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고전15:29)
이 성경구절은 성경 전체 중에서 몇 개 안되는 매우 어려운 난제에 속한다.
어느 성경주석은 아마 초대교회에서 죽은 자를 위한 세례같은 이단풍습이 행하여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설을 한 책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는 사도바울이 기록한 것이며, 그러한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바울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였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카톨릭은 연옥이라는 것을 자신들이 만들어 그 성경적인 증거로 위의 성경구절을 들고 있으며 면죄부의 타당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과연 이미 죽은 자들을 위하여 받는 세례가 성경적인가?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으며,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임을 믿는다면 말이다.
성경에 있는 “죽은 자”(the dead, 헬라어: 네크로스)라는 단어의 용례를 자세히 살펴 보자.
그러면 성경에서 “죽은 자”라는 단어는 두가지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는 “육체적인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영적인 죽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시제를 살펴보면, 육체적인 죽음은 현재적 죽음이며(첫째 사망) 영적인 죽음은 미래적, 종말적인 죽음(둘째 사망), 즉 심판을 가르킨다.
다시 말하면, 영적이며 미래적인 “죽은 자”는 “죽을 자”이며, 다시 말하여 불신자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두 가지 모두 사용되어진 경우가 성경에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
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마8:22)
앞의 “죽은 자”는 영적, 미래적으로 “죽을 자”를 말하며, 뒤의 “죽은 자”는 육체적이며 현실적인 죽은 자를 가르킨다.(헬라어: 네크로스)
다시 말해서 시제로 보면 “죽을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라는 의미이며, 즉 영적으로 죽은 자들(장차 심판을 당할 자들)로 육체적인 죽음을 당한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뜻이다.
계시록에는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이 기록되어있는데(계20:6) 부활한 자들은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는다. 즉 예수를 믿고 부활한 자들은 영적으로, 종말적으로 죽는 자가 아니다.
이제 다시 고전15:29을 보자: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고전15:29)
앞의 “죽은 자”는 육체적인 죽음을 말한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산다는 것은 당연히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며, 뒤의 “죽은 자”란 미래적이고 영적인 “죽을 자”를 의미한다.
즉 우리가 받는 세례는 불신자에게 복음전파를 위한 것, 즉 "죽을 자"를 위한 세례가 되어진다는 뜻이다.
바울은 세례를 받고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가 되었었다.
고전15:27은 다음 구절로 계속되어지며 이제 그 의문은 간단히 풀려지게 된다.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겠느뇨? 또 어찌하여 우리가
위험을 무릎쓰리요? ”(고전15:29-30)
즉 바울은 죽은 자들이 다시 부활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죽을 자들(이방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았고 그들을 위하여 위험을 무릎쓰고 복음을 전하였다는 이야기가 되어진다.
실제로 바울은 “죽을 자”들인 이방인들을 위하여 위험을 무릎쓰고 복음을 전파하였던 이방인의 전도자였다.
“죽은 자(the daed)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the dead)의 하나님이 아니
요, 산 자(the living)의 하나님이라.”(마22;31-33, 막12:27. 눅20:3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육체적으로는 이미 죽어있는 자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며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셨을까?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육체적으로는 죽은 자이면서도 “죽은 자”가 되어질 수 없으며 “산 자”가 되어져야만 이 구절의 모순이 없어진다.
다시 말하여 이 문장의 “산 자”는 육체적이며 현실적인 “살아있는 자”가 아니라, 미래적이며 영적인 “살게 될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장래 죽을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장래 살 자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어찌하여 산 자(살 자)를 죽은 자(죽을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24:5)
“하나님의 산 자(살 자)와 죽은 자(죽을 자)의 재판으로 정하신
자가” (행10:42)
“산 자(살 자)와 죽은 자(죽을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
에서”(딤후4:1)
위의 구절들은 육체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산 자와 죽어있는 자를 심판한다는 뜻이 아니다.
“산 자”와 “죽은 자”는 미래적이고 영적인 “살 자”와 “죽을 자”를 의미한다.
당연히 예수께서는 보좌에서 영생과 영벌을 심판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하심을 얻었음이라.”(롬6:7)
윗구절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시체)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나 미래적으로 “죽을 자”가 믿음으로 인하여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뜻이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
도다.(히11:35)
이 구절 역시 성경 난제 중에 하나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위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별로 어렵지가 않다.
즉 “죽은 자”를 죽을 자, 영적으로 심판받을 자, 즉 “죽을 자”로 해석하면 된다.
믿음을 지킨 여자들은 자신의 남편 혹은 자식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킴으로서 “죽을 자”를 “살 자”의 부활로 받는다.(히브리서11:35의 앞구절들은 모두 믿음을 강조하는 구절들이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가족이 아닌 자기자신의 부활)을 얻고자 하여 자신이 악형을 받으면서도 구차히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잡혀온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군인과 로마관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다고 교회사에서 종종 읽을 수가 있다.
그들은 구차히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고 목숨을 택하였으나 그들은 자신의 부활을 받게 된다.
즉 그러한 믿음의 순교를 당한 사람들은 더 좋은 부활, 바로 자기자신의 부활을 하나님께 받은 사람들이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하려 함이라.(벧전4:6)
이 문장 역시 난제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죽을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라고 해석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앞문장의 문맥과도 잘 어울린다.
육체는 원죄 이후 누구나 죽게 되며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영은 죽지 않고 영생하게 된다.
이방인들이 음란과 방탕과 정욕과 우상숭배를 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같은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않은 것을 이방인들이 이상히 여겼던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를 믿어도 육체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따라서(according to men) 죽지만,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면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서(according to God) 살게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14:9)
그렇다면 왜 죽은 자와 죽을 자의 시제를 구별함이 없이 성경은 기록되어 있을까?
난 그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는다..... 정말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더군다나 각성경의 저자와 그 시대가 각각 다르지 않은가? 저자와 시대가 모두 다른 성경의 기록이 어떻게 모두들 죽은 자와 죽을 자에 대한 시제를 한결같이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마태와 누가와 바울등과 히브리서의 기자는 모두 동일하게 죽은 자와 죽을 자, 산 자와 살 자에 대한 시제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4:1)
위의 성경본문은 분명히 과거시제의 산 자와 죽은 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미 과거시제의 육체적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나타나시게 되면 궁극적으로 살 자와 죽을 자를 심판하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믿는 자의 구원에 대해서 현재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
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
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이 구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는 동사의 시제는 현재완료수동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냥 간과하면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현재 영생을 얻었고,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