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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빚다, 흥에 취하다: 우리동네 술도가를 찾아서·(12)] 이화주 대중화 앞장 '양주골 이가 전통주'

작성자풀내음|작성시간22.10.06|조회수45 목록 댓글 0

[술을 빚다, 흥에 취하다: 우리동네 술도가를 찾아서·(12)] 이화주 대중화 앞장 '양주골 이가 전통주'

'한잎, 두잎' 봄날 배꽃 필무렵 빚어… 긴 기다림 끝에 소중한 '한입, 두입'

이경숙 대표가 양주골 이가 전통주에서 제조된 이화주를 보여주고 있다. 양주/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그저 전통 술로만 알던 막걸리가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어느새 소주, 맥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민 술'로 대접받고 있다. 막걸리가 이처럼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생긴 변화는 다양화와 세계화다. 전통을 살리되 다양한 취향을 겨냥하고 이런 맥락에서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방향으로 뻗어 가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막걸리는 오래전부터 다양했다. 지역마다 제조법이나 맛을 내는 방법이 다 달랐고 이런 각양각색의 맛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우리 조상은 즐겼다.

최근 지자체들이 앞다퉈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주를 내놓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좋은 쌀을 생산하는 양주시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쌀은 막걸리의 주재료이자 그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주지역 쌀 브랜드인 '양주골 쌀'로 빚은 '이화주'는 색다른 풍미로 차츰 이름을 알리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이화주란 배꽃 필 무렵 빚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통주로서 아직 여러 지역에서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긴 하나 이전까지만 해도 그리 잘 알려진 술은 아니었다. 이 술이 양주에서 빛을 발하게 된 건 전통 제조법을 되살린 한 여성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다.


조선시대 '온주법' 모태로 내려온 전통주
양주골 쌀로 빚어 색다른 풍미 이름 알려


20년 넘게 이화주를 빚고 있는 이경숙(63)씨는 '양주골 이가 전통주'라는 농업법인을 차리고 이화주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장본인이다.

이씨는 "이화주는 조선 시대 온주법을 모태로 조상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우리 전통주"라고 소개했다. 온주법은 1700년대 무렵 한글로 작성돼 전해져 오고 있는 일종의 요리책으로 80% 이상이 술에 관한 내용이다.

사실 이화주의 내력은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에는 한여름 갈증이 나면 찬물에 타서 마셨다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양주골 이가 전통주에서 제조된 이화주와 삼양주.


이씨는 모친으로부터 이화주 제조법을 물려받았다. 이씨 모친은 '의성 김씨' 집안에서 대물림해오는 이화주 제조법을 열여섯 살부터 온전히 지켜온 장인이다.

이화주는 마치 떠먹는 요구르트 마냥 걸쭉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그래서 '떠먹는 막걸리'로 유명세를 타며 국내 유일의 발효식품 전문시상인 '참 발효 어워즈'에서 올해 막걸리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러 주요 주류 시상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많은 상을 받았다.

쌀·누룩·물로만 6개월 긴 숙성과정 거쳐
'떠먹는 요구르트'처럼 걸쭉한 질감 특징

참 발효 어워즈 막걸리 부문 대상 받기도


이씨가 이화주를 빚기 시작한 건 40대 초반이었다. 모친에 비하면 한참 늦은 나이에 입문한 셈이다. 이씨는 "연로해 가시는 엄마를 보며 평생을 바쳐 지켜온 술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늦게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소개한 이화주 제조법에는 쌀과 누룩, 물 이외 어떠한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6개월이란 긴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발효와 1차 숙성에만 두 달이 걸린다. 그리고 저온 숙성이라는 2차 숙성기간으로 꼬박 석 달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해서 출고까지 한 달을 더 기다려 반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맛을 볼 수 있기에 더 귀하게 여겨진다.

이씨는 "밑술을 빚고 나서 이틀 간격으로 덧술을 하고 마지막 덧술은 고두밥으로 마무리한다"며 "발효는 약 2주간 진행되며 이후에 숙성실로 옮겨서도 후속 발효 과정을 계속 하기에 발효와 숙성 과정만 두 달 정도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화주의 대가인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기술 중 가장 난도가 높은 건 발효 온도였다. 술 항아리 내외부의 미세한 온도 차이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정량화하는 게 문제였다.

이씨는 "발효가 왕성할 때 항아리 안은 바깥보다 온도가 높아 이 적정 온도를 찾아내야 하는데 엄마는 온도계가 아닌 감으로 해냈기에 나름대로 온도 데이터를 만들어야 했다"며 "온도를 재면서 엄마의 술빚기를 체계화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경숙 대표가 숙성 중인 술 항아리를 보여주고 있다. 양주/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삼양주 제조법으로 빚은 '주줌치'도 선봬
강하지 않은 향에 알코올 도수 17도 고수


이씨의 양조장에서는 이화주 외에 우리 전통 손맛을 잇는 전통주가 또 있다. '삼양주(三釀酒)'라고 하는 전통 곡주 제조법으로 빚은 탁주와 약주다. '주줌치'라는 상품명으로 시중에 선을 보이고 있다.

전통주는 술 빚는 횟수로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로 구분하는데 삼양주는 3단계의 담금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곳 양조장에선 제조기간이 길더라도 되도록 전통 기법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곳에서 제조되는 삼양주의 특징은 강하지 않은 향에 알코올 도수는 항상 17도를 고수한다는 것이다. '덧담금'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술 도수를 20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만 이씨는 17도에서 발효를 멈춘다. 술맛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온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개똥쑥을 넣은 술과 그렇지 않은 술은 차이가 확연한데 향이 은은하며 술맛을 풍부하게 해준다"며 "17도를 유지하는 것은 목 넘김이 부드럽고 향을 오래 끌고 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코올 도수 17도 유지는 이씨에게 술을 전수한 모친의 영향이 크다. 모친 또한 술을 빚을 때 17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씨는 "엄마는 십대 때부터 술을 빚었고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만든 술을 외할머니 솜씨보다 더 낫다고 칭찬했다"며 "내 술은 '엄마의 술'이나 다름없어 '술이 독하고 맛있다'는 기준을 17도로 삼았다"고 말했다.

사라져 가는 전통주의 명맥을 이으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시도되는 가운데 이씨의 술이 주목받는 건 '전통주는 대중화가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있기 때문이다.

양주골 이가 전통주 내부에 마련된 술 전시장.


이씨는 전통주 보전의 비결을 아이러니하게도 변화에서 찾고 있었다. 양주골 이가 전통주에서 나오는 이화주는 그 독특한 맛과 질감에 호기심으로 디저트로 떠먹거나 칵테일 방식으로 타 먹으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도 애호가가 늘고 있다. 제조법은 전통에 충실하되 맛은 현대인의 기호에 맞춘 것이 통한 셈이다.

이씨는 "이화주나 삼양주는 원래 걸쭉하고 무게감이 지금보다 훨씬 더했다"며 "하지만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무게감을 살짝 낮추고 잔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약간 틀었는데 오히려 좋은 평이 나오는 것 같아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술을 빚는 데 향토 브랜드인 양주골 쌀만을 쓰면서 지역 농가에서도 '서로 상생하는 길'이라며 무척 반기고 있다. 지자체에서도 지역을 알릴 만한 전통주에 지역 쌀까지 홍보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 되고 있다.

이씨는 술 빚기를 배우면서 다소 늦지 않았나 싶어 처음엔 회의감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씨는 "엄마가 평생 만들어온 술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다가 나이 40줄에 들어서야 문득 '7남매 모두 관심이 없으니 이대로 대가 끊길 수도 있겠구나'하는 걱정이 들어 막무가내로 시작했다"며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으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라도 시작하길 참 잘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출처 경인일보 양주/최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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