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검사인데 하는 짓을 보면 시정잡배와 무엇이 다른가.. 하며 혀를 차는 게 오늘이다.
즉 검사라는 이름값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웃음이다.
그럼 이름값에 해당하는 명색이란 무엇인가?..
명색(名色, name & color)은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그 뜻은 대상의 이름과 모습으로
우리말로는 이름만큼 실속이 있어야 한다는 뜻인 이름값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조금 더 뜻을 찾아서..
12연기에서 '식을 연해 명색이 생긴다' 라고 할 때 일반적인 설명은..
이름은 형이상학인 의식을, 색은 물질이라 하여 일체 5온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런데 명색은 이름값이라 하듯.. 색이 있어, 그 색에 이름이 있는 것으로 아는 게 낫다.
색이 있다는 것은 보이는 모습이 있다는 것.
모습을 보아도 이름이 없으면 오래 기억하기 어렵고, 남에게 전하기 어렵다.
모습인 색에 대해 이름이 있을 때 기억하고 전하기 쉽다.
해서 식을 연해 명색이 생긴다는 것은..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외부에 있는 것의 모습을 보며 이름을 붙여준 게 된다.
모습을 보고.. 이름까지 붙여주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게 되는가?..
이름을 붙여준 대상이야 당연히 외부에 있으나, 이름이 붙은 대상은 이미지[상]로 내 의식 안에 있는 게 아닌지?..
그리 알면 명색이란 외부에 있는 게 아닌 의식 안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명색이 감사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데.. 사실은 개처럼 행동할 때
'명색은 검사가 되어서 하는 꼴이란.. ' 라는 식의 말을 듣게 되는 것.
그러니 명색이란 5온 일체 존재라기 보다 마음에 인식된 대상의 모습과 이름(color & name)으로 알아야 한다.
마음에 새겨진 명색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인식된 모습이 차이가 있다.
이렇듯 명색은 각기 개인에게 다르게 인식되기에 그것을 일러 '일체유심조'라 했다
그러니 일체유심조 뜻은..
마음에 있는 각자의 명색은 외부에 있는 것을 고대로 카피한 게 아닌 마음이 조작해 알고 있다는 것으로..
원효 선배님이 어둠 속 잠결에 갈증을 느꼈는 데 마침 옆에 물이 있어
벌컥벌컥 시원하게 마시고 흐뭇한 맘으로 잠에 다시 들었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젯 밤에 마신 시원한 물은 해골에 구더기가 꿈틀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아~~~ 그 찝한 기분.. 세상 온 똥물을 혼자 마신 듯.. 그래서 세상 모든 오물이 자기 몸 속에 있어 토해내듯..
토악.. 눈물콧물 흘리며 또 토악질을 하다..
어제 시원하게 마신 물은 어디있지?.. 하며
아하.. 일체유심조구나.^^. 하고 깨쳤다는 것..
일체는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리나 모두 내 마음이 만든 존재일 뿐이다.
부처님은 32 특징이 상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 32가지 특징을 모두 갖춘 분이 있다면 그는 부처님이 틀림없는 게 된다.
그리고 부처님 제자라면 부처님의 설법을 되새겨 자기 것이 되도록 관찰해야만 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하면 입으로만 중얼중얼거리는 게 아니라.. 이 뜻은 말이야 하면서 새기고 또 새긴다..
그렇게 불제자들은 부처님을 32상인 색으로 보고,
음성[설법]을 잘 기억해 지키고 전하고 있을 때 불교는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 것인데..
<금강경>에서는 언이해어블한 내용이 나온다.
'만약 색으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가는 것이기에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이건 또 무슨 뜻이지?!..'
불교가 인도에서 전성기를 이루고 있던 시대를 아비달마 또는 상좌부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 불교는 불상과 불탑을 조성하여 순례 예배객이 끊어지질 않았고, 승원에서는 독경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불교가 쇠퇴했을 때.. 불탑은 무너지고 승원은 쥐죽은 듯 조용했으니..
불상[색]은 무너지고, 불법[음성]은 인도에서 사라졌다.
이게 현실인데.. <금강경>의 4구게는 우리가 아는 상식을 거꾸로 설명하고 있는 게 아니냐 말이다.
그렇다. 그것은 우리는 욕탐산 정상을 보며 올라가며 살고 있는데, 4구게는 욕탐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러니 위 4구게처럼 세상을 보며 살아가려면 세상 상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왜 사니? 하고 물으면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말할지라도.. 그 근본에 이르면 행복이 된다.
그럼 진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에 부처님은 답하신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그럴 경우 가장 바닥에 있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그때는 이렇게 살고 있으니..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가르침이나 스승을 받들고 따르면서도..
자신은 그런 줄 전혀 의식[집착]하지 않고 있다. 그런것인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면 그는
색으로 나를 보고,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는 삿된 길 에 빠져 있는 게 된다.
색[모습]이나 음성은 내 마음이 만든 허상일 뿐이기에..
그러나 나는
불교가 온누리에서 이해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색으로 부처님을 보고, 경에서 부처님을 찾는 집들이 지천에 널리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활염 지옥에 빠지는 서원이라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