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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앙인물

[[구약인물]]지혜로운 여자 아비가일

작성자넓은가슴|작성시간13.01.28|조회수421 목록 댓글 0
지혜로운 여자 아비가일

성경에는 많은 여인들이 나온다.
어리석은 여인 하와를 비롯하여 잠언의 현숙한 여인으로 끝난다.
여인은 종종 교회의 그림자로 나타나며 그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 주기도하며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그를 도왔던 여인 8명을 거론하고 있다.
이는 전도에 지극히 필요한 역할을 한자들이 바로 여인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 예수님의 혈통을 이 땅에 오게 한 중요한 여인 다섯도 마태복음에 기록하고 있다.

이 주요한 여인들을 종합해보면
1. 다말(창38:12-30)―시아버지로부터 예수님의 혈통을 유전함.
2. 미리암(출2:4-8)―모세의 누나로 조력자가 됨.
3. 라합(수2:1-2)―기생으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도와 공을 세움.
4. 드보라(삿4:5)―유일한 여자 사사.
5. 룻(룻1:4-18)―유일한 이방여자로 예수님의 계보를 이은 여자.
6. 한나(삼상1:7-28)―기도의 여자로 사무엘의 어머니가 됨
7. 아비가일(삼상25:31)―나발의 아내로 어려운 다윗을 도움으로 후에 그의 아내가 됨.
8. 사르밧과부(왕상17:15)―믿음으로 자기 먹음 마지막 양식을 엘리야에게 드림으로 풍족한 가루와 기름을 얻고 죽은 아들의 부활의 기적을 봄
9. 수넴여자(왕하 4:8)―엘리사를 접대함으로 아들을 얻음.
10.에스더(에2:17)―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자기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하만으로부터 구함.

이 외에도 수많은 여인들이 성경에 나오지만 오늘은 특별히 아비가일에 대하여 쓰도록 하겠다.

‘아비가일’의 뜻은 ‘아버지는 기뻐하신다’ 이다.
그녀는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녀의 남편 나발은 ‘미련한 자, 라는 뜻이다.
그는 한마디로 물질과 재산에만 눈이 어두워 자기의 재물이 누구 때문에 보호를 받고 축복을 얻고 있는지 모르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마치 무지한 종교인처럼…….
그와 반면에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여자였다.

그녀의 지혜로운 점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나발은 자기의 양을 잘 돌보아준 자가 누구인지 어떤 은혜를 받은 자인지 몰랐다.
2. 이새의 아들이 누구인지 다윗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3. 다윗을 자기의 주인에게서 떠난 한 종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여기고 다윗의 소년의 말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참고로 양털 깎는 날은 이웃으로 더불어 잔치하는 기쁜 날이었지만 그는 이웃으로 더불어 기쁨과 부함을 나누는 즐거움을 모르는 막힌 자이었다.
이는 말씀을 전혀 모르는 자기의 삶에만 집착하는 무지한 종교인의 모습이다.

우리 집에 온 어떤 전도인의 아내(그녀는 65년도에 구원받음)는 K파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라고 끝까지 나에게 강조하고 갔다.
다른 교파가 어떠함을 전혀 모르면서 말하는 이 무지함…….

4. 아비가일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
나발의 집을 파멸하려는 다윗의 말을 들은 그녀는 나발의 죽음과 가정의 파멸을 간구했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사시고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삼상25:26).

5. 그녀는 하나님과 다윗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다윗의 현재 모습은 목동이며 변변치 못한 사람이다.
사울 왕에 비하면 재산도 군사도 권력도 없는 초라한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사울에게 좇기는 불쌍한 사람의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이란 점을 알고 그를 마음을 다하여 자기남편의 무례함을 용서해 달라고 바라며 환대했다.

이를 요약하면
1)그녀는 어떤 처지에서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다.
2)하나님의 말씀을 익히 알고 살고 있었다.
3)때와 시기를 읽고 있었다.
4)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았다.
5)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6)하나님의 사람을 환대함을 실행했다.
7)그녀는 형식이 아니고 온 정성을 다 하여 차기 왕을 자기의 주로 모셨다.
8)다윗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여 피를 흘림을 막았다.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 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삼상25:32-33).

9)나발은 죽고 아비가일은 왕비가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곳에 처해있든지 하나님의 성령의 이끄심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교파를 떠나고 아니고는 다음 문제이고)
우리는 자기가 가진 것이 제일이고 자기가 속해있는 교파가 가장 훌륭하고 자기가 따르는 사람이 가장 성경적이며 훌륭하다고 믿기가 쉽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업적이나 종파의 결과를 보고 따를 것이 아니다.
사람보기에 훌륭한 사람, 사울 왕을 보라.
그는 사람보기에 참으로 훌륭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씀을 떠났을 때 어떤 형편으로 전락했는가?
왕이 할 수 없는 제사장 일을 하고 (종교지도자로 성령의 하는 일까지 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함)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을 죽이는 일이 주업이 되었듯이 지금도 성령을 떠난 많은 지도자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성도들을 핍박하고 출회하고 교제를 방해하는 놀라운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그의 말로는 사울과 똑 같거나 더 무서운 징계가 있을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지혜로운 여인 교회는 어떠했는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단체(모임)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깨닫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 그 군사(다윗과 그 군대)를 환대하는 지혜로운 여인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금그릇 은그릇을 본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비록 질그릇이지만 주님이 쓰시는 깨끗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는 현명한 여인이다.
사울과 다윗을 정확히 분별하는 여인 아비가일!
사람보기에는 다윗은 사울과 비교할 수 없는 미천한 자였으나(그때의 형편이)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금그릇은 내가 보기에 너무나 가치 있어서 버리지를(언젠가는 주께서 또 귀히 쓰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떠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한다)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 우리에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다윗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즉시 실천에 옮긴 사실을 상기하라.
말씀을 뒤로 미루면 그만큼 나에게는 주님의 축복이 멀어짐을 생각하라.
지금 바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리라.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
결코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의 음성에 귀를 기우리지 말자.
주님은 지금 아비가일처럼 다윗의 전언(성령의 음성)에 복종하기를 기다리고 계심을 명심하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보는 영혼의 눈을 밝혀주실 것을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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