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습니다

이사야 61: 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사 61: 3)

13세기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 가운데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복은커녕 어려움만 더하여주신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 아니라 고난을 더하여주셔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네 인생에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보다는
‘마라’의 쓴물을 앞에 놓고 갈증을 참는 고통을 당해야 하는 때가 더 많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할 때만 찬양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면,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허나 “홍해를 갈라지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까짓 쓴물쯤이야 얼마든지
바꾸어놓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생,
우리 역사의 모든 순간순간에도 친히 간섭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생활로 고통스런 날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포로 된 자를 해방시키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찬송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하실 때를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고,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마른 뼈와 같이 죽었던 우리들이 다시 일어나 큰 군대를 이룹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고난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답답한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요셉처럼 구덩이에 던져져도,
바울처럼 옥에 갇혀서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슬픔 대신 화관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요셉처럼 생각지 못했던 큰 고난을 당할지라도,
다시 일으키시고 크게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아멘.
[출처: CBS 오늘의Q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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