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권에서의 기독교 선교 전략
김은홍 교수 (백석대학교)
I. 서론
오늘날 종교다원주의로 기독교 선교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절대 진리를 부인하고 모든 종교를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기독교도 타종교와 같은 상황에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교로 인식되는 이상 기독교는 사람들의 선택의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포장되지 않으면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외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렇게 될 때 기독교는 그 본질을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어서 기독교는 언제나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포장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힌두교권과 연관되어 있거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1966년 세계교회협의회(WCC)내에 “교회와 사회국”의 설립자로서 초대 의장이며 WCC 중앙위원회 의장직을 맡은 바 있는 M.M. Thomas, 1971년 WCC내에 새롭게 창설된 “산 신앙인들과 대화” 프로그램의 초대 책임자였던 인도신학자 S.J. Samartha가 있으며, 또한 현대의 대표적인 종교다원주의자인 R. Parnikkar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말에 미국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던 뉴에이지의 전생(환생)신드롬은 그 배경을 보면 힌두교의 윤회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의 대부분의 나라에 크게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신자보다 더 많은 신자를 갖고 있는 불교가 힌두교에서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힌두권은 물론 세계에 대한 기독교 선교를 원하는 우리로서는 힌두교에 대하여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즉 힌두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면 오늘날 힌두권 선교는 그만큼 어렵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먼저 힌두교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난 뒤에 힌두교의 다양한 경전들의 발전과정과 내용, 거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힌두교의 신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Ⅱ. 힌두교의 역사적 발전과정
1. 힌두교의 역사 구분
힌두교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는 매우 복잡하다. 힌두교가 그만큼 오랜 역사적 과정에 거쳐서 발전하였기 때문에 그렇다. 힌두교의 역사적 발전과정은 학자마다 다소 다르게 주장되고 있다. 우리나라 선교학의 대표적 학자인 전호진 교수는 베다의 시대(BC 2000-600년), 반동과 부흥의 시대(BC 600-AD 300), 서사시와 푸라나(Puranas) 시대(AD 300-1750), 그리고 현대 시기(1770-현재)로 나누었으나, 이동주 교수는 인더스문명 시대(BC 5000-1500), 베다(Veda) 시대(BC 1500-800), 브라마나(Brahmanas) 시대(BC 1000-500), 우파니샤드(Upanishad)시대(BC 800-200), 경서 시대(BC 400-AD 300), 중세 이후의 힌두교 시대로 구분하였다. 이교수의 구분은 시대적으로 겹치게 한 것이 특징인데 그만큼 힌두교 발전과정을 시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키타가와(Joseph M. Kitagawa)는 힌두교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베다 시대를 BC 10세기부터 6세기까지로 보고(그 이전은 아리안족 시대로 봄) 베다 시대를 또 만트라(Mantras) 시대, 브라마나 시대, 그리고 우파니샤드 시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자이나교와 불교가 탄생한 BC 6세기 이후는 힌두교의 변화시대로 보고 이에 영향을 받은 AD 1세기부터를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시대, AD 318년 이후를 중세의 힌두교 시대, 15세기 이후를 무굴통치 시대, 19세기 이후를 현대 시대로 구분하였다. 키타가와의 시대 구분은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 이전을 통털어 고대 힌두교로 보고 만트라, 브라마나, 우파니샤드 시대를 시대구분 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그만큼 이들에 대한 시대구분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동주 교수가 시대를 겹쳐서 표기한 것을 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황보갑은 인도-유럽어족인 아리안족이 인도의 펀잡(Punjab)지방을 점령한 것을 BC 2000-1800년경으로 보고 이때부터 정통 힌두교가 탄생(이때를 베다 시대의 시작으로 본다)하였으나 힌두교는 그 사상면에서 인도의 토착문화와 혼합되었기 때문에 힌두교의 뿌리는 인도의 토착문화가 형성된 BC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였다. 베다 시대도 리그(Rig) 베다 시대(BC 2000-1000), 야주르(Yajur) 베다 시대(BC 1000-800), 사마(Sama) 베다 시대, 그리고 아타르바(Atharva) 베다 시대등 4 베다 시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우파니샤드 시대를 BC 800-300년경으로 보고 있어서 그 중간의 브라마나 시대는 야주르 베다 시대(BC 1000-800)와 우파니샤드 시대(BC 800-300)에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냈다. 그리고 자이나교와 불교 시대의 탄생을 BC 600년경으로 보고 이들에 영향을 받아 탄생된 바가바드 기타 시대를 BC 500-AD 700으로 보았다. 황보갑이 키타가와와는 달리 바가바드 기타 시대를 BC 500년경부터로 본 것은 바가바드 기타가 실제 이때부터 작성되어 오다가 그후에 여러 번 개작내지 수정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존 노스(John B. Noss)는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을 기준으로 힌두교를 크게 전기 힌두교와 후기 힌두교로 나누고 전기 힌두교는 베다 시대(BC 2000-7세기말)와 브라마나 시대(7세기말- 6세기)로 구분하여 베다 시대를 길게 잡고 우파니샤드 시대를 브라마나 시대에 포함시킨 것이 특색이다. 후기 힌두교 시대는 자이나교와 불교가 탄생한 6세기부터로 보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힌두교의 역사는 자이나교와 불교가 탄생하기 이전 시대(전기 힌두교)와 이후의 시대(후기 힌두교)로 크게 양분하고 전기 힌두교는 아리안족이 인도를 정복하기 이전인 베다 이전시대와 베다 시대로 구분할 수 있으나 베다 이전시대는 힌두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므로 베다 시대부터를 실제 힌두교의 역사로 보는 것이 좋다. 베다 시대는 다시 4 베다 시대와 브라마나 시대, 우파니샤드 시대로 구분되나 이들의 순서는 사실상 중복되어서 시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후기 힌두교는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BC 6세기경) 이후부터 AD 4세기 초까지를 바가바드 기타 시대로, 4세기 초부터는 중세 힌두교, 19세기 이후를 현대 힌두교로 크게 구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본고에서는 이런 기준에 따라 논리를 전개할 것이다.
2. 시대 구분에 따른 힌두 사상의 발전과 경전들
존 노스는 전기 힌두교의 특징을 “낙관적 다원신론으로부터 현 세계 부정으로의 이동(the Passage from Optimistic Polytheism to World Denial)"이라고 하였고, 후기 힌두교의 특징은 “사회적 구조의 기초로서의 종교(Religion As the Basis of the Social Structure)”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후기 힌두교의 특징을 단정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으로 시대에 따라 힌두교 사상이 변천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힌두교의 특징은 사상이 끊임없이 변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상 변천을 크게 나누어 보면 아리안족의 종교 사상과 인도 토착민들의 종교 사상의 혼합, 자이나교와 불교의 태동에 따른 힌두교 사상의 변화, 15세기 무굴 통치하의 변화, 그리고 기독교와 접한 현대 힌두교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먼저 아리안족의 인도 정벌(BC 2000년) 이전의 시대에는 인도 대륙에 여러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다. 인도 북부에는 프로토 아우스트랄로이드 인종이, 북동부에는 몽고(Mongoloid) 인종이 살았으며 인도대륙 중반부부터 남부에는 드라비드족(Dravidians) 또는 다사족이 살고 있었다. 특히 몽고 인종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으며 나름대로의 자체 청동문명을 이루었고, 자연물과 자연현상을 숭배하는 애니미즘의 신앙은 물론 힌두교의 핵심사상이라 할 수 있는 카르마 법의 교리와 영혼의 윤회사상이 그들의 종교에 구체화되었던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것에 대한 구체적인 문헌은 없고 번잡(Punjab)과 신드(Sind)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서만 추측해 볼 뿐이다.
아리안족이 인도를 점령한 후에는 아리안족이 비아리안족의 융합내지 정복을 통해 오늘날 힌두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베다 시대를 열었다. 아리안족들은 그들의 사제나 예언자를 가지고 있었고, 여러 의식이나 신학적 전승을 갖고 있었으나 원주민들의 토착종교를 받아들여 나름대로의 힌두교 종교사상체계를 형성하였다. 이런 사상이 집대성된 것이 베다 경전이다. 베다에는 예언자를 의미하는 리쉬스(Rishis)들이 보거나 들은 종교적인 진리를 부른 찬가, 기도, 제사 의식, 마법적 문구들이 모아져 있다.
그런데 4 베다 시대에 나오는 신들은 오늘날 힌두교에서 볼 수 있는 신들(3장에서 살펴볼 것임)의 이름보다는 댜우스(Dyaus, 우주의 대주재신), 바루나(Varuna, 창공을 인격화한신), 미스라(Mithra, 태양신), 인드라(Indra, 공계의 신), 아그니(Agni, 지계의 신), 소마(Soma, 주신) 등다. 이 신들은 오히려 그리스의 신들과 더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단일신보다는 자연신교적 다신적 경향을 띠고 있다. 즉 베다 시대는 제사장을 중심으로 천계 지계의 다양한 신들에게 희생제를 지내며 찬양하며 기도하는 형태의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또한 이 시대에는 힌두교의 기본사상인 달마(Dharma, 영원한 법), 삼사라(Samsara, 윤회), 카르마(Karma, 업), 목샤(Moksha, 해탈) 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베다 시대만 하더라도 오늘날 힌두교와 같은 사상체계가 완전히 정립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힌두교가 후대로 가면 갈수록 보다 정교하며 고등종교적 성향을 보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힌두교는 “주술적, 미신적인 애니미즘에서부터 후대에 고상하고 추상적인 철학체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적 경향을 총칭해서 부르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키다가와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힌두교에는 다신론, 범신론, 무신론 등이 거의 다 포함하는 것이다.
브라마나 시대는 베다 경 보다는 브라마나가 신앙생활의 주요한 지침서가 된 시대다. 브라마나는 각 베다마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해석서 또는 제의의 송가내지 기도의 사용법을 설명해 놓은 지침서다. 이 시대는 신들보다는 제의 자체가 중시되었고 따라서 사제(Brahmin)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들의 계급과 성격을 명시하고 사회에는 엄격한 카스트 제도가 형성되었다. 즉 사제가 종교와 사회에 큰 영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때 사제들은 대중적인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신과 같이 숭상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엄격한 제의에 식상한 일부 계층에서 제의보다는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문헌이 나왔는데 아란야키(Aranyaka)가 대표적이다. 이는 제의 중심에서 철학적 사색의 사고와 명상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천되었다. 따라서 아란야키는 우파니샤드의 시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때에는 명상과 사색을 통한 삼사라(Samsara, 윤회), 카르마(Karma, 업), 목샤(Moksha, 해탈)의 경지로 향하는 범아일치를 추구하였던 점으로 보아 이때에는 이미 달마(Dharma, 영원한 법)는 물론 삼사라, 카르마, 목샤의 개념이 힌두교에 받아들여져서 보편적으로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파니샤드 시대는 제의보다는 명상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파니샤드(Upanishad)라는 말이 의미하듯 “신성하고 은밀한 가르침을 스승 곁에 앉아서 배우고 깨우치는 것”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이때에는 명상과 사색이 중시되었고 철학적으로 사상체계가 분명히 세워졌으며 다양한 문헌들이 탄생하였다. 이때 브라만(Brahman, 궁극적 실재), 아트만(Atman, 자아의 본질), 달마, 삼사라, 카르마, 목샤 등의 제 개념이 분명하게 정립되었다. 특히 자연계의 모든 것들이 궁극적 실재(Ultimate Being)로부터 유출되었다고 보는데 따라서 자연계의 모든 것들은 이 궁극자와 본질적으로 동질성을 갖는다. 힌두교에서는 이 궁극자를 브라만(Brahman, 대아 또는 범아)이라 하고 자연계의 모든 것들이 갖는 이 동질성을 아트만(Atman, 소아 또는 개아)이라 한다. 개인은 명상과 사색을 통하여 전생에 쌓은 모든 삼사라(윤회)와 카르마(업)로부터 목샤(해탈)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힌두교에서 해탈은 브라만과 아트만, 즉 범아가 일체가 되는 것이다.
자이나교(Jainism)와 불교(Buddism)의 탄생은 베다, 브라마나, 우파니샤드를 통한 자연의 신격화나 엄격한 브라마나 제의, 그리고 명상과 사색의 우파니샤드는 물론 이들을 고리로 연결시켜준 카스트제도가 일반 대중에게 매력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반동으로 탄생하였다. 힌두교의 이러한 점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불만을 느꼈기 때문이다. 즉 사제인 브라민을 중심으로 한 희생제의는 사제 계급에만 많은 기득권을 부여하여 브라만 계급이 아닌 다른 계급, 특히 크샤트리아 계급에서 크게 반발하였는데 이 반동으로 자이나교와 불교가 탄생하였다. 자이나교는 크샤트리아 계급의 마하비라(Mahavira)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는 고행을 통한 해탈과 아힘사(Ahimsa, 살생금지)를 강조하였다. 불교는 역시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인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에 의해 창시되었다. 붓다는 자연의 현상을 연기에 의해 설명하고 존재 자체의 소멸(空)에 의한 니르바나(Nirvana, 열반)을 주장하였다. 이 니르바나는 힌두교의 목샤와는 다른 개념으로 무욕, 즉 욕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은 힌두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자이나교로부터 힌두교는 아힘사, 즉 살생금지를 받아들여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을 하게 되었고, 불교로부터 힌두교는 무욕을 통한 니르바나, 즉 열반을 받아들여 나름대로의 사상체계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힌두사상의 변화를 반영한 문서들이 이때 탄생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 BC 2-3세기경), 라마야나(Ramayana, BC 2-3세기경)이다. 특히 마하바타라에 담겨 있는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가 유명하여 이 시대를 일명 바가바드 기타 시대라고 부른다.
바가바드 기타는“ ‘지존의 노래’ 또는 ‘거룩한 자, 승리자의 칭송하는 노래’를 의미하는 시가로서 갠지스강 서부지역에 살던 바가바타파가 만든 독립된 시가였으나 힌두교에서 이를 수용하여 마하바라타에 수록된 것이다.” 여기에는 “우파니샤드에서 대우주이며 절대자인 비인격적인 브라만(궁극적인 실재)과 그의 현현인 인격적인 숭배대상인 비쉬누(Vishinu), 그의 화신인 크리쉬나(Krishina)를 동일시한 점”으로 보아 이때부터 오늘날 힌두교에서 숭배하는 인격신이 구체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으로 본다.
황보갑은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은 우파니샤드의 일원론(Monism, 브라만)을 근본으로 하면서 동시에 인격신의 형태인 바가바타파의 유신론이 결합하는 이른바 포용과 화해의 정신이 깔려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힌두교가 자이나교와 불교의 영향으로 대중적 종교(로 변모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이때 이반 대중들을 중심으로 박티(Bhakti)사상이 크게 유행하였다. 반면에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더욱 철학적 신앙이 발전하였는데 이때 탄생된 것이 정통 육파철학(상키아, 요가, 바이세시카, 나야, 미맘사, 베단타)이다. 이때에는 구원에 이르는 세 가지 길(행위, 명상, 헌신<박티, Bhakti>)이 유행하였다(육파철학과 구원의 세 가지 길은 3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임).
AD 318년부터 시작된 중세 시대는 찬드라굽타 1세(Chandragupta I)의 굽타제국 때에 힌두교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이때에 교리에 관한 체계적인 글(Sutras)과 신이나 영웅들에 관한 신성한 전설들(Puranas), 영적 훈련서(Tantras)등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대중들은 여러 인격적인 신들을 섬기는 밀의적인 신앙에 심취한 반면 지식인들은 철학적 신앙에 더욱 심취하여 일반대중과 더욱 괴리된 모습을 보였다.
8세기 경에는 유명한 주석가인 샹카라(Sankara)에 의해 브라만교가 재부흥기를 맞이하였다. 샹카라는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베단타를 주석하였다. 가우다파타는 불교적 일원론을 받아들여 브라만을 초자연적 실체인 높은 브라만과 현상 세계를 창조하는 낮은 브라만을 구별하였고 인격적인 신은 하나의 제한적인 존재로서 이 현상 세계에 머무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1세기경 라마누자(Ramanusa)는 샹카라를 공격하며 양자룰 분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였다.
15세기에는 이슬람의 무굴 제국이 탄생하여 힌두교가 회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때 힌두교의 개혁파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시크교(Sikhism)다. 시크교의 교조 나나크(Nanak)는 이슬람과 힌두교는 근본적으로 하나라고 하면서 양자를 통합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힌두교 내에서는 신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박티(Bhakti, 헌신) 운동이 다시 전개되었다. 박티 운동은 힌두교를 크게 부흥시켜 사실상 불교를 인도에서 몰아내게 되었다. 그러나 회교는 인도 내에서 꾸준히 성장하여 인도 대륙 내에서 한 세력을 이루었고 2차대전 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다.
Ⅲ. 힌두교의 경전들과 신들
1. 힌두교의 경전들
힌두교의 경전은 크게 스루티(Sruti)와 슴리티(Smriti)로 구분된다. 스루티는 절대적인 정경적 권위를 갖는 문헌들이다. 여기에는 힌두교의 경전 가운데 최고의 경전인 베다, 브라마나, 우파니샤드가 포함된다. 베다에는 신들의 찬가인 리그(Rig) 베다, 제의와 주문이 있는 야주르(Yajur) 베다, 멜로디가 있는 사마(Sama) 베다, 그리고 주문과 미신적 요소가 들어 있는 아타르바(Atharva) 베다가 있는데 이들을 일컬어 4 베다라고 한다. 또 각 베다마다 4개 부분의 주석서내지 보충서 또는 명상적 사색서가 있다. 즉 신들에 대한 찬가와 기도 주문의 본집인 삼히타(Samhita, 또는 Manthra), 신들에게 바치는 희생제의 방식과 그 의미를 설명해 놓은 브라마나(Bramana), 희생제의에 대한 해석서인 아란야카(Aranyaka),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인 희구를 나타낸 일종의 명상적 사색서인 우파니샤드(Upanishad)등이 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맨 끝에 부록같이 위치 위치해 있기 때문에 베단타(Vedanta, 베다의 마침)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베다는 4 베다의 각 삼히타(만트라)가 순차적으로 제일 먼저 형성되었고, 또한 4 베다의 각각에 브라마나, 아란야카(브라마나의 해석서이므로 브라마나에 포함시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우파니샤드가 점차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이 힌두교의 경전은 시대에 따라 점차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같이 계시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제의와 주문, 찬양, 기도, 그리고 이들에 대한 주석내지 해석, 및 보충내용들이 편입된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힌두교가 지니는 특징으로 평가된다. 이와 같은 경전의 발전에 따라 베다가 중시된 시대를 베다 시대, 브라마나가 중시되어 발전한 시대를 브라마나 시대, 우파니샤드가 중시되어 발전한 시대를 우파니샤드 시대로 편의상 시대 구분을 한 것이다.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명상 사색서가 많이 출현되었고, 특히 이들은 후에 자이나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슴리티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슴리티(베다 이후에 형성된 문헌의 총칭)는 거룩한 문헌들로 분류되지만 이들이 스루티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한에서 정경적 권위를 갖는다. 여기에 대표적인 것이 푸라나(Puranas), 탄트라(Tantras), 다르샤나(Darshanas), 수트라(Sutras), 그리고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등이다. 이들 슴리티는 힌두교가 자이나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후기 힌두교 시대의 문헌들이다. 즉 슴리티는 힌두교가 이들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하여 일종의 자기 혁신내지 갱신을 도모하고, 도전받고 있는 베다의 권위와 브라만교의 사회윤리체제를 세우기 위해 집필된 것이다.
푸라나는 창조와 파괴, 그리고 새 창조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이것은 신들, 영웅들, 그리고 인간의 조상인 마누(Manus)의 탄생에 관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때에 브라만의 현현인 인격신들과 박티(Bhakti) 사상이 대중화되었다. 따라서 푸라나는 신의 사랑을 최우선에 두어 비쉬누의 주창자들에게 특히 중요했다. 탄트라에는 삭티(Shakti) 사상이 나타나 있다. 또한 세계 최고 법전인 마누 법전이 이때에 탄생하였다. 다르샤나는 체계(System)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인데 여기서 근본적으로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육파철학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위의 시대 구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시대 구분에서는 푸라나, 탄트라, 다르샤나, 바가바드 기타를 통칭하여 바가바드 기타 시대라고 하였는데 슴리티에서는 바가바드 기타가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2. 힌두교의 신들
힌두교의 신은 힌두교의 경전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변천된 것이 특색이다. 베다 시대에는 비인격적 신인 브라만을 최고의 신으로 보면서도 인도 토착민들의 다양한 애니미즘과 아리안족들의 유럽 신론에 따라 브라만의 현현으로 보는 다양한 다신론적 신들이 대두하였다. 그러다가 사제인 브라민들의 역할이 중시된 브라마나 시대에는 오늘날 힌두교에서 최고의 신으로 추앙받는 비인격적인 신인 브라만 사상이 특히 강조되었다. 사제인 브라민은 통치의 수단으로 브라만 사상을 강화한 것이다. 이 시대의 브라만 사상은 단일신론처럼 보이나 우주의 신인 브라만이 피조물에 아트만 형태로 내재되어 브라만과 아트만의 일치, 즉 범아일치의 범신론적 특성을 띠며 동시에 무신론적 특성을 띤다.
힌두교에서 특히 존경받는 인격적인 신들이 등장한 것은 비인격적인 최고의 신의 현현으로 삼신사상(Trimuti)이 대두되면서부터다. 이 삼신사상은 우파니샤드 시대에 등장하여 바가바드 기타 시대에 구체화되었다. 삼신은 브라마(Brahma), 비쉬누(Vishnu), 쉬바(Shiva)을 말한다. 이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와는 다른 것으로 힌두교의 다신교 사상을 범신론 사상으로 통일하는 개념이다.
브라마는 창조의 신으로 최고의 신이다. 브라마는 보통 4개의 얼굴과 팔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4 베다와 관련되었다. 이것은 4 베다를 창조의 원칙에서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비쉬누는 유지의 신으로 인도에서 가장 애호되는 신이다. 비쉬누는 태양신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달마, 즉 영원한 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이해된다. 그는 이 법이 인간에 의해 상실될 위험에 처할 때 세상에 나타난다. 비쉬누는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는 것이 특징이다. 비쉬누는 보통 10가지 형상으로 변화되는데 마츠야(Matsya, 물고기), 쿠르마(Kurma, 거북), 바라하(Varaha, 뱀), 나라시마(Narasimha, 사자인간), 바마나(Vamana, 소인), 라마(Rama), 크리쉬나(Krishna)등 다양한 모습을 띤다. 이들 중에서 특히 존경을 받는 것은 크리쉬나다.
크리쉬나는 변신하여 지상에 하강한 비쉬누의 최고 화신이며 바가바드 기타에 그려진 바와 같이 검푸른 색을 지닌 용사이고 라마는 그의 형제다. 크리쉬나는 힌두교에서 특히 존경받는 비쉬누의 변신이다. 그는 바가바드 기타의 영웅으로 힌두 문헌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뿐만아니라 수만 가지 우주적 모습으로 나타나(범신론적임) 인도인에게 가장 친숙하다. 뿐만아니라 부처는 물론 예수도 크리쉬나의 변신으로 보기 때문에 힌두교에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선교에서 크리쉬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쉬바는 보통 파괴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모호한 존재다. 그는 때로 복을 가져오는 자로 이해된다. 힌두교에서 모든 것은 윤회의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쉬바는 건설, 즉 오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 존재의 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해 파괴한다. 그는 최고 신의 현현으로 절대적 존재(브라만)을 인식하는 데, 즉 목샤를 달성하는데 방해하는 가상적이며 거짓되고 기만적인 의식 세계에서 인간적인 뿌리를 파괴한다. 따라서 인간이 해탈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힌두교는 이상의 삼신사상 이외에 삭티(Shakti)사상이 있다. 삭티는 신들의 기 또는 여신(배우자 신)이라고도 하는 특이한 존재다. 위의 삼신은 각각 여신을 갖고 있는데 브라마에게는 사라스바티(Sarasvati, 예술과 문화의 신), 비쉬누에게는 랔스미(Laksmi, 번영과 미의 여신), 쉬바에게는 파르바티(Parvati, 산의 처녀, Durga라고도 함)가 있다. 특히 비쉬누의 변신인 크리쉬나는 여신이 16000명이나 된다. 비쉬누계는 우주의 진리에 이르는 길을 육체의 인식을 통해서라고 하여 남성신 크리쉬나와 여신 라다(Rada)를 신봉하는데 이것이 성적 문란 행위로 이어져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동주 교수는 문선명의 통일교 피가름 사상이 힌두교의 이 삭티사상을 원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쉬바파 또한 쉬바와 쉬바의 삭티 Durga를 숭배하는데 신과의 동화내지 우주와의 동화는 오직 성적 결합을 통해서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종교적으로 성적 결합을 정당화하는 퇴폐적인 모습을 종교라는 미명하에 공공연하게 자행한다. 이런 것을 진작시키고 또한 정당화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창부를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힌두교는 성경에 나오는 바알숭배자들의 성적 타락된 모습과 유사함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힌두교의 신들은 비인격적인 절대적 존재를 최고의 신으로 보고 이에서 인격적인 신들이 탄생하였다고 하는 점에서는 중국의 태극-상제 사상과 유사하다. 힌두교는 이에서 머무르지 않고 고대 유럽의 다양한 신개념과 인도 토착 신개념을 혼합하여 인간의 편의로 신들을 양산해 내었다. 즉 인간의 필요로 갖다 붙이면 신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이 탄생하였다. 이것은 그만큼 힌두교가 계시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불교등 다른 자연종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중심으로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된 종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Ⅳ. 힌두 사회와 힌두교 신앙
1. 힌두교의 기본 사상
힌두교는 달마(Dharma, 영원한 법), 삼사라(Samsara, 윤회), 카르마(Karma, 업), 목샤(Moksha, 해탈)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사상을 알지 못하고는 힌두교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먼저 달마(영원한 법)는 힌두교의 우주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주에는 인간 개인의 삶을 포함하여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절대적 우주적 법칙”이 있는 데 이 법칙이 달마다. 따라서 달마는 “진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상징하는 복잡한 용어”다. 달마는 인간 도덕과 윤리의 기초이며 자연과 우주의 모든 과정의 규칙이다. 그러므로 달마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렇다고 달마가 신인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를 염두에 둔 “신적 법칙”도 아니다.
삼사라(윤회)는 전술한 바와 같이 우파니샤드 문헌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개념으로 원주민인 드라비디안 신앙에서 도입되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죽은 인간의 영혼은 죽을 당시에 영원히 소진되지 않는 목샤의 상태를 얻지 못하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원한 상태로 들어 가지 못하고 다른 존재의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환생은 환생을 따라 끝없이 계속되는데 사람이 사람으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식물, 동물 등 다양한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 그것은 현재나 과거의 상태보다 더 나을 수도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럼 다음 환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아닌 카르마다.
카르마(업)는 무자비한 인과법칙(inexorable law of causality)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부정적인 의미로 모든 행위는 원인과 결과의 거미줄로 짜여져 있다. 이 인과법칙은 개인적이다. 이 거미줄이 모든 결과의 원인이 되어 삶과 죽음, 그리고 환생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품이 운명을 결정하거나 인생이 끝날 때 좋은 성품의 인간이 다음에 좋게 태어나고 반대로 악한 자가 죽을 때 악하게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하는 모든 것, 즉 인생의 각 행위는 다른 모든 행위와 함께하여 운명을 결정함을 의미한다. 하나의 행위는 좋든 나쁘든 궁극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각각의 불가피한 결과를 갖고 있다. 다음 환생에서 영은 현재의 형태가 생성할 수 있는 단지 하나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목샤(해탈)는 윤회와 카르마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니르바나(Nirvana, 열반)이라고 하나 2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자는 다소 다르다. 목샤는 영적인 해탈 상태다. 정통 힌두교의 일원론적 사고에서는 “아트만의 근원론적 존재인 브라만과 합일한다면 윤회로부터 탈피한다”고 하는 범아일여 사상을 견지한다.
2. 힌두 사회와 카스트 제도
힌두 사회에서 카스트제도는 일종의 종교적 도그마(Dogma)다. 카스트제도는 브라마나 이후 아란야카 때에 카스트 제도에 관한 문헌에 언급되어 있는데 브라마나 시대에 제의 중심의 종교 생활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사제인 브라민 계층이 자신들의 위치를 견고히 하려는 과정에서 태어난 거대한 종교, 정치, 사회 구조의 연결고리다. 이에 따르면 사회 계층은 브라민(Brahmins), 크샤트리아(Kshatriyas), 바이샤(Vaisyas), 수드라(Shudras) 등 4 계층으로 나뉜다. 그들의 창조신화에 따르면 창조의 신인 브라마는 인간의 조상 마누(Manu)를 창조한 후에 그에게서 네 종류의 사람들이 탄생하였는데 이 네 종류의 사람들에 의해 그 후손들이 위와 같이 네 계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가 브리민 계층인데 이 계층에는 인간의 머리에 해당하는 브라만 사제들이 있다. 그 아래 인간의 양손에 해당하는 크샤트리아 계층에는 지배자들과 무사들이 있다. 또 인간의 넓적 다리에 해당하는 바이샤 계층에는 장인들과 기술자들, 농부들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발에 해당하는 수드라 계층에는 원주민 노예들이 있다.
이들 상위 3 계층에는 각각의 계층 수호신이 있는데 수드라에만 수호신이 없다. 불가촉천민은 신을 믿을 자격도 없다. 상위 3 계층은 베다의 입문식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재생 계급, 즉 드비자(Dvija)라고 부른다. 최상층 브라민은 신성한 자들로 왕들도 고개를 숙일 정도로 대접을 받았다. 이것은 카스트제도가 사제들이 크게 활약하던 브라마나 시대에 제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권은 다음인 크샤트리아 계층에서 쥐고 있었다.
카스트 제도는 긍정적인 면에서 인도의 사회의 통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구성원들의 자격을 정해주고 기술과 지식 그리고 문화가 보존 전승될 수 있도록 했다. 인도 안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수많은 집단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엇다. 그러므로 카스트는 개인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모든 행위를 규제하는 영속적인 연합체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카스트 제도가 카르마 법과 연결될 때 삶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드라로 태어나면 그것은 그가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현재 더 나은 선한 행위를 보임으로써 현재보다 더 나은 생을 기대해야 했다. 이것에 대하여는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거나 사회적 정의를 구하면 그것은 카르마 법을 의심하는 것으로 곧 불경스런 행위가 되었다. 지배계층은 이런 방법으로 피지배 원주민을 착취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엄격한 카스트 제도는 근대화의 영향 속에서 부와 전문직, 교육 및 사회적 지위에 따라 유동적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계급관계가 생기게 됨으로써 많이 상쇄되었지만 아직도 인도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인도의 사회발전에 많은 장애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 사회에 세계 부정적 비관주의가 싹트게 하였다. 자신의 현재의 삶과 환생에 대한 짓눌림은 삶을 더욱 무겁게 하였고 따라서 환생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만을 찾게 하였다.
3. 육파철학
상키아는 육파철학 중 가장먼저 발생했는데 창시자는 Kapila다. 이것은 우파니샤드의 일원론과는 달리 이원론적이며 무신론적이다. 이에 따르면 자연은 물질(현상적 세계, Prakriti)과 정신(Purusha)로 되어있는데 정신은 전적 정신(All-Soul)이 아니라 수많은 정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정신들은 각각 독립적이며 영원하다. 자연에 얽혀있는 정신들은 정신과 물질 간의 존재적 차이에 대한 무지(이 무지는 정신을 물질과 자연에 속박시키는 원인이 된다)로 고(Suffering)에 떨어진다. 이렇게 해서 정신은 윤회하게 된다. 이 윤회로부터의 구원(목샤)은 전적 정신(All-Soul)의 정체를 인식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신이 물질과는 존재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앎(the knowledge of the soul' existential diversity from matter)"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개별 정신은 영원한 무의식적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요가는 상키아와는 달리 실천적 수행 방법을 통한 목샤를 추구한다. 우파니샤드에 처음 언급되었지만 Patanjali에 의해 체계화(요가경)되었다. 요가의 철학적 기초는 대부분 상키아로부터 왔지만 상키아와는 달리 유신론적 입장을 취한다. 요가는 주로 명상과 사색을 통한 자기단련을 중시한다. 상키아처럼 정신을 물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통일하여 모든 욕망과 집착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가경은 이와 같이 정신을 통일하여 해탈에 이르는 기술을 8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바이세시카는 Kanada에 의해 창시되었는데 이것은 자연과학적이며 실재론적이다. 이것은 원소이론(Atomic theory)을 주장한다. 즉 우주는 땅, 물, 불, 바람등 4원소로 서로 결합과 재결합을 통해 구성된다고 본다. 이 과정은 보이지 않는 신(Advishta, 영원한 정신)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이것은 서양 철학자 Democritus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야는 Gautama에 의해 창시되었다. 이 학파는 나야라는 말이 의미하듯 변론과 논리전개의 법칙과 규약을 연구하였다. 이 학파는 자아를 하나의 의식을 가진 실체로서 보고 인식과 행위의 주체이며 업보를 맡아 윤회하는 것으로 믿는다. 자아는 자아가 아닌 것들로부터 벗어나 해탈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미맘사는 가장 정통적인 학파로 제의를 중시한다. 창시자는 Jaimini다. 이학파는 베다를 게시로 인정하고 절대시 한다. 이 학파에 따르면 “베다는 영원하며 스루티 전통은 야즈나(희생제의) 행위를 준수하는 달마를 뜻하기 때문에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윤회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는 지식 뿐만 아니라 제의 행위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브라만을 최고신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우주와 세계질서를 지배하는 비인격적 원리인 Apurva를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후에 신적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적 성격으로 전환하였다.
베단타는 Badarayana에 의해 창시되었다. 이것은 우파니샤드의 연장 철학이며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철학이다. 이것은 일원론을 지향하며 브라만을 유일한 실재로 보았다. 윤회는 진정한 브라만을 깨닫지 못하고 나타난 현상으로 무지의 결과다. 해탈은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을 통해서 브라만의 본질을 깨달을 때 가능하다. 중세의 샹카라가 이 학파 출신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육파철학은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전통에서 탄생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각 파간에는 신론은 물론 세계관, 인생관, 구원관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정통 힌두교에서 벗어난 이단처럼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의 전통 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때 힌두교의 포용력이 어떠한 지를 짐작케 한다.
4. 힌두교 신앙의 유형
힌두교에는 힌두교를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하나의 정의가 없다. 사실 힌두교는 사상, 믿음, 확신, 행위의 집합체다. 따라서 힌두교는 사람마다, 지역마다 그 성향을 달리한다. 그러므로 힌두교는 이해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힌두교 신앙에는 다음과 같은 6 가지 유형이 있다.
①철학적 힌두교(Philosophic Hinduism)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권위가 지배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힌두교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철학으로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그들은 “인간 안에 신성(아트만)이 있으며,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경스럽고, 구세주의 필요도 없다”는 고대 베다로부터 가르친다.
②종교적 힌두교(Religious Hinduism)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푸라나,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바가바드 기타등 주로 슴리티를 믿는다. 그러므로 종교적 힌두교는 자이나교와 불교에 영향을 받은 후기힌두교의 지류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서사시인 푸라나를 신의 계시로 믿는다. 여기에 나타난 수많은 신의 현현들을 숭배한다. 이들의 신앙은 매우 혼합주의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다음에 설명하는 3 가지 구원의 길을 추구한다.
③신비적 힌두교(Mystic Hinduism)는 요가, 초월명상등을 통한 신비적 체험을 한 교사(Gurus)는 그들이 신의 현현이며 따라서 초자연적인 치료은사, 기적을 행하는 능력, 독심력, 예언력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④대중적 힌두교(Popular Hinduism)는 철학과 브라미니즘을 관심없고 전통적인 샤마니즘이나 애니미즘 형태를 띤다. 즉 동물숭배, 마술, 축사, 전통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이것의 주창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고 복을 내려주고 번성케하는 신에 더 관심이 있다. 따라서 이것은 힌두교의 한 분파라고 보기가 어렵다.
⑤부족적 힌두교(Tribal Hinduism)대중적 힌두교와 비슷한 것으로 부족 이외의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서 애니미즘이나 밀의종교, 동물숭배, 영혼숭배등에 빠져있다.
⑥세속적 힌두교(Secular Hinduism)는 명목적으로는 힌두교 신봉자이지만 종교적 행위에는 관심없고 물질적이며 세속적인 일에만 관심을 둔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힌두권에는 샤마니즘이나 애니미즘적 신앙생활을하는 부류, 명목적인 힌두인, 신비적 힌두인, 철학적 힌두인, 그리고 대중적 힌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힌두권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상 서로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힌두교를 믿으면서도 믿음의 대상이나 추구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5. 구원의 길
종교적 힌두교에서 구원을 위해 주로 행하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3 가지가 있다.
행위(의무)의 길(The Way of Works)은 행위를 통해 내세의 업보를 유리하게 하려는 방법으로 그 원리는 베다 경전에서 찾고 있다. 이것은 특히 브라마나 시대에 발전하였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전통적 힌두교 방법으로서 희생제사, 정화의식, 베다낭송등을 수행한다.
후대에 내려와서는 고행을 통한 해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여져 마음을 다스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즉 욕망(탐심)을 버리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행위를 통하여 해탈에 이르려 했다. 따라서 고행은 이들의 중요한 수행방법이 되었다. 음식을 제한하는 수행하거나 설탕이나 꿀을 먹지 않는 등 음식물을 조절함으로써 고행하는 방법, 소나 양가죽 또는 나무껍질만 걸치거나 아예 벌거벗는 등 의류를 조절함으로써 고행하는 방법, 강물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거나 아예 목욕을 하지 않는 고행방법, 또는 몸을 자해함으로써 고행하는 방법등 고행방법은 다양하다.
명상(지혜)의 길(The Way of Knowledge)은 우파니샤드에서 그 원리를 찾고 있다. 이것은 우주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초월적인 신비의 지식을 깨달음으로써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이 추구하는 지혜란 "만물의 근원인 신(브라만)과 인간(아트만)에 대한 올바른 통찰"로서 바가바드 기타에 의하면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영원 불멸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육신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주인데 이 소유주는 다름아닌 참자아(아트만)이다. 여기서 해탈이란 자아(아트만)가 고(Suffering)와 인격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를 말한다. 이동주 교수는 해탈되기 전의 자아는 비본질적인 자아(self)이며 이것은 이기적인(Selfish) 존재로 해탈을 통해 참자아(Self)가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Self만이 아트만이며 이 아트만은 우주의 정신인 브라만과 일치하므로 참자아는 곧 해탈의 경지에 이른 상태다. 이것은 명상을 통해서 깨다을 때 가능하게 된다.
헌신의 길(The Way of Devotion)은 고행이나 명상을 통한 자력구원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인격적인 신을 열렬히 따르고 숭배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박티(Bhakti)사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고행이나 명상을 통한 방법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외면되고 따라서 자이나교나 불교등이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자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창안한 방법인 것으로 생각된다. 박티 신봉자들은 자신이 헌신하기 원하는 신을 따르기 위해 모든 욕망을 버리고 자아를 비우며 신과 순간적으로 하나됨을 느끼고 자기 안에서 신을 믿고 신 속에서 자신을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의 도움으로 신과 일체감내지 행복감을 맏보게 된다. 이것이 소위 해탈의 경지다. 박티는 비쉬누와 그의 변신인 크리쉬나에게도 신봉되었으나 특히 쉬바와 그의 삭티인 칼리(두르가)에게 신봉되었다.
이상과 같이 힌두교에서 구원 곧 해탈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해탈이 자신의 노력에 의하든 자신이 헌신하는 신의 도움에 의하든 여기서 구원을 갈급하는 힌두인들의 목마름을 찾아볼 수 있다.
Ⅴ. 현대 힌두교와 기독교 선교
본장에서는 지금까지 이해한 힌두교를 기본으로 현대 종교다원주의에 힌두교가 미친 영향을 먼저 살펴보고, 기독교 관점에서 힌두교를 평가한 후 힌두권에 대한 기독교 선교전략을 간략하게 제시할 것이다.
1. 현대 종교다원주의와 힌두교
서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대 종교다원주의에서는 힌두교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힌두교가 현대 기독교 혼합주의 및 다원주의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이동주 교수는 힌두교가 기독교와의 관계 속에서 혼합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고 힌두교의 기독교와의 혼합주의는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던 18 세기경인 것으로 보았다. 특히 이슬람 통치시대인 무굴시대에 힌두교와 이슬람교와의 혼합주의 경향은 이슬람교와 비슷한 기독교와 힌두교의 혼합주의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20세기에는 힌두권 출신인 M.M. Thomas와 Samartha가 WCC에서 활약하면서 기독교와의 혼합주의내지 다원주의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Parnikkar같은 유명한 다원주의 신학자가 탄생된 것으로 본다.
M.M. Thomas는 신학자가 아닌 평신도로서 WCC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 혼합주의적 사상을 갖고 인간의 영혼구원보다는 현세에서의 인간의 행복(정의, 평화, 부 등)을 더 추구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영성은 “인류 연합을 위한 투쟁의 영성”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사회적이건 도덕적이건 문화적이건 간에 사람을 종속시키는 모든 연합을 파괴하고 더 성숙한 연합을 위하여 남녀를 해방하며 이 연합이 다시금 종속적으로 되어지면 또 다시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에수 그리스도를 해방자로 보는 것이다. 그는 1973년 방콕대회에서 “힌두교와의 대화”를 설명하는 가운데 “대화는 종교를 바꾸거나 새로운 공동체로 이동해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문화 속에 그대로 있으며 기독교적 힌두가 되게 하는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 같으면서 실상은 타종교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종교 안에서 구원을 이루도록 하는 종교 다원주의 성격을 띤다.
Samartha.는 기독교 신학자로서 창조의 실재성과 에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만인구원”을 주장하였다.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그는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대화의 문제는 그리스도 일원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독론을 확장시킴으로써, 그리고 이 세상 종교들과 세속적 이념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민감함으로써 포괄적 성령론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또한 그는 “타종교가 기독교보다 열등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가 타종교 내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한 세속 이념들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성령이 타종교 내에서도 역사하신다는 혼합주의내지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하여 예수에게처럼 그리스도가 타종교에도 오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본다.
Parnikkar는 인도의 카톨릭 신부로서 전형적인 다원주의자다. 그는 “힌두교 속에 있는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라는 책을 쓸 정도로 타 종교를 인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방 종교에도 역사하시며 이것은 사람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관계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이며 그리스도와 피조물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며 심지어는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이런 그의 사상은 철저히 힌두교에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과 브라만을 동일시하였고 브라만으로부터 유출된 피조물이 브라만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듯이 하나님과 피조물 간에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따르면 힌두교와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에 힌두교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힌두권 기독교인들은 자칫 혼합주의내지 종교다원주의에 빠지기 쉽다. 어떻게 보면 힌두교 자체가 거대한 혼합주의요 다원주의다. 그들은 불교나 기독교를 그들이 추구하는 신의 다른 현현일 뿐인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힌두인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온전한 기독교인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해탈을 추구하는 방법을 달리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2. 기독교 관점에서 본 힌두교
①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한 종교: 힌두교는 인도 자체 내에서 탄생하였다기 보다는 인도를 점령한 유럽계통의 아리안족에 의해서 탄생하였다. 이들은 인도를 점령하면서 인도를 통치할 정치이데올로기를 종교화하였는데 이것이 힌두교의 효시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카스트제도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카스트 제도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였을 때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정치이데올로기를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일본은 우리나라를 영원히 통치하기 위해서 우리 민족에게 교육을 금지하고 우리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았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지정학적 인종적 특징 등을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민족은 지배받기를 좋아하는 민족, 지배되어져야만 하는 민족이라는 주장은 힌두교에서 인도 본토인들이 운명적으로 하류계층일 수밖에 없다는 사상과 유사하다. 아리안족은 브라만교를 정치사회와 연결시켜 카스트라는 숙명적 제도를 만들어 인도 본토인들을 지배하였다. 기독교가 만민 평등을 주장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② 끊임없이 변하는 종교: 힌두교는 유구한 역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하였다. 아리안족이 인도를 점령할 때 그들의 신관은 유럽의 신론과 별반 차이가 없는 다신론적이었다. 이런 신관은 인도 본토인들의 영향을 받아 범신론적내지 무신론적 특성을 띠게 되었다. 힌두교가 주장하는 경전들도 역사과정에서 끊임없이 형성되어졌다. 이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지만 기독교와 다른 점은 경전의 형성과 더불어 종교사상 자체가 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으로 힌두교가 인도에서 위협을 받았을 때 두드러졌다. 전통적인 힌두 사상만으로 이 위협을 감내할 수 없게 되자 대중의 관심을 끄는 유신론 사상을 수용하였다. 그것은 브라만의 현현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신은 브라만의 현현이다. 뿐만 아니라 현현 자체도 변신을 한다. 그러므로 힌두교에는 비인격체인 브라만을 제외하고 다른 인격신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것은 앞으로도 신이 끝없이 탄생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로부터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며 그 분의 변하지 않는 말씀에 입각한 기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③ 거대한 종교집합군: 힌두교는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종교집합군이 되었다. 힌두교는 일신론적이며 다신론적이고, 유일신론적이며 범신론적이고, 유신론적이며 무신론적인 특성을 한 종교 안에 갖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추구하는 신이 달라도, 신앙 방법이 달라도, 구원의 방법이 달라도 다 통한다. 그 어떤 방법을 취하더러도 그것은 한 방법일 뿐이다. 이러한 거대한 종교집합군은 오늘날 불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샤마니즘과 혼합된 종교의 두드러진 특성이다. 기독교는 오로지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다른 어떤 것도 인정치 않는다.
④ 인간중심의 종교: 힌두교의 인간중심성은 정치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하였다는 데서 찾아 볼 수도 있지만 구원이 길에서 두드러진다.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가 신의 계시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기독교처럼 신에게 직접 전수받은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제의 과정에서 형성되거나 인간의 편의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신과 새로운 구원의 방법이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는 기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힌두권에서의 기독교 선교전략
로잔세계복음화위원회는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힌두권 선교를 위해 특히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영성(Spirituality), 공동체(Community), 빈곤(Poverty)를 들고, 신학적 장애요인으로는 혼합주의(Syncretism), 죄의 개념(The concept of Sin), 카르마 교리, 구원교리를 들었다. 그리고 힌두권 선교의 장애 요인으로는 사회문화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를 들었다. 또 이상진 선교사는 인도에서 직접 선교를 통해 얻은 경험으로 볼 때 사회문화적 요소로서 카스트 제도와 1652개나 되는 방언으로 인한 의사소통 문제를 들고 정치적 요인으로 인도 정부의 반대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힌두교 선교는 필요하며 힌두권 선교를 위해서는 기도와 헌신된 선교사와 더불어 다양한 선교전략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가 든 선교전략으로는 신학교 설립 및 지원, 교회설립지원, 각양전도활동, 사회복지기관의 설립 및 지원, 해외거주 힌두교도 선교 등 다양하다. 전호진 교수는 힌두권의 선교 장애요소로 문화적인 요소로 관습, 사회적인 요소로 카스트제도, 종교적인 요소로 기독교가 외국종교라는 인식, 그리고 선교적인 요소로 기독교가 불가촉 천민들의 종교라는 인식등을 들었다. .
이상을 종합해 볼 때 힌두권 선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종교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정치적인 면에서 볼 때 인도 정부가 힌두교 정부이기 때문에 과거에 기독교를 앞세운 영국이 인도를 식민통치 하던 것이 부정적 작용을 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므로 백인보다는 동양인이 인도 선교에 유리하다고 본다. 또 기독교 선교가 인도 정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인도 정부가 과격한 힌두교도들의 영향으로 이슬람처럼 기독교도 탄압하지 않도록 기독교가 병원, 교육등 인도의 사회복지차원에서 유익함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또한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결코 위해한 것이 아님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의 국가들의 민주적 정치행태는 기독교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인도 인구의 상당수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감안할 때 기독교가 가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의 종교라는 인식을 고취시킴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 및 소득증대 사업과 같은 혁신적인 사업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인도인들의 친근감을 갖도록 선교 접촉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까지 교육이나 의료선교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농촌선교 및 산업선교는 이런 점에서 아직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사회적인 면에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영국의 식민통치 시대에 기독교가 주로 불가촉 천민들을 상대로 선교를 하여 기독교 하면 “불가촉 천민의 종교”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는데 이러한 것은 카스트제도라는 사회계급제도가 견고한 인도에서 어느 특정 하급계층만을 상대로 선교를 함에 의한 부작용이다. 로마에서처럼 기독교가 상류계층을 먼저 선교하면 다른 계층을 상대로 선교하기는 쉬워도 역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상류계층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인 면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인도가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개인을 상대로 한 선교보다는 가족 단위 또는 부족 단위의 집단선교전략이 중요하다. 특히 인도는 종족 간에 언어소통이 어려우므로 언어가 통하는 종족들을 상대로 통전적 선교가 필요하다.
문화종교적인 면에서는 기독교가 인도의 전통문화를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통 문화 속에서 미신적 종교행위를 기독교로 바꾼다는 상황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혼합주의적 경향이 심한 힌두권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시켜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윤회와 업의 고리를 끊고 해탈하려는 인도인들의 문화종교적 특성을 감안하여 기독교가 윤회와 업의 고리를 끊고 해탈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제시하는 것은 힌두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또 전통적 샤마니즘이 강한 사회에서는 능력대결(Power Encounter)를 위해 신유 축사등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도록 선교사들이 기도와 훈련을 통해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언어가 다양한 인도에서는 공용어인 영어는 물론 선교하려는 종족의 토착어를 충분히 익히고 그들의 문화 및 종교를 숙지하여 삶을 통해 선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Ⅵ. 결론
지금까지 힌두교의 역사적 발전 과정, 힌두교의 경전들과 신들, 힌두 사회와 힌두교 신앙, 현대 힌두교와 기독교 선교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힌두교는 한마디로 매우 복잡하고 혼합적임을 알 수 있다. 종교이면서도 정치적 색채가 강하고, 인도 전통종교이면서도 외래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강하며, 시대와 사회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시대와 사회에 적응하는 성격이 강한 종교다. 초대교회 때 사도 도마로부터 인도 선교가 이루어졌지만 기독교는 거대한 힌두교 앞에 힘을 못 썼다. 현대에도 윌리암 캐리를 필두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인도의 선교에 전력을 쏟았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힌두교가 갖고 있는 종교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도에 대한 선교는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와 언어, 다양한 종교적 특성, 그리고 다양한 사회 계층이 모든 것을 단일하게 전개하는 기독교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 전략도 인도의 다양성에 맞추어 다양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고는 그 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선교전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지는 않았고 방향만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힌두권 선교는 약 13억의 인도인(2020년 예상)들을 생각할 때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힌두권을 선교하려다가 힌두교에 혼합되어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기독교를 분명히 이해함과 동시에 힌두교를 분명히 이해하고 그 차이를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구체적인 다양한 선교전략은 실제로 선교를 하는 선교사의 몫이다.
주제어 : 힌두교, 기독교선교전략, 인도종교, 복음화, 하나님의 선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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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홍 교수 (백석대학교)
I. 서론
오늘날 종교다원주의로 기독교 선교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절대 진리를 부인하고 모든 종교를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기독교도 타종교와 같은 상황에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교로 인식되는 이상 기독교는 사람들의 선택의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포장되지 않으면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외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렇게 될 때 기독교는 그 본질을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어서 기독교는 언제나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포장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힌두교권과 연관되어 있거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1966년 세계교회협의회(WCC)내에 “교회와 사회국”의 설립자로서 초대 의장이며 WCC 중앙위원회 의장직을 맡은 바 있는 M.M. Thomas, 1971년 WCC내에 새롭게 창설된 “산 신앙인들과 대화” 프로그램의 초대 책임자였던 인도신학자 S.J. Samartha가 있으며, 또한 현대의 대표적인 종교다원주의자인 R. Parnikkar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말에 미국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던 뉴에이지의 전생(환생)신드롬은 그 배경을 보면 힌두교의 윤회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의 대부분의 나라에 크게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신자보다 더 많은 신자를 갖고 있는 불교가 힌두교에서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힌두권은 물론 세계에 대한 기독교 선교를 원하는 우리로서는 힌두교에 대하여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즉 힌두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면 오늘날 힌두권 선교는 그만큼 어렵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먼저 힌두교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난 뒤에 힌두교의 다양한 경전들의 발전과정과 내용, 거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힌두교의 신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Ⅱ. 힌두교의 역사적 발전과정
1. 힌두교의 역사 구분
힌두교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는 매우 복잡하다. 힌두교가 그만큼 오랜 역사적 과정에 거쳐서 발전하였기 때문에 그렇다. 힌두교의 역사적 발전과정은 학자마다 다소 다르게 주장되고 있다. 우리나라 선교학의 대표적 학자인 전호진 교수는 베다의 시대(BC 2000-600년), 반동과 부흥의 시대(BC 600-AD 300), 서사시와 푸라나(Puranas) 시대(AD 300-1750), 그리고 현대 시기(1770-현재)로 나누었으나, 이동주 교수는 인더스문명 시대(BC 5000-1500), 베다(Veda) 시대(BC 1500-800), 브라마나(Brahmanas) 시대(BC 1000-500), 우파니샤드(Upanishad)시대(BC 800-200), 경서 시대(BC 400-AD 300), 중세 이후의 힌두교 시대로 구분하였다. 이교수의 구분은 시대적으로 겹치게 한 것이 특징인데 그만큼 힌두교 발전과정을 시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키타가와(Joseph M. Kitagawa)는 힌두교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베다 시대를 BC 10세기부터 6세기까지로 보고(그 이전은 아리안족 시대로 봄) 베다 시대를 또 만트라(Mantras) 시대, 브라마나 시대, 그리고 우파니샤드 시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자이나교와 불교가 탄생한 BC 6세기 이후는 힌두교의 변화시대로 보고 이에 영향을 받은 AD 1세기부터를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시대, AD 318년 이후를 중세의 힌두교 시대, 15세기 이후를 무굴통치 시대, 19세기 이후를 현대 시대로 구분하였다. 키타가와의 시대 구분은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 이전을 통털어 고대 힌두교로 보고 만트라, 브라마나, 우파니샤드 시대를 시대구분 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그만큼 이들에 대한 시대구분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동주 교수가 시대를 겹쳐서 표기한 것을 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황보갑은 인도-유럽어족인 아리안족이 인도의 펀잡(Punjab)지방을 점령한 것을 BC 2000-1800년경으로 보고 이때부터 정통 힌두교가 탄생(이때를 베다 시대의 시작으로 본다)하였으나 힌두교는 그 사상면에서 인도의 토착문화와 혼합되었기 때문에 힌두교의 뿌리는 인도의 토착문화가 형성된 BC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였다. 베다 시대도 리그(Rig) 베다 시대(BC 2000-1000), 야주르(Yajur) 베다 시대(BC 1000-800), 사마(Sama) 베다 시대, 그리고 아타르바(Atharva) 베다 시대등 4 베다 시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우파니샤드 시대를 BC 800-300년경으로 보고 있어서 그 중간의 브라마나 시대는 야주르 베다 시대(BC 1000-800)와 우파니샤드 시대(BC 800-300)에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냈다. 그리고 자이나교와 불교 시대의 탄생을 BC 600년경으로 보고 이들에 영향을 받아 탄생된 바가바드 기타 시대를 BC 500-AD 700으로 보았다. 황보갑이 키타가와와는 달리 바가바드 기타 시대를 BC 500년경부터로 본 것은 바가바드 기타가 실제 이때부터 작성되어 오다가 그후에 여러 번 개작내지 수정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존 노스(John B. Noss)는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을 기준으로 힌두교를 크게 전기 힌두교와 후기 힌두교로 나누고 전기 힌두교는 베다 시대(BC 2000-7세기말)와 브라마나 시대(7세기말- 6세기)로 구분하여 베다 시대를 길게 잡고 우파니샤드 시대를 브라마나 시대에 포함시킨 것이 특색이다. 후기 힌두교 시대는 자이나교와 불교가 탄생한 6세기부터로 보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힌두교의 역사는 자이나교와 불교가 탄생하기 이전 시대(전기 힌두교)와 이후의 시대(후기 힌두교)로 크게 양분하고 전기 힌두교는 아리안족이 인도를 정복하기 이전인 베다 이전시대와 베다 시대로 구분할 수 있으나 베다 이전시대는 힌두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므로 베다 시대부터를 실제 힌두교의 역사로 보는 것이 좋다. 베다 시대는 다시 4 베다 시대와 브라마나 시대, 우파니샤드 시대로 구분되나 이들의 순서는 사실상 중복되어서 시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후기 힌두교는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BC 6세기경) 이후부터 AD 4세기 초까지를 바가바드 기타 시대로, 4세기 초부터는 중세 힌두교, 19세기 이후를 현대 힌두교로 크게 구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본고에서는 이런 기준에 따라 논리를 전개할 것이다.
2. 시대 구분에 따른 힌두 사상의 발전과 경전들
존 노스는 전기 힌두교의 특징을 “낙관적 다원신론으로부터 현 세계 부정으로의 이동(the Passage from Optimistic Polytheism to World Denial)"이라고 하였고, 후기 힌두교의 특징은 “사회적 구조의 기초로서의 종교(Religion As the Basis of the Social Structure)”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후기 힌두교의 특징을 단정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으로 시대에 따라 힌두교 사상이 변천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힌두교의 특징은 사상이 끊임없이 변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상 변천을 크게 나누어 보면 아리안족의 종교 사상과 인도 토착민들의 종교 사상의 혼합, 자이나교와 불교의 태동에 따른 힌두교 사상의 변화, 15세기 무굴 통치하의 변화, 그리고 기독교와 접한 현대 힌두교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먼저 아리안족의 인도 정벌(BC 2000년) 이전의 시대에는 인도 대륙에 여러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다. 인도 북부에는 프로토 아우스트랄로이드 인종이, 북동부에는 몽고(Mongoloid) 인종이 살았으며 인도대륙 중반부부터 남부에는 드라비드족(Dravidians) 또는 다사족이 살고 있었다. 특히 몽고 인종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으며 나름대로의 자체 청동문명을 이루었고, 자연물과 자연현상을 숭배하는 애니미즘의 신앙은 물론 힌두교의 핵심사상이라 할 수 있는 카르마 법의 교리와 영혼의 윤회사상이 그들의 종교에 구체화되었던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것에 대한 구체적인 문헌은 없고 번잡(Punjab)과 신드(Sind)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서만 추측해 볼 뿐이다.
아리안족이 인도를 점령한 후에는 아리안족이 비아리안족의 융합내지 정복을 통해 오늘날 힌두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베다 시대를 열었다. 아리안족들은 그들의 사제나 예언자를 가지고 있었고, 여러 의식이나 신학적 전승을 갖고 있었으나 원주민들의 토착종교를 받아들여 나름대로의 힌두교 종교사상체계를 형성하였다. 이런 사상이 집대성된 것이 베다 경전이다. 베다에는 예언자를 의미하는 리쉬스(Rishis)들이 보거나 들은 종교적인 진리를 부른 찬가, 기도, 제사 의식, 마법적 문구들이 모아져 있다.
그런데 4 베다 시대에 나오는 신들은 오늘날 힌두교에서 볼 수 있는 신들(3장에서 살펴볼 것임)의 이름보다는 댜우스(Dyaus, 우주의 대주재신), 바루나(Varuna, 창공을 인격화한신), 미스라(Mithra, 태양신), 인드라(Indra, 공계의 신), 아그니(Agni, 지계의 신), 소마(Soma, 주신) 등다. 이 신들은 오히려 그리스의 신들과 더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단일신보다는 자연신교적 다신적 경향을 띠고 있다. 즉 베다 시대는 제사장을 중심으로 천계 지계의 다양한 신들에게 희생제를 지내며 찬양하며 기도하는 형태의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또한 이 시대에는 힌두교의 기본사상인 달마(Dharma, 영원한 법), 삼사라(Samsara, 윤회), 카르마(Karma, 업), 목샤(Moksha, 해탈) 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베다 시대만 하더라도 오늘날 힌두교와 같은 사상체계가 완전히 정립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힌두교가 후대로 가면 갈수록 보다 정교하며 고등종교적 성향을 보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힌두교는 “주술적, 미신적인 애니미즘에서부터 후대에 고상하고 추상적인 철학체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적 경향을 총칭해서 부르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키다가와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힌두교에는 다신론, 범신론, 무신론 등이 거의 다 포함하는 것이다.
브라마나 시대는 베다 경 보다는 브라마나가 신앙생활의 주요한 지침서가 된 시대다. 브라마나는 각 베다마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해석서 또는 제의의 송가내지 기도의 사용법을 설명해 놓은 지침서다. 이 시대는 신들보다는 제의 자체가 중시되었고 따라서 사제(Brahmin)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들의 계급과 성격을 명시하고 사회에는 엄격한 카스트 제도가 형성되었다. 즉 사제가 종교와 사회에 큰 영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때 사제들은 대중적인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신과 같이 숭상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엄격한 제의에 식상한 일부 계층에서 제의보다는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문헌이 나왔는데 아란야키(Aranyaka)가 대표적이다. 이는 제의 중심에서 철학적 사색의 사고와 명상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천되었다. 따라서 아란야키는 우파니샤드의 시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때에는 명상과 사색을 통한 삼사라(Samsara, 윤회), 카르마(Karma, 업), 목샤(Moksha, 해탈)의 경지로 향하는 범아일치를 추구하였던 점으로 보아 이때에는 이미 달마(Dharma, 영원한 법)는 물론 삼사라, 카르마, 목샤의 개념이 힌두교에 받아들여져서 보편적으로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파니샤드 시대는 제의보다는 명상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파니샤드(Upanishad)라는 말이 의미하듯 “신성하고 은밀한 가르침을 스승 곁에 앉아서 배우고 깨우치는 것”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이때에는 명상과 사색이 중시되었고 철학적으로 사상체계가 분명히 세워졌으며 다양한 문헌들이 탄생하였다. 이때 브라만(Brahman, 궁극적 실재), 아트만(Atman, 자아의 본질), 달마, 삼사라, 카르마, 목샤 등의 제 개념이 분명하게 정립되었다. 특히 자연계의 모든 것들이 궁극적 실재(Ultimate Being)로부터 유출되었다고 보는데 따라서 자연계의 모든 것들은 이 궁극자와 본질적으로 동질성을 갖는다. 힌두교에서는 이 궁극자를 브라만(Brahman, 대아 또는 범아)이라 하고 자연계의 모든 것들이 갖는 이 동질성을 아트만(Atman, 소아 또는 개아)이라 한다. 개인은 명상과 사색을 통하여 전생에 쌓은 모든 삼사라(윤회)와 카르마(업)로부터 목샤(해탈)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힌두교에서 해탈은 브라만과 아트만, 즉 범아가 일체가 되는 것이다.
자이나교(Jainism)와 불교(Buddism)의 탄생은 베다, 브라마나, 우파니샤드를 통한 자연의 신격화나 엄격한 브라마나 제의, 그리고 명상과 사색의 우파니샤드는 물론 이들을 고리로 연결시켜준 카스트제도가 일반 대중에게 매력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반동으로 탄생하였다. 힌두교의 이러한 점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불만을 느꼈기 때문이다. 즉 사제인 브라민을 중심으로 한 희생제의는 사제 계급에만 많은 기득권을 부여하여 브라만 계급이 아닌 다른 계급, 특히 크샤트리아 계급에서 크게 반발하였는데 이 반동으로 자이나교와 불교가 탄생하였다. 자이나교는 크샤트리아 계급의 마하비라(Mahavira)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는 고행을 통한 해탈과 아힘사(Ahimsa, 살생금지)를 강조하였다. 불교는 역시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인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에 의해 창시되었다. 붓다는 자연의 현상을 연기에 의해 설명하고 존재 자체의 소멸(空)에 의한 니르바나(Nirvana, 열반)을 주장하였다. 이 니르바나는 힌두교의 목샤와는 다른 개념으로 무욕, 즉 욕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은 힌두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자이나교로부터 힌두교는 아힘사, 즉 살생금지를 받아들여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을 하게 되었고, 불교로부터 힌두교는 무욕을 통한 니르바나, 즉 열반을 받아들여 나름대로의 사상체계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힌두사상의 변화를 반영한 문서들이 이때 탄생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 BC 2-3세기경), 라마야나(Ramayana, BC 2-3세기경)이다. 특히 마하바타라에 담겨 있는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가 유명하여 이 시대를 일명 바가바드 기타 시대라고 부른다.
바가바드 기타는“ ‘지존의 노래’ 또는 ‘거룩한 자, 승리자의 칭송하는 노래’를 의미하는 시가로서 갠지스강 서부지역에 살던 바가바타파가 만든 독립된 시가였으나 힌두교에서 이를 수용하여 마하바라타에 수록된 것이다.” 여기에는 “우파니샤드에서 대우주이며 절대자인 비인격적인 브라만(궁극적인 실재)과 그의 현현인 인격적인 숭배대상인 비쉬누(Vishinu), 그의 화신인 크리쉬나(Krishina)를 동일시한 점”으로 보아 이때부터 오늘날 힌두교에서 숭배하는 인격신이 구체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으로 본다.
황보갑은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은 우파니샤드의 일원론(Monism, 브라만)을 근본으로 하면서 동시에 인격신의 형태인 바가바타파의 유신론이 결합하는 이른바 포용과 화해의 정신이 깔려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힌두교가 자이나교와 불교의 영향으로 대중적 종교(로 변모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이때 이반 대중들을 중심으로 박티(Bhakti)사상이 크게 유행하였다. 반면에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더욱 철학적 신앙이 발전하였는데 이때 탄생된 것이 정통 육파철학(상키아, 요가, 바이세시카, 나야, 미맘사, 베단타)이다. 이때에는 구원에 이르는 세 가지 길(행위, 명상, 헌신<박티, Bhakti>)이 유행하였다(육파철학과 구원의 세 가지 길은 3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임).
AD 318년부터 시작된 중세 시대는 찬드라굽타 1세(Chandragupta I)의 굽타제국 때에 힌두교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이때에 교리에 관한 체계적인 글(Sutras)과 신이나 영웅들에 관한 신성한 전설들(Puranas), 영적 훈련서(Tantras)등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대중들은 여러 인격적인 신들을 섬기는 밀의적인 신앙에 심취한 반면 지식인들은 철학적 신앙에 더욱 심취하여 일반대중과 더욱 괴리된 모습을 보였다.
8세기 경에는 유명한 주석가인 샹카라(Sankara)에 의해 브라만교가 재부흥기를 맞이하였다. 샹카라는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베단타를 주석하였다. 가우다파타는 불교적 일원론을 받아들여 브라만을 초자연적 실체인 높은 브라만과 현상 세계를 창조하는 낮은 브라만을 구별하였고 인격적인 신은 하나의 제한적인 존재로서 이 현상 세계에 머무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1세기경 라마누자(Ramanusa)는 샹카라를 공격하며 양자룰 분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였다.
15세기에는 이슬람의 무굴 제국이 탄생하여 힌두교가 회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때 힌두교의 개혁파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시크교(Sikhism)다. 시크교의 교조 나나크(Nanak)는 이슬람과 힌두교는 근본적으로 하나라고 하면서 양자를 통합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힌두교 내에서는 신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박티(Bhakti, 헌신) 운동이 다시 전개되었다. 박티 운동은 힌두교를 크게 부흥시켜 사실상 불교를 인도에서 몰아내게 되었다. 그러나 회교는 인도 내에서 꾸준히 성장하여 인도 대륙 내에서 한 세력을 이루었고 2차대전 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다.
Ⅲ. 힌두교의 경전들과 신들
1. 힌두교의 경전들
힌두교의 경전은 크게 스루티(Sruti)와 슴리티(Smriti)로 구분된다. 스루티는 절대적인 정경적 권위를 갖는 문헌들이다. 여기에는 힌두교의 경전 가운데 최고의 경전인 베다, 브라마나, 우파니샤드가 포함된다. 베다에는 신들의 찬가인 리그(Rig) 베다, 제의와 주문이 있는 야주르(Yajur) 베다, 멜로디가 있는 사마(Sama) 베다, 그리고 주문과 미신적 요소가 들어 있는 아타르바(Atharva) 베다가 있는데 이들을 일컬어 4 베다라고 한다. 또 각 베다마다 4개 부분의 주석서내지 보충서 또는 명상적 사색서가 있다. 즉 신들에 대한 찬가와 기도 주문의 본집인 삼히타(Samhita, 또는 Manthra), 신들에게 바치는 희생제의 방식과 그 의미를 설명해 놓은 브라마나(Bramana), 희생제의에 대한 해석서인 아란야카(Aranyaka),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인 희구를 나타낸 일종의 명상적 사색서인 우파니샤드(Upanishad)등이 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맨 끝에 부록같이 위치 위치해 있기 때문에 베단타(Vedanta, 베다의 마침)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베다는 4 베다의 각 삼히타(만트라)가 순차적으로 제일 먼저 형성되었고, 또한 4 베다의 각각에 브라마나, 아란야카(브라마나의 해석서이므로 브라마나에 포함시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우파니샤드가 점차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이 힌두교의 경전은 시대에 따라 점차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같이 계시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제의와 주문, 찬양, 기도, 그리고 이들에 대한 주석내지 해석, 및 보충내용들이 편입된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힌두교가 지니는 특징으로 평가된다. 이와 같은 경전의 발전에 따라 베다가 중시된 시대를 베다 시대, 브라마나가 중시되어 발전한 시대를 브라마나 시대, 우파니샤드가 중시되어 발전한 시대를 우파니샤드 시대로 편의상 시대 구분을 한 것이다.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명상 사색서가 많이 출현되었고, 특히 이들은 후에 자이나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슴리티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슴리티(베다 이후에 형성된 문헌의 총칭)는 거룩한 문헌들로 분류되지만 이들이 스루티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한에서 정경적 권위를 갖는다. 여기에 대표적인 것이 푸라나(Puranas), 탄트라(Tantras), 다르샤나(Darshanas), 수트라(Sutras), 그리고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등이다. 이들 슴리티는 힌두교가 자이나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후기 힌두교 시대의 문헌들이다. 즉 슴리티는 힌두교가 이들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하여 일종의 자기 혁신내지 갱신을 도모하고, 도전받고 있는 베다의 권위와 브라만교의 사회윤리체제를 세우기 위해 집필된 것이다.
푸라나는 창조와 파괴, 그리고 새 창조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이것은 신들, 영웅들, 그리고 인간의 조상인 마누(Manus)의 탄생에 관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때에 브라만의 현현인 인격신들과 박티(Bhakti) 사상이 대중화되었다. 따라서 푸라나는 신의 사랑을 최우선에 두어 비쉬누의 주창자들에게 특히 중요했다. 탄트라에는 삭티(Shakti) 사상이 나타나 있다. 또한 세계 최고 법전인 마누 법전이 이때에 탄생하였다. 다르샤나는 체계(System)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인데 여기서 근본적으로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육파철학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위의 시대 구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시대 구분에서는 푸라나, 탄트라, 다르샤나, 바가바드 기타를 통칭하여 바가바드 기타 시대라고 하였는데 슴리티에서는 바가바드 기타가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2. 힌두교의 신들
힌두교의 신은 힌두교의 경전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변천된 것이 특색이다. 베다 시대에는 비인격적 신인 브라만을 최고의 신으로 보면서도 인도 토착민들의 다양한 애니미즘과 아리안족들의 유럽 신론에 따라 브라만의 현현으로 보는 다양한 다신론적 신들이 대두하였다. 그러다가 사제인 브라민들의 역할이 중시된 브라마나 시대에는 오늘날 힌두교에서 최고의 신으로 추앙받는 비인격적인 신인 브라만 사상이 특히 강조되었다. 사제인 브라민은 통치의 수단으로 브라만 사상을 강화한 것이다. 이 시대의 브라만 사상은 단일신론처럼 보이나 우주의 신인 브라만이 피조물에 아트만 형태로 내재되어 브라만과 아트만의 일치, 즉 범아일치의 범신론적 특성을 띠며 동시에 무신론적 특성을 띤다.
힌두교에서 특히 존경받는 인격적인 신들이 등장한 것은 비인격적인 최고의 신의 현현으로 삼신사상(Trimuti)이 대두되면서부터다. 이 삼신사상은 우파니샤드 시대에 등장하여 바가바드 기타 시대에 구체화되었다. 삼신은 브라마(Brahma), 비쉬누(Vishnu), 쉬바(Shiva)을 말한다. 이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와는 다른 것으로 힌두교의 다신교 사상을 범신론 사상으로 통일하는 개념이다.
브라마는 창조의 신으로 최고의 신이다. 브라마는 보통 4개의 얼굴과 팔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4 베다와 관련되었다. 이것은 4 베다를 창조의 원칙에서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비쉬누는 유지의 신으로 인도에서 가장 애호되는 신이다. 비쉬누는 태양신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달마, 즉 영원한 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이해된다. 그는 이 법이 인간에 의해 상실될 위험에 처할 때 세상에 나타난다. 비쉬누는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는 것이 특징이다. 비쉬누는 보통 10가지 형상으로 변화되는데 마츠야(Matsya, 물고기), 쿠르마(Kurma, 거북), 바라하(Varaha, 뱀), 나라시마(Narasimha, 사자인간), 바마나(Vamana, 소인), 라마(Rama), 크리쉬나(Krishna)등 다양한 모습을 띤다. 이들 중에서 특히 존경을 받는 것은 크리쉬나다.
크리쉬나는 변신하여 지상에 하강한 비쉬누의 최고 화신이며 바가바드 기타에 그려진 바와 같이 검푸른 색을 지닌 용사이고 라마는 그의 형제다. 크리쉬나는 힌두교에서 특히 존경받는 비쉬누의 변신이다. 그는 바가바드 기타의 영웅으로 힌두 문헌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뿐만아니라 수만 가지 우주적 모습으로 나타나(범신론적임) 인도인에게 가장 친숙하다. 뿐만아니라 부처는 물론 예수도 크리쉬나의 변신으로 보기 때문에 힌두교에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선교에서 크리쉬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쉬바는 보통 파괴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모호한 존재다. 그는 때로 복을 가져오는 자로 이해된다. 힌두교에서 모든 것은 윤회의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쉬바는 건설, 즉 오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 존재의 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해 파괴한다. 그는 최고 신의 현현으로 절대적 존재(브라만)을 인식하는 데, 즉 목샤를 달성하는데 방해하는 가상적이며 거짓되고 기만적인 의식 세계에서 인간적인 뿌리를 파괴한다. 따라서 인간이 해탈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힌두교는 이상의 삼신사상 이외에 삭티(Shakti)사상이 있다. 삭티는 신들의 기 또는 여신(배우자 신)이라고도 하는 특이한 존재다. 위의 삼신은 각각 여신을 갖고 있는데 브라마에게는 사라스바티(Sarasvati, 예술과 문화의 신), 비쉬누에게는 랔스미(Laksmi, 번영과 미의 여신), 쉬바에게는 파르바티(Parvati, 산의 처녀, Durga라고도 함)가 있다. 특히 비쉬누의 변신인 크리쉬나는 여신이 16000명이나 된다. 비쉬누계는 우주의 진리에 이르는 길을 육체의 인식을 통해서라고 하여 남성신 크리쉬나와 여신 라다(Rada)를 신봉하는데 이것이 성적 문란 행위로 이어져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동주 교수는 문선명의 통일교 피가름 사상이 힌두교의 이 삭티사상을 원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쉬바파 또한 쉬바와 쉬바의 삭티 Durga를 숭배하는데 신과의 동화내지 우주와의 동화는 오직 성적 결합을 통해서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종교적으로 성적 결합을 정당화하는 퇴폐적인 모습을 종교라는 미명하에 공공연하게 자행한다. 이런 것을 진작시키고 또한 정당화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창부를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힌두교는 성경에 나오는 바알숭배자들의 성적 타락된 모습과 유사함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힌두교의 신들은 비인격적인 절대적 존재를 최고의 신으로 보고 이에서 인격적인 신들이 탄생하였다고 하는 점에서는 중국의 태극-상제 사상과 유사하다. 힌두교는 이에서 머무르지 않고 고대 유럽의 다양한 신개념과 인도 토착 신개념을 혼합하여 인간의 편의로 신들을 양산해 내었다. 즉 인간의 필요로 갖다 붙이면 신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이 탄생하였다. 이것은 그만큼 힌두교가 계시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불교등 다른 자연종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중심으로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된 종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Ⅳ. 힌두 사회와 힌두교 신앙
1. 힌두교의 기본 사상
힌두교는 달마(Dharma, 영원한 법), 삼사라(Samsara, 윤회), 카르마(Karma, 업), 목샤(Moksha, 해탈)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사상을 알지 못하고는 힌두교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먼저 달마(영원한 법)는 힌두교의 우주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주에는 인간 개인의 삶을 포함하여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절대적 우주적 법칙”이 있는 데 이 법칙이 달마다. 따라서 달마는 “진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상징하는 복잡한 용어”다. 달마는 인간 도덕과 윤리의 기초이며 자연과 우주의 모든 과정의 규칙이다. 그러므로 달마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렇다고 달마가 신인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를 염두에 둔 “신적 법칙”도 아니다.
삼사라(윤회)는 전술한 바와 같이 우파니샤드 문헌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개념으로 원주민인 드라비디안 신앙에서 도입되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죽은 인간의 영혼은 죽을 당시에 영원히 소진되지 않는 목샤의 상태를 얻지 못하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원한 상태로 들어 가지 못하고 다른 존재의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환생은 환생을 따라 끝없이 계속되는데 사람이 사람으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식물, 동물 등 다양한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 그것은 현재나 과거의 상태보다 더 나을 수도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럼 다음 환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아닌 카르마다.
카르마(업)는 무자비한 인과법칙(inexorable law of causality)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부정적인 의미로 모든 행위는 원인과 결과의 거미줄로 짜여져 있다. 이 인과법칙은 개인적이다. 이 거미줄이 모든 결과의 원인이 되어 삶과 죽음, 그리고 환생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품이 운명을 결정하거나 인생이 끝날 때 좋은 성품의 인간이 다음에 좋게 태어나고 반대로 악한 자가 죽을 때 악하게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하는 모든 것, 즉 인생의 각 행위는 다른 모든 행위와 함께하여 운명을 결정함을 의미한다. 하나의 행위는 좋든 나쁘든 궁극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각각의 불가피한 결과를 갖고 있다. 다음 환생에서 영은 현재의 형태가 생성할 수 있는 단지 하나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목샤(해탈)는 윤회와 카르마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니르바나(Nirvana, 열반)이라고 하나 2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자는 다소 다르다. 목샤는 영적인 해탈 상태다. 정통 힌두교의 일원론적 사고에서는 “아트만의 근원론적 존재인 브라만과 합일한다면 윤회로부터 탈피한다”고 하는 범아일여 사상을 견지한다.
2. 힌두 사회와 카스트 제도
힌두 사회에서 카스트제도는 일종의 종교적 도그마(Dogma)다. 카스트제도는 브라마나 이후 아란야카 때에 카스트 제도에 관한 문헌에 언급되어 있는데 브라마나 시대에 제의 중심의 종교 생활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사제인 브라민 계층이 자신들의 위치를 견고히 하려는 과정에서 태어난 거대한 종교, 정치, 사회 구조의 연결고리다. 이에 따르면 사회 계층은 브라민(Brahmins), 크샤트리아(Kshatriyas), 바이샤(Vaisyas), 수드라(Shudras) 등 4 계층으로 나뉜다. 그들의 창조신화에 따르면 창조의 신인 브라마는 인간의 조상 마누(Manu)를 창조한 후에 그에게서 네 종류의 사람들이 탄생하였는데 이 네 종류의 사람들에 의해 그 후손들이 위와 같이 네 계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가 브리민 계층인데 이 계층에는 인간의 머리에 해당하는 브라만 사제들이 있다. 그 아래 인간의 양손에 해당하는 크샤트리아 계층에는 지배자들과 무사들이 있다. 또 인간의 넓적 다리에 해당하는 바이샤 계층에는 장인들과 기술자들, 농부들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발에 해당하는 수드라 계층에는 원주민 노예들이 있다.
이들 상위 3 계층에는 각각의 계층 수호신이 있는데 수드라에만 수호신이 없다. 불가촉천민은 신을 믿을 자격도 없다. 상위 3 계층은 베다의 입문식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재생 계급, 즉 드비자(Dvija)라고 부른다. 최상층 브라민은 신성한 자들로 왕들도 고개를 숙일 정도로 대접을 받았다. 이것은 카스트제도가 사제들이 크게 활약하던 브라마나 시대에 제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권은 다음인 크샤트리아 계층에서 쥐고 있었다.
카스트 제도는 긍정적인 면에서 인도의 사회의 통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구성원들의 자격을 정해주고 기술과 지식 그리고 문화가 보존 전승될 수 있도록 했다. 인도 안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수많은 집단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엇다. 그러므로 카스트는 개인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모든 행위를 규제하는 영속적인 연합체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카스트 제도가 카르마 법과 연결될 때 삶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드라로 태어나면 그것은 그가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현재 더 나은 선한 행위를 보임으로써 현재보다 더 나은 생을 기대해야 했다. 이것에 대하여는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거나 사회적 정의를 구하면 그것은 카르마 법을 의심하는 것으로 곧 불경스런 행위가 되었다. 지배계층은 이런 방법으로 피지배 원주민을 착취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엄격한 카스트 제도는 근대화의 영향 속에서 부와 전문직, 교육 및 사회적 지위에 따라 유동적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계급관계가 생기게 됨으로써 많이 상쇄되었지만 아직도 인도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인도의 사회발전에 많은 장애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 사회에 세계 부정적 비관주의가 싹트게 하였다. 자신의 현재의 삶과 환생에 대한 짓눌림은 삶을 더욱 무겁게 하였고 따라서 환생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만을 찾게 하였다.
3. 육파철학
상키아는 육파철학 중 가장먼저 발생했는데 창시자는 Kapila다. 이것은 우파니샤드의 일원론과는 달리 이원론적이며 무신론적이다. 이에 따르면 자연은 물질(현상적 세계, Prakriti)과 정신(Purusha)로 되어있는데 정신은 전적 정신(All-Soul)이 아니라 수많은 정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정신들은 각각 독립적이며 영원하다. 자연에 얽혀있는 정신들은 정신과 물질 간의 존재적 차이에 대한 무지(이 무지는 정신을 물질과 자연에 속박시키는 원인이 된다)로 고(Suffering)에 떨어진다. 이렇게 해서 정신은 윤회하게 된다. 이 윤회로부터의 구원(목샤)은 전적 정신(All-Soul)의 정체를 인식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신이 물질과는 존재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앎(the knowledge of the soul' existential diversity from matter)"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개별 정신은 영원한 무의식적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요가는 상키아와는 달리 실천적 수행 방법을 통한 목샤를 추구한다. 우파니샤드에 처음 언급되었지만 Patanjali에 의해 체계화(요가경)되었다. 요가의 철학적 기초는 대부분 상키아로부터 왔지만 상키아와는 달리 유신론적 입장을 취한다. 요가는 주로 명상과 사색을 통한 자기단련을 중시한다. 상키아처럼 정신을 물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통일하여 모든 욕망과 집착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가경은 이와 같이 정신을 통일하여 해탈에 이르는 기술을 8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바이세시카는 Kanada에 의해 창시되었는데 이것은 자연과학적이며 실재론적이다. 이것은 원소이론(Atomic theory)을 주장한다. 즉 우주는 땅, 물, 불, 바람등 4원소로 서로 결합과 재결합을 통해 구성된다고 본다. 이 과정은 보이지 않는 신(Advishta, 영원한 정신)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이것은 서양 철학자 Democritus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야는 Gautama에 의해 창시되었다. 이 학파는 나야라는 말이 의미하듯 변론과 논리전개의 법칙과 규약을 연구하였다. 이 학파는 자아를 하나의 의식을 가진 실체로서 보고 인식과 행위의 주체이며 업보를 맡아 윤회하는 것으로 믿는다. 자아는 자아가 아닌 것들로부터 벗어나 해탈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미맘사는 가장 정통적인 학파로 제의를 중시한다. 창시자는 Jaimini다. 이학파는 베다를 게시로 인정하고 절대시 한다. 이 학파에 따르면 “베다는 영원하며 스루티 전통은 야즈나(희생제의) 행위를 준수하는 달마를 뜻하기 때문에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윤회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는 지식 뿐만 아니라 제의 행위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브라만을 최고신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우주와 세계질서를 지배하는 비인격적 원리인 Apurva를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후에 신적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적 성격으로 전환하였다.
베단타는 Badarayana에 의해 창시되었다. 이것은 우파니샤드의 연장 철학이며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철학이다. 이것은 일원론을 지향하며 브라만을 유일한 실재로 보았다. 윤회는 진정한 브라만을 깨닫지 못하고 나타난 현상으로 무지의 결과다. 해탈은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을 통해서 브라만의 본질을 깨달을 때 가능하다. 중세의 샹카라가 이 학파 출신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육파철학은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전통에서 탄생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각 파간에는 신론은 물론 세계관, 인생관, 구원관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정통 힌두교에서 벗어난 이단처럼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의 전통 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때 힌두교의 포용력이 어떠한 지를 짐작케 한다.
4. 힌두교 신앙의 유형
힌두교에는 힌두교를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하나의 정의가 없다. 사실 힌두교는 사상, 믿음, 확신, 행위의 집합체다. 따라서 힌두교는 사람마다, 지역마다 그 성향을 달리한다. 그러므로 힌두교는 이해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힌두교 신앙에는 다음과 같은 6 가지 유형이 있다.
①철학적 힌두교(Philosophic Hinduism)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권위가 지배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힌두교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철학으로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그들은 “인간 안에 신성(아트만)이 있으며,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경스럽고, 구세주의 필요도 없다”는 고대 베다로부터 가르친다.
②종교적 힌두교(Religious Hinduism)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푸라나,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바가바드 기타등 주로 슴리티를 믿는다. 그러므로 종교적 힌두교는 자이나교와 불교에 영향을 받은 후기힌두교의 지류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서사시인 푸라나를 신의 계시로 믿는다. 여기에 나타난 수많은 신의 현현들을 숭배한다. 이들의 신앙은 매우 혼합주의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다음에 설명하는 3 가지 구원의 길을 추구한다.
③신비적 힌두교(Mystic Hinduism)는 요가, 초월명상등을 통한 신비적 체험을 한 교사(Gurus)는 그들이 신의 현현이며 따라서 초자연적인 치료은사, 기적을 행하는 능력, 독심력, 예언력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④대중적 힌두교(Popular Hinduism)는 철학과 브라미니즘을 관심없고 전통적인 샤마니즘이나 애니미즘 형태를 띤다. 즉 동물숭배, 마술, 축사, 전통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이것의 주창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고 복을 내려주고 번성케하는 신에 더 관심이 있다. 따라서 이것은 힌두교의 한 분파라고 보기가 어렵다.
⑤부족적 힌두교(Tribal Hinduism)대중적 힌두교와 비슷한 것으로 부족 이외의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서 애니미즘이나 밀의종교, 동물숭배, 영혼숭배등에 빠져있다.
⑥세속적 힌두교(Secular Hinduism)는 명목적으로는 힌두교 신봉자이지만 종교적 행위에는 관심없고 물질적이며 세속적인 일에만 관심을 둔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힌두권에는 샤마니즘이나 애니미즘적 신앙생활을하는 부류, 명목적인 힌두인, 신비적 힌두인, 철학적 힌두인, 그리고 대중적 힌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힌두권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상 서로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힌두교를 믿으면서도 믿음의 대상이나 추구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5. 구원의 길
종교적 힌두교에서 구원을 위해 주로 행하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3 가지가 있다.
행위(의무)의 길(The Way of Works)은 행위를 통해 내세의 업보를 유리하게 하려는 방법으로 그 원리는 베다 경전에서 찾고 있다. 이것은 특히 브라마나 시대에 발전하였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전통적 힌두교 방법으로서 희생제사, 정화의식, 베다낭송등을 수행한다.
후대에 내려와서는 고행을 통한 해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여져 마음을 다스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즉 욕망(탐심)을 버리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행위를 통하여 해탈에 이르려 했다. 따라서 고행은 이들의 중요한 수행방법이 되었다. 음식을 제한하는 수행하거나 설탕이나 꿀을 먹지 않는 등 음식물을 조절함으로써 고행하는 방법, 소나 양가죽 또는 나무껍질만 걸치거나 아예 벌거벗는 등 의류를 조절함으로써 고행하는 방법, 강물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거나 아예 목욕을 하지 않는 고행방법, 또는 몸을 자해함으로써 고행하는 방법등 고행방법은 다양하다.
명상(지혜)의 길(The Way of Knowledge)은 우파니샤드에서 그 원리를 찾고 있다. 이것은 우주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초월적인 신비의 지식을 깨달음으로써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이 추구하는 지혜란 "만물의 근원인 신(브라만)과 인간(아트만)에 대한 올바른 통찰"로서 바가바드 기타에 의하면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영원 불멸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육신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주인데 이 소유주는 다름아닌 참자아(아트만)이다. 여기서 해탈이란 자아(아트만)가 고(Suffering)와 인격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를 말한다. 이동주 교수는 해탈되기 전의 자아는 비본질적인 자아(self)이며 이것은 이기적인(Selfish) 존재로 해탈을 통해 참자아(Self)가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Self만이 아트만이며 이 아트만은 우주의 정신인 브라만과 일치하므로 참자아는 곧 해탈의 경지에 이른 상태다. 이것은 명상을 통해서 깨다을 때 가능하게 된다.
헌신의 길(The Way of Devotion)은 고행이나 명상을 통한 자력구원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인격적인 신을 열렬히 따르고 숭배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박티(Bhakti)사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고행이나 명상을 통한 방법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외면되고 따라서 자이나교나 불교등이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자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창안한 방법인 것으로 생각된다. 박티 신봉자들은 자신이 헌신하기 원하는 신을 따르기 위해 모든 욕망을 버리고 자아를 비우며 신과 순간적으로 하나됨을 느끼고 자기 안에서 신을 믿고 신 속에서 자신을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의 도움으로 신과 일체감내지 행복감을 맏보게 된다. 이것이 소위 해탈의 경지다. 박티는 비쉬누와 그의 변신인 크리쉬나에게도 신봉되었으나 특히 쉬바와 그의 삭티인 칼리(두르가)에게 신봉되었다.
이상과 같이 힌두교에서 구원 곧 해탈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해탈이 자신의 노력에 의하든 자신이 헌신하는 신의 도움에 의하든 여기서 구원을 갈급하는 힌두인들의 목마름을 찾아볼 수 있다.
Ⅴ. 현대 힌두교와 기독교 선교
본장에서는 지금까지 이해한 힌두교를 기본으로 현대 종교다원주의에 힌두교가 미친 영향을 먼저 살펴보고, 기독교 관점에서 힌두교를 평가한 후 힌두권에 대한 기독교 선교전략을 간략하게 제시할 것이다.
1. 현대 종교다원주의와 힌두교
서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대 종교다원주의에서는 힌두교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힌두교가 현대 기독교 혼합주의 및 다원주의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이동주 교수는 힌두교가 기독교와의 관계 속에서 혼합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고 힌두교의 기독교와의 혼합주의는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던 18 세기경인 것으로 보았다. 특히 이슬람 통치시대인 무굴시대에 힌두교와 이슬람교와의 혼합주의 경향은 이슬람교와 비슷한 기독교와 힌두교의 혼합주의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20세기에는 힌두권 출신인 M.M. Thomas와 Samartha가 WCC에서 활약하면서 기독교와의 혼합주의내지 다원주의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Parnikkar같은 유명한 다원주의 신학자가 탄생된 것으로 본다.
M.M. Thomas는 신학자가 아닌 평신도로서 WCC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 혼합주의적 사상을 갖고 인간의 영혼구원보다는 현세에서의 인간의 행복(정의, 평화, 부 등)을 더 추구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영성은 “인류 연합을 위한 투쟁의 영성”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사회적이건 도덕적이건 문화적이건 간에 사람을 종속시키는 모든 연합을 파괴하고 더 성숙한 연합을 위하여 남녀를 해방하며 이 연합이 다시금 종속적으로 되어지면 또 다시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에수 그리스도를 해방자로 보는 것이다. 그는 1973년 방콕대회에서 “힌두교와의 대화”를 설명하는 가운데 “대화는 종교를 바꾸거나 새로운 공동체로 이동해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문화 속에 그대로 있으며 기독교적 힌두가 되게 하는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 같으면서 실상은 타종교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종교 안에서 구원을 이루도록 하는 종교 다원주의 성격을 띤다.
Samartha.는 기독교 신학자로서 창조의 실재성과 에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만인구원”을 주장하였다.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그는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대화의 문제는 그리스도 일원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독론을 확장시킴으로써, 그리고 이 세상 종교들과 세속적 이념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민감함으로써 포괄적 성령론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또한 그는 “타종교가 기독교보다 열등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가 타종교 내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한 세속 이념들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성령이 타종교 내에서도 역사하신다는 혼합주의내지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하여 예수에게처럼 그리스도가 타종교에도 오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본다.
Parnikkar는 인도의 카톨릭 신부로서 전형적인 다원주의자다. 그는 “힌두교 속에 있는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라는 책을 쓸 정도로 타 종교를 인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방 종교에도 역사하시며 이것은 사람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관계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이며 그리스도와 피조물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며 심지어는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이런 그의 사상은 철저히 힌두교에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과 브라만을 동일시하였고 브라만으로부터 유출된 피조물이 브라만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듯이 하나님과 피조물 간에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따르면 힌두교와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에 힌두교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힌두권 기독교인들은 자칫 혼합주의내지 종교다원주의에 빠지기 쉽다. 어떻게 보면 힌두교 자체가 거대한 혼합주의요 다원주의다. 그들은 불교나 기독교를 그들이 추구하는 신의 다른 현현일 뿐인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힌두인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온전한 기독교인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해탈을 추구하는 방법을 달리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2. 기독교 관점에서 본 힌두교
①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한 종교: 힌두교는 인도 자체 내에서 탄생하였다기 보다는 인도를 점령한 유럽계통의 아리안족에 의해서 탄생하였다. 이들은 인도를 점령하면서 인도를 통치할 정치이데올로기를 종교화하였는데 이것이 힌두교의 효시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카스트제도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카스트 제도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였을 때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정치이데올로기를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일본은 우리나라를 영원히 통치하기 위해서 우리 민족에게 교육을 금지하고 우리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았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지정학적 인종적 특징 등을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민족은 지배받기를 좋아하는 민족, 지배되어져야만 하는 민족이라는 주장은 힌두교에서 인도 본토인들이 운명적으로 하류계층일 수밖에 없다는 사상과 유사하다. 아리안족은 브라만교를 정치사회와 연결시켜 카스트라는 숙명적 제도를 만들어 인도 본토인들을 지배하였다. 기독교가 만민 평등을 주장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② 끊임없이 변하는 종교: 힌두교는 유구한 역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하였다. 아리안족이 인도를 점령할 때 그들의 신관은 유럽의 신론과 별반 차이가 없는 다신론적이었다. 이런 신관은 인도 본토인들의 영향을 받아 범신론적내지 무신론적 특성을 띠게 되었다. 힌두교가 주장하는 경전들도 역사과정에서 끊임없이 형성되어졌다. 이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지만 기독교와 다른 점은 경전의 형성과 더불어 종교사상 자체가 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이나교와 불교의 탄생으로 힌두교가 인도에서 위협을 받았을 때 두드러졌다. 전통적인 힌두 사상만으로 이 위협을 감내할 수 없게 되자 대중의 관심을 끄는 유신론 사상을 수용하였다. 그것은 브라만의 현현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신은 브라만의 현현이다. 뿐만 아니라 현현 자체도 변신을 한다. 그러므로 힌두교에는 비인격체인 브라만을 제외하고 다른 인격신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것은 앞으로도 신이 끝없이 탄생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로부터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며 그 분의 변하지 않는 말씀에 입각한 기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③ 거대한 종교집합군: 힌두교는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종교집합군이 되었다. 힌두교는 일신론적이며 다신론적이고, 유일신론적이며 범신론적이고, 유신론적이며 무신론적인 특성을 한 종교 안에 갖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추구하는 신이 달라도, 신앙 방법이 달라도, 구원의 방법이 달라도 다 통한다. 그 어떤 방법을 취하더러도 그것은 한 방법일 뿐이다. 이러한 거대한 종교집합군은 오늘날 불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샤마니즘과 혼합된 종교의 두드러진 특성이다. 기독교는 오로지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다른 어떤 것도 인정치 않는다.
④ 인간중심의 종교: 힌두교의 인간중심성은 정치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하였다는 데서 찾아 볼 수도 있지만 구원이 길에서 두드러진다.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가 신의 계시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기독교처럼 신에게 직접 전수받은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제의 과정에서 형성되거나 인간의 편의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신과 새로운 구원의 방법이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는 기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힌두권에서의 기독교 선교전략
로잔세계복음화위원회는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힌두권 선교를 위해 특히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영성(Spirituality), 공동체(Community), 빈곤(Poverty)를 들고, 신학적 장애요인으로는 혼합주의(Syncretism), 죄의 개념(The concept of Sin), 카르마 교리, 구원교리를 들었다. 그리고 힌두권 선교의 장애 요인으로는 사회문화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를 들었다. 또 이상진 선교사는 인도에서 직접 선교를 통해 얻은 경험으로 볼 때 사회문화적 요소로서 카스트 제도와 1652개나 되는 방언으로 인한 의사소통 문제를 들고 정치적 요인으로 인도 정부의 반대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힌두교 선교는 필요하며 힌두권 선교를 위해서는 기도와 헌신된 선교사와 더불어 다양한 선교전략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가 든 선교전략으로는 신학교 설립 및 지원, 교회설립지원, 각양전도활동, 사회복지기관의 설립 및 지원, 해외거주 힌두교도 선교 등 다양하다. 전호진 교수는 힌두권의 선교 장애요소로 문화적인 요소로 관습, 사회적인 요소로 카스트제도, 종교적인 요소로 기독교가 외국종교라는 인식, 그리고 선교적인 요소로 기독교가 불가촉 천민들의 종교라는 인식등을 들었다. .
이상을 종합해 볼 때 힌두권 선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종교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정치적인 면에서 볼 때 인도 정부가 힌두교 정부이기 때문에 과거에 기독교를 앞세운 영국이 인도를 식민통치 하던 것이 부정적 작용을 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므로 백인보다는 동양인이 인도 선교에 유리하다고 본다. 또 기독교 선교가 인도 정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인도 정부가 과격한 힌두교도들의 영향으로 이슬람처럼 기독교도 탄압하지 않도록 기독교가 병원, 교육등 인도의 사회복지차원에서 유익함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또한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결코 위해한 것이 아님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의 국가들의 민주적 정치행태는 기독교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인도 인구의 상당수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감안할 때 기독교가 가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의 종교라는 인식을 고취시킴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 및 소득증대 사업과 같은 혁신적인 사업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인도인들의 친근감을 갖도록 선교 접촉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까지 교육이나 의료선교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농촌선교 및 산업선교는 이런 점에서 아직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사회적인 면에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영국의 식민통치 시대에 기독교가 주로 불가촉 천민들을 상대로 선교를 하여 기독교 하면 “불가촉 천민의 종교”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는데 이러한 것은 카스트제도라는 사회계급제도가 견고한 인도에서 어느 특정 하급계층만을 상대로 선교를 함에 의한 부작용이다. 로마에서처럼 기독교가 상류계층을 먼저 선교하면 다른 계층을 상대로 선교하기는 쉬워도 역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상류계층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인 면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인도가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개인을 상대로 한 선교보다는 가족 단위 또는 부족 단위의 집단선교전략이 중요하다. 특히 인도는 종족 간에 언어소통이 어려우므로 언어가 통하는 종족들을 상대로 통전적 선교가 필요하다.
문화종교적인 면에서는 기독교가 인도의 전통문화를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통 문화 속에서 미신적 종교행위를 기독교로 바꾼다는 상황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혼합주의적 경향이 심한 힌두권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시켜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윤회와 업의 고리를 끊고 해탈하려는 인도인들의 문화종교적 특성을 감안하여 기독교가 윤회와 업의 고리를 끊고 해탈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제시하는 것은 힌두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또 전통적 샤마니즘이 강한 사회에서는 능력대결(Power Encounter)를 위해 신유 축사등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도록 선교사들이 기도와 훈련을 통해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언어가 다양한 인도에서는 공용어인 영어는 물론 선교하려는 종족의 토착어를 충분히 익히고 그들의 문화 및 종교를 숙지하여 삶을 통해 선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Ⅵ. 결론
지금까지 힌두교의 역사적 발전 과정, 힌두교의 경전들과 신들, 힌두 사회와 힌두교 신앙, 현대 힌두교와 기독교 선교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힌두교는 한마디로 매우 복잡하고 혼합적임을 알 수 있다. 종교이면서도 정치적 색채가 강하고, 인도 전통종교이면서도 외래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강하며, 시대와 사회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시대와 사회에 적응하는 성격이 강한 종교다. 초대교회 때 사도 도마로부터 인도 선교가 이루어졌지만 기독교는 거대한 힌두교 앞에 힘을 못 썼다. 현대에도 윌리암 캐리를 필두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인도의 선교에 전력을 쏟았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힌두교가 갖고 있는 종교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도에 대한 선교는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와 언어, 다양한 종교적 특성, 그리고 다양한 사회 계층이 모든 것을 단일하게 전개하는 기독교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 전략도 인도의 다양성에 맞추어 다양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고는 그 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선교전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지는 않았고 방향만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힌두권 선교는 약 13억의 인도인(2020년 예상)들을 생각할 때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힌두권을 선교하려다가 힌두교에 혼합되어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기독교를 분명히 이해함과 동시에 힌두교를 분명히 이해하고 그 차이를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구체적인 다양한 선교전략은 실제로 선교를 하는 선교사의 몫이다.
주제어 : 힌두교, 기독교선교전략, 인도종교, 복음화, 하나님의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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