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셉의 후손에게서 이스라엘의 목자가 나온다는 야곱의 예언은?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창49:24).
야곱이 애굽에서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그는 아들들을 머리맡에 불러 형제의 순서대로 그들이 “후일에 당할”(49:1) 일들을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였다. 드디어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 이르러 그는 다음과 같이 축복하였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창49:24).
이 구절이 난해한 이유는 이 구절의 우리 말 성경이 요셉의 후예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즉,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처럼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이 구절에 의해 마치 창세기 후반부의 중심 인물인 요셉이 메시야의 직계 조상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메시야의 직계 조상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넷째인 유다이다. 그래서 야곱은 유다에게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창49:10)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면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면서 한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미삼로에 에벤 이스라엘)이다.
로에는 “목자”이고,
에벤은 “반석”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미삼이란 단어이다.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이름으로”(by the name of)혹은 “그곳으로부터”(from there)이다. 그러므로 이 뜻은 “목자요 이스라엘 반석이신 이의 이름으로”이다.
이것은 바로 앞에 나온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와 병행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문장의 히브리 원어는 (미데이 아비드 야코브) 인데,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야곱의 전능자의 손에 의해” 이다. 이 두 구절의 미샴과 미데이는 각각 “의하여”(by)라는 뜻의 히브리어 전치사 "미"로 이루어져 동일한 구조의 병행구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의미는 분명해졌다. 그 뜻은 요셉의 힘은 “야곱의 전능자의 손 때문이요,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목자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 국제역](NIV)은 “그의 활이 든든하며 그의 강한 팔이 유연하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의 손 때문이요, 목자요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자 때문이라”고 번역하였다. 공동번역 성경도 “이것은 야곱의 강하신 이의 팔이 하신 일, 이스라엘 목자의 이름으로 이룩된 일이다”라 고 번역하였다. 결국 한글 개역성경의 “그로부터...나도다”는 적절한 번역이 못된다. 또, 표준새번역도 “야곱의 섬기는 전능하신 분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시고, 목자이신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라고 번역하였다.
(참고)
[창 49:24]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24 요셉의 활은 그보다 튼튼하고, 그의 팔에는 힘이 넘친다. 야곱이 섬기는 '전능하신 분'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시고, 목자이신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새번역)
24 활은 꺾이고 팔마다 힘줄도 끊어졌다. 이것은 야곱의 강하신 이의 팔이 하신 일, 이스라엘 목자의 이름으로 이룩된 일이다.(공동개정)
24 그의 활은 팽팽하고 그의 강한 팔은 야곱의 힘 있는 사람의 손에 의해, 곧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목자의 이름으로 민첩하게 움직인다.(우리말 성경)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손의 팔이 야곱의 전능한 하나님의 손으로 말미암아 강건하게 되었도다.(거기서부터 목자 곧 이스라엘의 돌이 나오되)(흠정역)
2. 오난의 죄가 왜 그렇게 심각하게 취급되었는가?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창38:9~10)
창세기 38장에는 유다의 이들들 이야기가 나온다. 유다의 장자 엘이 다말과 결혼한 후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이에 유다는 엘의 동생 오난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창28:8). 그러나 오난은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 하려고 땅에 설정 하”였고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창38:9-10)이셨다.
이 기사에서는 오늘날의 결혼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자식 없이 죽은 형을 위해 형수를 아내로 취하는 것이 “아우의 본분”이라는 말도 그렇고, 또 그 자식이 “형의 씨”가 된다는 것도 그러하며, 그 일을 거부한 것이 사형에 해당될 만큼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다”는 것도 그러하다. 도대체 이 사건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기에 오난의 죄가 그렇게 삼각하게 취급되었는가?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식을 곧 종족의 유지로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어 소위 씨받이를 통해서라도 자식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곧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식을 단순히 종족의 유지 정도가 아니라 부모의 생명을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식이 끊어지는 것은 대가 끊기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식이 없음은 곧 멸망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될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은 규례를 주었다.
“형제가 동거하는 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25:5~6).
이렇게 형이 아들 없이 죽었을 때 ,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형의 아들을 대신 낳아주는 제도를 흔히 수혼 제도(嫂婚制度)혹은 형사취수법(兄死娶嫂法)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levirate marriage라고 하는데, levirate는 남편의 형제를 뜻하는 라틴어 levier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이 제도는 이스라엘 이외의 고대 근동 지역에서도 있었다. 예를 들어, 우가릿 , 헷, 누지, 호리, 그리고 엘람 족들에게도 이 제도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제도의 의미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이 제도를 조상 숭배를 보장하는 방법으로 보기도 하고, 장자권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 제도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민족들에게서는 어떤 행태로 나타나 있든지 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제도는 매우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제도는 근본적으로 후손을 이어주는 것은 곧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구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라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식이 없으면 그의 이름이 없어지고 이름이 없어지면 그는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게 될”것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에서 사라지는 멸망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아우가 죽은 형을 위해 후손을 남겨주기를 거절하는 것은 곧 형의 생명을 구원하는 구속의 경륜을 거절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모세는 만일 이러한 일을 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죽은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에게 찾아가 그를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잇기를 실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신25:7)라고 고소하고, 장로들은 그가 권하여도 말을 듣지 않으면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신25:9)라고 할 것을 명하였다. 그만큼 이 일은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난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거부하였다. 그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그 자신의 후사가 아니라 죽은 형의 후사가 될 것임을 알고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창38:9)였다. 이와 같은 오난의 행위에서 자위 행위를 나타내는 오나니즘(ornanism)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난의 행위는 결코 단순한 질외사정(膣外射精)의 피임 행위만이 아니었다. 우선 그는 이 제도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심에 가득 차 형에 대한 지극한 애정의 결핍을 나타내었다. 그리하여 오난은 바로 형제의 생명을 연장시켜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해야하는 의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 말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에서도 나타났듯이 사실, 하나님은 다말을 통해 메시야의 조상을 잇게 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오난으로 인해 유다의 자손으로 올 메시야의 족보가 끊어질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결국 오난은 그 여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역한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창38:10)하였고 그는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창49:24).
야곱이 애굽에서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그는 아들들을 머리맡에 불러 형제의 순서대로 그들이 “후일에 당할”(49:1) 일들을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였다. 드디어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 이르러 그는 다음과 같이 축복하였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창49:24).
이 구절이 난해한 이유는 이 구절의 우리 말 성경이 요셉의 후예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즉,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처럼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이 구절에 의해 마치 창세기 후반부의 중심 인물인 요셉이 메시야의 직계 조상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메시야의 직계 조상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넷째인 유다이다. 그래서 야곱은 유다에게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창49:10)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면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면서 한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미삼로에 에벤 이스라엘)이다.
로에는 “목자”이고,
에벤은 “반석”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미삼이란 단어이다.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이름으로”(by the name of)혹은 “그곳으로부터”(from there)이다. 그러므로 이 뜻은 “목자요 이스라엘 반석이신 이의 이름으로”이다.
이것은 바로 앞에 나온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와 병행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문장의 히브리 원어는 (미데이 아비드 야코브) 인데,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야곱의 전능자의 손에 의해” 이다. 이 두 구절의 미샴과 미데이는 각각 “의하여”(by)라는 뜻의 히브리어 전치사 "미"로 이루어져 동일한 구조의 병행구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의미는 분명해졌다. 그 뜻은 요셉의 힘은 “야곱의 전능자의 손 때문이요,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목자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 국제역](NIV)은 “그의 활이 든든하며 그의 강한 팔이 유연하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의 손 때문이요, 목자요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자 때문이라”고 번역하였다. 공동번역 성경도 “이것은 야곱의 강하신 이의 팔이 하신 일, 이스라엘 목자의 이름으로 이룩된 일이다”라 고 번역하였다. 결국 한글 개역성경의 “그로부터...나도다”는 적절한 번역이 못된다. 또, 표준새번역도 “야곱의 섬기는 전능하신 분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시고, 목자이신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라고 번역하였다.
(참고)
[창 49:24]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24 요셉의 활은 그보다 튼튼하고, 그의 팔에는 힘이 넘친다. 야곱이 섬기는 '전능하신 분'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시고, 목자이신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새번역)
24 활은 꺾이고 팔마다 힘줄도 끊어졌다. 이것은 야곱의 강하신 이의 팔이 하신 일, 이스라엘 목자의 이름으로 이룩된 일이다.(공동개정)
24 그의 활은 팽팽하고 그의 강한 팔은 야곱의 힘 있는 사람의 손에 의해, 곧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목자의 이름으로 민첩하게 움직인다.(우리말 성경)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손의 팔이 야곱의 전능한 하나님의 손으로 말미암아 강건하게 되었도다.(거기서부터 목자 곧 이스라엘의 돌이 나오되)(흠정역)
2. 오난의 죄가 왜 그렇게 심각하게 취급되었는가?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창38:9~10)
창세기 38장에는 유다의 이들들 이야기가 나온다. 유다의 장자 엘이 다말과 결혼한 후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이에 유다는 엘의 동생 오난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창28:8). 그러나 오난은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 하려고 땅에 설정 하”였고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창38:9-10)이셨다.
이 기사에서는 오늘날의 결혼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자식 없이 죽은 형을 위해 형수를 아내로 취하는 것이 “아우의 본분”이라는 말도 그렇고, 또 그 자식이 “형의 씨”가 된다는 것도 그러하며, 그 일을 거부한 것이 사형에 해당될 만큼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다”는 것도 그러하다. 도대체 이 사건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기에 오난의 죄가 그렇게 삼각하게 취급되었는가?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식을 곧 종족의 유지로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어 소위 씨받이를 통해서라도 자식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곧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식을 단순히 종족의 유지 정도가 아니라 부모의 생명을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식이 끊어지는 것은 대가 끊기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식이 없음은 곧 멸망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될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은 규례를 주었다.
“형제가 동거하는 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25:5~6).
이렇게 형이 아들 없이 죽었을 때 ,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형의 아들을 대신 낳아주는 제도를 흔히 수혼 제도(嫂婚制度)혹은 형사취수법(兄死娶嫂法)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levirate marriage라고 하는데, levirate는 남편의 형제를 뜻하는 라틴어 levier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이 제도는 이스라엘 이외의 고대 근동 지역에서도 있었다. 예를 들어, 우가릿 , 헷, 누지, 호리, 그리고 엘람 족들에게도 이 제도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제도의 의미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이 제도를 조상 숭배를 보장하는 방법으로 보기도 하고, 장자권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 제도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민족들에게서는 어떤 행태로 나타나 있든지 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제도는 매우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제도는 근본적으로 후손을 이어주는 것은 곧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구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라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식이 없으면 그의 이름이 없어지고 이름이 없어지면 그는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게 될”것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에서 사라지는 멸망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아우가 죽은 형을 위해 후손을 남겨주기를 거절하는 것은 곧 형의 생명을 구원하는 구속의 경륜을 거절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모세는 만일 이러한 일을 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죽은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에게 찾아가 그를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잇기를 실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신25:7)라고 고소하고, 장로들은 그가 권하여도 말을 듣지 않으면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신25:9)라고 할 것을 명하였다. 그만큼 이 일은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난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거부하였다. 그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그 자신의 후사가 아니라 죽은 형의 후사가 될 것임을 알고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창38:9)였다. 이와 같은 오난의 행위에서 자위 행위를 나타내는 오나니즘(ornanism)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난의 행위는 결코 단순한 질외사정(膣外射精)의 피임 행위만이 아니었다. 우선 그는 이 제도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심에 가득 차 형에 대한 지극한 애정의 결핍을 나타내었다. 그리하여 오난은 바로 형제의 생명을 연장시켜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해야하는 의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 말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에서도 나타났듯이 사실, 하나님은 다말을 통해 메시야의 조상을 잇게 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오난으로 인해 유다의 자손으로 올 메시야의 족보가 끊어질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결국 오난은 그 여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역한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창38:10)하였고 그는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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