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90세까지 펜션을 하셔야지요
세월이 참 빠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퇴직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해 펜션을 시작한 지도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50대 후반은 많은 것을 정리하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익숙했던 일터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러 작은 일 하나에도 마음을 졸이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정원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일상이 어느새 삶의 전부가 되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살아가는 힘과 사람의 정을 배울 수 있었다.
그 많은 단체 손님들 가운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유일한 모임이 있다.
영덕에 사는 부부 동반 아홉 집이다. 펜션 초창기부터 인연을 맺어
어느덧 15년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색소폰을 불고 노래하고 춤추며 밤이 깊는 줄 모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한지,
이제는 술 한잔 기울이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도 충분한 나이가 되었다.
젊음의 소란스러움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깊은 정이 대신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펜션에는 사람 냄새가 있었다. 손님이 정원의 나무를 손질해 주고,
잔디밭의 풀을 뽑아주며 이웃처럼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인원 제한과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많은
단체 손님들과의 인연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제는 많은 손님보다 편안함이 더 소중해졌다. 이불 빨래도 버겁고,
단체 손님을 맞이하는 일도 예전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독채는 비워두고 조용히 방 세 개만 운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영덕 손님들만은 차마 거절할 수 없다.
그들은 올 때마다 바다에서 난 건어물과 먹거리를 한가득 가져오고
가마솥에 육개장까지 끓여 챙긴다.
돌아갈 때는 설거지를 깨끗이 마치고, 마당까지 쓸어놓고 간다.
손님이라기보다 서로를 챙기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이제는 많은 인원을 맞는 일이 힘들어 그만했으면 한다는 말을 꺼내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갈 데가 없어요. 90세까지는 펜션 하셔야지요. 내년에 또 올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인연만큼은 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들른 손님에게 미나리를 조금 뜯어 주었는데,
며칠 뒤 고기와 철쭉 화분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정겨웠다.
이틀 동안 머무르며 장작도 패 주고 텃밭에 물도 주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인연은 시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든다는 것을.
오래 만나야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관계를 깊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손님이 많으면 감사하고, 적으면 몸이 편해 좋다. 그
저 주어진 자리에서 사람들과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누는 작은 정이 내 삶을 끝까지 지탱해 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펜션을 하면서 받은 따뜻한 마음들 덕분에
오늘도 꿈같은 황혼을 살아간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도 변하지만 마음으로 맺은 인연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허리가 꼬부라지는 날까지 사람 냄새 나는 이 작은 쉼터에서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