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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씨 간장이 된장맛 비결”… 전통 지켜온 ‘장’한 세월[M 인터뷰]

작성자인연|작성시간23.03.31|조회수146 목록 댓글 0

 조정숙 다농식품 대표가 잘 숙성된 된장을 보여주고 있다. 한입 먹어보니 너무 짜지 않으면서 구수하고, 깊은 맛이 입안에 감돈다. 문호남 기자


■ M 인터뷰 - ‘국내유일 된장명인’ 조정숙 다농식품 대표

1984년 초계 변씨 며느리 들어와
시어머니 뒤에서 장 만들기 배워
시할머니부터 ‘100년 세월’ 전수

12월 메주 만들어 40일간 발효
이듬해 900개 항아리에 장 담가

“집안 장류 역사 정리” 명인 신청
전통식품 분야 총 79명 활동 중

초등학교 옥상에 장독대 만들어
어린이 장담그기 체험 확대할것


2010년 개봉한 영화 ‘된장’에는 환상적인 맛의 된장이 나온다. 영화는 탈옥 후 신출귀몰하게 도주 행각을 벌이던 연쇄살인마가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다가 무방비 상태로 잡힌 후 사형이 집행되던 날 “그 된장찌개가 먹고 싶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자 방송국 PD가 이 된장의 비밀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에 나오는 된장은 아기 흑돼지가 기른 콩으로 만든 메주를 귀뚜라미의 공명으로 발효한 후 매화 꽃잎이 삭아 든 흙으로 빚은 항아리에 햇빛으로 말려 세월로 간수를 뺀 소금과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옻 샘물로 담근다. 이런 된장이 실제로 있을까. 국내 유일의 ‘된장 명인’ 조정숙(62) 다농식품 대표에게 물었다.
“영화에서는 된장 만드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죠.”

조정숙 대표는 “좋은 된장을 만들려면 전통의 방식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매화나무 아래에 항아리를 묻고, 된장을 담그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데 땅에 묻은 항아리에 된장을 담그면 습해져서 발효가 안 되고, 곰팡이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대한민국 식품명인 78호다. 농식품부는 지난 1994년 식품 제조·가공·조리 분야에서 우수한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식품명인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전통식품 분야에서 79명이 명인으로 활동 중이다.

세계 3대 광천수로 유명한 초정리 인근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우산리 다농식품 마당에는 1000여 개의 대형 항아리가 놓여있다. 장맛은 정월장이 으뜸이다. 다농식품에서는 12월에 메주를 만들어 40일 정도 발효시킨 후 이듬해 1∼3월 800∼900개의 항아리에 장을 담근다.

조 대표에게 장 만드는 과정과 비법을 물었다.

“발효시킨 메주를 깨끗이 씻어 소독한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을 부어 숯·대추·고추를 띄운 후 60일 뒤 된장과 간장을 가르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에요. 비법은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드는 거죠(웃음). 좋은 콩을 써야 장맛이 담백해지고, 3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소금물을 내야 쓴맛이 안 나요. 물도 중요해요. 예전에는 초정광천수로 장을 담갔어요. 지금은 상수도로 담그지만 이 동네 물이 워낙 좋아요. 그다음은 정성이죠. 짚을 태워서 항아리를 소독해요. 장을 가른 후 된장은 2년 이상, 간장은 1년 정도 숙성하는데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항아리를 두고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장이 숨을 쉬게 해줘야 해요. 장이 숙성되면서 부풀었다 내려앉기를 반복해 항아리 안쪽에 여러 줄이 생겨요. 항아리에 벌레가 올라오면 속으로 들어가라고 버선을 거꾸로 붙여요.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해서 금줄도 두르고요. 집마다 장맛이 달라요. 대기 중 떠다니는 균이 붙어서 발효가 되는데 집 안에 어떤 균이 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거죠.”

조 대표의 ‘된장 인생’은 1984년 초계 변씨 가문에 27대손 셋째 며느리로 들어오며 시작됐다.

“가풍을 익혀야 해서 시어머니와 6년을 함께 살았어요.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생활을 시작하니 모든 게 낯설었어요. 종갓집이라 식솔이 많았고요. 시어머니가 손이 크셔서 음식을 풍성하게 만드셨고, 된장·간장도 많이 담그셨어요. 어느 날 장독대에 가보니 엄청나게 큰 항아리가 있더라고요.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간장에 제 얼굴이 달덩이처럼 비쳤어요. 그때 문득 ‘장 만들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 대표의 된장에는 삼대를 이어온 100년의 세월이 녹아있다.

“시어머니는 20세에 시집와서 93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73년 동안 장을 만드셨고, 시할머니의 장까지 더하면 제가 100년 넘는 세월이 담긴 장 만들기를 배운 거죠. 목욕재계하고 풀 먹인 옥양목 앞치마를 두른 시어머니가 장을 담그시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배웠어요. 한겨울 서릿발같이 매서운 말을 들으면 서러웠지만 어려울 때마다 처음 간장독 안을 들여다보던 기억을 되새기며 초심을 잃지 않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고부간인데 갈등이 전혀 없었을까.

“어머님은 지혜롭고 현명하신 분이에요. 다섯 며느리를 누구 하나 흉보지 않으셨어요.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시며 조곤조곤 살아가는 법을 전해주셨어요. 옆에만 있어도 그분의 삶이 흡수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단 한 번도 제게 화를 내시진 않았지만 장을 가르칠 땐 엄격하셨어요.”

조 대표의 시어머니는 평생 종부로 살아온 경험을 살려 1992년 다농식품을 창립했고, 조 대표가 1996년 사업을 승계한 후 2018년 식품명인을 신청했다.

“저는 돈 버는 재주가 없어요. 쓰는 재주만 있죠(웃음).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제가 사업을 시작하며 판로개척을 도와줬어요. 다농 상품의 95%가 한살림을 통해 판매돼요. 홍보를 전혀 안 해도 한번 드신 분이 계속 찾아주셔서 매출이 떨어진 해가 없었어요. 항상 감사하죠. 남편이 ‘우리 집안의 장류 역사를 정리해보자’고 권해서 식품명인을 신청했어요. 보통 삼수·사수한다는데 저는 신청한 해에 바로 됐어요(웃음).”

 된장이 숙성되며 부풀었다 내려앉기를 반복해 항아리 안쪽에 여러 줄이 생긴다.


이쯤에서 조 대표만의 ‘된장 비법’을 다시 묻자 “씨 간장과 메줏가루”라는 답이 돌아왔다.

“멀리서 오셨는데 알려드려야죠(웃음). 메주에 소금물을 부은 후 100년 넘은 씨 간장을 섞어요. 대대로 내려온 장맛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죠. 매년 씨 간장에 첨장을 하지만 바람과 햇빛에 조금씩 줄어들어요. 그래서 소금으로 채운 커다란 항아리 안에 씨 간장 항아리를 넣어 보관해요. 또 장 가르기를 한 후 된장에 메줏가루를 섞어 맛을 내는 것도 저만의 비법이에요.”

창업 30주년을 맞은 조 대표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금이 제 인생의 최고점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은 다 내려놓고 여행 다닐 나이지만 저는 일을 더 벌이려고 해요(웃음). 올해 경기 수원시에서 시작한 초등학교 옥상에 장독대 만드는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에요. 음식은 기억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직접 장을 담가본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우리 전통식품을 소중하게 생각할 거예요. 또 친정에서 배운 음식과 시어머니의 내림 음식, 장을 담그면서 제가 개발한 음식 등을 담은 조리서를 만들고 싶어요. 물론 사업도 계속 잘해야죠(웃음).”

 조정숙(오른쪽) 대표가 딸 변수정 씨와 1000여 개의 항아리가 놓인 장독대를 거닐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문호남 기자


■ 전수자 지정된 딸 변수정 씨… “된장 철학 이어받아 세계인 입맛 공략”

어릴적 집안 메주냄새 싫었는데
대학다니며 식문화 중요성 눈떠

무겁고 불편했던 전통방식 도구
플라스틱 대체불가 소중함 느껴


조정숙 다농식품 대표는 지난해 딸 변수정(26) 씨를 식품명인(된장) 전수자로 지정했다.

조 대표는 “힘든 일이라 안 물려주려 했다”며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딸이 ‘엄마의 된장 철학을 이어받고 싶다’고 말해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전수자가 명인이 되려면 최소 15년이 걸린다. 명인으로부터 5년 이상 기술을 배운 후 관련 업종에 10년 이상 종사해야 명인 후보가 된다. 명인 심사 기준은 전통성·정통성·계승 필요성·산업성 등으로, 지정되기까지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름 앞에 ‘2021-78’이라는 전수번호가 붙은 변 전수자는 “어렸을 때 온 집 안에서 메주 냄새가 나는 게 너무 싫어서 눈만 뜨면 짜증을 냈다”며 “서울에서 대학 다니며 시간에 쫓겨 끼니를 배달 음식으로 대충 때우다 보니 식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은 메주 냄새가 향기로 느껴진다”면서 “집안 대대로 내려온 장 문화를 배우고, 가업을 이어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딸이 우리 전통을 지키며 세계인에게 한국 장류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변 전수자는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여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전통방식에 새로운 방법을 접목해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된장을 만들고 싶어서 요즘 발효공부를 하고 있다”며 “명인이 되면 장류를 만드는 도구를 전시하고, 장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된장 전수관’을 만들겠다. 또 영국 왕실에 우리 전통 장류를 넣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변 전수자에게 “전수받으며 가장 힘든 일”을 묻자 “장 만드는 도구 이름을 외우는 것”이라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그는 “소금물을 받는 도구를 ‘너리기’라고 하고, 소금물을 내리는 도구는 ‘질시루’, 덩굴로 시루를 막는 도구는 ‘댕댕이’라고 부른다”며 “도구가 불편하고 무거워서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로 만들면 안 되나’ 싶었는데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장이 특별하다는 걸 알게 된 후 모든 도구가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변 전수자는 메주 한 덩이로 쉽게 만들 수 있는 ‘빠금장’ 레시피를 소개했다. 메주를 곱게 빻아 김치 국물에 비빈 후 부뚜막 위에 올려 며칠 숙성시키면 된다.

그는 “봄이 와서 김장김치 독이 비어갈 때쯤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된장”이라며 “김치의 칼칼한 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장맛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문화일보 김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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