은 3세기 중엽 애굽왕 프톨레미 2세 치하 때에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율법책이 헬라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율법책이 번역된 후에 예언서와 성문서가 번역되었고, 그 후에 외경들도 번역되었다. 70인경은 신약 성경 시대 이전과 그 동안의 유대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나아가서 그것은 초대 교회의 성경이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성경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유대와 헬라 세계에 선포하는 기독교 선교의 주요한 도구가 되었다.

다. 요세푸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37-38년경 팔레스타인의 제사장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그는 바리새파를 최고의 종파로 생각하였으며 이에 가입하였다. 그는 66-70년의 유대 전쟁 기간 동안 로마로부터 돌아온 후 갈릴리에서 유대 저항 운동을 지도하였다. 그는 체포된 제사장들을 구하기 위해 로마로 갔으며, 갈릴리에서는 군대 사령관으로서 투쟁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베스파시안에게 끌려갔으며, 로마에 협조한 후에 다시 풀려나게 되었다. 그는 감사의 표시로서 베스파시안의 가문 이름인 "플라비우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유대 전쟁의 마지막 비극적인 장면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받았으며, 말년에 글을 쓰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66-70년의 로마와 유대 사이의 전쟁을 그린 "유대 전쟁사"와, 93년경에 출판된 "유대 백성들의 옛 풍습"과, 자신에 대한 비난에 답변하는 "삶"과, 그리고 유대인들에 대한 온갖 억측과 모함에 대하여 답변하기 위해 쓴 "아피온 반박문"이 있다. 그는 이러한 책들을 민족과 유대교, 그리고 자신을 위한 변증과 선전을 위해 기록하였다. 따라서 많은 사실들이 과장되고 편집되었으나 그의 작품들은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라. 알렉산드라의 필로
필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을 대표하는 로마 사절로 선출된(39년) 부유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할 때에 풍유적으로 해석함으로서 "풍유적인 해석법"의 기초를 열었다. 그는 풍유적인 해석 방법을 통하여 모세의 율법 속에 헬라인들의 지혜가 예기되어 있음을 보이려고 하였다. 또한 그는 구약의 신앙의 위인들의 전기를 통하여 도덕적 가치들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유대인들이 헬라 문화 속에서 그들의 전통을 지키는 데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필로의 영향으로 클레멘트와 오리겐에 의해 주도된 기독교인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성경의 신비적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영향은 중세 교회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5) 정경, 외경, 위경, 묵시문학
가. 정경(Canon)
* 헬라어 '칸나'('갈대, 또는 '줄기')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자', '재는 막대기', '측량 기구'라는 의 미로 사용됨.
* A .D. 4세기 중엽에는 '거룩한 기록물'인 성경을 정경으로 불렀으며, 후에 이 단어는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신구약 66권(구약39, 신약 27)의 명칭이 되었다.
* 정경이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책으로 표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인류 의 신앙과 생활(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대한 규범서를 말한다.
* 39권의 구약 성경 외에도 많은 책들이 B.C 200년-A.D.100년경 사이에 기록되어 널리 보급되었는데, 이러한 책들을 '외경(Apocrypha)'과 '위경(Pseudepigrapha)'이라고 부른다.

나. 외경(Apocrypha)
* '외경(Apocrypha)'이라는 말은 '감추어진'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말이 원래 '찬양하는' 이라는 형용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일반 대중들에게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성문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후에 이 말은 '그 정통성이 의문시 되 는 책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 외경은 개별적으로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훌륭한 교훈적인 내용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으나, 구약 39권과 같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은 아니며, 따라서 공 예배에서 사용되지 못하는 문서들을 말한다.
*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이러한 '외경'들 중에서 12권을 선택하여 이것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제2의 정경'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러나 카톨릭은 제 1, 2 에스드라서와 므낫세의 기도문은 '제2의 정경'에서 제외시켰다.

* 외경의 목록
1-2) 제 1, 2 에스드라서
3) 토빗서
4) 유닛서
5) 다니엘서의 증보판
6) 에스더서의 증보판
7) 므낫세의 기도문
8) 예레미야의 편지
9) 바룩서
10) 벤시락(시락의 아들)의 지혜서
11) 솔로몬의 지혜서
12) 제 1, 제2 마카베오서

다. 위경(Pseudepigrapha)
* 위경은 익명의 저자가 마치 그 책을 에녹이나 바룩과 같이 유명한 고대의 인물들이 기록한 것처럼 거짓으로 꾸미고 있는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 위경은 구약이나 외경에서 제외된 제 3의 책들을 가리키며, 이들은 정경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중간 시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특히 신약 성경의 유대교 배경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 위경의 내용
1) 메시야-메시야 왕국의 도래-메시야 시대에 나타날 징조들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주관하는 메시야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이 때에는 여러 가지 우주적인 징조들이 수반될 것이며, 이방 압제자들은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
2) 죄의 기원
3) 천사들과 귀신들
4) 우상 숭배자들의 멸망
5) 성경을 연구하여 지혜를 얻을 것을 권면.
6) 사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스올의 역할, 죽은 후의 사람의 본질 등)

* 위경의 책들
1) 에녹서
2) 희년의 책
3) 열 두 족장의 유언서
4) 제3, 제4 마카베오서
5) 아리스테아스가 필로크라테스에게 보내는 편지
6) 바룩의 글
7) 솔로몬의 시편
8) 여 선지의 예언서
9) 모세의 승천기

라. 묵시문학
신, 구약 중간기에 유행했던 또 하나의 장르는 묵시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계시(Revelation), 또는 '묵시(Apocalypse)라는 말은 '감취었던 것이 드러난 것(unveiling)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연극을 시작할 때에 막이 올려지면 그 뒤에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과 같다. '묵시'란 말은 주전 2세기-주후 1세기 사이에 씌여진 유대 종교 서적들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책들을 '묵시문서' 또는 단순히 '묵시'라고 불렀다. 이러한 묵시문학 속에는 강력한 이방민족들 사이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이 느껴야 했던 민족적인 위기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므로 묵시문학에는 소수 민족으로 당해야하는 핍박과 착취에 대한 내용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따라서 이 문헌에는 그들을 현재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울 메시야에 대한 희망이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묵시 사상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에는 악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고난을 받으며 도무지 개선될 것같이 보이지 않지만, 결국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천재지변을 통해 역사에 개입하실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악을 제거하실 것이며,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묵시 문헌은 이스라엘이 고난을 받고 이방 민족들의 통치를 받을 때마다 항상 주어졌으며, 이러한 사상은 계속되는 이방 세력 밑에서 고난을 당하는 유대인들에게 적절한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이 바로 이러한 묵시 문헌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 이방 민족들에게 박해를 받고 있는 자신의 백성이나 교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다. 다니엘서나 요한 계시록은 일시적으로 성도들과 교회가 악한 세력들에 의해 고난을 받지만, 결국에는 메시야를 통해 악한 세력들이 심판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악의 세력이 멸망하고 영원한 평화의 세계가 임할 것이라는 소망을 제시해 주고 있다.

묵시 문학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다양한 상징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있는 다니엘이나 밧모섬에 있는 요한에게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서 계시를 전해 주셨다. 다니엘이나 계시록에는 행동과 직접적인 말씀 뿐 아니라, 극적인 형태나 여러 가지 상징과 그림들을 통해서 전달된 계시들로 가득 차 있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그림이나 드라마, 그리고 영상 등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그림이나 드라마, 또는 영상을 통한 상징들은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는데 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는 다니엘이나 계시록에서 바로 이러한 형상과 상징들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전달해 주셨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다니엘이나 계시록의 언어는 현대인들에게 더 익숙한 언어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형상과 상징들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때에 계시록을 보다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될 것이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들을 짐승이나 뿔 등과 같은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짐승들은 그 당시 통치자들을 상징하고 있다. 요한이 이러한 상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박해로 인해 그 당시의 통치자들의 멸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초기의 계시록 독자들은 계시록에서 사용된 어휘나 상징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계시록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저자는 이 책에 언급된 내용들에 대하여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독자가 아닌 그 이후의 세대에 태어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책에 사용된 상징에 익숙하지 못해서 계시록을 대할 때에 당황할 수 있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과 분명한 차이들이 있다. 묵시 문학은 주로 저자들의 이름을 숨기고 과거의 유명한 사람들(에녹이나 에스라와 같은)이 이름을 빌려서 기록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은 분명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묵시 문학은 사변적인데 관심이 있으며, 세상의 종말의 때와 징조, 그리고 최후에 대해서 밝히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문제들에 관한 호기심을 채워주기보다는, 당시의 대 박해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다니엘이나 요한은 메시야께서 오셔서 이 세상을 바로 잡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헌들과는 달리 사변적인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거나 듣고, 이 예언에 순종해야 윤리적인 요청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요한계시록을 묵시문헌과 동일시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 헬레니즘 (Hellenism)
1) 희랍과 로마의 신들
- 각 영역을 주관하는 신이 있음(제우스, 포세이돈, 아프로디테 등)
- 인간과 비슷한 특성을 지님.

2) 민속 신앙과 운명 사상
- 점술과 점성술, 그리고 운명 사상, 밀의 종교들

3) 통속 철학
가. 플라톤 주의(이데아 사상)
나. 영지주의

가) 사 상
요한 1서는 영지주의(영어 'Gnosticism'은 "지식"을 가리키는 헬라어(γνωσι?)로부터 유래하였다)로 알려진 위험스러운 이단을 저지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영지주의는 세상의 근원, 죄, 구원의 길에 대하여 합리적인 근거를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 세상은 무엇인가? 영지주의자들은 이 세상의 창조는 빛의 세계인 신의 세계에서 한 조각이 하층 세계로 떨어져 나와 물질과 결합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세상은 신의 작품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떨어진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악한 물질과 더불어 역사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으로부터 점차로 멀어지는 일련의 "아이온(αιων)" 또는 "파생신들"(emanations)을 창조하셨다. 각 이이온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만큼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다.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아이온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그에게 적대적이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아이온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혼은 무엇인가 ? 영혼은 세상의 존재가 아니며 신의 세계에 속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세상을 벗어나서 신의 세계로 복귀해야 한다(예) 도마 행전의 진주송-이집트에 진주를 찾으러 왔다가 사명을 잃은 왕자 이야기). 영지주의자들은 파생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인간의 몸에 들어갔고, 그들이 인간의 몸 안에 갇히게 되었다고 가르쳤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 영들은 그들의 사로잡힌 상태에 대하여 무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일 영들이 이 지식을 깨닫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영은 바른 지식을 가져야만 하고, 바른 판단이나 비밀의 지식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 참으로 지적인 영만이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주는 신의 불꽃이 타오르지 못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지 못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생활은 세상을 체념하고 올바른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에 도움을 준다.

구원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구원자는 우주의 파수병들에게 걸리지 않고 이러한 소식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일을 한다. 그는 예수님처럼 인간이 되지도 않았고,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지도 않았다. 그는 신적인 존재일 분이다. 그는 단지 구원의 소식을 우주의 보초 몰래 인간들에게 전할 뿐이다. 영지주의는 역사적인 일이나 종말에 이루어질 일을 다루지 않고 언제나 보편적인 진리 문제를 추구하고 있다.

나) 영지주의의 위험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신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성육신하여 인간이 되셨다는 것을 부인하였다. 그들은 인간 예수와 "그리스도"사이를 구별하였다. 예수님은 실상 상급의 인간에 불과하셨다. 그가 세례를 받으셨을 때 "그리스도"께서 마치 어떤 사람이 아파트를 임시 거처로 취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몸을 거처로 취하셨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께서는 예수님에게 이적을 행하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힘을 부여하였다. 수난이 다가오자 "그리스도"께서는 떠나셨고, 오직 인간 예수만이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다.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몸은 단순히 물질이고 마침내는 폐기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껏 생을 즐기고 육신의 온갖 욕망에 탐닉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반 율법주의). 또 어떤 이들은 육신의 욕망은 참된 지식의 길을 추종하는 발걸음을 방해하지 않도록 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율법주의).

다) 영지주의에 대한 바울과 요한의 공격
요한은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신 아들의 계시를 통하여 자신의 참되고 궁극적인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하셨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하여 자신과 인간 사이에 교제를 맺으셨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선교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1:1-4). 그는 영지주의에서 기독교에 대한 삼중적 공격을 간파하고 이에 따라 영지주의를 공격한다.

가. 영지주의는 예수님의 인성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을 부인한다.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다(2:18-28, 4:1-6, 13-15, 5:6-12).

나. 영지주의자들은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의 범죄를 선언하시고(1;8,10), 자신의 아들을 "세상 죄를 위한 속죄물"(2:2)로 주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영지주의자들은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진지하게 받 아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들의 죄보다 그들의 지식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는 잘난 체하는 정신이 지배적이었다. 그들은 이웃을 섬기는데 자신을 드릴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 들은 세상에 속하였고 그들이 말하는 것도 세속적인 것이었다. 세상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형제 사랑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부인하는 것이다(2:7-17, 3:11-24, 4:7,12,16-21, 5:1,2). 요한의 메시지는 이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계속 반복된다. 이 주제들은 기독교인이 자신의 신앙과 생활의 진실성을 결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메시지를 제시해 준다,.

* 바울은 영지주의자들에 대하여 주로 이원론적인 사고와 금욕적인 방식을 지적하였다.

다. 에피큐로스 철학(현실 중심, 쾌락 추구)

라. 스토아 철학(이성적 판단 추구)
스토아 철학(제논에 의해 시작)은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스토아'란 "페인트 칠한 현관"이란 뜻으로 아덴의 시장터에 있었으며, 이곳에서 제논(주전 335-263년)이 제자들을 모은 데서 유래하였다. 중요한 사상으로는 로고스를 세계 질서로 본 것과, 하나님을 세계 영혼(행 17:28)으로 본 범신론적 견해, 그리고 도덕적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그들은 도덕적 가치를 선, 악, 중립(아디아포라)으로 나누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선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감정은 실체가 없는 해로운 것이므로 완전한 자기 절제의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금욕'과 '자족'과 '극기'를 미덕으로 장려했다. 이 스토아 철학은 고상하기는 하지만 기독교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들은 자유 의지나 악의 존재를 인정치 않으며, 악을 선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개혁이나 변화를 배제하였다. 또한 그들은 신은 비인격적인 존재이므로 인간의 일에 대해서 인격적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헬레니즘 가운데 기독교에 끼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신약 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헬라어는 시대에 따라 크게 1) 고전 헬라어(주전 300년 이전), 2) 헬라 시대(주전 300-주후 550년), 3) 비잔틴 헬라어(550-1453년), 4) 현대 헬라어(1453년 이후)의 넷으로 분류된다. 헬라 시대 헬라어도 문어체 헬라어와 코이네(일반 헬라어)가 있었다.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으로 인해 고전 헬라어 시대가 사라지고 코이네 헬라어 시대가 도래했다. 이 헬라어는 고도로 복잡한 복합 문법의 구조를 생략하여 단순한 문장으로 대신하였으며, 많은 접속사와 계사를 사용하는 대신 몇 개의 연속만을 지어서 모든 관계를 설명하였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이러한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즉 일반 시민들이 대화할 때에 사용하는 헬라어로 기록된 것이다. 그래서 성서 헬라어는 활기 있고 신선하고 살아 움직이는 맛이 있는 것이다.

3. 신약시대의 상황 (헬라문화의 옷을 입고, 로마모자를 쓴 채 율법을 손에 들고 방황하는 유대인)
1) 정치적 상황: 대 제국인 로마의 통치하에 어느 정도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강대국 가운데 다섯 번째인 로마는 지중해 전역을 통치하던 대제국으로 강력한 법에 의해 통치하던 비교적 정의로운 나라였다. 로마는 정치적으로는 단호했지만 그 외의 면에서는 자치권을 주었다. 그래서 비교적 반란이 일어날 소지가 적은 지역에서는 '분봉왕'(예; 헤롯)을 두어 다스리게 했고, 그 나머지는 '총독'(예: 빌라도)을 파견하여 강력하게 통치했다. 로마의 세계 평화주의와 세계 곳곳에 건설된 도로는 바울이 신속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2) 사회적 상황: 정복당한 지역으로서 복잡한 인적 구성을 가진 혼란한 사회였다.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만 구분될 뿐이지, 정치적으로는 주변 다른 민족과 똑같은 식민지 백성이었다. 그 사회는 한 마디로 갈등 그 자체였다.
1) 로마 권력층과 독립 투쟁 세력간의 갈등(정치적 갈등)
2) 부유층과 가난한 계층의 갈등(경제적 갈등)
3) 종교적 기득권 세력과 비판 세력 사이의 갈등(종교적 갈등)
4) 본토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간의 갈등(문화적 갈등)

3) 문화, 사상적 상황: 전통적인 유대주의가 헬라 사상에 의해 위협받고 있었다.
전통적인 히브리 사고는 이와는 전혀 다른 헬라적 사고에 부딪히고 있었다.

< 히브리적 사고 > < 헬라적 사고 >
신 중심적 사고------------------인간 중심적 사고
관계 중심의 사고----------------개체 중심적 사고
느낌 중심적 사고----------------논리 중심적 사고
동적인 사고--------------------정치적, 공간적 사고
의미 중심의 사고----------------사실 중심의 사고

이러한 두개의 전혀 다른 문화와 사상이 서로 부딪히는 가운데, 지중해 연안의 각 민족들의 세력까지 가세해서 큰 혼돈이 일어나고 있었다. 헬라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고, 구역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됨으로 인해(70인경) 사도 바울은 헬라어와 70인경을 사용해서 세계 곳곳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

4) 영적인 상황: 종교적 형식주의가 굳어져 가는 한편 영적 갈망이 커져가고 있었다.
헬라의 통치자(셀류커스)를 몰아내고 성전을 회복했던 마카비안들은 왕이 되어 '하스몬 왕조'를 창설하고 지배자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무너진 대제사장의 전통을 아론의 후손도 아닌 자들이 잇겠다고 나섰으며, 왕권도 유다 지파가 아닌 에돔인 헤롯에게 넘어가게 되었으며, 로마는 그때부터 유대에 비교적 자치권을 인정해 주던 종교권 마저 거머쥐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 이들을 옹호하는 무리들(대제사장, 서기관, 사두개인)이나, 비판하는 무리들이나(바리새인) 모두 세속주의, 형식주의로 변해갔고, 백성들은 영적, 심적, 육적으로 굶주리고 목말라하고 있었다. 이러한 영적인 상황은 메시야를 대망하게 하였고, 참된 종교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4. 신약이 기록된 과정: 신약이 기록된 시기는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1) 복음의 시기(4-30년)
이 시기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전부요 본질이었다. 그는 아무 것도 쓴 것이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첫째 유대인들이 가진 구약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는 지침서요, 그는 그 속에 약속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마 5:17).
둘째 그리스도께서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이 바로 복음이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주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으며(요 14:6), "자신은 온유하고 겸손하므로 자신에게 와서 배우라"고 하셨다(마 11:29). 그러므로 그의 메시지는 그의 가르침과 그의 인격과 생활, 그리고 그의 모든 업적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기록될 모든 메시지를 삶으로 나타내 주셨던 것이다.

2) 구전의 시기(30-50년)
약 20년에 이르는 이 시기는 구전의 기간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가르침과 그의 인격과 생활과 업적을 말로 전하였다. 이때에는 주님의 제자들이 살아서 생생하게 주님에 대하여 증언했으며, 대부분 신자들이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주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주님의 메시지를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당시 구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전한 말씀(행 10:34-43)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베드로의 설교는 그의 통역관이었던 마가 복음의 중심이 되었다.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다른 사실들과 그의 말씀을 요약한 것들이 구두로 제자들에 의해 전수되었다. 그래서 누가는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고 표현했다.

3) 기록의 시기(50-95년)
그러나 1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사정은 변하기 시작했다. 복음이 확장되면서 제자들만으로는 복음을 다 전할 수 없었으며, 제자들도 서서히 순교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주님께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겨 두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비롯한 바울 서신이 기록되었고, 공동 서신들이 쓰여졌으며, 마가복음을 비롯한 복음서들이 기록되었고, 최후로 요한 복음과 요한 서신 및 계시록이 기록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 성경이 기록된 연대들에 관해 학자들의 사이에 있는 견해의 차이점 때문에 혼란을 가져와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아무도 확증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5. 신약 성경의 구분(27권)
1) 복음서(4권)-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2) 역사서(1권)- 사도행전
3) 서신서(21권)
① 바울서신(13권)∼ 롬, 고전?후, 갈, 엡, 빌, 골, 살전?후. 딤전?후, 딛, 빌레몬서.
가) 옥중서신(4)∼ 엡, 빌, 골, 몬.
나) 목회서신(4): 딤전?후, 딛.

② 일반(공동)서신(9)-히, 약, 벧전?후, 요 1,2,3, 유다서.

4) 계시록∼ 요한계시록

6. 신약 성경의 주요 지리
1) 바다와 강 (지도 보기)
* 지중해
* 갈릴리 바다
* 요단강
* 사해

2) 각 지역과 주요 도시의 명칭 (지도 보기)
* 갈릴리 지방: 나사렛과 가버나움
* 사마리아 지방: 사마리아와 수가 성
* 유대 지방: 예루살렘, 베들레헴, 베다니, 여리고
* 요단 동편 지방(베뢰아): 헬몬 산에서 얄묵 강까지(바산)(기름진 목초와 토양)
얄묵 강에서 얍복 강까지(산림이 우거진 산악 지대)
얍복 강에서 아르논 강까지(길르앗: 붉은 고원지대-황무지-)

3) 사도 행전의 지역과 주요도시 (사도 행전의 성경 지도 보기)
* 팔레스타인 지역: 예루살렘과 가이사랴
* 수리아 지역(구약 시대의 두로, 시돈, 아람 지역): 다메섹과 안디옥
* 아시아 지역(터키 남부 지역): 에베소
* 갈라디아 지역(터키 북부지역: 바울의 1차전도 여행지):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 마게도냐 지역(그리이스 북부지역: 바울의 2차 전도지역):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고린도, 아덴
* 이달리야 지역(로마 제국의 본토: 로마)

신약시대의 이스라엘 지도

신약성경 개론

강사 : 주성준 목사

1. 서론
1) 구약 성경 복습
* 창조-타락-홍수-민족의 분열
* 4000년-우르-페르시아만-사아롯데-티그리스-유프라데스-하란-데라의 죽음
* 갈릴리 바다-요단강-사해-지중해-이스라엘-이스마엘-이삭-에서-야곱-요셉
* 애굽-유대인들-애굽-400년 노예생활-모세-내 백성을 보내라-안된다-열가지 재앙
-유월절-홍해- 시내산-율법-성막
* 레위인과 제사장-제와 제물
* 인구조사-가데스 12정탐군-방황과 죽음-모압-모세-두번째 율법-모세-죽음

* 여호수아-요단강-여리고-분할과 정복-남과 북-분할과 정착-12지파
* 사사시대 400년-드보라-기드온-삼손-자기 멋대로-룻과 사무엘만 빼고
* 통일왕국 120년-사울 사랑이 없음-다윗 전심으로-솔로몬 반쪽 마음
* 분열왕국 400년-북쪽과 남쪽-이스라엘과 유대-19명 20명=0, 8명

* 선지자들: 순종하라 그렇지 않으면 추방이다
북 이스라엘은 앗스르로, 남 유다는 바벨론으로 어짐: 유다 포로 생활 70년

* 3차에 걸친 귀환
스룹바벨 성전 건축-에스더 왕후
에스라 백성들의 영적 부흥
느헤미야 성곽 건축

* 침묵의 400년-그리스도

2) 신약 성경의 구분
가. 역사서 5 권(건물의 기초)-4복음서와 사도행전-
가) 4복음서
* 복음서는 신약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의 생애가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탄생,사역,수난,죽음,부활,복음의 세계 전파
* 신약의 역사서 5권: 예수님의 생애 :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전파 과정: 사도행전
* 내용의 핵심: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가?
* 보통 신약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첫 장부터 질리게 된다.
* 왜냐하면 마태복음 한 장 내내 계속해서 "낳고", "낳고"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28장까지 다 읽을 수 있어야 한다.
* 마가복음(16장)을 읽다 보면 또 다시 마태복음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누가복음(24장)을 읽어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 요한 복음은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 전개과정과 내용이 조금 다르다.
* 요한복음은 처음에는 다른 복음서와 내용이 다르다가 마지막에는 같아진다.
* 4복음서는 4명의 사진사가 한 인물을 놓고 각각 다른 각도에서 사진을 찍은 것과 같다.
* 4대의 카메라로 생중계 하는 것이 한 대의 카메라로 중계하는 것보다 낫다.

* 4복음서는 각각 강조점이 다르다.

* 마태복음: 유대인-왕으로 오신 예수님
세리 마태가 썼는데 그의 관심은 유대인이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해 썼다. 마태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 즉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다. 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뇨?"-동방박사가 헤롯에게 물음-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과 사람과 죽음과 부활을 구약 성경의 메시야 예언을 모두 연결시켜서 예수님의 삶이 예언된 유대인의 왕의 모습을 모두 성취하신 분이십니다-"성경에 이사야가 예언한 말을 성취하려 함이라"-유대인의 왕-유대인을 위해 씀

* 마가복음: 로마인-종으로서의 예수님
로마 사람을 위해서 씀-로마 사람은 법과 군대가 중요하다-그들은 이론보다 행동을 중요시한다.-세계를 정복함-그러므로 마가복음에는 낳고 낳고가 없다-즉시로 움직이시면서 바쁘시게 다니시는 종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완전한 종의 모습-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하심이 아니요, 섬기려하고...-로마 사람을 위해-쓴 완전한 종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책임-

* 누가복음: 헬라인-인간으로서의 예수님
헬라인을 위해 씀-헬라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씀-누가는 의사로서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다.-지성인들과 학자와 철학자요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헬라어를 공부해보면 누가복음에 사용된 단어들은 100만 불 짜리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긴 단어와 어려운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마가는 2군데에서 단어조차도 틀리게 썼다.-종이 문법 좀 틀려도 좋다.-그러나 누가는 아예 서론부터 헬라 사람들이 글을 쓰는 서론으로 시작하고 있다-(1:1-4)을 읽어볼 것-저자, 쓰게된 경위, 누구에게 쓰는가?, 글쓰는 목적이 분명하게 제시됨-증인을 내세움-처음부터 자료를 자세하게 조사했다.-그는 에수님을 완전하신 인간으로 보여주려고 하였다.-마태복음에는 족보를 쓸 때에도 왕족만 쓴다.-그러나 누가복음에는 아브라함에서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과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끌어 온다-"이상 에노스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라"(눅3:-)-완전하신 인간이신 에수님을 보여주려고 함-

* 요한복음: 모든 사람-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
모든 인류를 위해서 썼다.-요한은 예수님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에 대하여 가르쳐 주려고 하였다.-"내가 이 글을 쓴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다 쓴 것이 아니라 이 목적을 위해서 선택하여 기록했다"-시간 공간 죽음도 초월하시는 예수님-기적을 통해서 에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다.
* 그러므로 복음서를 공관복음(같은 눈으로 본다는 뜻)이라고 부른다.
* 이 공관복음은 대부분 예수의 갈릴리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하였다.

* 그러나 요한복음만은 예수님의 유대 지방에서 하신 사역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 요한은 이 복음을 에베소에서 기록했다. 그때에 모든 사도가 죽고 요한만 남아 있었다.
* 그러므로 요한마저 죽으면 예수님을 목격한 사도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 상황에 놓였다.
* 그러므로 그의 제자들이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이야기들을 기록해 주기를 요청했다.
* 이 요청으로 기록된 것이 요한복음이라고 한다(전승)
* 요한은 예수님 사후 약 60년을 더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하여 묵상할 시간이 많이있었다.
*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불려졌다.
* 요한이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기록한 책이 바로 요한 복음이다.
* 요한복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사랑을 받아온 책 중의 하나이다.

나) 사도행전
* 복음이 사도들에 의해 어떻게 세상에 전파되었는지를 기록한 사도행전이 있다.

나. 바울서신(13권)
가) 옥중서신(4권)∼ 엡, 빌, 골, 몬
나) 목회서신(4권)∼ 딤전?후, 딛.

다. 일반서신(9권)
* 모든 교회를 위해 일반적으로 쓴 편지들
*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라. 계시록∼ 요한계시록

3) 신약 성경 지도
* 우르-페르시아만-티그리스-유프라테스-하란
* 갈릴리 바다-요단강-사해-지중해...
* 이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지도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 맨 위에 있는 갈릴리 바다에서 사해 끝까지 약 200km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서울-대전)

* 지도 보기(1): "신약 성경의 지도"
*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은 크게 4지역으로 구분되었습니다.
- 사해 건너편(베뢰아 지역)
- 남쪽(유다 지역)
- 중간 지역(사마리아 지역)
- 위쪽(갈릴리 지방)

* 중요한 도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가이사랴 빌립보
- 가버나움
- 나사렛
- 수가
- 예루살렘
- 베들레헴

*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에 있습니다.
- 중동지방의 한복판에 있다.
- 각 대륙이 만나는 길목에 있다.
- 북서쪽(유럽)-동쪽(아시아)-서남쪽(아프리카)-세 대륙의 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 구약에서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두 나라 밖에 없었다.
* 유다는 바벨론,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정복되었다.
* 앗시리아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가고 그 자리에 앗시리아 사람들을 이주시킴
* 이로 인해 이스라엘에는 혼혈아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들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이다.
*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멸시했다.
*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다른 책을 부정하고 모세 오경만 수용한다.
* 유다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않고 베뢰아를 통해서 갔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서 수가로 갔다.-인종차별 철폐-

2. 신약성경의 산책: 복음서 개관
* 갈릴리 바다-요단강-사해-지중해
* 베뢰아-유다-사마리아-갈릴리-가이사랴 빌립보-가버나움-나사렛-수가-예루살렘-베들레헴

* 이 외에 베뢰아 북쪽으로 가면 데가볼리란 지역이 있습니다.
* 데카볼리는 데카(10)+ 폴리스(도시)의 합성어입니다.
* 이 외에도 스불론, 납달리, 베니게, 이두메, 드리고니 등의 지역이 있습니다.
* 그러나 복음서의 사건들은 주로 베뢰아-유다-사마리아-갈릴리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 이제 이러한 지리적인 배경 지식을 가지고 복음서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것입니다.
* 우리는 복음서에 관한 사건에 대하여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연대기별로 어떤 사건이 어떤 순서로 일어났는지 요약할 것입니다.
* 복음서 사건을 구분하는 8가지 큰 단락이 있습니다.

1. 사역의 준비기간
2. 사역을 여는 사건들
3. 초기의 유대 사역
4. 사미라아에서의 사역
5. 갈릴리 지역에서의 사역
* 예수님의 소문이 알려져서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남
* 그러나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함
6. 후기 유대 사역
* 이때부터 예수님에 대한 반대 상황이 일어나기 시작함
7. 베레아에서의 사역
* 피신-제자들을 단단히 훈련시킴
8. 사역을 매듭짓는 사건들
* 다시 유대로 가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심.
* 이 곳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마치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시면서, 선교 사명을 주심

1. 복음서 초기: 예수님 탄생-유년시기
2. 갈릴리 사역(1): 갈릴리 초기 사역
3. 갈릴리 사역(2): 갈릴리 중기 사역
4. 갈릴리 사역(3): 갈릴리 후기 사역
5.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
6. 예루살렘에서: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

1. 사역의 준비기간
1) 베들레헴(미가의 예언이 성취됨-"유대 땅 베들레헴아")
* 탄생: 성령께서 처녀인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심. 이름 없는 보잘 것 없는 여인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에 그 여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역사는 똑똑한 사람보다도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주님의 제자들도 시골 사람이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계를 변화 시키셨다. 우리도 변변치 못해도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대한 일에 사용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학위 걱정하지 말라.

요셉이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순종하여 마리아를 데려왔다. 그는 약속을 믿고 아기를 낳을 때까지 동침치 아니하였다.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으면 동정녀 탄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녀 탄생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지 못하다고 하는 전제가 문제인 것이다. 무신론적인 전제에서는 동정녀 탄생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유신론적 전제는 동정녀 탄생이 가능하다. 진화론자들은 무생물이 생물이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초자연적 기적에 속하는 일이다.

베들레헴에서 낳은 이유: 로마 사람들이 세금을 받기 위하여 각기 고향에 가서 호적을 등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므로 요셉과 마리아도 호적을 등록하러 고향에 갔다가 출산하게 되어 짐승의 구유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다.

2) 나사렛(호적을 등록한 후에 자기 고향으로 가셨다).
* 목수: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서 목수의 일을 배우셨다
* 이때에 주님은 몸이 건장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 노동으로 단련된 건강한 몸을 가지셨을 것이다.

2. 사역을 여는 사건들
예수님 당시에 국가적 지도자는 세례 요한이었다.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사촌간이었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를 외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나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당시에 세례 요한은 전 국가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영적 지도자였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요단 강변에 나타나셨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그가 메시아이심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르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저는 나보다 먼저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의 신발 끈을 매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다. 저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영적으로 깨인 훌륭한 분이시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에 불과하다. 저분의 길을 위해서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준비해 주는 사역을 할뿐이다.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나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해 주는 사람에 불과하다.

* 예수님: "내게 세례를 베풀라!"
* 세례 요한: "제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 예수님: "이렇게 하여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1) 요단강
* 요한의 세례: 세례받는 모습
* 광야: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즉시 광야로 가셨다.
* 사단의 시험: 광야에서 세 가지의 시험을 받으셨다.

* 요단강과 예루살렘의 사이에 황량한 광야가 있다.
* 요단강 근처인 여리고에 이르면 초원이 나타난다. 이 지역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광야이다.
* 배고플 때에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을 받았다."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 성전으로(성벽) 가서 뛰어내리라고 시험하였다.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영광을 네게 주겠다."주 너희 하나님만 경배하라 하셨느니라".
* 이렇게 해서 주님은 영적인 모든 준비를 마치셨다(세례. 시험 승리)

3. 초기 유대 사역
1) 예루살렘
* 거듭남: 중생
* 밤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종교, 정치적, 사회적인 지도자) 예수님을 찾아옴.
* 니고데모: "당신이 하는 일을 보니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 같습니다."
* 예수님: "사람이 다시 한번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없느니라"
"영적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 니고데모: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옵니까?"
* 예수님: "내가 말하는 것은 육적 출생이 아니라 영적인 출생이다>"
"그러므로 다시 나야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 한 번밖에 나지 않은 사람은 두 번 태어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 물과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말씀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
* 바람이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그 영향이 있듯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도 이와 같다.

(예화) 남편과 시부모가 반대를 해서 교회를 못가다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교회에 가게 되었다.
거듭난 생명은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해야 한다.
*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야 한다.
* 그리고 이것을 믿어야 한다.
* 그런 중생했다고 해서 그가 성숙하다는 것은 아니다.

4. 사마리아에서의 사역
1) 수가성(지도에 있는 수가 성을 손으로 가리킨다)
* 우물가의 여인
*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가서 수가성에 이름.
* 사마리아 사람들은 앗수르의 이민정책으로 혼혈아가 된 사람들이었다.
*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들과 상종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 유대 사람들은 베레아로 돌아서 갈릴리로 갔다.
* 그러나 예수님은 일부러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셨다.

* 예수님: "네게 물 좀 주시오!"
* 여인: "유대인인 당신이 어찌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 예수님: "내가 누군지 알았으면 오히려 나에게 물을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 여인: "두레박도 없이 어찌 물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야곱보다 큰 사람입니까?"
* 예수님: "가서 네 남편을 데려 오라
* 여인: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 예수님: "네 말이 옳다. 남편이 다섯 있었으나 지금 있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로다."
* 여인: "주여 이제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말머리를 돌리려고 함
"우리는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립니까?"
* 예수님: "장소에 상관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릴 때가 올 것이다.
* 여인: "오실 이가 오시면 밝히 말을 하실 것입니다.
* 예수님: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면서 중생하게 되었다.
* 그리고 거듭난 후 그녀는 물동이를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데려왔다.
* 주님은 그 곳에 더 머물면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전도하여 많은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셨다.

5. 갈릴리에서의 사역
1) 나사렛
* 배척 당하심
* 갈릴리로 돌아가심-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심-같은 식구들도 오해를 했다.
* 같은 지역에서 자라난 사람들일수록 예수님을 더욱 더 믿지 않으려고 하였다.

2) 가버나움
* 열두 제자 선택
*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가심. 이 곳에서 열 두 제자를 선택하셨다.
* 첫 번째 선택된 사람은 요한과 안드레였다.
* 요한은 자기 형 야고보에게 전했으며, 안드레는 자기 형 베드로에게 가서 전했다.
* 요한과 야고보는 세레요한의 제자였으며 예수님과 사촌간이었다.
* 그리고 앞으로 이들 넷이 주님과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 되었다.

*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에 나타나는 산상 설교)
* 천국시민의 헌장

* 사탄의 권세:(뿔난 모습)
* 예수님께서 기적을 나타내시고 귀신을 i아내셨다.
* 반대자들이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i아낸다고 비난함.

* 비유: 예수님께서 이때부터 비유로 말씀을 하기 시작함)/ 씨뿌리는 비유/ 제자들이 와서 분명하게 말해주시고 모호하게 비유로 하지 말아주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알아듣고, 대적자들은 못 알아듣게 하려고 비유로 말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심./

* 풍랑을 잠잠케 하심: 바람과 바다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 오병 이어의 기적: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500명을 먹이고 12광주리를 거둠/

* 베드로의 신앙고백:
*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이 고백을 하는 사람마다 구원이 있다.
* 만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대한 사람정도로만 알면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 이 대답은 너의 육신을 가지고 대답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 너는 이제부터 게바라 하지 말고 베드로라고 하라.
* 너는 신앙고백을 하였기 때문에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 구교에서는 영세를 받으면 새 이름을 주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일은 성령님의 은사로 된다.
* 너는 베드로(페트로스:작은 돌)라. 이 반석(페트라: 큰 바위)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 페트라는 무엇인가?(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1) 카톨릭-베드로다. 그러므로 구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함.
1962년에 바티칸 회의: 요한 23세가 이 견해를 수정함:
그는 신교 사람들도 분리된 형제들로 인정하기로 선언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남성 명사(-os)이고, 페트라는 여성명사(-a)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은 문법상 맞지 않는다.
2) 개신교: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다.
베드로처럼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다.
3)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말이 된다.

* 변화산 사건: 예수님의 신성을 봄(부활, 재림의 영광의 모습)

6. 후기의 유대사역
주님께서는 주로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을 하셨다. 그리고 절기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역을 하셨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세 번 예루살렘에 오신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공생애를 약 3년으로 본다.

1) 예루살렘
* 돌에 맞을 뻔함
* 예수님의 피신:
* 예수님께서 한창 인기가 상승했고 소문이 각처에 퍼지게 되었다.
* 절기 때가 되자 형제들이 예루살렘에 함께 가지고 했다.
*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때에 올라가겠다고 대답했다.
* 이번 절기 때에는 모든 사람의 대화 내용이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다.
* 첫째 날, 둘째 날이 되자 주님에 대한 이야기로 찬반론이 가득차게 되었다.
* 셋째 날이 되었다. 이 날도 예수님에 대하여 모든 이야기가 집중되었다(요7장)>
* 바로 이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기둥에 나타나셨다.
* 정확한 분위기와 시기에 나타나셨다. 주님은 "하나님과 내가 하나이니라"고 선언했다.
* 유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난리가 났다.
* 주님: 너희도 재판관을 보고도 하나님의 아들(베네 엘로힘)이란 말을 쓰지 않는가?
*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하나님이요, 모세는 그의 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 유대인들: 네가 사람으로서 하나님이라 하느냐? 너는 돌에 맞아야 한다고 함
*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피신하여 베레아 지역으로 가셨다(요 8장).

7. 베레아에서의 사역
1) 베레아
* 제자의 대가:
* 예수님의 피난 장면을 제자들이 보게 되었다.
* 이때부터 주님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셨다.
* 일주일 후면 나는 예루살렘에서 죽게된다. 내 제자가 되려면 내 뒤를 따라야 한다.

*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잘될 줄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 많은 환난과 핍박이 있다.
(예화) 한 아들이 있는데 주일날 시험을 보지 않기 위해 의과 대학 시험을 포기했다.
그런데 다음 해에는 주일에 시험을 보지않아서 시험을 쳤는데 합격했다.
* 누구든지 자기 부모, 처자, 자녀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하지 않다.
* 이때에 한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장사하고 주님을 따르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 주님은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좆으라고 하셨다.
* 일사 각오를 가지고 주님을 좆아야 한다(주기철 목사-일사각오의 정신)
* 예수를 올바르게 믿기 위해서는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 예수 믿고 축복받으려고 하는 것은 에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요 구주시기 때문이다.
* 우리는 주님을 너무 쉽게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온갖 문제가 생겨난다.

* 잃은 자 찾기: 잃은 것을 찾는 흉내
* 인자가 세상에 온 것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 이 말이 누가복음의 핵심 요절이다.
* 잃은 양 비유-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의인 아흔 아홉보다 더 기뻐한다.
* "내 주의 도 처음 받은 날 참 기쁜 날이 아닌가?"
* 잃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중히 여겨 주시는 예수님

8. 사역을 매듭짓는 사건들
1) 유다
* 나사로의 부활: 다시 살아나는 모습
* 이제 주님은 베레아를 떠나서 유대로 가셨다. 그리고 가장 큰 기적을 일으키셨다.
*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은 주님이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항상 머무시던 곳이다.
* 이 곳은 예루살렘에서 약 오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 그들은 주님의 친동생들과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었다.
* 그때에 나사로가 죽었다. 그러나 주님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후에 그 곳에 갔다.

* 주님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를 만났다.
* 그녀는 주님이 여기 계셨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 주님은 너는 죽은 자가 살아날 것을 아느냐? 고 물으셨다.
* 그녀는 마지막 날에 모두 다 살 것이라고 대답했다.
* 주님은 너는 나를 누구로 믿느냐? 고 물으셨다.
* 그녀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

* 주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셨다.
* 무덤 앞에 가서 나사로야 나오라! 고 외치자 느사로가 온몸을 묶은 채로 나왔다.
* 이 사건을 보고 한 무리는 주님을 믿었고, 다른 무리는 주님을 핍박하게 되었다.
*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으로 보아도 주님을 믿지 못한다.
*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 알아야 믿는 것이 아니고 믿으면 다 알게된다.

* 삭개오 칭찬
* 이제 주님께서는 베다니에서 여리고로 가셨다.
* 이 때에 삭개오는 주님을 보고 싶어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 그것을 보신 주님은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셨다.
* 그리고 그 집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 그 후에 삭개오는 예수를 믿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
* 삭개오는 회개하고 모든 잘못된 삶을 청산 하였다. 주님은 이러한 삭개오를 칭찬하셨다.

2) 예루살렘
* 승리의 입성
* 이제 주님은 벳바게에서 나귀를 구해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 이때에 모든 백성들은 주님을 호산나 노래로서 환영했다.
* 벳바게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큰 언덕이 있다.
* 주님은 이 곳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우셨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암닭이 그 새끼를 모음같이..p번이더냐?"

* 성전 청결
* 제사장들은 상인들과 짜고 백성들이 가져오는 제물들을 불합격 판정하였다.
* 그러면 백성들은 상인들에게서 제물을 사야 했다.
* 그리고 상인들은 그 돈의 일부를 제사장에게 바쳤다.

* 이를 보신 주님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다.
*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직업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 이제 제사장들은 본격적으로 주님을 박해하기 시작한다.

* 최후의 만찬: 음식을 먹는 모습
* 이제 주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최후의 만찬을 하셨다.
* 당시 다락방이 있는 집은 부유한 집이었다. 여기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
* 그러나 제자들은 서로 누가 높으냐고 싸우고 있었다.
* 이때에 주님은 그 유명한 "종의 리더십'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 세상 사람들의 지도자는 높은데 서서 백성들을 임의로 주관하려고 한다.
* 그러나 너희는 종이 되어야 한다.

* 주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다.
* 주님은 떡은 자신의 몸, 피는 자신의 피를 상징한다고 하셨다.
*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하셨다.
* 주님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요 6장)
*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그러므로 그때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을 따르지 않았다.
*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셨다.
* 그러자 베드로는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으니 우리가 어디로 가리이까?"라고 대답했다.

* "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살이라"
*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주님은 매우 드라마틱하게 새 언약의 본질을 가르쳐주셨다.

* 겟세마네의 기도
*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주님은 겟세마네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죽고 싶지 않습니다.)
*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나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이것이 바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주님의 모습이었다.
* 우리도 이러한 원리대로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바른 신앙인의 기도이다.
* 우리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원리를 따르면 그 잔을 마셔도 부활할 수 있다.
* 올바른 신앙인과 바로 믿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 배반: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서 쏘는 흉내를 낸다)
이때에 바로 가룟 유다가 본瑛葯湧 보낸 하속들을 데리고 와서 주님을 사로잡게 하였다.
* 재판: 이제 주님은 재판을 받으셨다.
* 베드로의 부인: 이때에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였다.
* 십자가 처형: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처형을 당하셨다.
* 부활: 그리고 사흘 후에 다시 살아 나셨다.
* 승천: 그리고 40일 후에 승천 하셨다.

* 성경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구약-예수님 오신다
- 복음서-예수님 오셨다.
- 나머지-예수님 전파, 예수님 다시 오신다.

<적용>: 그리스도의 생애에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들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선지자, 제사장, 왕

2.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 산상 수훈(마 5-7장: 의의 원리-하나님 왕국의 헌장)
* 다락방 설교(요 13-17장: 의의 실천)
* 감람산 강화(마 24-25장: 종말론-의를 거절할 때 받는 벌)

3.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 나사로의 부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 오병이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 중풍병자를 고치심: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 다양한 이적들: 예수님의 권세

4.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 지도자들: 거의 믿지 않음(신성 주장, 죄인들과 가까이함, 전통에 대한 도전 때문에)
* 대중들: 처음에는 믿었으나 후에는 떠나감
그들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음, 도덕적인 요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함, 군중 심리 때문에

5. 당신은 그리스도께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 제사장이신 예수님께: 영접하고 구원받았는가? 아닌가?
* 선지자이신 예수님꼐: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아닌가?
* 왕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있는가? 아닌가?
* 순종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신약 성경의 산책: 사도행전

<사도행전 내용 개요>
* 지도 보기(3): "바울의 1,2차 전도 여행"

* 요단강이 보입니까? 그 밑에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P을 보면 안디옥이이 있습니다.
* 이곳은 시리아 지역입니다. 안디옥은 무엇으로 유명합니까?
* 사도 바울이 선교사로 파송 되었고, 누가와 처음 만난 곳입니다.
* 그리고 이 곳에서 기독교인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 그 다음 서쪽으로 가면 에베소가 있고, 골로새가 있습니다.
* 이 곳은 소아시아 지역인데, 바다를 건너가면 가면 유럽이 나옵니다.
* 유럽 지역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가 있고, 그 서편에는 로마가 있습니다.

* 오른쪽 끝 부분을 보면 큰 바다가 있습니다. 이곳은 홍해입니다.
* 그 위에 시내산-미디안-아라비아-이스라엘-베니게(페니키아)
*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된 다메섹이 있습니다.

* 다음에 수리아(시라아)와 실루기아와 안디옥이 있으며,
* 서쪽(왼쪽)으로 가면서 길리기아-갈라디아-가바도기야가 있습니다.
* 사도행전을 보면 "가바도기야 사람들도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림에서 큰 글씨로 된 곳은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왔던 사람들이 살던 지역들입니다.

* 그리고 그 주변에 부루기야 비시디아 소아시아 등등 여러 도시들이 나옵니다.
* 그 바다를 에게헤라고 하고, 그 밑에 있는 섬을 그레데 섬이라고 합니다.
* 그 위를 보면 그리이스가 보이고 그 다음에 이태리의 시실리아가 보입니다.

* 아프리카 지역을 보면 애굽이 보입니다. 애굽에서 유명한 지역은 알렉산드리아입니다.
* 이곳은 초대 교회 당시에 학문의 중심지로서 아주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 그 다음에 구레네가 나오고(구레네 시몬이 살던 곳) 그 밑에 리비아가 있습니다.

* 이 지역을 보면 네 지역, 즉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이 나옵니다.
* 유대와 사마리아를 한 지역으로 보면 이 곳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사도행전은 바로 (행 1:8)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전파된 일이고,
사도행전 8-12장은 유다와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된 일이며,
사도행전 13-28장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예루살렘에서는 베드로가 가장 중요한 인물로 부각이 됩니다.
* 유다와 사마리아에서는 빌립 집사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는 바울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 우연하게도 이 세 사람은 모두 다 "ㅂ'으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 예루살렘에서 복음 전파의 대상은 주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 사도행전의 중요한 사상의 흐름은 "교회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도행전에는 오순절 성령을 받은 120성도에서 3000명-4000명-5000명
그리고 약 10000명의 성도로 성장하는 교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7-12장은 예루살렘에서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는 전환기의 기록이 있습니다.
* 13장부터는 사도 바울의 4차례에 걸친 전도 여행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점에서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말할 있습니다.
* 첫 번째는 "교회의 확장 과정"이며, 두 번째는 "성령"입니다.
*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성령을 통한 교회 성장의 과정을 기록한 역사 이야기"입니다.

< 사도행전 복습하기 >
* 이제 사도행전 내용을 보지 말고 복습해 보겠습니다.
* 사도행전의 요절은 몇 장 몇 절입니까? 예 ! 1장 8절입니다. 다 같이 외워 보겠습니다.
* 이 요절은 성령이 오시면 능력을 받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이 약속이 성취된 과정을 서술한 것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 사도행전은 지역적으로 보면 세 구분이 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
* 1-7장은 예루살렘, 8-12장은 유다와 사마리아, 13-28장은 땅 끝까지의 복음 전파 과정입니다.

* 사도행전의 주요 인물은 베드로와 빌립과 바울입니다.
* 그리고 전도 대상은 유대인, 사마리아인, 그리고 이방인입니다.

* 사도행전의 내용은 교회의 승리, 복음전도의 전환기, 네 차례의 복음 전도 여행입니다.
*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단어는 교회의 확장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 자 이제는 34 페이지를 봅시다. 이 곳에는 사도 바울의 첫 번째 전도 여행이 나옵니다.
* 도표를 보면 사도 바울이 48년 4월경에 안디옥에서 파송을 받습니다.
* 그는 구브로 섬으로 먼저 갔습니다. 지금은 이 곳을 사이프러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바울은 이 곳에서 소아시아로 올라가서 소아시아 일곱개 교회를 세웠습니다.
* 그는 버가모,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 그리고 다시 돌아서 그 교회들을 거쳐 파송을 받았던 안디옥 교회로 다시 돌아갑니다.
* 자 그러면 이제 사도행전의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1. 교회의 설립(1-8장)
* 승천: 1장
* 성령 강림: 2장

* 걷게 함: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일으킴)
돈을 구걸하려고 하였으나, 베드로와 요한은 나는 은과 금은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것은 본인들이 원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다같이 찬양을 해보겠습니다.-은과 금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노래 부름*4)) 참 잘하네요! 이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3장

* 사기사건(속임 사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모두 다 유무상통을 할 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이 드리려고 하던 모든 재산 중에서 일부를 감추어 두었다가 성령을 속인 죄로 죽임을 당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이렇게 철저한 징계를 함으로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고를 주신다. 옛날에 아론의 두 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불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그 뒤에 아론의 철저한 감독 하에 제사가 주관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믿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하늘에서 떨어져야지 인간의 열심으로 할 수 없다. 인간적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가 있어야 함/ 진짜 불과 가짜 불의 역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때가 있다./4장

* 야간 탈옥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을 전도하였다.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이 그를 잡아다가 그 것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들이 직접 목격하였다고 증언하였다. 그리하여 종교 지도자들이 베드로를 옥에다 가두었다. 그때에 교회는 모여서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베드로를 구원해 주셨으나, 그들은 믿지를 못하였다. 우리도 때로는 기도를 해놓고 응답을 받으면 믿지 못하고 당황할 때가 있다./5장

* 집사(일곱명의 집사 선택)
조건-지혜, 성령 충만-모든 행정과 사역을 맡고 사도들은 기도 와 말씀만을 맡았다. 그렇지 않고ㅡ목사가 이것 저것을 위해 돌아다니면 교회만 손해이다. 목사는 영적인 데 신경을 쓰게 하고 다른 모든 일들은 직분자들이 일을 해야 한다./6장

* 스데반의 순교
서신 주님의 모습을 보게됨-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죽었다./ 7장

지금까지는 1-7장까지의 사역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8-12장까지의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이 곳에는 주로 박해와 교회 전파 사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 교회의 확장: 유대와 사마리아(8-12장)
* 핍박:
너무나 핍박이 심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지방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말이 나오는데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행 8:2) 같이 읽어볼까요?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행 8:4)을 또 읽겠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이 두 말씀을 함께 읽어보면 오히려 핍박의 압력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너무 친교가 잘되어 자신들끼리 재미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있다. 초대 교회도 자신들끼리 재미있으니까 전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핍박을 주셨다. 우리나라도 북한이 복음을 전하지 않을 때에 전쟁을 일으켜서 남한에 온 피난민들이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이면 재미있고, 흩어지면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 열두 사도는 예루살렘에 남고 나머지 평신도들이 두루 흩어져서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 이것이 바로 평신도 목회였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복음이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장 양육을 받은 후에 자신이 있는 각 처소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세계 선교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 빌립의 전도/8장:
그 흩어진 사람들 중에는 빌립이라는 집사가 있었다. 빌립이 맨 먼저 복음을 전한 사람은 시몬이었다. 그리고 에디오피아에서 온 내시를 전했다. 그리고 즉시로 강물로 데리고 가서 세례를 주었다. 집사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 때는 이렇게 할 수가 있었다. 요즘은 강대상에 평신도가 올라올 수가 있다. 이것은 많이 나아진 것이다. 우리는 사도행전에 있는 대로 누구나 성도를 섬길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빌립에 의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이 전도되었다.

* 바울의 회심/9장:
사도 바울이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려고 잡으러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보고 회심을 하게 되었다. "네가 나를 받해 하는 것은 마치 맨 발로 송곳을 차는 것과 같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들어가서 기다리라 내가 네가 할 일을 보여 주리라" "아나니아가 그의 눈을 뜨게 하였다." 그리고 사울은 바울이 되었다. 그는 당시의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왔고, 복음의 열정이 있어서 일생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께서 주신 은혜였다.

* 베드로의 환상/10장:
기도 시간에 보자기에 온갖 짐승이 있는 환상을 보았다. 베드로야 먹으라. 부정한 것은 못 먹습니다.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어찌해서 하나는 깨끗한 짐승이고 어떤 것은 부정한 짐승인가?-이 기준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하면 부정하고,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하면 깨끗한 것이다.-사람이 만든 것은 버리고 성경에 있는 대로만 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순종하면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목사의 창의성이 필요 없다. 훌륭한 신학자의 도움이 필요 없다. 그러므로 잘 믿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말씀을 읽고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나타나셨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를 많이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를 불러서 구원을 받게 하셨다. 만약에 어느 인간이든지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찾고 선하게 살려고 애를 쓴다면 선교사를 보내셔서 그를 구원해 주시려고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이 흔하지 않다.

3. 교회의 확장: 땅 끝까지(13-28장)
* 지도 보기(3): "바울의 1,2차 전도 여행"

* 첫 번째 전도 여행/13-14장
* 2년 동안(첫번째 여행은 2년, 둘째는 3년, 셋째는 4년 걸렸다.)

* 갈라디아 지방(34 페이지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지역을 갈라디아라고 부른다.)
이렇게 갈라디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보니 자꾸 이방인들을 유대인들처럼 만들려고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논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다가 복음을 믿은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방인 신자들을 할례를 받게하고, 모든 율법의식을 지키게 하려 하였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복음은 예수 + nothing이라고 하였다.

* 예루살렘
* 총회
* 율법? 아니요!
그러나 계속해서 유대인들이 문제를 일으키게 되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대표를 보내어서 이 문제에 대하여 복음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게 하였다. 이때에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이 문제를 놓고 의논한 결과 그들은 구원을 받는 데에는 예수 외에는 아무 조건도 없다고 결론을 맺었다. 구원받기 위해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법을 지켜야 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그러나 믿은 후에 자원하여 말씀에 순종할 수는 있다. 복음을 구체적으로 요약을 해서 들려주면 듣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여기에 율법은 끼어 들 자리가 없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깊이 깨닫게 될 때에 참다운 삶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에 총회 장이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였다. 그리고 이때에 사도들과 바울이 교제의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제 두 번째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 두 번째 전도 여행(15:-)
* 3년 동안

* 마게도냐 아가야 그리이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흘렀고, 남서쪽인 아프리카로 흘러 들어갔다. 그래서 2-5세기에 유명한 신학교와 신학자들이 많이 일어났다. 사도 바울은 두로와 시돈을 거쳐서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갔다. 이 곳에서 길리기아 지방으로 돌아서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가서 드로아에 이르렀다. 이때에 성령께서 이 곳으로 더 이상 가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마게도니아에서 바울을 부르는 환상을 보게되었다. 그리하여 유럽으로 복음이 전해지게 된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서 네압볼리, 빌립보(감옥에 들어감-찬송과 지진으로 간수가 자살 하려고 함-그를 구원함-그 밤에 그 간수와 가족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이 곳에서 루디아라는 여인-데살로니가에서 온 여인-이 복음을 듣고, 점치던 여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곳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빌립보서에는 계속 기쁨이란 단어가 등장함. 그 후에 반대에 부딪혀서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를 거쳐서 아덴과 고린도(서울)와 겐그레아(인천 같은 도시) 지방으로 여행하였다.)

빌립보가 있는 지역을 마게도니아라고 불렀다.(지금의 알바니아) 소아시아는 지금의 터어키 그리고 남쪽은 아가야(지금의 그리이스)라고 불렀다. 바울이 바로 이 아덴에 이르러 논쟁과 논란을 벌였다. 고린도에 약 1년 6개월간 있으면서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썼다. 이때에 죽은 가족들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안믿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슬퍼하라고 하였다. 그들은 이미 주님의 재림이 지나가고 자신들은 다 버립받은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하였다. 이때에 사도 바울은 죽은 자들이 먼저 살아나고 살아있는 자들과 함께 공중으로 들림을 받을 것이므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다.(살전후) 그리고 겐그레아에서 에베소로 건너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려고 이미 곳곳마다 회당을 준비해 놓으셨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상당히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알렉산더가 헬라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 그래서 전세계 공용어는 헬라어였다. 그래서 주전 150년 구약 성경을 그리이스 성경으로 번역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유대 사람이면서 유대 말을 잘 몰랐다. 그래서 헬라어로 성경을 번역했는데, 이것을 70인경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때에는 사도들이 헬라어로 쓴 신약 성경을 썼으며 구약 성경도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주전 4-500 년경 에스라를 통해서 10명만 있는 마을에는 곳곳에 회당을 지어 놓았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서 95년에 죽게 되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를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 등에서 예루살렘을 위한 구제 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에 전해 주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선교 보고를 하였다.

잠시 쉬었다가 바울은 또 다시 출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에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인해서 다툼이 있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가기를 원했고, 바울은 그를 데려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마가가 어려서 일차 여행에서 돌아간 것이 그 싸움의 문제였다. 그래서 바울파와 바나바 파가 갈라졌다. 바울은 누가를 데리고 다시 전도한 지역으로 갔고, 바나바는 또 다른 지역으로 따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이것을 보면 꼭 한국교회와 같다. 장로교가 수십 개가 된다. 한국 교회는 교단이 생육하고 번성했다. 그러나 인간은 싸워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손해를 보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싸움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셨다. 단결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성숙해 가는 재미있게 목회 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싸우고 분열은 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 성숙해 가는 교회는 드물다.

* 세 번째 전도여행
* 4년 동안

* 지도 보기(4): "사도 바울의 세 번째 전도 여행"

* 소아시아
이제 바울은 세 번째로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약 4년간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1차 전도 여행을 했던 갈라디아 지역은 들리지 않고 직접 에베소로 갔다. 그래서 이곳에서 드로아, 네압볼리,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를 방문을 하였다. 이때에 드로아에서 바울이 고별 설교를 밤늦게까지 하다가 한 청년이 창문에서 떨어져서 죽은 일이 발생을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 오면 조는 사람들이 있다. 호롱불에서 나오는 탄산가스를 창문에 앉은 사람이 다 마심-그리고 고린도에서 56-7년에 로마서를 썼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에도 많은 열매를 주셨는데, 이제는 스페인까지 가야하겠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때에 이미 로마에는 교회가 있었다. 로마에 가서도 복음의 열매를 맺고 싶다고 한 유명한 로마서가 이때에 쓰여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때는 2차 여행과 같이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쳐온 모든 지역들을 다시 돌아서 갔다. 그리고 드로아에 이르러서 밀레도에 이르렀을 때에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을 다시 초청하여 고별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다시 배로 여행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때에 약 2년간 있는 동안에 누가를 데려왔다. 이때에 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자료를 수집하여 누가복음을 쓸 자료를 수집한다.

* 재판
* 벨릭스
* 베스도
* 아그립바
바울이 예루살렘의 환영을 받자마자 사도들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유대인들이 당신이 모세도 금하고 할례도 금하고 율법도 금하고 있다고 하여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알려준다. 결국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 잡혀서 공회에 끌려가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된 배경에 대하여 유명한 간증을 하게된다.(22장)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사형을 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로마 총독이었던 벨릭스에게로 끌고 갔다. 그래서 벨릭스가 심문을 하였으나, 바울이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고 황제에게 항소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감옥에 약 2년 동안 있게 되었다. 24장 맨 마지막 절을 보면 "이태를 지나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베스도가 와서 보니까 아직 미결된 죄수가 하나 있다고 하여 조사를 해보니 아무 잘못이 없어 보였다. 그리하여 당시에 유대인의 왕이었던 아그립바 왕에게 심문을 받게 하였다.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조사를 해보니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리하여 아그립바 왕이 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하지 아니하였으면 놓아줄 뻔 하였도다.(26:31-32)고 말함.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받을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아그립바가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놓을 수 있을 뻔 하였도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로마로 호송할 것이 결정이 됨.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로 호송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간에 풍랑을 만났으나 바울이 그들을 격려하고 인도해 준다. 위기 속에서의 사도 바울-하나님과 친하니까 풍랑 속에서도 담대하다. 정말 신앙이 있는 사람은 풍랑을 만나야 알 수 있다.-평상시에는 모두 다 신자 같으나 정말 어려움이 당하면 진짜가 나타난다.-일제 시대에 다른 목사님들이 다 포기할 때에 주기철 목사님같이 고난을 당한 사람이 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고 의뢰하는 사람들은 시련이 올 때에 그 진가가 발휘된다. 바울은 한 명도 안 죽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배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서 배 한 조각씩 붙잡고 살아났다.

* 첫 번째 감옥살이(27-28장)
* 석방됨
그리하여 그들은 살아난 후에 로마에 도착하였다. 28장 23절을 보면 결론 부분이 나타난다.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는지라"(28:23) 바울은 감옥에 갔다가 잠깐 놓였을 때에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였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문제가 없다.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면 된다. 그래서 어디 가서 무엇을 하면서 살든지 믿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진짜 신앙 생활은 삶 속에서 나타난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러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디를 가도 예수님을 전하는 일만 하였다. 우리의 인생의 목표도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어 그 말이 서로 맞지 아니하니..."(28:24) - 사도 바울은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 이사야의 예언을 빌려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눈과 귀를 받지 못하게 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만 하면 된다.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

* 두 번째 감옥살이

* 확장
사도 바울은 이때에 집을 하나 세를 내어서 가택 연금 상태로 이년간 있었다.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28:31-) 사도 바울은 이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으나 아무도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가 바로 62년쯤 된다. 60년경에 로마에 와서 62년까지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서를 쓰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사도행전의 이야기이다(42 페이지의 연표를 읽어줌). 전설에 의하면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는데, 그때에 그는 스페인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에 그는 다시 로마에 와서 네로 때에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베드로는 64년경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울은 이 곳에서 마지막 편지(디모데후서)를 썼다. 그는 디모데후서에서 자기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리고 (누가만 그와 함께 있었다) 마가를 데려오고, 추위를 가릴 겉옷과 성경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바울은 68년 봄에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70년 9월에 이스라엘은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해서 멸망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나라도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1948년에 독립하게 된다. 이스라엘인은 약 1500만 정도인데 이스라엘 본토에는 약 300만 명이 살고 있다. 우리도 사도행전을 보면서 도전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4. 신약성경의 산책: 바울서신
이제 바울 서신입니다. 이 편지들은 주로 자신의 전도여행 때에 세운 교회들에 보낸 편지들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들은 처음 교회들이었기 때문에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이 그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바로 바울서신(교회서신)입니다. 그리고 목회서신은 자신이 키워놓은 목회자들(디모데, 디도)에게 보낸 편지들로 목회서신이라고 하고(딤전?후, 디도서), 교회로 보낸 서신은 9개인데, 롬, 고전?후, 갈, 엡 빌, 골, 살전?후이고, 옥에 갇혀서 썼던 편지들을 옥중서신(엡, 빌, 골, 몬)입니다.

갈라디아서는 49년 가을 안디옥에서 쓰여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이 율법과 할례를 요구하게되었을 때에, 사도 바울이 구원을 얻는 데에는 예수 + nothing임을 가르쳐 주려고 쓴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예루살렘 총회에서는 이 것이 사실임을 결정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고린도에서 51년 여름에 쓰여졌습니다. 고린도 전서는 에베소에서 56년도 봄에 쓰여졌고, 고린도후서는 마게도니아에서 56년 9-10월경에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56년경 겨울에서 57년경에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는 로마에서 60년 가을에,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는 로마에서 61년 가을에, 빌립보서는 로마에서 62년 봄에 쓰여졌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가장 많은 책을 썼다. 이와 같이 믿는 신자는 어디에 있든지 상관이 없다. 믿는 신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복음을 전하면 된다.

그리고 잠깐 석방되었다가 디모데전서를 62년 가을에 마게도니아에서 디도서를 썼고, 소아지아에서 66년 여름에 디도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다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디모데후서를 로마 감옥에서 67년 가을에 쓰고 최후를 마쳤다. 이제부터 각 책별로 가장 중요한 주제 하나씩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지도 보기(5): "서신서가 보내진 장소들"
1. 로마서의 주제는 무엇인가?-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요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3:23-24)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
* 모든 사람이 완전하지 못하다.
죄라는 단어는 원래 겨냥을 했는데 맞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하심이다.
*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가 모두 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도달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 완전하심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 죄인인가? 인간에게 죄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죄성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짓는다. 죄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죄의 상태(sinful state) 를 죄라고 하며, 둘째는 악한 생각(행동은 없어도 생각을 한 것), 셋째는 그 결과로 악한 행동을 한 것(겉으로 나타난 것), 옳게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사무엘-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으리라)-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3:11)"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구속-대가를 지불하고 샀다는 말이다.
지불완료-pay in full-"다 이루었도다."-테텔레스타이-다 지불하였다.
우리가 잊어버린 죄까지도 다 지불하였다.-

*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는 선물-구원은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다.

* 값없이
주님께서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런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칭의)
죄가 있는 데 없다고 선언을 하는 것을 말한다.

* 기가 막힌 교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로마서를 읽으면 우리의 죄의 짐이 모두 사라진다. 신앙이 떨어지면 로마서를 먹이라-로마서는 우리의 신앙의 근거를 분명하게 세워준다.-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자 그러면 로마서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 네 번째에 있는 "몸값 지불 완료"입니다.
* 이 로마서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히 되어있습니다.

1) 죄(1-3장)
모두 다 죄인이다. 유대인, 이방인, 헬라인, 종교인, 도덕적인 사람도 죄인이다.

2) 구원(4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3) 성화(5-8장)
새 생명을 받았으니까 성장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악의 도구로 너희 몸을 사용했지만 이제부터는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려서 의의 도구로 사용하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라.

4) 하나님의 주권(9-11장)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서 마지막에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 때문에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5) 사랑과 봉사(12-16장)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러므로-죄인이 값없이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을 받고,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주권 하에 살고 있기 때문에-하나님의 시민으로 또 이 세상을 사는 사람으로 어떻게 봉사하며 살 것인가?-어떻게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개발하여 그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봉사해야 할 것인가?-로마서는 너무나 멋있는 책이다. 이 책을 강해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로마서를 읽으면 은혜가 충만해진다.-몸값 지불완료-

2. 고린도 전서의 주제는 무엇인가?
고린도가 어느 지방에 있습니까? 예 아가야입니다. 지금은 그곳을 그리스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그리이스 정교가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처음에 기독교가 하나가 있다가 1000년에 와서 둘이 되었습니다. 구교와 정교(희랍정교, 소련의 정교)가 1054년에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1517년에 와서 구교 쪽이 또 신교와 구교로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기독교는 세 개로 갈라졌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무역도시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뉴욕이나 홍콩 같은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사람들이 이 도시에 장사를 하려고 모였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되는 곳에는 악한 일과 타락이 심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신전이 있어서 사람들이 장사하러 나가기 전에 미리 고사를 지내고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이 도시는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한 도시였다. 어디에나 항구 도시는 타락한 곳이다. 배를 타고 나갔다가 와서 놀기만 하기 때문에 이러한 향락문화가 발달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부산과 같은 항구도시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바울이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문제가 복잡했습니다. 우상 제물, 처녀 문제, 믿는 사람들끼리 고소함, 부모와 성적인 문제, 서로 자기 신앙의 입장에서 남을 판단함, 당파 문제, 영적인 은사 등의 문제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므로 고린도서는 한 번 설교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서에 있는 문제가 세상에 있는 교회에도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들을 그대로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임./ 너무나 문제가 많으니까 사람들이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편지를 보내서 각 문제별로 설명을 하였다.(13개의 항목별로)-그러므로 바울이 이 각 항목별로 답변을 하여 가지고 온 그 사람의 손에 들려서 보냈다.-고린도 전서와 후서 사이에 또 다른 편지가 있었던 것 같다.-그러나 그 편지는 사라진 것 같다.-"내가 전에 보낸 편지에는..."-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꾸짖고 협박하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자 이제 그러면 고린도 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예 "성도를 꾸짖음"입니다.

3. 고린도 후서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꾸짖음을 들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할까요?-사람들은 섭섭합니다. 그러니까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사도면 사도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그가 사도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직접 예수님께 배운 제자도 아니고, 예수님의 부름을 진짜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그런데 그 소식이 바울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부는 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한 사람들도 있고(당파, 은사...)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바울을 반대하며 반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마게도니아에서 이 편지를 받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사람을 향해서 당장에 편지를 썼다. 내가 직접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바울과 교제의 악수를 한 것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돈을 받고 일을 했는가? 내 손으로 텐트를 만들어 가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사도 바울의 가슴에 있는 감정을 쏟아내면서 말을 하고 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는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심정으로 꾸짖고 교정시켜 주는 것.-그러면 고린도 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예 "적나라한 사도"입니다.

4.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는 6장밖에 안되는 짧은 책입니다. 우리가 48 페이지의 도표에서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바울 서신 중에서 맨 처음에 써진 책 중에 하나입니다. 이 책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불과 20년도 안돼서 써졌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마태복음을 45년경에 써졌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마태복음이 써진 지 불과 4년 정도 후에 써졌습니다. 갈라디아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에 개척한 지방입니다. 교회를 세워서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율법과,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능통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갈라디아 사람들은 그들에게 쉽게 동요되었다. 은혜대신 행위를 주장하려고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안디옥에서 안식년을 지내면서 이 소식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내가 금방 돌아왔는데 어떻게 벌써) 떠나(정도에서 벗어나서 다른 길로 가려고 돌아서고 있음) 다른 복음(예수 + something) 좆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너무 놀라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1:6)

"다른 복음은(예수+something)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예수+ nothing) 을 변하려 함이라"(1:7)-바울은 이 편지에서도 이신칭의의 교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5:1)-인간이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유케 되었으므로, 그 자유에 굳게 서 있으라. 그리고 다시는 그 종의 멍에를 다시는 메지 말라.-이것은 마치 애굽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서 애굽인의 종노릇하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에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2:20)-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따라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게 되어 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5:19-21)-육체를 따라서 살 때에 맺혀지는 열매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을 따라 살 때에 맺혀지는 것들-우리가 이러한 것들이 부분적으로 있다.- 부족한 것은 육체를 따라 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5:24)-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다.-그러므로 다시는 율법을 지키려는 데로 돌아가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함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예 "해방됨"(다시 말하면 "오! 자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갈라디아서는 6장밖에 안되지만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주는 책입니다. 고린도서를 읽고 싶었는데 이제는 또 갈라디아서가 읽고 싶지요? 자 이제는 에베소서로 넘어가겠습니다.

5. 에베소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어디에서 썼습니까? 예 로마 감옥에서 썼습니다. 에베소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기위해서는 에베소서를 읽으면 됩니다. 에베소서도 매우 조직이 잘된 책입니다.

1장-구원의 문제
2장-믿는 사람의 위치는 어디인가?
3장-4장 전반부-하나됨
4장 후반부-거룩한 삶
5장-가정, 사회 생활
6장-분쟁을 극복하는 길, 영적전투

에베소 사람들이 교회를 형성했는데 교회 안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특히 이방인과 유대인간에 분쟁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둘을 합하여 한 교회를 지으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선포하고, 서로 하나가 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내가 믿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셨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속해 주셨으며, 성령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믿게 하며 중생 시켜 주셨던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건물을 지어나가듯이 전 세계의 성도들을 불러서 교회를 세워 가는 것이다. 교회를 지어가기 위하여 우리들을 한 사람씩 어떻게 부르시는가?(1장)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2:8-9)-그러므로 구원문제 하나만은 아무도 자랑할 사람이 없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교회를 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결합되어 한 교회를 지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라도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교회가 완성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로 상대방이 필요 없다고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는 사도 바울은 답답해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그 은사를 발휘하여 일을 이루어 가야하는데, 서로 연합하라. 이 교회의 초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 토대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이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사도들이 토대가 되어 그 위에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 것이다. 이 건물은 언젠가는 완성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데리러 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령님에 의해서 교회를 지어가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교회의 기초를 쌓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현재에는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셨다. 복음전하는 자는 복음을 전하면 교회 안에는 목사요 교사들이 기다리고 있다.(목사와 교사-목사 선생님-헬라어에는 정관사 하나에다가 주어를 명사를 두 개 붙여서 접속사를 합하면 그 의미는 하나이다.-목사이며 교수인 사람)

* 목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성경을 가르친다-왜 성경을 가르치는가?

"성도를 세우기 위하여"(4:12-)-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목사가 각 성도들이 은사를 사용하여 각 위치에서 뛸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목회를 하게 하며-목회를 누가 하는가? 성도가 한다. 목사는 훈련을 하고 성도는 목회를 한다.-ministering-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선지자와 사도와 복음 전하는자가 복음의 기초를 쌓고 복음을 전해 놓으면 교회 안에서는 목사가 성도들을 훈련시켜서 각 성도들을 목회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함께 교회를 세워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완성되어 가는데, 교회가 완성되어 가면서 성숙되어가는 것은 어디에 가서 나타나는가?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찬양하는 삶을 살라. 그리고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그 성숙한 삶을 살아가라. 목회자의 참 설교는 단상에서 내려왔을 때가 진짜 설교이다.(5장) 영적인 전쟁은 육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전쟁은 바로 주안에서 강건하여져서 힘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진리의 띠, 의의 흉배, 믿음의 방패,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발,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을 가지라. 그리고 이렇게 해서 교회를 세워라. (6장) 그러면 에베소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예 "몸을 세움"입니다.

6. 빌립보서의 주제는 무엇인가?
* 빌립보서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기쁨"이란 단어이다.
"간구할 때마다 너희를 인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1:4)
"그러면 무엇이뇨...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서 내가 기뻐하고 기뻐하노라"(1:18)
"기쁨을 인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할 것을 아노니..."(1:25)-계속 기쁨이란 단어가 나타난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4:10)

* 바울은 기뻐하라는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기뻐하였다.-어떻게 감옥에서 이런 기쁨을 누릴 수가 있었을까?-기쁨의 생활은 참된 크리스챤의 특징이다.-진정으로 성령 안에서 거듭나고 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기쁘게 사는 훈련을 해야 한다.

* 빌립보서에는 보석과 같은 구절들이 많이 있다.

1) "너희 속에 착한 일을 하신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
내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그분이 결국 주님의 날까지 모든 일을 이루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에 기쁘다.-바울은 내 능력을 의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다.

2)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1:20-21)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살아있어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았고, 또 죽어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으려 하였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죽든지 살든지 다 유익한 것이었다.-항상 남을 유익하게 하려고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어느 환경에 처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5-8)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셨다.-겸손한 마음을 품으라.-너희 안에 이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춘 주님을 높이셨다.-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신다.-겸손하면 기쁘게 살 수 있다.-교만하면 고난이 많다.

4)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10-11)

5)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3:7-9(상))

6)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좆아 가노라."(3:13-14)

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염려 근심을 하지 말라.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지켜 주신다.

8)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나를 인하여가 아니라 능력 주시는 주님으로 인해 할 수 있다.

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4:19)

* 빌립보서를 가지고 살 것을 각오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터득할 수 있다.
* 자 이제 그러면 빌립보서의 주제를 무엇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예 겸손한 마음입니다.(기쁨의 삶도 가능함)

7. 골로새서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 요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1:15-18)

1) 그리스도는 만물의 으뜸 되신 분
2)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2:9)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의 신성으로 가득 채워진 분이시다.
그러므로 주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

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다.
"거기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 당과 무 할례 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3:11)

4) 그리스도는 모든 것(만유) 이다. 그리고 모든 것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특별한 겅험이나 경험이 없어도 그리스도만 소유하고 있으면 모두를 가진 것이다.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였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골로새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예 "그리스도의 주되심"(신성이 충만하신 그리스도)입니다.

8. 빌레몬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다. 그런데 그 종이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하였다.- 그런데 그가 도망을 가서 바울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다 고백하였다.- 그러자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서 형제로 대하여 용서해 줄 것을 권유하는 서신이다.-"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18-)-대속과 용서의 원리- 그러면 이 책의 주제는 무엇입니까?-예 "형제로 묶음"입니다.-또는 "용서의 교범"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9. 데살로니가전서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 살전은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글입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1:10)

성경에는 재림을 두 가지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날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백성을 데리러 오는 기쁜 날이다. 그러나 주의 날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날이다.-미래에 주님의 구원의 날이 오기 때문에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2:19)-소망, 기쁨, 면류관-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3:13)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함이라."(4:13)(소망 안에서 기뻐함)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4:14)(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죽은 가족들도 데리고 오실 것이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좆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휴거)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4:15-17)
(죽은 자들이 먼저 살아나고-그 후에 우리 살아있는 자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4:18)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5:23)
평강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것이다.-그러므로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주님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함)/우리는 우리의 영만 보존되면 되는 줄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정신과 몸까지도 흠없이 보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까지도 흠 없이 보존되기를 원하신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5:16-18)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슬퍼하며 살기를 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항상 기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사람을 살기를 원하신다.-그러면 살전의 주제는 무엇입니까?-예 "목표(주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라."입니다.

10. 데살로니가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살전이 "그리스도의 날"(신자에게 축복이 되는 날)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면, 살후는 "주의 날"(진노와 심판의 날)이 목표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1:3-4)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기본적인 것만 있으면 된다./ 이들은 심한 박해를 이겨내면서 이러한 믿음, 소망, 사랑을 키울 수가 있었다./ 이들은 너무도 심한 박해를 당하면서 구약의 진노의 날이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장차 그 날이 오기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하였다./ 이 환난은 그 나라를 위한 준비작업을 하는 것일 뿐이다.(1:5)/ 그리고 주님을 모르는 자들과 물의를 행하는 자들은 그 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실 것이다.(1:7-9)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마음이 흔들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것이 그것이라."(2:1)
이 문제에 대하여 흔들리지 말라. 여호와의 날이 오려면 먼저 몇 가지 일이 일어나야 한다.

1) 배도하는 일(1:2)-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신자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나가는 일이 발생한다.

2) 불법의 사람(멸망의 아들-적그리스도)이 나타남/ 하나님을 대적하는자-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1:3-4)/

지금도 작은 적그리스도들이 돌아다닌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들은 표적과 이적을 많이 행한다. 그러므로 이적이나 표적을 성경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에 이단에 미혹되지 않는다.(10-12)-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7)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만 기다리고 일도 안하고 일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일하지 않고 규모 없이 행하고 바울이 전해준 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3:6)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3:12)

* 그러면 살후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예 "그 날을 기다리면서 일하라" 입니다.

11. 디모데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 딤 전?후, 딛은 누구에게 쓴 편지입니까? 예 목회자에게 쓴 목회 서신입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1:18)
바울은 목회를 선한 영적 전쟁으로 보고 있다.-집사와 장로의 자격이 거의 비슷하다.(3:1-7)-다같이 한번 읽는다.-책망 없음, 가정, 인격, 연륜-교회 지도자는 신앙과 삶과 인격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3:16)-3장의 요절

* 4장-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4:12)

* 목회자의 자세-강제로 위치를 주장하지 말고 본을 보임으로 리더십을 세우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4:16)-목회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삼가며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자신과 듣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게된다.- 교회를 성장시키려 하지 말고, 자신을 성장시키려 합시다.-교회를 성장시키려 하지 말고 교인을 성장시키려 합시다.

* 노인, 과부, 장로들에 대한 태도, 몸 관리를 잘하라.(질병에서)(5장)-종들이 해야 할 일

* 목회자의 자세들(6장)-
"지족 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되느니라."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며 족한 줄로 알 것이라."(6:6-8)
목회자는 먹을 것 입을 것만 있으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외에 더 있으면 감사하게 된다.
그러면 딤전의 주제는 무엇입니까?-예 "지도자의 교범"입니다.

12. 디모데 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 목회자로서 어떤 전쟁을 해야 하는가?
* 목회자는 좋은 군사(2:3), 농부(2:6), 경기하는 자(2:5)와 같은 사람이다.
* 말세에 이르면 어려운 때가 이르게 된다.
*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더욱 더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야 한다.
* 말씀만이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가 있다.

* 내가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다.(4:6)-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었다.
* 그러면 딤후의 주제는 무엇입니까?-예 "영적 전투 교범"입니다.

13. 디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 딛은 디모데서와 매우 비슷합니다.- 교회 질서를 유지하라는 것이 주제이다.- 이 서신에서는 "선한 일"이란 단어가 많이 나타난다.-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2:7)-

* 이 책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예 행동의 교범입니다.-

5. 신약 성경의 산책: 일반서신
바울서신은 수신자가 교회 혹은 개인의 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서신은 수신 교회를 모릅니다. 그냥 모든 성도들에게 일반적으로 썼다고 해서 일반 서신이라고 합니다. 일반서신은 히브리서부터 계시록까지 9개입니다. 히브리서만은 저자를 알 수 없습니다. 바울 같기도 하고, 바나바 같기도 하고...

1. 히브리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히브리서는 유대인들을 위해 써진 것 같습니다. 유대의 절기 및 습관 및 예식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한마디로 히브리서는 레위기의 신약주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ew Testment Commentory Boook of Leviticus) 레위기의 모든 규례들을 신약적으로(영적으로) 설명해 준 것이다. 영적으로 미성숙한 위치에 있는 성도들에게 성장할 것과 전진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일주일간 세상에서 죄만 짓고 주일에 회개하는 식의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듯이 기도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하는 일주일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일주일이 되어야 한다. 유대 사람들은 늘 율법에 얽매여 가지고 잘했는가 잘못했는가, 또는 이것을 해야 하는가 해서는 안되는가 등의 일에만 사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깨닫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늘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늘 회개와 안식 등에 대한 기초를 다시 쌓지 말고 더 나은 데로 나아가라고 권유하고 있다.

* 1-4장 : 그리스도의 성품(인격)의 우월성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보다 낫다(better than)는 단어이다. 주님은 구약 세대의 어떤 것보다도 낫다고 함. 구약 보다 우월한 신약-(1:1-3) 구약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지만, 신약은 아들을 통하여 직접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 선지자들 보다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천사보다 나은 그리스도-(1:4)"저가 천사보다 얼마나 뛰어남은..."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3:3)"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 존귀함 같으니라."모세-집 맡은 사환-그리스도-아들로서 충성함(3:5-6)/ 여호수아 보다 나은 그리스도(4:8)"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 5-10장 : 그리스도 사역의 우월성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구약의 제사보다 우월하다. 구약의 제사는 계속 반복해야 했다. 짐승의 피로는 사람의 죄를 사할 수 없다. 이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 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는 자신의 몸으로 단번에 용서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전휘장을 찢어놓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직접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직접 나아가라. 우리에게는 이러한 대제사장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올바르게 살 때에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고, 항상 은혜로 받아들여진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직접 체휼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우리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돌아오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언제든지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전진하자.

* 11-13장-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우월성

* 11장(믿음장)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11:1),

* (11:32-40) 까지를 한 번 읽어보자.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2-34)

* 믿음으로 한 승리의 순간들-(35-38)

* 믿음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들-믿음은 축복만이 아니라 역경을 기쁨으로 견뎌내는 것까지도 포함한다.(11:39-40)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음은 순경과 역경을 모두 다 이겨낸다.

* 이와 같이 히브리서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과, 신앙의 우월성을 제시하면서 구약의 율법적 신앙에서 떠나서 더 나은 복음의 신앙의 생활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주제는 "젖과 단단한 음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더 나은 신앙으로 전진하자)

2. 야고보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 야고보서의 내용은 "신앙의 생활화"입니다. 즉 참 믿음은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을 동반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생각이 변하고-태도가 변하고-말이 변하고-행동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거듭나게 된다.

* 그러므로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변화가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기는 젖을 먹으면 성장하게 되어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받은 전과 그 이후를 잘 돌이켜보면 우리가 중생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다. 전혀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이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를 체크해 보아야 한다.

*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시련을 어떻게 대처하는가? 믿는 사람들은 시련을 당하면 기뻐한다./ 일반적으로는 시련을 당하면 낙심하고 좌절에 빠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련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이다. 우리를 연단시켜서 더 완전하고 구비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오면 우리에게 시련이 와도 다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1장)

* 야고보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예 "믿음의 측정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 또는 "믿음의 생활화" 라고도 할 수 있다.)

3. 베드로 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는 64년경에 로마에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바로 네로가 황제가 되어서 기독인들을 심하게 박해를 할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닥쳐올 시련과 핍박에 대하여 언급을 하면서 성도들을 준비시키려고 썼습니다.

* 1장 : 성도들의 구원과 시련의 문제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고, 여러 가지 시련과 연단을 받는다.(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시련과 연단은 그리스도 앞에 나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인으로 서게 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다가 올 시련에 대하여 미리 예고해 주고 있다.

* 2장 : 성도들과의 관계
통치자, 부부, 사회적인 관계를 제시해 주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말해준다. 잘못해서 받는 고난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에는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서 그 고난을 이겨내라는 것이다.

* 3-5장 : 고난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
고난을 적극적으로 대처하라. 고난과 소망 그리고 연단이란 단어가 많이 나타난다. 우리를 연단해서 흠없는 신앙인으로 만들려는 것이 바로 불과 같은 시련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의 주제는 "목적있는 연단"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4:12-13) "형제들아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난해 구절(벧전 3;19)-옥에 있는 영혼에게 전파하시니라.-그리스도께서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구속의 역사가 끝났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전파가 아니라 "선포"라는 단어이다.


4. 베드로 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초대 교회에 점차로 거짓 선지자들이 들어와서 미혹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선생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 1장 : 믿음의 성장:
믿음은 성장하게 되어 있다.(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divine nature)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으니..."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다. 그 동안에는 악의 성품뿐이었는데, 이제는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육신의 자손인 이스마엘만 있다가 약 속의 자손인 이삭이 생긴 것과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삭이 어리기 때문에 이스마엘에게 당하지만, 후에 이삭이 자라면 이스마엘을 i아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로 이러한 삶의 출발이다. 그리고 그 위에 하나씩 신의 성품을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믿음을 집의 기초로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덕을 쌓아야 한다.-덕-도덕적인 우수함을 쌓아라. 더 위에다 지식(영적 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 우애-사랑(사랑은 지붕이다.)

(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더욱 힘써"라는 말이 바로 영적 성장의 키이다. 더욱 열심히 하면 이런 것들을 쌓을 수 있다.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더욱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택하심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 주관적으로 확실하게 하려면 위에서 말한 덕들을 계속 쌓아가야 한다. 이미 객관적 부르심에는 변화가 없으나 개인의 신앙은 이런 영적인 자질이 형성되지 않으면 자신과 확신이 결여된다. 신앙은 성장을 해야 우리의 주관적인 확실성이 견고해진다. 내 쪽에도 확실하고 하나님께도 확실하게 하려면 더욱 힘써서 이런 신적인 자질들을 계속해서 쌓아 나가야 한다.

* 2장 :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와 주의할 것을 경고함

* 3장 : 종말에 대한 경고
로마 시대에 베드로가 로마에 가서 죽게되었다. 그리그 그 후에 믿는 사람들에게 계속 박해가 증가되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을 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이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오시지 않자 성도들이 낙심을 하게 되었다.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와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몇 천년이 하나님께는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한 가지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하려는 기회를 주시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신 것이다. 80년을 기다려 주었는데 믿지 못하였다면 더 이상 변명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베드로 후서의 주제는 "교회 안에 들어 온 해악"입니다.

5. 요한1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 요한 1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교제, 사귐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1:3)

사귐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서로 간에 교제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제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 그 첫째는 죄이다. 우리에게 일단 죄가 있으면 교제가 끊어진다. 요한 1서에서는 하나님을 빛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는 것과 같이 진리 안에서 행하며 서로 사귐이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1:8)-우리가 죄가 없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인정하고 때때로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1:9)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우리에게는 하늘에 우리를 위한 대언자가 있다.

계명을 지키며 사는 자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모두 버리고 밝고 평화롭게 살아가자.

두 번째로 요한 1서에서는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다. 사랑하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한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면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요한 1서의 주제는 교제, 또는 사귐이다.

6. 요한2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 문단속을 잘하라.-당시의 거짓 선생들을 경게하고 있는 책이다.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을 멸시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했다. 그러나 에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면서도 그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하는 자는 적 그리스도이니 영접하지 말라.

7. 요한3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 손대접-성도들을 영접하고 서로 사랑으로 대접하라. 가이오 장로 처럼 형제들을 잘 대접하고 디오드레베와 같이 손님들을 박대하지 말고 남을 비판하지 말라.

8. 유다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전하고 사도들이 우리들에게 전해 준 이 복음은 변할 수도 없고 변개시킬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 복음의 진리를 굳게 잡고 믿음의 투쟁자가 되라.

9. 요한 계시록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이 책을 잘 안 읽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진노와 심판이 많이 나타나서 두렵고, 두 번째로는 이 책이 이해하기가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생각만큼 난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들을 잘 읽고 지켜서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1:19)-

* 네가 본 것-천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1장)
* 이제 있는 일과-일곱 교회의 모습(2-3장)-현재 교회의 모든 실상이 나타난다.
* 장차 있을 일(4-21장)-7*7-7 가지 인봉의 재앙-일곱 번째 인봉을 뗄 때에 7 나팔의 재앙이 시작됨-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에 7 대접의 재앙이 시작됨-큰 성 바벨론의 멸망-사단과 적그리스도의 완전한 멸망-그리스도께서 1000년 왕국을 세우시기 위하여 나타나심-영원한 왕국이 예비 됨-우리가 앞으로 당할 모든 어려움들과 우리의 마지막과 갈 길이 보인다.

* 이제 여러분들이 성경 전체의 내용을 보았습니다.
* 이제 여러분들은 집에서 성경 책을 한 권씩 자세히 공부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복음서

강사 : 주성준 목사

복음서들: 공관복음서들과 요한복음은 예수의 생애를 그 내용으로 한다.

복음이란?:
ㄱ. 고대전기 (“bios”)--유명한 정치가, 장군, 혹은 철학자의 일대기 (예: Plutarch's “Lives”는 그리스와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들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다).
ㄴ. 행전 (“praxis”; acts)--유명한 사람들의 영웅적인 행적에 대한 기록 (예: Arrian's “Anabasis”; 예수는 위대한 인물이었는가?).
ㄷ. 회상록 (“apomnemonumata”; memoirs)--유명한 사람들의 경구, 격언들을 모아 놓은 것, 대체로 연대기 작가나 혹은 제자들에 의해 전해짐 (예: Socrates (469-399 B.C.; Xenophon (c. 380 B.C.). 위와 같은 범주들중 한가지도 복음서를 적절하게 표현시켜 주지 못 한다. 복음서의 기록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신앙으로 쓰여 졌다. 따라서 복음서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과거의 회상으로, 전기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교회 혹은 공동체안에서 실재적인 체험으로 인식되는 임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다. 복음은 복음선포의 자료들로, 나사렛사람 예수의 삶, 사역, 죽음과 부활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기록한 것으로 믿는 자들의 삶을 새롭게 한다.
복음(euangelion)은 여러 구절에서 구전(oral), 사신(使信), 선포(宣怖)를 의미한다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 . .”). 바울은 복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롬 1:16; 1:1; 15:26)라고 하여 복음의 근원을 제시하며, 나아가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복음”(롬 15:19; 고전 9:12-18)이라 말한다. 한 가지 덧붙여 중요한 것은 바울이 전한 말과 같이 복음의 권위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4)는 말 안에서 찾아 볼 수도 있다.
마가복음 서두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기록된 것은 복음서가 기록된 당시의 배경을 바탕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이 복음이 문자 그대로 기쁜 소식이라는 견해는 초대교회 이래로 교회의 주장이 되고 있다. 복음서들의 저자들을 전도자라고 할 때, 전도자의 의미는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은사로서 사도, 예언자, 전도자, 목사와 교사 (엡 4:11)중에 나타난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교회의 기초를 이루는 사역을 감당했다고 하면, 나머지 직분들은 교회의 성장과 지속적인 사역을 여전히 감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목사와 교사의 직분이 지역교회를 섬기는 데 있다면, 전도자는 지역교회의 범위를 넘어서 사역을 감당한다고 여겨진다. 3세기에 이르러 복음서저자들을 전도자라 칭하게 된다 (딤후 4:5에서 전도자는 복음서 저술과는 관계없는, 선포의 위임을 받은 자로 보아야한다).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사복음서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인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핵심을 기록한다.
2. 복음서들이 역사적인 기록이란 의미는, 1세기 당시의 유대주의와 헬라, 로마사회를 배경으로 예수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자들의 주관적 판단 기준에 의해 해석되어진 역사로만 보는 것은, 복음서의 객관적 역사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이유가 된다.
3. 예수의 사도들이 복음전파자라고 불리는 것은 옳다. 왜냐하면, 예수의 역사적 생애를 특별한 관점(선교적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서의 기록들은 사도들의 복음전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택적으로 기록되었다.
4. “복음서”는 따라서 선포되고 응답되는 것임을 알고, 읽어야 한다.
마가는 예수님의 증거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선포는 “하나님의 예언적 약속의 성취”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고” 기록한다 (막 1:21-28). 따라서 회개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일 (repentance and faith)이 하나님께로 바르게 나아가는 길이며, 복음에 대한 바른 응답이다.

공관복음
공관복음 (Synoptic Gospels)이라 불리우는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들은 예수의 생애와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들의 선택과 배열에 있어 대부분 일치하고 있으며, 용어의 사용도 큰 차이점이 없다. 그러나 공관복음서들과 요한복음은 서로 다른 차이점들을 보여 주고 있다: 공관복음에 나타난 예수는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공생애의 사역을 행하고 마지막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에 달리시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역하시며, 여러번 (3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료 비평의 결과에 의한 공관복음연구: 공통된 자료의 인용 (literary interdependence)--“How thes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can be explained most satisfactorily.”
1. 자료비평이전의 설명들: ㄱ. Tatian (A.D. 175: Diatessaron) interest of harmonization. ㄴ. Augustine (A.D. 5 C)--interest of simplicity; Matthew's priority.

2. 알려지지 않은 기초 자료를 공통으로 사용했다는 가설: G. E. Lessing (1771; common dependence on one original Gospel)--Greek 사용의 수 많은 일치점들이 서로 간의 상호의존을 드러낸다.

3. 상호의존설:
(ㄱ) Augustine: Matthew --> Mark --> Luke.
\---------->
(ㄴ) J. J. Griesbach (1789): “Two Gospel hypothesis”: Matthew --> Luke -->Mark.
(ㄷ) K. Lochmann (1835): “Markan Priority”: Mark --> Matthew --> Luke
C. H. Weisse (1838): “Two-Source hypothesis” --> H. J. Holtzmann (1863) -->
B. H. Streeter (1924): “The Four Gospels: A Study of Origins”--Four-Source
hypothesis.”

1. 마가복음의 661 구절중 601 구절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마태와 누가복음에서 발견된다. 혹은 마가복음의 88 pericopae 중 3개나 4개정도만 마태, 누가복음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2. 공관복음은 공통된 내용과 순서를 보여 준다.
3. 사용되는 언어들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마태는 마가의 단어중 51 %를, 누가는 50 %정도를 사용한다).
그러나 “Two-Source Hypothesis”가 공관복음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이 가설은 하나의 연구 방법이지, 결코 공관복음의 문제점들에 관한 결론은 아니다. 나아가 어떤 자료설도 완벽하게 공관복음서들의 소위 문제들을 설명할 수 없다면, 전통적으로 받아 드려지던 마태복음이 가장 오래된 복음서라는 것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이 아닌 다른 목격자에 의해 써진 자료를 인용하거나, 혹은 마태가 자신의 기억과 Q(quelle)가 아닌 다른 기록을 참고로 기록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태복음
특징:
1. 유대적 관점: 예언(약속)의 성취;구약을 40 회 인용 (20개는 마태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예수의 사역(15:21-28)과 제자들의 사역(10:5, 6, 23)을 이스라엘로 제한 함.
2. 이방인에 대한 관심과 반유대주의 성향: 마태 23 장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책망;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8:12; 21:43); 선교의 관심 (2:1-12; 4:15; 8:5-13; 12:18,21; 13:38; 21:43; 28:18-20); 마태는 LXX (Greek Bible)을 잘 사용했다.
3. 목회에 대한 관심: “의”에 대한 강조; “완전”에 이를 것을 요구;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 (실천)을 주장--예수를 권위있는 선생 (Rabbi)로 표현; 하나님의 뜻을 행할 것을 촉구; 개인 윤리의 함축된 표현을 사용 (“네 이웃을 사랑하라”); 질문자들의 질문을 통해 “완전”에 이르는 요구를 나타냄; 올바른 권위에 대한 잘못된 도전을 지적 (5:20; 6:33; 13:43, 49; 25:31-46).

개요:
[A] 지형에 따른 구분:
1. 마 1:1-2:23: 서론
2. 마 3:1-4:11: 공생애 사역준비와 연결 (막 1:1-13)
3. 마 4:12-13:58: 갈릴리 사역 (막 1:14-6:13)
4. 마 14:1-16:12: 갈릴리 사역 (막 6:14-8:26)
5. 마 16:13-20:34: 예루살렘으로 향함 (막 11:1-13:37)
6. 마 21:1-25:46: 예루살렘에서 사역
7. 마 26:1-28:20: 수난과 부활 (막 14:1-16:8)

[B] 기독론적 구분:
1. 마 1:1-4:16: 예수의 인격
2. 마 4:17-16:20: 예수의 메시아적 선포
3. 마 16:21-28:30: 예수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

[C] 마태는 5개의 특정한 환경에서 시작되는 가르침을 중심으로 기록됨 (7:28-29; 11:1; 13:53; 19:1; 26:1):
1. 마 1:1-2:23: 서론
2. 마 3:1-7:29: 천국 복음--5:1-7:29 (첫 번째 가르침: 제자도)
3. 마 8:1-11:1: 천국 복음이 예수의 권위 안에서 확장됨--10:5-11:1(둘째 가르침: 사도직)
4. 마 11:2-13:53: 천국 복음에 대한 가르침과 선포와 그에 대한 점증되는 반대--13:1-53 (셋째 가르침: 천국비유)
5. 마 13:54-17:27: 천국 복음으로 인한 발전적 양극화 현상--18:1-19:2 (넷째 가르침: 천국의 삶; 교회)
6. 마 19:3-26:5: 천국복음의 승리--24:1-25:46 (다섯째 가르침: 종말론)
7. 마 26:6-28:20: 수난과 부활

마가복음
특징:
1. 기독론: 예수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으며 (1:16-8:26), 고난받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8:27-16:8); 사람들은 예수의 사역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 했으며, 제자들도 예수가 누구인지 이해하지 못 했다. 참고: (1) 예수에 대한 칭호--하나님의 아들 (1:11; 3:11; 5:7; 9:7; 14:61-62; 15:39); 사람의 아들 (2:10,28; 8:31,38; 9:9,12,31; 10:33,45; 14:21,41,62); 다윗의 자손 (10:47-48; 12:35-37); 그리스도 (8:29; 9:41); 주 (7:28; 11:3; 12:37); 하나님의 거룩한 분 (1:24); 아들 (13:32).
(1)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1:1; 15:39--climax--이방인의 고백을 통한 증거; 1:11--세례시, 9:7--변화산): 전지전능자이신 예수 (2:8; 5:32, 39: 6:48; 8:17; 9:4, 33; 11:2, 14; 12:9; 13:12); 예수의 인성 (1:41; 6:34; 8:2--연민; 3:5; 9:19; 10:14--수치; 14:33-36--고통과 슬픔; 7:34; 8:12--한숨; 1:43; 3:5--분노; 4:38--피곤; 6:5, 6--기적을 못 행하심; 13:32--지식).
(2) 예수는 “인자”이셨다: 인성을 나타냄 (2:10, 27-28); 배반당하심, 고통, 죽음 (9:12; 14:21, 41); 높이 들림을 받음 (13:26).
(3) 예수는 “선생”이셨다 (1:22; 4:38; 5:35; 9:17, 38; 10:51; 11:21): 제자들과 반대자들 모두가 그의 권위와 부딪침.
마가는 십자가와 하나님의 영광을 접목시키려는 모습을 보여 준다.

2. 제자도의 댓가: 예수의 오심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한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께서 영광에 들어가기 전에 고난을 받을 것을 명백히 한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삶을 통한 사역에 관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 8:34, 35)라고 말씀하신다.

3. 감추어진 예수의 메시아적 사명: 유대인들은 예수의 사역을 메시아적 사역으로 볼 수 없었다 (막 3:20-35--예수를 귀신들렸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이 바라던 메시아와는 전혀 다른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보게 된다. 오히려 귀신들과 베다니에서 한 여인에 의해 (막 14:3-9); 십자가 사건을 목격하는 백부장에 의해 (막 15:39) 예수의 메시아이심이 증거된다.
참고: 귀신들을 침묵시킴 (1:24-25; 1:34; 3:11-12; 5:7);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함 (1:44; 5:43; 7:36); 제자들에게 침묵을 요구함 (8:30; 9:9; 9:30-31).

마가는 자기의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구원의 복음”에 관해 올바르게 알고 전하게 하기위해 복음서를 기록한다. 따라서 복음의 시작 (1:1), 중간 (9:7), 끝 (15:39)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을 통해 예수가 찬양 받으실 메시아이심을 증거한다. 또한 예수의 하나님 아들이심과 함께 그의 고난이 연결되어 있다 (9:2-13; 12:1-12; 14:36).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는 지금 활동하시며 (2:10,28; 10:45), 고난을 당하고, 죽고 부활하시며 (8:31; 9:31; 10:33-34; 9:9,12; 14:21,41), 다시 오신다 (8:38; 13:26-27; 14:62).

개요:
1. 1:1-13: 서언부--“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종말론적 예언자인 세례요한 (1:2-8); 예수님의 세례 (1:9-11);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 받으심 (1:12-13)
1:14-15--전환: 갈릴리로 가심 (사역의 주제)

2. 1:16-3:6: 예수의 갈릴리 사역의 첫 부분--제자들을 부르심 (1:16-20); 하루의 사역(1:21-34) (회당에서 가르치고,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심); 가버나움에서 다른 갈릴리 지방으로 가심 (1:35-39); 다른 병을 고치는 기사 (1:40-45); 유대지도자들과 논쟁 (죄를 사하는 능력--2:1-12; 세리, 죄인들과의 교제--2:13-17; 제자들이 금식법을 어김--2:18-22; 안식일 논쟁--2:23-28 & 3:1-6); 헤롯당이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꾀함 (3:6)
3:7-12--전환: 많은 무리가 이적과 기사를 보고 예수를 따름

3. 3:13-5:43: 예수의 갈릴리 사역의 둘째 부분--천국을 중심으로; 열두 제자를 “사도”라 칭함(3:13-19); 식구들의 반대(3:20-21, 31-34); 서기관들의 반대(3:22-30; 바알세불); 천국의 비유(4:1-34; 비유중의 비유--4:14-20); 4가지 이적 (바다를 잠잠케 함(자연을 지배: 4:35-41); 군대마귀를 쫓아냄(거라사인 지방--5:1-20); 12년 혈루증 여인을 고치심(5:25-34);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5:21-24; 35-43)
6:1-6--전환: 고향 나사렛으로 가심

4. 6:7-8:26: 계속적인 갈릴리 사역의 마감--12 제자 파송 (6:7-13); 요한의 죽음(6:14-29); 광야에서 5,000명을 먹이심 (6:30-44); 물위를 걸으심(6:45-52); 서쪽 게네사렛에서 많은 사람을 고치심 (6:53-56); 진짜 부정한 것을 가르치심 (7:1-23); 두로와 시돈으로 향하심, 이방여인의 믿음 (7:24-30); 갈릴리로 돌아와 병을 고치심(7:31-37); 4,000명을 먹이심 (8:1-13); 제자들을 가르치심 (8:14-21--눈이 있어도 보지 못함); 소경의 눈을 고치심 (8:22-26--점진적인 고침; 계시)
8:27-30--전환: 베드로의 신앙고백 (마가복음의 climax: 사건의 진행의 촛점이 군중들로부터 제자들과 십자가로 바뀌어짐)

5. 8:27-10:52: 고난과 영광의 길--사역의 가장어려운 시련중 하나(8:27-9:1);변화산 (9:1-13); 귀신들린 아이를 고침 (9:14-29); 남을 나보다 낫게 여김 (9:38-50); 이혼에 관해 (10:1-12); 겸손 (10:13-16); 재물과 제자의 길 (10:17-31); 여리고에서 바디메오의 눈을 고치심 (10:46-52; 5번째 전환구)

6. 11:1-13:37: 예루살렘 사역 (마지막 사역)--예루살렘입성 (11:1-11; Messianic overtones); 성전 청소 (11:12-19); 무화과나무를 저주 (11:20-25);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과 충돌 (11:27-33); 포도원 비유(12:1-12--유대지도자들을 비판); 세금에 관한 질문 (12:13-17--바리새인, 헤롯당); 부활에 관한 질문 (12:18-27--사두개인); 가장 큰 계명 (12:28-34); 시편 110의 해석 (12:35-40); 과부의 헌금 (12:41-44--6번째 전환구); 올리브산에서 가르침 (13:1-37--제자도를 가르침)

7. 14:1-16:8: 수난과 빈 무덤--14:1-11 (7번째 전환구); 최후의 만찬(14:12-26); 겟세마네, 올리브동산, 기도하다 잡히심 (14:27-52); 재판 (14:53-65--산헤드린; 밤); 베드로의 부인 (14:66-72); 재판 (15:1--산헤드린; 아침);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 (15:2-15); 빌라도가 십자가형에 처할 것을 허락 (15:16-41); 무덤에 묻히심 (15:42-47); 실의에 찬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보고 놀램, 천사가 부활을 선언 (16:1-8).

고난이야기를 제외하고 주제별로 크게 다섯 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2:1-3:6--예수와 유다 당국과 사이에 일어난 다섯 번의 충돌들: 2:1-12 (죄를 용서; 중풍병자를 고치심); 2:15-17 (율법으로 불결한 사람들과 식사함; 세리들과 식사); 2:18-22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음); 2:23-28 (안식일을 범함; 밀이삭을 자름); 3:1-6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심).
2. 4:1-32--네 개의 비유가 있다: 4:1-9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네 가지 토양); 4:21-22 (등불의 비유); 4:26-29 (자라나는 씨의 비유); 4:30-32 (겨자씨의 비유).
3. 4:35-6:51--갈릴리지방에서 행한 여섯 가지 이적들: 4:35-41 (풍랑을 잠잠케 함); 5:1-20 (거라사 지방의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심); 5:21-24; 35-43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5:25-34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치심); 6:32-44 (오천명을 먹이심); 6:45-51 (바다 위를 걸으신 예수).
4. 10:1-45--공동체 안에서의 생활 규율들: 10:1-12 (이혼에 대한 논쟁); 10:13-16 (어린아이를 축복하심); 10:17-31 (부자청년; 물질이 제자가 되는 것을 어렵게함); 10:35-45 (세베데의 아들[야고보와 요한]들의 요구).
5. 11:27-12:37--여섯 가지 제자들과의 대화와 논쟁대화: 11:27-33 (예수의 권위에 대한 질문); 12:1-12 (포도원 농부의 비유); 12:13-17 (세금에 관한 바리새인의 질문); 12:18-27 (부활에 대한 사두개인의 질문); 12:28-34 (으뜸되는 계명에 대한 서기관 (율법학자)의 질문); 12:35-37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에 대한 질문).

예수의 비유:
1. 비유는 하나의 실상 (내용)을 다른 영역에 놓여있는 다른 실상을 통해 표상어로 나타낸다. 가장 간단한 형식은 구상어 (figurative word; Bildwort)이다. 생각된 사물이 전형적인 일반적으로 알려진 실상을 통해 설명된다 (예: 등불의 비유).

2. 만일 인용된 실상이 전형적인 사건을 묘사하지 않고 어떤 특정한 사건을 묘사한다면 그것은 순수한 비유 이다 (예: 씨 뿌리는 비유;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 . .” ).

3. 표상을 사물로 옮기지 않고 비교하는 내용을 전할 때는 예화가 사용된다 (예: “가서 그와 같이 하라”).

4. 가장 복잡한 형식의 비유는 알레고리이다. 알레고리적 표현은 각각의 말이 특수한 의미를 갖고 있어, 각각의 말이 해석되어져야 한다 (예: 포도원 농부의 비유; 씨 뿌리는 비유--씨 ??말씀??, 여러가지 토양 ??다른 청중??, 새들 ??사탄??, 등).

예수와 유대인들과의 논쟁:
1. 등장하는 대적자들: 바리새인들 (막 2:16,24; 7:1; 10:2); 서기관들 (2:6; 3:22; 7:1; 12:28); 사두개인들 (12:18).
2. 논쟁의 주제들: 죄 용서 (2:1-2); 제의적 정결 (2:15-17; 7:1-23); 금식(2:18-22); 안식일 (2:23-28; 3:1-6); 이혼 (10:2-12); 예수의 권위 (11:27-33); 세금 (12:13-17); 부활 (12:18-27); 으뜸이 되는 계명 (12:28-34);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 (12:35-37).

예수의 기적:
1. 기적 이야기들: 막 1:21-28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심); 1:29-31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심); 1:40-45 (문둥병자를 고치심); 2:1-12 (중풍병자를 고치심); 3:1-6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 4:35-41 (풍랑을 잠잠케 하심); 5:1-20 (거라사의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심); 5:21-24; 35-43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5:25-34 (열두 해 혈루중 여인을 고치심); 6:32-44 (오천명을 먹이심); 6:45-52 (예수가 바다위를 걸으심); 7:24-30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심); 7:31-37 (귀먹은 벙어리를 고치심); 8:1-9 (사천명을 먹이심); 8:22-26 (베새다의 장님을 고치심); 9:14-29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심); 10:46-52 (바디매오를 고치심).

2. 기적이야기들의 도식: a] 일반적인 예: 어려운 상황을 언급함 --> 도움을 청함 --> 구조 (말씀, 행동) --> 성사의 확인 --> 실증
b] 귀신 추방의 예: 귀신과의 만남 --> 귀신의 방어 --> 예수 (귀신 추방자)의 위협 --> 귀신에게 침묵을 명령 --> 귀신에게 떠나라고 명령 --> 귀신이 떠남 --> 무리들이 놀람, 찬양으로 이야기가 끝남.

3. 기적의 신학적 이해:
a] 예수의 귀신 추방은 종말론적 사건, 혹은 성취로 이해된다. 즉 예수의 등장은 하나님의 영의 등장과 동일하다. 따라서 예수가 더러운 영에 사로 잡혔다고 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을 의미한다 (막 3:22-30).
b] 막 7:31-37에서 귀먹은 벙어리를 고치신 역사를 통해 구약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창 1:31--“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 이사야 35:5-6 --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 ”).
c] 바리새인의 누룩에 관한 대화 (막 8:14-21)에서 예수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으로 깨달을 것을 가르치심.
기적들은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종말에 관한 이해 (마가복음 13장을 중심으로): 13:5-8 (거짓 메시아적 유혹자들에 대한 경고; 전쟁, 지진과 기근은 종말의 때를 알리는 신호이다; 13:9-13 (제자들을 박해함; 복음이 만국에 전파됨); 13:14-20 (성전에서 가증한 사건이 일어날 때, 유대에서 산으로 도망할 것을 말함); 13:21-23 (거짓 메시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남); 13:24-27 (우주적인 환란; 백성들을 모으시고 심판하심); 13:28-32 (무화과나무의 비유;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름); 13:33-37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

예수의 고난, 죽음, 부활에 관한 기록들:
예수의 고난에 대한 예언들 (막 8:31; 9:31; 10:33-34)--막 8:31에서 예수의 고난의 구속사적 근거를 볼 수 있다; 막 9:31에서 “사람의 아들 (인자)”는 희생으로 바쳐지고, 하나님 자신이 희생으로 바치는 자이다; 막 10:33-34은 고난 이야기의 개요를 드러낸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1. 인자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2. 이방인에게 넘겨주고 3. 그들은 인자를 조롱할 것이며 4. 침을 뱉고 5. 채찍질을 하고 6. 죽일 것이다.

누가복음
특징:
1. 누가의 기록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의 1/3 이나 되는 양이다.
2. 신약성경 중 가장 아름다운 문체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Renan).
3. 인간적인 측면에 대한 강조가 보인다 (예: 요한과 예수의 탄생 이야기들).
4.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취를 강조한다 (눅 1:1).
5. 역사와 구속사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오심은 구원 실재의 임재를 의미한다: 예수의 생애를 통한 구원의 모습을 묘사).
6.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드러낸다 (2:32; 3:6; 10:30-37; 17:16).
7. 당시 소외계층에 대한 예수의 관심을 기록하고 있다 (7:34: “세리와 죄인의 친구”인 예수; 3:12-13; 7:29; 10:25-37 ??선한 사마리아인??; 8:1-3 ??여제자??; 7:11-17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 7:36-50 ??죄인인 여자의 기름부음??; 13:10-17).
8. 부자들에 대한 경고 (1:53; 6:20; 6:24; 12:16-21; 16:19-35; 19:1-10; 21:1-4; 18:18-27).
9. 누가는 성령을 강조하고 있다 (1:15,35 ??마리아의 수태??; 1:41,67; 2:25-27; 3:16,22 ??예수의 세례??; 4:1 ??예수의 시험??; 4:14,18; 10:21; 11:13; 12:12; 24:49).
10. 누가는 기도를 강조하고 있다 (11:2-4 ??주기도문--이름, 나라, 빵, 죄 용서, 시험??; 3:21; 5:16; 6:12; 9:18, 28-29; 11:1; 23:46 -- 예수의 기도하는 모습; 20:47 ??바리새인과 세리??; 18:1-8 ??재판관과 과부??; 21:5-36 ??종말을 대비한 기도??).
11 마리아의 찬가 (1:46-50--마리아의 감사; 51-55--구원의 행위를 찬양: 하나님의 크신 행위, 지상적 상황의 전환을 가져옴; 저녁예배); 스가랴의 찬송 (1:68-75--예언에 따른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구원; 76-79--새로 탄생할 아기를 예언; 이른 아침 기도회 ); 시몬의 찬송 (2:29-32: 이스라엘과 이방민족들을 구원하는 아기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 하루 마지막 기도회).
12. 고난을 강조 (예수의 십자가가 구속사의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나타냄).

개요:
1. 1:1-4:13: 복음의 시작--1:1-4 서언;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 (1:5-25); 예수의 출생 예고 (1:26-38);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1:39-45); 마리아의 찬양 (1:46-56); 요한의 출생 (1:57-66); 스가랴의 찬양 (1:67-80); 예수의 출생, 천사와 목자 (2:1-20); 출새에 따른 성전의식 (2:21-40); 소년 예수 (2:41-52); 요한의 사역 (3:1-20); 요한의 세례를 받는 예수 (3:21-22); 예수의 족보 (3:23-38); 예수의 광야 시험 (4:1-13)

2. 4:14-9:50: 예수의 갈릴리 사역--나사렛에서의 가르침 (4:14-30); 병을 고치심 (4:31-41); 설교 여행 (4:42-44); 고기를 잡는 이적, 시몬을 부르심 (5:1-11); 문둥병자를 고치심 (5:12-16); 중풍병자를 고치심 (5:17-26); 세리 마태를 부르심 (5:27-32); 금식과 기도에 관해 (5:33-39); 안식일에 대한 바른 이해 (6:1-11); 12 제자들을 부르심 (6:12-16); 평지에서의 가르침 (6:17-49, 참고: 산상수훈);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심 (7:1-10);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 (7:11-17); 세례요한의 질문 (7:18-35);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께 기름을 부음 (7:36-50); 여자들이 예수를 섬김 (8:1-3); 씨를 뿌리는 비유 (8:4-15); 등불의 비유 (8:16-18);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에 관해 (8:19-21); 폭풍을 잠잠케 하심 (8:22-25); 거라사지방에서 군대 귀신을 쫓으심 (8:26-39);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열두 해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고치심 (8:40-56); 12 제자의 파송 (9:1-6); 분봉왕 헤롯의 당황 (9:7-9); 5,000명을 먹이심 (9:10-17);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고백과 제자도 (9:18-27); 변화산 사건 (9:28-36); 더러운 귀신을 쫓으심 (9:37-45); 제자도란? (9:46-50)

3. 9:51-19:44: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의 행적--제자들을 가르치심 (9:51-62); 72제자들의 파송과 그 결과 (10:1-24);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10:25-37); 주기도문 (11:1-4); 기도를 가르치심 (11:5-13); 귀신보다 강하신 예수 (11:14-26); 무리를 가르치심 (11:27-12:59: 하나님의 표적, 권면, 외식과 탐욕, 근신, 분열 등); 회개를 강조 (13:1-9); 안식일날 병자를 고치심 (13:10-17);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심(13:18-30); 예루살렘을 위한 탄식 (13:31-35); 바리새인을 가르치심 (14:1-24: 고창병, 상좌, 잔치--가난한자, 사람을 강권, “전에 청하였던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제자도 (14:25-35); 세가지 회개에 관한 비유 (15:1-32: 잃은 양, 잃은 동전, 잃은 아들); 불의한 청지기 비유 (16:1-9); 돈에 관한 가르침, 부자와 나사로 (16:10-31); 봉사에 관해 (17:1-10); 열 문둥병자를 고치심 (17:11-19);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가르치심 (17:20-37); 기도에 관한 두 비유 (18:1-14: 끈질긴 과부, 바리새인과 세리); 아이들을 예수께 데려옴 (18:15-17); 부자 관원 (18:18-30); 수난의 예고 (18:31-34); 여리고 도상에서 두가지 사건 (18:35-43: 소경거지; 19:1-10: 삭개오를 방문); 열종들과 열므나의 비유 (19:11-26); 예루살렘 입성 (19:28-44)

4. 19:45-21:38: 예수의 예루살렘 사역--성전 청소 (19:45-46); 예수의 가르치심 (19:47-48); 예수의 권위에 대한 논쟁 (20:1-8); 악한 농부의 비유 (20:9-18); 예수를 책 잡으려함 (20:19-44); 서기관들을 경계하라심 (20:45-47); 과부의 헌금 (21:1-4); 종말에 대한 가르침 (21:5-36); 성전에서 가르치심 (21:37-38)

5. 22:1-24:53: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유다의 배반 (22:1-6); 마지막 만찬과 다락방 가르침 (22:7-38); 예수의 고난과 기도 (22:39-46); 예수의 체포 (22:47-54); 베드로의 배반과 병정들의 조롱 (22:55-65);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 (22:66-71); 빌라도 앞에선 예수 (23:1-7); 헤롯 앞에선 예수 (23:8-12); 십자가형의 확정 (23:13-25);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예수 (23:26-49); 예수의 장례 (23:50-56); 여자들이 전한 예수의 부활 (24:1-11); 무덤에 들어간 베드로 (24:12); 엠마오로 가던 제자에게 나타난 예수 (24:13-35);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 (24:36-49); 승천 기사 (24:50-53).

A. 마가복음과 비교:
1. 나사렛에서 예수가 배척당한 것 (막 6:1-6)을 누가는 예수의 사역의 시작부분에 기록한다 (눅 4:16-30).
2. 마가복음 맨 처음에 있는 첫 제자들의 부름 (막 1:16-20)이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긴 활동 뒤에 나타난다 (눅 5:1-11).
3. 열두 제자의 선택(막 3:13-19)과 사방에서 예수께로 모여드는 무리의 개요(막 3:7-12)를 누가는 바꿔 놓는다 (열둘의 선택 눅 6:12-16; 모여드는 무리 눅 6:17-19).
4. 마가복음의 비유의 장 앞에 있던 예수의 참된 친척에 관한 이야기 (막 3:30-35)를 누가는 비유 다음에 놓았다 (눅 8:19-21).
5. 누가는 마가복음에 없는 두 묶음의 본문들을 나타낸다 (눅 6:20-8:3; 9:51-18:14).
6. 누가복음에 들어 있지 않는 마가복음의 이야기들: 막 3:20-21 (집안 식구들이 예수를 미쳤다고 함), 막 4:26-29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 6:1-6 (나사렛에서 예수를 배척함), 막 6:17-29 (세례 요한의 죽음), 막 6:45-8:26 (예수가 바다위로 걸으심, 병고치심에 대한 세 번째 개요, 정결과 부정, 수로보니게 여인, 귀먹은 벙어리를 고치심, 사천명을 먹이심, 표적을 구함,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삼가라, 벳새다에서 소경을 고치심), 막 9:41-10:12 (제자를 가르치심, 이혼에 대하여), 막 14:51-52 (벗은 몸으로 도망하는 젊은이).

참고: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공통으로 생략된 마가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막 3:20-21; 4:26-29; 7:31-37; 8:22-26; 14:51-52 (마가복음의 특수자료).

B. 누가복음의 특수 자료들 (누가복음 전체의 30% 정도):
1. 이야기로 된 전승들: 1-2장 (전역사); 4:16-30 (나사렛에서의 설교); 5:1-11 (베드로의 고기잡이); 7:11-12 (나인성의 젊은이); 7:36-50 (예수와 죄 많은 여인); 8:1-3 (예수를 따르는 여인들); 9:52-56 (사마리아 동네의 냉대); 10:38-42 (마리아와 마르다); 13:10-17 (안식일에 불구의 여인을 고치심); 14:1-6 (수종병든 사람을 고치심); 17:11-19 (열 문둥병자들을 고치심); 19:1-10 (삭개오); 22:15-20 (성만찬); 23:6-12 (헤롯 앞에서 심문을 당하는 예수); 23:13-16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선언함); 23:27-31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예수를 위해 울다); 24:13-35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 24:36-43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24:44-53 (예수의 마지막 말씀과 승천).

2. 비유들: 10:29-37 (선한 사마리아인); 11:5-8 (간구에 대해); 12:16-21 (어리석은 부자); 13:6-9 (열매가 없는 무화과); 14:28-32 (망대건축과 용병에 대해); 15:8-10 (잃어버린 동전); 15:11-32 (잃어버린 아들); 16:1-12 (불의한 청지기); 16:19-31 (부자와 거지 나사로); 17:7-10 (종의 의무); 18:1-8 (재판관과 과부); 18:9-14 (바리새인과 세리).

3. 중요한 어록들: 3:10-14 (세례 요한의 설교); 6:24-26 (네 가지 화); 9:61-62 (예수를 따르라는 말씀); 10:18-20 (예수의 선교에 관한 부탁); 12:13-15 (탐욕에 관해);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12:35-38 (충성: 깨어 있으라); 12:49-50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 ); 13:1-5 (회개에 관해); 13:31-33 (헤롯에 대해); 17:20-21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19:41-44 (예수는 예루살렘을 보고 우신다); 21:34-36 (깨어 있으라는 권고); 22:31-32 (시몬에 관해); 22:35-38 (검을 사라).

요한복음
특징:
1. “영적 복음”이라는 이해--공관복음들에 대한 보충으로, 혹은 공관복음을 수정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요한복음의 가장 중요한 질문도 “누가 예수인가?”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요한은 단순히 누가 예수인가? 하는 질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전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Diaspora Jews,” 와 “Jewish Proselytes”).
2. 요한복음은 예수의 생애를 또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어, 그 생애를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자료들을 제시한다.
3.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나타내지만, 특히 예수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예수의 말과 행위가 하나님의 말과 행위인 것을 밝힌다 (요 5:19 이하).
4. 하나님의 “때”와 종말과의 연결을 통해 그 의미를 드러낸다 (4:23; 5:25; 16:33; 14:23; 14:1-3).
5. 예수께서 성령을 드러내고 허락하실 뿐 아니라, 새 언약을 통해 일어날 일들을 직접 보여 주신다 (3:5; 7:37-39).
6. 구원은 단순히 계시를 통해서만 오는 것이 (예: “Gnostics”)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짐을 강조 (목자의 양을 위한 죽음 요 10장; 세상을 위한 생명 (요 6 장); 하나님의 양의 승리 (요 1장); 순종을 통한 승리 (요 14-16 장--생명, 평화, 기쁨과 영).
7. 구약의 본문의 직접인용은 적으나, 구약에 관한 언급은 대단히 많다 (예: 성전, 포도나무, 장막, 뱀, 유월절).
8.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허락한 선물이다 (6:37-44).

개요:
1. 1:1-18: 서언
2. 1:19-10:42: 예수의 사역
(1) 1:19-51: 사역의 서론부--1:19-28 (세례요한과 예수와의 관계); 1:29-34 (요한 예수에 대한 공적인 증거); 1:35-51 (첫 제자들을 부르심)
(2) 2:1-4:54: 예수의 초기 사역--2:1-11 (첫번 이적; 가나혼인 잔치); 2:12-17 (성전 청소); 2:18-22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23-25 (그릇된 믿음); 3:1-15 (니고데모); 3:16-21 (예수의 독백); 3:22-36 (세례요한의 증거); 4:1-42 (갈릴리로 가시는 중 사마리아에서: 사마리아 여인); 4:43-54 (두번째 기적)
(3) 5:1-7:53: 증가하는 반대--5:1-15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적: 38년된 병자, 안식일시비); 5:16-30 (예수의 하나님과의 관계: 아들과 아버지); 5:31-47 (예수의 증거: 요한, 보내신 자의 증거); 6:1-15 (오천명을 먹이심); 6:16-21 (물위를 걸으심); 6:22-58 (생명의 떡--6:22-34: 하나님의 떡, 참 만나; 6:35-48: 생명의 떡을 먹어야만함); 6:59-71 (제자들 사이에서 예수에 대한 견해가 서로 나뉨); 7:1-13 (예수를 불신한 형제들); 7:14-44 (명절에 유대인들과의 첫번 충돌); 7:45-52 (최초의 조직적인 유대인들의 반대)
(4) 7:53-8:11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
(5) 8:12-10:42 (대립의 첨예화)--8:12-59 (두번째 성전에서의 충돌); 9:1-41 (나면서 소경인 사람을 고치심; 죄의 문제); 10:1-21 (선한 목자 예수); 10:22-39 (수전절에 예수의 메시아라는 선언이 반발을 부름); 10:40-42 (요단강 다른 쪽인 베레아로 피신)

3. 11:1-12:50: 이적 기사들--11:1-44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11:45-54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함); 11:55-57 (유월절의 양의 죽임의 예고: 예수를 죽이려함); 12:1-11 (향유를 부음: 베다니, 마리아, 유다, 예수); 12:12-19 (예루살렘입성: 호산나, 왕이신 예수); 12:20-36 (불신에 대한 신학적 이해: 하나님의 “때”--예수의 죽음과 들리심); 12:37-50 (구원과 심판--말과 행함)

4. 13:1-20:31: 십자가에 드러난 예수의 참 메시야되심--13:1-30 (마지막 만찬: 13:1-17--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13:18-30--유다의 배반); 13:31-14:31 (인자의 영광, 새 계명--“서로 사랑하라”; “나의 계명을 지키라”;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15:1-16:33 (약속의 성령의 역활: 참 포도나무, 보혜사 성령, 죽음과 부활을 예언); 17:1-26 (예수께서 배반당하심: 17:1-5--자신의 영광을 위한 기도; 17:6-19--제자들을 위한 기도; 17:20-23--나중에 믿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 17:24-26--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18:1-19:42 (예수의 재판과 수난--왕이신 예수의 모습을 강조); 20:1-31 (부활하신 예수의 나타나심); 20:19-22 (성령을 선물로 주심과 죄의 용서); 20:24-29 (도마와 예수); 20:30-31 (요한 복음을 기록한 목적)

5. 21:1-25: 종결부--21:1-14 (갈릴리에 나타난 예수, 123 마리의 고기); 21:15-23 (베드로의 위임); 21:24-25 (증인인 제자와 예수의 위대하심).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구성의 차이
1. 공관 복음이 예수의 사역을 갈릴리와 인접지방에 주로 나타낸 반면, 요한복음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2. 공관복음은 연대기적 표현에서 단 한번의 유월절을 언급하나 (막 14:1 이하 참고), 요한복음은 세번 (혹은 그 이상)의 유월절을 언급한다 (요 2:13; 5:1; 7:10).
3. 공관복음은 세례요한의 투옥 후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나(막 1:14), 요한은 세례요한과 예수께서 함께 사역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요 3:22-23; 4:1).
4. 공관복음은 예수의 성전 정화를 사역 마지막 부분에 두나, 요한은 공생애 초기에 둔다.
5.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이 유월절 (공관복음: 니산월 15일)과 유월절 준비일 (요한복음: 니산월 14일)로 다르게 표현된다.

공통의 사건(이야기)들:
1. 세례 요한의 활동 (1:19-34)
2. 성전 정화 (2:13-16)
3. 관원의 아들을 고침 (4:46-54)
4. 오천명을 먹이심 (6:1-13)
5. 물 위로 걸으신 예수님 (6:16-21)
6. 베드로의 고백 (6:67-71)
7. 베다니에서 향유를 부음 (12:1-8)
8. 예루살렘성 입성 (12:12-19)
9. 배반자 예고 (13:21-30)
10. 베드로의 부인의 예고 (13:36-38)
11. 기적적인 고기잡이 (21:1-14)
12 수난이야기.

요한복음의 서언: 1:1-2 (말씀의 선재); 1:3-4 (말씀의 창조 중개); 1:5 (계시로서 말씀); 1:6-8 (말씀의 증인으로 세례 요한); 1:9-13 (참 빛과 사람들); 1:14 (구원을 가져오는 성육신 사건); 1:15 (요한의 증거); 1:16-18 (은혜, 진리, 그리고 아들의 하나님 인식)

요한복음의 이적이야기들:
1. 가나의 혼인 잔치 (2:1-11)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46-54)
3. 베데스다 못가에서 병자를 고치심 (5:1-9)
4. 오천명을 먹이심 (6:1-15)
5. 예수가 바다위로 걸으심 (6:16-21)
6.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심 (9:1-7)
7. 나사로의 부활 (11:1-44).

요한복음의 종말론적 진술: “생명,” “심판,” “부활”의 의미들에 주의하라.
1. 많은 구절들이 그리스도안에서의 구원의 현재성을 진술한다 (요 3:13-21; 31-36; 5:20-27; 12:44-50). 예수와 함께 구원의 시간이 이미 왔다 (요 4:23; 5:25; 11:23-25).
2. “생명”은 미래적 구원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현재적 소유이다 (요 3:36); “심판”은 본질적으로 불신앙이 초래한다. 불신앙은 곧 구원 선물을 거절하고 배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 12:48); “부활”은 더 이상 최후의 심판 날에 있을 부활이 아니라, 이미 예수의 말씀을 받을 때 일어난다 (요 11:25-26). 생명의 떡의 이야기에서 “내가 최후의 심판 때에 그를 일으킬 것이다”라는 고정된 표현법을 발견 할 수 있다 (요 6:39,40,44,57).

요한복음에는 성만찬 대신 세족식이 나타난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에게 오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생명의 떡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은 예수를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구원자로 믿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나는 … 이다”라는 표현: 이 표현은 대부분 하나의 조건문 혹은 초대와 구원의 약속이 따르는 내용이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41)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3. 나는 양의 문이다 (10:7,9)
4. 나는 선한 목자이다 (10:11,14)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7.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15:1,5).
그 밖에 “나는 ? 이다”를 절대적 용법으로 사용한다 (요 6:20; 8:24,28,58; 13:19; 18:5,6,8)--“내가 그 사람이다.”

요한이 사용한 그리스도의 명칭들: 로고스 (1:1, 14); 하나님 (1:1; 20:28); 아들 (3:35-36; 5:19,22,23,25; 6:40; 8:35-36; 14:13); 하나님의 아들 (1:34,49; 3:16-18; 10:36; 11:4,27; 20:31); 하나님의 택하신 자 (1:34); 메시아 (1:41); 이스라엘의 왕 (1:49; 12:13); 인자 (1:51; 3:13-14; 5:27, 등);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6:69); 세상의 구세주 (4:42); 랍비 (1:38, 49; 3:2; 4:31, 등); 주 (4:1,11,15,19,49; 5:7; 6:23,34,68); 선생 (1:38; 20:16; 3:2,10; 11:28; 13:13-14); 예언자 (4:19; 6:14; 7:40; 9:17).

요한복음 안에서 신앙과 불신앙의 대조를 위해 쓰인 한 쌍의 개념들:
1. 빛 - 어둠 (요 1:5; 3:19-21; 8:12; 12:35-46)
2. 거짓 - 진실 (요 8:44-45)
3. 육 - 영 (요 3:5)
4. 하늘 - 땅 (요 3:12; 참조 3:31)
5. 자유 - 예속 (요 8:33 이하)
6. 세상에 속함 - 세상에 속하지 않다 (15:18-25; 17:14-16).
인간의 두 가지 종류 (요 1:5; 8:12); 역사에 대한 결정적 이원론; 선과 악으로 원칙적 분리 (요 3:6,12,19-21); 교회와 세상의 분리 (요 15: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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