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의 경전 - 타나크(Tanakh, 히브리어: תנ"ך)
경전을 구성하는 세 분류명을 늘여서 쓴 형태이며 (תורה נביאים כתובים), 각 분류명의 맨 앞글자만을 따서 약칭으로 '타나크(תנ"ך)'이 된 것이다.
기독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구약성서는 이 타나크를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한 수많은 판본 및 번역본을 가리킨다.
[1] 유대인의 성서는 대략 기원전 1500~400년대 사이에 오랜 세월을 거쳐 바빌로니아, 팔레스티나,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 낱권들로 기록된 경전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서, 오랜 세월을 거쳐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여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경전으로 받아들인 기독교에서는 오늘날 종파에 따라 다른 분류를 쓰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을 한 판본들이 공개되어 있다..
[2] 기독교에서 공인된 구약성서와 유대교의 성경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내용이 거의 일치하나, 경전을 나누는 분류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경전의 목록을 확정할 당시 따랐던 전승의 차이에 근거 한다.
애초에 성서는 다른 지역에서 쓰인 기록이었기 때문에, 지역 및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판본과 낱권들이 생겨나, 성서를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경전으로 삼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결국 유대교에서는 히브리어로 쓰인 판본이 남아 있는 문서를 대상으로 경전화 작업을 행하였으며, 기원전 4세기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체계화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당시 그리스어로 된 판본만이 있던 일부 문서들은 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3] 한편 기독교에서는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70인역에 보존된 내용을 근거로 구약성서를 정립하게 되었다. 이 70인역에는 이른바 제2경전이라 불리는 7개의 서적 및 2개의 정경 추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히브리 말로 된 사본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유대교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타나크 .... 또한 구약성서의 판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성경의 원문은 소실되어 없으며 원문에 가깝다 여겨지는 여러 판본들이 존재한다. 또 그 가운데 표준으료 여겨지고 있는 것은 AD 8세기 전후 만들어진 '마소렛'이라 불리는 유대인 성서 본문 비평가들의 작업과 전승에 의해 내려온 판본이다.
마소렛(Masoretes)
히브리어: בעלי המסורה ba'alei hamasorah = 바알레이 하마소라
7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이스라엘 티베리아(디베랴)와 예루살렘과 바빌로니아에서 활동하던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검토, 편찬한 전수자, 필사자와 학자들 (서기관)을 일컫는다. 이들은 자음으로만 되어 있던 히브리어 성경의 발음을 정착했으며, 이를 위해 모음 기호를 개발하여 붙였다.
주로 벤 아셔(Ben Ăser)가문의 사람들이 마소라 사본을 만들고 보존하는 데 공헌하였으며, 오늘날 구약성서의 편집은 특히 벤 아셔 가문에 의해 도입된 모음 구분 부호법을 전형으로 하고 있다. 이 부호 기입법을 "벤 아셔 표기법" 또는 "마소렛 표기법" 또는 마소렛이 살던 도시 티베리아스 (טבריה)의 이름을 빌어 "티베리아스 표기법"이라 부르고 있다.
약간 다르지만 벤 나프탈리 가문의 마소라 사본도 전해지고 있다.
타나크는 역사적 소설
우리가 타나크(구약)에 대하여 좀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 구약의 필요성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선 실상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리라.
다음은 " 웃고있는 예수" 에서 발췌하였다.
수세기를 지나면서 아담과 이브와 같은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신화라는 것이 분명하여졌다.
그러면 타나크(구약)의 나머지 이야기는 어떠한가? 이것은 역사적인가?.. 그러나 그런 증거도 없다. 차라리 타나크는 신화와 전설의 모음집이라는 것이 타당 할 것이다. 공정하게 보면 , 실제로 타나크 어디에도 그 이야기가 역사적이라는 주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라는 말이 고대 히브리어에는 존재하지도 읺았기 떄문이다.
우리는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을 ,신화와 동떨어진 현대적 역사개념으로 이 고대문서에 투영시켜 온것은 아닌가.
코펜하겐 대학의 구약연구소 교수인 토마스 톰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뿐만아니라 ,홍수이야기도 신화의 영역으로 사라졌다. 또한 더이상 족장 시대에 대하여 말 할 수 없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실제 역사적 과거를 설명하는 데 설 자리를 잃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단순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이야기들은 이 이야기를 역사적이라든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다룰 수 있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주지 못한다.
연합한 부족국가나, 수도 예루살렘이 존재 하였다는 증거는 없으며, 또한 서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였던 지속적이고 통일된 정치지배세력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므로 전설에서 묘사된 크기의 제국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우리는 사울,다윗,솔로몬으로 일컬어지는 왕들의 존재에 대하여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또한 이시대의 초기, 예루 살렘의 어떠한 사원이 존재하였을 것이라는 증거 엮시 가지고 있지 않다."
텔아비브 대학 고고학 리더인 이스라엘 핑겔스타인, 그리고 공동저자인 닐 실버만 은 성서를 "오디세우스 의 호마적인 모험담 또는 로마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아에네아스 이야기처럼 더 이상 역사적이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다. "라고 하였다.
성서 이야기는 너무 모순되고,연대 착오등으로 가득 차 있어 , 이것은 정확한 역사적인 연대기 라기보다는 역사적 소설로 간주되어져야 한다.
한 예로 타나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하여 살펴 보자.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위대한 족장으로 간주된다. 그는 또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실존적인 증거로서 결정적인 것으로 자주 주장되는 것처럼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는 생각이다.
성서 연대기에 따르면 , 아브라함은 기원전 2,100년경 가나안으로 이주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우르의 갈데아로부터 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갈데아는 역사적으로 기원전 1,000년 이후에나 존재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자료 이전에 갈대아가 존재 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팔레스타인 왕인 아비멜렉에게 도움을 청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팔레스타인에서 부족국가는 1,200년 이후에나존재하였다. 그리고 비록 아브라함과 다른족존장의 이야기에 낙타가 자주 등장하는데, 낙타의 사육은 기원전 1,000년이후에나 가능하여졌다. 또한 타나크에서 "고무,향유,몰약"을 운송하는 수단으로 낙타대상이 잦 언급되는데..이것 역시 기원전 8세기 이후에 이르러서 널리 보급되었다.
경전을 구성하는 세 분류명을 늘여서 쓴 형태이며 (תורה נביאים כתובים), 각 분류명의 맨 앞글자만을 따서 약칭으로 '타나크(תנ"ך)'이 된 것이다.
기독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구약성서는 이 타나크를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한 수많은 판본 및 번역본을 가리킨다.
[1] 유대인의 성서는 대략 기원전 1500~400년대 사이에 오랜 세월을 거쳐 바빌로니아, 팔레스티나,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 낱권들로 기록된 경전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서, 오랜 세월을 거쳐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여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경전으로 받아들인 기독교에서는 오늘날 종파에 따라 다른 분류를 쓰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을 한 판본들이 공개되어 있다..
[2] 기독교에서 공인된 구약성서와 유대교의 성경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내용이 거의 일치하나, 경전을 나누는 분류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경전의 목록을 확정할 당시 따랐던 전승의 차이에 근거 한다.
애초에 성서는 다른 지역에서 쓰인 기록이었기 때문에, 지역 및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판본과 낱권들이 생겨나, 성서를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경전으로 삼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결국 유대교에서는 히브리어로 쓰인 판본이 남아 있는 문서를 대상으로 경전화 작업을 행하였으며, 기원전 4세기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체계화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당시 그리스어로 된 판본만이 있던 일부 문서들은 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3] 한편 기독교에서는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70인역에 보존된 내용을 근거로 구약성서를 정립하게 되었다. 이 70인역에는 이른바 제2경전이라 불리는 7개의 서적 및 2개의 정경 추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히브리 말로 된 사본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유대교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타나크 .... 또한 구약성서의 판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성경의 원문은 소실되어 없으며 원문에 가깝다 여겨지는 여러 판본들이 존재한다. 또 그 가운데 표준으료 여겨지고 있는 것은 AD 8세기 전후 만들어진 '마소렛'이라 불리는 유대인 성서 본문 비평가들의 작업과 전승에 의해 내려온 판본이다.
마소렛(Masoretes)
히브리어: בעלי המסורה ba'alei hamasorah = 바알레이 하마소라
7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이스라엘 티베리아(디베랴)와 예루살렘과 바빌로니아에서 활동하던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검토, 편찬한 전수자, 필사자와 학자들 (서기관)을 일컫는다. 이들은 자음으로만 되어 있던 히브리어 성경의 발음을 정착했으며, 이를 위해 모음 기호를 개발하여 붙였다.
주로 벤 아셔(Ben Ăser)가문의 사람들이 마소라 사본을 만들고 보존하는 데 공헌하였으며, 오늘날 구약성서의 편집은 특히 벤 아셔 가문에 의해 도입된 모음 구분 부호법을 전형으로 하고 있다. 이 부호 기입법을 "벤 아셔 표기법" 또는 "마소렛 표기법" 또는 마소렛이 살던 도시 티베리아스 (טבריה)의 이름을 빌어 "티베리아스 표기법"이라 부르고 있다.
약간 다르지만 벤 나프탈리 가문의 마소라 사본도 전해지고 있다.
타나크는 역사적 소설
우리가 타나크(구약)에 대하여 좀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 구약의 필요성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선 실상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리라.
다음은 " 웃고있는 예수" 에서 발췌하였다.
수세기를 지나면서 아담과 이브와 같은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신화라는 것이 분명하여졌다.
그러면 타나크(구약)의 나머지 이야기는 어떠한가? 이것은 역사적인가?.. 그러나 그런 증거도 없다. 차라리 타나크는 신화와 전설의 모음집이라는 것이 타당 할 것이다. 공정하게 보면 , 실제로 타나크 어디에도 그 이야기가 역사적이라는 주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라는 말이 고대 히브리어에는 존재하지도 읺았기 떄문이다.
우리는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을 ,신화와 동떨어진 현대적 역사개념으로 이 고대문서에 투영시켜 온것은 아닌가.
코펜하겐 대학의 구약연구소 교수인 토마스 톰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뿐만아니라 ,홍수이야기도 신화의 영역으로 사라졌다. 또한 더이상 족장 시대에 대하여 말 할 수 없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실제 역사적 과거를 설명하는 데 설 자리를 잃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단순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이야기들은 이 이야기를 역사적이라든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다룰 수 있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주지 못한다.
연합한 부족국가나, 수도 예루살렘이 존재 하였다는 증거는 없으며, 또한 서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였던 지속적이고 통일된 정치지배세력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므로 전설에서 묘사된 크기의 제국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우리는 사울,다윗,솔로몬으로 일컬어지는 왕들의 존재에 대하여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또한 이시대의 초기, 예루 살렘의 어떠한 사원이 존재하였을 것이라는 증거 엮시 가지고 있지 않다."
텔아비브 대학 고고학 리더인 이스라엘 핑겔스타인, 그리고 공동저자인 닐 실버만 은 성서를 "오디세우스 의 호마적인 모험담 또는 로마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아에네아스 이야기처럼 더 이상 역사적이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다. "라고 하였다.
성서 이야기는 너무 모순되고,연대 착오등으로 가득 차 있어 , 이것은 정확한 역사적인 연대기 라기보다는 역사적 소설로 간주되어져야 한다.
한 예로 타나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하여 살펴 보자.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위대한 족장으로 간주된다. 그는 또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실존적인 증거로서 결정적인 것으로 자주 주장되는 것처럼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는 생각이다.
성서 연대기에 따르면 , 아브라함은 기원전 2,100년경 가나안으로 이주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우르의 갈데아로부터 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갈데아는 역사적으로 기원전 1,000년 이후에나 존재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자료 이전에 갈대아가 존재 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팔레스타인 왕인 아비멜렉에게 도움을 청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팔레스타인에서 부족국가는 1,200년 이후에나존재하였다. 그리고 비록 아브라함과 다른족존장의 이야기에 낙타가 자주 등장하는데, 낙타의 사육은 기원전 1,000년이후에나 가능하여졌다. 또한 타나크에서 "고무,향유,몰약"을 운송하는 수단으로 낙타대상이 잦 언급되는데..이것 역시 기원전 8세기 이후에 이르러서 널리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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