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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료] ]영성은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얻어진다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09.01.29|조회수27 목록 댓글 0

영성은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얻어진다’ 

                                                                                                                                           - 장신대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어떻게 획득될 수 있을까? 영성운동의 지도자들은 영성 획득을 위해 수많은 작위적인 방법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요하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의 영성 획득을 위해 사용되는 작위적인 방법들은 부분적인 도움은 될지 모르나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악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들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 획득을 위해 꼭 필요한 본질적인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어떻게 획득될 수 있을까? 영성운동의 지도자들은 영성 획득을 위해 수많은 작위적인 방법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요하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의 영성 획득을 위해 사용되는 작위적인 방법들은 부분적인 도움은 될지 모르나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악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들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 획득을 위해 꼭 필요한 본질적인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1. 성서와 신학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가운에 슈바이처 (A. Schweitzer)박사가 있다. 그는 긴 세월을 두고 신학공부를 했고 특별히 역사의 예수를 깊게 연구했다. 그는 성서를 연구하고 예수를 깊이 연구한 끝에 ‘예수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의 핵심은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이다’고 결론을 맺게 되었다. ‘생명 앞에서의 경외’(Ehrfurcht vor dem Leben)라는 표현은 슈바이처의 가르침의 핵심이자 슈바이처가 성서와 예수의 정신을 연구한 결론이었다.

여기에 이른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죽어 가는 흑인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흑인들의 생명을 구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의학을 공부했고, 의학공부를 마친 슈바이처는 주저하지 않고 1913년 흑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다. 아프리카의 ‘가봉’이라는 나라의 오고웨 강변의 랑바레네에 병원을 세운 슈바이처는 그때부터 흑인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시작했다. 1952년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 이때 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그는 나환자 마을을 만들었고 나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시작했다. 슈바이처는 이렇게 일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갔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슈바이처는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세속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는 결코 아프리카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었고 깊은 영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슈바이처의 영성이 무엇일까? 슈바이처의 영성의 핵심은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이었다.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은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영성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런데 슈바이처는 이 위대한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어디서 얻게 되었을까? 슈바이처는 성서를 통해, 그리고 신학공부를 통해,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연구한 끝에 그 영성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서 시작되고 성서와 신학공부를 통해 깊어지게 된다.

영성은 산 속에서 신비적으로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사고를 빨리 고쳐야 한다. 산 속에서 신비적으로 얻는 영성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상당부분 괴상해져 있다. 산 속에서 신비적으로 받는 괴상한 영성은 결국 교회를 괴상하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일이 일어난다.

영성은 성서연구와 신학공부를 통해 얻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그리스도교의 영성의 기둥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교의 영성의 영원한 모법(母法)이다.

민중 신학자 안병무 교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민중교회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스승인 안병무 교수를 통해 민중을 사랑하는 정신을 배웠고 그 정신으로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선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복음주의 신학은 복음주의적 영성을 형성하고 선교 중심적인 복음주의 교회를 만든다.

칼 바르트(K.Barth)는 하나님의 말씀의 삼중 양태를 언급했다. 역사의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와 교회의 설교가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신학은 성서와 설교 사이에 존재하는 매우 중요한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를 바르게 이해해서 설교를 바르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둥이다. 바르트의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교의 영성 이해에도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교 영성의 기둥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와 신학과 교회의 설교가 그리스도교 영성의 원천이 된다.

우리가 영성을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서이고 신학이고 교회의 설교이다. 성령은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의 방편들을 통해 크게 역사하시고 그들을 성령의 사람으로, 영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스교의 영성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와 신학과 설교이다. 성령은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의 방편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방편들을 떠나서 얻어지는 영성은 그리스도교의 바른 영성이 아니다. 깊은 영성과 바른 영성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과 방편들과 깊이 접맥되어야 한다. 또한 영성 훈련을 지도하는 지도자들 역시 이 하나님의 말씀의 방편들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바른 영성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와 신학과 설교라고 할 때 오늘날 한국 교회의 큰 약점은 위의 것들이 영성의 결정적인 원천이라는 점을 잘 알지 못하는 것과 위의 것들 중 신학의 중요성을 거의 모르는데 있다. 신학공부의 결여는 바른 영성 획득의 실패로 나타난다. 최근 환경 신학은 교회에 자연 사랑의 영성을 심어 주고 있다. 환경 신학을 공부하지 않고는 깊은 차원의 자연 사랑의 영성이 획득되지 않는다. 신학은 교회의 영성을 깊게 하고 바르게 하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2. 교회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일반적으로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얻어진다.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교 영성의 원천이다. 복음주의적 교회는 선교적 영성을 성도들에게 심어 주고 사회봉사적 교회는 섬김의 영성을 성도들에게 심어준다. 또한 오순절적인 교회는 오순절적 영성을 성도들에게 심어준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성령의 도구이고, 이런 까닭에 교회는 성도들의 어머니인 동시에 성도들의 영성의 원천이다.

교회의 설교와 예배와 교육은 성도들의 영성을 직접적으로 형성시키는 성령의 도구이다. 설교가 성도들의 영성의 중요한 원천이라는 것은 이미 언급했지만 설교 뿐만 아니라 예배 때의 찬양을 포함한 모든 것이 성도들의 영성의 원천이다. 성도들은 찬양을 통해 영성이 깊어지고 영적인 사람으로 거듭난다.

교회의 교육과 친교 역시 성도들의 영성을 형성시키는 결정적인 중요한 성령의 도구들이다. 교회의 바른 교육은 바른 영성을 심어 주고 거룩한 성도들과의 사귐은 거룩한 꿈을 갖게 하고 거룩한 삶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어느 날 갑자기 산 속에서 불을 받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산상집회 같은 것이 영성 형성에 어떤 계기를 마련해 줄 수는 있어도 그 이상으로 높게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산상집회는 잘못된 영성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점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바른 영성은 교회의 바른 설교에서 시작되고 바른 교육에서 체계화 된다. 그리고 거룩한 성도들과의 사귐이 영성이 활성화 되고 깊어지는 통로라는 점 역시 깊이 인식해야 한다. 순교자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영성이 살아 움직였던 공동체였다.

3. 기도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성서라는 객관적 표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교회라는 공동체의 도움과 개인의 기도생활이라는 개인적 경험히 결합되어 형성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정화하고 거룩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일을 할만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생활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얻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에 대한 깊은 확신에 이르게 된다.

명상은 기도생활의 한 부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명상하면서 그리스도의 은혜의 깊이를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이르기 위한 영적인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고난 속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오늘의 세계와 역사적 현실을 깊이 명상하면서 자신을 찾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러므로 명상은 영적인 깊이를 더하게 하는 중요한 영성생활의 일부이다.

개혁파 신학은 듣는 것(명상)과 요구하는 것(얻으려는 것)의 균형을 개혁파 영성의 중요한 두 개의 기둥으로 생각했다. 기도생활에는 듣는 것과 요구하는 것의 균형이 중요하다.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이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영적인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만남은 언제나 상호간의 대화이기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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