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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 그 사연] 김도향 ‘바보처럼 살았군요’, 한 많은 한국인 원통함 풀어주는 위로

작성자인연|작성시간23.03.10|조회수26 목록 댓글 0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수록한 김도향 독집.

김도향의 노래 ‘바보처럼 살았군요’는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온 한국인의 원통함을 잠시나마 풀어주는 위로의 노래 가운데 하나다. 김도향은 1970년 손장철과 그룹 ‘투코리언즈’를 결성해 데뷔했다. ‘벽오동’을 비롯해 애환이 담긴 노래를 불러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활동을 이어갔다.

한편 1975년 전후로 정부는 대통령 긴급조치를 명목으로 대마초에 손댄 연예인을 대거 잡아들였다. 이때 실제 관련자가 아님에도 억울하게 잡혀들어간 이들이 많았다. 이 사건을 ‘대마초 파동’으로 불렀다. 관련 연예인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의 해금 조치가 있을 때까지 방송에 출연할 수 없었다. 김도향도 대마초 파동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1977년 어느 가을, 하염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봤다. 낙엽이 자신의 처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만들었다. 가사를 보면 그의 좌절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인생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후 김도향은 광고음악을 만들어 생계를 꾸렸다. 그러다 곡을 받으러 온 가수 이종용에게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줬다. 얼마 후 가수 김태화가 서울국제가요제에 출품한다며 노래를 부탁하자 같은 곡을 건넸다. 이종용이 찾아와 두 사람에게 같은 곡을 줬느냐며 따졌다. 문제가 되자 김도향은 자신도 복귀작으로 이 노래를 취입해 버렸다. 결국 한해에 세명의 가수가 같은 노래를 각각 발표한 것이다. 가요계가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던 시절의 촌극이다.

이 곡은 1980년대 서로 다른 이유로 주목을 받았다. 먼저 최규하 대통령이 8개월 만에 직을 사임하고 정권을 넘긴 일이다. 대학생들이 이 사건을 조롱하며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최규하 주제가’로 칭했다. 다음은 한창 유행하던 주부가요교실에서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로 청춘을 보낸 주부들이 낮에 짬을 내 가요교실에 모여 노래를 배웠다. 이때 가장 많이 부른 노래가 이곡이었다. 회한이 담긴 가사가 주부들의 울화를 날려준 것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했다. 나이 70이 넘으면 마음 가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쯤 되면 현자(賢者)가 된다는 뜻이리라. 지금은 100세가 넘는 생을 각오해야 한다. 현자가 되어 바보처럼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출처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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