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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관련자료

[[찬양관련]]성가대의 기원과찬송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12.12.12|조회수1,251 목록 댓글 0
성가대

성가대 기원성가대의 기원은 구약성경 역대상을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다윗은 그 당시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는 자들로 레위 사람을 택하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케 하였다. 이렇게 레위 자손을 택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말씀으로 알 수 있는데, 그 말씀은 민수기 3장 11절과 12절에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11절)'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고 하셨으며 이들로 찬양하는 일을 전담케 하셨다. 성가대의 기원은 역대상 6장 31절이하와 15장 16절~22절에서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16절)'라고 하였던 것으로 보아, 성가대 기원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이 당시에도 노래와 더불어 모든 악기와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앞 구절과 이어 '...비파와 수금과 제금들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16절)'고 하였던 것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그 당시 레위 족속의 음악하는 이의 수가 지금 보아도 그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지를 알 수 있다. 역대상 23장 5절에 "...사천은 다윗의 찬송하기 위하여 지은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라"고 했던 구절로 보아 노래하는 성가대의 수가 사천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구절은 후에 성가대의 인원을 계산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당시에도 성가에 전념하며 노래만을 가르치던 일에 골몰하는 자를 세웠는데 역대상 15장 22절에 '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주장하여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요'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다윗 시대에는 찬양의 직분을 주어 성가대를 두었으며, 이 직분을 감당한 자들로는 헤만, 아삽, 여두둔(에단)이 있었다. 성가대는 이렇듯 구별된 자들로 세워졌으며 그 자격도 제한을 두었다. 역대상 23장 3절에서 '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였으니 모든 남자의 명수가...' 라고 한 말씀에서처럼 이 당시 성가대는 남자만으로 구성하였으며 이렇게 선별된 레위인 중에서도 삼십 세 이상만을 인구조사 하여 그 직분을 맡겼다. 구약시대로부터 교회음악은 역대상 9장 33절의 말씀에서 보듯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을 하지 아니하였더라'라는 말씀처럼 찬양을 위해 전담하여 전심으로 그 직분만을 담당하는 제도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성가대를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찬양하기 시작한 때가 다윗왕 시대부터이다.

레위지파 사람들을 구별하고 선택하여 성가대를 조직하고( 대상 16;4 ) 아삽, 헤만, 여두둔과 같은 지도자를 세워 (대상 25) 조직적으로 훈련 연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다.

그들은 주로 수금과 비파와 같은 악기를 동반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는데 그들이 불렀던 찬양의 내용들이 대부분 시편이었다. 그 시편의 저자 중 가장 많은 시를 쓴 자가 다윗이고 아삽, 솔로몬, 모세 등이 시편의 저자들이다. 이 시편들은 모두가 곡조 붙은 찬양으로 노래하도록 만들어졌다. 그 중에 대부분의 곡들이 화답하며 노래하도록 그 시의 운율과 행이 만들어졌다.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의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7년만에 성전의 건축을 마치고(기원전 967년경) 하나님께 봉헌 의식을 거행하며 세마포를 입고 노래하는 자와 그 밖의 악기를 다루는 자의 수가 120명이 되었다. 이렇게 음악을 담당하는 신분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레위 지파로 택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세마포를 입도록 하였으니, 이 제도는 왕이나 대제사장들과 고귀한 신분에 속한 자들만이 입을 수 있었다. 역대상 15장 27절에 '다윗과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 두목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라고 하였던 것처럼 구별된 직분을 나타내는 세마포를 입어 그 권세와 거룩함을 알리게 하였다.

솔로몬 이후 유다 왕국은 멸망으로 향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 히브리인들은 언약궤를 손실하고, 성전도 파괴되었으며, 이렇게 포로가 된 70년간은 예배와 찬양조차 당당하게 드릴 수 없는 수난을 겪게 된다. 그후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과 그의 생애를 전후로 하여 예수님의 공생애 시기의 음악은 구약의 시가서인 시편의 송영이나 영창이 주된 음악이었으며, 그저 읊조리는 형태의 음악을 즐겨하였다. 이런 음악은 주로 무반주로 기악의 반주가 없는 순수한 노래로 제한되었으며, 이런 음악은 회당 음악의 형식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그래서 성가대가 연습할 때 음악지도자들에 의해 엄격하게 연습되어져 성전에서 찬양 드려졌다. 이러한 모습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성전에서 첫 번째 제사를 드리는 장면에서 120명의 제사장 성가대가 단 동편에 서서 제금, 비파, 수금을 타며 찬양할 때 여호와의 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 결과로 제사를 집례 하는 제사장이 두려워서 섬기지 못하는 찬양의 능력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하 5; 11-14)

시편에서 ‘셀라’가 나오면 성가대는 노래를 멈추고 기악이 간주를 한다. 이것도 성악과 기악이 주고받는 일종의 화답하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가사의 내용이 고조되는 곳이나 중요한 가사의 부분에서는 ‘셀라’가 사용되었다. 또한 의식에 따라 ‘할렐루야’ 또는 ‘아멘’ ‘그의 자비 영원하리라’ ‘그의 선하심이 영원하리라’ 이러한 화답 창이 회중들에 의해 불려 졌다.

이것은 성가대와 회중이, 독창과 성가대가, 독창과 회중이 다양한 모습으로 의식에서 사용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시편은 구약시대의 찬송가였으며 이것은 유대교의 찬송가 겸 예전가로 분류 할 수 있다.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회당음악으로 전승되어지며 이러한 전통은 예수님이 오신 후 새롭게 초대교회가 시작될 때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찬양으로 연결되었다사도시대는

예수님 사망 후 약 1백년 동안을 말하는 시기이다. 예수님 당시의 음악은 구약의 시편을 중심으로 한 음악이며 지금도 신약시대의 음악에 대한 중요성은 그리 고려되지 못하는 이유는 구약의 시편만큼 위대한 시가서를 발견 못한 것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구약성경을 유대인들은 율법, 선지서, 성문서로 구분하고 시편, 욥기, 잠언, 전도서 등을 '지혜로운 사람들'이 즐겨했다 하여 <지혜서>로 구분하였다. 그 중에서도 시편은 가장 음악적인 시(詩)로 헬라어인 '프살모이'(Psalmoi)를 음역한 것이며 이는 '수금을 치며 부르는 노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구약의 시편을 노래하던 것에서 신약시대의 사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노래들이 작곡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당시 그리스 문화는 피타고라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소크라테스 등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기독교에 좋은 토양을 제공하였다. 이들이 끼친 영역은 철학, 자연과학, 수학, 천문학, 음악 등 무수히 많은 학문들이 쏟아져 지금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기반을 이루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그리스의 근본적 정신과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기독교 교회와 유태교에서 유래했지만, 그들의 이룩한 중세의 모든 학문과 음악에 관한 학문적 업적은 매우 놀라운 것으로 앞으로 다가올 그리스도교의 발전에도 큰 발판으로 작용하게 된다.

성가대의 성경적 배경

다윗의 성가대(대하23:5) 다윗은 레위인들을 구별하여 성가대 4천명을 세워 찬양하게 하였다. 2) 솔로몬의 성가대(대하5:12-13) 솔로몬 왕이 7년 6개월에 걸친 성전 건축을 끝내고 하나님께 봉헌할 때 세마포를 입고 노래하는 자와 그 밖의 악기를 다루는 자로 120명의 성가대를 조직, 찬송하게 하였다. 그 찬양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임재 하셨다. 3) 히스기야의 성가대(대하29:25-30) 히스기야 왕은 성전을 청결케 한 후 제사를 드리면서 번제가 마치기까지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로 하여금 노래를 하며 나팔을 불게 했다. 4) 느헤미야서에 나온 성가대(느12:40-43) 훼파되었던 예루살렘 성곽을 재건, 봉헌하면서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인도 하에 감사 찬송하는 두 떼(두 성가대)와 나팔을 잡은 제사장들이 크게 찬송하였고, 예루살렘 유다 거민들 또한 크게 즐거워하였다.

찬양과 합창

역대 상에서는 지도자 288인을 세워 훈련받은 4000명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였고. 또, 계시록에서는 14만 4000이 부르는 대 합창은 오로지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만을 찬양하는 대 합창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볼 때 예배에서 찬양이든, 아니면 어떤 형태의 찬양이든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궁극적인 찬양의 수단은 원칙적으로 찬양대에서 부르는 합창의 찬양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때문에 찬양대는 합창단으로서의 역할의 기능을 갖게 되지만 일반적인 합창단과는 달리 찬양대는 선택된 사람들에 의해 조직된 음악적 기관(신명기 18 : 1, 역대상 25 :)이요 아름다움을 표현하도록 하나님의 인격이 있는 성도들에게서 위임받은 기관이기 때문에 인격적이며 상호적인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인격이 있는 우리(찬양대원: 노래하는 자)가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 속에서 그 뜻은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빌리면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 :15)"고 말하고 있다.

성가대에 관한 최고의 기록은 역대상 6:31절 이하에 나타난다. 즉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 라는 말과 함께 '찬송하는 자 헤만' 이 있었으며 또한 헤만을 돕는 음악 지도자인 '헤만의 형제 아삽' 이 있어 우편에서 헤만을 도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역대상 15장 16절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에 가져온 다윗은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내었고' 또한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 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그 다음의 조직(대상 15:18)인 스가랴외 7명은 비파를 타서 여청에 맞추는 자이며 맛디디야를 비롯한 5명은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악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레위사람의 족장 그냐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을 주장하여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 라고 하였다. 이렇게 구성된 그들은 세마포를 입고 각종 악기로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였으며 이 찬양을 들은 백성들은 "아멘"으로 하답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고 기록하였다. 그후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와 아들 솔로몬으로 왕을 삼은 후, 4천명의 성가대 즉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를 세웠다. 라는 내용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약 2,900년경에 조직적이고 공식적인 성가대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성경에 나타난 조직적인 성가대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2대 왕인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면서 레위사람들로 하여금 찬양대를 조직하여 법궤를 운반하게 하였는데 이때 그들은 먼저 자신의 몸을 성결케 하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로써 성역을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을 거룩하게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레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궤를 매게 하고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연주하였는데 이때 헤만과 아삽은 노래하는 자를 에단은 놋 제금을 치는 자로 스가랴를 비롯한 여덟사람은 비파을 타서 여창(남자들이 소프라노의 음조로 연주함)을 하였다. 이들은 수금을 연주하면서 여덟째 음(베이스, 남성의 낮은 음역)을 맞추어 지휘 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난 헤만, 아삽, 에단은 그 나름대로 음악 지도자였고 역대상 15장 20절과 21절에 나타난 모든 악사들은 헤만과 아삽 그리고 에단의 지시를 받아 부문별로 찬양대를 지휘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시에 성가대는 상당한 조직력을 가지고 구성되었으며 성악과 관현악이 아우러져서 협연을 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을 지휘한 지휘자들도 있었고 또한 성악에서도 멜로디 혹은 고음의 음역은 남자들이 부른 남성 합창이었다. 그러나 문헌에 의하면 당시 성가대 합창단 구성은 최소 12명의 성인 남자들에서 최대수는 없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12명의 어른들에다가 레위족의 소년들은 고운(높은)음을 내기 위해 성가대에 참여하였다고 하나 성경에는 그 근거가 없다. 한편 다윗은 30세 이상 되는 레위사람 남자 38,000명들 중에서 4,000명에게 여호와를 찬송하는 임무를 주었는데 이때 다윗은 성전에 레위인들로서 창세기 4장 21절에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라는 구절은 음악의 조상에 대한 성경의 최초의 문헌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교회음악의 역사는 구약성서의 여러 구절을 통하여 성가대의 기원과 목적, 그리고 예배에서의 성가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찬송의 역사는 교회음찬양하는 전문인들을 세우고 그들의 지도자들을 세워서 철저한 음악 훈련을 시켜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하였다. 다윗은 또한 성전에 4,000명의 대 합창단을 두고 그들을 총 지휘하는 아삽, 헤만, 여두둔(대상 15:16-17)과 같은 세사람을 임명하여 그들에게 '왕의 선견자'라 하는 공식명칭을 부여하였다. 다윗은 아삽, 헤만, 여두둔의 아들들 24명이 각각 11명의 찬양대원을 거느려 각 반차가 12 명으로 구성된 인원 즉 288명이 여호와를 찬송하기 위해 뽑힌 다른 레위인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되었다. 성가대원들을 가르치는 자만도 288명이나 되는 것과 4,000명의 성가대원들이 24반차에 따라 제비를 뽑아 성전에서 봉사하였는데 이는 하나님 안에서 봉사함에 있어서 차별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조직된 성가대의 찬양은 주로 회중과 더불어 다음 3가지 형태의 노래로 불려 졌다.

첫째, A형태로 인도자가 반행을 부르면 회중들이 반복해서 부르는 방법으로 성인들이 부르는 Hallel이라는 노래이다.
둘째, B형태로 인도자가 반행을 부르면 회중들이 나머지 반행을 부르는 방법으로 이 방법은 어린이를 교육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
셋째, C형태로 인도자가 첫째 항을 모두 부르면 회중들은 그후에 응답하는 형대로 나머지 행을 부르는 방법이다. 이들은 여러 가지로 구성된 악기로 하나님을 찬송하였는데 그들은 아무 악기나 함부로 분별없이 사용하지 아니하고 항상 거룩한 용도에만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임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께 최선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찬송하는 법(악기 다루는 법)을 배웠다. 따라서 그들은 잘 훈련된 찬송, 익숙한 찬송,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찬송을 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다윗 이후에 솔로몬 왕은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시와 음악을 좋아하여 시편을 지었으며 예배에 있어서 음악이 더욱 정성스럽게 사용되어졌으며 음악적인 전통도 확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지은 성전이 완성이 되자, 그는 노래하는 레위사람 아삽,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세마포를 입고 성전의 단 동편에 서서 제금, 비파, 수금을 잡고 나팔부는 자 제사장 122인과 함께 일제히 여호와를 찬양하였는데 그때의 여호와의 전 솔로몬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여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을 정도로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하기를 힘썼다.

그후 여호사밧왕(870-845 B.C)때에 모압과 암몬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왕은 특별히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으로 행하며 찬송을 부르게 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다. 그러나 아비야와 여호야김 시대 사이(900-600 B.C)의 히브리 음악은 쇠퇴하였으며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솔로몬의 성전을 파괴하고 히브리인들을 포로로 끌고 가자 성전에서의 음악과 성가대는 사라졌다. 그후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들이 예배드릴 성전이 없으므로 1세기 말에 회당에 성가대원들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었으며 이때 부른 노래 형식은 회중방식(Congregation Style)으로 랍비와 독창자(Cantor)들이 노래을 인도했으나 공식적인 성가대의 모습은 기록되지 아니했다

우리가 창조된 것은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함에 있다.(사 43 : 21)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성경 소요리 문답 1번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의 업적을 기리며 찬양 드리는 일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전도하는 것, 교육하는 것, 봉사, 구제하는 것, 찬송을 부르는 일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결국 그를 찬양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계 5 : 9 - 14, 14장)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해야 하는 목적이 있듯이 노래하는 자들이 합창으로 찬양을 드림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하고 어떻게 그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합창은 소리의 울림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소리의 울림은 목적을 지향하여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이 소리의 울림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표현 될 때 정신적인 긴장을 진정시켜주고 (삼상 16 : 14 - 17) 사람들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성도들에게 흐르게 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인격에 하나님의 인격이 있기에 (창 1 : 27, 2 : 7, 골 3 :10) 합창에 의해 표현되는 아름다움은 하나님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으로 추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합창하는 사람들이 노래할 때에 나타나는 신체적인 움직임, 정신적인 움직임의 모든 것은 아름다움의 표현에 도움이 되도록 하여야 하고 나아가서는 합창의 과정 전체가 아름다움의 표현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인격을 소유하고 있는 지휘자, 노래하는 자(찬양대원), 듣는 이(성도)의 관계가 올바르게 유지되어야 한다. 이는 합창단(성가대)이 합창을 하는 것은 지휘자의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표현되어 성도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영향을 받으면 다시 하나님에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게 되는 일 - 아멘으로 화답하는 일(대상 16 : 36)- 에 동참하는 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이 서로 상대적인 관계에 있고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격이, 인격들의 만남에서 합창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전달과 반응에 의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양의 한 수단으로서, 중요한 가치와 역할을 얻을 수 있다. 그러기에 합창을 하기 위해선 이해와 양보하는 마음, 협동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위해 희생할 줄 알고 헌신하고자 하는 신앙 자세에서 이룩될 수 있다고 믿으며 이럴 때 진정한 사랑이 나오게 되며 음악적인 아름다움에 수반되는 상대적인 아름다움이 더 한층 나타나 최상과 최선의 하나님에로의 아름다움이 되리라고 본다.

결국 합창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름다움의 표현'이고 또한 그 아름다움은 정서의 긴장과 이완에 있다고 본다. 이 긴장과 이완을 표현 할 수 없다면 합창으로서 나아가서는 음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긴장과 이완을 위해 음악적인 상식을 떠나서 정신적인 표현이 있어야 한다. 이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영혼-마음 정신)자세에서 얻을 수 있다. 성가대의 존재 이유는 여호와를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에서 하나님께 지고(至高)의 영광을 올리기 위한 기구입니다. 그러므로 성가대의 음악은 영적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부모의 이름을 경홀(輕忽)히 여기는 자를 저주하셨습니다(신 27:16). 하물며 당신의 이름이 경홀(輕忽)히 여김을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신 32:15).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은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이것을 볼때 성가대의 찬양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것인지를 알수있다.

예배시간에 모든 성도가 함께 부르는 회중 찬송도 중요하지만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이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여 정성들여 준비한 성가대의 찬양은 더욱 중요하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는 레위지파 중에 구별하여 다른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찬양하는데 전념하였다고 하는데 오늘날 모든 성가대원들이 그때와 같이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생활이 하나님과 연결된 생활이고 찬양하는 삶이 계속될때 그들이 하는 찬양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이 될 것이다.세상의 축제인 올림픽을 위하여서도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몇 년동안 열심히 준비하여 최선을 다하는데 전능하신 살아계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는데 예배때 찬양을 준비하는 자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겠느가? 그러나 음악적인 면만 지나치게 치우치어 이것만을 추구한다면 차라리 멋진 녹음 테이프를 듣는 것 만도 못할 수 있다. 성가대는 밀폐된 공간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때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있는데서 온 성도들을 대표하여 찬양을 드린다. 찬양하는 도중에는 모든 성도가 한맘 한뜻이 되어 가사와 음악을 함께 생각하며 묵상하고 찬양이 끝나면 아멘으로 화답하는 찬양이 될 때 그 찬양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신다. 성가대의 찬양은 하나의 연주가 아니고 단순히 설교를 돕는 정도가 아니며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무드 음악도 아니며 음악적인 감흥을 돋궈주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사이며 찬양 그 자체가 예배의 한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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