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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란 안경으로

[연기법]7. 전생과 윤회

작성자효진|작성시간18.02.18|조회수128 목록 댓글 0

7. 전생과 윤회



부처님께서 수행시 무수한 전생을 보았다[숙명통]는 때는 멸진정에 이르기 전 단계가 된다.

그것은 전생을 스스로 보는 것은 불교 수행이 아니어도 또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면 볼 수 있는 것이 된다. 힌두교나 자이나교 지도자들은 전생을 본다.


전생을 포함해 삶은 돌고 돈다는 윤회설은 인도인만의 고유 사상이 아닌 과학의 눈으로 보아도 당연한 것이니..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그것이다. 즉

물질은 형태를 달리 할 뿐 에너지라는 입장에서 보면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이라면 당연히 과거, 현재, 미래 3세로 흘러가고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닌가.[불증불감]


12연기법의 마지막에 생이 노사가 있다고 나온다.

그것을 일반인들은 당연히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보면 식과 명색이 있고 6입이 생긴다는 것은 현재 생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니,

식과 명색 앞에 있는 무명, 행은 과거 생으로 해석하게 되지 않는가.


인도에는 불교가 전해지기 전에 윤회설을 믿고 있었는데..

어떻게 윤회하는 지를 불교처럼 명료하게 보여주는 종교는 없다.


그 뿐인가.

인도인들의 꿈은 어떻게 윤회하는 지를 명확하게 셜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영원한[영겁] 굴레처럼 보이는 무수한 생..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보아도 한번 존재하면 영원히 존재하는 게 아닌가.. 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가[무화] 였다.


잠깐, 인도인들은 삶이란 그냥 온통 고통으로 거기에 진정한 즐거움은 없다고 보았다.

진정한 기쁨은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열반]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여 우파니샤드[브라만교]에서는 전생을 전전하는 것은 아트만이란 자아 덩어리인데.. 그런 아트만에 육체가 더 이상 붙지 못하도록 하여 아트만의 고향인 브라만과 합류하면 윤회가 끝이 난다고 주장하고,

자이나교에서는 아트만과 같은 영[지바]에 탐욕이 결합해 윤회를 하는 것이므로 고행을 통해 탐욕을 거세해 버리면 더 이상 육체가 붙지 않는 축복된 영생의 길이 열린다고 가르친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정신 단련[선정]으로 통해 아트만이 브라만과 하나가 될 수 있다하고,

자이나교에서는 육체를 단련[고행]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출가하여 닦은 수행이 선정과 고행이라 하는 것은 바로 그 당시 인도에서 주류로 인정받고 있는 수행 모두를 몸소 실천한 것이 된다.


그런데 두 방법 모두 고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연한 게 브라만교나 자이나교는 몸이 죽으면 그때 비로소 브라만과 하나가 되고 육체가 없어져야만 완전한 지바만 남게 된다고 하니 죽고나야만 완성되는 것인데..

석가모니 수행자는 살아서 완전히 고를 멸하고자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렇다.

불교는 힌두교나 자이나교와는 달리.. 기독교도 그렇지만.. 죽어서 영생을 얻는 게 아닌

지금 여기서 살아서 부처를 이루는 가르침이다.


이런 기가막히게 좋은 길이 쉽게 성취될 수 있다면 누구나 다아 달려들어 불교 수행법으로 수행하지 않을까..


석가모니부처님이 돌아가신 이후 2, 3백년이 지나 아쇼카 왕국 시절 인도 전역에 불교가 전해지니

수행자들이 불교 수행법을 좇아 벌때처럼 몰려드니.. 그 후 5, 6백년 동안 인도에서 불교가 주류 종교로 자리매김을 한다.


그러면 살아서 일체 고를 멸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먼저 이치적으로 12연기법의 환멸문을 보여준다. 곧

무명을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 내지 생과 노사가 멸하니 모든 고가 멸한다는 게 그것이다.

고로 힌두교와는 달리 살아서 무명을 멸하면 바로 모든 고에서 벗어나 부처가, 아라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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