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안식일 예배
유대인의 절기 중 빼놓을 수 없는 첫 번째 절기는 안식일 이다. 유대인들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많은 이방 민족과 함께 살면서 타민족에 동화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들을 지배했던 거대한 민족이나 국가들은 거의 모두 망했거나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건만 어떻게 그들은 지금까지 역사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들이 살아남은 비결은 무엇인가? 그들은 그 비결을 물을 때 서슴없이 우선 안식일을 거룩하게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타민족의 억압 하에 있었을 당시 안식일을 지키느라 고난을 많이 겪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역설적으로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켰다기보다는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현재 점점 해이해지는 주일 성수 개념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1) 안식일의 유래와 목적
유대인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데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
첫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1-17)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다. 안식일 준수 계명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속한다. 그들은 안식일을 잘 지킴으로 인간이 하나님께 행할 첫째, 둘째, 셋째 계명도 잘 지키는 것처럼 여긴다. 이 날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신 날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육체적으로 피곤하셔서 쉬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천지 창조를 완성하고 멈추신 날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식일을 축복하셨고,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도 그 날을 기억하여 하나님을 따라 제칠 일째에는 모든 창조의 역사를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자연을 피조물인 인간이 안식일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개념이다.
둘째, 유대인은 안식일을 하나님이 애굽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로 여긴다(신 5:15).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남종이나 여종이나 가축이나 문 안의 객이라도 이 날은 자유를 주기 위하여 일을 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안식일은 평화와 축복의 날이다. 유대인은 인간의 신체 구조도 일 주일 주기로 다시 소생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칠일 째에는 꼭 쉬어야 다음 일 주일을 준비하는데 지장이 없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단지 육체적으로 쉬는 날만은 아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영적 안식도 취하는 날이다. 그 날은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목적을 위하여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즐기는 잔칫날이다. 자신의 육적 쾌락을 위하여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 날은 텔레비전도 안 본다. 전화도 안 받는다. 엘리베이터도 가동되지 않는다. 마이크 설치를 할 수도 없다. 안식일에는 시내버스도 탈 수 없다. 차를 안 타기 때문에 걸어서 회당에 가야 한다. 물론 여행도 안 한다.
왜 유대인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모세 때부터 지금까지 안식일을 지키는가? 민수기의 말씀을 보자. 유대인이 출애굽 후 광야에 있을 때였다. 안식일 날 나무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를 본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잡아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고 왔다. 이 때에 판결을 못 하고 있던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말씀을 받는다(민 15:32-36).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민 15:35)
온 백성에게 본보기로 극형에 처하되 온 회중이 보는 데서 온 백성이 돌을 던져 사형 집행을 하라는 말씀이다. 지금도 이방인이 유대인의 풍습을 잘 모르고 이스라엘에 가서 안식일에 차를 타고 유대인 마을에 지나다가 그 마을 유대인들에게 일제히 돌세례를 받는 수가 종종 있다.
유대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은 비결! 그것은 바로 철저한 안식일 성수 때문이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안식일 계명을 어기면 죽이라고 강력하게 명령하셨다. 지금도 유대인은 안식일 계명을 어기면 죽는 줄 안다. 물론 지나치게 율법적인 면도 있지만 우리가 유대인의 안식일 성수에서 배울 점이 있다.
2) 안식일의 시작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해지기 전까지이다. 유대인의 하루 개념은 이방인과 다르다. 이방인은 밝은 아침부터 시작하여 캄캄한 밤까지를 하루로 계산하지만, 유대인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는 말씀처럼 어두움에서 시작하여 밝은 것으로 끝난다. 이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죽음에서 부활로의 개념이다. “처음에는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욥 8:7)는 기독교인의 소망적인 믿음이다. 낮과 저녁의 구별은 저녁에 하늘에 별 세 개가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유대인은 금요일이 되면 웬만하면 모든 일을 오전에 마친다. 대부분의 상점도 오후 4시까지는 모두 철시한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중단하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물론 사계절에 따라 철시하는 시간이 약간 다르다. 그러므로 그들의 달력에는 해지는 시간이 매일매일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은 어른이나 학생이나 안식일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에 어른은 엿새 동안 더욱 남보다 무섭게 일하고 학생은 더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엿새 간의 모든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기쁜 날이다.
3) 안식일 준비
유대인은 금요일 오후 일찍 집에 돌아가 거룩한 안식일을 준비한다. 이것은 신앙이 없는 이방인이 주중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주말에 술집으로 향하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안식일은 7일 중 하루를 성결하게(sanctify)하는 날이다. 성결하게 하기 위한 안식일 준비로 특히 주부가 바쁜 날이다. 그들은 우선 성전인 집안을 흠 없이 티 없이 청소한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깨끗하게 준비한 까만 양복과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 준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해도 걷기 시작한 아이면 예외가 없다. 그들은 만약 어린 아이들이 평상시 놀 때 입었던 너절한 옷을 입고, 어른도 작업복 차림으로 안식일에 참여한다면 안식일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하시겠느냐고 반문한다. 주부는 아이들에게 옷을 갈아입히면서 평화와 축복의 안식일을 맞을 명절 기분을 돋우어 준다.
유대인은 안식일을 의인화하여 신부 혹은 여왕을 맞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여왕은 은혜롭고, 아름답고,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분이다. 그를 매력과 순결의 시적 상징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여왕을 맞는 잔칫집 기분을 살리기 위해서 감미로운 시로 된 찬송을 많이 부른다. 실제로 금요일 저녁 회당 기도회 때에는 기도회 중 모든 회중이 일어나 뒤로 돌아서서 문으로 들어오는 안식일 신부를 환영하는 순서도 있다.
유대인은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 절기를 마치 한국인들이 추석이나 설을 준비하듯이 축제의 기분에 들떠서 준비한다. 안식일에는 자신의 옷 중 가장 좋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정결한 까만 정장으로 갈아입은 온 가족은 걸어서 해지기 바로 전 회당으로 향한다. 부모와 자녀들이 손을 잡고 회당에 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펭귄들이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과도 같다. 저녁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두 번 회당에 와서 세 번의 기도를 드린다. 한 번은 새벽에 와서 기도한다. 그리고 두 번은 해지기 30분 전에 기도를 시작하여 해가 진 후 30분 후에 끝낸다. 이때에 도합 한 시간을 기도하지만 해가 진 시간을 전후해 기도하기 때문에 두 번 기도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어떤 주부는 집안 일 때문에 집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유대인 어머니는 안식일 음식을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다. 이 날은 집에서 가장 귀한 그릇과 식탁보 및 냅킨으로 식탁을 꾸민다. 식탁에 꽃도 준비한다. 화요일에 계획을 세우고 수요일에 장을 보고 목, 금요일에 음식을 만든다. 일주일 내내 안식일 준비를 하는 셈이다. 유대인은 가정을 성전으로 여기기 때문에 항상 청결하게 청소한다. 유대인 어머니는 안식일의 온 가족을 위한 식탁 준비를 모두 마친 후 해지기 전 촛불에 불을 밝히고 가족과 민족을 위하여 기도한다.
유대인 부모들은 안식일에 자녀들과 함께 회당에 간다.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회당에 가는 일은 부모와 자녀 간의 연합 의식을 강하게 해준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자신의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의 한 산에 제사 지내러 가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창세기 2장 6절과 8절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는 말씀이다. 이는 1세와 2세의 세대 차이를 없애 준다. 당시 이삭이 번제로 바쳐졌던 장소는 현재의 예루살렘 성전 터이다. 부자가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하는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물론 당시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숫양으로 제사를 지냈다(창 22:13).
4) 안식일 예배 - 가족예배
안식일은 가정에서 어머니가 캄캄한 집안에 촛불로 어둠을 밝히는 순서로 시작된다. 해가 진 후 안식일이 시작되면 전등을 켤 수 없다. 안식일을 범하지 않기 위해 해지기 전에 타이머로 전깃불을 켜둔다. 안식일이 되면 모든 일을 쉰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안식하는 날이다.
안식일 예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한 사람씩 축복 기도를 해준다.
② 평화를 기원하는 찬송을 부른다.
③ 잠언 31장 10-31절에 있는 ‘현숙한 여인’에 대한 찬송을 불러 어머니를 기쁘게 해준다.
④ 포도주를 마셔 몸을 성결케 하는 예식을 한다.
⑤ 떡을 떼기 위하여 부엌으로 가서 손을 씻는다.
⑥ 떡을 뗀다.
⑦ 식사 중에 토라 공부를 한다.
⑧ 식탁에서 작은 공기에 담긴 물에 손가락을 씻는다.
⑨ 식사 후 감사 찬송을 부른다.
⑩ 후식을 먹는다.
⑪ 전통적인 찬송을 부른다. 이 예배는 보통 2시간 이상 걸린다. 그들은 대화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아침에 회당에 가고 집에 와서 점심 때 안식일 음식을 먹는다. 마지막 안식일 음식은 해지기 전 오후 늦게 먹는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안식일을 떠나보내고 희망의 새로운 주일을 맞이하는 예식을 치른다. 이 때에는 아버지가 촛불을 켠다. 촛불을 켜는 이유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의 첫째 날 “빛이 있으라”(창 1:3)고 하셨기 때문이다.
5) 안식일은 기뻐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주의 성일이다. 안식일에는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한다(느 8:10). 유대인에게는 안식일에는 어떤 경우라도 화를 내지 말라는 계율이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만나는 기쁜 잔칫날이기 때문에 온 가족이 충만한 기쁨의 표정으로 일관한다. 화를 내지 말고 화기애애해야 한다. 그리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삼가고 남을 비판하는 이야기도 삼가야 한다. 모든 긍정적인 이야기와 남을 칭찬하는 이야기로 꽃을 피워야 한다. 자녀나 남을 비난하는 이야기보다는 그들의 장점만을 이야기한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날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다.
6) 안식일 가족 식사 중의 성경공부
유대인은 안식일이나 모든 절기 때마다 정성스럽게 식사를 한다. 떡을 떼면서 토라를 자녀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들은 절기 식사 시간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매주 할당된 분량의 토라를 가족단위로 공부한다. 유대인의 식사 시간은 먹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먼저 성경공부와 율법을 실천하기 위한 시간으로 보아야 한다. 음식이 없는 곳에 토라도 없고, 토라가 없는 곳에 음식도 없다. 이는 식사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식탁은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사 28:8)라고 표현했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의 상이라 하더라"(겔 41:22b). 본문에 나타난 '여호와 앞의 상'은 여호와 앞의 제단을 뜻한다. 유대인은 식탁을 제단으로 여긴다. 제단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있어야 하듯이 성도의 식탁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식탁에 앉아 토라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면 모든 것이 깨끗한 식탁에서 먹는 것과 같다. 유대인에게는 절기 식사 때마다 그 절기에 맞는 순서와 교훈이 담긴 책자가 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만든 책자로 이 책자들에 의하여 각 절기들이 진행된다.
이러한 식사 시간의 성경 교육은 유대인만의 전통은 아니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도 식사 시간에 성경공부를 시켰다. 그 예로 정신과 의사이며 달라스 신학교 실천신학과 마이어 교수의 교수의 회고를 들어보자.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가정에서 매일 드린 식탁 가정 예배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다. "저녁식사 때 테이블에 둘러앉아 매일 드리는 예배였다. 이 예배 때 우리는 찬송가를 부르고 약 1장 정도의 성경 말씀을 읽은 다음 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각자 바라는 것들을 위하여 기도드린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25년 동안 나의 교육을 계속하도록 영향을 준 배경이었으며 육적인 가정보다는 영적인 가정이 되도록 돕고 싶은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 정신과 의사가 되게 해준 배경이다."
가정에서 식사 시간이 성경 공부 시간인 것은 초대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신약의 초대 교회 때에도 가정마다 떡을 떼며 사귐의 시간을 가졌다(행 20:7,11). 이 시간은 물론 주님의 성찬식으로도 쓰였지만 초대 교인들이 유대인처럼 식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가정에서 식사 시간에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성서적이다. 이런 좋은 전통이 현대에 들어오면서 퇴색해졌다. 이제 우리도 가정마다 식사 시간에 성경공부 시간을 갖는 전통을 세워가야 한다.
* 각주
1) 안식일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현용수 교수의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이 몫이다>(1권)(서울; 도서출판 쉐마, 2005), pp.364-374에서 인용했다.
2) 정통파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전화도 안 받고 가스렌지 불도 안 켜는 것은 유명하다. 안식일에는 호텔에서 마이크설치를 해주지 않으며, 엘리베이터도 운행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있다고 배려하는 것은 조금도 없다. 안식일에 TV를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통파 유대인의 집에는 아예 TV가 없는 경우도 많다. 현용수 교수의 <부모여 자녀를 제자삼아라>(서울; 아름다운세상, 2002), pp.420-423에는 김선중 교수가「쉐마목회자클리닉」에서 받은 충격을 기록했다. 여기 보면 TV없는 유대인 가정이 준 충격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다.
3) 현용수 교수,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의 몫이다>(2권)(서울; 도서출판 쉐마, 2005), p.71
4) Ibid., pp.67-70
* 참고서적
주승중, <은총의 교회력과 설교>(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2006)
소강석, <믿음을 자손 대대로 전수하라>(서울, 쿰란출판사, 2005)
현용수, <부모여 자녀를 제자삼아라>(서울, 아름다운세상, 2002)
현용수,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1,2,3권)(서울, 쉐마, 2005)
유대인의 절기 중 빼놓을 수 없는 첫 번째 절기는 안식일 이다. 유대인들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많은 이방 민족과 함께 살면서 타민족에 동화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들을 지배했던 거대한 민족이나 국가들은 거의 모두 망했거나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건만 어떻게 그들은 지금까지 역사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들이 살아남은 비결은 무엇인가? 그들은 그 비결을 물을 때 서슴없이 우선 안식일을 거룩하게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타민족의 억압 하에 있었을 당시 안식일을 지키느라 고난을 많이 겪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역설적으로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켰다기보다는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현재 점점 해이해지는 주일 성수 개념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1) 안식일의 유래와 목적
유대인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데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
첫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1-17)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다. 안식일 준수 계명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속한다. 그들은 안식일을 잘 지킴으로 인간이 하나님께 행할 첫째, 둘째, 셋째 계명도 잘 지키는 것처럼 여긴다. 이 날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신 날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육체적으로 피곤하셔서 쉬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천지 창조를 완성하고 멈추신 날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식일을 축복하셨고,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도 그 날을 기억하여 하나님을 따라 제칠 일째에는 모든 창조의 역사를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자연을 피조물인 인간이 안식일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개념이다.
둘째, 유대인은 안식일을 하나님이 애굽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로 여긴다(신 5:15).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남종이나 여종이나 가축이나 문 안의 객이라도 이 날은 자유를 주기 위하여 일을 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안식일은 평화와 축복의 날이다. 유대인은 인간의 신체 구조도 일 주일 주기로 다시 소생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칠일 째에는 꼭 쉬어야 다음 일 주일을 준비하는데 지장이 없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단지 육체적으로 쉬는 날만은 아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영적 안식도 취하는 날이다. 그 날은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목적을 위하여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즐기는 잔칫날이다. 자신의 육적 쾌락을 위하여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 날은 텔레비전도 안 본다. 전화도 안 받는다. 엘리베이터도 가동되지 않는다. 마이크 설치를 할 수도 없다. 안식일에는 시내버스도 탈 수 없다. 차를 안 타기 때문에 걸어서 회당에 가야 한다. 물론 여행도 안 한다.
왜 유대인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모세 때부터 지금까지 안식일을 지키는가? 민수기의 말씀을 보자. 유대인이 출애굽 후 광야에 있을 때였다. 안식일 날 나무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를 본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잡아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고 왔다. 이 때에 판결을 못 하고 있던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말씀을 받는다(민 15:32-36).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민 15:35)
온 백성에게 본보기로 극형에 처하되 온 회중이 보는 데서 온 백성이 돌을 던져 사형 집행을 하라는 말씀이다. 지금도 이방인이 유대인의 풍습을 잘 모르고 이스라엘에 가서 안식일에 차를 타고 유대인 마을에 지나다가 그 마을 유대인들에게 일제히 돌세례를 받는 수가 종종 있다.
유대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은 비결! 그것은 바로 철저한 안식일 성수 때문이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안식일 계명을 어기면 죽이라고 강력하게 명령하셨다. 지금도 유대인은 안식일 계명을 어기면 죽는 줄 안다. 물론 지나치게 율법적인 면도 있지만 우리가 유대인의 안식일 성수에서 배울 점이 있다.
2) 안식일의 시작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해지기 전까지이다. 유대인의 하루 개념은 이방인과 다르다. 이방인은 밝은 아침부터 시작하여 캄캄한 밤까지를 하루로 계산하지만, 유대인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는 말씀처럼 어두움에서 시작하여 밝은 것으로 끝난다. 이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죽음에서 부활로의 개념이다. “처음에는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욥 8:7)는 기독교인의 소망적인 믿음이다. 낮과 저녁의 구별은 저녁에 하늘에 별 세 개가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유대인은 금요일이 되면 웬만하면 모든 일을 오전에 마친다. 대부분의 상점도 오후 4시까지는 모두 철시한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중단하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물론 사계절에 따라 철시하는 시간이 약간 다르다. 그러므로 그들의 달력에는 해지는 시간이 매일매일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은 어른이나 학생이나 안식일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에 어른은 엿새 동안 더욱 남보다 무섭게 일하고 학생은 더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엿새 간의 모든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기쁜 날이다.
3) 안식일 준비
유대인은 금요일 오후 일찍 집에 돌아가 거룩한 안식일을 준비한다. 이것은 신앙이 없는 이방인이 주중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주말에 술집으로 향하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안식일은 7일 중 하루를 성결하게(sanctify)하는 날이다. 성결하게 하기 위한 안식일 준비로 특히 주부가 바쁜 날이다. 그들은 우선 성전인 집안을 흠 없이 티 없이 청소한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깨끗하게 준비한 까만 양복과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 준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해도 걷기 시작한 아이면 예외가 없다. 그들은 만약 어린 아이들이 평상시 놀 때 입었던 너절한 옷을 입고, 어른도 작업복 차림으로 안식일에 참여한다면 안식일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하시겠느냐고 반문한다. 주부는 아이들에게 옷을 갈아입히면서 평화와 축복의 안식일을 맞을 명절 기분을 돋우어 준다.
유대인은 안식일을 의인화하여 신부 혹은 여왕을 맞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여왕은 은혜롭고, 아름답고,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분이다. 그를 매력과 순결의 시적 상징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여왕을 맞는 잔칫집 기분을 살리기 위해서 감미로운 시로 된 찬송을 많이 부른다. 실제로 금요일 저녁 회당 기도회 때에는 기도회 중 모든 회중이 일어나 뒤로 돌아서서 문으로 들어오는 안식일 신부를 환영하는 순서도 있다.
유대인은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 절기를 마치 한국인들이 추석이나 설을 준비하듯이 축제의 기분에 들떠서 준비한다. 안식일에는 자신의 옷 중 가장 좋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정결한 까만 정장으로 갈아입은 온 가족은 걸어서 해지기 바로 전 회당으로 향한다. 부모와 자녀들이 손을 잡고 회당에 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펭귄들이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과도 같다. 저녁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두 번 회당에 와서 세 번의 기도를 드린다. 한 번은 새벽에 와서 기도한다. 그리고 두 번은 해지기 30분 전에 기도를 시작하여 해가 진 후 30분 후에 끝낸다. 이때에 도합 한 시간을 기도하지만 해가 진 시간을 전후해 기도하기 때문에 두 번 기도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어떤 주부는 집안 일 때문에 집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유대인 어머니는 안식일 음식을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다. 이 날은 집에서 가장 귀한 그릇과 식탁보 및 냅킨으로 식탁을 꾸민다. 식탁에 꽃도 준비한다. 화요일에 계획을 세우고 수요일에 장을 보고 목, 금요일에 음식을 만든다. 일주일 내내 안식일 준비를 하는 셈이다. 유대인은 가정을 성전으로 여기기 때문에 항상 청결하게 청소한다. 유대인 어머니는 안식일의 온 가족을 위한 식탁 준비를 모두 마친 후 해지기 전 촛불에 불을 밝히고 가족과 민족을 위하여 기도한다.
유대인 부모들은 안식일에 자녀들과 함께 회당에 간다.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회당에 가는 일은 부모와 자녀 간의 연합 의식을 강하게 해준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자신의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의 한 산에 제사 지내러 가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창세기 2장 6절과 8절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는 말씀이다. 이는 1세와 2세의 세대 차이를 없애 준다. 당시 이삭이 번제로 바쳐졌던 장소는 현재의 예루살렘 성전 터이다. 부자가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하는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물론 당시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숫양으로 제사를 지냈다(창 22:13).
4) 안식일 예배 - 가족예배
안식일은 가정에서 어머니가 캄캄한 집안에 촛불로 어둠을 밝히는 순서로 시작된다. 해가 진 후 안식일이 시작되면 전등을 켤 수 없다. 안식일을 범하지 않기 위해 해지기 전에 타이머로 전깃불을 켜둔다. 안식일이 되면 모든 일을 쉰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안식하는 날이다.
안식일 예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한 사람씩 축복 기도를 해준다.
② 평화를 기원하는 찬송을 부른다.
③ 잠언 31장 10-31절에 있는 ‘현숙한 여인’에 대한 찬송을 불러 어머니를 기쁘게 해준다.
④ 포도주를 마셔 몸을 성결케 하는 예식을 한다.
⑤ 떡을 떼기 위하여 부엌으로 가서 손을 씻는다.
⑥ 떡을 뗀다.
⑦ 식사 중에 토라 공부를 한다.
⑧ 식탁에서 작은 공기에 담긴 물에 손가락을 씻는다.
⑨ 식사 후 감사 찬송을 부른다.
⑩ 후식을 먹는다.
⑪ 전통적인 찬송을 부른다. 이 예배는 보통 2시간 이상 걸린다. 그들은 대화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아침에 회당에 가고 집에 와서 점심 때 안식일 음식을 먹는다. 마지막 안식일 음식은 해지기 전 오후 늦게 먹는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안식일을 떠나보내고 희망의 새로운 주일을 맞이하는 예식을 치른다. 이 때에는 아버지가 촛불을 켠다. 촛불을 켜는 이유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의 첫째 날 “빛이 있으라”(창 1:3)고 하셨기 때문이다.
5) 안식일은 기뻐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주의 성일이다. 안식일에는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한다(느 8:10). 유대인에게는 안식일에는 어떤 경우라도 화를 내지 말라는 계율이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만나는 기쁜 잔칫날이기 때문에 온 가족이 충만한 기쁨의 표정으로 일관한다. 화를 내지 말고 화기애애해야 한다. 그리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삼가고 남을 비판하는 이야기도 삼가야 한다. 모든 긍정적인 이야기와 남을 칭찬하는 이야기로 꽃을 피워야 한다. 자녀나 남을 비난하는 이야기보다는 그들의 장점만을 이야기한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날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다.
6) 안식일 가족 식사 중의 성경공부
유대인은 안식일이나 모든 절기 때마다 정성스럽게 식사를 한다. 떡을 떼면서 토라를 자녀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들은 절기 식사 시간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매주 할당된 분량의 토라를 가족단위로 공부한다. 유대인의 식사 시간은 먹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먼저 성경공부와 율법을 실천하기 위한 시간으로 보아야 한다. 음식이 없는 곳에 토라도 없고, 토라가 없는 곳에 음식도 없다. 이는 식사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식탁은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사 28:8)라고 표현했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의 상이라 하더라"(겔 41:22b). 본문에 나타난 '여호와 앞의 상'은 여호와 앞의 제단을 뜻한다. 유대인은 식탁을 제단으로 여긴다. 제단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있어야 하듯이 성도의 식탁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식탁에 앉아 토라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면 모든 것이 깨끗한 식탁에서 먹는 것과 같다. 유대인에게는 절기 식사 때마다 그 절기에 맞는 순서와 교훈이 담긴 책자가 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만든 책자로 이 책자들에 의하여 각 절기들이 진행된다.
이러한 식사 시간의 성경 교육은 유대인만의 전통은 아니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도 식사 시간에 성경공부를 시켰다. 그 예로 정신과 의사이며 달라스 신학교 실천신학과 마이어 교수의 교수의 회고를 들어보자.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가정에서 매일 드린 식탁 가정 예배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다. "저녁식사 때 테이블에 둘러앉아 매일 드리는 예배였다. 이 예배 때 우리는 찬송가를 부르고 약 1장 정도의 성경 말씀을 읽은 다음 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각자 바라는 것들을 위하여 기도드린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25년 동안 나의 교육을 계속하도록 영향을 준 배경이었으며 육적인 가정보다는 영적인 가정이 되도록 돕고 싶은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 정신과 의사가 되게 해준 배경이다."
가정에서 식사 시간이 성경 공부 시간인 것은 초대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신약의 초대 교회 때에도 가정마다 떡을 떼며 사귐의 시간을 가졌다(행 20:7,11). 이 시간은 물론 주님의 성찬식으로도 쓰였지만 초대 교인들이 유대인처럼 식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가정에서 식사 시간에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성서적이다. 이런 좋은 전통이 현대에 들어오면서 퇴색해졌다. 이제 우리도 가정마다 식사 시간에 성경공부 시간을 갖는 전통을 세워가야 한다.
* 각주
1) 안식일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현용수 교수의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이 몫이다>(1권)(서울; 도서출판 쉐마, 2005), pp.364-374에서 인용했다.
2) 정통파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전화도 안 받고 가스렌지 불도 안 켜는 것은 유명하다. 안식일에는 호텔에서 마이크설치를 해주지 않으며, 엘리베이터도 운행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있다고 배려하는 것은 조금도 없다. 안식일에 TV를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통파 유대인의 집에는 아예 TV가 없는 경우도 많다. 현용수 교수의 <부모여 자녀를 제자삼아라>(서울; 아름다운세상, 2002), pp.420-423에는 김선중 교수가「쉐마목회자클리닉」에서 받은 충격을 기록했다. 여기 보면 TV없는 유대인 가정이 준 충격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다.
3) 현용수 교수,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의 몫이다>(2권)(서울; 도서출판 쉐마, 2005), p.71
4) Ibid., pp.67-70
* 참고서적
주승중, <은총의 교회력과 설교>(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2006)
소강석, <믿음을 자손 대대로 전수하라>(서울, 쿰란출판사, 2005)
현용수, <부모여 자녀를 제자삼아라>(서울, 아름다운세상, 2002)
현용수,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1,2,3권)(서울, 쉐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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