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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 그 사연] 진방남 ‘꽃마차’…하얼빈의 이국적 풍광을 가사에 녹여내다

작성자인연|작성시간23.03.03|조회수144 목록 댓글 0

일러스트=김홍기


노래도 고향이 있다. 노래가 탄생하거나 가사 창작의 모티브가 된 지역 또는 상황이 그것이다. 1939년 태어난 노래 ‘꽃마차’의 고향은 중국의 하얼빈이다.

이 노래는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사살한 지 30년이 되던 해 발표됐다.

그날 오전 9시30분, 하얼빈역에는 초겨울의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 시간은 멈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4년 1월19일 그곳 하얼빈역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개관했다.

노래하자 꽃 서울 춤추는 꽃 서울

아카시아 숲속으로 꽃마차는 달려간다

하늘은 오렌지색 꾸냥의 귀거리는 한들한들

손풍금 소리 들려온다 방울 소리 울린다.

(진방남의 ‘꽃마차’ 1절)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치하였던 1939년. 진방남이 만주로 공연을 가서 이재호와 같이 머물던 중 걷잡을 수 없는 이국정서에 이끌려 이 노랫말을 적었단다. 애국정서의 발로였을 터이다. 가사 중 서울은 원래 하얼빈이었으며, 진방남은 그때 스물두살이었다.

그의 노래는 유랑의 서러운 심정과 가족 사이의 애환, 향수와 탄식 등 식민지시대의 삶과 정서를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다. 식민지시대 대다수 가수의 생애가 그렇듯 진방남도 고난의 청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철물점·고물상·양복점 점원 등의 경력을 거쳤다. 그는 2012년 3월 95세를 일기로 이승을 등졌다. 가요계의 큰 별이 진 것이다.

191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진해농산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경북 김천에서 열린 전국신인남녀콩쿠르대회에서 입상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백년설의 데뷔와 같은 해다. 그는 이름이 많다. 박창오·반야월·추미림·박남포·허구 등.

가수로 데뷔한 이듬해 진방남으로 ‘불효자는 웁니다’ ‘고향만리’ ‘오동닙맹서’ 등을 히트시킨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이름을 반야월로 바꾸고 작사가로서 ‘단장의 미아리고개’ ‘만리포 사랑’ ‘삼천포 아가씨’ 등을 발표했다. 그는 박시춘·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로 불린다.

유차영<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한국콜마 상무이사>

출처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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