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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저자 : Jack R. Taylor 텍사스주 알리슨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침례교인으로 자랐다. 그는 19살에 시몬즈 대학교를 졸업하고 포트워스에 있는 서남침례회 신학교를 졸업했다. 제1장 찬양의 관점 찬양은 올바른 관점의 결과이다. 찬양은 아르키메데스가 주장한 지렛대의 원리와 관련이 있는데, 지렛대에 받침점이 있어야 하고 지렛대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찬양은 지렛대에 해당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은 지렛대의 받침점에 해당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어두움에 처해 있을때 찬양의 핵심에 도말하게 되는데, 요한은 그 가운데서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이 일후 요한은 열린문을 본다. 그 문은 이 땅과 저 하늘나라 사이에 있는 문이요, 가시적 실재 세계와 불가시적 실재 세계 사이에 있는 조리게인 것이다. 요한은 주님의 초청을 받고 그 문에 들어가 어마 어마한 찬양 행사 속에 있게 된다. 기묘한 생물들이 그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할때 장로들 엎드려 찬양을 드린다. 찬양이 결여 되어 있음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관점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 그분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찬양할 때 우리는 하늘나라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찬양 속에서 역시 편안함을 느끼신다. 따라서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찬양의 관점이란 이 우주의 왕실과 그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을 보는 눈 그 자체인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찬양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본연의 자세인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다스리시네! 우리 하나님이 다스리시네! 제2장 찬양의 예고편 이 땅은 하나님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에 찬양으로 감싸 있었다. 이 때에 창조된 모든 것들은 찬양의 합창에 함께 가담하였다. 하나님은 사랑의 실험실을 지으시고 자기 자신의 영원한 가족을 만드실 참이었다. 이 태초에 온 세상은 찬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리고 모든 만물은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조의 목적은 찬양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찬양과 함께 시작되었듯이 찬양이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이 살고 계시는 거처이다. 하나님은 찬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는 찬양중에 보좌에 앉으시고 찬양중에 그 전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존재하시는 분이지만 모든 곳에서 그분은 편안함을 느낄 때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찬양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그 보답으로 받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축복이다. 하나님은 찬양을 통해서 축복을 받으시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마음에 이보다 더 복된 생각은 없으리라고 확신한다. 찬양은 곧 우리의 힘이요 힘은 찬양이라는 것이다(시 8:2). 하나님이 가장 단순한 어린 아이와 젓먹이들의 입에까지 찬양을 세워주신 것은 찬양이야말로 본질적으로 마귀를 그 추격일로에서 꼼짝 못하게 저지시키는 것이다. 사단과 귀신들은 찬양이 있은 후에는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제3장 찬양의 과정 찬미의 제사는 어떤 하나의 관점을 드리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나 여러 의견들과는 상관되게 나가도록 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역대하 20장을 다루되 찬양이 역사하는 과정이라는 차원에서 다루려고 한다. 여호사밧의 찬양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하나님은 높은 위치에 계신다. 그리고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에 대한 회상, 하나님의 가능케하시는 능력에 대한 의탁과 함께, 찬양이 역사하는 기본적인 과정이 있다. 문제의 핵심부터 출발과 인간적인 방법에 대한 모든 신뢰 중단 그리고, 하나님께만 온전히 관심 집중, 하나님의 진리 선포,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위기로 부터 건짐과 보상을 받게된다. 이것들은 여호사밧에게 적용되어 그 효과가 있었고, 이제 당신에게 유효할 것이다. 찬양이 열쇠이다. 찬양이 역사하는 기본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는 문제의 핵심에서부터 출발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미화해 보려는 그 어떤 시도도 없었다. 그 무엇을 첨가하거나 합리화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했다. 둘째로, 그는 인간적인 방법에 대한 모든 신뢰를 중단하였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육신적인 것은 자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우리의 유일한 힘의 원천으로 바라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에게만 온전히 관심을 집중하여 매어 달렸다. 육신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의 올바른 행동을 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찬양은 문제중심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중심도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 중심이다. 넷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계속 기다렸다(대하 20:13). 이것은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항상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그분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면 된다. 그러한 노력에서는 시간 낭비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다섯째로,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였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계 사이에 매우 중대한 일이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이었다. 백성들과 지도자 간에는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응답에 대한 완전한 의견 일치를 이루어졌다. 그들의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큰 소리로 “아멘”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섯째와 마지막은 그들에게는 순종해야할 의무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들은 위기로부터 많은 보물을 거두어 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찬양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행동이며, 찬양에 대한 보상이다. 찬양은 우리로 하여금 생존하게 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제4장 찬양에 대한 약탈 우리의 영적방어는 계속 쇠약해져 왔다. 영적인 쇠퇴가 온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금 대신에 놋에 만족하여 왔다. 그러나 금은 놋과는 다르다. 거의 모든 사회에서 금은 가치의 기준이며, 수세기동안 그래왔다. 찬양도 그와같은 것이다. 하늘나라는 끊임없이 찬양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방패는 전투에서 방어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금 방패들은 전쟁이 아니라 징표를 위한 것이다. 방패들은 영화와 축복의 상징이엇다. 그 방패들은 의식적인 행사나 축제일, 또는 왕이 국빈들과 향차할 때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삭이 와서 금 방패들을 포함하여 그 밖의 값진 보물들을 빼앗아 갔고, 금 방패대신 놋방패를 만들었다. 오래된 배인 교회는 시간이라는 대양 위를 항해하다가 해적의 회생물이 되었다. 마귀가 찬양을 약탈해 간 것이다. 우리는 금 대신에 놋으로 만족하여 왔다. 교회가 그러한 상태로 있는 것은 개인적인 안일과 타협을 조장하는 것이다. 교회에게 있어서 찬양은 좋은 것과 축복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방어를 위한 우리의 중요한 무기이다. 찬양을 회복하기 위해 개인적인 회개가 필요하다. 그것을 회복하기만 하면 수 많는 문제 거리들이 해결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 주실 것이다. 우리의 삾에 있어서 개인적 혹은 집단적으로 예베할 때 참 에배의 금을 회복하는 일의 자극제가 되도록 해야한다.. 제5장 찬양의 대상 “해 돋는데서부터 해 지는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시 113:3)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구약성서에서는 여러가지의 하나님의 이름들이 사용되어 지고 있다. 1. 엘로힘. 엘로힘은 성경에서 2,700회 이상 사용되어 졌다. 그 어원은 “위대하고, 전능하며, 두려운 자”라는 뜻을 가진 엘(EL)이라고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 이름하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크고 놀라운 약속들을 하신 것이다(창 17:1, 35:11). 2. 엘 샤다이. 샤다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에서 48회 나오며 이 말은 항상 “전지전능한”의 뜻으로 번역된다. 우리를 완전 무결하게 양육하고 만족시키시며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전능하신 자를 의미한다. 3. 아도나이. 아도나이는 구약에서 약 300회 출현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호칭하기 위해 사용될 때 이 낱말은 거의 항상 복수형으로 쓰여진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주되심(Lordship)과 우리 편에서는 청지기됨과 순종을 의미한다. 4. 여호와 여호와는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가장 자주 사용된 이름이다. 이 호칭은 6,800회 이상이나 사용되어 졌다. 이는 “스스로 있는 자”를 말한다. 이는 항상 살아있는 분이시며, 유일하게 살아계시는 분이고,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자 자신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밖에 다른 이름들로는 준비하시는 하나님으로서의 “여호와 이레”, 치료하시는 하나님으로서의 “여호와 로페”, 깃발, 승리의 하나님인 “여호와 닛시”, 거룩케하는 하나님으로서의 “여호와 카데쉬”, 평강의 하나님으로서의 “여호와 샬롬”,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라는 “여호와 로히”, 공의로운 하나님으로서의 “여호와 찌드케누”,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의미의 “여호와 삼마” 등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이 모든 사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예수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와 “아멘”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로 이 모든것이 되신다. 제6장 찬양으로 인도하는 길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슈ㅜ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 16-18) 성경은 기쁨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은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는 기뻐하는 사람들 이었다. 그러므로 찬양을 위한 준비로서 내가 처음 해야 할 것은 항상 기뻐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또한, 늘 쉬지말고 기도하도록 해야 한다. 한시도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늘 기도하는 마음 가짐으로 있는 것은 즐거운 가능성이다. 이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습관을 개발하는 문제이다. 규칙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렇게 할 때 우리가 항상 기도하는 마음의 틀안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 진다.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자세를 개발하여 갖추지 않고서는 항상 주님을 찬양할 수 없다. 감사하고 싶을 때 감사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다. 아부 느낌도 없지만 감살하는 것은 믿음인 것이다. 찬양으로 인도하는 길을 선택하라. 제7장 찬양의 방식 이사야서 6장의 광경은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찬양방식에 대해 알려 줄 수 있는 것이다. 웃시야 왕은 선지자의 가르침과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왕이었고 이 때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는 축복을 누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웃시야왕은 그의 성공의 근원을 망각하고 말았다. 즉 그에게 부귀영화를 줄 수도 있고, 또 앗아갈 수도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예배의 대상은 지극히 위엄하여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즉,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예배하는 자들은 스랍들의 경외하는 예배의 모습은 우리에게 예배 의식에 대한 중대한 암시를 한다. 예배 광경을 목격한 자들은 처음에 이사야의 방관자의 위치에 있었으나 참된 예배의 광경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였으며, 정결하게 씻음을 받았고, 부르심의 소리를 듣고 자신을 헌신함으로 예배에 참여 한다. 하늘나라의 찬양을 하는 데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암시해 주는 세가지 압운적인 말이 있다. 그 첫 번째 말은 화(禍 : woe)이다. 이것은 깨달음과 고백의 말이다. 찬양의 분위기에서는 언제나 올바른 자기평가가 선행되기 마련이다. 두 번째 말은 보라(lo)이다(사 6:7). 이사야는 전능하신 하나님, 곧 왕을 뵈었고, 그것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 주었다. 세 번째 말은 가라(go)이다. 이것은 사역을 뜻하는 말이다. 거룩한 사역으로 귀착되지 않는 찬양은 진정한 찬양이 아니었다. 내가 믿기로는 이 경배와 찬양의 예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늘 찬양되어 지고 있다. 여원하고 불가시적인 실재의 영역에서는 하루의 일과가 찬양인 것이다. 우리가 찬양할 때는 이 영원과 통하고 있는 셈이다. 제8장 찬양을 뜻하는 핵심 단어(할렐루야! 구약성서의 할렐루야) 구약에서 찬양을 뜻하는 말로 ‘할랄’ 이란 말이 가장 많이 쓰였다. 이 뜻은 “자랑하다”, “뻐기다”, “칭찬하다”, “어리석게 보일 정도까지 자랑하다”라는 뜻이 있다. 또 하나는 ‘야’ 라는 말로서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이 축소된 말이다. 따라서 할렐루야는 하나님에 대해 열정적인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 바생적인 외침이 되었다. 첫째, 할렐루야는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를 나타낸다. 그것은 창조에 있어서의 목적이 있다. 시편 104편에는 그는 자신을 빛으로 감싸시고 하늘울 장막같이 펼치시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시편104편의 나머지 부분은 물과 풀, 짐승과 새들, 달과 해, 그리고 바다의 생물들과 땅과 산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시편105편과 106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삶 가운데 자신의 주관권을 이용하신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시편135편에서는 또다시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에서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댜해 증언하고 있다. 시련 148편은 그야말로 창조물에 대한 출석 점검이라고 할 두 있다. 시편 148연의 나머지 부분은 땅 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하는 내용이다. 둘째, 우리는 할렐루야가 언급된 시편들 속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보게 된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들은 시편 105편에서 하나님의 행하신 기사와 이적과 심판을 기억하도록 촉구받고 있다.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또 끝을 냊는 시편 106편은 이스라엘의 편력을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112편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계명을 크게즐거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까지 확대되어 있음을 복수 있다. 마지막 다섯 편의 시편에 열 번이나 할렐루야가 울려퍼진다,. 마침내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제9장 찬양을 뜻하는 핵심 단어(신약성서의 할렐루야 ) 역사적 배경 ; 계 17장에서 요한은 음녀인 여자가 붉은색의 짐승 위에 앉아 있는 환상을 보았다. 계18장에는 전세계를 의미하는 바벨론이 완전히 파괴되는것이 기록되어 있다. 바벨론의 생산은 종식되었고 땅의 상인들은 그것의 멸망에 대해 울게 된다. 완성된 구원을 뜻하는 할렐루야 ; 하나님께만 있는 속성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완성된 것이다 . 구원은 완전한 해방으로 구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드러내셨으며 그의 능력의 팔은 막강하였다. 그의 공의는 이 땅 위에 계속행사되어 왔다 자기 백성에 대한 구원사역을 시작하신 이가 그것을 완성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완전한 보상을 뜻하는 할렐루야 ; 모든 정의 체계는 보상과 보답의 문제를 다룬다. 영원한 공평의 저울은 완전한 퍙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하늘의 큰 무리가 이 세상 즉 음녀가 받게 될 그 보응을 복 때, 그들은 기뻐하며 “ 할렐루야”를 외친다. 확인된 통치를 뜻하는 할렐루야 :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에 대한 신선한 재현과 함께 그의 통치권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은 하늘과 땅으로부터 커다란 찬양의 외침을 자아내게 한다. 절정을 이룬 관계를 뜻하는 할렐루야 :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한마디의 할렐루야는 다가오는 역사의 위대한 사건을 위해 남겨둔 바 되었으니, 이 사건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 때이며 신부는 준비되엇다. “할렐루야 합창” ; 헨델은 그가 시련에 있던 중 찰스 제너스의 오라토리오를 보고 큰 영감을 얻어 작곡을 시작한다. 그곡이 연주될때 왕이 기립한 사건 이후로 이 곡이 연주될 때면 사람들은 일어선다. 제10장 찬양에 대한 히브리어 연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성서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그 원형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 할랄 : 이 단어는 구약성서에서 아흔아홉번 사용되었는 데, 찬양으로 번역된 다른 어떤 단어보다도 많이 사용되었다 도한 거의 삼분의 일이 시편에 나와 있으며, 찬양하라는 명령으로 사용되었다. 이 낱말은 칭찬하다, 자랑하다, 축하하다의 뜻이 있다. ▷ 할랄을 사용한 주요 구절들 : 역대상 16:4, 시편 56:3-4,10. 84:4 , 102:18, 113:3, 119:164. ▷ 야다 : 야다 란 구약성서에서 한양이란 말로 번역 되는것 중 두번째로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말은 ‘두 손을 들어 경배하다’, ‘두손을 치켜 올리다’, ‘하나님게 감사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종종 ‘감사’로 번역되기도 한다. ▷ 야다를 사용한 중요 구절들 : 창세기 29:35, 역대하20:21, 시편9:1, 52:9; 107:8, 15, 21, 31; 139:14; 145:10. ▷ 바락 : 이것은 수약성서에 나오는 찬양과 관련된 낱말 중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해리스는 이 말은 ‘무릎을 꿇다’ ‘송축하다’ ‘경의를 표하다’등의 의미를 설명한다. ▷ 테힐라 : 이 낱말은 구약성서에서 찬양에 관한 낱말 중 네번쩨로 많이 사용된 것으로서 50번 이상 나타난다. 이것은 할랄에서 파생된 것이며 일반적으로 할랄을 노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 낱말은 ‘노래하다’ ‘칭찬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음악 특히 노래하는 것을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 자마르 : 이 단어는 거의 시가에서만 사용되었다. 그 뜻은 ‘악기의 줄을 퉁기다’ ‘노래하다’, ‘찬양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음악적인 낱말이며 주로 음악의 즐거운 표현에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 토다 : 이 말은 헌납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으며, ‘찬이의 제사’, ‘감사’, ‘감사제물을 드기기 위해 손을 내밀다’의 뜻으로 새길 수 있다. 적어도 한 경우에 있어서 이 낱말은 북가시적인 것에 관련되어 사용된 듯하다. 그것은 믿음의 행위로서 그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기 위해 역사하시는 것이다. ‘토다’는 아직 승리롸 해결 또는 해답을 보지 못한 그러한 찬양의 형태를 말하는것이다 ▷ 사바흐 : 이 말은 ‘외치다’, ‘말하다’, ‘칭찬하다’의 뜻을 가진다. 이것은 찬양의 감탄적인 형태이다 ‘외치다’라는 뜻의 이 특정어는 몇 군데서만 ‘찬양’으로 번역되어 있다. 제11장 찬양에 대한 헬라어 연구 ▷ 아이네시스, 아이노스, 아이네오 : 이들은 하나님쎄 대한 찬양의 뜻으로만 사용되었다. 70인역 헬라어 성경에서는 구약의 처음 다섯권을 보면, 아이네오는 찬양을 뜻하는 히브리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인 할랄 과 야다에 해당되는 것이다 . 흠정역 성경에서는 이낱말이 사용된 곳마다 찬양으로 번역되었다. ▷ 독사(명사), 독사조(동사) : 이 말은 ‘영광’, ‘영광을 돌리다’ 로 번역된다. 새 국제 번역판 성경에서는 때때로 이것을 한양 혹은 찬양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말은 ‘여기다’, ‘가정하다’, 는 뜻을 지닌 말에서 온것이다. ▷ 에파이놋그(명사), 에파이네오(동사) : 이것은 찬양이란 단어 앞에 ‘~에게’라는뜻의 접두어 ‘에피’가 붙은 말이다 ▷ 율로게토스, 율로기아 : 이것은 사람에 대해서는 쓰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대해서만 사용되는 말이다. 이 말은 ‘복된’ ‘찬양받으신’ 등의 뜻이다.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바룩’으로서 일반적으로 ‘복된’, ‘축복’, ‘축복하다’로 번역되는 것들이다. ▷ 엑소몰로게오마이 : 이것은 ‘고백하다’ 라는 뜻의 ‘호몰로게오’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 낱말은 ‘ 공공연히 그리고 자유롭게 고백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 휨네오, 휨노스 : 이 말은 단순히 ‘찬양의 노래’ 라는 뜻인데, 단 한번의 경우에서만 ‘찬양’으로 번역되었다. ▷ 메갈뤼노 : 이 말의 의미는 ‘크게’,‘위대하게’,‘길게 만들다’ 혹은 ‘확대하다’이다. ▷ 프살로(동사),프살모스(명사) : 이 낱말은 ‘영적인 무아의 상태에서 찬양의 노래를하다’, ‘가락을 짓다’ 라는의미이다. 제12장 찬양을 방해한 인물들과 문제들 찬양에도 방해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귀는 그것을 경멸하며 그것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자기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다. 우선 찬양을 방해하거나 거부한 사람들의 예를 성경에서 몇가지 찾아 다루어 보고자 한다. ▷ 미갈 : 미갈은 다윗의 아내이며 사울의 딸이었다. 미갈은 껑충껑충 뛰며 춤추고, 노래까지 했을 다윌을 보고, 그녀는 마음으로 다위을 경멸하였다. 미갈과 다윗이 맞부딪치는 장면은 사무엘하6;20-22에 기록되어 있다. 가슴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한사람들과는 상이한 평가와 판단을 하게 마련이다. 그들의 반응은 그들의 솔직한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으나 그것이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의지를 프트러 놓아서는 안 된다. ▷ 아달랴 : 아달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서슴지 않고 살육을 감행했던 사악한 여왕이다. 아달랴는 찬양과 불의가 오랫동안 병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찬양에 반발한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그 다른것을 순식간에 멸절시켜버릴 것이다 . 찬양은 원래 불의한 권력이 있는 곳에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며, 찬양에 의해 그 위치가 위협받는 사람들로부터 격렬한 도전을 받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열왕ㄱ하 11장에 수록되어있다. ▷ 욥의 부인 : 욥의 부인은 고난 중에 있을때 욥과 하나님에 대해 악담을 한 여인이다. 찬양에 반발한 욥의 부인은 무지함과 근시안적인 안목을 가졌기 때문에 눈앞에 닥ㅊ인 상황을 넘어서서 사랑의 하나님이 지닌 권세를 복 수 없었던 것이다. ▷ 바리새인들 : 바리새인들은 찬양이 울려퍼지는 곳마다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이비 종교인들은 언제나 찬양에 반발하는 것이다. ▷ 숨겨진 죄악들 : 신자의 삶 가운데 있는 고백되지 않은 죄 때문에 찬양은 제한을 받게 도니다. 만일 찬양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그 무엇을 느낀다면 , 아직 고백하지 않은 죄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 무지 : 찬양의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는 만연되어 있다. 목회자들에게 있어 올바른 찬양의 인식이 선행될때 교인들의 삶이 찬양의 삶이 될것이다. ▷ 자만심 : 찬양은 모든 종류의 자만심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자만심은 순수하고도 성서적인 찬양에 의해서 그 가면이 벗겨지는 것이다. 자만심이 찬양의 진행을 중단시키든지. 아니면 찬양이 자만심을 뿌리채 뽑아 근절시킬 것이다. ▷ 전통 : 필요치 않은 전통들을 폭파시켜버릴 때에는 종종 다른 분야의 불익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한 전통들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롭고 신선하며 성서적인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한 개념 안에서는 숨막히는 전통들의 불필요한 중압감이 떨어져나갈 것이며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제13장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 한 지파로서 유다에게 사실이었던 것은 진정한 신자에게 있어서도 사실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거듭 태어났고, 우리의 유산은 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찬양의 유산이다. ▷ 찬양하는 사람들은 명성을 얻는다 : 찬양하는 사람들은 찬양을 받게 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지도자로 따르도록 만드는 어떤 속성이 드러나게 된다. 찬양으로 얻어진 명성은 어느 한 곳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 찬양하는 사람들은 예배를 위래 가장 잘 준비된 사람들이다 :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예배가 주는 기쁨에 가장 밀접하며 절망의 밤을 종식시킬 희망의 새벽을 가장 먼저 보게 된다. ▷ 찬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쉽게 받을 수 있다: 찬양의 실행은 기도 응답의 서곡이다. 찬양하는자는 보호와 권능과 응답을 받는다. ▷ 찬양하는 사람들은 항상 정복자들이다 : 하나님께서 승리를 안겨주신 것이 바로 찬양의 지파였다. 찬양하는 정복자의 특성은 이러하다. 첫째로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른다(8절). 둘째로 그는 살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보호받는다(10). 셋째로 그릐 힘과 정열은 보존된다(11). 넷째로 그는 가장 큰 축복을 기대하며 그 이하의 어떤 것으로 만족하기를 거부한다(12). 다섯째로 그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시리라는 것을 전제하고 그에 따라 밀고 나간다(12) 여섯째로 그는 역사에서 계시된 대로 원수를 정복하고 그 땅을 차지한다. ▷ 찬양하는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낸다. : 찬양의 역사는 인간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에 대한 역사이다. 찬양에는 항상 승리가 수반되어 왔다. 이것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찬양하기로 결단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텨 오는 격려와 도움을 입게 될 것이며, 그들이 사는 곳에서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찬양의 분뒤기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더욱쉽게 실현될 수 있다. ▷ 찬양하는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낸다. : 찬양의 역사는 인간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 찬양하는 사람들의 대표자(사자-어린양) : 사자요 어린 양인 우리 주 예수가 찬양하는 이 거대한 무리의 우두머리인 것이다 찬양은 우리의 영적 혈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이다, 우리의 깃발, 우리의 이름은 챤양이다. 그리고 어린 양이신 분이 바로 우리의 대장이시다. 제14장 찬양의 생리와 온전한 정신 하나님은 전세계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세가지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이방 왕국에 대한 찬양의 노래이다. 찬양에 의하여 하늘의 은밀한 것이 밝혀지고 승진이 초래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사단의 방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왕은 두라평지에 커다란 신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에 절하도록 명을 내렸다. 결국엔 이방의 왕으로 하여금 믿는 자의 하나님을 찬양케 하였다. 둘째로, 찬양이 사라질 때 자만심이 끼치는 영향이다. 다니엘과 하나님이 예언한 대로 느부갓네살은 칠 년 동안 들판을 방황했으며, 그의 온 몸은 이슬에 흠뻑 젖었고, 그의 머리털은 새의 것과 같이 되었다. 찬양을 중단한 댓가이다. 셋째로 정신 이상에 대한 찬양의 영향이다. 우리가 완고함, 자기연민, 시기, 증오, 포악함, 자만, 교만, 그리고 근심에 빠져 있는 만큼 온전한 정신은 사라지고 그 대신 정신 이상 증세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사실이다.우리는 자만심으로하여금 우리의 삶에 사정없이 밀고 들어와서 아무런 저항과 구애를 받지 않은 채 우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기 쉬운 존재들이다. 찬양은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지 않고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중심에 놓는다. 하나님이 잊혀지게 될 때 그마음의 중심은 파괴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회복되면 하나님이 마땅히 계셔야 할 곳에 앉으시게 된다. 찬양은 한 자구의 도끼로 우리를 붕괴시키는 모든 무질서의 뿌리를 잘라버린다. 제15장 물질봉헌을 통한 찬양의 실천 물질 봉헌은 찬양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 없이는 찬양이 계속될 수 없다. 또한 이것은 끊이지 않는 찬양의 회로 중 필요한 한 부분이다. 물질 봉헌의 정신이 곧 찬양의 정신이다. 온 우주를 소유하시고 시간과 영원의 모든 부를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 봉헌의 은혜를 허락하셔서 우리가 그의 영광스러운 경제 계획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다. 물질봉헌에 관한 역대상고 29장과 고린도후서 8,9장의 경우는 시간적으로 수 세기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근본의도도 서로 다르다. 역대상 29장을 보면, 장차 솔로몬이 짓게 될 영광스러운 성전건축을 위해 다윗이 그 자금을 모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린도 후서에 언급된 봉헌은 이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다. 그 액수는 엄청나게 달랐지만 그 근본 개념은 똑같다. 즉, 되어져야 할 어떤 일이 그에 참여한 자들의 헌금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그 배경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것이었으니,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다. 다윗의 윈리와 마게도냐의 예로 찬양에는 항상 찬양의 대상에 대한 헌신이 전제되어 있다. 대상29:5절과 고후8:1-5절, 이 두경우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세 가지 중요한 관점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서 물질 봉헌을 통한 찬양의 고귀한 특권을 생각해 볼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권에 대한 인정이다. 대상29:11에서 다윗은“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라고 말한다. 또한 고후 8:9에서 바울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언급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권에 대한 이 엄청나고 영광스러운 개념이야말로 찬양의 수확이 시작되고, 찬양의 풍성한 열매로부터 다시, 그리고 또 다시 씨앗이 뿌려지는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인간의 기본적인 청지기 직분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과 바울은 모두 청지기 직분이 갖는 책임과 그 의무를 인식했다. 그리고 셋째로, 물질 봉헌을 통한 찬양의 결과가 있다. 역대상 29:10-20절의 내용은 물질 봉헌이라는 고귀한 특권에 대한 찬양의 자연 발생적인 외침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의 영광송으로서도 다른 것에 견줄 데 없을 정도로 그 고상함이 걸출하다. 그 결과는 즉각적이며 분명한 것이었다. 온 백성들에게 찬양의 강력한 분위기가 임하였다. 제16장 찬양의 이유들 처음에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로서 50가지만 찾을 수 있어도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들이 230가지가 넘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성경구절을 열거했다. 제17장 개인적 찬양을 위한 실제적 조언 구속함을 받은 우리 인간성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으로 그분께 응답하기를 원한다. 찬양하기를 결단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려고 헌신한 사람이라면,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찬양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즉각적인 활기의 상승이 있게 된다. 찬양의 실천보다도 기쁨의 샘을 더 잘 자극하는 것은 없다. 공중예배의 즐거움은 개인적이고 은밀한 예배에서 얻어진 즐거움에 따라 그 정도가 결정된다. 둘째, 영적 전쟁이 즉각적으로 더 치열해 진다. 마귀는 찬양을 싫어하고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모든 능력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무기고에는 찬양을 반격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노리는 것은 우리를 공격하여 우리로 하여금 찬양하고자 하는 결심을 포기하도록 한다. 부흥의 기본 법칙은, 하나님의 존재가 명백히 나타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 비례하여 영적 전쟁의 강도가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셋째, 영적 진리에 대한 인식이 증가된다. 성경말씀이 살아있는 것으로 변한다. 넷째, 공중예배의 특권에 대한 기대감과 열정이 증가된다.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것의 중요성과 그러한 모임에 수반되는 즐거움이 눈에 띄게 증가될 것이다. 새로운 노래들과 시편과 신령한 노래들이 예배자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성경 봉독과 공중 대표 기도가 주는 영향은 현저하게 달라질 것이다. 공중예배의 각 순서와 그 목적에 대한 회중들의 개념이 바뀌게 될 것이다. 다섯째,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에 찬양이 필수 요소가 됨에 따라 경건의 시간이 새로운 차원에서 행해지게 된다. 찬양은 간청하는 기도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며, 타율적인 규칙은 자발적인 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여섯째, 찬야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새로워지고 뜨거워지게 된다. 삶 자체가 노래요, 예배가 될 것이다. 일곱째, 찬양은 하나의 습득된 기술로서 점점 더 세련되어지며, 우리를 꽉 잡고 있는 그 손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게 된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든 혹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뜻을 가지고 하든, 찬양은 마귀에게 동일한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 실제적인 조언을 모아본다. 1. 정결한 마음을 가져라. 2. 하나님의 말씀, 특히 찬양에 관한 말씀을 암기하는 데 시간과 주의를 집중하라. 3. 찬양에 대한 성경연구를 절대로 중단하지 말라. 4. 찬양에 대해 발견한 사실들을 당신의 친지들과 함께 나누라. 5. 개인적인 찬양에 찬송가집을 사용하라. 6. 제 5 장에서 다뤘던 하나님의 호칭들을 개인적 찬양에 활용하라. 7. 제 16장 에 있는 찬양의 이유들을 당신의 개인 찬양 시간에 활용하라. 제18장 공중 찬양을 위한 실제적 조언 성서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찬양에 대한 인식을 키우는 일 없이 회중들로 하여금 강압적으로 찬양하도록 하는 것은 건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찬양을 실천하는 데는 공중예배에 대한 건전한 철학이 필수적이다. 목사와 다른 사역자들이 바로 깨달아야 할 것은 그들이 하나의 예배팀이라는 사실이다. 찬양을 자극하는 분위기는 사람들이 찬양하기 위해 모여들 때 연주되는 악기 소리의 첫 음 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음악을 담당한 사람들은 악기들을 연주하기 위해서 그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역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연주자들은 의미있는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찬송가 중에 있는 찬양의 여러 가지 종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찬송가들이 있다. 거의 모든 복음주의적 교파에서 불리고 있는 위대한 믿음의 노래이다. 이 찬송가들은 3인칭으로 쓰여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찬송가를 사용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깨어서 여러 면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된다. 둘째로, 하나님께 직접 이야기하는 내용의 찬송가들이 있다. 이것은 2인칭으로 쓰여져 있다. 이 찬송은 관계를 부각시키는 일을 한다. 셋째로, 2인칭과 3인칭 사이를 왕래하며 쓰여진 찬송가들이 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섞여있는 것이다. 넷째로, 개인적인 간증으로서의 찬송가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이나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주어지는 그의 공급과 축복, 그리고 우리의 신앙 행로에서 잊혀지지 않는 일 들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해 주는 찬송가 이다. 이러한 찬송가들은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우리의 기억의 줄을 퉁겨주는 중요한 찬양의 매개체이다. 여러 가지 종류의 찬양의 코러스를 살펴보면 첫째로, 모집 코러스가 있다. 이것은 찬양하고자 하는 의도를 밝히고 다른 사람들도 찬양하도록 불러모으는 것들이다. 둘째로, 행동 코러스가 있다. 이는 찬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동작을 취하면서 노래하도록 하는 코러스들이다. 특히, 수줍어하는 사람들이나 자기 의식의 감정들을 깨뜨리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셋째로, 헌신 코러스가 있다. 넷째로, 묵상 코러스가 있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하심, 그리고 우리 예배의 의미,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우리의 개인적인 의도 등을 상기시키는 노래들이다. 다섯째로, 전투 코러스가 있다. 영적 싸움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승리에 대한 것이다. 여섯째로, 간증 코러스가 있다. 개인적인 간증의 한 면을 강화해 준다. 일곱째로, 친밀한 예배 코러스가 있다. 하나님과 주님을 향한 우리의 친밀함을 고백하도록 하는 것들이다. 제19장 찬양의 정점 우리는 이제 찬양의 산맥 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거의 영원을 내다 볼 수 있다. 찬양의 최고봉에 서 있으면 다른 어떤 곳에서도 가질 수 없는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이 서사시의 배경은 다윗왕정의 초기에 설정되어 있다. 왕국은 그의 인도하에 통일 되었다. 국가적 상처는 치유되기 시작되었다. 이 시편은 다윗이 언약궤를 왕국의 수도에 올바른 장소로 운반해 왔던 때에 쓰여졌을 것이다. 이것이 이 시편의 역사적인 배경으로 여겨진다. 이 시편은 주님의 재림을 예고하면서 앞을 내다보고 있다. 과거의 역사는 앞으로 영광의 왕이 다시 오셔서 그의 구원을 완성시킬 날이 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세상 나라들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그가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이다. 이 시는 과거를 돌이켜 보고 앞날을 내다 보는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수 있다. 즉 이 시편은 개인적이며 현재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축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영광 가운데 눈에 보이게 다시 오실 때 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광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그의 올바른 분위기에 의해 맞이 될 때에는 어디에서건 자신의 존재의 영광을 분출해 보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분위기라는 것은 다름 아닌 찬양인 것인 것이다. 우리의 감정, 목소리, 손과 팔, 그리고 눈 등이 주님이 들어오시는 문들이며, 이런 것들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의 환경과 처지 속으로 들어와 계시는 것이다. 제20장 찬양에 대한 덧붙인 말 찬양이 재발견되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관계와 방향의 전격적인 변화가 따르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모독은 찬양의 반대이다. 이 신성 모독에서는 경멸적인 언사가 하나님께 퍼부어지낟. 열정적인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훈련을 한다. 찬양은 원수들이 뚫을 수 없는 방어책이며 영적 전쟁에서는 무적의 무기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에 찬양을 회복시켜 주고 계시며, 아울러 신부(bride)로 뽑힌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신부라는 의식을 갖도록하고 또 그들을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 줄 은혜도 내려 주신다. 찬양은 영적인 행위 중에서도 최상의 위치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앞서 우리가 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우리의 삶이 찬양의 노래가 된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삶으로 부터 의미있는 노래들이 나오게 된다. “아멘”이라는 말은 구약성서에서 25회 이상 발견된다. 그것은 영어에서와 같이 히브리어나 헬라어에서 그 뜻과 발음이 거의 같다. 제21장 성서에 나타난 주요 찬양 구절 ▷ 삼하 22:47 :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뤈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 삼하 22:50 :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 시 3:3 :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 시 8 : 1-2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 시 9:1-2 :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오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 시 63:3-4 :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 시 69:30 :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 시 146:1-2 :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 시 150:6 :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 엡 1:3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 계 7:12 :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일을찌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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