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 겔18:1-4
성경(聖經)에는 단순 명료(明瞭)하고도 그 의미가 깊은 속담과 금언(金言)들이 상당히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도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俗談)이 나옵니다.
이는 십계명의 제 2계명 가운데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罪)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20:5)라고 한 구절에 근거(根據)하고 있는 것으로, 죄(罪)로 인하여 빚어진 결과의 심각성을 잘 표현하고 있어 번뜩이는 재치를 엿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이 속담(俗談)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그릇된 속담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3절).
왜 이 속담에는 그토록 부정적인 평가가 가해졌을까요?
그것은 에스겔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속담의 본의를 오해하고 자신들의 편한 대로 그릇 해석하여 하나님을 조롱(嘲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속담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 살펴봄으로써 혹 우리 안에도 내재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러한 그릇된 의식(意識)을 떨쳐 버려야 할 것입니다.
1. 자신들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하였던 것과 같이 이 속담에는 죄로 인하여 빚어지는 결과의 심각성(深刻性)을 주지시켜 죄(罪)를 멀리하도록 하기 위한 의미(意味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인간이 하나님께 심판받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자기(自己) 스스로가 범한 죄(罪)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과 애굽의 압박(壓迫)을 비롯하여 당시 자신들이 당하고 있던 갖가지 고통(苦痛)들의 근본 원인을 자기 조상들의 범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조상들과 하나님을 원망(怨望)하기만 하는 잘못을 범(犯)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나 에스겔 등 당대(當代)에 위대한 선지자들이 지적했던 대로 당시 그들이 당하고 있던 고난의 원인은 분명 스스로의 죄악(罪惡)에 있었으나 그들은 이를 결코 인정(認定)하지 않고 이러한 속담을 통해 자기 조상에게 돌리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스스로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인류 조상의 아담과 하와에게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계속되어오는 고질적(痼疾的)인 죄(罪)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창3:12, 13).
그러나 범죄의 책임을 타인에게 미루는 것은 결코 죄의 책임(責任)을 면(免)하게 해주지 못하며 오히려 거짓과 참소(讒訴)라는 사단 특유(特有)의 죄를 더할 뿐입니다(요8:44, 계12:10).
실로 범죄(犯罪)한 성도에게 필요한 행동(行動)은 책임 전가(責任 轉嫁)가 아니라 겸손한 회개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사66:2-4, 눅3:8, 행26:20).
2.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B.C. 609년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에게 패전하고 요시야 왕이 전사함으로써 남 유다 왕국의 멸망은 시간 문제(時間 問題)가 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남 유다 왕국에서 자주권(自主權)을 가진 최후의 왕(王)이었으며 그 후에 왕위에 오른 여호아하스, 여호야 김, 여호야 긴, 시드기야 등은 애굽, 혹은 바벨론의 봉신에 불과한 명목상(名目上)의 왕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왕국의 운명이 경각(頃刻)을 다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비롯한 선지자를 통(通)하여 남 유다 왕국(王國) 백성들에게 악한 길 행하기를 그치고 그들에 대한 징계(懲戒)의 도구(道具)로 세우신 바벨론에순종할 것을 계속해서 권유(勸誘)하셨습니다(렘27:12-22).
그러나 이러한 권유에 대한 응답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 바로 본문에 기록(記錄)된 "아비가 신포도(葡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俗談)입니다.
이 말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苦痛)의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지 않다는 말이며, 따라서 회개(悔改)할 것도 없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권유(勸誘)에 대한 너무도 분명(分明)한 거부(拒否)의 표현(表現)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선하신 부르심을 멸시하며 고집(固執)을 버리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진노와 그 행위에 합당한 보응(報應)으로 응답(應答)하십니다(롬2:4-8).
진정 회개치 않고 헛된 변명과 알량한 속담으로 하나님을 기만(欺瞞)하려 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殄怒)만을 불러 일으킬 뿐입니다.
3.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매도하고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섭리(攝理)의 의로움과 불의(不義)함을 논하며 그 선악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를 단호하게 이를 부인합니다(롬9:19-20).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여 불의하다고 할 수 있는 자격(資格)도, 능력(能力)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의 특정(特定)한 행동을 두고 원망 또는 불평하거나 그릇된 것이라 하여 책망하려 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고 죄악(罪惡)된 행위(行爲)도 없을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속담은 바로 이러한 그릇된 의도(意圖)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포도를 먹은 아비에게 죄(罪)가 있는데 왜 아들의 이를 시게하느냐는 것, 다시 말해 조상들이 범죄(犯罪)함으로써 남(南) 유다 왕국(王國)이 멸망(滅亡)하기에 이르렀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에게 회개를 요구하느냐고 하는 조롱(嘲弄)이며, 그러한 하나님은 불의(不義)하다고 하는 매도가 이 속담(俗談)의 본의(本意)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어처구니 없는 억지스러운 변명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여자 때문에 범죄(犯罪)하였다고 하였던 아담으로부터 시작(始作)되었던 참으로 유서(由緖)깊은 변명(辯明)입니다(창3:12).
오늘날도 지식인(知識人)이라 자처하는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변명(辯明)으로 하나님을 불의(不義)한 분이라 매도(賣渡)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順從)하기를 거부(拒否)합니다.
그러나 선악(善惡)의 궁극적 주권자, 판단자는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 뿐이십니다(시96:13)
실로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욕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판단에 겸손하게 승복하고 복종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약4:11-12).
사랑하는 성도(聖徒) 여러분!
인간의 마음에 품은 생각이 언어를 통하여 표출됩니다.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기 시다"라는 패역(悖逆)한 이스라엘의 그릇된 말과 같이 회개하라는 권유를 흘려 버리고 자신의 의(義)로움을 주장(主張)하며 자신을 불의하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불의한 분으로 조롱(嘲弄)하는 생각, 매도하는 말은 이제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서 떨쳐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반드시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고귀(高貴)한 약속(約束)을 받았으면서도 스스로의 의(義)로움을 주장(主張)하여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이제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요일1:8-10).
성경(聖經)에는 단순 명료(明瞭)하고도 그 의미가 깊은 속담과 금언(金言)들이 상당히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도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俗談)이 나옵니다.
이는 십계명의 제 2계명 가운데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罪)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20:5)라고 한 구절에 근거(根據)하고 있는 것으로, 죄(罪)로 인하여 빚어진 결과의 심각성을 잘 표현하고 있어 번뜩이는 재치를 엿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이 속담(俗談)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그릇된 속담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3절).
왜 이 속담에는 그토록 부정적인 평가가 가해졌을까요?
그것은 에스겔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속담의 본의를 오해하고 자신들의 편한 대로 그릇 해석하여 하나님을 조롱(嘲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속담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 살펴봄으로써 혹 우리 안에도 내재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러한 그릇된 의식(意識)을 떨쳐 버려야 할 것입니다.
1. 자신들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하였던 것과 같이 이 속담에는 죄로 인하여 빚어지는 결과의 심각성(深刻性)을 주지시켜 죄(罪)를 멀리하도록 하기 위한 의미(意味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인간이 하나님께 심판받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자기(自己) 스스로가 범한 죄(罪)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과 애굽의 압박(壓迫)을 비롯하여 당시 자신들이 당하고 있던 갖가지 고통(苦痛)들의 근본 원인을 자기 조상들의 범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조상들과 하나님을 원망(怨望)하기만 하는 잘못을 범(犯)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나 에스겔 등 당대(當代)에 위대한 선지자들이 지적했던 대로 당시 그들이 당하고 있던 고난의 원인은 분명 스스로의 죄악(罪惡)에 있었으나 그들은 이를 결코 인정(認定)하지 않고 이러한 속담을 통해 자기 조상에게 돌리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스스로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인류 조상의 아담과 하와에게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계속되어오는 고질적(痼疾的)인 죄(罪)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창3:12, 13).
그러나 범죄의 책임을 타인에게 미루는 것은 결코 죄의 책임(責任)을 면(免)하게 해주지 못하며 오히려 거짓과 참소(讒訴)라는 사단 특유(特有)의 죄를 더할 뿐입니다(요8:44, 계12:10).
실로 범죄(犯罪)한 성도에게 필요한 행동(行動)은 책임 전가(責任 轉嫁)가 아니라 겸손한 회개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사66:2-4, 눅3:8, 행26:20).
2.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B.C. 609년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에게 패전하고 요시야 왕이 전사함으로써 남 유다 왕국의 멸망은 시간 문제(時間 問題)가 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남 유다 왕국에서 자주권(自主權)을 가진 최후의 왕(王)이었으며 그 후에 왕위에 오른 여호아하스, 여호야 김, 여호야 긴, 시드기야 등은 애굽, 혹은 바벨론의 봉신에 불과한 명목상(名目上)의 왕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왕국의 운명이 경각(頃刻)을 다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비롯한 선지자를 통(通)하여 남 유다 왕국(王國) 백성들에게 악한 길 행하기를 그치고 그들에 대한 징계(懲戒)의 도구(道具)로 세우신 바벨론에순종할 것을 계속해서 권유(勸誘)하셨습니다(렘27:12-22).
그러나 이러한 권유에 대한 응답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 바로 본문에 기록(記錄)된 "아비가 신포도(葡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俗談)입니다.
이 말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苦痛)의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지 않다는 말이며, 따라서 회개(悔改)할 것도 없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권유(勸誘)에 대한 너무도 분명(分明)한 거부(拒否)의 표현(表現)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선하신 부르심을 멸시하며 고집(固執)을 버리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진노와 그 행위에 합당한 보응(報應)으로 응답(應答)하십니다(롬2:4-8).
진정 회개치 않고 헛된 변명과 알량한 속담으로 하나님을 기만(欺瞞)하려 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殄怒)만을 불러 일으킬 뿐입니다.
3.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매도하고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섭리(攝理)의 의로움과 불의(不義)함을 논하며 그 선악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를 단호하게 이를 부인합니다(롬9:19-20).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여 불의하다고 할 수 있는 자격(資格)도, 능력(能力)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의 특정(特定)한 행동을 두고 원망 또는 불평하거나 그릇된 것이라 하여 책망하려 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고 죄악(罪惡)된 행위(行爲)도 없을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속담은 바로 이러한 그릇된 의도(意圖)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포도를 먹은 아비에게 죄(罪)가 있는데 왜 아들의 이를 시게하느냐는 것, 다시 말해 조상들이 범죄(犯罪)함으로써 남(南) 유다 왕국(王國)이 멸망(滅亡)하기에 이르렀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에게 회개를 요구하느냐고 하는 조롱(嘲弄)이며, 그러한 하나님은 불의(不義)하다고 하는 매도가 이 속담(俗談)의 본의(本意)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어처구니 없는 억지스러운 변명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여자 때문에 범죄(犯罪)하였다고 하였던 아담으로부터 시작(始作)되었던 참으로 유서(由緖)깊은 변명(辯明)입니다(창3:12).
오늘날도 지식인(知識人)이라 자처하는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변명(辯明)으로 하나님을 불의(不義)한 분이라 매도(賣渡)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順從)하기를 거부(拒否)합니다.
그러나 선악(善惡)의 궁극적 주권자, 판단자는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 뿐이십니다(시96:13)
실로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욕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판단에 겸손하게 승복하고 복종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약4:11-12).
사랑하는 성도(聖徒) 여러분!
인간의 마음에 품은 생각이 언어를 통하여 표출됩니다.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기 시다"라는 패역(悖逆)한 이스라엘의 그릇된 말과 같이 회개하라는 권유를 흘려 버리고 자신의 의(義)로움을 주장(主張)하며 자신을 불의하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불의한 분으로 조롱(嘲弄)하는 생각, 매도하는 말은 이제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서 떨쳐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반드시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고귀(高貴)한 약속(約束)을 받았으면서도 스스로의 의(義)로움을 주장(主張)하여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이제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요일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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