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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관련]]찬양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10.05.22|조회수82 목록 댓글 0
찬양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인은 누구일까?
사람마다 꼽는 음악인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다윗을 꼽고 싶습니다. 한 사람 안에 이렇게 다양한 능력이 공존 할 수 있을까 싶은 사람, "다윗".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패 한적인 없는 전쟁영웅이면서 이스라엘 역사 상 가장 뛰어난 임금이며, 시인이며 음악가. 인류 최초의 찬양대 조직법을 제정하여 오고 오는 세대에 바른 찬양의 모범을 제시한 행정가.

찬양 사역 자로 평생을 살아 온 제게 있어 다윗은 흠모의 대상이며 제 삶의 역할모델이기도 합니다.

그는 성전 찬양대가 찬양에 사용하도록 많은 시를 썼는데, 시편을 편집한 편집자들은 다윗의 시편을 73편이나 선택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정경 속에 포함 시켰습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이 저자를 나타내는 표제 문이 없지만 시편 2편은 사도행전 4:25절에서 이 시의 저자가 다윗임을 증거하고 있기에 그의 시라고 인정하고 있고 신약의 다른 곳에서 인용한 시편들(95, 96, 105)도 다윗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어쨌든 전체 시편의 절반이 다윗의 시로 채워져 있습니다.

시편은 구약시대 성전 제사 때 찬양대가 드리는 찬양의 주요 텍스트였습니다.바울도 초대교회의 예배에서사용할 찬양의 가사를 논하면서 가장 좋은 찬양 가사는 시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엡5:19) 찬양에 사용하는 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자신이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수금(킨노르) 연주자였으며, 성악가였던 다윗도 제사 찬양, 즉 성전예배에서는 찬양할 자격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찬양대 조직법을 제정하였고, 작곡과 작사, 연주까지. 최고 수준의 음악가요 찬양사역 자였으나 그는 성전제사 찬양대에는 속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다윗 시대 이후 구약 시대에는 선택 받아 훈련 받은 레위 지파의 찬양대원 만이 예배에서 찬양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은혜시대에도 예전적 찬양을 선포하는 찬양대와 찬양 팀의 멤버는 전문적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찬양은, 최고의 감상자 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시대에 사는 우리는 창조의 목적대로 찬양을 회복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찬양을 직접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찬양을 잃어버린 인간들을 구원하여 찬양하는 존재로 회복 시키는 구속 사와 찬양 회복의 역사가 기록된 책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평생 드린 찬양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지 못했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회중들의 찬양(출 15:1~18.21.)은 모세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하나님께 드린 찬양입니다. 많은 작곡가들이 작품화한 "미리암의 승전가"가 바로 이 성경을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를 통하여 만드신 찬양인 신명기 32장은 모세와 백성들이 부른 찬양을 기록하고 있는데

신 31장19절.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라고 기록하고 있고 22절.

“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출애굽의 사건을 대대로 기억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도록 명령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성전 예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을 받았습니다.

또 삼하 6장과 역대상 13~16장에서 하나님의 법괘가 다윗 성으로 안치되는 과정에서 온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레위 지파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도 성전제사에서는 찬양을 드리지 못했지만 거국적 행사로 진행 되었던 법괘를 모셔오는 행사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게 될 때, 찬양을 드렸던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법괘를 안치하는 이 거국적 행사의 중심에 다윗이 있었고 그가 만든 찬양을 헤만과 아삽 여두둔과 수 많은 찬양 사역 자들이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류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가 이면서 찬양 사역 자였습니다.

교회음악을 분류 할 때 보통 예배음악과, 절기음악, 교육용 음악, 전도, 선교용 음악, 생활음악 등으로 분류 하는데 (분류하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른 분류도 많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예배음악과 그 밖에 음악으로 학자들은 분류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께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고 삶이 예배인 것은 사실이지만 초대 교회부터, 교회는 모여서 드리는 예전적 예배(Liturgical service). 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왔고 이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예배 학입니다.

교회는,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듣는 공동체요, (케리그마Kerigma ) 즉 예배하는 공동체요. 교육하는공동체요(디다케Didache ) 섬기는 공동체요(디아코니아Diakonia ) 친교 하는, 나눔을 실천하는(코이노니아Koinoia)공동체입니다.

말씀을 들으며 예배하는 공동체로 출발하지 않고는 교회는 교회의 교회다움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전적 예배에 사용하는 예배음악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배에서 드려지는 모든 찬양이 다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중요한 순서 이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시게 받으시는 찬양이 회중찬송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한 곡조, 한 가사로 드리는 찬양의 제물. 이것이 회중찬송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얼마 동안 드려졌던 회중 찬송은 중세교회 교회예전음악의 수준이 높아져서 예배 중에 드리는 찬양은 전문적 훈련을 받은 찬양대원과 사제들이 독점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암브로시안 찬트와 그레고리안 찬트가 교회의 예전음악으로 제정이 되어 모든 가톨릭 교회가 이것을 사용하게 되므로 회중 찬송이 차츰 줄어 들어 어느 시점에서는 완전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예배 시간에 회중찬송이 회중들에 의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기 시작한 것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 후부터 라고 보는 것이 정설 입니다.

회중찬양이 없었던 중세 천 년을 역사학자들은 기독교의 암흑기라고 규정합니다.

회중 찬송이 회복된 종교개혁 이후 루터의 “코랄” 칼빈의 “제네바 시편 가. 아이삭 왓츠로 부터 시작되어 미국에서 꽃을 피운 “복음성가”. 그리고 이 시대 CCM 이라고 이름 부쳐진 젊은이들의 찬양까지, 많은 종류의 회중 찬송이 음악적 옷을 갈아 입으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에서 찬양으로 드려졌고 드려지고 있습니다. 동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음악이라 직역 되는 CCM. 코랄 이, 시편 가가, 복음성가가 모두 그 시대의 다른 이름의 CCM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중 찬송에 관한 문제는 다음 기회에 언급하려 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마다 있었던 그 시대의 CCM들이 처음부터 예전적 찬양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문화적 적응 기를 거쳐 생활 속에서 드리던 찬양 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지고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은 몇 몇 찬양들이 예배 중에 회중 찬양으로 드려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예배용 찬송가에 선곡이 되는 과정을 거쳐 왔던 것입니다.

예배용 찬송가에 들어가게 되는 찬송가는 여러 가지 기준들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해 선곡 되었습니다.
*가사가 성경적이며 신학적 오류가 없는가?
*음악적으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
*너무 경박하거나, 혹은 리듬이나 선율이 너무 어려워서 비 전문가인 대부분의 성도들이 함께 부르기 어렵지는 않는가?
*찬양을 작사 작곡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영적 성숙을 삶으로 보여준 모범적 그리스도 인인가?

우리 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찬양 사역 자로 헌신하여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하나님이 기뻐할 만 합니다.

이 분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좀 더 전문적인 음악적 훈련과 깊은 영성, 말씀과 신학에 관한 지식 등을 갖춰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는 찬양을 만들고 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찬양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찬양은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찬양은 본질적인 것으로 은혜 받기 위해,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 병을 낫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섞인 것이 없이, 하나님. 바로 그 분께만 드리는 제물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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