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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료] ]야훼 신명과 에이레네(평화) 용어 해설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09.01.14|조회수63 목록 댓글 0

야훼 신명과 에이레네(평화) 용어 해설  

한국 교회는 지금 어느 때보다 성경 원어에 입각하여 성경을 연구, 해석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교사들, 특별히 목회자는 최고의 성경 교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원어해독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과거 한국 교회가 개역 성경만을 읽던 때와는 달리 벌써 공동번역, 새번역, 표준새번역, 새성경, 현대인의 성경, 현대어 성경, 한글 킹 제임스 성경 등 여러 가지 종류의 번역 성경이 출판되었고, 많은 외국 번역본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번역 성경들은 동일한 단어나 문장에 대해 서로 다르게 번역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원어를 알지 못하는 자는 아무도 그 단어나 문장에 대해 분명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어해설과 원전해독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입니다. 지금 올리는 평화(에이레네)에 대한 해설을 세밀히 읽어보시면, 그 사실을 알 것입니다. 껍질이 단단하면 그 내용물은 더욱 좋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 야웨 hwhy(YHWH) 1

우리가 "여호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명칭은 본래 히브리어 4자음 문자 ‘요드, 헤, 와우, 헤(YHWH)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신성 4문자(Tetragammaton)는 하나님의 인격적 이름으로 성경에서 창세기 2 : 4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구약성경을 일관해서 총 6,000여회(cf. BDB) 나타난다.

이 하나님의 이름은 한글 번역본의 개역에서 "여호와", 공동번역에서 "야훼", 영역본에 Jehovah 라고 음역하고 있지만 그 정확한 발음을 알 수가 없다. 중세 어느 때에 그 정확한 발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신성 4문자에 대한 정확한 발음과 기원 및 의미는 상당한 논의의 주제가 되어왔다(Freedman. TDNT). 

1. YHWH의 발음과 금기

(1) 마소라 본문에서 YHWH는 영속적 케레(qere perpetuum)의 명칭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구성하는 이 신성 4문자는 너무 거룩하므로, 유대인들은 관습적으로 그 이름을 발음하지 않았다. 사본 필사자들이 신성 4문자를 기록할 때는 매번 완전히 목욕을 하고 완전히 옷을 갈아 입었으며, 그 문자들을 기록하는데 사용한 붓을 부러뜨렸다. 감히 입으로 말하기가 황송한 그 이름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성경 시대 이후(B.C. 3세기 경부터),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 또는 읽는 자들이 성경에서 그 이름을 볼 때마다 명사 아도나이(adonay, 나의 주님)로 발음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문자적으로, 헛되이, 경솔히) 일컫지 말라”는 계명과 관련된 것이다.

그 후에 마소라 학자들이 자음으로만 기록되어 있는 구약 본문에 모음을 삽입할 때 아도나이(adonay)를 나타내는 마소라 모음을 신성 4문자 YHWH의 모음으로 첨가했다(C. Brown, TDNT). 그렇다면 야호와(yahowah)로 발음 표기되어야 하는데 예호와(yehowah+)로 발음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첫 음절에 a 모음을 가지면 그들이 피해야 하는 바로 그 금기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언어 구조상 가장 특색이 없는 e(:)를 선택하여 예호와(yehowah)로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신성 4문자의 첫 음절이 e(:) 혹은 이와 유사한 모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직접적 증거가 된다(C. H. Gordon, Vgaritic TextBook, AnOr, 38, 1965; R. Kittel, "Yahweh", Schaff-Herzog). 

(2)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 예호와(yehowah+)와 합성된 인명(人名)을 살펴보면 두 가지 어형을 가지고 있는데 요­(yo-)와 예호­(yeho-)이다. 예를 들면‘여호와께서 주신다’를 의미하는 yonatan(요나탄)과 yehonatan(예호나탄)입니다.

그리고 yehosua(예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칭호는 하나님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이름이다. 세칼(M. H. Segal)은 이 호칭이 일찍부터 존재했다는 것은 YHWH라는 명칭이 모세에게 계시되기 전에 이미 알려졌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로 보았다. 보다 긴 어형이 보다 짧은 어형보다 더 이른 시대에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보다 긴 어형이 분명히 본래의 어형이다(G.J. Botterweck의 T.D.OT).

그리고 야-(ya-)나 야호-(yaho-)로 부르지 않고 요-(yo-)나 예호­(yeho-)라고 부른 것은 야-나 야호- 가 금기가 되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어떤 인명의 끝 부분에서 신성 4문자는 역시 두 가지 어형 형태를 가지는데 '-yahu(-야후)와 -yah(­야)'이다. 예를 들면‘나의 왕은 여호와이시다’를 의미하는 malkiyyahu(말키야후)와 malkiyyah/ya(말키야)이며, 여기서도 보다 긴 어형 ­야후가 우선이다. ­야후나 ­야는 첫음절 이외에는 금기가 되지 않으므로 본래의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다.

구약시대 말기(주전 5세기)의 엘레판틴 파피루스(Elephantine papri)의 더 짧은 이름 YHW는 -야후(shemayahu=셰마야후같은 이름에서 처럼)나 야호-(Jehozadek=예호체닥 같은 이름에서 처럼)로 읽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야호(yho)라는 발음은 B. C. 1, 2세기 쿰란의 헬라어 단편들과 1세기의 영지주의 문서에서 발견된 헬라어형 iao(야오)에 의해 확증된다. 

2. YHWH의 어원 및 의미와 보다 정확한 발음

(1) 어떤 학자들은 이 이름을 달에 대한 숭배와 관련된 감탄의 소리로 간주되고 있는 원시적인 어형 야(Yah)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본다(참조, G. R. Driver, ZAW, 46, 1928). 그래서 그 이름이‘오 그 분’을 의미하는 야­후와(Ya -huwa)에서 유래되었다고 암시하는 학자들도 있다(참조, M. Buder, Moses, 「1946」1958. 49f,: S. Mowinckel, "The Name of the God of Moses").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거부되었다. 그 이유는 그 이름을 감탄사의 소리로 간주하게 되면 신앙이 언제나 그 이름에 기초를 두어 왔다는 종교적 내용과 그 이름에 부수되는 계시적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참조, E. Jacob, Theology of Old Testament).  

(2) 보다 적절한 해석은“있다, 존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haya(하야)와, 그리고 그 동의어 hawa(하와)와 관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출애굽기 3:14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ehyeh aser ehyeh) 스스로 있는 자(ehyeh)가 나를 보내셨다 하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하나님 여호와( YHWH)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효니라”고 말씀하셨다.

R. de Vaux는 에흐혜 아셰르 에흐혜라는 문구의 번역과 의미에 대해서 가장 좋은 번역문은 "I am He who Exists"(나는 존재하는 자〔그〕이다)라고 주장한다. NASB, NRSV는 "I AM WHO I AM"으로 번역했다. 이 문구는 그 의미에 있어서 초시간적(omnitemporal)이다. `나는 이미 존재하였고, 이제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자, 곧 영원히 존재하는 자이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이름 에흐예(ehyeh)는 칼 미완료 1인칭 단수로“나는 있다”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 야훼/여호와라는 이름은 사람이 그를 3인칭으로 말할 때 생긴다.

따라서 하야(haya)의 미완료 3인칭(히필형)은 야흐예 또는 야혜(yahyeh)이며, 그 동의어 하와(hawa)의 미완료 3인칭(히필형)은 야흐웨 또는 야훼(yahweh)이다. 여기서 발음상 두 경우에 유사하지만 야훼가 신성 4문자 와 더 근사하다.

혹자는 YHWH가 동사 하와(hawa)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모세 시대에 하와(hawa)가 발음되었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어떤 기원이 불분명한 고대의 단어라고 제시하지만 우리는 출애굽기 3장 내용과 YHWH 를 연관시켜 연구해 본 바 hawa(하와)와 YHWH가 서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N. Walker 등은‘있지도 않은 히필형(사역형)을 만들어 낸다고 비난하지만 W. F. Albright, D. N. Frcedman 등 여러 학자들은 히필형이 남서 셈어에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이었으리라고 시사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인 신성 4문자 YHWH는 하와(hawa)의 미완료 야흐웨(yahweh, 보통 야훼로 발음함)와 YHWH의 후기 표기인 헬라어 야웨(iaoue)나 야베(iabe)에서 볼 때, 원래의 발음이 YaHWeH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데오도레토스(4세기)는 사마리아인들이 신성 4문자를 iabe(야베)로 발음했다고 말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3세기 초)는 iaoue(야웨)로 발음했다.

YHWH의 셋째 문자인 와우(w)를 사마리아인들은 b(ㅂ)로 발음하고 클레멘트는 ou(우)로 발음한 것이다.  

(3)남부 가나안 언어들(히브리어, 모압어)이 y는 i, w는 u, h는 e, a로 발음되었다고 본다면 YHWH는 iaue(야웨)로 발음될 수 있다(여러가지 발음이 제시되고 있을지라도). 이 음역은 앞에서 살펴본 바, 후기 헬라어 표기인 iaoue(야웨), iabe(야베, b를 u로 발음할 때 iaue[야웨〕가 된다)와 일치하며, hawa(하와)의 미완료 3인칭 히필형 yahweh(야흐웨, 야훼)와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 YHWH의 발음은 야웨(yahweh)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3. YHWH의 번역들

(1)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하나님의 이름 YHWH는 마소라 본문에서 금기 때문에 예호와(yehowah+)로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 일반적으로 공인하고 있는 70인역본도 이 이름을 유대인들의 읽기(케팁→케레)를 따라 `퀴리오스'로 번역했다. RSV와 다른 역본들도 이 이름이 본문에 나올 때는 언제나 주(LORD)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기록함으로서 이 관계를 따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라틴어 성경도 도미누스(Dominus:주 Lord)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 번역본들(극소수를 제외하고)은 `주' 라는 말을 사용하며, 새번역 표준판도 `주' 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야훼란 이름을 세계의 모든 성경에서 제외시키는 무서운 음모라고 할 수 있다.

70인역본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70인역본의 한 사본 단편들에는 헬라어 본문에 히브리어 문자로 쓰여진 신성 4문자 YHWH가 등장한다. 이 관습은 주후 1세기의 후기 유대인 구약성경 역자들에 의하여 실행되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70인역본의 한 사본에는 심지어 신성 4문자가 IAW로 번역되어 있다.

이러한 발견들은 70인역본의 번역자들이 신성 4문자(YHWH)를 `퀴리오스'로 번역했다고 하는 생각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70인역본의 본문에 있는 신성 4문자를 철저하게 퀴리오스로 대치시킨 것이 주로 기독교인 서기관들의 짓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해 준다(P. E. Kahle, H. Bietenhard).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70인역본으로 공인하고 있는 70인역본은 본래의 70인역본을 변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렇다면 이 70인역본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70인역본과 다른 길로 행하는 것이 된다. 

(2) 그리고 예호바(Jehovah)라는 어형은 마소라 본문의 표기에 근거하여 16세기에 통용되었으며, 갈라티누스(P.Galatinus)의 라틴어 역본에서는 iehoua(예호와)라는 어형으로 나온다(De Arcanis Cath, Veritatis, 1516, 11). 1530년에 틴데일(Tyndale)은 출애굽기 6:3을 번역할 때 Jehouah(예호와)를 사용했다. 그후 Jehovah는 표준 철자가 되었다(C.Broun:DNTT). 따라서 ASV는 Jehovah, 한글 개역은“여호와”로 번역했으며, KJV는 일곱개의 구절, 즉 그 이름이 특별히 강조되거나(출 6:3; 시 83:18; 사 12:2; 26:4), 다른 요소와 결합된 구절(창 22:14; 출 17:15; 삿 6:24)에서 Jehovah로 번역했다.

그러나 “Jehovah"나 "여호와" 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YHWH라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바른 음역이라고 할 수 없으며, yahweh가 더 바른 음역이다. 공동번역은 야훼로 번역했다. 

4. YHWH의 이름의 중요성

이름은 신이든 사람이든 그 인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존재의 이름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그 이름에 관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자와 매우 밀접히 결합되어 그의 본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능력이다.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다만 표상 명칭이나 특정인의 인격과 다른 사람의 인격과를 구분짓는 이상으로 그 인격의 전존재성과 본질성 그 자체와 동일시 하고자 했다. 

(1) 구약 종교에 있어서 신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와의 교제(혹은 상대)를 위해 특별히 중요한 것이다. 신을 영화롭게 하고 신의 도움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은 신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야곱은 그와 씨름한 강력한 존재에게(창 32:30), 또한 마노아는 신비한 신적 사자에게(삿 13:17이하), 그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 물었다. 그러나 구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은 친히 그 이름을 계시로 알리셨다(창 17:1; 출 3:14; 6:2). 하나님은 모세에게“나는 여호와(YHWH, 야훼)로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이름 중에 여호와의 이름이 가장 의의가 깊고 중요하다. 성경 계시의 가장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격적인 이름을 가지셨고 그 이름에 의하여 그를 부를 수 있으며 또 불러야 한다. 지정된 전에서 여호와께 호소할 때 그는 가까이 오셔서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신다.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심지어 왕까지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한다(민 6:24­27; 신 10:8; 삼하 6:18). 

(2)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여호와를 상대하며 그의 임재를 확보할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답을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지만 그러나 그는 땅에 그의“이름”이 거할 장소를 선택하셨다(신 12:11; 14:23; 참조:삼하 7:13; 왕상 3:2; 5:17). 그의 이름이 성전에 거한다는 점에서 여호와의 임재, 그 자체가 보증된다(왕상 8:13이하). 여호와의 이름은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권성을 가진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그 이름으로 기쁨을 누리리라'(시5:11; 7:17; 9:2, 10; 18:49 등등)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있어 하나님 예배는 바로 그대로 그 성호를 앙청하고 응답하는 행위로써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그 이름의 실체이신 주권 앞에 완전한 헌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 자체의 능력있고 독립된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그의 이름이 여호와 그 자신과 여전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이름 자체의 능력있는 힘을 통하여 경건한 자들은 여호와의 보호와 도움을 경험한다.(참조:잠 18:10; 말 1 :11; 시 54:6). 

(3) 여호와의 이름은 때때로 여호와에 대한“찬양”, 여호와의“영광”이란 의미로 사용된다(사 26:8; 55:13; 시 41:10).“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혹은“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3; 사 51:15; 렘 10:16; 암 4:13; 시 23:3)와 같은 표현상의 변화가 있어도 같은 방향을 가르치며, 세상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의미를 알리는 모든 국가 중에서의 여호와의 주권과 영광에 대한 그의 주장을 지적해 준다(사 12:4; 시 105:1­3). `진실로 종말에 여호와께서 세상에 계시됨으로서 온갖 우상 숭배가 사라지고 모든 무릎이 홀로 하나이신 그의 이름 앞에 꿇을 것이다`(슥 14:9; 사 45:23, G. Von Rad). 

(4) 여호와의 이름과 관련하여, 그의 이름으로 여호와께 요구하고 기원한다는 종교 의식을 통해 그에게 예배드린다는 것이다(참조:창 4:26; 12:8).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여호와의 권능이 관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제사장이 백성을 축복할 때 복을 수여하는 것은 그것과 제사장의 축복 행위와 자유로이 연결시킨 하나님의 처분에 있는 것이다(민 6: 24­26, 27; 참조:신 10:8; 삼하 6:18; 왕하 2:24).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은 마술의 수단이나 방편이 아니라 계시의 선물이다(Bietenhard). 이것은 야웨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부르는 것에 야웨의 능력을 믿는 신앙을 함축한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베솀 야웨'즉 야웨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맹세(삼상 20:42; 레 19:12), 저주(왕하 2:24), 혹은 축복할 때(삼하 6:18) 이렇게 발언한 그 이름은 야웨의 임재, 배려(attention)와 실제적 간섭(개입)을 보증한다. 

(5) 진실로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인격적 통치와 활동의 강력한 표현이기 때문에 여호와 자신을 말함에 있어서 그 이름이 대용될 수 있다(레 18:21; 시 7:17; 미 5:4­5). 여호와께서 인간과 접하시는 면이 바로 그의 이름이며, 이 이름으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신다. 과거(출 3:6, 13, 15)와 현재(출 20:7)와 미래(겔 25:17; 34:50)를 통한 인간에 대한 그의 역사적 다루심은 그의 이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10계명은 분명히 마술이나 주문 혹은 거짓 맹세에서 이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는 것을(맹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금하였다.(출 20:7). 왜냐하면 이미 언급한 바 여호와의 이름은 계시의 선물이며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창 17:1; 출 3:14; 6:2).

거짓 선지자들의 여호와께 대한 호소는 불법이다. 이는 그들이 여호와로부터 고하라는 임무나 말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신 18:20; 렘 14:14이하; 23:25; 29:9).

여호와의 이름은 이스라엘을 신용하여 그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그 이름을 모른다(시 79:6). 이스라엘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것은 예배의식, 희생제사, 기도, 축복과 저주 또한 거룩한 전쟁(Holy war, 시 29:8)에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를 섬기되, 그 만을 섬기며 그의 계명에 복종함으로써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신의 예배 의식에 참예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힙을 뜻한다(레 19:21).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루살렘(렘 25:29), 성전(렘 7:10), 언약궤(삼하 6:2)를 일컬어 이것들을 성별, 여호와와 관련시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신성화의 유일한 기초이다(참조:F.F. Brace, DNTT; Bietenhard, TDNT). 

(6)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이 자기를 보낸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리까? 라고 물었다. 하나님은“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희에게 보낸 이는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념할 나의 표호니라”고 대답하셨다(출 3 :13-15).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세겜에 모아 놓고 "이제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만 섬기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신자에 있어서 여호와는 대대로 기억해야 할 소중하고도 큰 영원한 이름이다. 이 이름을 잊어버리다니 언어도단이다. 어떤 고대 역사에 의하면 의인 시몬(Simon)이 죽은 후에(B.C. 200년경) 제사장들은 축복 행위에서 여호와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중지했다고 한다(T. Sot 138). 성전 예배 의식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여전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축복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나 교육 행위에서 성경 인용시 여호와라는 단어가‘이름’이라는 `셈'으로 대치되었다. 그래서 신성 4문자 YHWH를 사용하기를 중단했으며, 따라서 그 발음마저 잊어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 번역자들은 성경에서 여호와/야웨라는 이름을 없애버린 것이다. 대한성서공회서 번역한 표준 새번역도,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여호와란 이름을 모두 없앤 것이다. 역사의 하나님 여호와를 최고의 역사 기록에서 삭제해 버리는 이 무리들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것은 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소중한 큰 이름임을 명심해야 한다.“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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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에이레네eir n /샬롬 lom ) 1

■ [에이레네]의 헬라적 개념

`에이레네'의 기본 개념은 본래 사람들 사이의 관계(relationship)나 태도(attitude)를 의미하지 않고 상태(state), 즉‘평화의 때,’또는‘평화의 상태’를 의미하며, 처음에는 순전히 끓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상태에서의 한 막간(a interlude)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단어는 전쟁에 반대되는 것, 혹은 전쟁의 종식으로 부터 결과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평회는 복된 번영을 가져 오도록 법과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이다. "에이레네"는 평화의 상태이며, 평화의 상태에서 땅과 백성을 위한 복이 흘러나온다. 필레몬(Philemon)은 이 를 최고의 선(supreme good)으로 격찬했다.

`에이레네'는 평화 조약이나 핑화의 타결과 관련이있다. `에이레네'는 또한 소란, 소요의 정반대를 의미할 수 있다. `에이레네'는 평화적인(온화한) 태도, 즉 적의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에픽테투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의 스토아 철학자들의 작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에이레네'는 영적 평안이나 마음의 평안이라는 의미를 띠고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단어는 이들의 저작에 그리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특별한 언급으로, 아우구스투(Augustus)가 지중해 세계를 지배한 `에이레네'를 들 수 있다. 이 시대에서 구속(redemption)을 동경하는 강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황금시대라고 불리워진 이 평화의 상태는 로마 황제가 군대의 힘으로 성취한 법적 또는 정치적 안정이다(Toerster, TDNT)  

■ 구약성경 및 70인역본의 `에이레네'

1. 구약성경 및 70인 역본의 용법 및 의미들

⒜ 구약성경에서 `에이레네'는 250회 이상 나오는 히브리어 단어 `샬롬'의 역어로 사용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예외적인 경우들은 대체로 왕래 및 문안 인사에 관련된 구절들이다. 예컨대 창세기 26:31; 43:23이 이러한 예이다. 그러나 예레미야 20:10; 이사야 48:22; 57:2I은 이러한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외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예외적인 구절에서는 `소테리아'(구원, 구출), `카이레인'(기쁨, 안녕)등의 단어들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평안함은 어김없이 `에이레네'로 표현되었다(G. von Rad, TDNT Ⅱ402f.).

약 I5개의 구절에서 `에이레네'는 휴식, 안전, 염려 없음, 믿음직스러움 등의 광범위한 의미 영역을 포괄하는, 히브리어의 여러 가지 단어들에 상응하는 역어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역대상 4:40에서는 '…로부터 안식을 얻다' 라는 뜻인 `샤카트'에 상응하는 역어로, 욥기 11:18; 잠언 3:23; 이사야 l4:30; 에스겔 34:27; 38:8, 11; 39:6, 26에서는‘신뢰, 안전’이라는 뜻인 `베타흐'에 상응하는 역어로, 사무엘하 3:24에서는‘걷다’라는 뜻인 `할라크', 이사야 29:24에서는‘이해’라는 뜻인 `레카흐', 그리고 잠언 17:1에서는‘안락’이라는 뜻인 `샬와'에 상응하는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몇 개의 구절들은 본래의 히브리어 단어를 풀어서 번역하는 말로서 `에이레네'를 사용했다.

⒝ 70인 역본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주로 `샬롬'의 역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 히브리어의 의미가 이 헬라어의 의미에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70인 역본의 용법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헬라어는 새로운 풍부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샬롬'과 70인 역본의 `에이레네'를 살펴보면, `에이레네'의 여러가지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단어는‘평화 peace'라는 좁은 의미로 제한시켜서는 안된다. 그것은 모든 가능한 형태의 악(evil)와 되조되는, 가장 넓은 의미의‘안녕, 복리 well-being을 의미한다. 만남이나 편지에서(삼하18:29; 삿19:20; 단4:1), 작별 인사에서(삿18:6; 삼상20:42) 다른 사람들에게 안녕을 빌며, 대화에서 다른 사람에 관한 안녕을 구한다(삼상16:5). 사람들은 문안 인사를 한다 : "문안하고".

열왕기하 9:17이하에서와 같이 어떤 사람이 오는 이유에 대한 질문, 곧“평안이냐”는‘도전적인 목적이냐 화평한 목적이냐’라는 질문이다. 열왕기상 2:13에서 밧세바가 아도니아를 맞이 하면서“화평한 목적으로 왔는냐 (너의 옴이 화평이냐)”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그녀가 그에게 그의 방문이‘좋은 일’을 뜻하는지를 실제로 묻고 있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에이레네'를‘행운이나 형통’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데 불경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있다. 의인은 악인의 이런 형통을 봄으로 시험을 받기도 한다.시73:3). 그러나 이 형통은 외적인 것에 불과하며, 진정한 형통이 아니다(사48:22).

이사야 57:I8; 시편 38;3에서는 육체의 건강을 의미한다. 집회서 38:8에서 의사가 가져오는 `에이레네', 즉 건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전장에서 무사히 안전하게 돌아오는 사람은 건강을 보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수10:21; 왕상22:17; 대하19:1; 시55:18).

또 이 단어는 만족이나 흡족함 satisfaction을 의미하였는데, 이별에 관하여(창26:29; 출18:23; 사55:12), 잠자리에 드는 것에 관하여(시4:8), 죽음에 관하여(창15:15; 렘34:5; 왕하22:20)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에이레네'는 단순히 안식이나 마음의 평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폭력이나 재난으로 압도당하지 않은 인간의 전상태로서, 폭력을 당하거나 변사의 정반대를 의미한다(참조: 왕상2:6). 그 이상의 의미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구역성경, 4, ⒝

또한 살펴볼 가치가 있는 것은 이사야 29:24의 내용이다: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라"(70인역-말더듬는 혀들은 평화를 말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이 구절에는 히브리어 `샬롬'이 없지만 `에이레네'가 나온다. 이 문맥에서 `에이레네'는 그들이 올바르게(에이레네) 말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단어는 더욱 보편적으로, 전쟁과 대조되는 평화를 의미한다. 잠언 17:1과 이사야 14:30에서 이 의미로 `에이레네'가 `샬롬'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사야 14:40에서 이 단어는 평화의 때를 의미한다: "평안히 누우려니와". 역대상 22:9에서 평화의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히스기야는 평화가 그의 시대에는 계속한다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에 이사야의 중대한 예언을 경솔히 취급했다. 여기에는 번영을 누리는 그릅, 예를들면 국가의 번영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에이레네'는 전도서 3:8에 전쟁과 대조시킨“평화”와, 그리고 예레미아 29:7에“성읍의 평안,”38:4에“백성의 평안”등에서 "평안을 구한다"는 표현에서와 같이 "평화의 상태”보다 더 근본적인 것, 즉 평화 =백성의 안녕에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샬롬'/ `에이레네'는 상태보다 오히려 관계를 암시한다. 많은 구절에서 이 단어는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데, 국가나 그릅 간의(왕상5:12; 삿4:17; 왕상5:4; 대상12:18), 개인 간의(슥6:13) 우호적 관계를 의미한다. 신명기 20:10에“한 백성에 평화를 선언하는 것은 한 백성의 관계의 수용을 의미하며(참조: 삿21:13), 그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평화의 사신들이다(사33:7).

이 단어는 시편 35:27에서 외적 형통이나 성공에 더하여 인간의 전적인 안녕(well-being)을 의미할 수 있다:“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로 기꺼이 부르고 즐겁게 하시며 그의 종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여기서 형통과 안녕은 선(good)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시편 122:8에서 시인은“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70인 역본에는‘내가 참으로 너를 위하여(에 관하여) 평화를 말했다’고 번역되어 있다. `너를 위하여'는‘예루살렘을 위하여’이다. 시인은 바로 앞에서 이미 안녕과 형통을 원했다. 환언하면 이 용어는 여기서 확고한‘형통’이라는 의미에서 `선(good)'이라는 더 넓은 의미로 쉽게 이동한다. 따라서 잠언 3:17에서“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고 말한다. 70인 역본은‘그녀의 길은 옳은 길이요 그녀의 모든 첩경은 평화에 있느니라’고 번역했다.

시편 34:14은 도덕적 선을 의미한다:“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그를) 따를지어다.”스가랴 8:19에서“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말라기 2:6에서“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70인 역본은‘그가 그의 길을 `에이레네'로 똑 바르게하여 내 앞에서 행하게 하며…’라고 번역했다. 잠언 12:20에서“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궤휼이 있고 화평을 논하는(조장하는)자들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70인 역본은‘에이레네를 원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리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구절에서 `에이레네'는 도덕적 선을 의미한다. 이 항목에서는 `샬롬'/`에이레네'의 의미의 일부만을 설명했다. 아래서는 항목들을 만들어 설명한다.

2.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샬롬/ 에이레네

⒜ 이 단어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서, 선, 좋은 것, 구원을 의미한다. `샬롬'/ `에이레네'와 연합된 좋은 것은 그것들을 위한 기도에서든, 그것들이 나타날 때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하든, 자연적으로 이스라엘에서 항상 하나님과 관련시키었다.

기드온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렸다. 이 매우 오래된 고대 표현에 대한 분명한 해석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이 고백의 위대한 의미에는 경건한 자들이 후에 많은 다른 상황에서 말하고자한, 특별히 구약의 기도에서 표현된 것과 같은 모든 것을 그 근본에 포함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평화를 만드시며(욥25:2), 또한 우리에게 평화를 약속하시며, 그의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시며, 그의 종들의 형통을 원하신다(시35:27; 참조: 147:14), 다윗과 그 집에는 여호와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왕상2:33).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시122:6). `샬롬'은 진실로 여호와로 부터 오며, 완전히 충족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신념은 시편 85편에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기자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그가 그 백성, 그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입맞추었으며(85:8-10). 이 사상의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성향은 완전한 지상적 평화의 동기로 생각된다. 여기서 우리는 샬롬이라는 말의 구약의 용법의 최고점을 본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은 그 땅에서 그의 백성에게 샬롬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레26:6). 이 문맥은 화고한 복이 뜻하는 것, 즉 원수들과 야수들로부터 평화를 아주 분명히 보여 준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에서 일종의 구원이다. 그것은 약속의 땅에서 안식과 평온이며, 그러므로 신명기 기자는 독특한 용어 [메구하](안식)를 표현한 것이다(신12:9). 이렇게 그들은 예언적 역속의 바로 가까이에 있다.

⒝ `에이레네'가 도덕적 선(善)과 동일하게 취급됨으로써, `에이레네'는 이 시대나 구원 시대에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선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게 되었다. 이 단어가 어떤 생활 영역에서나 하나님이 주신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구약신앙의 특성이다. 이사야 46:7에서 그 일반적인 기사를 볼 수 있다:“나는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니.” 이 경우에는 앞에서 언급한 레위기 26:3이하의 축복과, 그리고 민수기 6:26의 축복("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도 포괄한다. 때때로 `에이레네'의 정확한 내용을 말하기란 불가능하지만 한편 그것이 항상 인간을 위한 선한 것이며, 거기에 그의 안녕이나 구원이 놓여있는 것이다. `에이레네'는 이런 의미에서 선한 것이며 구원이다

이러한 구원을 의미하는 구절들을 더 들어보면, 예레미아 29:11에서 하나님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시편 119:165에서 율법을 사랑하는 자들의 큰 평화는 율법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당하는 장애물과 대조된다. 여기에 평화는 내적 구원이며 파멸이 아니다. 따라서 집회서 1:18에서 `에이레네'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증진되고 `휘기에이아 야세오스' (건강한 치유,완전한 건강)와 연결되어 있다(참조: 사9:7). 시편 35:8과 9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평화는 구원이며, 이 문장에서 평화와 구원이 연결되어 있다. 이 구원은 예레미아 16:5에서 하나님의 구원이라 부른다:“나의 평강.”예레미아애가 3:17에“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떠나게 하니”라는 말은“내가 복(아가다:선, 선한것)을 잊어버렸음이여”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평강은 선한 것이며, 곧 구원이다. 이 평화에 함여한다는 것은 거기에 포함된 구원의 은총을 누린다는 것을 뜻하는 반면, 평화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그 모든 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평화를 거두어 가시면 어쨀 수 없이 애통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히브리인들은 때때로 이러한 동맹이나 협정에 대해 `베리트'(언약)를 사용했으며, 따라서 `샬롬'은 `베리트'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이 두 단어의 관계는 너무 강하므로, 이런 문맥에서 `샬롬'은 일종의 공식용어가 된 것같다. 이 사상은 `샬롬'의 관계가 언약에서 두 당사자에 의해 인쳐진다는 것이다(수9:15; 왕상5:12). 환언하면, 언약은 `샬롬'의 관계를 개시하는 것이다. `샬롬'의 관계는 언약의 결과이다. 여호와의 이스라엘과의 화평의 언약을 나타내는, 이러한 구절들에서 `샬롬'은 실질적 안녕이 아니라 언약을 맺은 자들의 성향에 의존하는 평화의 관계를 의미하는 동시에 구원을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누하스와 평화의 언약(민25:12; 집회서45:24), 레위와 평화의 언약(말2:5), 다윗과 평화의 언약(겔34:25;37:26)은 구원의 언약이다. 이사야 54:10에서 여호와께서는“나의 인자는 내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다(Rad, TDNT).

3. 완전, 완성, 성공, 성취로서의 `샬롬'/`에이레네'

이 단어는 두람(J. I. Durham)에 의하면,‘완전, 완성, 성공, 성취’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 `샬롬'은‘완전’이란 개념은 민수기 6:24이하에 나오는 축복의 절정을 이루는 대목에 나타난다. 여기에서 이 개념은 다른 모든 축복들을 요약하고 있으며, 여호와의 임재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축복은 모세가 여호와로 부터 받아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이스라엘을 축복하데 사용하도록 전한 것이다(민6:22f.). 이 축복의 내용은,“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이다(민6:24ff). 여기에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7)는 구절이 첨가되었다. 두람은 이 구절을 주석하기를‘샬롬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오직 그가 임재하실 때에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축복 속에 `샬롬'이 사용된 것을 볼 때에도 `샬롬'은 제의 용어로서 사용되었으며, 여러 가지 번역본이나 많은 주석가들이 일반적으로 이 말에 부여해 온것보다 횔씬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믿게 된다. 왜냐하면 민수기 6:24-26 에 나오는 `샬롬'은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고(바라크) 지킴을 받으며(샤마르) 은혜를 받는(하난) 사람, 하나님의 임재 속에 이 두가지 상태로 있는 사람, 즉 충족죄고, 그리하여 온전하게된 사람을 묘사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실로 이러한 사람은 신약성경의 주의 말씀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 또 두람은‘샬롬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포괄적으로 본 성취 또는 완성, 실제로 사람이 혼자 힘으로 가장 좋은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성공이라도 훨씬 능가하는, 삶과 정신에 있어서의 완성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라고 주장한다(창l5:15; 29:6; 37:14; 43:27f.; 출18:7,23; 민25:12; 신23:7; 삿18:I5; 삼상I7;18, 22; 20:7; 25:6; 삼하11:7; 18:28f; 왕상22:27f;i왕하22:20; 사45:7; 48:18; 53:5; 54:10, l3; 57:2,19; 59:8; 60:l7; 66:l2; 말2:5f.). 특히 이 점은 열왕기하 22:20에 나오는, 요시야가 열조에게 돌아가리라는 여호와의 약속에서 분명하케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서 요시야가 평안히(in peace, KSB) 열조에게 돌아간다는 식의 해석보다는, 그는‘성공하여 in success,’즉 그의 소명을 완성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열조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4. 종말론적 기대의 한 요소로서 샬롬/에이레네

`샬롬'은 종말론 기대의 한 요소이다. 영원한 평화의 최종적 상태에 대한 대망은 선지서들과 다른 성문서들에서 일관하게 표현하는 구약 종말론의 한 요소이다. 이 널리 퍼진, 다방면에 걸친 이 대망의 사실은 `샬롬'이라는 단어가 관계하고 있는 구절들에 항상 발견되지 않을지라도 언급되고 있다. 낙원의 상태의 회복이 예언될 때(사11:10이하; 호2:20이하; 암9:31), 하나님의 주간하에 국제적인 평화가 예언될 때(사2:2이하), 흑은 평화의 때가 도래하는 마지막 시대의 한 겸손한 평화의 왕에 대한 기대를 말할 때(슥9:9이하), `샬롬'이라는 단아가 이런 중심적인 종말론적 구절에 사용되지 않거나 스가랴 9:10에서와 같이 오직 많은 다른 것들 곁에 사용될지라도, 우리는 가능한 한 가장 넓은 의미의 `샬롬'에 관한 예언적인 선포를 듣게 된다.

따라서 그 단어가 실제로 발견되는 구절들에 대해 어떤 보다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이사야 9:5에 메시야 아이의 이름들에서 그 최종 이름 `샬롬 사르'(평화의 왕)는 의미의 중요성에 있어서 선행하는 다른 이름들과 다를 바없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사명(comimission)을 지닌 분(사9:1-6)으로서의 메시야는 도래하는 메시야 왕국에 평화의 보증인(guarantor)와 보호자이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이사야 9:7의 가장 중요한 기사에서 다시 다윗의 보좌와 결부된 구원을 위해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미가 5:5에서“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시다”라는 표현은 이 전체 예언의 본질을 요약한 것이다.

피조된 세상은 지금은 그것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고 있고 스스로 분열하고 있지만, 결국은 다시 온전하게 될 것인데(사11:6-9; 29:l7-24; 6:I-9), 그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사65:17-I9; 참조: 계2l:I-4). 평화에 관한 언약의 갱신에 관련된 메시지는 우주적이고 영속적인 평화에 관한 약속으로 발전되었으며, 이 구원의 날의 도래는 하나님께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사6I:1, 2)로서 평화의 나라의 담지자요 설립자인 평강의 왕(사9:5,6)에 자주 결부되었다.

흥미있는 점은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모든 풍부한 의미를 지니는 데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서도 특별히 내적인 평화의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으로 그것이 개인보다 오히려 그릅에 대해 사용되는 구절들이 더 많다. 개인에 대한 용법의 전형적인 보기로서, 예레미아애가 3:17을 들 수 있다:“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버렸음이여.”그러나 여기에 샬롬도 감추인 내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외적 안녕의 형태로 나타낸다. 그릅과 관련된 대부분의 보기에서 `샬롬'은 분명히 외적으로 드러내보일 수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Rad, TDNT). `샬롬'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열망에 관련된 사회적 차원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순전히 개인적인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샬롬'이 `체다카'(의, 사48:l8; 시86:10)와, 그리고 `미쉬파트'(재판, 슥8:I6)의 실제적 이상과, 나아가 심지어는 `페쿠다'(관리, 사60:17)와 밀접히 관련된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이것은 또한 가장 보편적인 용례에서 이 단어는 개인적 개념어라기 보다는 사회적 개념을 시사한다(H. Beck, C. Brown , DN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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