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히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시행하리라 (요 14:13-14).
이 구절은 기도 응답에 관한 약속들 가운데서 가장 친밀하며 가장 놀라운 성경 맛萱?동시에 또한 일반적으로 가장 오해를 받는 구절이다.
여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방법으로 기도하면 그들이 기도한 바로 그것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본문을 조심스섭게 읽어보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히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이 성경 구절은 평범하고 단순하며 적극적이면서도 매우 귀중한,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생기를 돋게 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통해서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기도한 바로 그것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셨다는 것을 깨닫을수 있다.
오늘날 기도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교리들이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익하고 좋은 일을 한다. 우리가 기도한 것을 응답받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기도한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응답받을수 있다.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도한 것만큼 좋은 기도의 응답을 받을수 있다."
나는 이러한 기도에 대한 교리에 어떤 진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사실 종종 우리가 기도한 것을 응답받지 못하는 때가 있는데,그것 자체가 좋은 일이 될수도 있다. 우리는 기도할때 너무 부주의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성급하고 더 나아갓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의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한 바로 그것은 응답받지 못하지만 또 어던 때에는 그것이 더 유익할때가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물론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가 기도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받을수 있다는 교리는 어떤 의미에서 진리이지만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기도에 관한 교리가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기도에 관한 교훈은 바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방법으로 기도할때,그들이 기도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응답 받고 때로는 그들이 기도한 것과는 다르게 응답받을수 있지만,그것보다도 바로 기도한 그것을 응답받는다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햐면 바로 그것을 내가 시행하리라."
이 기도에 대한 약속에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첫째로.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기도한 바로 그것을 응답받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누구에게 해당되는 약속인가에 대한 사실이고 둘째로,사람들이 기도한 바로 그것을 응답받기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실이다.
1.이 약속은 누구에게 해당되는가
우선 첫째로 과연 기도에 대한 약속은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인가? 성경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는 구절 가운데 하나는,성경이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약속을,성경이 결코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응용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수 없다고 성경이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도의 약속을 그들에게 적용시켜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기도를 하는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현재 공부하고 있는 이 구절을 보면서 이 구절의 앞과 뒤의 문맥을 깊이 상고해야 한다.그러면 하나님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응ㄷ바하시는가를 분명히 알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너희가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는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는가? 기도의 응답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본문의 앞절과 뒷절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1.요 14:12을 주의깊게 읽어보라."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주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런데 이 본문에서 "너희가"라는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첫째로 기도에 대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이다.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소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대해서 완전히 혼동하고 있다.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이 아무리 훌륭하고 정통적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완전하면서도 정확하게 믿을수 있으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전혀 그를 믿는 것이 아니다. 마귀도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마귀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는 않는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완전히 정통하다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인격적으로 확실히 믿는 것이며,그 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그를 모셔들이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 분이 우리 죄를 몸으로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며,그로 인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이며,우리가 그 분에게 우리의 삶을 완전히 통치하도록 위임하게 하기 이해 그를 우리의 주인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요 1:12에서 찾을수 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성경 어느 곳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그드르이 삶의 주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으며 그와 연합되지 않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한 곳이 없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않으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하나님이 가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는다. 그분은 내가 성경적으로 볼때 그리스도를 믿기전에 나의 기도를 몇가지 들으셧지만 시행하리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이것을 옛 신학자들은 "계약되지 않은 하나님의 자비"라고 묘하게 말했다."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믿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가장 확실히,가장 적극적으로 약속하셨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는 결코 약속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기대를 가질 궈니가 없으며,하나님이 그으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불평할 이유가 자격이 없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여러 번 시도애 보았는데도 하나니이 그드르이 기도를 응답하지 않앗다고 말하며 불평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기도하고 또 기도할지라도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치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좋은 결과중의 하나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우리의 기도의 기초가 되며,우리가 필요한 모든 시간에 언제든지 하나님께 가서 우리의 필요를 기도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응답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다. 나는 백만장자 록펠러의 엄청난 재산을 갖는 것보다 기도의 기초 위에 서 있기를 바라며,내가 기도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응답 받을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이세상의 친구들이 우리를 도울수 없을때가 울수도 있다.그리고 이세상의 거대한 재물로 우리를 돕지 못할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그리고 완전히 구원하시고 도우실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중대한 질문이 우리에게,아니 당신에게 닥쳐 왔다."나는 과연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당신은 혹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불신하고 있지는 않는가? 당신은정말로 그를 믿고 거듭났는가? 만일 당신이 그를 믿지 않고 거듭나지 않았다면 거듭날수 있는 가장 중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 예수를 지식적으로만 앍 머리로만 믿는 사람에게도 가장 중요한 정보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당신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놓은 사실을 믿고 그를 당신의 인생의 주인으로,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세주로 영접하라.그리고당신의 삶 전체를 지금 주님께 드리고 그로 하여금 당신의 생각과 행동과 삶을 지배하도록 허락하라.
2.그러나 이 말만 가지고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의 자격에 대한 진술이 본문 다음 구절 15절에 나와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이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그 계명들을 잘 알아야 하며,또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의 뜻을 계시해 놓은 그의 말씀을 부지런히 일고 공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날마다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들의 행위와 언어와 생각에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그것을 항상 순종하고 행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이미 요일 3:22을 통해서 배웠다."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성경 전체를 통해서볼때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약속은 없다.기도할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기댜한다면 우선 브분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들어야 한다.그리고 항상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날마다 진지하게 일고 공부하며 그분의 뜻을 발견하고 항상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그것이 바로 기도의 응답을 받을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의 기초가 된다.
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요약해 보겠다. '성경이 요구하는 어떤 특정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이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를 사랑하며 순종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아 있는 믿음과,예수 그리스도께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중 어느 것이 더 우리의 기도생활에 중요한가?"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이것은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이 두가지 다 요구된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아 있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사도 바울은 갈 5:6에서 이에 대해 분명히 말했다."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한편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믿지 않는다면 결코 그를 사랑할수 없다.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시작하고 그를 사랑함으로 끝난다.ㅏ도 요한이 요일 4:19 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의무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그러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분이 우리 사랑의 무한한 가치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도덕적으로 온벽하고 무한하신 분이며,창조자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선이 아니다.
췌닝과 그 당시 거대한 지적인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고 있었던 유니테레언 들은 이러한 오류에 빠져 있었다.그들은 하나의 의무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나님을 사아해서는 안되며 또 결코 사랑할수도 없다.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같은 사악하고 무가치한 죄인들을 놀랍도록 사랑하신 것을 진심으로 믿을때 우리는 그러한 노력 없이도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사아하게 된다.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신뢰의 필영적인 결과다.
영국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 마크 거이가 어느날 런던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어떤 소녀가호기심과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크 거이 목사에게 와서 말했다."목사님,저는 예수님을 사랑하지않아요.저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원했지만 사랑하게 되지 않아요.목사님,제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사랑할수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러자 유명한 복음 전도자는 열심으로 간청하는 소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얘야,네가 오늘 집에 돌아가거든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네 자신에게 말해 봐라.그런 후 다음 토요일 밤이 되면 '나는 예수님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할수 있을 것이다."
다음 툐요일 소녀는 그에게 다시 왔다. 소녀는 행복한 눈과 빛 나는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목사님,저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해요.저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어요.지난 주일날 제가 집으로 들아가 목사님이 말슴하신 대로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말을 계속해서저 자신에게 했어요.그 뒤 저는 그분의 사랑과 그분이 어떻게 저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을때 저의 차디찬 마음은 뜨러워지기 시작했어요.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저의 사랑이 충만해 있는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예수님을 사랑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 같은 사악한 죄인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으셨는가,그리고 그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마음속 깊이 믿는 것이다.그리고 "그가 어떻게 우리의 허물로 인해서 상함을 입었는가,그가 어떻게 징계를 받아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는가,그,가 채찍에 밎음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음을 입었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진정으로 믿을때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신앙 생활을 시작한다.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의 위대한 사랑을 믿음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사랑함으로 믿음의 끝을 맺는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구체적인 행위는 그의 말씀을 날마다 열심히 읽고 공부하며,우리의 삶에 대한 그의 뜻을 발견하며,그것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직저 적용시키고 순종하며 행하는 것이다.그때 우리는 비로서 기도할수 있는 기초 위에 서 있게 된다.
몇년저,스코틀랜드에 어떤 유명한 성경 교사가 노스훨드에서 사랑 없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중요하느냐 아니면 믿음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느냐 해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사랑이 없는 믿음보다 믿음이 없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설교가 아무리 위대한 것일지라도 그런 결론을 잘못된 가정과 오해 위에서 내려진 것이다. 그는 우리가 믿음 업이도 사랑을 가질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수 없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결과다.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할수 있는 뿌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믿음을 갖는 것이 더 좋으냐,아니면 믿음이 없는 사랑을 갖는 것이 더 좋으냐에 대한 토의는 마치 뿌리는 좋지만 열매가 없는 사과 나무가 좋으냐,아니면 뿌리는 없지만 좋은 열매를 맺는 사과나무가 좋으냐에 대한 토의와 같다.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말할 것도 없이 뿌리가 없는 나무는 결코 열매를 맺을수 없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믿음의 뿌리를 박지 않으면 사랑의 열매를 절대로 맫을수 없고 그 사랑의 결과롤 오는 순종도 할수 없다.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깊이 상고하고 있는 약속은,그리스도에 대해서 살아 있는 믿음을 갖고 순종하는 사랑을 냐타내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2.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살아 있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그를 사랑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성경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 보자."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바로 그것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다.하나님의 마음을 감동 시키고 움직여 놓기 위해서는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다른 어느 누구라도 요 14:6 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접근할수 없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게로 올자가 없느니라."
그러면 도대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나는 이것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을 들어 왔다.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이것이 애매모호하고 그 뜻이 복합적이고깊오며 신비적이라고 말한다.그래서 그들의 해석을 읽거나 들을 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더 혼란에 빠지는 것 같다.
나는 가장 유명한 성경 교사 두 분을 알고 있는데 그 두 분은 이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정의 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인격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나는 이 위대한 성경 교사들이 이렇게 정의한 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정의가 내 마음속에 명확한 설명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이 진리는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신비스로운 것은 아니다. 이 진리는 어린아이라도 이해할수 있는 아주 단순한 진리이다. 나는 성경의 진리를 어떤 신학자나 철학자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어렵게 해석하는것을 볼때 이해할수가 없다.
성경은 평범한 사람들도 다 이해할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때 꼭 신학자나철학자들의 도움과 그들의 해석을 받을 필요는 없다.주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천지의 주재이신 압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5).
성경의 진리 가운데 대부분은 평범한 남자나 여자,그리고 어린 아이들이라도 그 진리가 무엇인가를 애해할수 있고,또 그것을 순종할수 있다.성경을 지나치게 깊게,또 그것을 억지로 해석하려다가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온갖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
성경의 평범한 진리를 지나치게 생각하고 해석한 나머지 그 성경구절이 나타내는 진리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다.그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다"고 말한다.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분명히 우리에게 알리신다.
당신과 나의 모든 의지를 온전히 하나님께 굴복시키며,우리의 생각으로 성경을 함부로 판단히지 않고,진정으로 그의 뜻을 알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수 있게 된다."나의 이름으로"라는 이 구절도 우리가 진지한 마음으로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추구하면 분명히 깨달을수가 있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의미를 계시해 주신다.
당신이 성경에 등장하는 어떤 단어나 구절들을 보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때 사전이나 주석이나 어떤 신학적인 책을 찾아 복 것이 아니라,그 단어나구절에 과계되는 모든것을 성경에서 찾아보고 또 그것이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관주 성경이 필요하며,또 그 단어나 구절과 비슷한 용어들도 여러 모로 찾아 본다면 진정한 의미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성경의 단어나 구절드르이 의미는 성경 정체에서 그것들이 어떻게,어떤 방법으로,어떤 경우에 스여졌는가를 알아야 하며,이러한 방법을 다 사용해 본후에 그것들을 이해하고 해석할수 있다.
이제 나는 "내 이름으로"라는 구절을 이러한 방법으로 시도해 보얐고 이 구절의 동의 어들인 "그의 이름으로"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표현들을 성경에서 모조리 찾아보았다.나는 이 구절들이 성경 가운데 일상생활의 대화에서 자주 쓰여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청구할때 그 사람의 이름으로 청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대표하고 있다.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거나 어디를 갈때 자기 자신이 초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이름의 소유자가 초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권리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한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내가 어느 도시의 국립 은행에 가서 수표에 "5달러를 토레이 씨에게 지불해 주시오"라고 쓰고 그 수표밑에 내 이름을 싸인한 다음 지불 창구에 가서 직원에게 그 수표를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것인가? 나에게 5달러를 지불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나는 누구의 이름으로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가? 내 이름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 후에 어떻게 되겠는가? 그 은행 직원은 수표를 받아 조사하더니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토레이 씨,우리 은행에 예금한 돈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 그는 뭐라고 말을 했겠는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토레이 씨를 도와드리고 5달러를 지급하고 싶습니다.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 아닙니다.당신은 우리 은행에 돈을 예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 5달러도 지불할수가 없으며 또 당신은 지급받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냐기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이야기가 있다.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어떤 사람이 그 은행에 10만 달러를 예금해 놓고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 보자."토레이 목사님,저는 목사님의 성경 학교의 사역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그래서 제가 예금해놓은 돈 중에서 얼마를 헌금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수표를 꺼내어 "토레이 씨에게 오천 달러를 지불하시오"라고 쓰고 그 수표 밑에 자기의 이름을 적어 나에게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다시 그 은행에 가서 수표를 직원에게 주면서 오천 달라을 지급할 것을 청구할 것이다.누구의 이름으로 청구하고 있는가? 내 이름으로 하고 있는가? 아니다. 그 은행에 10만 달러을 예금해 놓고 수표에 자기 이름을 서명한 사람의 이름으로 청구하고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직원은 그 수표를 보고,또 수표밑에 서명한 이름을 보고 내가 그 은행에 돈을 예금했는지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그는 그 사람아 은행에 10만 달러를 예금한 것을 확인하고 수표 밑에 서명한 이름을 확인한 다음 오천 달러를 나에게 지불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이다.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예금을 해 놓으신 천국은행에 가는 것과 같다.천국은 당신이나 내가,혹은 이 땅의 어떤 사람이 예금한 곳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예금하신 곳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믿음을 갖고 그와 연합하고 그를 사랑하며 순종할때 우리가 필요한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서명된 수표를 가지고 천국은행에 가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청구하는 것이다.예수 그리슫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우리가 하나님께 예금해 놓은 것잉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선행니 행위가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청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 접근할때 그것이 얼마만큼 크든지 관계없이 우리가 필요로 하고 요구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단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혹은 "그의 이름으로 "라는 구절을 기도 끝에 봍이는 것이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올바른 행위를 근거로 하여 하나니께 접근하고 기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끝을 맺는다. 실제로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기도 끝에 사용하고 있지만,그들은 정말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청구할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무엇을 의지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받을수 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기도의 응답을 받을수 있다는 의미이다.그런데 자신의 의로운 행위와 선행의 기초 위에서 기도하면서 끝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기도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에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그들은 ㄱ리스도인의 삶이 넘도 순결하고 확고 부동하며,아주 훌륭한 봉사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선행을 하고 아주 놀라운 봉사 행활을 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그를 높이고,그의 인격을 닮으며,그를 통해서만 기도의 응답을 받을수 있다는 신앙이 있을 때 받는 것이다.
내가 오스트레일리아 맬버른에서 집회를 하고 있던 어느날,사업가들의 모임에서 설교를 하고 내려왔다.그때 사람이 메모지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그 메모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토레이 목사님께
저는 지금 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가 확신하는 어떤 것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오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저는 아직도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장로교인으로서 30년동안 교회에 출석하면서 아주 확고부동한 신앙의 자세로 살아 왔습니다.저는 25년 동안 주일학교 교장으로 봉사해 왔고 20년 동안 그 교회에서 장로로 일해 왔습니다.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수 가 없습니다.저에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다음날 그 메모지를 들고 강단에 올라갔다.그리고 그 편지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회중들에게 말했다."그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쉬운 일입니다.이 분은 30년 동안 확고한 신앙 가운데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또 25년 동안 주일 학교 교장으로서 아주 성실하게 봉사하며 또한 20년동안 교회 장로로서 수고한 사람입니다.그래서 그는 이렇게 훌륭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이 분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접근하는 사람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롤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해야 합니다.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고,받을 수 있는 것은,우리의 죄 값으로 멸망을 받아 지옥에 가는 것뿐입니다.즉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대가는 멸망이고 진노이며 지옥인 것입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무엇을 청구할 권리와 자격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때 우리 자신의 어떤 희생의 기초 위에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신 그 기초 위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은 30년동안 신실한 교인이었고 또 25년 동안 주일학교 교장으로 일했으며 20년 동안 교회장로로 봉사했다는 그런 기초 위에서 기도했던 것입니다.이분은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집회를 끝마치자 어떤 신자가 나에게 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사실은 제가 그 편지를 썼습니다.오늘 목사님께서 저의 문제에 대해서 아주 핵심을 찌르셨습니다.저는 30년동안 신실한 교인으로서,그리고25년동안 주일학교 교장으로서,또한 20년 동안 교회 장로로서 봉사해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땅히 나의 기도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저는 오늘 저의 잘못을 때달았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자신이 매우 신실한 교힌이고 교회의 모든 활동에 아주 능동적인 봉사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그렇기 때문에 하나니께 기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우리 중 아무도 하나님께 무엇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우리는 정말 비참한 죄인들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무엇을 청구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주님은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무엇을 구할수 있는 권리를 주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그의 이름으로 주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덕분으로 기도할 수가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을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라는 구절을 기도를 마치는 표시로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사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가 생각할 때 부끄러운 일이다.
당신은 기도할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귀중한지 아는가? 당신은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깨닫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권리와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얼마나 부요한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맏형이 집을 떠나 있자 내 바로 위에 형에게 모든 재산을 맡기고 그로 하여금 가정의 모든 경비를 지출하고 관리하며 보호하도록 위탁했다.우리의 모든 재산과 돈은 은행에 형의 이름으로 예금되어 있었다.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후,내가 장성하자 그 형도 집을 떠나게 되었다.그형은 떠나면서 나에게 재산을 맡기고 관리하도록 부탁했다.
형은 형의 이름으로 싸인한 빈 수표 뭉치를 나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네가 돈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이 수표에 네가 원하는 액수를 적어 은헹에 갖다 주어라.그러면 은행에서 즉시 네가 원하는 돈을 줄 것이다." 형의 싸인을 한 번 수표 뭉치를 받아 든 나는 얼마나 큰 부자였는가! 나는 필요할 때마다 수표에 원하는 돈을 기록하여 은행에 가져다 주고 돈을 가져 올수 있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 그 분은 그의 모든 은행 돈을 우리에게 맡기셨다.그 분은 우리가 그 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가서 우리의 공로나 원리가 아니라,그 분의 권리와 은혜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을수 있고 그의 은혜를 받을수 있다.
무디가 사업을 포기하기전,그는 아주 활동적인 그리스도의 사업가였다.그는 가끔 시카고에서 시골고 내려가서 며칠 동안 집회를 인도하곤 했다.한번은 그가 시카고에서 좀 멀리 떨어진 일리노이주의 한 마을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는데,그 지방의 어떤 판사 부인이 그에게 찾아와 자기 남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 달라고 간청했다.
무디는 이렇게 대답했다."부인,저는 부인의 남편에게 복음을 전할수가 없습니다.부인의 남편은 교육을 많이 받은 분이고 저는 배운것이 없는 무식한 구둣방 적원입니다."
그러나 판사의 부인은 그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아주 강력하게 말했다.마침내 무디는 가기로 승락하고 그 판사에게 갔다. 그가 판사의 사무실에 도착하자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무원들이,그 총명한 판사가 초라하고 무식한 무디를 어떻게 쫓아 보낼것인가를 상상하며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다.
무디는 판사의 방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판사님,저는 감히 판사님과 같은 훌륭하고 교양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저는 시카고에서 온 무식한 구두 만드는 직공입니다.하지만 판사님께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판사님은 언제 거듭나셨습니까?
무디의 이 당돌한 질문을 받은 판사는 아주 경멸하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젊은이 내가 언제 거듭났는가를 말해 달라고 했지? 내가 언제 거듭났는가? 아,내가 언제 거듭났던가? 자네 어젯밤 잘 잤는가?"
무디가 판사의 이상한 얼굴 표정과 당황한 태도를 보고 밖으로 나오자 판사는 사무원들이 들을수 있을 정도의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 내가 언제 거듭났는가를 말해야 되는가?" 처음부터 대화를 듣고 엿보던 사무원들이 결국 참지 못하고 배를 움켜 잡고 더 크게 웃었다.
그 후 판사는 1년만에 거듭나게 되었다.무디는 다시 그 마을에 가서 판사에게 전화를 하여 이렇게 물었다."판사님,어떻게 거듭났는가를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는 대단히 반가워 하면서 이렇게 간증했다."무디 선생님이 저에게 다녀 가시고 난후 항상 그랬듯이 아내는 교회에 갔고,저는 항상 그랬듯이 집에 혼자 남아 석간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신문을 일고 있을때 갑자기 내 자신이 말할수 없이 비참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그 순간 내가 큰 죄인이라는 사실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들아오기 전에 나는 너무도 초라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아내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 내 침실로 들어가 누워 있었습니다.아내가 내 방으로 올라와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습니다.나는몸이 좋지 않아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얼버무리고 아내에게 잘 자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밤새도록 괴로운 상태에서 몸부림쳤습니다.아침이 되었어도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아내를 감히 쳐다볼수가 없었습니다.아내가 아침 식사를 권했지만 도저히 먹을수가 없어서 몸이 좀 불편해서 먹고 싶지 않다고 변명하고 급히 집을 나왔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했을때 자신이 너무도 초라했기 때문에 사무원들에게 휴가를 주어 모두 내보내고 내부 사무실과 외부 사무실의 문들을다 걸어 잠궜습니다.그리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나 자신의 초라함과 비참함을 느끼게 되었고 내가 얼만큼 큰 죄인인가를 확실히 깨닫게 되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저는 다시 진심으로 '하나님,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외쳤습니다.그래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글나 '하나님,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왜냐하면 나는 유니 테리언을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그랳서 다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하나님,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그ㅐ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저의 죄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할수 없는 빛탐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끼고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저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으 이름으로 용서해 주시옵소서.'그 순간 나의 마음속에는 밀물 같은 평안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시도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우리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여 그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다.
우리는 그의 자신의 선행이나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다.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신 권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금할수 있다.
가끔 우리가 하나님께 엄청난 일을 구했을 때 사탄이 와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엄청난 일을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된다. 너는 그런 것을 받을수 없는 형편없는 그리스도인이야." 그렇다. 사실 우리 자신은 그런것을 구할수 없는 비참한 존재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할수 있다.
내가 하나님께 더 큰 것을 구했을 때 사탄은 더 큰소리로 이렇게 외쳐 댄다."네가 감히 그런 큰 것을 구할 수가 있느냐? 너는 그런 것을 구할 가치조차도 없는 존재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그렇다. 나는그런 큰 것을 구할 자격과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자격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분이가 때문에 나는 나의 공로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가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하나님께 얼마나 귀중하며,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느끼고 생각할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아주 담대하게 나가 큰 것을 구하게 된다.
당신은 그의 이름으로 위대한 일을 구했을 때 그의 이름이 얼마나 영화롭게 되는가를 깨닫고 있는가? 당신은 그의 이름으로 위대한 일을 구하지 않을때 그의 이름이 얼마나 치옥스럽게 되는가를 깨닫고 있는가? 예수님 이름의 능력 안에서 믿음을 갖고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위해 기도하자.
남북 전쟁 당시 오하이오 주 콜롬부스에 외 아들을 두고 있는 어떤 부부가 있었다.그 부부는 외 아들을 볼때마다 기쁨이 충만했다. 어느날 전쟁이 시작된 직후 아들이 붐에게 와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물론 그 부부는 외 아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만 나라를 사랑했기에 그 외아들이 전쟁에 나가 나라를 위해 싸우도록,그리고 그곳에서 희생이 되는 것을 허락했다.
전선에 나간 아들은 그가 전쟁터에서 체험한 내용을 담은 편지를 부모에게 정기적으로 보내왔다.그의 편지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로 인해 외로운 부모도 큰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다.그러나 그렇데 정기적으로 오던 편지가 끊어져 버렸다.
여러 날이 지났지만 편지는 오지 않았다.몇 주일이 지나도 편지가 없자 부모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하는 큰 불안을 갖게 되었다.그러던 어느날 미국 정부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 왔다.편지에는 큰 전투가 벌어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였는데 그 중에 그 집의 아들도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적혀 있었다.그집에는 빛이 사라져 버렸다.오랜 세월이 흘러 그 전쟁은 끝이 났다.
어느 날 아침 그들이 식사를 하려고 식탁에 앉아 있을때 가정부가 들어와서 이렇게 말했다."가난한 거지같은 누더기를 입은 어떤 남자가 와서 아저씨를 찾으며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어요.그러나 아저씨가 그러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어요.그러나 아저씨가 그러한 사람과 이야기학 싶지 않으실 것을 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들어올수 없다고 하자 그 남자가 이 종이 쪽지를 아자씨께 갖다 드리라고부탁하던데요." 그녀는 다날고 꾸겨진 종이 조각을 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아버지는 그것을 훑어 보다가 그 글씨가 아들의 필적임을 알아차렸다.종이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부모님께
저는 총에 맞아 이 짧은 인생을 이렇게 영광스럽게 마칩니다. 그래서 이제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쓰고 있습니다.제가 이것을 쓰고 있을때,전우들 가운데 자와 가장 친한 친구가 제 옆에서 무릎을 꿇고 저의 최후를 지켜보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친구가 이 편지를 아버지에게 전해 줄 것입니다.친구가 가면 아버지의 아들처럼 잘해 주십시오.
아들 찰스
외아들을 잃은 그 집에는 부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그의 외아들을 대신해서 온 이 가난한 친구는 얼마나 귀중한가?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름은 당신과 나에게 나무도 좋으며 위대하다.이처럼 좋고 위대한 것은 하늘에도,이 땅에도 다시 없다.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서 위해한 일을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