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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안의 타투들, 예술로 올라서기

작성자시보네/54|작성시간10.11.11|조회수359 목록 댓글 0



아름다운 도안의 타투들, 예술로 올라서기


 

  

기하학적이고 환상적인 도안, 집념이 타투를 예술의 경지에 올린다.


언제나 타투 이야기를 할 때면 타인으로부터 들은 뻔한 얘기 한 두마디쯤은 하고 지나가야 된다.

그리고 오늘의 글은 압구정 E 호텔 여자 화장실에서 '넌 몸에 왜 그리 그림 그리니'라고 한 쌔끈녀에게 바친다.
(난 그녀의 외제차 탄 남자 패티쉬를 존중했다?고  밝힐 수 있다, 허나 그녀는!)


타투에 매력을 느껴, 그 수가 증가할 때 즈음 주변인들에게 듣게 되는 소리가 바로

'네 몸이 스케치북이냐'
(자기들이 얘기해 놓고도 꽤나 재밌는 농담이라 생각하는 듯 큭큭 웃어대기까지-창의력이 매우 부족하다)

'네 몸이 낙서장이냐 그림 좀 그만 그려라'
(유가적 신체관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교육받은 자라면 한번씩 말해 봄직한) 
 

 

삽화로 보았어도 감탄할 도안들, 몸에 지녀 더 자랑스럽게


몸에 함부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나온,
그러나 농담조로 거리감을 유지하며 던지는 의견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

why not?
뭐 의류 광고에서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거짓말처럼  툭 집어 넣은 카피를 다시 내뱉어 본다.
(제 2의 교복같은 비슷 비슷한 생김을 가진 옷들만 만들었으면서)

왜 안 되는가?

뉴미디어, 새로운 재료, 갓 태어난 채널을 통해 예술이 표현되는 세기에
왜 아직 몸을 통해 표현한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혹한 것일까.

징그럽습니까? 점묘법의 타투


본래 몸은 완벽하고 아름다워서 그 틀을 손상해선 안되기 때문에?
(거짓말! 미디어에선 늘 당신에게 '완벽하지 못하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라며)

아니면 재탕 삼탕 사탕 끝나면 냄비 바닥까지 긁어먹는 조폭 영화의 탓인가?
영화 속 조폭들의 문신은 위협의 수단이고 경계이기에,
때론 화투장을 그려 넣는 센스로 관객들의 실소나 얻어내는 장치로 쓰인다.

 


 

 

가랑이의 털을 제외하면 거실에 걸어도 좋을 만한 그림이다.


아니면 미술 교육 얘기를 할까?
대중들을 감동 시킬 만한 아름다운 도안 찾기가 힘들었다,라고 한다면?
사실 우리나라 타투이스트들의 도안을 보며 가끔 아쉬울 때가 있다.
미대 입시생이 기가 막힌 석고소묘를 그려내듯이, 타투이스트 중 뛰어난 묘사력과 테크닉을 가진 이들은 많지만
창의력 있는 도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전통적으로 '테크닉'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미술 교육의 탓도 있을 것이고,
워낙 타투란 장르가 남의 몸에 시술하는 것인 만큼 정교해야기에  '테크닉'에 집중해 생긴 결과 일 수도 있다.
모든 예술이 장르에 갖힌 정형화의 틀을 깨고 나설때 비로소 날카로운 결과를 쏟아내듯이
타투 역시 각자의 철학을 갖고 새로운 시도를 할때 한계를 벗어난 신선함이 빛이 난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도안을 구성하고 완성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 투자 했을까,궁금해진다.

물론 한국의 타투 시장은 매우 좁다. 유사 의료행위로 적용되어 의사가 아닌 이들의 시술은 모두 불법이며
이런 환경 자체가 예술적 교류와 성장을 막는다.
좀 과장을 하여 '타투 불모지'에 가까운 땅에서 아름드리 나무를 기대한다는 것은 성급하기도 하다.
그나마 '패션 타투'란 유연한 탈을 쓰고 용서 받을 수 있었다.
부자 스타들의 타투를 본 대중들이 '멋'으로 인식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배컴,졸리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제발 그들과 똑같은 도안을 선택 하는 일은 그만둬요)

이렇다보니 입소문이나 웹서핑을 통해 마주치는 외국의 예술적인 타투들은 큰 자극제가 된다.
진화하는 도안들은 장르에 속하기를 거부하고(물론 사람들은 이름 붙여 구분하기를 좋아하지만)
기묘한 매력으로 장인정신을 뽐낸다. 뉴욕의 모던 아트 박물관이나 런던의 테이트 모던 박물관에서 봤다 하여도
의심스러울 것 없이 끝내준다. 유일무이한 형태로 아름다움에 투자 가치를 부여하는 자본의 생리에도 빗겨간다.
팔거나 팔릴 수 없는 예술로 화폭은 '살아간다'

 
고정관념은 장애와 같아서 예술가의 발목을 잡는다. 장르의 장애를 극복한 정신에 사람들은 동요한다.
취향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그 누구도 살갗 위 그림들 안에 감동의 공통분모가 숨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유한하고 변화하는 캔버스의 매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사람마다 미묘하게 다른 살결에 빛깔,
타고난 곡선에 얹어지는 그림은 움직이는 전시장이고 매우 적극적인 소통의 예술이다.

 

 

 무섭다?거슬린다? 이미 기이한 매력에 동요하고 있는것이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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