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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료] ]성서 속의 통과의례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11.10.26|조회수205 목록 댓글 0
성서 속의 통과의례

오부영

모든 문화에서는 출생 사춘기 결혼 사망 등등에 관련된 무수하고 다양한 의식들이 있지만 그 기능에 있어서는 보편적인 측면이 있다. 아놀드 반게넵(Arnold van Gennep  1873-1959)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전이(轉移) 단계에 시행되는 의례들의 규칙성과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파악한 최초의 인류학자이며, 그가 이러한 의례에 붙인 ‘통과의례’(rite of passage)라는 명칭은 인류학과 사회학의 중요한 용어가 되었다.

가족(family)은 조부, 부모, 자녀, 다른 친척과 종까지 포함하는 사회적 단위였다. 가족 구성원들은 자년 양육, 식사, 취침 등의 중심을 가정에 둔 것처럼 노동과 종교에 있어서도 가정이 그 중심이었다. 개개인의 삶은 종교 의식에 의해 구별되어지며, 가족 구성원들은 공동체 내에서 뚜렷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 유년기
1) 출생
자녀의 출생은 경사스러운 일로 해산의 고통이 끝났기 때문이다.(눅 1:46-48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여성은 가계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강담하기 때문에 생산하지 못하는 여성은 한나처럼 자신에게 고통 일뿐 아니라, 타인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삼상 1:6-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 출산한 여인은 부정하였고(레 12), 비둘기나 양으로 희생제사를 드려야 했다.(눅 2:22-27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 작명
아이의 이름은 그의 특징을 나타내므로 조심스럽게 지었다.

• 출생시의 상황, 국가적 사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 등을 반영
이삭 (창 21:3) - 출생을 예고 받고 사라가 웃음
에서, 야곱 (창 25:25 이하) -
이가봇 (엘리의 며느리의 아들, 삼상 4:19-21)

• 하나님에 대한 언급
엘르아살 (하나님이 돕는 자 출 9:24)
히스기야 (여호와는 강대하게 하심)
이사야 (여호와의 구원)

• 동물, 식물
요나 (비둘기)
드보라 (벌)
수산나 (백합)
레아 (암소 창 29:23)
갈렙 (개 민13:6, 34:19)

• 하나님의 소명이후 이름을 바꿈
아브라함 - ‘아브람’에서
여호수아 - ‘호세아’에서
바울 - 사울

• 부모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이웃이 이름을 결정하기도 한다.
오벧(종, 룻 4:17) - 룻과 보아스의 아들

3) 할례
할례는 예레미야에 의하면 이집트, 에돔, 암몬, 모압 등에서도 행하였다.(렘 9:25-2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필수였다. 이는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였다. (창 17:10-14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바벨론, 페르시아, 그 리스, 로마의 문화가 팔레스타인에 들어오면서 할례는 이스라엘의 통일성과 차별성을 나타내는 것이 되었다.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렘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바울은 후에 진정한 할례가 무엇인가 논쟁한다.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4) 첫째 아들에 대한 대속
첫째 아들의 경우 한 달 후에 속해야 했다.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자가 레위인보다 이백칠십삼 명이 더 많은즉 속전으로 한 사람에 다섯 세겔씩 받되 성소의 세겔로 받으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니라 그 더한 자의 속전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줄 것이니라 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 속전을 받았으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자에게서 받은 돈이 성소의 세겔로 천삼백육십오 세겔이라 모세가 이 속전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느니라”(민 3:44-51)

2. 성장기
현재는 첫 번째 생일 이전에 이유식을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적어도 두 살, 세 살까지는 어머니나 유모의 젖을 먹었다. (마카비2서 7:27 그러나 어머니는 그 잔인한 폭군을 조롱이나 하듯이 자기 아들에게 가까이 가서 자기 나라 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 아들아, 이 어미를 불쌍하게 생각하여라 나는 너를 아홉 달 동안 뱃속에 품엇고 너에게 삼 년 동안 젖을 먹였으며 지금 내 나이에 이르기까지 너를 기르고 교육하며 보살펴 왔다) 젖을 떼는 일은 축하할 일이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젓떼는 일을 축하하였다. (창 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이렇게 잔치를 하는 이유는 유아 사망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성장하게 되면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된다.(렘 9:21 무릇 사망이 우리 창문을 통하여 넘어 들어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들을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마 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정에서는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게 되며, 함께 기도하고 안식일과 축제일에 예배에 함께 참석한다. 부모의 책임은 하나님의 율법과 출애굽의 역사, 이스라엘의 영웅들에 대해서 가르쳐야 했다.(신 6:20-25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의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유월절의 식사에 대해 그 의미를 물으면 가르쳐야 했다.

예수님 이전 몇 세기 전까지는 학교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회당에서 랍비가 교사의 역할을 하였다. 랍비의 가르침은 토라에 근거한 종교적 ․ 도덕적 가르침이었으나, 읽고, 쓰기와 수리적 능력도 포함되었다. 교육은 6세 전후 남자아이들에게 실시하였으나 여자 아이는 제외되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에 발아래 앉아 대부분 따라하고, 암기하는 것으로 교육이 진행되었다. 초대교회에는 기독교학교는 없었고, 로마제국 전반에 걸쳐 있는 로마식 학교에서는 철학, 수학, 음악, 문학 수사학, 천문학, 건축 등을 가르쳤다. 학교가 드문 경우에는 노동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부모에게서 농사일, 노동일, 부엌일 등을 배웠다. 신약시대에도 가정에서 놀고, 일하고, 교육을 받았다.

늦은 젖떼기와 가정에서의 교육을 통해 13살이 되면 종교적 합법적으로 장년이 되었다. 남자는 십대 후반에, 여자는 조금 일찍 결혼하였다. 이 성인식은 바 미츠바(Bar Mitzvah, 여자 아이의 경우 Bath Mitzvah로 12세 때 한다)라고 부른다. 랍비 문서인 아봇(Aboth, 아버지의 격언)은 인생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나눈다.

5세 - 성경
10세 - 미쉬나(Mishna)
13세 - 계명
15세 - 탈무드(Talmud)
18세 - 신부방(bride-chamber)
20세 - 소명을 따르다
30세 - 권위
40세 - 식견
50세 - 고문
60세 - 장로
70세 - 백발
80세 - 특별한 힘
90세 - 굽은 등
100세 - 이미 사망하거나 이 세상을 떠남

‘언약을 위한 13세’라는 말은 ‘언약을 이행하는’ 의미이다. 2세기에 랍비 엘르아살 벤 시므온(Eleazar ben Simeon)은 아버지는 아이가 13세가 될 때까지 행동을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13세가 되면 남자는 이스라엘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회당의 멤버가 되는 동시에 법적으로도 책임을 져야했다. 예수님도 12세 되던 해에 교사들과 함께 앉아 듣기도 하고 질문을 하였다.(눅 2:41-47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은 성인 남성으로써의 변화를 준비했던 것이다.

3. 결혼
“사랑과 결혼은 말과 마차처럼 함께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성서시대에는 신부와 신랑은 선택의 권한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결혼이 십대에 이루어지고, 경험이 없는 청춘기의 아이들보다 부모의 생각이 통찰력이 더 있다는 생각이 야만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열왕기에 보면 여호야긴은 16세에, 요시아는 14세에 결혼 하였고, 일반인들은 생업을 배우고 신부값을 모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신약시대에는 랍비들이 결혼을 위한 최소 연령을 여자는 12세, 남자는 13세로 규정하였다.

결혼은 배우자의 아버지가 결정하였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그의 종을 보내어 라반의 딸 리브가와 결혼시켰다. 결혼이 결정되고 난 후에야 리브가에게 의견을 물었다(창 24:34-58). 아브라함의 종은 가나안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약 1,600km를 여행하였다는 극단적인 경우는 이스라엘의 경우 며느리를 일가친척에서 선택하였음을 알 수 있다(족내혼 endogamy). 삼손은 그의 백성들 가운데서 선책하지 않으므로 아버지의 근심이 되었는다(삿 14:3). 이삭은 야곱에게 가나안 여자를 취하지 말라고 당부하였고, 그 과정에서 라헬의 선택은 야곱이 결정하였다(창 28:1-).

결혼 제안이 받아드려지면, 배우자의 아버지들은 재정적 협상을 한다. 딸은 잃거나 얻는 것은 노동력의 손실과 획득이다. 신부값, 모하르(mohar)는 여자 아버지의 손실에 대한 보상이다. 신부는 매매의 대상은 아니지만 후에 신부가 필요 할 때는 돌려받았다는 증거가 있다. 신부값은 신부 아버지의 사회적 위치와 부에 따라 달랐다. 강간으로 인한 강제 결혼의 경우 은 50세겔이었다.(신 22:28-29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동침하는 중에 그 두 사람이 발견되면 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야곱은 신부값으로 얼마동안 노등을 해 야했고(창 29:15-30), 다윗은 미갈을 얻기 위해 사울의 요구대로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 가져와야 했다.(삼상 18:27 다윗이 일어나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 자 하니 사울이 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결혼하기로 합의하면 신랑은 신부의 집에 선물을 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딸을 선물로 주는 경우가 있다. 옷니엘은 자신의 딸을 출가할 때 딸에게 밭을 선물(신부지참금 dowry)로 주었다.(수 15:17-19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함으로 갈렙이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약혼은 현재의 엄격하였고, 파혼하게 되면 책임져야 하는 쪽에서 벌금을 물어야 했다. 결혼이전 성관계는 금지되었으므로, 마리아의 임신은 놀랄만한 일이었고 요셉은 파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마 1:18-19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4. 일부다처제와 이혼
결혼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서로를 보충하려는 배우자와의 우정과 자녀 양육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목적은 창세기 1:28과 2:18-24에 잘 나타나 있으며, 오직 하나의 배우자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그러나 타락한 가인의 후손인 라멕이 두 명의 아내를 취하므로(창 4: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일부다처가 시작되었다. 아브라함은 여종 하갈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았다. 고대 문서, 특히 함무라비 법전에 보면 당시 일부다처가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명기 21:15-17(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에 보면 일부이처(bigamy)가 일반적이기도 하였다. 경쟁적인 부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의 재산 다툼을 규정하고 있다. 일부다처는 일반인들 보다는 왕들에 더 성행하였다. 예언서는 일부다처의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호 2:4-5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 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이혼은 희박한 근거에도 가능하였다. 신명기 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라고 적고 있다. 성서시대에는 오직 남자만이 이혼 제기 할 수 있었다. 정숙하지 못한(unfaithfulness) 것이 이혼의 사유가 되었고, 그 제한도 있었다. 결혼한 당시 처녀가 아니었다는 누명을 씨우는 것으로는 이혼이 불가능하였다.(신 22:13-19 누구든지 아내를 맞이하여 그에게 들어간 후에 그를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이르되 내가 이 여자를 맞이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가 처녀임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그 처녀의 부모가 그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가지고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처녀의 아버지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에게서 처녀임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의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을 씌움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버지에게 주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평생에 버릴 수 없는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강간으로 결혼한 경우에도 이혼 할 수 없었다(신 22:28-). 남자는 정숙하지 않은 아내가 재혼하지 않은 경우 다시 취할 수 있었다(호 2-3장).

신약에서 예수님은 원칙적으로 일부일처(monogamy)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의도를 천명하였으나, 정숙하지 못한 경우 이혼은 허락하였다.(마 19:3-1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 함이니라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유대인,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모두 결혼한 사람끼리의 간음(adultery)은 금지하였다. 결혼외의 사통(fornication)은 묵인되었지만, 유대 사회는 예외로 이는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일로 예수님과 바울 모두 이점을 강조하였다. 사도들은 성적 부도덕에 떨어지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여자들이 교회에서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짧은 머리가 간음한 여인의 징표기 때문이었다.(고전 11:2-16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예수님과 사도들도 개종한 창녀들을 포함하여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이는 비기독교 문화의 성적 기준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바울 모두 성적 결합은 배우자 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게 되며, 일생을 같이 하는 관계 속에서 만이 적법함을 강조하였다.(마 19:5-6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엡 5:21-25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예수님의 이혼에 대한 가르침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법적인 권리가 없는 여성이 버려지면 몸을 파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의 성적 관계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당시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다(고전 7장). 남녀 모두 배우자의 몸은 서로에게 속한 것이라는 사상으로 사회 변혁의 씨앗을 뿌린 것이었다.

5. 성차
남녀간의 평등 혹은 성차(性差)의 문제는 페미니스트들을 자극하는 사회적 이슈이다. 그러나 성경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후기 구약시대의 유대교의 가르침은 남성 중심으로, 여성은 사회적 ․ 영적으로 제2 계급(second class)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초대교회 시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어머니와 가정주부로써의 역할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향상되었다. 이스라엘과 초대 기독교인의 가부장적인 형태가 늘 여성을 압박한 것만은 아니었다.

1) 구약시대 - 평등주의
여성의 운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 점에서 남성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성은 가사 노동의 무거운 짐을 져야했다. 창세기 2장 18절에는 “돕는 베필”로 말하고 있다. 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보충해 주는 것이다. 부모를 동등하게 공경해야 하며(출 20:12), 부모를 저주하는 자를 죽일 것을 명령하고 있다.(레 20:9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아내를 사랑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예는 많이 있다. 엘가나는 한나를 지극히 사랑하였다(삼상 1:4-8; 20-23).

딸은 아들과 가정생활을 함께 하였다. 아들들과 함께 종교 축제에 참여하고 율법에 순종해야 했다. 어떤 여성은 국가의 대소사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미리암의 경우 모세를 살려내기도 하였다(출 2:1-10). 미가는 모세, 아론과 더불어 미리암을 민족의 지도자로 보고 있다. (미 6: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드보라는 에언자인 동시에 사사요 지도자였다.(삿 4:4-5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야비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다윗을 푸대접한 어리석은 남편의 위험을 모면하게 해준다(삼상 25). 왕국 시대에 등장하는 태후들은 아들들의 통치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영향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게 취급받지는 못하였다. 여성은 재산으로 취급되어지기도 하였다.(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아내는 남편을 ‘주’라고 호칭해야 했다.(창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아내는 함부로 이혼할 수 없었고, 맹세도 남편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아내와 딸은 남자 상속자가 없는 한 유산을 상속 받지 못하였다. 모세의 외동딸의 경우 같은 부족내의 남자와 결혼(족내혼 endogamy)을 조건으로 허락 한다.(민 27:1-11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그의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받게 할 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규례가 되게 할지니라) 욥의 경우는 예외로, 욥의 세 딸은 일곱 형제와 같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데, 아마도 욥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욥 43:13-15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딸은 종종 노예로 팔리거나 첩이되는 경우가 있었다.(출 21:7-11 사람이 자기의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 같이 나오지 못할지며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상관하지 아니하면 그를 속량하게 할 것이나 상전이 그 여자를 속인 것이 되었으니 외국인에게는 팔지 못할 것이요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우할 것이요 만일 상전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 들지라도 그 여자의 음식과 의복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말 것이요 그가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여자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 그러나 딸을 창녀로 파는 것을 금하고 있다. (레 19:29 네 딸을 더럽혀 창녀가 되게 하지 말라 음행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

2) 신약시대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예수님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는 달리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예수님은 노예제도를 비판하거나 여성에게 좀 더 나은 지위나 자유를 부여할 것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단순히 행위를 통해 사회적 변화가 필요함을 암시하였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제자들을 놀라게 하였고(요 4:4-30).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과 가까웠다(요 12:1-3).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료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 이방여인의 요청에 예수님은 그녀의 딸을 고쳐주었다.(막 7:24-30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일도 허락하셨다.(눅 7:36-50). 여성 차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 게다가 마리아, 마르다 등 여러 여성이 예수님의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십자가상에서나, 무덤을 향유을 준비하고 찾아간 일, 부활의 첫 목격자 등이 모두다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 여성의 사역을 제한하였다. 여성은 가르친다거나 남성에 대한 권위를 가질 수 없다고 가르쳤을 뿐 아니라(딤전 2: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고전 14: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베드로는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벧전 3:1-7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도 역시 아내와 남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강조하였다.(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엡 5:23-30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여성에 대한 제한과 존경이 혼재되어 있는 것은 외부적인 강요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변화가 있다는 증거이다. 바울도 예수님처럼 사람들에게 배어있는 문화를 단순에 제거 할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변화의 씨앗이 뿌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면 더 이상 여성은 제2 계급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6. 죽음과 장례
1) 장례 BR>죽음은 은밀히 처리되어지지 않고, 가까운 친지들에 의해 그들의 슬픔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였다. 슬피 울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였다. 더러는 겉옷을 찢거나, 베옷을 입거나, 거친 소재의 천으로 만든 띠를 허리에 메었다.(창 37: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통곡하는 사람은 신을 벗었고, 남자는 머리를 덮었다. 더러는 흙은 머리에 뿌리거나, 먼지에 구르거나, 재 위에 앉았다. 향수를 뿌리거나 세수는 하지 않고, 금식을 하거나, 머리카락을 잘랐다. 심지어는 신체의 일부를 자르기까지 하였는데 이는 이방인의 풍습으로 이스라엘에서는 금지한 것이었다. 애통하는 기간은 7일 정도였으며, 그 기간에는 이웃들이 애통의 빵과 위로의 잔(the cup of consolation)을 가져올 수 있었다. 망자의 집은 부정하므로 음식을 만들 수가 없었다.

죽음과 장례의 기간은 비교적 짧은 기간으로 이는 시체의 부패와 위생상의 이유 때문이었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되어 악취가 난다고 하였다. (요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그래서 사망한 당일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관습이 아니라 이집트의 관습에 따라 미이라로 만들어졌다(창 50:1-3,26). 화장은 거의 행하지 않았고, 시체를 태우는 것은 행악자들을 모욕하는 경우에만 가능하였다.

장례식은 조용한 의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애통을 노래하거나 소리쳤다. 망자의 이름을 부르며 “아아 슬프도다, 가엾도다”를 외쳤다.(왕상 13:30 곧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 암 5: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통곡의 모든 친지들의 의무였다. 때로는 이 애통함의 표현이 긴 노래로 지어졌다(삼하 1:17-27). 그 예가 예레미아 애가로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과 그 백성의 살해를 애통하고 있다.

관은 사용하지 않았고, 부유한 가문은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을 사용하였다. 그 무덤은 여러 시체를 둘 수 있어서 가족묘로 사용되었다(창 23:4-30).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막멜라 굴에 장사된다. “열조와 함께 눕다.”는 관용적인 표현은 이 같은 관습에서 유래되었다. 야곱의 경우 그 부인 라헬의 무덤에 묘비를 세웠다.(창 35: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예수님 눈물교회의 유골함들
후대에 특히 헤롯시대에는 ossuary라고 부르는 유골함에 뼈들을 모아 저장하는 관습이 생겨난다. 그래서 기드론 계곡은 “죽은 자들의 도시”(necropolis)라고 불리게 된다.

신약시대에 시체는 면, 향, 몰약, 침향 등으로 방부 처리되어 무덤에 장례되었다. 예수님도 이렇게 처리되었다. 무덤에서 나온 나사로도 면으로 온 몸이 싸여있었다.(요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2)유족
장례식후에 여성은 그의 생존이 문제가 된다. 그들의 위한 직장이나, 사회 보장제도는 없었다. 따라서 어느 누구가 돌보지 않는 한 걸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인성 과부는 예수께서 외아들을 살려주었을 때 다시 희망을 찾았다(눅 7:11-17) 젊은 과부는 재혼할 수 있었다. 다말은 아들과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창 38: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룻은 그의 시어머니는 예외로 과부가 된 형수가 자식이 없는 경우 후사를 얻기 위해 역연혼(levirate marriage, levir 는 라틴어로 ‘남편의 형제’를 뜻한다)하였다.

남성은 과부와 고아를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시편에서는 하나님은 그들을 특별히 돌보신다고 하였다.(시 146: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율법에서는 과부는 작물의 이삭을 주울 수 있었고, 삼면 마다 수확의 1/10을 고와와 과부들이 얻을 수 있었다(신 14:28-). 욥기는 악한 사람들을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욥기 22:9),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욥 24:3) 라고 적고 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이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막 12:40)라고 비난하였다. 예언자들도 과부를 핍박하는 자는 (말 3: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와 동일하게 심판받는다고 하였다. 초기 기독교인들도 과부에 대한 책임을 중요하게 여겼다. 과부는 정기적으로 음식을 제공받았고, 야고보서는 과부를 돌보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증거라고 하였다.(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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