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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의 웅장한 멋 살려 지은집

작성자아름드리.|작성시간23.05.09|조회수91 목록 댓글 0

전통 한옥의 웅장한 멋 살려 지은 집





전통 한옥의 웅장한 멋 살려 지은 집
 
여름에 얼음이 어는 것으로 유명한 경남 밀양의 얼음골 언저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400미터의 탁 트인 산중턱에 시원한 풍채를 자랑 하는 한옥 두 채가 서 있다. 울산에 사는 강성수ㆍ김미옥 씨 부부가 은퇴 후를 대비해 지은 한옥이다. 돌아가신 부친에게 바치는, 최고의 한옥을 짓겠다는 일념으로 정성을 들인 한옥에는 전통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살아 있다.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영남 지역의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경 남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 지대가 높아 볕이 잘 드는 삼양리三陽里에는 상양마을, 중양마을, 하양마을이라는 세 마을이 있다.

그중 맨 아래에 있는 하양마을에 들어서자, 차 한 대가 겨우 지 나갈 정도의 골목길이 꼬불꼬불 이어진다.

앞이 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방향 을 꺾으니 갑자기 탁 트인 넓은 터가 나타나고, 푸른 잔디 위 에 한옥 두 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얼음골이 있는 천황 산과 백운산, 정족산, 운문산 등 영남알프스의 준봉들이 주 변을 에두른 한옥을 보는 순간‘, 아!’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 온다. 사방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산수화와 어우러 진 고풍스러운 한옥이라니…. 우뚝우뚝 솟은 산들은 보고 있 기만 해도 호연지기가 절로 생길 것만 같다.
영남알프스의 준봉들이 호위하는 전망 좋은 터
 “ 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에 처음 왔는데, 탁 트인 전망과 주변의 산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자봉 정상을 바 라보며‘여기가 바로 내 땅이구나’생각했지요. 당시엔 돌이 많은 너덜이었는데, 터를 닦아놓으니 동네 사람들도 깜짝 놀 라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곳인지 몰랐다면서 말입니다.” 돌과 잡목이 우거진 산비탈에 불과했던 땅을 한눈? 알아 본 이는 강성수(57)ㆍ김미옥(55) 씨 부부. 울산의 아파트에 사 는 부부는 은퇴 후를 대비해 5년 전 이곳에 한옥을 지었다.

30여 년 동안 농협에 다니고 있는 강씨는 주말마다 이곳에서 한옥을 가꾸며 휴식을 취하고, 안주인 김씨는 평일에도 수시로 오 가며 한옥 생활을 즐기고 있다. 두 한옥 중 한 채는 살림집이고, 다 른 한 채는 펜션이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노후에 소일거리도 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한옥 펜션을 한 채 더 지었습니다. 사실 펜션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사 람들을 만나기 위한 것입?다. 노후에 부부 둘이서만 지내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펜션은 누구 나 찾아와 자연 속에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님께 부끄럽지 않은 한옥을 짓다
부부의 한옥은 한눈에 봐도 정통 한옥에 가깝게 지은, 예사롭지 않 은 한옥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집인들 주인이 정성을 들이지 않겠냐 마는 부부의 정성이 남달랐던 이유는 따로 있다. 이는 강씨가 한옥 을 짓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어릴 적 부산에서 한옥에 살았는데, 고등학교 때 한옥을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삿짐을 다 뺀 후에도 나오지 않고 눈물을 흘리시며 그 한옥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셨지요. 그만큼 아버님에게는 소중한 한옥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형편이 되면 아버님께 꼭 한옥을 지어드려야겠다 생각했습 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선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이제야 한옥을 짓게 되었지요. 비록 늦긴 했지만, 돌아가신 아버님께 부끄럽지 않 은 최고의 한옥을 지어드리기 위해 정성을 들였습니다.” 7남매 중 막내로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강씨는 돌 아가신 부친에게 바치는 집인 만큼 가장 좋은 자재를 쓰는 것은 물 론, 정통 한옥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울산 근교의 땅을 보 러 다니던 중 우연히 찾은 이 터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최고의 한옥 에 어울리는 전망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2003년 땅을 산 뒤 강씨는 집을 짓기 위해 인터넷과 책을 보며 공 부를 하는 한편, 휴가를 내어 남원의‘ 황토건축학교’에 다니면서 직접 흙집을 지어보기도 했다. 그런 다음 2005년 토목공사를 시작 해 터를 개간하고 2006년부터 집을 올렸다. 건축 업체나 목수에게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공정별로 자재와 인부를 구해 직영으로 지 었다. 한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수도 직접 찾았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한옥을 발견해 지은 목수를 찾 았는데, 한옥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전통도 살리면서 성의 있게 지어줄 것 같은 믿음이 들어 일을 맡겼지요. 모 든 걸 직접 구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비용도 줄이고 만족스러운 것 같아요. 나무 값이 많이 들어 본채는 평당 1000만 원, 펜션은 60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업체에 맡겼으면 훨씬 더 들었을 겁니다.” 한옥에는 나무가 중요한 만큼 부부는 목재를 구하는 데 특히 신경 을 썼다. 지름이 1미터가 넘는 대들보부터 전봇대 굵기만 한 서까래 와, 서까래 위에 대는 개판까지, 모든 목재를 강원도에서 구해온 육송 을 이용했다. 자연스러운 나이테가 무늬를 이루고, 군데군데 옹이가 박힌 나무들은 하나같이 매끈하게 잘생겼다.
궁궐처럼 화려한 본채와 민가처럼 소박한 펜션
 언뜻 비슷해 보이는 두 채의 한옥은 자세히 살펴보면 외관부터 내 부 구조까지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부친에게 바치는 집은 30평 규 모의 본채로, 궁궐이나 대갓집처럼 웅장하게 지은 반면, 45평의 펜 션은 민가처럼 소박하게 지으면서 실용성을 가미해 찾아오는 손님 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우선 두 채의 지붕에서 그 차이가 확연하게 ?러난다. 본채는 전 통 지붕 중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인 데 반해, 펜션은 간결한 맞배지 붕이다. (본채와 펜션 사이에 있는 4평 규모의 창고에는 우진각지붕 을 얹어 다양한 전통 지붕 양식을 보여준다.) 또 본채에는 도자기 기 와를 썼지만, 펜션에는 평범한 토기와를 얹었다.‘천년의 미소’로 불리는 신라시대 막새의 웃는 얼굴이 새겨진 도자기 기와는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져 지붕의 색감을 신비롭게 만든다.

특히 공을 들인 곳은 천장이다. 본채의 거실 천장에는 궁궐이나 사찰 등 고급스러운 건물에 쓰던 우물 정井자 모 양의 우물천장을 짜 넣었다. 주방에는 우물천장 과 연등천장(서까래가 드러난 천장), 부챗살 모양 의 선자 서까래가 한데 섞인 형태인 눈썹천장이 눈길을 끈다. 눈썹천장은 팔작지붕의 추녀 아래 공간을 장식하던 화려한 천장 형태로, 천장의 다 양한 모습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반면, 펜션은 서까래가 일자로 드러나는 평범한 연등천장으로 돼 있다.

또 본채는 대나무로 외를 엮은 뒤 황토와 짚을 섞은 반죽을 바르 는 전통적인 심벽치기 방식으로 벽체를 만든 데 비해, 펜션에는 황 토벽돌을 쌓아 벽을 세웠다.

창호는 전통 방식을 살리면서도 단열에 신경을 써 본채와 펜션 모 두 이중으로 달았다. 외관이 중요한 본채는 바깥에 문살이 있는 목문 을, 안쪽에 시스템 창호를 설치한 반면, 펜션은 바깥에 시스템 창호 를, 안쪽에 목문을 달았다. 또 본채는 궁궐이나 대갓집처럼 앞쪽에 창 살이 돋보이는 큰 문을 여러 개 이어 달고, 아래쪽 기단부를 검은색 흙벽돌로 마감해 기품을 드러냈다. 반면 펜션은 기둥과 목재 사이를 회벽으로 마감하고 툇마루를 달아내 소박한 운치를 살렸다.

그러나 바닥의 경우에는 본채보다 펜션에 더 공을 들였다. 펜션에 는 황토 위에 삼베를 붙이고 접착력이 좋은 유근피와 콩기름, 들기름 등으로 여러 번 칠해 길을 들였지만, 본채에는 황토를 깔고 한지만 발 랐다. 바닥 작업은 부부가 직접 했는데, 펜션을 먼저 작업해 본채 바 닥을 마무리할 때에는 너무 지쳐 쉬운 방식을 택 한 것이라고 한다.

내부 구조는 각 건물의 용도에 맞게 설계했다.

본채는 살림집인 만큼 가운데 거실을 넓게 하고, 안방과 서재 방은 작게 만들었다. 주방에는 거실 과 분리되도록 문을 다는 한편, 천장 위쪽에 다락 을 만들어 수납 공간을 마련했다.

펜션에는 단체 손님용으로 가운데에 넓게 트 인 원룸 형태의 큰 방을 넣고, 양쪽 가장자리에는 작은 거실에 구들방이 딸린 가족실을 배치했다. 양쪽의 두 방은‘동 편제’와‘서편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이렇듯 두 채를 다른 방식으로 지은 데에는 사람들에게 전통 한옥 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강씨의 남다른 의도도 담겨 있다.

“한옥을 통해 우리 전통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옥은 이런 곳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도록 한옥의 다채로운 모습 을 담았지요. 한옥이나 전통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 낄 수 있도록 ?주고 싶었어요. 사회 환원이라고나 할까요. 30여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한 방법이라 고 볼 수 있겠지요.”
한국적인 정원 가꿔 한옥을 완성하고 싶은 부부의 꿈
 집을 짓는 동안 자재와 업체를 알아보고, 작업을 거들면서 인부들 의 참까지 해낸 것은 주로 안주인 김씨였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을 대신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김씨가 처음부터 한옥 짓기 에 이렇게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시에서 자란 남편과 달리, 어릴 적 김해의 시골에서 자라 시 골 생활이 힘든 걸 잘 알기 때문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런데 남편이 한옥을 짓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를 느꼈어요. 그래서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했지요. 그런데 막상 한옥에서 생활해보니 너무 좋더라고 요. 공기와 물이 좋고, 여름엔 문을 열어놓으면 얼마나 시원한지 몰 라요. 이젠 여기 오면 울산으로 돌아가기 싫을 정도랍니다. 대궐 같 은 한옥을 지어준 남편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부친을 위해 지은 한옥의 주인이 어느새 아내가 되어버렸다.

2007년부터 운영한‘얼음골한옥펜션(www.hanokpension.com)’ 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김씨는 쉴 틈이 없을 정도다. 마당의 잡초를 뽑고 방을 쓸고 닦는 게 그의 주된 일이 지만, 마냥 즐겁기만 하다. 이제 얼음골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 하면 김씨는 더 바빠질 것이다.

그런데 여름철 손님 맞을 생각에 마음이 분주한 김씨와 달리, 내 년에 정년퇴직을 하는 강씨는 다른 구상으로 마음이 바쁘다.

“아직은 미완성입니다. 한옥은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야 하는 데, 아직 주변을 다 가꾸지 못했거든요. 지금은 여력이 없어 마당에 잔디밭을 깔고 돌담만 쌓았지만, 은퇴한 뒤에는 한옥에 어울리는 한국적인 정원을 만들 계획입니다. 한 100년쯤 뒤에는 이 한옥도 혹 시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당신의 한옥에서 즐겁게 살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을 하 늘에 계신 부친은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계시지 않을까.

한옥을 나서는 길, 영남알프스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하늘에 계 신 분의 영험한 기운 덕인지, 오후 햇살 때문인지는 몰라도 팔작지 붕 기와의 빛깔이 더욱 황홀하게 변해 있다
출처 농민신문 글 김봉아 기자 사진 박경섭(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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