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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회

<황성(荒城) 옛터>의 10 버젼(Version)

작성자구름밭(김정묵)|작성시간25.01.29|조회수251 목록 댓글 0

 

 

 

 

<황성(荒城) 옛터>는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달 밝은 밤과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만든 노래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3/4박자의 느린 왈츠(Waltz)니다.

 

원곡은 「황성의 적(跡)」으로 1932년 이애리수(李愛利水)가 원곡자이나, 1942년

가수 남인수가<황성(荒城) 옛터>라는 제목으로 변경하여 취입하였습니다.

 

 

 

 

이애리수의 전반적인 예술활동을 발췌하던 중, 국내의 기라성 같은

명가수 아홉분의 버젼이 있어 중간 중간에 편집하여 소개합니다.

 

반주와 빠르기는 무시하고, 음향 상태를 감안하여,

어느 가수의 가창력이 깊은 감동을 주는 지 비교 감상해 보시고,

1,2,3위 순위를 정해 답글로 주시면 제게 참고가 되겠습니다.

 

 

 

이애리수(1911~2009)

 

 

이애리수(李愛利水)는 1911년 개성에서 태어나, 9세 때인 1919년

김도산이 이끄는 신극좌의 배우로 데뷔했다. 본명은 이음전(李音全)이다.

 

 

왕평 작사 / 전수린 작곡 /  원곡자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跡)」 후일 「황성옛터」 

 

 

그의 외삼촌이 취성좌, 조선연극사 등에서 활동한 희극배우 전경희이고,

외할머니는 개성에서 숙박업을 하며 극단의 편의를 봐주던 ‘전씨 부인’이었다.

 

 

 

남인수의  「황성옛터」 

 

 

김도산도 그의 외가 쪽 사람으로 일찍 연극계에 데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후 호수돈여학교를 다녔고, 윤백남의 민중극단을 거쳐 김소랑의 취성좌에 들어갔다. 

 

 

배호의  「황성옛터」

 

 

약혼한 처녀」(「시들은 망초」 각색극, 1928)의 주연을 맡았으며,

이경설과 함께 가극 「화차생활」, 「무언의 회오」(1928) 등에 출연했다.

 

 

윤복희의 「황성옛터」 

 

 

1929년에는 가극 「월광곡」 등의 주연 그리고 막간에 노래 부르는

가극 배우로도 활동했다. 1931년 연극시장으로 옮겨 「흥국백국」(이서구 작),

「사랑의 승리」(이서구 작)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고, 독창과 막간 가수로 활동했다.

 

 

주현미의  「황성옛터」

 

 

1932년에는 태양극장으로 옮겨 「스타가 되려고」

(박승희 편, 1932), 「사막의 광상곡」(박승희 작)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나훈아의  「황성옛터」 

 

 

 

1930년대부터 그녀가 주력한 분야는 대중 가수 활동이었다. 1931년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메리의 노래」, 「라인강」, 「부활」 등 번안곡을 불러 유명해졌다.

 

 

김용임의  「황성옛터」 

 

 

1932년에는 빅타레코드의 문예부장 이기세에게 발탁되어

「황성의 적(跡)」(왕평 작사·전수린 작곡, 후일 「황성옛터」로 알려짐)을 불러

음반 5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최고의 인기 가수가 되었다.

 

 

윤시내의  「황성옛터」 

 

 

같은 해 「고요한 장안」, 「에라 좋구나」 등 연속 인기곡을 발표했다.

그러나 1933년 애정문제로 음독자살 소동을 벌인 뒤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은퇴했다.

이후 대중에게 나서지 않고 2남 7녀를 낳고 살다가 9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용필의  「황성옛터」

 

 

그녀의 이름 ‘애리수’는 서양 이름 ‘앨리스’를 차명한 것으로

, ‘애리스’나 ‘애리쓰’로 표기된 경우도 있다.

 

 

심수봉의  「황성옛터」

 

 

 

1930년대를 풍미한 최고의 인기 가수이며, 특히 애절한 음색으로 망국의 비애와

민족 정서를 표현한 「황성의 적」은 식민지시대를 대표하는 가요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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