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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도움

[[신앙도움] ]술마시는 성도, 괜찮은가요?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13.04.21|조회수228 목록 댓글 0
술마시는 성도, 괜찮은가요?

술은 인류가 이 땅에서 살게 된 이래 가장 친근한 문화유산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고 있는 기호식품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우리네 조상들은 옛적부터 술을 즐겨마셨으며 춤을 추며 노래하는 문화와 곁들여 선조들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여왔습니다. 측정기관에서 정한 기준치마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 소비량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이 마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세청은 2005년 기준으로 전체 주류 출고량은 302만2천㎘로 우리나라 성인 1명이 평균적으로 맥주 78병, 소주 71병을 마신 것으로, 이 수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알코올중독자의 수도 100만~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며, 술 제조회사들의 활발한 마케팅으로 최근 들어 여성소비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통계숫자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술 문화에 관대한 우리나라에는 술을 즐겨 마시는 주당이 상당한 숫자에 이르며, 술을 잘 마시지 못하면 어느 조직에서나 덜 떨어진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강이 좋지 않거나 체질적으로 술을 잘 하지 못해도 술 마시는 분위기에 휩쓸려 마시게 되며, 이로 인해 건강이 나빠질 뿐만 아니라 대리운전 비용을 포함한 경제적인 지출도 상당하며 심지어 음주운전으로 낭패를 당한 사람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이처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적인 관행이나 분위기에 젖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시게 되며 강한 흡인력으로 인해 폭음하는 것도 예사입니다. 그렇지만 사회전반에 퍼진 술 문화에 친근한 정로 인해 끊고 싶어도 쉽게 끊을 수도 없는 것이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만만치 않은 현실이기도 합니다.

크리스천에게도 술은 곤혹스런 딜레마입니다. 교회를 벗어나면 쉽게 접하지만 교회에 들어오면 터부시하며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포도주가 성만찬에 쓰이지만 알코올이 들어있다 하여 포도즙으로 대체되었고, 예수님이 공생애 처음으로 행한 기적행위도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것으로 포도주는 교회와 성경에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술로 인식되어 있는 교회문화로 인해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하며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은 당황스런 문제는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개신교와 뿌리를 나눈 카톨릭 교회는 술 문화에 비교적 관대하여 신부와 신도들이 어울려 호프집에서 모임도 같이한다는 이야기는 교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간에 여전히 술은 사람들에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크리스천에게도 술을 신앙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사회와 가정생활에 여러모로 깊게 뿌리박혀 있지만 교회에 오면 쉬쉬하고 피하며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며, 목회자들도 현실을 터놓고 받아들이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연약한 믿음을 내세우며 책망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기에, 내비칠 수 없는 상처는 더욱 곪아가며 교회와 더욱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교인들이 술을 마시며 가까이 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게 교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신앙과 생활이 동떨어진 이중적인 모양새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한 삶이 동거할 수는 없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치유할 건 치유해야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평안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성경은 술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전 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찌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성경에는 포도주에 대한 언급이 220여회나 될 정도로 자주 등장합니다. 포도주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음료수로 식사 때에 꼭 필요한 음식이었으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도 바쳐지기도 하였으며, 결혼식 등의 잔치석상에서는 빠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올리브나무(감람나무)와 더불어 포도나무의 재배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포도송이를 으깨고 즙을 내어 발효시켜 만든 포도주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에 깊은 관계를 맺고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자리에서 감정을 표현해주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의 두 가지로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마치 두 얼굴의 대명사로 동전의 양면을 지닌 것처럼 사람들의 삶에 꼭 필요하였지만 그 해악에 대한 경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잠 31:6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찌어다

포도주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기쁨을 더해 줍니다. 맛있는 식사자리에서 먹는 즐거움을 배가 시켜주고, 결혼식이나 생일 등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자리에서 환희의 촉매제가 되어줍니다. 또한 술은 일상에서 지친 심신이나 삶의 괴로움을 잊게 해 줍니다. 실연의 상처나 노동의 고통, 또한 살아가면서 견디기 어려운 역경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고 극한 상실감이나 절망감을 덜어주는 것이 또한 술입니다. 술을 마시고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거나 화를 삭이며 다시 살 용기를 주어 일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그리고 치료약이 제대로 없었던 시절에는 민간요법으로 환부를 치료하는 역할을 톡톡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우리의 된장이 상처의 이차감염을 막아주고 새살을 돋게 해주던 만병통치약으로 쓰이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처럼 술은 삶에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들의 가까운 것에 있어주며 생활에 요긴하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술이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사탄의 앞잡이처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변하게 된 것은 구한말의 우리네 조상의 모습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전해준 미국의 교단은 자유주의 분위기보다는 원리적인 성경해석과 금욕적인 삶에 점수를 더 주는 장로교단이었으며, 그 당시의 우리네 선조들은 농사가 없는 겨울에는 술과 도박에 찌들어 평안한 삶을 피폐케 했으므로 이를 본 이방의 선교사들은 새로 입교한 신도들에게 경건한 삶을 강조하면서 철저하게 술을 금하였던 전통이 교회에 남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상적인 식사의 필수품으로 낮은 알코올의 술을 즐기는 술 문화가 아니라, 비교적 알코올의 도수가 높은 술을 즐겨마셨으며, 먹기 시작하면 취하도록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도 하며, 다른 놀이 문화가 별로 없는 민족이기에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기는 것이 유일한 오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과음하도록 마셔 추태를 부리다가 싸움으로 번져 평안한 삶에 걱정과 근심을 드리우게 하고,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곡물로 술을 빚거나 없는 돈을 내어 사야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배가시켜주고, 다음날 아침에도 술이 깨지 않아 성실한 노동에 지장을 주거나 꾸준한 노동력을 잃게 하는 알코올 중독 증세는 그렇지 않아도 힘들던 서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기독교국가와는 좀 더 엄격한 음주문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잠 23: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스라엘의 문화에 포도주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서 무작정 술을 관대하게 여긴 것은 아닙니다. 의인이라고 불리며 모세와 같은 상징적인 인물로 느껴지는 노아도 대낮에 술에 취해 벌거벗은 몸으로 추태를 부리다 아들에게 무안을 당하는 사건을 말하고 있으며 (창 9:21), 이사야 시절의 제사장과 선지자들도 술에 취해 재판을 굽게 하며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았으며(사 28:7), 아람 왕 벤하닷은 전쟁 중에도 신하들과 함께 술에 취해 있다가 패망하고 도망하였으며(왕상 20:16), 유다 왕 엘라는 신하의 집에서 술에 취해 있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왕상 16:9) 이처럼 술을 즐겨 마시다 취해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전쟁에 지고 하나님에게 책망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을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며 술 취함의 해악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약시대에 들어와 초대교회 시절의 교회지도자들은 술 취함을 우상숭배와 같은 악한 행위라 지목하고 천국 백성이 삼가야할 행위라고 누누이 가르쳐왔습니다.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술 마시는 것과 술 취하는 것과의 관계
성경이 밝히는 술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외면한 채 무조건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왜곡시키는 무서운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성경전체의 뜻을 도외시한 채 일부의 말씀만을 부각시켜 성경의 진리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반항심을 키우며, 이러한 교회의 이중적인 잣대가 반듯한 것을 요구하는 이성적인 젊은이들의 신앙에 찬물을 끼얹는 어리석고 미련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시대나 현시대의 서구 유럽이나 미국인의 주식은 빵과 고기에다 포도주를 곁들여 마십니다. 식사시간에 마시는 포도주는 한잔이나 많게는 두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는 취하기보다 음식을 맛을 배가시켜주고 포도주의 낮은 알코올은 잠시 기분을 좋게 해주는 정도에 불과하며 식사가 끝나면 잠깐 동안의 취기도 가볍게 사라집니다. 성경에서 밝히는 포도주의 역할은 이 정도에 불과하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걸음을 비틀거리거나 혀가 꼬여 제대로 말을 못하는 모습과는 완연하게 다른 상태를 말합니다. 포도주를 마셔 이 정도의 취기가 오르려면 한, 두잔이 아니라 한, 두병이상을 마셔야 할 것입니다. 포도주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소주나 맥주의 예를 든다고 해도, 작은 소주잔이나 물 컵 정도의 맥주 컵에 비유하면 알코올의 양의 비슷할 겁니다. 사람마다 주량은 다르겠지만, 이 정도 마시면 취하는 정도가 아니라 잠시 기분이 좋아지다가 가볍게 깨는 정도로 음주측정에도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사문화로 포도주를 곁들였지, 우리나라 사람처럼 처음부터 작심하고 취하도록 술을 마시는 문화가 아닙니다. 또한 정상적인 식사자리가 아니라도 회사에서 회식하는 자리나 친한 친구와 만나는 자리에서 분위기를 깨지 않는 정도나, 불면증이나 걱정거리로 인해 잠이 오지 않아 잠자리에서 한, 두잔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술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허용하는 목적이나 주량의 기준이 이정도까지입니다. 이 정도라면 어느 자리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가볍게 한, 두잔 마시는 것이라도 문제가 되는 것은, 술을 권하는 사회분위기와 더불어 마시면 계속 마시고 싶어지는 술의 중독성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술자리에서 술을 강권하는 문화 속에서 술을 마셨기에, 싫다고 손사래를 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료나 친구사이라면 그래도 괜찮지만 직장상사나 집안의 어르신, 조직이나 단체에서 윗분으로 모시는 분의 요청이라면 뿌리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두잔 받아 마신 것이 빌미가 되어 술을 잘 마시면서 거절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며, 권하기만 하면 술을 마신다는 전례로 남아 계속된 술자리에서 권함을 받아 마시게 돕니다. 또한 알코올이 체내로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져서 좀 더 강도 있는 쾌락을 요구하는 습성이 있어 더 많은 술을 마시고자 하는 마음을 절제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 두잔에 그치던 사람도 술의 양이 많아져서 나중에는 다른 사람과 별 차이 없이 거나하게 취해야 자리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술의 흡인력과 중독성은 다른 기호식품과 달리 아주 강하며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어쨌든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잔이라도 술을 마시게 되면 자제가 잘 되지 않으며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취하게 되어 후회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서 술자리에 참여하면 예전의 전철을 다시 밟게 되는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기 힘든 상황에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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