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에서 유럽은 탈 기독교화(post-christian) 되었는가?
서론 : 선교지이지만 다른 선교지와는 전혀 다른 유럽
유럽은 지난 4세기 동안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한 핵심기지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유럽은 스스로가 주요 선교지 중 하나로 되어가고 있다. 이 점에서 유럽은 다른 지역과 판이한 선교지이다. 그레이스 다비를 위시한 사회종교학자들은 유럽을 ‘예외적인 경우’로 간주하고 있다. 유럽 사회 안에서 차지하는 종교의 위치가 미국이나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대양주의 경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특히 다른 대륙에서 사용된 전도 방법을 유럽에서도 적용하고자 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타 대륙의 전도 방법이 북미 문화권과 비슷한 북부 서유럽의 국가에서 아마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1. 유럽의 이율배반적인 모습
유럽 사회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유럽은 과거에 이 세상 어느 지역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 전폭적으로 성경의 메시지의 영향을 받은 대륙이었다. 또 다른 면은 오늘날의 유럽은 지구 상 다른 대륙과는 달리 현재 기독교를 대대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포기하고 배척하는 대륙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 유럽 대륙은 모든 지역 전반적으로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복음화가 이루어졌다. 국가의 제도가 된 교회는 정치와 권력이 결탁하여 수 세기에 걸쳐 유럽 사회를 기독교화 시킨 것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의 사회, 문화, 입법 그리고 정치 제도는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제도들은 기독교를 배척하면서, 즉 특권을 누리는 교회와 기독교 지배세력 그리고 너무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도덕성에 저항하면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유럽 사회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면은 유럽만이 갖는 매우 특수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유럽은 ‘탈 기독교’(post-christian)화 되었는가? 또 어느 정도로 유럽은 여전히 ‘기독교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본 논고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설명이 된다.
2. 기독교가 과연 과거의 종교로 전락되었는가?
선교사들 사이에서 유럽이 탈 기독교화 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것이 사실인가? 유럽에서 기독교가 이미 사라졌는가? 아니면 사라지는 과정 속에 있는가? 답변은 확실히 “그렇지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진정한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중요하고 영향력을 주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화가 되어가고 타 종교가 성장하고 있지만, 유럽 전역에 걸쳐 각 도시마다 살아있고 빛을 발하는 교회나 기독교 단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침체되었던 어떤 유럽 교회들은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이주해 온 기독교인들이 참여함으로써 다시 활기를 되찾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새로운 이민 교회들이 빨리 성장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유럽 교회 전반적으로 볼 때 교인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교인수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 하더라도, 또 과거와는 달리 사회 속에서 교회의 존재나 위치가 축소되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명목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3. 탈 기독교화 된 사회
기독교가 종교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할지라도, 기독교는 더 이상 과거처럼 문화 속에서나, 공공의 삶이나 정치에 대해 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18세기 말 계몽주의 및 프랑스 혁명을 겪은 후, 유럽은 탈 기독교화 과정을 걷고 있다. 이런 과정이 지향하는 것은 유럽 사회가 교회의 지배력과 보호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분리를 통해 나타난다.
(1) 순수 이성적인 방법으로 사실을 연구하는 학문과 종교가 주관하는 도덕적 가치와의 분리
(2) 교회와 정부의 분리
(3) 종교와 공공 생활과의 분리. 즉 종교는 사적 영역에 속하며, 사회생활은 정치 및 주권을 가진 국민의 의사에 따른다.
이런 ‘현대적’사상이 진전됨에 따라, 유럽 국가들은 과거 교회가 관할하여 왔던 역할인 교육, 호적 관리, 결혼, 사회사업, 병원 등을 자신의 기능으로 삼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교회에 반드시 소속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또 기독교는(이성적인 방법으로 확인 검증되� 실체만을 고려하는)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연구에 과학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양보하게 된다. 철학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국민의 아편’또는 ‘인간의 투영’이라고 비판하고, 기독교 윤리가 세상을 바꾸기에 너무나 미약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진화론은 기독교 창조론을 흔들어 버렸고, 현대 심리학은 교회의 목회사역을 대신하여,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루게 된다. 경제 분야에서 기독교 윤리는 소위 시장의 법칙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고, 정치 분야에서 기독교 정치인은 또 다른 정치인들 중의 하나로 간주될 뿐이고, 그들의 정당 역시 복수정당 민주주의 속에 하나일 뿐이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등과 같은 이념들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대안, 아니면 모든 종교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이들은 기독교의 사회적 교리를 도용하면서도 세속적이며 심지어 무신론적인 인본주의를 고양시켰으며, 내세에서가 아닌 속세에서의 보다 나은 미래를 제시하였다.
오늘날 유럽인들은 비극으로 막을 내린 여러 이념적 혁명들과 그 신조들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1960년대, 1970년대에 발발한 소위 ‘성'(sex)의 혁명에 대해선 그들 대부분이 추종하고 있다. 그 결과 개인 윤리 및 의학 윤리분야에 적용되었던 기독교 가치관이 점점 무너지게 된다. 피임, 동성애, 낙태, 안락사, 시험관 인공출산, 태아 연구 등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높아지게 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입법자들은 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싫건 좋건 간에 관련 안건을 통과시킬 뿐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유럽인들 중 교회에 다니지 않는 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탈 기독교 여러 요인들이 축적되어 감에 따라 유럽 사회는 과거 기독교가 구축하였던 모든 것을 스스로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공공분야, 문화, 사회생활 등에서 특히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은 탈 기독교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4. 다종교, 다문화 사회
또 다른 의미에서도 유럽은 탈 기독화 되고 있다. 즉 유럽사회에서는 종교의 다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 대륙이 복음화 된 이후, 기독교는 유럽에서 유일한 종교로 군림하였고, 다만 유대교가 예외적으로 공존하여 유럽 변두리에 모슬렘들이 유럽 밖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 국가들과 교회는 유대인들을 제한하였고, 모슬렘들을 유럽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의 기독교 사회관은 정치권력과 유일한 종교 기독교 사이에 맺은 언약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믿음도 하나, 왕도 하나, 법도 하나’라는 원칙에 따라 종교 다원화는 국가와 백성의 일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집단이 둘로 분리된 후, 그리고 천주교, 동방정교, 개신교로 삼분된 후에는 적용 규칙이 'cuius regio, eius religio'가 되었다. 즉 통치자의 영토에 소속된 백성은 통치자의 종교, 다시 말하면 그가 선택한 기독교를 채택하는 것이다.
이런 일체성은 깨지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는 유럽 사회에서 더 이상 유일한 종교적 지표가 되지 않는다. 다양한 종교가 허용되고 있으며, 이들 종교는 평등하게 취급된다. 유대교 뿐만이 아니라, 모슬렘, 힌두교인, 불교인들의 중요한 공동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유럽 사회가 다종교화 되고 있다면 아는 비기독교 출신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민자들은 구식민지에서 지중해 연안 국가들로부터 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어야 했고, 이는 이민을 초래하게 하였다. 유럽 국가들은 이민 노동자가 자신의 가족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고, 이로 인해 대규모 이민자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평화는 전 세계로부터 정치적 및 경제적 망명자들의 은닉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이민을 가장 많이 허용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민자들은 그들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매스 미디아가 주는 인상과는 달리, 이민자들 모두가 모슬렘인 것은 아니다. 이민자 중 많은 자들이 기독교인들이다. 또 이민으로 인해 아시아 종교들도 증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민자들은 유럽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동화와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의 이민자들은 이민국가에서 자신들 고유의 문화에 따라 살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유럽 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다. 한 영토 내에서 다양한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다양한 종교에서 기인되고 있다. 단일 문화 사회에 익숙한 유럽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유럽 사회가 다종교화되고 있다면, 이는 비기독교 출신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민자들은 구식민지에서 지중해 연안 국가들로부터 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현상을 겪어야 했고, 이는 이민을 초래하게 하였다. 유럽국가들은 이민 노동자가 자신의 가족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고, 이로 인해 대규모 이민자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평화는 전 세계로부터 정치적 및 경제적 망명자들의 은닉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이민을 가장 많이 허용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민자들은 그들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매스 미디아가 주는 인상과는 달리, 이민자들 모두가 모슬렘들인 것은 아니다! 이민자중 많은 자들이 기독교인들이다. 또 이민으로 인해 아시아 종교들도 증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민자들은 유럽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동화와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의 이민자들은 이민국가에서 자신들 고유의 문화에 따라 살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유럽 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다. 한 영토 내에서 다양한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다양한 종교에서 기인되고 있다. 단일 문화 사회에 익숙한 유럽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5. 세속화는 유럽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유럽 사회가 다종교화된다는 의미에서 그 사회가 탈 기독교화가 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탈 기독교화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면은 모든종교활동을 포기하는 것,즉 세속화이다. 기독교 외의 종교가 성장하는 이유가 이민의 결과라면, 세속화는 전형적인 유럽 현상이다. 많은 이민자들은 그들 부모 세대의 종교에서 멀어지고 있고 세속적이고 물질주의 삶의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따금 종교적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세속화는 무엇보다도 유럽본토인들에 관한 사실인 것이다. 2세기 전에 예술인, 상류계층 및 지성인들 간에서 시작된 이 현상은 19세기를 거치는 동안 점진적으로 노동자 계층에게도 그리고 후에 중산계층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 이 과정� 가속화되었다. 오늘날에도 그 진보는 항거할 수 없도록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 현상은 유럽의 모든 곳에서 목격될 수 있다. 예배 장소는 비어가고 있다. 특히 과거의 공업 중심지에 있는 전통적인 교회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 현상을 보다 가까이 살펴보자. 오늘날 우리가 유럽에서 주시하고 있는 쇠퇴는 그 자체로 고립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성격에 있어서 독특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상 일단 복음화된 민족이 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예를 들면,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그런 일이 발생되었다. 이 지역의 백성들은 흔히 군사적인 정복과정에 더불어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타 종교로의 회심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기독교를 포기하는 현상은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유럽인이 기독교를 떠나는 것은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군사적이든 어떠한 외부적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은 위협과 폭력속에서 살면서 기독교인이 타국으로 출애굽하는 중동국가의 경우와는 다르다. 유럽인들은 자기 스스로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세속화 현상이 갖는 두번째 특징은 기독교에 대한 대안으로 다른 종교를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종교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소위 세속화라고 부르고 있는데, 전형적으로 유럽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유럽인들이 이주하여 서양 문화가 정착된 곳, 어느 곳에서나, 이런 현상이 오늘날 확산되고 있지만, 유럽에서 일어나는 세속화의 광범한 성격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과정 속에 있지만 일반적으로 개신교를 대표하는 나라가 천주교 국가나 정교 국가들보다도 훨씬 세속화 영향을 더 받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유럽에서 공산주의는 무신주의를 강요하였다. 그런데 1990년도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체코와 같은 일부 국가들이 매우 세속화되었던 것은 자명하였다. 반면에 러시아, 폴란드와 같은 나라들의 경우에는 교회가 강건해진 것이다.
6. 유럽에서 탈 기독교화는 탈 종교화와 동일하다.
유럽에서 기독교를 포기하는 것은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저버린 유럽인들은 다른 종교로 회심하기보다는 더 이상 종교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종교와 관련이 없는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그들은 어떠한 신이라 할지라도 그가 계시하는 진리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기독교 신앙을 버린 후 더 이상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종교 생활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어떤 종교도 유럽인이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이득을 얻지 못한다! 유럽에서 탈 기독교화는 탈 종교화와 동일한 것이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유럽에서 합리주의 철학이 생겨났고, 이는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대한 대체안으로 생겨났다. 종교성이 없는 여러 사상들이 이런 철학의 산물인 것이다. 물질주의, 진화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중주의, 파시즘, 세속적 인본주의 등, 이 모든 것들이 세속적인 의미에서 구원의 길처럼 일어났으며, 자유, 평등, 박애, 번영 등을 제시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이나 영혼의 신비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 종교적이 아닌 합리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과학이 발전된 곳도 유럽인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어떻게 가장 기독교화된 대륙에서 모든 종교 생활을 포기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성경 메시지의 영향과 세속화 간에 무슨 연관 관계가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사실, 기독교는 유대교와 이슬람을 제외한 모든 종교와 상반되는 한 가지 ‘세속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메시지는 자연의 ‘신비를 벗기고’ 있는 것이다. 오직 유일하신 창조주가 계시며, 모든 세계는 그의 창조물이며, 이는 인간의 통치에 위임되었다. 인간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피조물이나 현상을 경배하기보다는, 자연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관찰 연구하여,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다 잘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이 유럽의 정신을 점점 자주적인 합리주의로 준비시켜, 그 결과 ‘하나님의 존재’라는 대 전제를 저버리고 다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실체만을 관찰하고 설명하려고만 하고 있다.
또 다른 요인으로, 유럽인들을 오랫동안 지켜온 생각이 있다. 즉 그들의 종교, 기독교가 윤리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영적, 신학적 면에서 가장 앞선 종교라는 생각이다. 기독교에 근간을 둔 문화가 다른 문화권과 더불어 인류에게 진보를 가져다 주었다는 생각이다. 그런고로 타 종교로 회심하는 것은 오히려 한걸음 후퇴하는 일이 된다. 오늘날 유럽인들은 종교적, 문화적 우월감을 덜 갖고 있지만, 여전히 그 흔적은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 만족하지 못한 자가 다른 종교로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를 버린후 남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어떠한 종교도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매우 극소수 유럽 본토인만이 이스람으로 전향하지만, 그것도 흔히 모슬렘과 결혼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모슬렘이 된다는 것은 유럽 본토인에게 선택하고 싶은 대안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를 포기한 유럽인이 세속주의도 불만족을 느낀다면, 그들의 마음은 허전할 것인데 다른 무엇이 이들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흔히 동양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비종교적 영성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 비의적(esoteric) 전통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집합적으로 ‘뉴에이지’로 불리는 애매모호한 사조인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새로운 종교성(religiosity) 개념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는 올바르지 못하다. 그 이유는 그 이유는 그 추종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성을 찾는 많은 유럽인들은 종교로서가 아닌 철학으로의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산상수훈 윤리와 유사하게 보이는 불교 윤리가 기독교 윤리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제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서구인들의 기호에 맞추어진 불교 추종자들에게는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즉, 보다 관용적인 윤리, 개인주의화된 영성, 웰빙을 강조하는 점, 비폭력성, 자연에 대한 존중 등이 그들의 기호에 맞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서“하나님에 관한 성찰과 질문은 주어지지 않는다”라고 최근 기독교로 회심한 한 수학 전공 대학생이 나에게 말한 바 있다.
7. 다시 말하면,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종교로부터 탈 종교화하는 것이다.
본 논고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세속화란 그 자체로 모든 종교적인 것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사람들에게 여전히 종교는 긍정적일수 있으며, 단지 일반적으로 종교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열성적인 무신론자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어, 인구의 13%를 초과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 비율은 일세기가 지나도록 증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비율은 체코, 네덜란드, 그리고(45년간 공산주의 하에서 무신주의가 강요되었던) 동독 등에선 높으나, 천주교 국가에선 일반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교회를 더 이상 출석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소위 불가지론자(‘확신하지 못하는 자’)로 자처 하고 있다.
반대로 유럽인들이 피하고 싶고,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제도화된 종교이다. 즉 그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어떤 예식을 따라야 하는가를 말하는 교회에 소속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유럽인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기호대로 맞춤식 영성을 찾고 싶은 것이다. 세속화된 유럽인들에게 종교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이다. 그들은 다른 자들의 신앙을 인정하지만, 남에 의하여 생활 스타일을 강요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남이 종교 생활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그런 종교에 의해 그들의 삶이 침해받길 원치 않는다. 남에게 관용을 보인 만큼, 그들도 남에게 그러한 관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왜 자칭 관용적인 유럽인들이 모슬렘들이 길거리에서 기도하거나 이슬람 베일을 쓰거나, 미나레(minaret)에서 기도 모임 소집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비관용적으로 변하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문제는 모슬렘들의 종교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공공 장소에 너무나 눈에 보이게, 너무나 요란하게, 너무나 보란 듯하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행태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들이 흔히 “우리도 유럽에서 그런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하는 이유가 된다. 유럽인들의 눈에는 그런 가식적인 행위란 과거에 집착된 것이며 유럽사회의 미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왜 유럽에서 ‘공격적인’ 전도방법을 부정적으로 보는가를 이해하게 만든다. 가령 당신이 자신을 선교사라고 소개하면서 불신자들이 하나님께로 회심하는 것을 보길 원한다고 말한다면, 상대방은 즉각적으로 불신과 의심을 보이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당신이 길거리로 나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전도지를 배포한다고 할 때, 사람들은 당신을 다른 종류의 극단주의자 내지 교조주의자처럼 간주하여 그들과 대동소이한 무리로 취급할 것이다. 모든 교회들을 살펴보면 극히 소수의 정회원들만이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기독교 삶에서 지역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신자들 내에서도 그런 경향이 생기고 있다. 신자들은 그들의 사적인 삶, 여가, 일 등에 보다 많이 자신을 드리고 있으며, 교회에 드리는 헌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또한 시대의 풍조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회기관들에서는 책임자, 리더를 찾아 고용하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정당에서도 열성 당원의 수가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종교사회학자들은 유럽인들은 조직화된 모든 종교 활동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대규모 집회는 다소 인기가 있는 편이다. 예를 들면 테제공동체 집회나 세계천주교청년의 날 집회, 은사주의 운동 집회 등과 같은 기독교 모임 등이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는 정기적 행사일 뿐, 지속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모임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들의 영적 삶에 대해 자유롭게 해석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8.유럽은 탈 콘스탄틴화되고 있다.
유럽사회가 탈 기독교화되는 과정 속에서 지적할 만한 매우 특별한 점으로 교회와 정부의 분리를 들 수 있다.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유럽 역사의 특징 속에 새겨지고 있다. 이 유럽 역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는 왕권과 교권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가 회심한 후 그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았다. 그 후계자들도 기독교를 유일한 국교로 지켜왔다. 그리하여 지상의 권력과 영적 권력이 결합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법에 기초한 사회를 다스리며, 피정복 백성들을 복음화하였던 것이다. 이를 콘스탄틴 제도라고 부른다. 로마 제국을 계승한 모든 국가나 다른 제국 들도 동일한 제도를 채택하였다. 유럽은 왕자들과 고위 성직자들에 의해 지배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상은 모든 분야가 기독교화된 사회, 즉 기독교 왕국으로 불리우는 corpuschristianum에 있다.
이처럼 교회는 왕에게 신성한 정통 왕위 계승권을 수여하였고, 모든 왕위 즉위식은 교회 안에서 거행되었다. 반면 왕은 교회를 보호하고 특혜를 주었다. 이런 제도에 기초하여 유럽 사회는 기독교화 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은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제정되어 강요받는 것이 되었다. 이런 정교의 결합은 종교재판, 이단 및 유대인에 대한 핍박 등과 같은 또 다른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시켰다. 주교는 정치권력을 행사하였고, 이는 흔히 교회법과 타협하면서까지 행하여졌다. 이런 정교결속이 야기하는 비관용과 파행을 보면서, 계몽주의자들은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미국혁명(1776)과 프랑스혁명(1789)은 이것을 행동으로 옮겼고, 전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후자는 폭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정교분리는 제각기 다르게 적용되었다. 미국에서는 교회와 정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면, 프랑스나 프랑스의 본을 따른 다른 나라들에서는 교회와 정부의 관계에서 자주 긴장과 마찰이 일어나곤 하였다.
이런 이유로 라이씨테 개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정치와 국가공익서비스는 종교에 대해 ‘중립적’ 이 되는 것이다. 교회는 예배의 자유를 누리지만 모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일부 다른 라이씨테 신봉자들은 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교권주의 경향은 특히 라틴 국가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콘스탄틴 제도 하에 만들어진 천주교의 지배에 대한 강한 반항으로 설명 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왕권과 교권의 결합은 대부분의 유럽국가에 의해 폐지되어가고 있다. 유럽은 대충 탈 콘스탄틴화가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국가는 여전히 국교를 가지고 있다. 예를들면 영국의 성공회 교회, 그리스의 정교회, 덴마크의 루터교를 예로 들 수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여전히 콘스탄틴 제도 하에 시행된 여러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교회는 세제상 또는 법률상 특혜를 받고 있기도 하며, 교회 건물 보수도 흔히 국가 비용 부담으로 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모든 국민은-특별한 면제 조치가 있지 않는 한-종교세를 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에 의해 인정받은 교회의 정회원이 아닌 독일인들도 이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 사회는 과거에 모든 국민, 그 대다수가 교회에 소속되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지금은 더 이상 기독교 사회가 아닌 것이다. 그 결과 기독교는 유산의종교, 즉 ‘국민의 교회’, 무리(multitudist)의 교회가 되는 것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기독교는 점점 회심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탈 기독교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각자가 스스로 선택을 하여야 한다. 복음주의 편에서 볼 때, 이런 변화는 이득이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복음주의 운동은 신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믿음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앨버드 반폴(벨기에 루벤 복음주의 신학교 선교학 교수)
서론 : 선교지이지만 다른 선교지와는 전혀 다른 유럽
유럽은 지난 4세기 동안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한 핵심기지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유럽은 스스로가 주요 선교지 중 하나로 되어가고 있다. 이 점에서 유럽은 다른 지역과 판이한 선교지이다. 그레이스 다비를 위시한 사회종교학자들은 유럽을 ‘예외적인 경우’로 간주하고 있다. 유럽 사회 안에서 차지하는 종교의 위치가 미국이나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대양주의 경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특히 다른 대륙에서 사용된 전도 방법을 유럽에서도 적용하고자 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타 대륙의 전도 방법이 북미 문화권과 비슷한 북부 서유럽의 국가에서 아마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1. 유럽의 이율배반적인 모습
유럽 사회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유럽은 과거에 이 세상 어느 지역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 전폭적으로 성경의 메시지의 영향을 받은 대륙이었다. 또 다른 면은 오늘날의 유럽은 지구 상 다른 대륙과는 달리 현재 기독교를 대대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포기하고 배척하는 대륙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 유럽 대륙은 모든 지역 전반적으로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복음화가 이루어졌다. 국가의 제도가 된 교회는 정치와 권력이 결탁하여 수 세기에 걸쳐 유럽 사회를 기독교화 시킨 것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의 사회, 문화, 입법 그리고 정치 제도는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제도들은 기독교를 배척하면서, 즉 특권을 누리는 교회와 기독교 지배세력 그리고 너무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도덕성에 저항하면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유럽 사회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면은 유럽만이 갖는 매우 특수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유럽은 ‘탈 기독교’(post-christian)화 되었는가? 또 어느 정도로 유럽은 여전히 ‘기독교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본 논고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설명이 된다.
2. 기독교가 과연 과거의 종교로 전락되었는가?
선교사들 사이에서 유럽이 탈 기독교화 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것이 사실인가? 유럽에서 기독교가 이미 사라졌는가? 아니면 사라지는 과정 속에 있는가? 답변은 확실히 “그렇지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진정한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중요하고 영향력을 주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화가 되어가고 타 종교가 성장하고 있지만, 유럽 전역에 걸쳐 각 도시마다 살아있고 빛을 발하는 교회나 기독교 단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침체되었던 어떤 유럽 교회들은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이주해 온 기독교인들이 참여함으로써 다시 활기를 되찾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새로운 이민 교회들이 빨리 성장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유럽 교회 전반적으로 볼 때 교인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교인수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 하더라도, 또 과거와는 달리 사회 속에서 교회의 존재나 위치가 축소되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명목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3. 탈 기독교화 된 사회
기독교가 종교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할지라도, 기독교는 더 이상 과거처럼 문화 속에서나, 공공의 삶이나 정치에 대해 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18세기 말 계몽주의 및 프랑스 혁명을 겪은 후, 유럽은 탈 기독교화 과정을 걷고 있다. 이런 과정이 지향하는 것은 유럽 사회가 교회의 지배력과 보호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분리를 통해 나타난다.
(1) 순수 이성적인 방법으로 사실을 연구하는 학문과 종교가 주관하는 도덕적 가치와의 분리
(2) 교회와 정부의 분리
(3) 종교와 공공 생활과의 분리. 즉 종교는 사적 영역에 속하며, 사회생활은 정치 및 주권을 가진 국민의 의사에 따른다.
이런 ‘현대적’사상이 진전됨에 따라, 유럽 국가들은 과거 교회가 관할하여 왔던 역할인 교육, 호적 관리, 결혼, 사회사업, 병원 등을 자신의 기능으로 삼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교회에 반드시 소속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또 기독교는(이성적인 방법으로 확인 검증되� 실체만을 고려하는)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연구에 과학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양보하게 된다. 철학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국민의 아편’또는 ‘인간의 투영’이라고 비판하고, 기독교 윤리가 세상을 바꾸기에 너무나 미약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진화론은 기독교 창조론을 흔들어 버렸고, 현대 심리학은 교회의 목회사역을 대신하여,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루게 된다. 경제 분야에서 기독교 윤리는 소위 시장의 법칙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고, 정치 분야에서 기독교 정치인은 또 다른 정치인들 중의 하나로 간주될 뿐이고, 그들의 정당 역시 복수정당 민주주의 속에 하나일 뿐이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등과 같은 이념들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대안, 아니면 모든 종교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이들은 기독교의 사회적 교리를 도용하면서도 세속적이며 심지어 무신론적인 인본주의를 고양시켰으며, 내세에서가 아닌 속세에서의 보다 나은 미래를 제시하였다.
오늘날 유럽인들은 비극으로 막을 내린 여러 이념적 혁명들과 그 신조들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1960년대, 1970년대에 발발한 소위 ‘성'(sex)의 혁명에 대해선 그들 대부분이 추종하고 있다. 그 결과 개인 윤리 및 의학 윤리분야에 적용되었던 기독교 가치관이 점점 무너지게 된다. 피임, 동성애, 낙태, 안락사, 시험관 인공출산, 태아 연구 등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높아지게 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입법자들은 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싫건 좋건 간에 관련 안건을 통과시킬 뿐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유럽인들 중 교회에 다니지 않는 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탈 기독교 여러 요인들이 축적되어 감에 따라 유럽 사회는 과거 기독교가 구축하였던 모든 것을 스스로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공공분야, 문화, 사회생활 등에서 특히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은 탈 기독교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4. 다종교, 다문화 사회
또 다른 의미에서도 유럽은 탈 기독화 되고 있다. 즉 유럽사회에서는 종교의 다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 대륙이 복음화 된 이후, 기독교는 유럽에서 유일한 종교로 군림하였고, 다만 유대교가 예외적으로 공존하여 유럽 변두리에 모슬렘들이 유럽 밖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 국가들과 교회는 유대인들을 제한하였고, 모슬렘들을 유럽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의 기독교 사회관은 정치권력과 유일한 종교 기독교 사이에 맺은 언약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믿음도 하나, 왕도 하나, 법도 하나’라는 원칙에 따라 종교 다원화는 국가와 백성의 일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집단이 둘로 분리된 후, 그리고 천주교, 동방정교, 개신교로 삼분된 후에는 적용 규칙이 'cuius regio, eius religio'가 되었다. 즉 통치자의 영토에 소속된 백성은 통치자의 종교, 다시 말하면 그가 선택한 기독교를 채택하는 것이다.
이런 일체성은 깨지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는 유럽 사회에서 더 이상 유일한 종교적 지표가 되지 않는다. 다양한 종교가 허용되고 있으며, 이들 종교는 평등하게 취급된다. 유대교 뿐만이 아니라, 모슬렘, 힌두교인, 불교인들의 중요한 공동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유럽 사회가 다종교화 되고 있다면 아는 비기독교 출신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민자들은 구식민지에서 지중해 연안 국가들로부터 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어야 했고, 이는 이민을 초래하게 하였다. 유럽 국가들은 이민 노동자가 자신의 가족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고, 이로 인해 대규모 이민자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평화는 전 세계로부터 정치적 및 경제적 망명자들의 은닉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이민을 가장 많이 허용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민자들은 그들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매스 미디아가 주는 인상과는 달리, 이민자들 모두가 모슬렘인 것은 아니다. 이민자 중 많은 자들이 기독교인들이다. 또 이민으로 인해 아시아 종교들도 증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민자들은 유럽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동화와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의 이민자들은 이민국가에서 자신들 고유의 문화에 따라 살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유럽 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다. 한 영토 내에서 다양한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다양한 종교에서 기인되고 있다. 단일 문화 사회에 익숙한 유럽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유럽 사회가 다종교화되고 있다면, 이는 비기독교 출신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민자들은 구식민지에서 지중해 연안 국가들로부터 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현상을 겪어야 했고, 이는 이민을 초래하게 하였다. 유럽국가들은 이민 노동자가 자신의 가족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고, 이로 인해 대규모 이민자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평화는 전 세계로부터 정치적 및 경제적 망명자들의 은닉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이민을 가장 많이 허용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민자들은 그들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매스 미디아가 주는 인상과는 달리, 이민자들 모두가 모슬렘들인 것은 아니다! 이민자중 많은 자들이 기독교인들이다. 또 이민으로 인해 아시아 종교들도 증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민자들은 유럽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동화와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의 이민자들은 이민국가에서 자신들 고유의 문화에 따라 살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유럽 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다. 한 영토 내에서 다양한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다양한 종교에서 기인되고 있다. 단일 문화 사회에 익숙한 유럽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5. 세속화는 유럽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유럽 사회가 다종교화된다는 의미에서 그 사회가 탈 기독교화가 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탈 기독교화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면은 모든종교활동을 포기하는 것,즉 세속화이다. 기독교 외의 종교가 성장하는 이유가 이민의 결과라면, 세속화는 전형적인 유럽 현상이다. 많은 이민자들은 그들 부모 세대의 종교에서 멀어지고 있고 세속적이고 물질주의 삶의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따금 종교적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세속화는 무엇보다도 유럽본토인들에 관한 사실인 것이다. 2세기 전에 예술인, 상류계층 및 지성인들 간에서 시작된 이 현상은 19세기를 거치는 동안 점진적으로 노동자 계층에게도 그리고 후에 중산계층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 이 과정� 가속화되었다. 오늘날에도 그 진보는 항거할 수 없도록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 현상은 유럽의 모든 곳에서 목격될 수 있다. 예배 장소는 비어가고 있다. 특히 과거의 공업 중심지에 있는 전통적인 교회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 현상을 보다 가까이 살펴보자. 오늘날 우리가 유럽에서 주시하고 있는 쇠퇴는 그 자체로 고립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성격에 있어서 독특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상 일단 복음화된 민족이 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예를 들면,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그런 일이 발생되었다. 이 지역의 백성들은 흔히 군사적인 정복과정에 더불어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타 종교로의 회심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기독교를 포기하는 현상은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유럽인이 기독교를 떠나는 것은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군사적이든 어떠한 외부적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은 위협과 폭력속에서 살면서 기독교인이 타국으로 출애굽하는 중동국가의 경우와는 다르다. 유럽인들은 자기 스스로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세속화 현상이 갖는 두번째 특징은 기독교에 대한 대안으로 다른 종교를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종교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소위 세속화라고 부르고 있는데, 전형적으로 유럽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유럽인들이 이주하여 서양 문화가 정착된 곳, 어느 곳에서나, 이런 현상이 오늘날 확산되고 있지만, 유럽에서 일어나는 세속화의 광범한 성격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과정 속에 있지만 일반적으로 개신교를 대표하는 나라가 천주교 국가나 정교 국가들보다도 훨씬 세속화 영향을 더 받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유럽에서 공산주의는 무신주의를 강요하였다. 그런데 1990년도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체코와 같은 일부 국가들이 매우 세속화되었던 것은 자명하였다. 반면에 러시아, 폴란드와 같은 나라들의 경우에는 교회가 강건해진 것이다.
6. 유럽에서 탈 기독교화는 탈 종교화와 동일하다.
유럽에서 기독교를 포기하는 것은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저버린 유럽인들은 다른 종교로 회심하기보다는 더 이상 종교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종교와 관련이 없는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그들은 어떠한 신이라 할지라도 그가 계시하는 진리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기독교 신앙을 버린 후 더 이상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종교 생활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어떤 종교도 유럽인이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이득을 얻지 못한다! 유럽에서 탈 기독교화는 탈 종교화와 동일한 것이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유럽에서 합리주의 철학이 생겨났고, 이는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대한 대체안으로 생겨났다. 종교성이 없는 여러 사상들이 이런 철학의 산물인 것이다. 물질주의, 진화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중주의, 파시즘, 세속적 인본주의 등, 이 모든 것들이 세속적인 의미에서 구원의 길처럼 일어났으며, 자유, 평등, 박애, 번영 등을 제시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이나 영혼의 신비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 종교적이 아닌 합리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과학이 발전된 곳도 유럽인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어떻게 가장 기독교화된 대륙에서 모든 종교 생활을 포기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성경 메시지의 영향과 세속화 간에 무슨 연관 관계가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사실, 기독교는 유대교와 이슬람을 제외한 모든 종교와 상반되는 한 가지 ‘세속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메시지는 자연의 ‘신비를 벗기고’ 있는 것이다. 오직 유일하신 창조주가 계시며, 모든 세계는 그의 창조물이며, 이는 인간의 통치에 위임되었다. 인간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피조물이나 현상을 경배하기보다는, 자연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관찰 연구하여,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다 잘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이 유럽의 정신을 점점 자주적인 합리주의로 준비시켜, 그 결과 ‘하나님의 존재’라는 대 전제를 저버리고 다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실체만을 관찰하고 설명하려고만 하고 있다.
또 다른 요인으로, 유럽인들을 오랫동안 지켜온 생각이 있다. 즉 그들의 종교, 기독교가 윤리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영적, 신학적 면에서 가장 앞선 종교라는 생각이다. 기독교에 근간을 둔 문화가 다른 문화권과 더불어 인류에게 진보를 가져다 주었다는 생각이다. 그런고로 타 종교로 회심하는 것은 오히려 한걸음 후퇴하는 일이 된다. 오늘날 유럽인들은 종교적, 문화적 우월감을 덜 갖고 있지만, 여전히 그 흔적은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 만족하지 못한 자가 다른 종교로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를 버린후 남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어떠한 종교도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매우 극소수 유럽 본토인만이 이스람으로 전향하지만, 그것도 흔히 모슬렘과 결혼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모슬렘이 된다는 것은 유럽 본토인에게 선택하고 싶은 대안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를 포기한 유럽인이 세속주의도 불만족을 느낀다면, 그들의 마음은 허전할 것인데 다른 무엇이 이들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흔히 동양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비종교적 영성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 비의적(esoteric) 전통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집합적으로 ‘뉴에이지’로 불리는 애매모호한 사조인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새로운 종교성(religiosity) 개념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는 올바르지 못하다. 그 이유는 그 이유는 그 추종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성을 찾는 많은 유럽인들은 종교로서가 아닌 철학으로의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산상수훈 윤리와 유사하게 보이는 불교 윤리가 기독교 윤리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제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서구인들의 기호에 맞추어진 불교 추종자들에게는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즉, 보다 관용적인 윤리, 개인주의화된 영성, 웰빙을 강조하는 점, 비폭력성, 자연에 대한 존중 등이 그들의 기호에 맞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서“하나님에 관한 성찰과 질문은 주어지지 않는다”라고 최근 기독교로 회심한 한 수학 전공 대학생이 나에게 말한 바 있다.
7. 다시 말하면,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종교로부터 탈 종교화하는 것이다.
본 논고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세속화란 그 자체로 모든 종교적인 것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사람들에게 여전히 종교는 긍정적일수 있으며, 단지 일반적으로 종교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열성적인 무신론자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어, 인구의 13%를 초과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 비율은 일세기가 지나도록 증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비율은 체코, 네덜란드, 그리고(45년간 공산주의 하에서 무신주의가 강요되었던) 동독 등에선 높으나, 천주교 국가에선 일반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교회를 더 이상 출석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소위 불가지론자(‘확신하지 못하는 자’)로 자처 하고 있다.
반대로 유럽인들이 피하고 싶고,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제도화된 종교이다. 즉 그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어떤 예식을 따라야 하는가를 말하는 교회에 소속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유럽인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기호대로 맞춤식 영성을 찾고 싶은 것이다. 세속화된 유럽인들에게 종교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이다. 그들은 다른 자들의 신앙을 인정하지만, 남에 의하여 생활 스타일을 강요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남이 종교 생활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그런 종교에 의해 그들의 삶이 침해받길 원치 않는다. 남에게 관용을 보인 만큼, 그들도 남에게 그러한 관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왜 자칭 관용적인 유럽인들이 모슬렘들이 길거리에서 기도하거나 이슬람 베일을 쓰거나, 미나레(minaret)에서 기도 모임 소집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비관용적으로 변하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문제는 모슬렘들의 종교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공공 장소에 너무나 눈에 보이게, 너무나 요란하게, 너무나 보란 듯하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행태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들이 흔히 “우리도 유럽에서 그런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하는 이유가 된다. 유럽인들의 눈에는 그런 가식적인 행위란 과거에 집착된 것이며 유럽사회의 미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왜 유럽에서 ‘공격적인’ 전도방법을 부정적으로 보는가를 이해하게 만든다. 가령 당신이 자신을 선교사라고 소개하면서 불신자들이 하나님께로 회심하는 것을 보길 원한다고 말한다면, 상대방은 즉각적으로 불신과 의심을 보이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당신이 길거리로 나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전도지를 배포한다고 할 때, 사람들은 당신을 다른 종류의 극단주의자 내지 교조주의자처럼 간주하여 그들과 대동소이한 무리로 취급할 것이다. 모든 교회들을 살펴보면 극히 소수의 정회원들만이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기독교 삶에서 지역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신자들 내에서도 그런 경향이 생기고 있다. 신자들은 그들의 사적인 삶, 여가, 일 등에 보다 많이 자신을 드리고 있으며, 교회에 드리는 헌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또한 시대의 풍조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회기관들에서는 책임자, 리더를 찾아 고용하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정당에서도 열성 당원의 수가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종교사회학자들은 유럽인들은 조직화된 모든 종교 활동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대규모 집회는 다소 인기가 있는 편이다. 예를 들면 테제공동체 집회나 세계천주교청년의 날 집회, 은사주의 운동 집회 등과 같은 기독교 모임 등이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는 정기적 행사일 뿐, 지속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모임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들의 영적 삶에 대해 자유롭게 해석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8.유럽은 탈 콘스탄틴화되고 있다.
유럽사회가 탈 기독교화되는 과정 속에서 지적할 만한 매우 특별한 점으로 교회와 정부의 분리를 들 수 있다.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유럽 역사의 특징 속에 새겨지고 있다. 이 유럽 역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는 왕권과 교권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가 회심한 후 그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았다. 그 후계자들도 기독교를 유일한 국교로 지켜왔다. 그리하여 지상의 권력과 영적 권력이 결합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법에 기초한 사회를 다스리며, 피정복 백성들을 복음화하였던 것이다. 이를 콘스탄틴 제도라고 부른다. 로마 제국을 계승한 모든 국가나 다른 제국 들도 동일한 제도를 채택하였다. 유럽은 왕자들과 고위 성직자들에 의해 지배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상은 모든 분야가 기독교화된 사회, 즉 기독교 왕국으로 불리우는 corpuschristianum에 있다.
이처럼 교회는 왕에게 신성한 정통 왕위 계승권을 수여하였고, 모든 왕위 즉위식은 교회 안에서 거행되었다. 반면 왕은 교회를 보호하고 특혜를 주었다. 이런 제도에 기초하여 유럽 사회는 기독교화 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은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제정되어 강요받는 것이 되었다. 이런 정교의 결합은 종교재판, 이단 및 유대인에 대한 핍박 등과 같은 또 다른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시켰다. 주교는 정치권력을 행사하였고, 이는 흔히 교회법과 타협하면서까지 행하여졌다. 이런 정교결속이 야기하는 비관용과 파행을 보면서, 계몽주의자들은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미국혁명(1776)과 프랑스혁명(1789)은 이것을 행동으로 옮겼고, 전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후자는 폭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정교분리는 제각기 다르게 적용되었다. 미국에서는 교회와 정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면, 프랑스나 프랑스의 본을 따른 다른 나라들에서는 교회와 정부의 관계에서 자주 긴장과 마찰이 일어나곤 하였다.
이런 이유로 라이씨테 개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정치와 국가공익서비스는 종교에 대해 ‘중립적’ 이 되는 것이다. 교회는 예배의 자유를 누리지만 모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일부 다른 라이씨테 신봉자들은 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교권주의 경향은 특히 라틴 국가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콘스탄틴 제도 하에 만들어진 천주교의 지배에 대한 강한 반항으로 설명 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왕권과 교권의 결합은 대부분의 유럽국가에 의해 폐지되어가고 있다. 유럽은 대충 탈 콘스탄틴화가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국가는 여전히 국교를 가지고 있다. 예를들면 영국의 성공회 교회, 그리스의 정교회, 덴마크의 루터교를 예로 들 수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여전히 콘스탄틴 제도 하에 시행된 여러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교회는 세제상 또는 법률상 특혜를 받고 있기도 하며, 교회 건물 보수도 흔히 국가 비용 부담으로 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모든 국민은-특별한 면제 조치가 있지 않는 한-종교세를 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에 의해 인정받은 교회의 정회원이 아닌 독일인들도 이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 사회는 과거에 모든 국민, 그 대다수가 교회에 소속되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지금은 더 이상 기독교 사회가 아닌 것이다. 그 결과 기독교는 유산의종교, 즉 ‘국민의 교회’, 무리(multitudist)의 교회가 되는 것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기독교는 점점 회심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탈 기독교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각자가 스스로 선택을 하여야 한다. 복음주의 편에서 볼 때, 이런 변화는 이득이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복음주의 운동은 신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믿음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앨버드 반폴(벨기에 루벤 복음주의 신학교 선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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