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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료] ]대제사장.서기관 율법사.랍비.바리새파.사두개파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13.03.01|조회수995 목록 댓글 0
대제사장.서기관 율법사.랍비.바리새파.사두개파

대제사장
산헤드린이 유대인의 자치세력으로는 최고의 기관인데 반해 한 개인으로서도 대장이 있어야지요 그 대장이 누구일까? 유대인의 공동체는 신앙 공동체 이기에 과거 에스라 이래로 대제사장이 지도자가 된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위치라고 볼수 있는 직책이라면 대제사장이였습니다 .

예수님 당시에도 대제사장이 산헤드린의 주역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종교당파 즉 신학적 배경으로 보면 사두개파(유대교 당파의 하나이며 지도적 계급에 속함 사두개라는 명칭은 다윗.솔로몬때 유명했던 제사장 사독의 이름에서 시작된듯하며 종교적으로 보수적 사상을 주장하였고 바리새파와는 대립을 하였고 그들은 부활.천사.영생.영혼등에 대해서 믿지않음)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외형적 전통으로 볼때 유대인들을 종교적으로 이끌어가는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로마나 헤롯이나 총독에게 붙어서 자기의 권력을 즐기며 백성들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착취하는 세력으로 쉽게 타락하곤 하였습니다 간혹 잘하는 대제사장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라는 직함이 유대인 공동체의 대표라는 것을 안 정복자들이 아예 대제사장까지도 자기들이 다루기 쉬운 사람들을 임명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쪽으로 눈이 트인 사람들이 돈을 갖다주고 대제사장권을 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안나스(요18:13.24.행4:6.)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제사장은 아론계열의 레위인이 되어야 하는것이 지요 그런데 로마나 헤롯가문과 결탁하여서 대제사장이 되니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성전에서 제물을 팔아 돈을 버는 장사까지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21:12에서 예수님은 성전 정화운동을 하신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하신"말씀" 내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라고 13절에서 하고 계십니다

서기관 .율법사.랍비
팔레스타인(가나안)땅 본국에 사는 사람은 그래도 어쨌거나 이런 성전에라도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는데 온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예배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모여서 율법을 배우고 유대정신을 이어갔습니다. 그 모이게된 장소가 회당입니다 이 회당은 외국땅에서 유대정신을 잇게하는 집회장소인 셈입니다.

이 회당은 이후에 팔레스타인땅에도 수없이 많이 세워져 교육기관이 되었고 그후로 바울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사실 이 운동은 원래 제사장겸 학사였던 에스라가 했던 일입니다 에스라 이후 중간기를 지나오면서부터는 어떻게 그당시 사람들에게 율법을 쉽게 가르칠수있을것인가가 문제로 대두되어 그 율법을 해석하고 쉽게 풀어주는 서기관. 율법교사. 지혜교사. 랍비가 생겨난 것이지요.

바리새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중 가장많이 예수님의 사역에 관계된 사람들이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이말은 분리되다 구별되다라는 의미를 갖고있는것으로 볼때 마카비 가문의 거룩한 전쟁에 함께 참여한 거룩한 전사들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자를 가르키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거룩하게 생각하며 의식상 부정한것은 엄격하게 구별햇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적으로보다 종교적으로 더 인정을 받는 그룹이였습니다 니고데모나 바울과 같은 바리새인도 있었던 점으로보아 진지하게 율법을 연구하며 구약을 계승하려는 그룹으로 유대교의 핵심 세력이 이들입니다.

사두개파
사두개파는 유대교 안에서 제사장적 귀족 집단을 형성하고 있던 종파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지주들입니다 이들의 정신은 위에서 (대제사장해설)언급해서 여기서 갈음합니다.

다음은 신약성경으로 고!고!고!!!!

마태복음 23장 에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위선자'로 질타하는 예수의 말씀으로 가득차 있다. 이제 1-13절을 텍스트로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지금의 한국개신교가 안고있는 문제와 해답이 그 안에 있음을 알수있다.

우선 비판의 대상이었던 '바리새'부터 알아보자.
그뜻은 '분리된 자들, 구별된자들' 이다. 사두개, 에세네와 함께 3대 유대분파중 하나다.
특히 사두개파와 대립하는 세력으로 모세의 율법과 조상의 유전을 중시했으며 부활, 천사, 영(靈)의 존재를 인정한다.
헬라문화에 대해서는 이를 거부했으며, 다른부류의 같은 유대인들을 멸시했다. 자기들만이 성경의 유일한 해석자라고 믿었으며 의(義)는 율법의 엄격한 실행에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귄위주의, 형식주의, 율법주의에 빠졌다.

율법사는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며, 서기관은 법으로 결정된 사항을 공포할때 율법사의 기능을 맡음으로서 율법사와 서기관이 동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구역에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으로,공동번역에서는 '율법학자와 바라사이파 사람들' 로 묘사되고 있다.

동방박사와 목동보다 못한 사람들
어떤 시대나 권력을 가진 자들은 주류이고 그 권력에 지배를 당하는 사람들은 비주류가 됩니다.

아기예수님이 오셨던 2천년전에 주류는 누구였습니까?
정치적으로는 로마총독과 분봉왕을 중심으로 한 무리들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성전에서 활동하였던 제사장들과 율법사와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하급관리들과 세리들과 부자들이었습니다.

비주류는 죽도록 일하고서 박봉과 세금에 시달리는 서민들이었으며 성전에 가서 때마다 열심히 바치지 않으면 항상 죄인취급을 받았던 백성들이었으며 말을 하고 싶어도 한마디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가난한자들, 노약자들, 여자들, 병든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스스로 권력을 가지고 건강한 체하는 주류를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바로 가난하고 병들고 연약하고 죄인된 자들을 위해서 입니다.

오늘날 성탄을 가장 축하하자고 떠들고 있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열심히 일하는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노리는 기업제품들과 백화점 주인들입니다.
그리고 호주머니를 노리는 자들이 바로 거룩한 예수님의 이름과 탄생을 팔아서 자기 배를 채우고자 하는 삯꾼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매우 당황하고 악한 짓을 한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정치권력자들과 종교권력자들과 사회권력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멧세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돌이키는 회개였습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전부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더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낮아짐의 삶을 사는 자들이 높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자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대단히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을 속이는 삯꾼들은 귀신들린 자, 도둑놈, 살인자, 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같은 종교권력자들에게는 반드시 저주와 심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이득도 없어보이는 소자에게 물 한그릇 대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기 보다는 마귀들린 삯꾼에게 맹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도둑질을 하는 삯꾼의 말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의 가슴을 품기보다는 삯꾼의 가슴으로 패거리, 모리배의 짓을 할려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성도들을 사랑하기보다는 그들을 치리하고 쫒아내고 중상모략합니다.

하나님을 대단히 잘 믿는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기예수님을 찾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능통한 자들이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여왔다는 자들이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황당해 하였고, 아기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공모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그리스도의 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속에 내주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불꽃과 같은 눈으로 우리들을 보고 계십니다.

아기예수님을 경배하고 기뻐하였던 동방박사와 목동보다 못한 자의 삶을 살아서 되겠습니까?
동방박사의 예물 속에 담긴 경배보다 동방박사가 드렸던 예물에 더 많은 눈독을 드리면서 오늘날 성도들에게 동방박사와 같이 돈을 많이 내라고 사기를 치는 삯꾼들과 같은 가증하고 거짓되며 위선적인 탐욕자의 삶을 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닌 마귀자식과 같이 대단히 저질적이고 천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두개인의 유래
사두개인은 아마 유대교의 사제 사독 (Zadok)의 후손으로 여겨지고 있다. 열왕기 상 (2.35)에 따르면 사독은 솔로몬 왕에 의해 새로 세운 성전의 제사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에언서 에제키엘 (40.46)에서는 사독의 후손들은 사제직을 대대로 이어받았다고 하며 이들을 유대교에서 이른바 레위(Levi)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사독의 후손들은 에루살렘 성전의 관리를 맞아서 하였다고 쓰여져 있다 (에제키엘 44. 10-31). 신약성서에 일컬어지고 있는 사두개인들은 아마 이와 같은 구약성서의 사독의 후손, 특히 예루살렘의 고위 사제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서에서는 사두개인(코이네 Σαδδουκιοι, saddoukoi)을 일종의 종파로 취급하고 있다.

사두개인은 어떤 사람일까?
유력한 제사장 가문들과 세속 귀족 대표자들이 속한 종교적인 당파이다. 이 이름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의 우두머리 제사장으로 삼은 사독(삼하8:17; 왕상2:35)에게서 비롯된 듯하다.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의) 율법에 문자적으로 포함된 것을 넘어서는 가르침은 모두 거부했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죽은 자들의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지도적인 당파이어서 정치적인 책임을 주로 맡았다.

사두개인들은 로마 사람들과 타협하더라도 유다 백성에게 남아 있던 정치적인 자유의 마지막 몫이라도 지켜보려고 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파괴와 아울러 사두개인들은 유대교 역사에서 사라지는데, 그 때부터는 서기관들이 전적으로 바리새파 성향을 띠게 된다.

마22장에서는 부활의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코자 했으나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자"라는 꾸지람을 들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엣센인 연구 보고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는 허공에 오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속에 오셨다. 곧 그 당시 지중해 연안을 다스리고 있던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있던 유대 땅에서 탄생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자라시고 활동하시던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예수님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 자라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을까?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 당시의 정치, 경제, 종교적인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I. 정치적인 상황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유대 땅은 헤롯 대왕(주전 73년-주전 4년)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이두매 출신이었지만, 안토니우스의 총애를 받아 로마 원로원에 의해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받았다(주전 40년). 그는 통치 기간 중 가이사랴 항구 건설, 사마리아 건설, 헤롯 궁전 건축과 예루살렘 성전 증축과 같은 공공사업을 많이 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말년은 가족간의 불화로 인하여 비참한 생애를 보내었다.

주전 4년에 헤롯이 죽자 그의 세 아들 사이에 왕위 계승 문제를 두고 내분이 일어났다. 이들은 로마로 달려가 자기가 적법한 왕위 계승자임을 주장하면서 왕위를 요구하였다. 이들의 주장을 다 들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원로원은 팔레스틴 지역을 세 부분으로 분할하기로 결정하였다. 먼저 아르켈라우스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두매를 다스리는 ‘민족왕’으로,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으로, 빌립은 트란스요르단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르켈라우스는 유대인들과의 잦은 충돌과 불화로 인하여 오래 통치하지 못하고 유대인들의 고소로 주후 6년에 파면되었다. 그 후 유대 지역은 로마 황제의 직할 통치 지역으로 변경되었다. 그리하여 유대 지역은 로마 황제가 임명한 ‘총독’들이 와서 통치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할당받은 안티파스는 비교적 온건하게 통치하여 오랜 기간 재임하였다. 그러나 안티파스는 그의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인하여 세례 요한을 목베어 죽였으며, 후에는 헤로디아의 지나친 권력욕이 화근이 되어 칼리굴라 황제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나게 되었다(주후 39년). 한편 트란스요르단 지역을 할당받은 빌립은 무난하게 죽을 때까지 통치하였다(주후 34년).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헤롯 대왕이 죽기 직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주전 4,5년경). 헤롯의 진노를 피하여 잠시 애굽 땅에 가서 지내시다가, 다시 귀국하여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갈릴리 지역인 나사렛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셨다. 나이 서른쯤 되어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는 주로 갈릴리 호수 주변 지역에서 활동하셨다. 가끔 유대 지역으로 가시기도 했는데, 거기에는 유대의 총독 빌라도가 다스리고 있었다(주후 26-36년). 그러나 총독은 스스로 유대 지역을 다 다스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세금 징수를 비롯한 상당한 부분을 유대의 자치기구인 산헤드린(공회)에 의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대 총독이 가지고 있는 병력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총독은 매사에 유대 지도자들과 군중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인 상황 하에서 예수님은 유대의 지도자들의 모함과 기회주의적인 로마 총독에 의해 처형되었다(주후 30년경).

참 대제사장의 간구 (최세창)

<히브리서 5:1-10>
1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3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6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1. 시작하는 말
언젠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발을 보니 양말이 짝짝이이었습니다. 짝짝이 양말을 신은 착각은 웃음으로 끝나고 말지만, 구원에 대한 착각은 영원한 천국 삶이나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한때, 예수님이 유대인으로 탄생하셨고, 율법을 좇아 때가 되면 성전에 참가하신 점 등등을 들어 기독교를 유대교의 아류라고 한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은 유대교 경전인 율법의 주 내용인 메시아 약속이 바로 자신임을 암시하시거나,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율법의 주된 내용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모형임을 목숨을 걸고 공공연히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세상을 정복하여 메시아 왕국을 세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문은 구약 시대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이 바로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점과 그 결정적 차이점에 대해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또한 종교마다 내세우는 메시아나 어떤 종교의 교주가 메시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무이한 메시아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2. 구약의 대제사장
레위족인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의 기본 조건은 첫째는 일반인과 같은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는 하나님의 임명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임무는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해서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인 속죄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임명을 받고 예물, 특히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을 드리는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한 사람들을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도 연약에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자들”(τοίς ἁγοούσιν)에 대해서 브라운(J. Brown)은 “단지 지식의 결여로 말미암아 어떤 의무를 소홀히 했거나, 어떤 잘못을 범한 자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모든 죄는 무지, 즉 비난받을 만한 무지의 결과로 표현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82:5을 보면, “저희는 무지 무각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라고 하였고, 또 시편 14:2 이하에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죄인들에 대한 묘사이지 세상적 관점의 무식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3:17에도 베드로가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라고 하여 무지에서 비롯된 죄를 지적했습니다. 모든 죄는 참된 지혜의 결핍은 물론, 구원의 진리에 대한 지식의 결핍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전에는 고의성이 없는 죄인 무지에서 비롯된 소극적 죄와 고의성이 있는 죄인 적극적 죄를 구분하였고, 전자의 경우에는 구속의 길을 열어 놓았으나 후자의 경우에는 극형에 처했습니다. 히브리서 10:26 이하에도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6:4 이하에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라고 했습니다.

“미혹한 자들”(τοίς…πλανωμένοις)은 ‘유랑하는 자들’, ‘길을 잃은 자들’, ‘잘못한 자들’, ‘잘못된 데 빠진 자들’, ‘속은 자들’, ‘실수한 자들’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간에 하나님의 율법에서 벗어난 자들을 가리킵니다. 미혹한 자가 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무지입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하나님의 율법에서 탈선한 죄인들에 대해서 냉정이나 격정이 아닌 순수한 동정을 능히 표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신도 죄인들처럼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동병상련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 역시 그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마땅했습니다. 실제로 대속죄일인 티스리월(7월) 10일에 대제사장은 먼저 자신과 가족의 죄를 위해 수송아지를 바쳤고, 그 다음에 백성들의 죄를 위해 염소를 바쳤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은 죽음에 해당하는 인간모두의 죄가 인간보다 못한 수송아지나 염소의 죽음의 피로 속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짐승의 죽음의 피는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인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대속죽음의 피의 모형일 뿐이고, 실제적 죄의 속함은 약속을 따라 장차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거해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월말에 결재하기로 약속되어 있으면, 그 이전에라도 얼마든지 돈을 내지 않고도 돈을 낸 것과 똑같이 물건을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탄생 이전의 대제사장을 비롯한 모든 인간도 모든 속죄제물도 모든 종교적 교리도 죄인을 구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인류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인인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피조성과 의존성, 죄성과 이기성, 가능성과 탐욕성, 유한성과 필멸성을 지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존귀와 영광이 대제사장이지만, 그 자신도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할 죄인이지 구원자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시기는 했으나, 죄인인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임명하셨습니다. 또, 레위족의 아론 대제사장의 반차가 아니라, 시종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하셔서 사람 같이 존재하며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 사람들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고난의 절정인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실 수밖에 없게 되셨을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능히 구원하실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누가복음 22:42 이하를 보면,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전심전력을 다하는 정도가 아니라, 온 영을 쏟는 절실한 간구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신 가장 요긴하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값진 선물을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기도는 유한하고 나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얻는 방편입니다. 아무리 일을 해내고 싶어도 늙어 힘이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으면 도리가 없고, 아무리 달리고 싶어도 병약하면 할 수 없고, 아무리 감당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으면 어쩔 도리가 없고, 죽을병이 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내가 무능하거나 시간이 없거나 죽을병이 들거나 죽는 순간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지혜로 살아가는 방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두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간구는 결국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구원의 대업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죄 사함을 얻고, 천국의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은 요한복음 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고난을 당해야 할 죄가 없으셨지만, 죄로 멸망당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아버지의 구원의 뜻을 순종하시느라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시기까지 고난을 자취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4. 맺음말
유대교에 있어서 최고의 존귀와 영광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자신을 포함해서 백성들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 대제사장은, 죄인인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대속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난을 당하신 의로우신 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는 대제사장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풍성감리교회. 저서:신약 주석 시리즈 완간, 난해 성구 해설, 형통의 기도,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설교집 16권. 426-3051)

제사장과 선지자의 차이
제사장은 대제사장과 그냥 제사장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아론과 그 후손들이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 맥이 죄로 인해 끊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냥 제사장은 일반 레위인들이 맡았습니다.
대제사장은 유일하게 성막의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은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성소에 들어가기전 피를 온몸에 뿌리고(예수의 피를 의미) 방울을 달고 들어가서 쉐카이나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통해 주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선포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다 점점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귀해지기 시작했죠...

신약성경에서 세레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는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섬기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불신앙으로 인해 경고 조치로 얼마기간 동안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무언가 하나님께 이상을 받았는가보다 추측을 합니다.

제사장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뵙는 자격이라기보다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따라 사하는 의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역할을 했죠.

선지자는 사사시대 이후에 나타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부름받아 기름부음을 받아 세워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사무엘 이전 엘리선지자 시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귀했다고 말합니다.
그런 와중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아주 잘 듣는 탁월한 선지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초기에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때에 사울에게 기름부어 왕을 삼고 다윗에게 기름부어 왕을 삼은 이후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왕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무엘시대가 지나면서 선지자들은 신분이 격하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주로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예언)을 선포만 하면 온갖 시달림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 중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탁월한 인정을 받는 이들이 있지만 이들도 험난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오르시기 전 마태복음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초기의 선지자와 후기의 선지자는 좀 다릅니다. 초기는 말 그대로 왕같은 제사장이었고 선지자였습니다. 후기에는 하나님께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골라 선지자로 활동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신약에서의 선지자의 개념은 좀 다릅니다.
신약에서 살펴보면 바울당시에도 여러 선지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3.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행11:26-28)

그러나 엘리야나 이사야처럼 그런 활약을 한다기보다 선지자라는 말 그대로 "먼저 아는자, 보는자"의 의미 그대로 대언 또는 예언 등의 일을 하는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사도행전 15: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1.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2.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3.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행21:8,9)

고린도전서 12: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또한 바울은 교회를 위한 성령의 선물을 말하면서 그 직분중 선지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흔히 성령의 5중사역 중 선지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사도와 함께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초대교회에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성경이 폐하여지지 않았다면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자로서 부름을 받은 한 역할을 담당하는 교회를 위한 성령의 선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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