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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 그 사연] 고복수 ‘짝사랑’…일제강점기, 민중의 서글픔·허망함 담겨

작성자인연|작성시간23.02.22|조회수46 목록 댓글 0

일러스트=김홍기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면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네분의 묘소가 있다. 그분들이 생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는 각각 ‘희망가’ ‘짝사랑’ ‘목포의 눈물’ ‘선구자’였다. 이분들은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할 때나 두루 어울림이 긴요할 때 참모들과 고뇌와 아우름의 술잔을 순배(巡杯)와 합주(合酒)로 기울이며 이 노래들을 읊조렸다. 간혹 홀로 독배(獨杯)를 거듭하여 명정(酩酊)의 경지에 이른 경우도 있었단다.

고복수의 ‘짝사랑’은 박정희의 반주가(飯酒歌)였다. 노래 앞에는 오프닝 대사가 먼저 울렸다. ‘그 님 못 잊어 찾아왔어요 / 그 님 생각에 저물었어요 / 외로운 들국화 날리는 저녁…’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고복수 ‘짝사랑’ 가사 1절)


이 노래는 고복수가 1930년대 후반 오케레코드 전속가수로 부른 곡이다. 그는 광복 이전엔 일본과 만주 등지로 순회공연을 했고, 광복 후엔 백조악극단원으로 활약했다.

노래 ‘짝사랑’에는 서글픈 비장의 서정이 흐른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의 상황과 백성들의 허망한 일상이 노래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는 일제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야욕을 불태우면서 우리나라를 군국주의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때다. 강제징용·창씨개명·신사참배·조선육군징집령·정신근로대·종군위안부 등등. 곱씹어 생각할수록 울분이 펄펄 넘친다.

고복수는 황금심과 부부 가수였으며, 둘은 연예계에서 스캔들 없이 살아온 잉꼬부부였다. 고복수는 1972년 2월 식도염과 고혈압으로 투병하다 사망했는데, 당시 이봉조·김세레나·신카나리아·신성일 등 연예인들이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고별곡으로 불렀다. 고복수의 영전에서 ‘타향살이’를 장송곡(葬送曲)으로 불러준 신성일도 최근 영원한 타향살이 길을 떠났다. 울긋불긋한 오색 단풍이 자꾸 말을 걸어오던 2018년 가을날에. 인생은 들녘에 떨고 있는 들국화를 바라보다 떠나가는 짝사랑의 길이다.

유차영<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출처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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