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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자료]]CCM 트랜드에 대해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11.01.24|조회수163 목록 댓글 0
CCM 트랜드에 대해

CCM이 태생적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많은 경우에 찬양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CCM이 세상에 휩쓸리는 조류가 결코 아닌, 올바른 악기와 연주와 가사와 음악장르와 창법의 조화로서, 세상을 리드하는 트랜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얼마 전 ‘Youtube’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간 한 청년의 전자기타 연주 동영상이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락기타로 편곡, 연주한 것이다. 이 UCC동영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한달 내에 800만 건을 상회하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바람을 일으켰다.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혹 있겠지만, UCC라는 트랜드문화에서 지금 인터넷 세대들에게는 인기있는 사건이었다. 연주자의 기량에 힘입어 이 락버전의 ‘캐논 변주곡’은 상당히 역동적이고 현란한 기교를 동반한 사운드가 되었다. 자작영상이긴 하지만 뒷면의 밝은 햇살 비침과 어우러져 한껏 경쾌하게 들리며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간다. 그러나 이 음악을 영상 없이 음악만 들으면 그러한 경쾌함 속에 왠지 시니컬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유는 전자음향의 속성 때문이다. 이 청년의 ‘캐논 변주곡’은 더이상 파헬벨의 작곡의도와 감성을 따르지 않는다. 죠지윈스턴이 80년도 중반에 그의 December앨범에서 피아노로 이 곡을 편곡, 연주했을때 이 곡은 굉장히 따스하면서도 한편은 쓸쓸한 이미지로 다가왔었다. 이것 역시 피아노 자체의 음색과 연주자의 기법에 기인한 탓이다. Hooked on Classic 음반에 실린 락스타일의 베토벤의 운명교향곡도 원래의 비장감과 무게가 변형된 또 다른 얼굴을 한다. 역시 연주스타일과 음악장르를 변형시킨 탓이다. 이렇게 같은 음악이라도 편곡과 연주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표현되고 전달된다.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의 개성과 감성이 그 속에 녹아 들어가서 천변만화한다. 이것이 음악을 하는 즐거움이고 세상의 온갖 음악이 제각각 색깔을 띄고 공존하는 이유가 된다.

찬양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찬양곡이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곡의 성격에 따라, 편곡과 발성법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하물며 곡의 장르와 연주방식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에 무심결에 들은 한 CCM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불을 내려 주소서 내게 성령의 불을, 죽어진 영혼 살릴 수 있도록 나를 태워 주소서, 제단 위에 나를 드리니 열방의 불로 세우소서….” 솔직히 처음 이 곡을 들을 때 난 무슨 노래인가 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가사내용 자체는 무척이나 진지한 CCM이었다. 그러나 연주형식과 창법이 가사와 어긋남으로 말미암아 처음에는 CCM인줄 몰랐다. 그리고 알게 된 후 듣는 내내 나는 왠지 불편했다. 교회의 청소년들이 이 곡을 흥얼흥얼 –그렇다.. 흥얼흥얼 불렀다- 거리는 것을 보았을 때는 마음에 부담이 더했다. 이것은 나 개인의 취향에 따른 느낌만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게(?)잡는 클래식이든, 대중적인 트로트든 혹은 락이든,, 모든 음악 장르는 제각기의 특색이 있다. 그리고 그 특색에 맞추어 기쁨과 슬픔을 노래한다. 그 색깔과 가사내용이 맞게 어울릴 때 올바른 모습이 된다. 언젠가 TV프로그램에서 유명한 대중음악평론가 한 분이 나와서 현시대에 유행하는 음악/노래의 트랜드에 대해 대략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난다.

“주의할 것은 음악이 대중들에게 올바른 정서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노래는 기쁨의 형식과 곡조에, 슬픔의 노래는 슬픈 가락에 담아서. 락이든 힙합이든 혹은 트로트든지 간에 가사내용이 올바른 감성과 곡조와 어울려야해요. 그런데 요즘 음악은 너무 위험합니다. 가사는 분명 슬프고 가슴 아픈 이별이며 사랑의 헤어짐인데, 곡의 형식과 가락은 너무 흥겹고 즐거워요, 춤까지 춰요!. 정반대죠. 이것은 감정과 생각의 올바른 표현이 아니에요.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슬픈 것이 가볍고 우습게 여겨지고 아픔이 조롱거리가 되요. 현실이 혼동돼요. 청소년들과 젊은 사람들은 어긋난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음악이란 엄청난 힘이 있어요. 음악은 이성 이전에 사람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다가갑니다.”

이러한 말은 한 그는 지극히 대중적이며 세속적인 음악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세상의 대중음악가도 음악작곡과 창법의 전파력에 이렇게 민감한데, 현재 우리 주위의 많은 CCM작가들은 오히려 더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것 같다. 영성을 생각하기 이전에 대중의 반응을 생각하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가락과 장르에 가사내용을 억지로 집어넣는 경우가 많지 않은지 우려된다. 언젠가 말한 바있지만 CCM은 결코 교회음악이 아니다, 대중문화에 파고든 크리스천음악이다. 그렇기에 찬양의 범주에 드는 것이 있고 부드러운 전도/교화의 범주에 드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어야만 찬양이 된다. 자기자신의 기분이나, 결심과 분위기에 초점을 둔 것이나 가사만 그럴 듯하다고 해서 찬양이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찬양이 엄숙, 거룩한 곡조만을 고수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구원의 기쁨과 헌신의 결단과, 슬픔의 위로와 희망, 인생의 동행하심의 찬양 모두가 각기 그 내용에 맞게 작곡되어야 한다. 곡의 장르와 형식을 내용에 적합하게 구사해야 한다.

앞서 예로 든 CCM의 가사내용은 비장하도록 진지하게 자신의 헌신을 결단하는 찬양내용인데 곡의 형식과 창법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혼동을 가져온다. 경쾌한 연주 형식인데다가, 아무리 부르는 사람이 신중을 기하려 해도 비트에 따라 감정이 더 앞선다. 헌신의 찬양인가 아니면 기분 고조인가? 누구를 향한 노래인가? 하나님 우선인가 자기중심인가 아니면 대중을 의식한 것인가?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양성을 좋아하시며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조화와 연합(Unity)을 기뻐하시지 획일화(Uniformity)를 원하시지는 않는다. 따라서 모든 다양한 음악 장르 역시 찬양에 쓰일 수 있다. 모든 음색은 찬양에 동등하게 쓰인다. 락가수든, 트로트가수든 전통 성악가든 찬양에는 결코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찬양’이 되려면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자세와 올바른 영성에 의한 영적 교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람 감정에 우선적으로 호소하거나 개인 취향 중심으로 전개하면 위험하다. 자칫 카니발리즘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에 복음성가가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도 이와 비슷한 마찰 혹은 오해는 있었다. 심지어 전자음이나 드럼을 허용 않는 교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최소한, 곡의 성격과 가사가 상이한 현상은 결코 없었다. 거룩함과 기쁨과 슬픔과 경쾌함과 헌신이 올바른 곡조에 맞추어졌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기본원리이다. 그러나 지금의 CCM은 찬양과 일반적인 음악의 경계를 흩트리는 경향이 지극히 심하다. 가사와 연주가 불협한다. 올바른 연주와 장르 구분에 대한 치열한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인 듯도 하다.

시대는 바뀌었다. 새로운 음악장르와 혼용이 일어난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 더 올바른 방향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금 인터넷상 UCC의 한 동영상에서 앞에 예로 든 CCM곡이 헬싱(Hellsing)이라는 피가 철철 흘러나는 폭력적인 일본 에니메이션에 합쳐져 띄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뱀파이어와 싸우는 그리스도사제단이라는 공상적인 내용의 이 제페니메이션은 기독교적 주제를 빌려와 폭력적, 감각적인 표현과 전개방식에 치중하는 일본 영상물이다. 왜 이 곡이 그 에니메이션에 덧입혀졌는가는 제작자의 취향의 문제지만 그가 왜 이 곡을 쓰게 되었는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것은 이미지 때문이다. 곡이 들려주는 이미지의 형상이 곡의 가사 내용보다 우월하게 그에게 다가섰기 때문이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분출하는 힘과 외치는 샤우팅창법이 억압된 현실을 뚫고 나오는 감성과 합쳐 영상과 어우러져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제작자의 연령과 아마도 불법도용된 의도를 묻기 이전에, 이곡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 사람의 인식반응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독교 사상을 빌려와 껍데기로 포장한 그 영상물은 복음은 없고 곳곳에 적그리스도의 이미지와 무차별적인 살인과 폭력을 잔인하게 그리고 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곡의 이미지로 인해 잘못된 오용의 빌미를 준 것이다.

우리나라 젊은 CCM작가들과 가수들이 더욱 더 깊은 영성으로 무장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그들이 ‘찬양의 CCM’을 작곡하거나 부를 때 음악의 성격과 가사의 내용이 올바르게 조화됨으로 말미암아 먼저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이 되기를 원하고, 나아가 일반 그리스도인들과의 참된 영적교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는 순기능적인 교화의 역할로 일반인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란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특히나 왜곡된 현실여건 속에서 혼돈된 감성과 의식에 억눌려 있을 때, CCM을 통해서 올바른 영성과 감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CCM이 좋은 조력자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 예로 들기는 했지만, 나는 이 CCM을 부른 사람의 또 다른 곡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올바른 조화가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창작자의 의도가 전달되고 나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찬양이 된다. 나는 전문음악가가 아닌 평범한 그리스도인 일 뿐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제안하는 것이 결코 사심없고 편견없는 그리스도안에서의 형제의 권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한국의 많은 CCM작가들과 가수들이 보다 깊은 영성이 깃듯 CCM음악트랜드를 이루어 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CCM이 태생적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많은 경우에 찬양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로도 찬양을 하게 하시는 분께서, 부족한 제사라도 받으시는 이유는 그 제사 가운데에도 진실한 영혼이, 그 많은 오류들 속에서도, 깨어있는 영혼들의 사역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CCM이 세상에 휩쓸리는 조류가 결코 아닌, 올바른 악기와 연주와 가사와 음악장르와 창법의 조화로서, 세상을 리드하는 트랜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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